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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교육]유아교육개론(방통대)-E유형
    목 차Ⅰ. 서론1. 유아교육의 중요성- 발달 단계와 중요성- 학자들의 이론- 결정적 시기2. 유아교육의 특수성- 복지사회의 실현- 가정생활의 변화- 여성 취업률의 증가Ⅱ. 본론- 유아교육기관에서의 부모교육 운영형태- 부모교육 프로그램 예Ⅲ. 결론- 평가Ⅳ. 참고자료Ⅰ. 서론1. 유아교육의 중요성1. 발달 단계와 유아교육유아교육의 중요성은 1960년대 인간을 대상으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증명되고 주장되어 있다.초기 환경이 인간의 지적ㆍ정서적ㆍ사회적 기초를 이룬다는 사실에서 유아교육이 개인적ㆍ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으며, 교육투자의 효율성 분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최근 뇌생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초교육은 영ㆍ유아기가 최적기이며 양질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Nash, 1997). 감성지능의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예일대 교수인 심리학자 피터 샐로베이와 그의 동료인 뉴햄프셔 대학의 존 메이어에 의하면 감성지능을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EQ지수가 높은사람이 자기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면 영ㆍ유아기 때부터 양질의 교육환경에서 기본생활 습관을 형성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참고 기다릴줄 알며 정서를 순화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인생의 시작인 유아기에 신체, 인지, 언어발달 등과 함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옛부터 세 살 버릇 여든간다’라는 조상들의 말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1) 인간 발달의 기본 원리에 의한 중요성① 유아교육의 적기성인간의 여러 발달 과업들은 가장 적절하게 획득되는 최적의 시기가 있다는 원리이다. 이 시기는 결정적 시기라고 불린다.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과업 획득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한다.② 유아교육의 기초성어릴 때의 발달이 나중의 모든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원리이다. 우리의 전해 오는 속담인 '세살 버릇 여든 까지'가 이 원리에 해당된다.③ 유아교육의 누적성인간의 성장?발달에 있어 전 단계의 발달에 결손이 생기면, 이 결손은 다음 단계의 발달에 계속적으로 누장하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각 아동이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 속에서 나름대로의 지식과 세계관을 계속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발달의 과정일 것이다. 따라서 각 아동은 적절한 수준의 지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적 갈등의 적절성이란 너무 쉬워서 아동이 쉽게 좌절을 주지도 않는 적당한 지적 불균형과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0-4세 사이에 지능 발달의 약 50%가 이루어지며 4-8세 사이에 30%, 8-17세 사이에 나머지20%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즉 0-8세 사이의 유아기 도안 지능의 약 80%가 발달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상과 같은 인지 발달론자들의 주장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란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니다. 둘째, 인간의 지적인 능력은 주변 환경 속에 제시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물과 상황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한다. 셋째, 이러한 주변 환경의 영향력은 어릴 때(8세 이전)더욱 더 크다. 넷째, 환경을 통한 아동의 경험이 발전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인지적인 수준과 관심에 부합되는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교육적 배려가 요청된다.③ 국가, 사회적 요청에 의한 유아교육결손가정의 아동들은 이미 다른 중?상류층이 아동들과는 달리 환경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능력의 결핍을 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따라서 이들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되며 나중에는 각종범죄, 문제행동, 마약 복용 등의 시회문제를 일으키게 됨으로써 전체적인 국가의 능력을 파손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밀 예방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바로 이 헤드 스타트 운동이다. 헤드 스타트 운동의 배경에는 유아교육의 성패가 국가의 이익과 번영에 직결된다는 인식이 있다. 우리나라의 유아교육의 발전도 이러한 국가?사회적 요청과 무관할 수 없다. 1980년대에 들어와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과 막대한 예산 지원가정생활 시기에 그 기본적 구조가 확립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유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정환경임을 강조하고 그 다음으로 사회 환경을 들었다. 가정환경은 양친과의 관계, 집 주위의 환경, 사회적ㆍ경제적 지위, 가족구성, 주택상황, 문화적 상태, 영야 및 위생상태, 언어모형, 강화체제, 가치지향성, 부모의 자녀에 대한 태도와 방법 등을 들 수 있다.한편, 사회 환경 역시 가정환경이나 학교환경을 능가할 정도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역에 따라 일정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가정은 바로 이 지역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차원에서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유아기는 같은 또래 집단들과 함께 집 밖에서 놀이하는 경향이 많다. 이 때 동료집단이 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이유는 이것이 바로 사회환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3. 결정적 시기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학자들은 결정적 시기에 대한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결정적 시기의 의미는 “인간의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으므로, 유아의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경험이나 자극이 주어지지 않거나 박탈된다면 손상된 발달의 영역을 치유하기 위한 교육적인 시도가 이 시기 후에 주어진다 하더라도 회복되기 어려울뿐더러 어떤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결정적 시기라는 개념을 유아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발달의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행동 출현과 환경과의 관계는 그 후에 나타나는 행동양식, 발달특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결정적 시기’는 유아발달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며 발달의 속도는 신체적ㆍ지적ㆍ정서적ㆍ성격적 측면에서 다 다르다고 한다.‘결정적 시기’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보울비(J. Bowlby)는 어머니 부재나 심리적 거부 등의 모성실조가 2세 이전에 일어난 경우 유아성격 발달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정신 분석학 입장에서 사회 정서발달을 연구한 에릭슨은 어머니와 영아 간에 초기 상호작용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감 형성에 기초가 된다고 했다. 