•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수*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사학] 이기백의 민족과 역사를 읽고 평가B괜찮아요
    民族과 歷史(이기백 저)를 읽고.Ⅰ. 韓國史學의 反省植民主義的 韓國史觀 批判1. 半島的 성격론의 모순우리 민족의 역사적 무대였던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은 행운이었다기보다 불행의 굴레로 생각하며 이러한 주장에 가장 열을 올린 것은 일부 日人 학자였다.그들은 半島라는 자연환경에서 오는 특성인 附隨性·周邊性·多隣性으로 한국은 중국의 전례주의적 ·주지주의적 지배와 만몽의 정복주의적· 주의주의적 지배와 일본의 포옹주의적 ·주정주의적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는데, 이제 일본의 온정적인 지배를 받음으로써 한국은 반도적인 성격을 지양할 때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이같이 한국의 역사는 자율적이 아닌 타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黨閥性·依賴性·雷同性·宿命論 등등으로 표현되는 한국민족성의 여러 가지 특징도 여기에 그 근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남달리 고난에 찬 역사가 되었음은 사실이나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사대주의적 경향을 우리의 선척적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 즉 지리적 조건은 인간사회의 내적 발전의 법칙과의 관련하에서만 고려될 수 있는 것으로 흔히 사대주의라는 한국사의 불행한 역사를 지리적 결정론에서 찾는 것은 모순이다.2. 사대주의론 비판한국사에서 사대주의적 경향을 밝히는 것은 지리적 결정론에 대한 보다 완전한 비판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금에 대한 이자겸의 경우, 몽고에 대한 왕실과 문신의 경우, 명에 대한 이성계 일파의 경우 등 일부에서 무력적인 압력에 대하여 사대적 사상을 가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이민족의 무력적 침략의 소산인 경우보다 선진문화에 대한 동경심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그러한 예이다.이러한 사대주의는 문화적인 면에서 선진문화의 섭취라는 오히려 적극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단지 자기문화의 후진성에 대한 자각이 지나쳐서 自卑心에까지 발전한 데에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 요소가 움트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이러한 자비심은 연약한 앙반귀족들의 족이 생명과도 같이 귀중한 것이었다. 사실 단재는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그가 委任統治문제에 있어서 목숨을 내걸고 타협을 거부한 한 가지 사실로서도 충분히 이를 알 수가 있다.춘원 이광수는단재는 大義에 관해서는 一步의 가차함이 없었다.단재가 민족을 위하여 옥사한 것에 반하여, 육당은 일제 말기에 절개를 굽히는 汚點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역시 춘원이육당이 사명은 조선주의를 부르짖고 조선정신을 부활시키는 데 있었고, 또 장래에도 그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육당을 평가함에 있어서 민족주의를 빼놓는다면 그의 가장 중요한 면을 默過해 버리는 것이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은 역사에 있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 단재의 한국사관단재의 한국사관이 잘 나타난 것은 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단행본이 간행된 제 1편 「총론」이다.이 총론에서안정복이 東史綱目을 짓다가 개연히 내란의 빈번과 외구의 출몰이 東國의 古史를 蕩殘케 함을 비난하 였으나, 나로써 보건대 朝鮮史는 내란이나 외국의 兵火에서보다 곧 朝鮮史를 저작하던 其人들의 손에 서 더 蕩殘되었다. 하노라. ( pp. 6-7)고 하였다. 이는 단재가 과거 한국사 서술방법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 단재는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으로 파악하였다. 무른 주관적 위치에 선자를 我라 하고 그 외에는 非我라 하나니, 아는 입장에 따라서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단재의 역사서술에 있어서는 그 아가 항상 한국 민족이었고, 따라서 그의 한국사는 한국 민족과 이민족과의 투쟁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단재의 한국사를 대외투쟁사에 국한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민족의 성쇠는 매양 그 사상의 추향(趨向) 여하에 달린 것 」이라는 말로서 시작된 「朝鮮 의 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所收)이란 제목의 논문은 고려 시대의 묘청의 난을 논한 것인데 그는 이 묘청의 난 - 단재는 이를 하나의 반란으로 보기를 거부하여 西京戰役이라고 불렀다.-을 고려로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세계성을 띤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인식이 있을 수 없었다.이에 비하면 육당은 훨씬 넓은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커다란 문화권 속의 한국을 인식하고 있었다. 단군신화의 연구에 있어서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을 한국에 설정하여 마치 하나의 문화적인 제국을 꿈꾸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의 〈조선불교〉에도 이러한 경향이 없지 않지만, 문화의 세계사적인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독자적인 위치를 밝히려는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다음으로 그들의 민족주의사학이 지니는 문제점은 역사적인 발전에 대한 개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단재의 역사의 시간적 인식은 민족 의식의 강약과 투쟁의 승패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반복사관이 될 따름이며 我와 非我의 설명에는 마치 변증법을 연상시키는 듯한 대목이 있다. 그러나 그 대립과 투쟁을 지양하여 새로운 보다 높은 것으로 발전하는데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육당의 경우도 발전에 대한 개념을 찾기 어렵다. 그에게는 조선 정신 발로의 강약 뿐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민족주의 사학은 결함을 드러내 놓고 있다.