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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역사,중국사]중국의 소수민족 리포트
    1. 들어가며1) 고대 중국의 민족 구성중국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단일민족 국가였다. 한족(漢族) 혹은 화하족(華夏族)이 중국인의 기본 구성 멤버였으며 중국인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중국은 수차례의 대규모 민족융합과 민족이동을 거치게 되는데, 최초의 민족융합은 전설상에 나오는 염제?황제부족과 치우부족과의 전투였다. 연제와 황제는 중국인 자신들의 선조로 여기는 전설 속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다스리는 부족은 황하의 중상류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중원에 살던 치우의 부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에 따라 치우의 부락민과 영토가 이들 지역에 편입되었다. 이후 진(秦)?한(漢)?수(隋)?당(唐)을 거치면서, 국력이 강성해지면서 다른 부족을 침략하기 시작하고 영토를 확장시켜 나아갔다. 피점령 지역에 살던 부족들도 당연히 중국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이들 지역 상당수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것을 지켜 나갔다. 당시의 기술이나 관리수단으로는 이들을 완전히 한족에 동화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며, 또한 역대 군주 자신들도 이들 변방 이민족들을 동화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은 수립하지 않았다.송대 이후 중국의 국력은 쇠락해져서 이번에는 오히려 이민족의 침입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중 몽고족과 만주족은 정복왕조로서 각기 원나라와 청나라를 세워 중원 땅을 통치하였는데, 이들을 통치 과정 중에서 자신들 본래의 영토와 민족을 중국에 편입시켜서 이들 왕조가 다시 한족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중국의 변방영토와 민족의 성분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까이는 1950년 전후로 티베트와 신강(新疆)지역을 강점하여 오늘날과 같은 다민족 국가를 형성하였다.2) 노(老)? 소(少)? 변(邊)? 궁(窮)지구일반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중국의 변방 지역에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들 지역을 변(邊) 이라고 부른다. 변(邊)에 더하여 중국경제의 발달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일컫는 단어가 생겼다. 이름하여 노소변궁(老少邊窮) 지구라 예조판서 박권(朴權)이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확정했다. 두만강과 압 록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경은 이때 설정된 것이다.1860년 이전에도 많은 우리 민족의 이동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중국에 동화되어 지금은 조선족임을 고집하는 일부 집성촌을 제외하고 는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다가 1860년대에 함경도 변 경지대에 큰 흉년이 들자 수많은 사람들이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1883년 두 나라 사이에 교역장정을 맺어 월경자와 도망자를 체 포하여 서로 교환하기로 약정했으며, 아울러 강을 넘어 들어온 조선인 에게 도문강 이북과 해란강 이남 지역에 개간을 허가하는 조치도 함께 ▲ 조선족의 모습. 이루어졌다.그 이후 한일합방과 토지사업으로 농토을 강탈당한 농민들이 만주로 대거 이주하였으며, 만주에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세운 일본은 이 지역에 대량으로 개척이민을 보냈다. 그 뒤 8.15과 6.25를 거치면서 인구의 이동이 있긴 하였으나 커다란 규모는 아니었다. 이러한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아직도 두만강 가까운 곳에는 함경도 출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흑룡강 북쪽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출신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아직까지 자기 출신지역의 언어와 풍속을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조선족은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숫적으로는 약 10위에 해당하지만 항일무장투쟁과 중화인민공화국 건립과정에서 차지한 정치적 지위로 인해 건국 후 얼마되지 않은 1952년 자치주를 설립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치주의 설립은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최초이어서 중국 내에서의 조선족의 정치적 지위를 말해주고 있다. 