각인 현상 역 요구되었지만,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대가족이 더 이상 경제적이지 않은 생활조건으로 되어졌다. 그리하여 자본주의화가 되면서 동거가족의 크기는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아울러 동거세대수도 감소하여, 1세대, 2세대로 구성되는 소가족, 핵가족, 독신가족 등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산업화와 함께 1970년부터 강력히 추진되어 온 가족계획실시 결과 가족 크기에도 변화가 있었다. 가족규모의 변화 양상은 1970년대에 들어와 감소추세를 보였다. 즉, 가구당 평균인원이 1970년 5.2명에서 1980년에는 4.5명, 그리고 1990년 3.7명으로 계속하여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그런데 이러한 현대가족에서는 가족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다. W.F.Ogburd은 근대화 이전의 가족은 경제?지위부여?교육?보호?종교?오락?애정의 일곱 가지 기능을 수행하여 왔으나, 근대화 이후의 가족은 애정의 기능만을 수행하고 나머지 여섯 가지 제도적 기능은 기업?학교?국가로 흡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가족의 전통적인 기능은 사회의 전문기관으로 이양되었으며, 따라서 전통적인 가족의 기능은 가족단위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기능으로 대체되어 가족은 더 이상 이전의 기능을 수행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현대 한국가족의 기능을 조사?연구한 결과들에서도 자녀양육 기능이나 친척관계 유지기능은 비교적 잘 수행되고 있으며, 성 및 생식기능과 경제적 기능도 유지되는 경향이지만, 자녀교육 기능이나 보호기능은 약화되고 있으며, 애정기능이나 정서적 지지 기능은 새롭게 출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가족형태와 가족 크기의 변화는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에서는 조부모, 부모, 삼촌, 고모 등의 가족들이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양육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아동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언어와 바른 생활습관, 그리고 도덕적 윤리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의도적인 설명이나 훈련이 아닌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지 확대되고 있다. 그것은 고학력 여성들이 더욱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혹은 자아실현을 성취하기 위해서, 혹은 이혼과 별거 가정의 부인이 생활의 유지를 위해 취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미혼 여성들의 취업률을 능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현대사회가 여성의 유휴능력 및 인력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여성고용촉진 대책을 확정하고 공무원채용과 관련된 법령과 공기업의 내규 등을 고쳐 96년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정부는 공기업 신규채용 때 여성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필기시험에 합격한 여성이 특별한 사유 없이 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이와 함께 5급 행정직원과 외무직, 7급행정직의 여성합격자 비율을 95년도의 6% 수준에서 98년에는 15%, 2000년에는 20%로 각각 늘리기로 했다. 이러한 정부시책은 지금까지 여성의 하위직 편중경향을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여성의 사회 참여율을 더욱 증가시킬 것으로 볼 수 있다.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경제적 발전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여성취업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여 왔다. 1980년에 42.8%에 해당되는 543만여 명, 1990년에는 47%에 해당하는 747만여 명, 1993년 현재 788만여 명이 경제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체 여성 인구의 반에 가까운 42.7%에 해당된다. 이들 경제 활동 인구 중에서 기혼 여성들의 취업율도 꾸준히 신장세를 보여 주고 있다. 1983년에는 346만여 명으로 전체 기혼여성의 33.6%, 1986년에는 431만여 명으로 38.7%, 1989년에는 494만여 명으로 41.9%, 1992년 현재에는 기혼여성의 41.3%에 해당되는 518만여 명이 경제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혼여성들의 취업활동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학령 전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대리시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여성이 자녀출산과 양육을 하다.
    교육학| 2006.04.23| 9페이지| 3,000원| 조회(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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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교육] 구성주의 유아교육 평가A좋아요
    1. 서 론1. 구성주의 개념2. 구성주의 학습이론3. 구성주의 학습특성4. 구성주의 교수-학습이론5. 구성주의 학습방법의 고찰2. 본 론1. 구성주의 유아교육과정의 이론적 근거2. 구성주의 유아교육과정의 구성요소3. 구성주의적 학습 환경4. 구성주의적 수업 모형3. 결 론1. 구성주의 교수의 본질2. 결론1. 구성주의 개념1980년대 이후의 인지심리학의 발달은 학습자 중심의 새로운 수업 설계이론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었다. 교육 공학적 접근에 의한 하이테크놀러지의 발달과 인지심리학 발전에 의한 고차적 인지 능력에 대한 새로운 발전은 구성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수설계 개념을 탄생시켰다.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명확히 단정 짓기가 어렵다. 지식은 개인의 경험 및 관점에 근거하여 의미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습자가 개개인으로 하여금 실제에 대하여 주관적인 의미를 가지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지구조를 변형 또는 형성 시키는 것이다.”로 정의하고 있다. 구성주의란 Piaget의 발생적 인지론을 기초로 한 인지 과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Piaget는 인간이 실제를 인지하게 되는 과정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개인은 실제를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켜 가면서 인지적으로 구조화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실제에 대한 지식은 개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구성됨으로써 획득된다는 것이다.Piaget의 구성주의 이론의 핵심은 인간은 모두 자기 조절적, 자기 규율적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지식 구성의 원리라는 점이다. 아무리 외부로부터의 타율적인 간섭에 의한 작용이 가해져도 궁극적으로 지식 구성은 인간 개인의 머리와 마음속에 있는 자기 규율적 기제에 의해, 현상에 대한 이해를 구성하고, 혼란스러움이 가해졌을 때는 그것을 해결하고자 재구성의 노력을 하고, 그리고 이 구성과 재구성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방법과 융통적인 전략을 제공해야 하며둘째, 사회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을 일어나게 하려면 협력 학습을 근간으로 해야 하며,셋째, 학습자 자신이 개인의 독특한 지적 학습 모델을 형성 발전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적 학습 경험을 제공해야 하며,넷째, 평가는 학습 과정에서 발생 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는 탈 목표 평가 방법과 맥락 중심 평가를 실시해야 하겠다.