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요약 *1권은 에셔, 2권은 마그리뜨를 중심으로 미학을 풀어쓴 책이다.이 책은 세 가닥의 실로 짜여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미학의 역사를 살펴보고, 예술사의 흐름을 짤막하게 훑어보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두 명의 예술가(에셔와 마그리뜨)를 소개하는 것이다.이 세가닥의 이야기는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이나 후에는 두명의 예술가를 소개하기 위한 연결고리가 되어 조화를 이룬다.미학사는 당시의 예술을 이해하는 이론적 바탕이 된다. 예술사는 미학 이론을 예증하는 역할을 한다. 에셔와 마그리트는 이 두 영역의 문제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 대표적 예술가들이다.미학에서 다루는 문제는 광범위하다. 가장 중요하고 넓은 영역을 감쌀 수 있는 모티프, 즉 예술의 역사를 저자는 ‘가상’의 역사로 포착하는 방법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 방법이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여러 철학자들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미학사 속에서 자꾸 되풀이되면서 교차한다. 예술의 본질은 모방, 유희, 직관, 형식, 이념의 감각적 재현 등등으로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기 위한 전략으로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도입하여 예술을 여러 개의 마디를 가진 소통 체계로 간주한다.모든 사물엔 정점이 있고 이것들은 저마다 별도의 시점을 요구한다. 저자는 세잔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세잔은 여러 개의 시점을 하나의 화폭 안에 결합하여 전체상을 구성하려 했다. 예술적 소통체계의 각 마디에도 정점이 있다. 이 정점들은 자기만의 시점을 요구하며 다른 시점엔 모습을 감춰버린다. 이것을 하나의 시각 아래 통일하는 것을 세잔은 추구해왔다. 그의 뒤를 이어 피카소, 마티스....그리고 에셔와 마그리트에 이르는 것이다.* 감상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학문이 미학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 예술의 근원을 밝히는 학문이기에 어렵다는 것일까.저자는 쉬우면서도 어렵게, 어려우면서도 쉽게 미학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학사를 훑어가며, 예술가들을 조명하며 미학이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미학은 곧 예술의 전반적인 것을 탐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동여행」감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우동! 입에 착 달라붙는 개운하고도 감칠 맛나는 국물과 탄성있는 면발은 배속은 든든하게 입안은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워낙 면류를 좋아하지만 우동에는 왠지 모를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우동에 얽힌 이야기들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감동적인 이야기, 신기한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등등 우동에는 라면이나 칼국수, 냉면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다.하루키가 말했듯 우동맛이 거기서 거기가 아니라 얼마나 찾아다니느냐에 따라 정말 맛있는 우동을 찾아낼 수 있다. 노력하는 자만이 맛있는 우동을 만날 수 있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걸까?하루키는 우동집이 많은 가가와 현의 우동집들에 대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오가타야 우동집. 별다른 이유나 대가없이 손님 모두가 무를 강판에 갈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기묘한 이야기’도 아니고....참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하루키의 그림 속의 오가타야 우동집의 정경은 코믹 그 자체이다.우동집들 중에서 최고로 깊은 맛을 가졌다는 나카무라 우동집. 하루키가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한 우동집이다. 원래 양계장을 하다 그 자리에 우동집을 차린 나카무라 우동집은 주인 부자는 그저 국물만 끓여낼 뿐 우동을 삶는 것도 양념을 마련하는 것도 손님들이 직접 해야 한다. 하루키는 이 집의 이런 ‘터프함’이 이 집의 인기 비결이라고 한다.물론 국물이 끝내주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지만. 외딴 곳에 위치한 이 우동집에서는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내가 알 바 아니다’라는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고 한다. 우동이라는 음식이 뭔가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나카무라 우동집. 우동을 먹으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우동맛보다 더 대단하다.그밖에도 강 기슭에 있어서 후루룩 소리는 내며 흘러가는 강을 보며 우동을 먹는 맛이 일품인 야마시타 우동집. 여긴 제면소를 겸하는 탓에 바로 뽑아낸 면발이 일품인 곳이다.가모 우동집은 하루키가 순수하게 장소로만 본다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곳으로 논 한가운데 앉아 우동을 먹을 수 있다.하루키가 찾아간 우동의 권위자 마베 교수. 사쿠니 우동 연구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우동의 최고봉인 사누키 우동. ‘사누키 우동 연구회’라는 단체도 있다는 말에 우동이란 음식, 참 대단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은 그들만의 뚜렷한 특성이 있는 우동집을 찾아다닌 탐방기이지만 어디어디 우동집은 어디에 있고 어떤 맛이 좋다는 맛집 탐방이 아니라 우동 한 그릇에 담긴 우동집 주인들의 생각과 그런 우동은 멀리서도 찾아와 먹는 사람들에 대한 정이 담겨 있다.우동으로 유명한 가가와 현. 그저 맛있고 유명한 우동을 생각하는 여행지가 아니라 ‘우동人’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곳이다.‘아아. 이 고장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런 식으로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 절감하게 만들고, 가가와 현 사람들이 우동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마치 가족의 일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때와 같은 따스함이 있다는 하루키의 말에 문득 이래서 우동은 범상치 않은 음식이 되는구나 싶었다.한 친구가 일본 배낭 여행을 갔다와서는 기억에 남는 것은 우동뿐이었다는 말을 들었었다. 돈이 없어 가장 보편적 음식인 우동을 먹게되었는데 먹다보니 질리면서도 각기 다른 우동들의 맛에 중독되었다는 것이다.우동 한 그릇. 깊은 국물 맛과 쫄깃한 면발맛에 군침을 흘리게 만들지만 우동의 진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 우동 한 그릇에 담긴 추억이 아닌가 싶다.