이런 정치적 지위 뿐만 아니라 중국동포들은 가장 높은 교육열을 가지고 있어서 그 어느 소수 민족보다 뛰어난 교육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1990년 중국의 한 조사통계를 보면, 한족 여성 중 그 교육정도에 관계없이 교육을 받은 여성이 1,000명 중 635.6인으로 나타났고, 조선족은 795.9인, 만주족이 730.7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중국에서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이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같은 민족인 우리가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그들을 우리와 차별화시키겠다는 배타적 우월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배타적 우월의식이 우리나라의 보편적 의식으로 퍼져나가기 전에는 조선족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재미동포, 재일동포와 마찬가지로 중국동포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처럼 배타적인 우월의식을 가지게 된 동기가 미국이나 일본에 살고 있는 선진국의 해외동포들을 대하는 의식과는 달리 단순한 경제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중국동포에 대한 우리의 편협되고 경제주의적인 민족의식은 깊은 반성을 해야만 할 것이다.아직 우리에게 충분하고도 자세하게 보도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늘어가고 있는 북경 및 기타 한국인의 진출이 많은 지역에서의 중국동포와 한국인의 반목, 심지어 한국인에 대한 테러행위는 위와 같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드러내 보인 우월의식과 중국동포에 대한 차별대우, 그리고 중국에서 우리가 취하고 있는 무분별한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문제가 되었고 지금도 저질러지고 있는 중국동포 취업 사기 사건, 위장결혼 사기사건을 보면 우리가 그들의 가슴에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몇 년전에 일어났던 원양어선 선상 살인사건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워낙 처참한 사건이었고 살인이라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기에 모든 여론은 그들을 매도하였고 또 그러기에 충분했지만, 외항선에 승선하기 위해서 그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져가며 겨우 획득한 승선 기회였으나, 같이 승선한 다른 민족 선원보다도 더 심한 차별대우와 모멸을 감수해야만 했고 급기야는 모든 것은 잃어버릴 수도 있는 하선명령을 받고 말았던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 불행한 사건 역시 이제까지 잘못 변화해 온 우리와 중국동포와이 관계가 낳은 비극이구이동으로 인한 소수민족 인구비례는 크게 변하고 있다. 예컨대, 자치구의 북쪽 지역 인구 80%가 이미 한족이며,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시는 이미 전 인구의 90%가 한족이다. 더욱이 추정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 보다 더 많다고 하는 타림유전이 있는 북쪽은 내륙의 한족 기술자와 노동자가 대거 이동함으로써 비록 이전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나아졌다고 할지라도 한족에게 보이고 있는 위구르족의 거부감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중국 정부는 신강지역의 소수민족 문제를 다루면서 분리 독립에 대한 강경 진압 정책과 경제발전이라는 채찍과 당근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주로 경제발전을 도모함으로써 그들의 분리 독립 요구를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소수민족 거주지역에 완충지역을 설정함으로써 분리정책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완충지역의 설정에 이용되고 있는 민족이 곧 신강의 중심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몽고족이다. 신강지역에서도 가장 비욕한 천산(天山)초원에 거주하는 이들은 본래 징기스칸을 따라 유럽을 정복했던 군인들이었다. 동유럽에 살고 있던 그들은 원나라의 쇠퇴로 약소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자 청나라때 회귀를 청원하였고 강희(康熙)황제가 이를 허락한 결과 역사상 보기드문 민족이동을 통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신강 북쪽과 신강 남쪽을 격리시키는 완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경제적 과실이 큰 북쪽 신강 지역의 위구르족은 오랜 역사동안 대물림해온 뛰어난 사업적 수완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뛰어들고 있어 분리 요구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2) 티벳 자치구의 민족문제티벳자치구는 중국의 서남부 변경, 청장고원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자치구 역시 서남쪽으로 인도, 네팔, 시킴, 부탄, 미얀마 등과 국경을 접경하고 있다.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합병되었고, 1965년에 정식으로 티벳자치구가 설치되었다. 이 지역의 전면적은 약 120만㎢이며 인구는 459만 명이다. 그 중 티벳족이 209만 이상을 것이다. 