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관리의 원칙 을 읽고..한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경영자간의 친밀하고 우호적인 협조가 있어야한다. 즉, 대단한 경영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영의 대상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구속받기 싫어하는, 누군가를 구속하고 싶어하는 양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개념은 서로 상반된 동기부여를 한다. 사용자는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최대의 이익을 내고자 하는 반면 노동자는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많은 보수를 받고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늘 고민중이다. 인간은 움직이기 싫어하며 되도록 똑같은 월급이라면 안정된 직장일수록 보수적인 관점에서 일을 하려 한다. 보고서보다는 간단한 말로 대강 처리하고자 한다. 즉,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전수하려한다. 어쩔 수 없이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데이터를 처리할 때는 과학적인 체계보다는 단순한 수치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첫째, 개개인 또는 기계의 실질적 생산성의 증가로 결국 많은 사람을 실직하게 한다는 착각이다. 둘째, 개개의 노동자가 자신의 최대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느리게 일하는 것이 필요하게끔 만드는, 불완전한 경영시스템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노동자들이 많은 노력을 낭비하도록 하는 주먹구구식의 비효율적인 방법이 거의 모든 직종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초래하였는가를 인지하여야 하고, 과학적 법칙에 근거하여 작업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간에 과거의 경영방식에서보다 좀더 균등한 책임의 배분이 필요하다.이러한 등등의 폐단들을 하나의 체계화된 과학적 관리로서 경영한다면 새로운 보다 나은 생산성 및 이윤창출에 도움이 된다라고 테일러는 내용에서 하나하나 지적하며 자기만의 독자적인 시스템에 합리화하고 있다.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의 기본적인 철학의 대원칙은 노사의 공동번영은 서로의 진정한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고 했다. 근로자와 사용주의 최대이익은 경영의 두 가지 주된 목적이어야 하고 사실 이 두 가지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조차 불필요한 정도로 명백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평화보다는 분쟁 중에 있고 양측 모두가 그들의 상호관계를 조정하여 서로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듯하다.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는 직무에 대한 연구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동작연구를 통하여 작업을 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보통사람(육체적으로 일을 담당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일류 노동자)이 할 수 있는 작업량을 산출하였다. 그의 이러한 연구는 직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작업에 대한 최선의 방법을 규명한 것이다. 그의 이론이 과학적 관리법으로 불리는 것도 직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연구는 직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작업에 대한 최선의 방법을 규명한 것이다. 과학적 관리법 이라고 불리게 된 것도 과학적인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테일러는 최선의 작업방법을 찾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작업의 내용과 임금제도를 연계시켰다. 그 당시에는 주로 임금이 시간급제로 지급되고 있었으나 그는 성과급제를 도입하였다. 그는 최선의 작업방법으로 그에 의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루의 공정한 작업량을 산출한 다음, 작업량에 따라 임금률을 차등화하였다. 즉 Incentive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입한 Incentive제도는 차별성과급제(differential piece-rate system)라고 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즉, 그가 설정한 공정한 작업량에 도달한 작업자에게는 고율의 임금률을 적용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작업자(체계적인 태업이 발생한 작업자)에게는 낮은 임금률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그는 또한 분업의 원리를 적용하여 일선감독자들은 부하들의 생산성만을 감독 하도록하고 나머지 생산계획이나 품질, 작업자, 훈련등의 관리업무는 전문적인 감독자를 채용하여 이들에게 업무를 맡기는 기능식 직장제도(functional formanship)로의 개편을 주장하였다. 기능식 직장제도는 라인조직에서와 같이 한 사람의 만능직장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전문화하고 각 전문부문마다 전문적 지식을 가진 직장을 두어 작업자를 전문적으로 지휘, 감독하는 제도이다.테일러는 노동자와 경영자의 이해가 일치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당시의 비능률적이고 낭비적인 업무수행을 제거하고, 서로간의 이해에 대한 갈등을 해결하기위해 관리자의 새로운 임무를 중시하였다. 첫째, 노동자의 일의 각 요소에 대하여, 과거의 주먹구구식 방법을 대신할 과학을 개발한다. 이는 작업자가 아닌 관리자가 수행한다. 