* 에 대한 이미지 *하루키는 여행을 할 때에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여행을 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가볍게 떠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로 여겨진다고 할까. 그래서 그는 유명한 여행지로 떠나는 것보다 맛있는 우동을 찾아 떠나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그렇다. 여행은 거창하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친 일상에 쉼표 하나를 찍고 그곳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처음 선생님께서 이 과제를 쥐어주셨을 때, 서문을 읽고 잠시 명상한 다음 떠오르는 이미지를 써보라고 했을때엔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했다. 서문에 별 게 있을라고~! 하고 생각했는데 하루키는 서문에서 값진 가르침을 주었다.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세밀하게 묘사하여 적어놓지 않는다. 그때그때마다 짤막하게 메모할 뿐이다. 짤막하게 메모함으로써 나중에 수첩을 펼쳤을때 이러저러한 것들을 쉽게 생각해 낼 수 있게 해놓기 위해서라고 한다.여행 중에 세밀한 것들을 꼼꼼히 메모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그런 여분의 에너지는 가능한 절약하여 여행을 즐기는 데 쓰고, 그 대신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넣는 일이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그렇게 하면 여행 자체가 호기심 덩어리가 되며 진정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갑자기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수학여행을 갔던 일이 생각났다. 수학여행 후 기행문을 써오라는 말에 수학여행 기간 내내 아이들 모두가 펜과 수첩을 들고 비문이며, 안내문이며, 그곳의 생김새들을 빼곡하게 적는 풍경이 생각났다. 그러나 수학여행 후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안내문 앞에서 적어댔던 ‘기록’보다는 쏘다니며 즐겼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의 감상제이 레노는 ‘오노 사건’으로 인해 아주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그 싸가지(-_-;) 없는 이름의 소유자가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의 네티즌은 아마 흔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그러나 제이레노의 토크쇼의 이름이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가 그 경우에 해당해서인지는 몰라도...어쨌든 쟈니 카슨에게 부동의 1위의 토크쇼를 물려받은 싸가지 제이 레노. 그를 싸가지니 뭐니 비난해도 그의 토크쇼는 사실 재밌긴 하다. 단지 ‘재미있긴 하다.’왜?! 일단, 게스트가 빵빵하다. 유명 헐리우드 스타는 물론 정치인, 심지어 대통령의 딸도 출연한다. 거기에 제이레노의 막가는 입담까지 보태지니 재미없을 수 있을까?한국을 비하하는 발언들만 해대지 않았어도 별 반감이 없을 만큼 제이 레노는 이야기꾼으로 보인다. 거침없이 뱉어내는 이야기. 거르지 않고 하는 그의 입담에서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우리 나라라면 여러 가지 여건에 부딪혀 하지 못할 정치, 사회의 이야기를 열심히 씹는다. 질겅질겅~! 시청자들은 속시원히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말하는 레노를 대변자로 생각하는 것일까? 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때로는 시원하다고 느낄 때의 그 쾌감을 레노가 안겨다주는 것일까?에는 별다른 장치는 없다. 그저 일반적인 토크쇼의 형식이다. 게스트가 나와서 레노와 떠들면(그야말로 떠든다) 그만이다. 정통 토크쇼의 형식은 사라지고 토크쇼 하나에도 몇 개의 코너가 줄줄이 붙어가는 우리나라의 변종 토크쇼들을 생각해볼 때, 나는 이런 류의 토크쇼가 정말 좋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토크쇼라면 그야말로 떠들고 웃으면 그만 아닌가. 개인기를 해야하고, 꽁트로 애써 웃겨줘야하고, 때로는 음식도 만들어줘야하고, 게임도 해야한다. 토크쇼는 말을 재료로 끓이는 맛깔나고 담백한 수프가 아니던가. 우리나라의 토크쇼는 지금 마치 피자같다. 재료도 너무 많고 느끼하다. 주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그런 면에서 ‘토크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제이 레노가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발언에도, 구설수에 오를 만한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한다하더라도 거리낌없이 말하고 그것으로 웃길 수 있는 방송 현실이 부럽다. 그런 토크에서 나오는 웃음이 부럽다.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MEMORIES』를 보고...◆ 시놉시스첫번째 단편 "그녀의 추억 (Magnetic Rose)""코로나"호는 떠도는 우주선의 폐기물로부터 고철을 수집해 파는 고철수집선이다. 코로나 호는 만선 후 귀환을 앞두고 근처에 불확실한 SOS신호를 수신하게 된다. 발신지는 우주선의 무덤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코로나의 선원인 미겔과 하인쯔는 신호를 쫓아 마치 장미의 모습을 한 우주선 안을 조사하게 된다.미겔과 하인쯔는 궁전과도 같은 우주선의 내부에 넋을 잃는다. 우주선 내부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미겔과 하인쯔는 환영을 보게 된다. 그들이 보는 환영은 우주선의 주인인 에바의 추억이다. 에바는 10세기 전 귀족의 딸로 천재적인 오페라 가수였지만 약혼자가 변심을 하자 약혼자를 죽이고 잠적한 후 이 우주선에서 생을 마친 것이었다.두 사람은 에바의 추억 속에서 헤메이게 된다. 에바는 자신의 추억 속에 미겔과 하인츠를 가두려한다. 결국, 미겔은 자신의 추억을 에바의 추억 속에 묻고 우주선과 사라지고, 딸을 구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려하던 하인쯔는 과거 딸과의 슬픈 추억 덕에 목숨을 건진다.두 번째 단편 “최취병기 (最臭兵器, Stink Bomb)"제약회사에 근무하던 평범한 청년 노부오. 군의 의뢰로 개발 중에 있던 비밀병기를 감기약과 혼동하여 복용하게 된다. 비밀병기는 강력한 냄새로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강의 병기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노부오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영문을 몰라한다.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냄새의 근원지가 노부오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군이 노부오를 수도 도쿄로 소환한다. 그것도 약의 샘플을 꼭 가져와야한다는 임무를 주고서.사명감에 불타는 노부오. 도쿄로 전력을 다해 가게 된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살아있는 모든 것이 죽어버릴 정도로 초토화된다. 