개괄적으로 이야기 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① 소수민족 지구의 소수민족과 한족간의 긴장 관계역사적으로 부단한 병합과 이주, 최근에 들어와서는 중국정부에 의한 의도적인 조치로 한족과 소수민족이 함께 살게 된 지역이 많이 있다. 이 사실 자체로도 서로간의 충돌이 일어날 소지가 많다. 게다가 중국인, 특히 한족들이 갖고 있는 한족 우월주의로 인하여 소수민족은 심리적으로 한족에 의해 압박을 받아 왔다.② 종교신앙의 차이한족의 전통종교와 소수민족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중국이 추진한 무종교신앙운동은 소수민족의 종교를 보존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무형중의 종교탄압이 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매우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지구상에는 종교의 차이로 인해 같은 민족끼리도 피를 흘리는 상황이 있는데, 하물며 한족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 자신의 종교신앙과 이에 관련된 민족문화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③ 정치. 경제의 불평등중국의 정치나 경제활동에 영향력 있는 위치로 참가할 수 있는 소수민족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소수민족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소수민족의 대표자들에게 국가간부의 직책을 주지만. 결국 이들은 공산당에 의해 임명되고 통제되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의 민족을 위해 뛴다고 보기 힘들다. 이들은 자신의 민족들에 의해 민족배반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민족 이익과 공산당의 이익이 충돌이 되는 경우, 공산당을 위한 이익을 민족 이익에 우선시 하고 있다. 이런 불평등감은 곧바로 중국공산당에 대한 반감으로 변한다. 동시에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들은 줄곧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된 지역이었다. 중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남쪽 해안 지역 우선의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갈수록 이들 지역과의 생활수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④ 세계정세의 변화주변국가들의 변화가 이들 소수민족의 분리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전후 소련의 해체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몇 개의 이슬람국가가 탄생하였다. 이들하였다.
    인문/어학| 2004.03.29| 21페이지| 2,500원| 조회(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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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급붕괴- 에세이
    Ⅰ.「학급 붕괴」 그에 대한 이야기..일본의 아사히 신문사가 엮은「학급붕괴」책은 1998년 이후의 일본 내의 초등학교의 학급붕괴 상황에 대한 기사를 모아 놓은 것이다. 과연 일본의 급성장과 풍족함 그것의 기저를 이룩하게 한 교육의 기둥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함으로써 현재의 교육에 대한 반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자 한 의도가 있다고 보아진다. 여기에서는 학급왕국으로 버텨왔던 일본의 학급은 이제 교사 한사람으로서 통제가 더 이상 되지 않는 상황이며, 아이들은 각자의 자아의 두드러짐으로 인하여 한 학급으로 지금껏 누려왔던 안정과 융화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됨을 문제시하고 있다.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원인을 파악하자면, 아이들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교사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나 친구관계에서도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학생도 주위의 영향을 받아 동조한다. 반 편성에 의해 학급이라는 ‘컵’에 쌓이는 아이들의 스트레스 수위가 방법에 따라 다르며, 이것 또한 교사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옛날의 고민은 생활 보호라든지, 물자 부족으로 인한 것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풍족함으로 인해 언뜻 보기에 형태가 없는 내면의 고민이 가해져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 자신도 그것을 좀처럼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주위에 전할 수 없어 초조해하고 있다. ‘풍족해진다’는 것은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의 종류 역시 많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역설한다.학교가 ‘학급 붕괴’를 수수방관하고 있어도 되는가 하면,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선생의 말은 들어야 한다”라는 선생 측의 전제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일방적인 강요에 불과하다. 