강인애(1997)는 구성주의의 학습원칙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1) 학습자의 학습에 대한 주인의식학습에 대한 주인의식은 흔히 스스로 자율학습을 할 수 있는 인지적 기술과 능력을 일컫는다. 즉 학습자 스스로 자율적으로 그리고 자신감 있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학습을 관리하고 학습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2) 자아 성찰적 실천자신의 모든 개인적 경험이나 일상적인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것이 아니고 그 의미와 중요성에 항상 의문을 해보고 분석을 하는 인지적 습관을 일컫는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모든 것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분석을 해보고 그 대안을 구해보는 것이다.즉 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② 나는 그것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행동했는가? ③ 왜 나는 그런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는가? ④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나는 또 다시 같은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⑤ 대안은 없을 것인가? 라는 일련의 질문을 통해 자아성찰적 실천을 습관화하는 것이다.(3)협동학습 환경의 활용협동학습은 단순히 인지적 부담을 던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사람들마다 얼마나 다양한 생각과 견해를 지니고 있는지를 배우게 하는데 있다. 나아가서 다른 견해와 생각을 어떻게 잘 조율해서 공동의 이해와 생각에 도달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협동 학습 체제를 활용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기술도 익히게 되며, 토론과 협상의 기술 역시 익힐 수 있다. 이 때 협동 학습의 중요성을 위에서 언급 후에는 전체적 해석의 양상을 보였다. 특히 Devries는 Piaget 이론의 교육적 적용에 대한 과거의 오류를 다섯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즉 발달단계의 적용, 수행과제, 지식, 활동, 특정실행에 대한 경험주의적 해석 등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가. 발달단계의 적용Piaget의 인지 발달단계가 인상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때로 Piaget 이론의 전부인 것으로 오인된다고 지적한다. 발달단계를 발달의 결과로 강조하면 발달의 과정 즉“구성한다”는 의미는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나. 수행과제Piaget의 과제를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첫째, 과제는 Piaget 자신이 지식은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대한 인식론적인 것을 연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따라서 과제의 성격 자체가 교육내용이 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둘째, 과제는 아동의 추론능력이나 논리성 발달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셋째, 아동이 다음 발달단계로 가기 위해 과제의 모든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포함 관계와 같은 과제는 아동의 삶에서 늘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포함관계 때문에 다음 발달단계가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즉 수행과제란 단지 심리학자들이 연구하는 한 상황에 불과한 것이다.다. 지식공간과 시간과의 관계, 서열, 분류 등을 교육과정의 내용으로 하는 것은 Piaget 이론을 전반적인 인지발달이 아니라 제한된 내용의 지식 습득 이론으로 되게 한다.라. 활동아동발달 학자들은 활동을 중시하는 Piaget 이론을 진정한 Piaget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하기 위해 도입할 뿐이다. 즉 “아동은 조작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뿐이다. 즉 가상놀이, 제목놀이와 같은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Piaget 이론을 응용하였다. 그러나 Piaget에게 있어서 활동은 놀이를 정당화시켜 주는 차원이 아니라 구성적 과정의 핵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마. 특정실행에 구성해 가도록 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Piaget는 강의식 수업이나 연습, 계획된 교수 혹은 시청각 매체에 의한 시범이나 교사의 시범도 유아에게 분류ㆍ서열 등을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흥미에 기초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그러한 한 예로써 퀴즈네어 막대에 의한 교수법도 사물의 복제에 불과하여 아동의 조작적인 활동을 발달시키는데 부적당하다고 하였다.이와 같은 흥미ㆍ놀이ㆍ자율적 실험에 대한 Piaget의 이론을 바탕으로 Kami와 DeVries는 유아교육과정에서의 활동들은 그림그리기, 블록, 가상놀이, 노래 부르기, 이야기 듣기, 정글짐 오르기 등의 기존의 아동발달 교육과정의 활동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시사 받았다. 물론 이러한 활동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지식을 구성하도록 할 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구성주의 교사는 아동을 관찰해서 흥미의 초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추상작용을 일으킬 활동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 아동발달 교육과정에서의 많은 활동들을 놀이와 사회 정서 발달이라는 단어에 주어진 일반적인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원리 및 이론적 근거로서 정당화 한다.(2)성인 및 동료와의 활동성인과 아동간의 관계에 대해 Piaget는 성인과 아동고의 협동 및 동료간의 협동을 강조하였다. 아동이 자율적으로 지식과 도덕성을 구성하게 하는 협동관계와 타율성을 조장시키는 권위적인 관계의 두 가지 관계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는 아동이 외부에 의해 조절 받는 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식, 가치, 확신에 의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 신념, 가치에 지속적으로 지배받게 되면 아동은 도덕이나 지능 면에서 지각없이 순응하는 복종심만 연습하게 된다는 것이다.반대로 협동으로 특징 지워지는 자율적 관계에서는 타인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 구축한 지식, 가치, 확신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였다.Piaget는 협동 관계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둘째, 아동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셋째, 물체의 반응은 관찰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넷째, 물체의 반응은 즉각적이어야 한다.(2) 그룹 게임그룹 게임은 Piaget에 의해 이미 강조되어진 것으로써 Piaget는 또래 친구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없이는 논리적, 사회적, 도덕적 가치가 형성될 수 없다고 하고 게임의 교육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아동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지켜야하고, 다른 사람과 자발적으로 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동은 어떻게 하면 그 게임을 잘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기 위하여 인지를 사용하도록 격려 받기 때문이다.구성주의에서 말하는 그룹 게임은 두 가지 기준이 있다.첫째, 아동이 성취해야 할 이미 정해진 절정이 있다.둘째, 놀이참여자들의 역할은 상호의존적이다. 또한 상반되고 협조적이면서도 규칙에 따라 함께 놀이를 한다.그룹 게임의 종류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이는 목적을 맞히기 게임, 경기 쫓기 게임, 숨기기 게임, 알아맞히기 게임, 언어적 지시 게임, 카드 게임, 판을 이용한 게임들이 있다. 이와 같은 그룹게임은 지적 활동과 신체적 활동이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놀이참여자의 활동을 강조한 Piaget의 이론에 근거하여 분류되었다. 즉 놀이참여자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분류하였다.구성주의 교육과정에서 그룹게임의 새로운 점은 신체적 발달, 에너지 발산, 오락 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아동의 지적ㆍ사회적 발달을 도와준다는 점이다. 그룹게임은 특히 종류에 따라 나름대로의 인지적 가치가 있다.(3) Piaget 과제Piaget의 과제는 아동의 발달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유용한 것이다. Kami와 DeVries는 Piaget의 과제를 무조건 수용하지는 않는다. Kami와 DeVries는 Piaget의 과제가 다음과 같은 기준에 적합할 때에 한하여 교육활동으로 받아들인다. 첫째, 생활에 필요한 기능의 발달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가? 둘째, 그 과제에서 어린이가 얻을 수 있는 피드백은 명확한 것인가?이러