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맹공격을 하지만 강력한 냄새에 당해낼 수가 없다.결국 군은 내키지는 않지만 미국과 협력하여 NASA의 우주복을 이용하여 노부오를 생포하여 더 큰 비극을 막는다. 그러나.... 군의 책임자에게 최취병기의 샘플을 주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 우주복 안의 사람은 노부오였다. 역시 아직까지도 사태 파악을 모르는 노부오는 우주복을 벗게되고 모두의 처절한 비명소리세 번째 단편 “대포의 거리 (CANNON FODDER)"도시의 모든 평가기준과 삶의 방식이 대포로 통용되고 있는 시대의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누구와 싸우는지도 모르면서 엄청난 대포를 무작정 쏘아댄다. 어디에 쏘는지, 누구에게 쏘는지도 모르면서. 아침에 집을 나서는 아이가 "다녀오겠습니다.(いってきます)"라는 말대신 "쏘고 오겠습니다.(うってきます)"라고 외치는 시대이다. 군국주의의 부활, 무력의 우상화가 된 것이다.아침저녁으로 침실 옆의 거대한 그림을 향해 아이가 "경례"를 외치며 "나는 아버지 같은 포탄수가 아닌 포격수가 될꺼야."라고 되뇌인다. 대포를 쏘는 것이 절대적인 우상화가 된 도시의 이야기. 목적도 없이 그저 대포를 쏘는 것이 이상이 되어버린 이상한 도시의 이야기이다.◆ 감상영화 메모리즈의 세 가지 이야기를 보다보면 고립과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추억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과는 달리 영화는 그리 로맨틱하거나 말랑하지 않다. 영화는 욕망이 야기하는 고립과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욕망으로 인한 고립과 고독.그녀의 추억에서의 에바의 이야기는 슬프다 못해 오싹하다. 변심한 애인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그를 죽이고, 추억 속에 모든 것을 가두어 버리는 에바. 독하기 때문에 더 슬프게 느껴진다. 자신의 추억을 우주선에 가두어 다른 이의 기억까지도 자신의 추억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게다가 배경으로 깔리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의 아리아는 에바의 심정을 너무나 애절하고도 섬뜩하게 표현하는데 큰 일조를 한다.가장 인상깊었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메타포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것에도 은유를 집어 넣었다. 장미 모양의 에바의 우주선이라던지(장미는 추억과 비밀을 상징한다), 미겔이 에바의 진주 목걸이(순결의 상징인 진주!)를 실수로 끊게 된다던지, 하인쯔가 떨어지는 인형을 받지 못하는 것(어린 딸을 받지 못해 딸이 떨어져 죽은 것을 상징함)들이 그 예이다.과거, 추억에 대한 집착과 욕망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에바와 하인쯔가 괴로운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슬픈 추억, 집착과 동경으로 괴로운 현실이 존재한다.
「喜劇(희극) - Moelwyn Merchant 著」요약 감상」희극의 역할은 비극의 역할과 같고, 또 목적도 부분적으로는 같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즐겁게 하고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음을 일으키는 것이 반드시 희극의 목적이 아니다.희극이란 우리의 생활에서 흔히 보는 잘못들은 모방하는 것이다. 희극은, 전해 내려오는 말투나 어귀가 함축하고 있는 뜻 이상의, 보다 숭고한 형이상학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또 우리의 서양문학에서 볼 수 있는 특정한 희극에는 우행에 대한 온건한 치유적 효능 이상의 몇 가지 자세가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희극을 사회적 교정이란 점에 한정하려 한다면 곤란하게 될 평가의 문제가 있다.우리는 희극적인 것이 유쾌한 것과 인접하는 경계를 넘어서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희극양식을 비극양식에서 더 분명히 분리하는 철학적 개념을 생각해보면, 그 범주가 아무리 분명하더라도 우리는 두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는 어느 중요한 순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 여전히 작자 자신의 딜레마에 직면하게도 될 것이다.그 예로 는 희극이 비극적 장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결정함과 동시에, 그 장면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기능, 그 특유의 코러스적 기능을 알려주기에 적절하다.인간의 우행에 대하여, 기지가 넘치는, 또 입이 더러워질 정도의 코멘트를 하는 것이 희극의 중요한 기능이다.비극과의 관련 하에서 볼 때, 희극은 독특한 힘을 갖는다. 희극적 비젼은 비극적 예술의 구조와의 관계를 놓고 볼 때, 가장 인간상태의 참된 의미에 깊숙이 들어간다. 그래서 비극과 희극의 경묘함은 같은 비젼의 일부가 된다. 희극이 압도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희극이 지니는 세력과 지위에 주로 관심을 두고 생각해보자.비극적 통찰이 현저한 작품 속에 희극정신이 침입한 순간, 또는 역으로 압도적으로 빛나는 명랑함이 넘치는 작품을 비극의 모습이 어둡게 해 놓은 순간, 희극과 비극의 구분을 결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러나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비극이란 매우 당연하게도 희극의 逆이다.희극이란 것은 추상적 어휘로는 매우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로 희극적인 것은 그 자체의 독특한 인생관을, 비극적 비젼의 깊이와 나란히 놓이는 그 자체의 독특한 깊이를, 우리에게 제시한다.희극의 의식형태는, 비극의 그것이나 마찬가지로, 연례적 축제의 리듬에 결부되어 있다. 희극이 신화적 리듬의 형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부조리, 아이러니, 풍자 등은 희극의 변방을 결정짓는 것들이다. 부조리 연극이 희극의 특정한 주요 요소에 관련이 있음을 명시한다는 점에서도 이것을 알 수가 있다.희극적 비젼은 이처럼 포괄적이다. 또 그것이 명확한 대상에 상관되기를 거절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희극에는, 비극과의 연계에 서거나, 비극의 범위 내에 한해서거나, 또는 희극 독자의 독립적 영역에서건 간에, 희극의 독자적인 엄숙한 통찰과 함축이 있다.그로테스크한 것, 터무니없는 것, 아이러니를 포함하는 것, 부조리스러운 것, 기지에 찬 것, 그리고 세련된 연민의 웃음 등이 모두 한 가지 예술의 부분, 희극의 본질의 여러 부면이다.