선생은 상하 관계에 의존하지 말고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다양화되고 중층화 된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교사와 1 대 1 의 인간관계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을 주시했을 때, 담임 혼자서 아이들을 통솔하고 자기가 가장 훌륭하들의 아이들에게 시대를 기준으로 한 노스탤지어로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를 주시하여 아이들과 더불어 계속 생각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결론지어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가깝고도 먼 일본의 교육 내의 학급붕괴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인식과 공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교생실습 4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명심해야할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은 학급붕괴의 심각한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미리 기우로써 언급해 둔다.Ⅱ. 교육 현장에서의 아이들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교생일기 5(5월 12일)월요일 아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래서 참.. 일어나기도 힘들고..겨우겨우 챙겨서 학교를 갔다. 왠걸~~ 애들이 아침자습시간에 너무 소란스럽고, 떠든다.선도부장인 경원이 마저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에궁~“경원아.. 애들 쩜 조용히 시키자..” “싫어요.. 쌤이 시키세요..”“경원아~~ 앙 ㅜ.ㅜ ” 그러면서 경원이의 어깨를 살짝 애교(?) 스럽게 밀쳤다.나중엔 이 행동 때문인지 애들이 나를 “변태 쌤~” 이라고 민망하게 놀린다.ㅡ.ㅡ; 진짜 애들 다루기 힘들다!애들한테 상처 이따만큼 받고, 그냥 교무실로 내려왔다. 헉~우리 선생님 곁의 전금영 선생님께 볼멘소리로 “애들이 너무 떠들어서 상처받았어요..”그랬더니 “전 가끔씩 애들이 너무 떠들면, 명상을 시키죠. 눈감으라고 하면 조금 나아져요. 마음은 항상 열어두시고, 여리셔도 되지만, 겉은 갑옷을 입고 있어야 돼요. 안 그러면 작은 상처에 쉽게 마음을 닫게 되니까.. 갑옷으로 상처가 나도 괜찮도록 말예여^^*” 네~ 이제서야 조금 맘이 풀린다.담임 선생님께서 조례에 들어가셔서 “너희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살짝 보니까 교생선생님 계신데도 떠들더라. 맞지? 맞지 경원아??” 그러시니까 애들이 “네.. 떠들었어요..”그렇게 솔직하게 대답을 한다. ^^; 아이들의 순진함을 그제서야 다시 느낀다. 조례를 나오시면서도 선생님께서 “애들이 착하고 순진해요. 자기들이 지각했다고 아마 그 여파도 있었으리라. 예상이 되는 바였다. 선생님께선 착한 아이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우시고, 성민이와 같이 조금 유별난 구석이 있는 아이에겐 꽤 엄격하신 듯 하다.나는 아이가 2교시 마치고 학교를 나갔음을 종례시간이 돼서야 알게되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께서 성민이가 반에 오면 문을 걸어놔! 라고 하신다. 아이가 제 발로 나갔으니 못 들어 온다고 강경하게 아이들에게 주의를 시키신다. 나는 오늘 성민이에게 조금 미안한데.. 내일부터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이다. 물론 나 때문에 전적으로 학교를 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아이가 자기 반 교생한테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얼마나 창피해 할까가 걱정이다. 제발.. 그래도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 이 시기의 예민한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좀 더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교생일기 14(5월 23일)우리 반 아이들과 첫 수업을 하였다.오늘 경원이가 3교시에 수학 시간에 불만을 가지고, 뒷문 유리창을 깼다.쉬는 시간에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유리컵 같은 것이 깨졌겠거니..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업 들어가기 전에 잠깐 나와보았더니, 우리 반 앞에 아이들이 웅성거리면서 서 있었다. 놀래서 다가가려니 아이들이 말렸다.승리가 보지 말라고 그러고.. 양현이도 그냥 담임선생님께 얼른 가보라고만 한다.정신 없다..담임선생님께 갔더니 이미 다른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고 계셨다.첨엔 영어시간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2반 아이들이 복도에서 경원이가 손이찢어졌다고 그러고, 수학시간에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해준다.수학선생님은 작은 체구에, 나이도 어리게 보이시는 분이시다.그래서 전에 한번 우리 반에서 수학 선생님 예쁘지 않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승리가 말하길 뭐가 예쁘냐구.. 성격이 안 좋다구.. 그러는 것이었다.