    인문/어학| 2004.08.15| 28페이지| 5,000원| 조회(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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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 생명을 하늘처럼
    인간의 내면이 탐욕으로 병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병들어 간다. 감동도 느낌도 감탄도 없는 둔감, 특히 생명에 대한 둔감은 우리 시대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범죄이다.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더라고 하신 그 아름다움이 없어져 간다. 그 반면에 구석구석에 인간의 탐욕이 내쏟는 쓰레기가 썩고 부패하고 독가스를 내뿜고 있다.이제 문제는 운동이 없는 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운동은 우선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각자가 사무치게 생명의 감수성을 깨닫고, 반 생명 구조에 눈뜨고,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인식전환과 가치전환을 위한 반복적 학습이 첫째 과제이다.정신 생태학의 권위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생명의 사색가였다. 베이트슨은 마음을, 살아있는 유기체와 사회와 생태계의 특징인 시스템 현상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마음은 육체 안에 있을 뿐 아니라 육체 밖의 통로와 메시지 안에 있다는 것이다.생태학(ecology)은 어원상 ‘집(ockos)’과 '학문(logos)'이라는 단어의 복합어이다.어원상으로 볼 때 생태학이란 우리의 지구라는 집에 관한 학문이다. 한마디로 생태학은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유기체와 환경과의 내적관계에 대한 연구이다. 같은 하늘, 같은 태양, 같은 풍수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한 뿌리라는 이식, 한 생명이라는 감수성, 그리고 감탄이야말로 오늘날 생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윤리적 기초이다.지금 우리는 과도기에 처해있다. 과거의 가치관이 파괴되고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그런 모형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의 행위가 미래를 결정 할 것이며, 아마 지구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더욱 더 많이 소비하고, 더욱 더 많이 생산하며, 더욱 큰 에너지로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면 우리 지구의 위상은 어떻게 되겠는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체제가 죽어야 하고, 생명을 살리는 신비주의가 탄생해야 한다.아시시의 성 않는다면 지구는 지배와 탐욕의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푸른 평화 운동은 생명 운동의 일부분으로 가정의 작은 것 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 해 도안 우리 사회는 가장 작은 것, 즉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역행하는 생활양식을 영위해 왔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그런 것들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보다 안전한 환경과 의미 있는 t삶을 만들기 위한 푸른 평화(green peace)운동은 가정의 작은 것들에서부터 시작된다. 가장 작은 것부터 변화시키는 푸른 평화의 삶은 자연과 함께 살기로 의식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녹색인생이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생명을 다루는 가장 구체적인 교육자들이다. 생명존중은 인간 존엄서의 존중이며, 푸른 평화는 생명 존중을 의미하고, 생명 존중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보존이라는 사실을 경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가정의 작은 것에서부터 첫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최근 우리주변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환경오염 물질의 사용 중단, 무공해 대체 물질의 개발을 서두르는가 하면,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미지를 일반 국민들과 소비자에게 부각시켜 판매촉진으로도 연결시키는 ‘그린 마케팅’전략을 새롭게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 환경 문제는 경제적인 실리를 따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전체적으로 보는 거시적 경제 안목, 숲 전체를 볼 줄 아는 총체적(global) 시각이 필요하다.바로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의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꽤나 늦게라도, 아니 지금 당장 각 본당마다 교구마다 지구 보전과 재생운동에 앞장서면 좋겠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화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환경 난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현상은 특히 아프리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태 이후 대구 염색 공단의 문제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 생존과 삶의 문제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이제 우리는 삶의 방향을모색해야 할 때이다.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터득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돌아가자. 우리 조상들은 인간과 자연을 서양처럼 이원화시키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였다.누구보다도 여성이 나서자. 여성이 지구의 치유자로 나서자. 특히 여성은 자기 생체로써, 임신, 출산, 생리 전체를 통해서 자연 생태계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생명을 파괴하는 오염, 공해, 폭력과 싸워야 한다. 지금이 시작할 때이다. 이제는 단순히 한 지역,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전체의 문제이다. 각 개인과 이 시대의 문제들은 크나큰 연관성이 있으므로 지구촌의 문제는 사실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의 문제이다.문명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유럽인이 아프리카 남부의 오지에 갔다. 그곳은 아주 미개한 원주민 마을로 그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유럽인은 거기서 아주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원주민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 아무것도 갖지 않고 맨몸으로 강에 뛰어들어 두 손으로 물고기를 움켜잡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다 못한 유럽 친구가 말했다.