「諷刺(풍자) - Arthur Pollard 著」의 요약 감상풍자는 사회적인 문학양식으로 늘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풍자는 현세에 초연하며 남과 다른 각도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풍자의 종류는 무한하다. 따라서 우리는 당장 풍자와 희극, 그리고 풍자와 아이러니를 각각 구별해야 한다. 아이러니는 풍자의 한 어조이지만, 풍자적인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이것은 풍자가 원래 순수하고, 폐쇄적인 문학형식이 아님을 보여준다.풍자의 영역은 ‘경박한 것과 진지한 것’을 다 망라하는 광범위한 것이다. 이 양극이 또 다른 대립되는 것들과 섞여서 인간에게 웃음거리이자 수수께끼를 안겨준다. 따라서 풍자의 범위는 아주 광범위한 것이 된다.풍자는 항의하려는 본능에서 생기는 것이며, 예술화된 항의다. 그러나 풍자의 주제는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맹목적인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항의의 주제도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경험의 중심적 영역 중 적어도 하나는 다루어야 한다.풍자는 죽음을 다루어도, 그것을 금방 끝난 삶에 대한 반성으로서 이용하며, 한 사람이 받았던 대우를 생각하게 하며, 그런 대우를 했던 인간들에 대한 비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풍자는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한 논평으로서 죽음을 다루기도 한다.어떤 면에서 풍자는 등장인물의 중요성의 덜할수록 더 뚜렷해진다. 풍자의 한 기능은 우리에게 한 물건을 제시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고 알려주는 것과 같다. 풍자가의 기능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경험의 중심적인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풍자가의 기능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풍자의 양식에 눈을 돌릴 때, 우리는 그것이 풍자의 주제와 같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약간의 풍자에 적응되지 못하는 문학형식은 거의 없다. 풍자는 외면이 변형할 수 있어서, 패러디에 의해서 그것이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문학형식으로 변장할 수도 있다.소설가(풍자가)는 주제를 구상하고 난 후에, 최대의 풍자적인 효과를 내기 위하여 등장인물과 사건을 서로 연관시켜 배열한다. 이 배열 속에서 풍자는 언제나 요점을 간략하게 나타내고 그 힘을 강력하게 발휘해야 한다. 풍자는 그 작품이 취하는 또는 모방하는 형식에 의해서 성립된다. 풍자는 유사성에 있기 때문이다.풍자적 우화의 형식의 성경우화는 여러 가지 호소력이 있다. 풍자는 자주 서사시를 이용하나 대개 우화의 방법과 같이 명백하게 닮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풍자는 서사시를 직접 격하시키거나, 간접적으로 칭찬을 가장함으로써 왜곡시킨다.풍자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풍자에는 어떠한 형식의 인물묘사가 있어야 한다. 그 중 가장 단순한 형식은 저자에 의한 묘사이다.우리는 풍자적인 인물은 제한된 독자성 밖에는 못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자적 인물은 딴 가공적인 인물들보다 더 작가 자신의 창조물이다. 풍자적 인물은 그 개성이 어떻든 간에, 그는 항상 작가의 풍자적 의도의 지배를 받는다. 풍자적 작품의 시초에서 풍자의 의도가 규정되고, 그 인물이 그 의도를 실증하는 구실을 한다. 근본적으로 풍자적 인물의 행동은 반복적이다. 이 인물에 대한 흥미는 그의 성격에 따라다니는 다양성, 즉 작가가 풍자적인 주제에 미묘한 변형을 부여하는 모양에서 생긴다.잘된 패러디는 그 대상과 거의 같으나 동시에 미묘하게 과장되어 있다. 그것은 그 대상의 말이나 구문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되 이것을 우스꽝스러운 주제에 응용한다. 또는 주제는 같으나 말이나 구문을 약간 변형시킨다. 따라서 풍자에서는 그 대상을 미묘하게 변형하는 일이 극히 중요하다. 잘 알려져 있는 말을 비정상적으로 사용할 때가 그렇다. 문체의 수준을 격하시킴으로써 생기는 풍자적 효과는 구어체를 삽입시킴으로써 또한 얻을 수 있다.풍자의 방법은 관계대명사의 선행사, 두 목적어의 관계, 부정어의 위치 등, 전체의 문장구조 안에서의 구문의 배열에 그 효과가 달려 있다. 기타 많은 방법도 이와 비슷하고. 특히 문장의 부분과 부분간의 관계나 균형에 달려 있는 때도 있다. 풍자의 또 다른 방법 중에 金言의 사용, 즉 간략하게 일반적인 진리를 서술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도덕적 풍자에 적합하여 일반적 진리, 성격묘사에 적절하다.풍자는 그 주제와 양식이 다양하지만 그 형식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한 가지 필수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쓸데없는 어구가 없어야 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 뜻을 완전히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풍자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로 다향하다. 그러나 항상 중심적인 성격을 띤다. 이런 경우, 왜곡시키거나 전도시키는 방법으로 그 이미지의 뜻을 읽어야 한다. 풍자의 이미지는 중상적이기 때문에 비유로서는 시시한 것이나, 좋지 않은 것, 추하고 역겨운 것을 사용한다. 풍자의 목적이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보 이 지 않 는 원-「돗 낚는 어부」*목 차*1. 서 론2. 본 론2.1 소설의 배경에 대한 이론정리2.1.1 배경이란 무엇인가2.1.2 배경 설정의 중요성2.1.3. 소설의 배경유형2.2 작품분석2.2.1 작가와 「돗 낚는 어부」의 배경과의 관계2.2.2「돗 낚는 어부」내용 요약2.2.3 작품 속에 나타나는 소설의 배경2.2.4 토론내용3. 결 론3.1 발표후기1. 서 론소설의 배경을 통하여 우리는 그곳을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인식의 기쁨을 얻기도 하며, 또는 낯설은 세계를 알게된다는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배경에 대한 세부적 묘사는 실제감과 입체감을 더해주기도 하지만 배경은 또 상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배경이란 다만 인물의 행위와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로서의 의미만을 가질 수는 없다. 인물의 행위와 사건을 그러한 존재양상으로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배경은 연극의 무대나 세팅이 아니다. 물론 연극의 무대가 지평으로서의 장소만이 아니라, 어떤 분위기를 창조해 주고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행위와 사건에 직접 개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소설의 배경이란 그런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예 행위와 사건 자체를 조성하는 중요 조건인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소설의 구성 요소 중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한창훈의 「돗 낚는 어부」속에서의 배경을 알아보고 작품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2. 본 론2.1 소설의 배경에 대한 이론정리2.1.1 배경이란 무엇인가배경이란 환경이라는 말로도 쓰이는데 인물이 활동하고 사건이 발생하는 모든 시간적, 공간적 영역과 기타 상징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로서의 자연환경이나 소도구(小道具) 등을 의미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그런데 소설에서 배경의 중요성에대한 인식이 일어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에서야 비롯되고 있다. 