아이들을 다루기에 어리셔서 그런지 선생님은 항상 큰 매를 가지고 다니신다.그리고 지난 자습 때 보니 중간 고사 성적을 가지고, 재시험도 치 떠들고 있다. ㅡㅡ;애들을 조용히 시키다가 지쳐서 그냥 화가 난 체 그냥 수업을 밀고 나갔다.아니.. 그냥.. 나에게 배당된 시간을 위해 혼자서 수업을 한 셈이다.쉬는 시간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좀 더 자중하지 못한 것하며 너무 속상했다.물론 성원이는 수업에 너무 열심히 대답을 했고, 우성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있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전체 아이들한테 실망이었다.정환이는 책보다는 나를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민망할 정도였다.암튼 열심히 한 우리 반 아이들한테는 정말 미안할 뿐이다.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도 전에 한 3분 정도 일찍 마쳤다.그리고 그냥 정민이의 인사를 받고 나왔다.아이들도 어느 정도 긴장한 눈치다.종례는 특별한 날이니 만큼 선생님께서 하셨다.청소시간에 애들이 조심조심 눈치를 보는 듯하다.힘도 없고, 맘도 상해서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아무 말도 없이 그냥 힘없이 교탁에서 서 있다가 나왔다.승리가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준다.그래서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니 애들이 쫄았다고.. 그런다.암튼 많지도 않은 시간에 참.. 오늘 사건은.. 섭섭하고.. 아쉽고..후회가 많은 날이다. 내일은 최선을 다하리라.위의 글은 교생으로 나간 한 달 동안 매일 쓴 일기의 일부이다. 교생선생님의 신분으로 쓴 글이라 아이들과 선생님의 중간의 입장에서 보는 입장이었다. 첫 번째 일기에서 학생부 선생님께 혼이 나서 학교를 나간 우리 반 성민이는 2학년 짱이다. 물론 그 다음날에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등교했었다. 학교의 엄한 선도지도는 아이에겐 묘한 자극의 형태로 다가가는 듯 했다. 두 번째 일기의 경원이는 우리 반의 선도부장이다. 우리 반 아이들을 처음 만났던 아침 자습시간에 아이들은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떠드는 아이들은 경원이가 이름을 불러 조용히 시키곤 했었다. 어느 정도의 소개를 마쳤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일본 내의 학급붕괴의 상황은 엄연히 우리와는 처지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중학교에서의 교생 실습을 통해 내가 학교여 이러한 모습이 바로 열린 교육이 만든 교실의 모습이라고 하셨다. 교육의 체제가 우리 때와는 당연히 다르다. 그러니 아이들의 모습도 어른이 된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민이가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학교를 뛰쳐나간 것은 앞서 말한 학급붕괴의 사소한 이야기로 치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의 저자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성민이의 이야기도 이 책에 실릴지도 모른다. 이후에 관찰한 성민이는 예의가 바르고, 어쩌면 어린애다운 모습을 더 많이 가진 그 나이의 평범한 아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자기들끼리의 서열과 권력이 존재함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된 이후에 지켜본 성민이는 자신의 감정과 나이에 솔직한 반항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감정의 절제가 필요할 뿐, 그것에 대한 단순한 화의 표현이었지 교사에 대한 절대적인 반항이라거나 무시의 표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성민이의 도덕률에 따르면 말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을 어떻게 감사하는지 그 방법을 안다. 내가 교생으로써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관심을 표현하면 곧 그에 대한 친근함을 표시하였고, 예의바르게 행동할 줄도 알았다.분명히 중학교의 교실에서 종이 치고 나서도 아이들이 제대로 수업준비가 돼 있지 않고, 돌아다니고 하는 것은 목격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고는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아이들은 예전의 절제된 수업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질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아이들은 우리와 코드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두 번째 일기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 경원이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충분히 학급붕괴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오히려 성민이의 경우보다 더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 아이였기 때문이다. 말투에서 늘 누군가에게 욕구불만의 표현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왜요? , 뭘요?