현대의 역사학은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과정을 구명하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민족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사는 한국사 나름의 특수성이 있다. 그러나 영구불변의 민족적 성격이나 정신에 의해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특수성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한국사의 발전과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곧 민족의 새로운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사학의 앞에 놓여진 과제는 고아로서의 한국이 아닌 인류의 한 가족으로서의 한국의 발견인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민족주의 사학을 계승 발전시키면서도 이를 극복 지양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民族主義史學의 發展1. 머리말爲堂 鄭寅普 , 湖岩 文一平에 관한 글을 「민족주의 사학의 발전」이란 제목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위당과 호암 두 분의 민족주의사학은, 전자가 민족정신을 보편하여만일 被征服群 자신이 자기의 특수성을 高調한다면 그것은 소위 갱생의 길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노예화에의 邪道에 떨어지는 것이다.( P.445)라고 하였다.그런 그가 특수사관을 비판하는 대신 一元論的 歷史法則을 내세웠다.그러면 일원론적인 역사 법칙에 대하여 p.33에 설명하였다.그는 식민사관과 민족주의사관, 즉 소위 그가 말한 특수사관을 비판하고 대신 일원론적 역사발전이란 것이 곧 유물사관의 공식이라는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공식을 한국사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고 비난되어 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사적인 발전 과정에 비추어서 한국사를 체계화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미 일제시대에 일본학자에 의해서 높이 평가되어 왔다. (四方博 「사회경제사학의 발달- 조선」사회 경제사학 10의 11·12, 1941).그러나 위의 공식은 유럽사가 기준이 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곧 세계사적인 발전 법칙일 수 만 은 없는 문제가 있다.그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자기 나름으로 「삼국시대 말기로부터 점차 아시아적 봉건제가 발생하였다.」( P.449)고 하여 또 하나의 다른 설, 즉 한국에 있어서는 봉건 사회에서의 특수성, 그러므로 아마 全社會發展에 있어서의 아시아적 특수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 게 아닌가 추측한다. 이렇게 각자 자기 나름의 법칙들을 상정하고 그러고도 기본적으로라는 원칙아래 일원론적 발전법칙을 내세우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그의 연구는 귀납적 방법이 아니라 법칙을 일방적으로 적용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사의 체계화를 위한 노력으로서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또 하나의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적 사관인 셈이다. 사회경제사학이 한국사학에 끼친 기여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목적은 그가 구체적으로 세계사적인 법칙이라고 주장한 것이 도리어 특수 지역의 역사에서 얻어진 법칙이기 때문에, 早熟性의 민족으로 파악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사적인 법칙이란 것은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의 법칙만이 역사를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손진태 『조선민족사개론』만이 독자적인 견지에서 씨족공동체사회·부족국가· 귀족국가의 3단계발전을 제시하고 있다.셋째, 민족의 성장과정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다. 손진태『국사대요』,이인영『국사요론』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 구분법은 試論으로 제시되었을 뿐 개설의 서술에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서 한계성이 이미 인정되고 있다넷째, 주제별의 의한 구분법이다. 이인영『국사요론』이 있는데, 시대를 퍽 잘 나누어서 그 시대의 특징을 이룬다고 생각되는 것을 표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 유형에 해당된다.다섯째, 사회발전과 왕조와를 혼합해서 구분한 것이다. 여기에는 이홍진· 한우근· 신석호· 조좌호 공저의 『국사신강』, 김용덕 『국사개설』, 이기백 『국사신론』 등이다. 이들은 실은 사회발전의 단계에 입각해서 시대구분을 하고 있으나, 현재의 연구수준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왕조에 의한 구분을 겸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 2유형에 넣어서 생각해도 무방하겠다.여섯째는 지배세력의 변화에 따르는 기준으로 구분한 것으로 이기백 『한국사신론』이 그 예이며, 손진태 『국사대요』를 여기에 넣어도 좋다.이상에서 나온 시대구분법은 대체로 연대순을 따랐으니 시대 구분법이 변천하여온 대세도 이로써 짐작할 수 있다.3. 여러 시대구분의 검토(문제점)1 시간의 遠近에 의한 시대구분 : 서양 사학의 영향에서 이루어 진 것이며, 종래의 왕조중심 구분법에 비판을 내포하고 있으나 잘 살펴보면 결국 왕조중심 사관으로 되돌아 간다.2 사회발전 단계에 의한 시대구분 : 제 1유형의 비판에서 출발하였으며, 시대 구분에 사회 유형, 사회 구성이라는 구체적 내용을 담으려 하였고 한국 사회의 발전을 세계사의 발전법칙이라는 공통 분모 위에서 저울질해 보려고 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사학의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정체성 이론에 대한 비판을 내포함과 동시에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노예사회에 관한 문제, 중세 봉건사회( 봉건 영주가 없던 한.
    인문/어학| 2003.01.09| 17페이지| 1,000원| 조회(83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2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1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57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