우리의 고소설에도 물론 배경이 있으나, '옛날 어느 마을에..' 정도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존재할 뿐이다. 그나마 '숙종 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넙우시사' 로 시작되는 춘향전의 서두때 제목과 달리 결말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는 적절한 배경설정이라 할 수 있다.두 번째 배경의 효용은 소설 속의 인물과 행동에 대하여 신빙성을 높여 주는 구실을 담담하고 있다. 현대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전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춘향전에 있어서 '숙종 대왕 즉위 초에....' 라는 현실적인 시대 배경과 함께 남원이라는 장소와 한양이라는 장소가 실제적으로 구체성을 띠고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행동에 생동감이 있고 사실감과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다.세 번째 배경의 효용은 주제를 구체화시키는 역할이다. 특히 상황 소설에 있어서는 배경이 곧 주제와 직결되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데, 현대소설에서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의 다층적인 인간의 심리와 기계문명과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상실된 인간성이나 소외의 문제들이 소설의 주제로서 빈번히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배경이 상황을 암시하고 이 같은 배경은 곧바로 주제를 나타내는 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2.1.3. 소설의 배경유형① 자연적 배경자연적 배경은 자연환경을 인물의 행동에 어울리도록 그들의 주변에 배치하여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적 배경의 설정에 있어서는 배경 자체가 인물의 심리상태나 감정에 따라 자연과 인물이 정서적 조화를 이루거나 혹은 정서적 대조를 이루도록 설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배경이 소설의 화자나 등장인물의 성격, 혹은 그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하여 묘사하면 주관적 자연 배경이 되지만, 등장 인물의 심리상태와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누구나 느끼게 되는 보편적인 자연을 묘사하면 그것은 객관적 자연배경이 된다.까아맣게 내려다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요릿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보드러운 봄공기를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오는 조선 아악은, 느리게, 길게, 유창하게, 부드럽게, 그리도 또 애처롭게 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여윈 연실이는 김영찰의 정실의 맏딸로 민적에 오르고 연실이보다 석달뒤에 난 맏아들은 민적상 연실이보다 1년 뒤에 난 한 부모의 자식으로 오르게 되었다.김동인 「금연실전」소실의 소생인 연실의 환경을 서술함으로 그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시대의 연실의 앞날도 예견할 수 있다.③ 심리적 배경심리적 배경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뒤섞어서 넘나드는 심리적 시간과 더불어 어느 일정한 장소를 배경으로 삼아서 정착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자유스럽게 초월하여 인물들이 활동 영역을 세계로 확대시키는 배경이다. 즉, 현실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우리의 의식을 머물게 하지 않고 주인공의 자유로운 의식의 여행에 따라 거의 동시적으로 독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공 속을 함께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심리적 배경에는 '의식의 흐름'이나 '내적 독백', 그리고 '이미지의 점철'등으로 불리는 심리적 기법이 동원되는데 복잡한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독특한 배경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옛날옛적 아주 옛날에 한 마리의 음매음매가 길을 내려왔다. 길을 내려오던 음매음매는 아기 타쿠라는 착한 아이를 만났다. 아버지는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아버지는 외눈 안경을 끼고 그를 보았다. 수염이 부스스한 얼굴이었다. 그는 아기 타쿠였다. 움매움매는 베티·버인이 사는 길을 내려왔다. 이 여자는 레몬과자를 팔았다. 오, 들장미 꽃이 피었네,작은 푸른 들에도, 아기 타쿠는 이런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그의 노래였다. 오, 들장미 꽃이 피었네, 자다가 쉬이를 하면 처음에는 뜨뜻하다가 차가워진다. 어머니는 기름종이를 깔아주었다. 냄새가 이상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냄새가 좋았다. 어머니는 피아노로 사공의 피리라는 곡을 치고, 그는 춤을 추었다.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주인공은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나 생각을 일정한 순서도 없이 의식의 흐름에 내맡긴 채 그대로 쏟아놓고 있다. 따라서 음매음매가 등장했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로 바뀌고 그리고 레몬과 그려 내려가는 작가의 문체가 긴박감과 열정에 넘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2.2 작품분석2.2.1 작가와 의 배경과의 관계① 작가 한창훈1963년 전남 여수 출생, 한남대 지역개발학과를 졸업. 대학시절, 학교를 잠시 그만두고 양식채취선과 오징어잡이배를 타기도 했으며, 공사판 잡부에 포장마차 사장 노릇까지 다양한 사회경험을 했다. 이때의 치열하고도 다양한 삶이 이후 소설가로서 든든한 재산이 되었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구수한 입말과 해학적인 문체로 서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써오고 있다.90년 한길문학 신인상 수상, 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의 단편소설 「닻」당선되어 등단했다. 96년에는 「집 비운사이」라는 시집과 작품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를 냈다. 98년「홍합」으로 제3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작품집「가던 새 본다」, 장편소설로 「홍합」을 냈으며 그 외의 작품으로 「입덧」, 「은사시나무 겨울」, 「아름다운 시절」, 「숭어」, 「오늘의 운세」, 「1996년 겨울」,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본다」가 있다.*한창훈이라는 작가의 소설 세계그는 현장성이 있는 소설작가로서 주목을 받는다. 사실주의 작가로서 표현이 어지럽지 않고 현실적이다. 