    교육학| 2003.07.15| 6페이지| 2,000원| 조회(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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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대안학교에 대해(열린학교) 평가A좋아요
    1. 들어가며열린학교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는냐의 문제에 대하여 일단은 과제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의 본인과 같은 오개념을 가질 이들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열린교육과 대안교육의 차이점과 여기에서 열린학교라는 의미의 대안학교 제도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념 및 교육적인 시사점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를 서술해보도록 하겠다.대안과 열린 교육의 차이는 그 비교 잣대가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이념적 측면에서 볼 때와 목적과 내용과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두 교육의 차이점과 공통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대안교육은 기존의 학교교육 체제의 문제점과 비판을 극복하고 교육의 본질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보는 한편, 열린교육은 기존의 폐쇄적인(전통적인)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다양하게 실현시키는 일종의 교육과정 상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열린학교는 대안교육의 일환으로 학교 밖의 학교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열린교육과의 개념상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하의 모든 표현은 대안학교라고 하겠다.2. 학교가 가진 모순 극복을 위한 노력 : 대안학교의 출현과 배경종래의 학교체제와 급격한 사회변화 사이의 부정합 현상에서 비롯된 '학교붕괴'나 탈학교 담론에서 비롯된 새로운 변화의 일차적인 증상은 학교 밖에 다양한 학습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야학이나 공부방과 같은 학교 밖의 학습 공간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새로 생긴 학습 공간은 오히려 학교에 싫증을 느끼고 그곳과는 다른 내용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학교에 대한 염원이 어느덧 혐오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이를 주도하는 사람들도 학교 안의 사람들 즉, 교사보다는 학교 밖의 사람들 학부모, 사회운동가 등이었다.우리나라에서는 한 여성운동 집단에 의해서 1986년부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삶과 관련된 지식과 지혜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어린이, 함께 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는 어린이'를 이상으로 삼고 어른과 아이, 교사와 학생, 남자와 여자의 차별을 철저하게 배제한 캠프가 시도되었다. 모든 것을 아이들이 자치적으로 꾸려가도록 하였다. 이러한 선구적인 시도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90년대에 들어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와 한국사회 내부의 변혁운동 퇴조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소집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 새로운 교육적 실험들은 대체적으로 이와 유사한 경향을 띠었다. 일군의 교회 관계자들이 잇따른 중고생들의 자살 현상을 지켜보면서 1990년에 시작한 '다솜학교'나 젊은 교사와 예비교사, 또는 청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 활동과 풍부한 감성을 길러주고자 시작한 민들레학교(1993), 자유학교 물꼬(1993), 따로 또 같이 하는 학교(1995) 등이 그러하였다.또 이 무렵에는 구태의연한 학교교육을 보완하기 위하여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광명에서 시작되어(1992) 성남, 부산 등으로 확산된 '창조학교'였다. 여기에서 학부모들은 방과후 또는 주말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맛보지 못한 다양한 창의적 활동과 과학 실험,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체험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아이들의 호의적 반응은 물론 눈에 띄는 지적 정서적 성장은 '비전문가'에 의한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학교 밖의 '비전문가'에 의한 다양한 교육적 시도들이 확산되면서, 차츰 학교교육의 보완을 넘어 그 자체로 대안적 성격의 교육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민들레'나 '물꼬'처럼 캠프를 위주로 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대안적 성격의 정규학교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는가 하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에서 발전한 성남의 '여럿이 함께 만드는 학교'(1996)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면서, 그 나름의 완결성을 지향하는 '학교 밖의 학교'를 모색하였다. 또 안산의 장기 가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들꽃 피는 학교'(1994)는 교육의 사각지대를 메울 새로운 개념의 학교였다. 즉,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교사와 아이들로 구성되는 안정된 가정을 갖도록 하는 한편, 그들 나름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교육기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당국의 지원 없이 다수의 자발적 후원자들과 헌신적인 신앙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이상과 같이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를 모색하는 개별적인 시도들은 1995년이 되면서 횡적인 연대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존 학교 제도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 이른 바 '대안학교'가 최초로 등장하였다. 1997년 3월에 개교한 경남 산청의 '간디청소년학교'가 그것이다. 비인가의 중고등학교 과정인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중에서 고1까지 모두 27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모범생 출신이었으며,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온 것이었다. 