“내가 좋은 것을 가르쳐 주지.”그리고 그는 낚시에 미끼를 꿰어 간단히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이것을 지켜 본 원주민은 매우 놀랍고 슬픈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그건 안됩니다. 물고기를 속이는 것이니까요”이 짧은 이야기는 문명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의미와 여운을 남기고 있다.과연 누가 문명인이고, 누가 미개인인가? 작은 물고기조차 속일 수 없다는 그들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과연 미개한 것인가?무릎 교육에서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초ㆍ중ㆍ고등 학교와 대학교에서 환경 과목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성인들의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본당의 주일 학교에서도, 신학강좌에서도 환경윤리, 창조신학, 생명신학을 이제는 정규 과목으로 설정해야 한다.우리는 지금까지 쓸모 있는 지구를 만들기 우해서 기술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이제는 지구를 그냥 두어야 한다. 또한 우리도 자신이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강 문화로 향해야 할 것이다.사실 요즘은 이상 기후이다. 계절의 경계가 없다. 이것은 재생되지 않는 자연 자원을 인간이 마구 소비함으로써 지구 주위의 이산화탄소를 증가시켜 지구의 기온 상승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큰 죄악은 바로 둔감이다. 이것은 지구의 상처에 무관심하고, 상관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것이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것에 대한 둔감은 폭력보다 오히려 더 파괴적이다. 이제는 누구나 안전벨트를 매듯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경제 성장에 희생된 지구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현재 지구의 무제들은 아니무스(animus), 즉 양의 지배에 의해서 초래되었다. 이제 우리는 억압된 아니마(anima)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지구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생명은 하늘처럼 신비롭다. 생명은 상품이나 번호가 아니다. 자로 재거나 저울로 만들어지는 제품이 생명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원판이다. 복사판이 아니다.이렇게 생명은 고유한 품성을 드러내면서 전체 속에서 서로 순환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곧 생명이다. 생명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땅이 죽어 가는데, 사람만 살수 있는가?옛날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기쁨이 있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살맛이 있었다. 밥맛도 아주 좋았다. 지금은 어떤가? 풍요 속에 빈곤이다. 수입식품, 가공식품, 냉동식품, 수입 밀 빵 등 먹을거리의 패션화로 보기에도 머음직한 것들이 너무 많지만, 우리 몸에 해로운 식품 첨가물 투성이다. 살맛(=삶의 의미, 행복)과 밥맛은 함께 굴러가는 바퀴이다. 배는 부른데 살맛이 없다.(=삶의 무의미)는 공허감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다. 살맛이 있어야 밥맛이 있고 밥맛이 있어야 살맛이 있다.우리는 생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생명은 한 통속이라는 감수성말이다. 나와 너 그리고 지구는 하나라는 상관적 사고가 요청된다.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인식을 공유 할 때, 우리는 통일로, 지구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지구도 하늘과 땅도 살아있는 조 질서를 깨뜨리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의 창조 신앙이 의미가 있을까? 만약에 의미가 있다면, 이시대의 예언직 중에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창세 6,12). 지금은 어떤가? 외면의 질서도 내면의 질서도 그야말로 세상은 무법천지이다. 생태계의 위기는 단순한 환경 공학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모든 생명, 특히 인간 생명에 가하는 폭력의 문제이다. 바로 말살의 문제이다. 이 생태계의 위기, 도덕적 문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파괴를 일삼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새 하늘 새 땅’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기 이전에 우선 나부터 시작하자. 생명 문제에 대한 책임을 한 가지만이라도 내가 지자는 것이다.영국의 학자 제임스 러브로크는 지구는 하나의 유기체, 하나의 생명체로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가이아(Gaia)가설이다. 이 가설은 과학과 종교를 결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과 피조물을 분리시키지 않고, 태양, 풍수, 땅, 나무, 꽃, 사람들안에서 창조주와 연관시켰다. 이러한 영성만이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구를 살아 있는 만다라로, 상징으로 보는 영성이 필요하다.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보는 영성이 필요하다. 육체에 질병이 있으면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시대의 주요 질병인 암, 에이즈, 심장병은 문화적 붕괴에서 나온 병이다.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지구도 마찬가지이다. 생산양식, 소비양식,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 물리학에서는 에너지를 써버리는 것을 엔트로피(entropy)라는 용어를 쓴다. 만약 우리가 에너지를 계속해서 엔트로피로 변화시킨다면 이 지구는 없어지고 말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 있다.
    독후감/창작| 2004.08.03| 5페이지| 1,000원| 조회(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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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교육]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
    제 1 장 서 론제 1절.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배경제 2절.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영향제 3절.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제 2 장 본 론제 1절.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교육사적 의의제 2절. 루소 교육사상의 현대적 의의1.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역사적 평가2.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현대적 의의제 3 장 결 론제 1절. 루소 교육사상의 시사점과 한국 교육의 방향1. 교육현장에서 본 루소의 교육사상2. 한국교육의 방향제 2절. 결론제 1장 서 론제 1절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배경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1712년 6월 28일 스위스의 제네바 공화국에서 이자크 루소와 슈잔느 베르나르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루소가 태어난지 불과 열흘만에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루소는 어렸을 때 몸이 허약했었다. 그는 두 숙모의 양육을 받으면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감성적이었으며 머리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가 7,8세 되었을 때는 어머니가 즐겨 읽었던 소설책을 아버지와 함께 밤을 세워 가며 읽기도 하였다. 