특히 배경에 대한 것이 소설의 주를 이루는 데, 그게 모두 바다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가 지향하는 바다는 한없이 꿈을 그리는 것보다는 한층 더 인간적인 내음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생활 상의 반영이 이루어질 때 소설의 표현이 자연스러워짐을 터득한 작가.. 가 아닐까?..그에비해 비현실적 작가인 장정일과 대조해 보면 장정일의 소설은 디테일의 무시, 이미지 중심, 비사실적, 초현실적으로 한창훈의 소설과 한층 더 다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② 작가와 소설의 배경과의 관계“그 섬은 다름 아닌 내가 꿈에서 꾸었던 바로 그 섬인 것이다. 청춘의 피폐와 외로움에 지쳤을 때 본능적으로 찾았던 곳. 환상의 장소. 내 자의식의 공간.”검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 매 미친짓으로 날씨나 사나워져 바다가 한번 뒤집어 졌으면 좋겠다고 하며 내일 바다에 나갈것이라 하자 잠녀는 노루섬에 가자고 한다. 간밤의 꿈에 거기에 풍랑이 이는데 수염이 허연 신령 한 분을 봤다는 것이었다. 질녀가 돌아간 후 어부는 낚시를 챙기고 신선대를 바라보며 일기를 살핀다.어부는 선착장에나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늙은 구장을 만나 약간의 대화를 나누다 늙은이를 뒤로하고 잠녀와 약속한 곳에서 만나 노루섬을 향해 간다.그는 돗을 낚으러 다닌게 벌써 칠 년째다. 바다에는 낚을 고기가 없었고, 기근은 깊어져, 그는 아들을 잃고, 섬사람들을 빈곤으로 그악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부는 그것이 무서웠다.노루섬 바위에서 잠녀가 챙겨온 소주와 마늘을 먹으며 어부는 꼭 돗을 낚으고 말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 배부르게 만들고 죽은 자식들한테도 한상 차려 줄것이라 한다.잠녀는 옷을 갈아 입고 반대쪽 물속으로 들어가고, 어부는 낚싯바늘에 오징어 한 마리를 통째로 끼우고 멀리 던져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생각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고, 희망이나 미래라 불리우는 어떤 것을 낳고 키우고 싶어 생산이란 것이 그들에게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잠녀와 자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돗을 낚고 싶었다.갑자기 거대한 것이 그를 끌어당기기 시작하며 엉겁결에 그는 그것이 돗인 것을 알았다. 어부는 안간힘을 썼으나 순간, 몸은 바다로 끌려들어 갔다.어부는 돗을 낚긴 했지만 끌어올리지 못하고 되려 끌려들어가 죽었다. 잠녀가 종일 바다를 뒤졌으나 어부를 찾지 못하고 낚싯줄만 찾았다. 결국 어부는 돗의 입술에 달린 살점 하나만 낚고 죽은 것이다.2.2.3 작품속에 나타나는 소설의 배경이 소설에서 배경이 주는 효과는 두드러진다. 그 중 '바다' 라는 자연적 배경이 먼저 눈에 띄이는데, 이는 소설의 주제와도 연관성이 높다.'돗 낚는 어부'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으며, 바다라는 배경을 통해 소설속의 인물과 행동에 대하여 사실감과 신다.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 -「매미의 일생」「매미의 일생」은 이제까지의 토론소설 중 가장 난해해 보이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설이 약정토론으로 주어지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발표했던 소설처럼 '읽고 또 읽어보면 알겠지'라는 생각도 읽으면 읽을수록 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매미의 일생」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소설이라 그런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마치 꿈처럼 전개되어간다. 이것은 크게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류의 소설을 즐겨 자주 접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소재였다. 매미. 도무지 왜 매미인지 난 알 수가 없는데 질문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어렵게 질문했는데 '발표지를 잘 보라'는 답변뿐이었다.사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매미'라는 소재이다. 왜 많은 것 중에 매미인지, 주인공이 매미가 되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었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무튼 난 이것들에 초점을 맞춰 소설을 뒤져보기로 했다.매미. 왜 하필 매미였던 것일까. 매미는 사람과 닮은 점이 많다고 발표자였는지 교수님께서였는지 말씀하셨다. 그러나 소설에서 보거나 내 생각으로나 매미는 사람과 닮아있지 않았다. 매미는 어쩌면 하루살이보다 더 불쌍한 곤충이다. 그 짧은 한철을 울기 위해 (자신이 왜 우는지 알고있는지도 궁금하지만...) 길게는 몇 십년의 세월을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매미는 자신이 얼마를 기다렸는지 모를 수도 있다. 매미는 자신이 왜 우는지 몇 년을 기다렸는지 알지도 못하는 매미를 인고의 고통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사람인척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감상적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각설하고, 매미의 그러한 기다림에 따른 성취가 사람과 닮았다면 여기서 주인공이 이뤄낸 것은 무엇인가? (주인공은 무언가를 기다린 적도 없는데?) 매미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매미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왜 이점은 자세히 토의를 되지 않고 무시된 건지 아쉽다.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매미. 매미. '아하!'하고 결국 깨달은 것은 그냥 매미라는 것. 그 인내의 기간도 뱃속에서 끌어내는 울음소리도 그저 '파브르 곤충기'에 나오는 매미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 나는 「매미의 일생」은 존재에 대한 고뇌를 그린 소설이라고 본다. 나는 주인공이 되고싶어하는, 주인공이 결국 된 것이 매미이던 여치이던 상관이 없다고 본다. 매미라는 설정은 단지 작가가 애착을 가진 소재이기 때문에 작품에 붙여놓은 것뿐이라고 본다. 만약 매미 대신에 다른 어떤 것을 넣었다해도 소설의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나는 이 '매미'와 소설을 좀 다르게 보았다. 그것은 아래서도 좀 더 이야기하겠다.나는 이 소설을 녹색문학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어떻든 간에 작품들은 별개의 것으로 볼 때도 있어야한다고 본다. 물론 매미가 '원시적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에 (내가 보기엔 매미라는 極時限附的 곤충에게서 생명력을 찾는다는 것은 무리가 아닌 듯 싶다) 현대화에 부대껴하는 이의 몸짓으로 보고 녹색문학으로도 볼 수도 있다고도 본다.그러나 나는 여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땅을 보는 매미의 의미는 무엇인지, 소설가와의 대화는 어떤 의미인지는 다루고 싶지 않다. 