또한 모든 노동자의 각각의 동작은 엄밀한 원칙을 따르도록 하며, 사용하는 도구와 작업조건에 있어서도 모든 것이 완벽하여야 하고 표준화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과학적으로 노동자를 선발하고 훈련하며, 각 노동자를 자기의 업무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으로까지 개발시킨다. 노력하여도 최적의 작업방법으로 일할 수 없거나 또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노동자들은 그 작업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셋째, 모든 업무가 앞서 개발된 과학의 원리들에 입각해서 행하여질 수 있도록 노동자들과 진심으로 협력한다. 또한 경영진의 꾸준한 도움과 관심을 통하여, 그리고 지시받은 대로 생산성 높게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많은 상여금을 지불함으로써 융합을 이루어야 한다. 넷째, 노사간에 일과 책임에서 거의 균등한 분배가 이룩된다. 하루 종일 관리자는 작업자들의 곁에서 그들을 도와주고, 격려하고, 그리고 그들이 작업을 쉽게 수행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과거에는 관리자들은 한 편에 비켜서서 작업자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작업방법, 도구, 일의 속도, 그리고 연관 업무의 협동에 관한 모든 책임을 작업자에게로 돌렸었다. 이 요소들 중 앞의 세 가지는 많은 경우 솔선과 격려 의 경영 하에서도 소규모의 원시적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솔선과 격려 의 경영 하에서 이 세 가지 요소들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과학적 관리 하에서는 이것들은 전체시스템의 핵심을 형성한다. 솔선과 격려 의 경영 하에서는 모든 문제는 실질적으로 노동자 에게 달려 있는 반면, 과학적 관리 하에서는 문제의 반은 경영자 에게 달려있다. 또한 과학적 관리 에서 가장 탁월한 하나의 요소를 꼽는다면, 업무목표 즉, 과업(task) 에 대한 아이디어일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의 과업은 적어도 하루 전에 경영자측에 의해 완전히 계획이 수립되어지고, 대부분의 경우 모든 노동자들은 작업을 수행하는데 사용될 작업방법은 물론, 그가 완수해야 할 임무를 상세히 기술한 문서화된 지시사항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먼저 계획된 작업은 노동자 단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와 경영자측의 협동작업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임무로써 구성된다. 이 문서화된 업무지시는 무엇을 할 것인지는 물론,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업무수행에 허용된 시간까지를 명시하고 있다. 만약 그의 과업을 제한된 시간내에 완수하면 그는 평상시 임금의 30~100퍼센트를 더 받게된다. 하지만 우리가 명백히 인식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서든 노동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의 속도로 작업하도록 설정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과업을 적성에 맞는 노동자가 업무를 수행할 경우에, 오랜 기간 동안 일정한 속도로 일을 하여도 과로하지 않고, 더 행복해지고, 더 부유해지도록 항상 조정되어 있는 업무목표 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과업관리의 결과 위에서 언급한 차별 성과급 제도 즉, Incentive제도라는 획기적인 것이 도입되었다. 결국 작업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과업달성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과업달성의 보조적 수단으로 도입한 이 제도는 작업자를 금전적 관점에서만 관리하고자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실제로 적용한 결과 작업자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소득이 크게 증가하였다.
『안토니아스 라인』을 보고..오늘날 현대 사회는 그 이전의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발전하였다. 산업혁명 이전, 궁핍하고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서민들의 삶, 문화가 여유로워짐에 따라 서민들의 지위 또한 대폭 높아져 여성들의 인권과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기존의 부계 중심의 사회는 이를 억압하고 착취하기만 하였다. 그 시대 노동자와 농민의 인권과 최소한의 기본권, 그리고 정치에 대한 참정권은 보장되었으나 여성의 인권과 권익은 보장하지 못하고 핍박만 하였다. 전통 사회의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도구적 수단으로 이용되기만 하였고 거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였다.새로이 나타나게된 여성들의 여성해방운동과 기존 부계 중심의 사회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여성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게 되었으며, 여성운동이 강화되면서 남녀 차이에 대한 논의가 생겨난다. 오늘날의 현대 윤리 문제들 중에 여성에 관한 문제는 현대 사회의 커다란 장애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안토니아스 라인 은 이런 부계 중심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뒤집음으로서 획기적인 여성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영화속의 여성들, 어머니 안토니아, 그녀의 딸인 다니엘, 손녀인 테레사, 증손녀인 사라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남성에게 의존적인 모습이 아닌 자신들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사는 여인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많은 사람들이 안토니아스 라인 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독해하는데, 그러한 독법을 따를 경우, 이 영화의 인물군 중에서 농부 댄 일가는 전형적으로 남성 위주의 질서를 상징한다. 