독서의 영향으로 그는 얼마 안 가서 많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 책의 내용을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사물에 대한 감지 능력이 크게 발달하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예사로 보는 일이 없었고 매사에 매우 탐구적이었다. 그가 읽은 책 중에서 『플루타크 위인전』은 그의 애독서 였다고 한다. 그는 희랍 모라의 영웅들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에 매혹되고 감격하였다.그의 나이 13세에 제네바에 와서 시계 세공업을 하는 집에서 견습생 겸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악우들과 사귀고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후 뽕삐어르 사제의 소개로 바랑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루소의 인생은 이때부터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바랑부인의 친절과 권유로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이탈리아의 토리노 수도원에서 약 두 달 동안 승원생활을 하였다. 그 다음해(1729)루소는 바랑부인의 배려로 신학교에 즉, 심리학적 경향, 과학적 경향, 사회학적 경향이 나오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의 중심을 루소에 두고 있다.또한 현대 교육에 있어서의 중요한 학습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잇는 자발성의 원리, 직관의 원리, 노작의 원리, 개성존중, 자율주의 훈련방법등은 모두 루소가 시사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 교육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또한 루소의 영향을 직접 받은 당대의 교육자를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바세도우(J.B. Basedow)이다. 바세도우는 루소의 이론은 교육실제에 적용하여 실험한 인물로서 1774년 이른바 범애학교를 설립하여 자연주의 교육사상에 입각해 『에밀』의 교육내용 그대로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다. 루소의 영향을 첫 번째로 받은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아동으로 하여금 공익에 힘스고, 애국적이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교육 목적을 두고, 교육은 자유를 존중하여 아동을 위협하지 말고 선량한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하였으며 체육에 대해서는 단련주의를 주장하였다. 교육내용으로는 라틴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동물ㆍ식물ㆍ광물 등 자연계에 관한 지식을 주로 하여 실물과 모형을 사용하면서 가르치고, 지구의와 지도를 사용하여 지구의 형상과 운동을 가르치고, 도량형을 사용하여 산수와 물리를 가르쳤다. 공작ㆍ원예등을 가르치는 한편 수시로 야외에 나가서 자연을 관찰시키고, 교외수업을 하는등 매우 진보적인 교육을 하는것이었다. 교육방법으로는 학습을 강제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여 ① 많이 가르치지 말고 유쾌하게 배우도록 할 것. ② 많이 가르치지말고 초보적 학습에 적당한 순서로 배우도록 할 것. ③ 많이 가르치지 말고 참으로 유익한 지식만을 가르칠 것 등 세가지 법칙을 들었다.둘째, 페스탈로치이다.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이론을 발전시킨 교육이론가 및 교육 실천가로서, 『에밀』속의 교육실천 이론은 자기 아들에게 처음으로 적용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가 나중에 성선으로 추앙받는 시발이 『에밀』을 손에 쥔태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루소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만인의 천부적 권리로서 정의되었다.자연주의 교육은 직업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일체 배격한다. 원만한 인간으로서만 교육받으면 어떤 직업에도 적응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인간 교육은 인간 내부에 깃들어 있는 자연성에 따라 시행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연주의 교육의 내용은, 이 자연성과 자연현상을 기초로 하여 확립된 것이어야 하며, 생활의 필요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활동이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루소는 아동교육의 장소로서, 가정 특히 시골의 가정을 들었고, 자연상태를 택하고 있다. 루소는 가정이 훌륭한 교육기관이며, 부모는 천부적인 교사라고 여겼다.루소는 자연주의 교육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교육은 매우 소극적이다. 여성의 개인적인 권리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오직 남성의 부속물, 오락물이며, 아동을 양육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이 점에서 루소는, 남자교육에 있어서는 100년 이상 앞을 내다봤으면서도, 여자 교육에 있어서는 당대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루소가 사회조직을 반대했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루소는 부패한 구질서의 사회를 부정했을 뿐이며, 새로운 형태의 사회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즉 전통적인 사회조직이 인위적으로 불평등을 초래했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본연의 천성을 발휘하지 못하는것에 대해 반발하였던 것이지 사회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루소는 인간이 자연적인 상태의 사회질서로 돌아가기를 열망하였다. 루소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형태를 이룰때에는 상호계약에 의해야 하며, 그 사회는 공동의 힘으로, 사회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루소는 모든 사람이 개인의 자유를 누리며 서로 협력하고 보호 할 수 있는 사회를 발전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루소가 생각한 교육은 대단히 개인적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적 권위의 속박에서 벗어남을 민주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책임을 지닌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 교육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이상에서 고찰한 루소의 ‘합자연의 교육’사상은 앞에서 몇가지 지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페스탈로찌, 프뢰벨, 몬테소리, 엘렌 케이, 죤ㆍ듀이드응로 이어져 오면서 진보주의 혹은 경험 중심 교육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페스탈로찌는 인간의 평등과 자연성을 교육의 기저로 하여 생활주의 교육을 제창하고 지배 계급의 부패 타락을 공격하고 민중을 진실로 행복학 하는 정치와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감각적 공격을 통해서 어린이의 선천적 소질을 계발 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직관주의적 자연주의 교육관에 더불어 자발성의 교육과 노작교육을 낳게 하였다.프뢰벨은 페스탈로찌와는 다른 관점에서 루소 교육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겠다. 프뢰벨의 교육목적은 우주적 통일성에 기초한 어린이의 선천적 능력 즉 개인의 잠재력을 신장시키는 것으로 전인적 발달이었다. 