그런 부분적인 것들은 읽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얼마든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숲이지 나무가 아니다. 그런 부분적인 해석을 두고 누가 옳으냐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면 질문거리로 차오르던 내 머릿속은 하얗게 질려 백지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잠깐 여기서 이 소설의 플롯에 대한 얘기를 간단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면 나는 약정토론자이므로 커리큘럼을 무시해서는 안되니까) 소설은 환몽구조 또는 변신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을 보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현실에서 도피하고 부정하는 것이 주인공의 변신과정보다는 적합한 것으로 보아 나는 변신의 구조보다는 환몽구조로 보겠다. 위에서 말했듯이 소설의 주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뇌'로 본다. 일상적으로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어지럽고 두서 없기 마련이다. 그리곤 애써 생각해보다가 흐물흐물 끝내버리곤 잊혀질 때쯤 다시 고뇌하듯이 이 소설의 주제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플롯은, 작가가 표현할 수밖에 없는 플롯은 환몽구조(나는 좀더 확실하게는 '의식의 흐름에 따른 구조'라고 본다.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이신 교수님의 용어를 따르기로 했다) 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이제까지중 나의 골치를 앓게 한 소설은 '시마다 마사히코'의 「악마를 위하여」다음으로 「매미의 일생」이 두 번째인 것 같다. 「악마를 위하여」도 매미의 일생과 비슷한 소설인데 이 두 소설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주인공은 줄곧 자신은 악마이다고, 악마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인공은 악마도 아니고 그다지 악마처럼 악한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자신이 막연히 정한 악마가 되어싶어하는 것이고 또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 끝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악마와 닮아있지 않다. 악마가 될 소질(?)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이 악마라고 꾼꾼히 우기는 것은 매미가 되고싶고 매미라고 생각하는 「매미의 일생」의 그와 닮은 모습이 아닐까. 덧붙여 「악마를 위하여」에서도 「매미의 일생」처럼 그 '악마'라는 소재는 눈 여겨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물론 소설의 내용과 성격상 어떤 이유가 있어 악마나 매미를 넣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와 비슷한-혹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을 대입시켰다해도 소설의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따라서 '매미'에 부여된 별 의미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없는 것 같다. 주인공이 매미가 된 것에 대한 의미도 난해하고 심오한 의미일지 모르나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것만 같다.
혈액형 -김현영-현대소설론 수업의 토론을 통해 하나 깨달은 것은 소설을 읽을 때는 누구나 자기만의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 공식에 맞게 소설을 대입하여 읽다보면 읽을수록 딱딱 들어맞기 마련이고 읽는 사람에 따라 주제도 느낌도 다르게 되는 것이다. 나도 「혈액형」을 그렇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내 공식에 맞도록......혈액형. 제목은 신세대작가답게 신선하고 내용은 수다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작가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산만하고 기교를 부리려 애쓴다. 주제는 허공에 붕떠있는 풍선 같으나 실로 그것을 붙잡아 두려 애쓴다. 이것은 나의 지독한 편견일지 모른다.(그러나 나는 독서취향은 다 자기나름대로니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소설도 보는 순간 인상이 팍 찌푸려지는게 내가 싫어하는 類의 소설임에 분명했다. 여고생의 주절거림 같은 수다. 그러나 그 주절거림을 듣고 또 들을수록 무언가 얘기하려고 발버둥치는 25세의 가련한 여성(여성이라고 하기엔 소녀다운)이 희미하게 보였다.(나는 편협한 독서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불륜으로 추정되는 중년남자와 그 남자의 딸 뻘인 25세의 여자. 이 둘의 관계는 '지불하고 구입하는' 관계,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속사포 같은 그녀의 말로 시작되고 끝난다. 처음은 어지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두 번째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을 때 알게 되었다. 속없어 보이는 주절거림 속의 아픔과 삶을...엉겁결에 나는 이 여자를 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는 나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버렸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여자는 쇼핑호스트이다. 처음엔 그저 철없고 버릇없는 요즘애로 원조교제나 하는 소녀인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만 읽어봐도 그건 아니다. 가난해서 아빠의 신발을 주워 신었던, 그래서 친구의 일기장에서 동정을 받아야했던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25세의 염세적 여자이다. 이쯤에서 터져나오는 나의 불만은 작가는 너무 이 여자의 나이를 많게 설정한 것 같다는 것이다. 25세. 대학을 졸업하고도 1년이 지난 나이. 그럼에도 힙합패션을 즐기고 핑클을 좋아한다. 온갖 유행어는 '고삐리'를 능가하고 말투 또한 수다스러운 여고생의 전형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가슴아프고 어지러운 유년의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그녀의 고뇌는 증발해버린다. 진지함을 잃어버린다. 이제 20대라는 사실이 차츰 익숙해져가는 나이이기만 했어도 좀더 나에게 어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좀 억지스러운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이 여자를 우울하게 그리지 않기 위해, 주제가 툭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저런 점으로 그녀를 감추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비평가가 아니니 알 수가 없다.남자는 홈쇼핑 회사의 대주주이다. 그는 그녀를 백화점에서 만났다. 