폭력과 강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그 세계의 희생자인 디디는 안토니아네 사람들에 의해 구조된다. 댄-피트 라인의 세계와 안토니아 라인간의 갈등은, 안토니아가 돌아와 처음으로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 『여전히 못생기고, 성질이 더럽군』하는 댄의 일갈로부터 시작돼, 댄의 아들 피트가 안토니아의 손녀 테레사를 강간하는 데 이르러 극점에 달한다. 이때 가하는 안토니아의 응징 역시 비남성적 세계의 그것이다.또한 이 영화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토니아네 가계가 기존의 인간사와는 달리 여성 중심의 역사가 된다는 것은 물론 시사적이다. 안토니아네는 기꺼이 아비 모를 자식을 낳으며, 안토니아 스스로 아들과 남편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농부 바스의 질문에 그런 것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정작 안토니아스 라인 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러한 여성주의적 요소를 여느 유사한 경우에서보다 아주 심오한 지점으로부터 확보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명시적인 남성적 악과 대결하는 에피소드에서보다는 안토니아의 세계관과 굽은 손가락의 세계관이 변별력을 갖게 되는 지점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이 밖에도 위선에 찬 마을의 신부에 관한 에피소드, 교회에서 가르치는 죽음의 행복을 떠나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신부. 그는 세속의 욕망을 긍정하여 환속한 끝에 임신쟁이 레타와 결혼한다. 그리고 가톨릭 계율 때문에 아래층에사는 신교도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보름달이 뜨면 늑대울음을 울다 죽고마는 미친 마돈나 이야기, 이 에피소드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삶을 제약해온 종교적 요소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또한 안토니아에게 청혼하던 바즈의 대화도 인상깊다. 안토니아는 아들과 남편이 필요하지 않냐는 바즈의 질문에 필요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녀는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처럼 아들을 필요로 하지도, 남편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그녀 나름대로 그녀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손녀인 테레사를 강간한 피터를 응징하러 가는 모습이 있다. 안토니아는 다니엘에게 총을 넘겨받고 술집에 들어가 피터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녀는 널 죽여버릴 수 있었다면 죽였을거야. 하지만 그 대신 저주를 해주지. 넌 아이를 강간했어. 라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피터에게 폭언을 쏟아놓는다. 난 그녀가 그를 총으로 응징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은 빚나갔다. 영화속에 남자들은 큰소리치고 여자들은 숨죽이고 살았다는 표현이 있다. 분노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력으로 대항하고 그를 직접 응징하진 않았지만 그저 숨죽이고 참아내는 그 이전의 여성들의 모습이 아닌 가해자에게 당당히 대항하는 모습이다. 이전에도 피터가 자신의 친동생을 성폭행 했을 때 마을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침묵을 지켰다. 피터는 그때 마을을 떠났지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다시 마을로 돌아와 친동생을 폭행했을 때 농기구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다니엘의 딸을 강간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값을 치뤘지만 끝내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는 못한다.
{우리고장 세시풍속세시풍속은 일상생활에 있어 계절에 맞추어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민속을 말한다. 설날, 상원, 단오,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새 옷으로 단장하고 조찬을 장만하여 조상과 제 신에게 제사하는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농경 문화를 중심으로 한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세시풍속은 우리에게 생활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초에는 농작의 풍요를 위해서, 파종기에는 그 식물의 생명력의 숙성을 위해서, 그리고 수확기에는 추수의 감사를 위해 다양한 행사들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이 때 평소의 일손을 쉬고 시절 음식을 마련하기도 하고, 명절 옷으로 갈아 입기도 하고, 가족이나 동족 단위의 제사 또는 마을 단위의 축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중 행사들은 단순히 생활에 활기를 줄 뿐 만이 아니고 그 집단 나름의 사회적인 결합을 재확인 시키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유대를 돈독하게 함으로써 농사일을 서로 도우며 수확량을 증대시키고, 전 국민적인 일체감을 부활시켜 주기도 한다.