아동의 교육적 성장은 자발적 활동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하며 교사의 역할은 어린이의 내적 자발성에 따라야 한다는 루소의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몬테소리의 유아 교육 방법의 사상적 배경도 ‘어린이에 대한 존중, 흡수정신, 민감기, 준비된 환경’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특히 아동에 대한 존중사상은 몬테소리 교육 원리의 기본적 신념으로 아동은 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독립된 인간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동에 대한 성인의 간섭을 배제한 루소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엘렌 케이는 교육의 목적이 어린이의 개성을 신장하고 그 인격을 인정하며 어린이의 자연성에 입각해서 지적ㆍ도덕적ㆍ창작적 충동을 발달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간섭이나 주의를 되도록 피하고 소극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엘렌 케이를 신 루소주의자라고 하였다.한편 듀이는 진보주의 교육사상에 기초하여 아동의 흥미 본위 교육과 아동중심 교과목과 아동 중심 수업을 강조하였다. 아동의 개성 존중마나 진보적인가, 얼마나 전근대적인 낡은 교육으로부터 탈피하였는가를 가늠하는 바로메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이미 본문에서 살펴 본 것처럼, 루소의 ‘자연에 따르는 교육’의 중심 사상은 무엇보다도 ‘아동’의 권리와 조건을 최대한 존중하는 교육이며, 또 아동의 ‘발달단계’에 충실한 교육이다. 교육을 부모(성인)나 사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실행할 것을 루소는 생동감 있고 또 힘차게 주장하였다. 또 교육에는 ‘자연이 정한 순서’와 ‘시기’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주장은 이후의 교육학과 심리학의 발전에 의해 그 정당성이 입증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한 귀중한 교육학적 발견과 지혜가 과연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제대로 존중되고 또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가 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반드시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는 형편이다.그와 같은 귀중한 현대 교육의 기본 원리는 소홀히 한 채, 기능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교육 기술’과 ‘정보’에만 눈이 팔려 있는 것이 우리의 교육계가 아닌가 한다. 부모, 일선의 교육자, 그리고 교육 관료들은 과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육철학이 과거의 낡은 교육의 철학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명되고 진보적인 것인지 스스로 되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반성에 있어서 디딤돌이 되는 것이 바로 루소가 제시한 ‘자연에 따르는 교육’이 아닐까 한다.이상이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현대 교육의 본질적이고 원리적인 측면이라고 한다면, 그의 교육철학에는 또 다른 교훈 혹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의 학교교육이 지나치게 자연 환경과는 동떨어진 인공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루소의 ‘자연에 따르는 교육’의 ‘자연’은 양의적, 즉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인간의 내적 자연’을 의미함과 동시에 ‘인간의 외적 자연’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가 이른바 발달단계에 따르는 교육, 소극적 교육과 관련된다면, 후자는 도시적인 인
    인문/어학| 2004.05.22| 23페이지| 5,000원| 조회(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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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아교육] 생태유아교육 평가A좋아요
    -목 차-Ⅰ. 생태유아교육의 개념1. 생태유아교육이란?2. 기존 유아교육과의 차이3. 생태유아교육과 유아생태교육의 차이Ⅱ. 생태교육 왜 해야 하는가?1. 자연생태계 위기와 세계관의 전환2. 몸과 마음과 영혼이 병든 아이들3. 유아 교육 제대로 하고 있는가?Ⅲ. 생태유아교육이란 무엇인가?1. 유아교육패러다임 전환2. 잃어버린 자연ㆍ놀이ㆍ아이다움을 되찾아주는 교육3. 생태유아교육이 지향하는 세상과 아이의 모습Ⅳ. 프로그램1. 프로그램 소개2. 교육계획안 예시Ⅴ. 교사의 역할Ⅰ. 생태유아교육의 개념1. 생태유아교육이란?생태유아교육은 생태학(ecology)과 유아교육(early childhood education & care)의 합성어이다. 생태유아교육은 생태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유아교육이며, 생태학적 접근의 유아교육이다. 최근에 등장한 생태관광(eco-tourism)은 생태학과 관광을 결합한 새로운 접근으로 풍물을 단순히 보고 즐기던 기존의 관광에서 벗어나 날로 오염되는 지구생태계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태계 보존을 체험하는 자연친화적 관광이다.또한 생태유아교육은 자연친화적 유아교육이다. 생태유아교육은 자연의 본성을 지닌 아이와 자연과의 신체적, 정신적 교류와 교감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 상생의 지혜를 터득하고 실천하도록 하고자 한다. 농경사회를 살아온 우리 조상들은 자연친화적으로 아이를 키웠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 동안 생태유아교육을 해온 셈이다. 당시의 아이들은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자연식품을 먹고 또래와 어우러져 마음껏 뛰놀면서 아이답게 자랐다.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유아교육의 이념과 목표와 내용과 방법의 상당 부분은 조상들의 ‘아이 키우기’에서 그 지혜를 배워야 한다. 서구의 이론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동양의 사상에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서 배워야 한다.2. 기존 유아교육과의 차이유아교육은 본래 아이 키우는 일로서 지구상에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적 의미의 유아교육은 산업사회의 부산물로서 유아 대변되는 우리의 고유 먹거리는 수입 먹거리로 바뀌었으며, 음력은 양력으로 바뀌었고,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은 서양의 문물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장승? 솟대? 성황당으로 상징되는 기층민중들의 민간신앙은 당국과 기독교의 말살 대상으로 지목되어 야만과 미개로 치부되어 사라졌다.셋째, 자연 생태계의 파괴이다. 경제개발은 우리 조상들이 5천년간 지켜온 금수강산을 단숨에 파괴해 버렸다. 산, 들, 강, 바다 어느 곳 하나 온전한 데가 없으며, 땅, 물, 공기 어느 것 하나 썩지 않은 것이 없다. 한반도 전체가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어릴 적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그 많던 평야는 공장과 아파트로 뒤덮여 사라져가고 있으며, 수없이 건설된 댐과 간척사업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수몰민 들의 삶의 터전과 고향의 향수마저 앗아갔다. 메뚜기, 미꾸라지, 개구리는 물론 텃새와 제비들이 사라지는가 하면, 수컷 물고기가 암컷으로 변하고, 남자의 정자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경제개발은 한반도 생태계의 파멸을 가속화시켜 마침내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넷째, 민족성과 인간성의 상실이다.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산 좋고 물 맑은 한반도에 터를 잡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살아온 생명공동체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온 마을공동체의 정신과 윤리와 덕목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개발독재의 주도자들은 경제개발 과정에서 온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식의 도전적, 경쟁적, 이기적, 물질적 가치관을 주입하면서 민족 고유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매몰시켜 버렸다. 