딸의 옷을 종업원의 월권으로 골라준 그녀를 자기 회사의 쇼핑호스트로 앉혀버렸다. 그는 그녀의 딸의 옷을 사가는 모든 아버지에게 놓은 덫을 밟아버린 것이다. 아무도 밟아주지 않았던 덫을.(그녀는 그 아버지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덫을 놓았던 걸까) 그는 아내와 딸이 있고 좋은 차와 집, 빵빵한 카오디오까지 갖춘 부자이다. 그러나 그는 외롭고 메마른 삶을 산다. 그는 그녀의 버릇없고 끝없는 수다와 반항에서 활기를 되찾는 것 같다. 짜릿해한다. 본래 그는 사모님이란 호칭의 남편이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고 품위 있는 말만 하는 사장님이다. 그런 그가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품위도 잠시 버리고 핑클의 이름을 외워도 보고 큼지막한 신발을 사보기도 한다.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사고 지불하는 관계이다. 호텔라운지에서 만나기가 꺼려지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움츠러지는 그런 관계. 그녀는 그들의 관계를 '거래'라 한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관계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래'라는 이름으로 자위하고 슬쩍 넘겨버리는 것이 아닐까. 또는 그녀는 사고싶은 것이 많고 그는 살 것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또는 그녀는 누군가에게 팔리고 싶고 그는 누군가를 사고 싶기 때문에 '거래'라는 이름의 관계를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를 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그를 샀다고 말하는데 정작 보기에 지불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그이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돈보다 좋은 것을 그녀는 그에게 지불하고 그의 것을 갖고 그는 돈을 지불하고 그녀의 좋은 것을 갖게 되니 이것이 거래인지 골치 아파진다.그녀의 겉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내면은 내가 아파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아빠의 큰 신발을 주워 신고 소풍에 갔다. 앞으로 가려는 그녀에게 앞꿈치와 뒤꿈치가 신발에 닿지 않아서 생겨난 빈 공간이 준 삶의 공포는 내가 기억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의 기억. 추억이라고 하기엔 잔인한 '갖지못함'의 기억. 그녀는 친구의 일기장에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로 적혀버렸다. 그리고 그 동정은 흉터가 되어 아직도 그녀는 유원지를 향해 걷는다. 자신이 자라면서 흉터가 같이 자랄지 몰랐다.그녀는 오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려한다. 자신은 그에게 이제 아무것도 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도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녀는 생각한다. 그가 불같이 화를 내어 파산해버렸으면 하고. 그녀는 그와 헤어지고 싶은 것일까. 왜?차창 밖을 본다. 지금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어떤 것이 진짜일까. 어떤 것이 진짜여야 할까. 그들은 가만히 있고 강물과 가로수가 거꾸로 가는 풍경과 그들은 달리고 있고 강과 가로수는 가만히 있는 풍경...우리의 인생이 그녀의 생각처럼 지루한 것이다면 어떤 풍경이 진짜여야 좋을까.빅토르 최의 노래를 듣는다. 그녀가 좋아하는 빅토르 최. 그녀는 자신이 빅토르 최처럼 아프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저씨의 혈액형은 농사꾼의 후예인 A형, 나는 유목민의 피인 B형. 그래서 아저씨는 선반 위의 고려청자같이 놓여있고 나는 어디 있어도 불안한 걸까.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변명일 뿐이다. 혈액형은 그런 식으로 구분지어진게 아닐 테니까. 그저 그녀는 뭔가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떠돌고 있다는 걸 핑계대고 싶었던 것일 거다.
장르론은 원래 문학의 본질에 관한 물음에서 출발하여야 하면서도 질서를 가져오기 위한 논의여야 한다. 판소리계소설과 판소리를 분리해서 서로 다른 장르에 귀속시키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판소리 사설을 판소리와 분리해서 서로 다른 장르에 귀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판소리 사설은 판소리 예술이라는 유기적 제조물을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판소리에서 사설만을 따로 떼어내서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판소리 예술의 생명을 해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판소리계 소설을 판소리에서 독립해 나와 별도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지만 판소리 사설은 독특한 공연 양식인 판소리의 구조 속에 참여함으로서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판소리 사설과 판소리는 그 장르가 다를 수 없다.삶을 순간적 지각으로 파악하고 내면의 정서를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만으로써 독백하듯 표현하는 것이 서정의 본질임을 생각할 때 판소리사설을 서정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이다.우리가 어떤 장르를 규정할 때에는 여러 장르적 특성들을 넘나듦을 고려하면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장르적 특성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1.서사장르로 보는 근거3가지1)전체적인 줄거리가 서술자에 의해서 엮어진다.2)발림(너름새)은 이야기의 진행을 위한 몸짓에 불과하다.3)대화가 평면적으로 처리된다.그러나 판소리는 시가체이며 생략부분이 많고 흥겨운 장단과 대화동작을 자세히 나타내며 공동작의 구비문학이기에 서사라고 확실히 규정지을 수 없다.2.희곡이 아닌 근거5가지1)전적으로 대화로만 되어있지 않다.2)대화가 창의 묘미를 살리기 위한 것이어서 불필요하게 길고, 행동을 수반하거나 지시하지 않는다.3)서술자가 무대표현, 등장인물의 상황까지 서술한다.4)행동이 전혀 없다.5)완창을 하지 않고 부분창으로 한다. 이는 창을 듣기 위한 것이다.3.판소리의 특징1)서술자가 개입한다.2)시제가 과거형이다.3)대화가 평면적이다.4)고수는 상대역이 아니다.5)부분만 창을 한다.6)등장인물의 수가 많다.7)작중장소의 수가 많다.판소리를 서사무가로도 보기도 하는데 이는 구비율문이 판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사무가는 신격이나 영웅적 인물 등장과 초자연적 질서를 노래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4.장르 규정서사-보고:외부에서의 관찰:이야기 되기 위해 존재희곡-재현:내면의 객관화:보여지기 위해 존재판소리를 구비서사가창물로 볼것인가 창극으로 볼 것인가의 판가름은 창자의 기능이 서술자인가 배우인가,창자의 발림이 보조적인 제스처인가 연극적 행동인가, 고수의 기능이 반주자인가 상대역인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