반면 오늘날에 와서 서양의 정체 불명의 여러 풍속들이 들어와서 요즘 신세대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우리의 생활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젠 서양 문화라고 딱히 꼬집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서구 문물과 정신이 깊이 내재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세시풍속을 알아보고 우리집 및 마을의 세시풍속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정월 초하룻날은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로서, 이날을 ‘설날’이라 하여 연 시제를 지내며, 웃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우리집에선 새해 첫날이면 가족들 모두 큰집에 모여 명절 옷으로 갈아 입고 큰방에서 집안의 어른, 즉 조부모님께 먼저 세배를 드린다. 그런 다음 작은방으로 옮겨가서 큰아버지부터 차례대로 세배를 드리고, 차례를 지낸다. 우리집에서의 차례상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고조 할아버지 즉, 4대손 이하를 지낸다. 5대손 부터는 10월 시제시 한꺼번에 지내고 있다. 그리고 설날에는 세배하러 온 손님에게 술, 고기, 떡국을 대접한다. 일가 친척 및 친지를 만나면 ‘덕담’이라 하여 서로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를 서로 하고, 설날의 놀이로서 윷놀이도 하고, 남자들은 연날리기도 한다. 또한 설날 이른 아침에 한해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복조리 벽에 걸어두기도 한다.정월(正月) 대보름은 열나흗날 저녁부터 시작되는데 이날 저녁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해먹는다. 어렸을때는 마을 사람끼리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복이 담긴 음식이라 하여 나눠 먹었는데 지금은 그냥 집에서 식구들끼리 해먹든지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리는 정도이다. 다행이도 아직 집에선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더위를 파는 것은 남아있다. 그리고 풍농을 기원하는 풍속으로 지신밟기가 있는데, 지신밟기는 정초부터 대보름 무렵에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축원해준다.2월달엔 초하루에 머슴날 이라 하여 농가에서 머슴들의 수고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음식을 대접하며 즐기도록 하는 날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3월엔 초사흘 삼짇날이 있다. 삼짇날은 봄을 알리는 명절이다. 이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하며,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 나오기 시작하는 날이라고도 한다. 초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화전놀이라 하여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먹을게 풍성한 시대라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4월 초파일은 불가의 명절이자 민가의 명절이다. 이 날은 절을 찾아가 재를 올리고 등불을 밝혀 석가탄신을 기념했다. 할머니나 어머니께서도 이 날 저녁에는 집안의 모든일을 제쳐두고 절에서 등불을 밝혀 연등행렬 같은 행사에 참가하신다.5월 초닷새 단오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때에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 이었다. 그후 해마다 굴원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엔 단오도 여름을 대표하는 명절이라 중요하게 여겼는데 지금은 각 지방마다 행사나 놀이만 전해지고 있다. 단오때 대표적인 놀이로 그네뛰기와 씨름을 들 수 있다. 그네뛰기는 단오날 여성들의 대표적인 놀이이고, 씨름은 대표적인 남성들의 놀이였다.6월은 계절적으로 가장 무더우며, 삼복(三伏)이 들어있는 때이다. 따라서 보양탕(補身湯), 삼계탕(蔘鷄湯) 같은 자양분이 많은 음식으로 몸을 보(補)하기에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더위에 지쳐 발병하기 쉬운때이므로 재액(災厄)을 면하려는 양퇴귀(禳退鬼)의 방법이 강구되었다. 그러한 것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이 곧 유두이다. 유두날에는 맑은 개울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특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쪽은 청이요,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는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풍속을 통해 불상(不祥)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는다. 한편 유두 무렵은 새로운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두의 풍속에는 조상과 농신에게 햇과일과 정갈한 음식을 차려 제를 지냄으로써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그러나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된 오늘날, 다양한 생산 양식에 의존함에 따라 그 풍속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유두 풍속도 예외는 아니어서 의례적인 요소는 그 전승이 단절되었으며, 물맞이 풍속은 여름 휴가철 바캉스로 대치되었다.8월 보름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마치면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한다. 추석 전에 산소를 찾아 미리 벌초를 해 둔다. 추석놀이는 강강술래, 지신밝기, 탈춤 등이 있다. 8월 보름을 추석이라 한것은 농경국가에서 보름의 만월이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풍물패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놀아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