정신보다 물질을, 과정보다 결과를, 보전보다 개발을, 화합보다 경쟁을,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이 같은 경제개발로 인해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경사회에서 추구하는 중심 가치였던 생명가치와 정신가치는 점차 사라지고, 산업사회에서 추구하는 중심 가치인 경제가치와 물질가치로 변모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은 주최성과 정통성장난감 풍요, 절약, 소중함을 모름이런 아이들의 훗날 모습 :초등 - 가방 하나도 못 챙김중등 - 교실붕괴청년 - 비행, 세상살이 곤란, 무사안일, 태평, 의지성인 - 결혼 후 이혼율 증가, 아이 양육의 세습화3. 유아교육 제대로 하고 있는가?유아교육은 본래 ‘아이 잘 키우는 일’이다유아교육은 ‘아이 잘 키우는 일’이다. 유아교육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먹고 입고 자는 일과 더불어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그래서 집안이 잘 되려면 자식을 잘 키워야 하고, 나라가 잘 되려면 어린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한다. 유아교육은 집안 입장에서 보면 ‘자식 농사’이고, 국가 입장에서 보면 ‘사람 농사’이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農事)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논농사, 밭농사, 가축 농사는 물론 사람 농사도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농사는 생명을 키우는 일이다. 농사는 땅을 어머니로 삼고, 하늘을 아버지로 삼아 곡식, 채소, 과일, 가축, 사람 등 뭇 생명을 키우는 일이다. 땅이 살고, 물과 공기가 살아야 곡식이 살고, 곡식이 살아야 가축이 살고, 곡식과 가축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낱낱의 생명은 다른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서로 살리는 상생관계에 있다. 즉, 우주의 삼라만상은 생명의 그물로 엮어져 있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의 생명이 들어 있는 셈이다. 결국 유아교육은 본래 아이의 생명을 키우는 일이다.이러한 유아교육이 농경사회에서는 그런 대로 본래의 모습이 있었는데,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의 유아교육은 산업사회의 부산물이다. 인류 최초의 유치원은 1840년 독일의 프뢰벨이 설립했는데, 이런 유아교육시설은 가정과 일터가 분리되고, 가족수가 줄어지고, 취업모가 늘어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사회적 육아시설이다. 요컨대 오늘날 유아교육시설은 사회 구조와 기능의 변화로 인해 어른의 편의와 경제적 효율성을 빌미로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양육, 보호, 교육하는 시설인 셈이다. 농경사의 성장과 발달에 중심을 둠으로써 개인이기주의 내지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이기주의는 어린 유아기에서부터 경쟁에서 남을 누르고 이기고자 하는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상을 낳게 하였다.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생들을 서열화, 계층화하는 국가, 여기에 발맞춰 젖 빨 시기부터 온갖 것들을 배우게 하여 내 아이만 잘나면 되고, 내 아이만 최고면 된다는 식의 부모들의 잘못된 이기심으로, 또한 원 운영을 위해 여기에 동참하는 원장들, 이러한 교육에 합세하여 조기교육을 부추기는 교수들 이 모두가 아이들의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 성향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이겨야지 만이 선택되고 사회적 성공이 보장되는 원리가 작용하는 사회적 풍토도 문제다.오늘날보다도 더한 극도의 이기주의, 개인주의의의 사회를 상상해 보라.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므로 유아교육에서는 유아개개인의 개성 존중과 능력 신장 뿐 아니라 공동체의식의 함양이 동시에 이루어 져야 한다. 특히 유아교육에서는 경쟁이 없어야 한다. 경쟁보다는 함께 어울려서 이루어 내는 힘이, 혼자의 힘보다는 여럿의 힘이 더 강하고 크고 의미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나는 혼자만의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모든 만물과 상호작용 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모든 생명은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며 또 전체이면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 아이만을 최고로 키우려고 하지 않고 다른 아이도 돌보게 되며, 타인을 애써서 이기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자연을 마구 파헤치지도 않을 것이다. 미래사회의 유아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공동체, 개인과 가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가족공동체, 사람과 사회가 함께 하는 사회공동체,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생명공동체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유아교육 방향의 전환(III) : 이성중심 교육에서 전인(몸?마음?영혼) 교육으로오늘날과 같이 지식과 기술, 정보에 의존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지식노는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행복함을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은 바깥놀이터의 흙, 바람, 돌, 풀, 꽃, 동물들과 친해지기를 원한다. 아이들이 순수하고 자연도 순수하기 때문에 ‘바깥’의 자연은 아이들을 부르고 아이들은 거짓없이 자연에 다가서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심의 아파트 안에서 갇혀 살고 있다. 유아교육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아침에 등원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혹은 안전을 핑계로 교실에 가두어 바깥놀이를 제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플라스틱 교구와 함께 과자 간식을 먹으며 햇빛도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보호?교육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인간으로 커 가는 가능성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아이들을 교실의 ‘밖으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노력, 즉 아이들을 교실에서 해방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생태유아교육 실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 바깥놀이란 아이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 개념, 경험을 자유롭게 펼치는 시간이다. 바깥 놀이를 통하여 지적인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고 계절의 변화와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갖게 된다. 또한 바깥의 자연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게 된다.바깥놀이는 우리 어른들이 어릴 적 놀았던 동네의 ‘공터’에서의 놀이와 같다.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 혹은 ‘교육주제와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아이들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 된다. 때에 따라서는 주제와 부합되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4월의 주제가 ‘봄’이라면 가끔은 봄의 꽃씨를 심거나 봄곤충 찾기를 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주제에 맞추다 보면 아이들은 흥미를 잃어버릴 수가 있다.바깥놀이는 특별한 날만 하는 활동이 아닌 일상생활이다. 또 맑은 날만 아니라, 흐린 날, 비오는 날, 추운 날도 가능하다. 하루 중에는 오전, 오후 다 가능하다. 짧게는 틈새활동으로 계획할 수도 있지만, 한다.
    인문/어학| 2004.05.16| 29페이지| 5,000원| 조회(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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