학교 졸업장과 대학 입학 준비가 지상 과제인 우리 사회에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학생과 학부모가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했다. 기존의 학교에 대한 '불만'이 이제는 '거부'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거부' 현상은 90년대 후반에 오면서 가정학교(home-schooling)나 자퇴생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졸업장은 더 이상 열악한 시설과 경직된 수업 분위기, 체벌과 같은 비인간적 통제를 참아내도록 하는 힘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다양한 대안적 학습 공간의 출현과 최근 보편화되고 있는 인터넷 공간 활용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학교 울타리를 쉽게 넘을 수 있게 하고 있다.새로운 교육적 시도들이 종래의 엄격한 제도적 틀 속으로 재흡수되지는 않으리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은 이미 기존의 학교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난, 새로운 사회의 교육을 예고하는 강력한 징후이자 단초이기 때문이다. 그 징후의 시사점을 살펴본다면,첫째, 무엇을 배운다는 의미가 예전과 다르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배워야 할 지식이란 없다. 자신의 삶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곧 배워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답이나 점수, 서열화가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느끼고 향유하는 것이다. 둘째, 그러다 보니 교육이란 곧 학습이며, 따라서 학습자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사와 학생이 늘 수직적으로 분리될 필요도 없다. 어느 한 분야에서 학생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교사일 수 있다. 셋째, 화폐라는 대가 없이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된다는 것은 공동체적 삶을 의미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사회는 원자적 개인주의를 극복한 사회이며, 소규모 범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사회이다. 물론 이 때의 범위는 굳이 지역적 공간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이러한 징후들이 이윤과 지위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실 사회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가는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은 현실 사회의 추함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의 희망이고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 젖어 사는 우리라고 해서 이러한 문제를 '그들'만의 것으로 제쳐둘 만큼 무뎌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현재의 학교교육이 해체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이에 한 발 앞서 새로운 '교육 문법'을 시도하고 있는 그들을 주목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기존의 학교의 틀을 넘어 새로운 학습사회를 실천하고 있다.3. 나오며어떤 교육이 가장 바람직한 교육일까? 그것은 내용의 문제일까, 방법의 문제일까 아니면 제도의 문제일까? 최근 우리 사회의 '학교붕괴' 현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란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드는 의문이다. 어쩌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확연히 구분되고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해 온 기존의 학교체제는 더 이상 최선의 교육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기존의 학교의 틀을 벗어나는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일단은 작년에 INC라는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 자유지대 솔 에서 menter(멘터-교육의 주고받음을 의미하는 지도자라는 용어)로서의 짧은 경험을 통하여 생각을 전개하도록 하겠다. 작년 4월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하여 inc 센터를 찾았다. 그곳은 여러 가지의 활동을 하는데, 청소년 부분에 있어서 프로그램 일환으로 대안교육을 시도하고 있었다. 먼저 한달이었지만 그 값진 경험으로 안 김경묵(고2 자퇴)이라는 아이는 내게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배운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을 주는 학생으로 기억이 된다. 지금은 서울에 가서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용기가 있는 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를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얌전해야하고, 튀면 학교생활에서 불리해지는.. 그러한 동질성을 요구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학교 교육을 통하여 우리가 찍어내는 붕어빵과 같은 똑같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회의감을 진정으로 가져보았던 것이 경묵이를 만나면서였다. 나에게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줬고, 나를 선생님과 같이 뜻깊은 위치로 이끌어가게 한 아이가 바로 녀석이었다. 나의 꿈에 대한 나만의 책임감을 갖도록 만들어 준 경험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적당한 표현이 없어 그 학생을 나만의 애칭인 녀석 이라고 칭하겠다.)
    교육학| 2003.07.15| 4페이지| 1,5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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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교육과 교육자 평가B괜찮아요
    목 차{Ⅰ. 들어가기Ⅱ. 교육 현장에서의 아이들 이야기1. 첫 번째 이야기2. 두 번째 이야기Ⅲ.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은 무엇일까?1. 아이들이 변했다2. 교사의 모습은 어떠해야 되는가?Ⅳ. 나오기Ⅴ. 참고문헌Ⅰ. 들어가기교생을 나간 동안「학급붕괴」책을 읽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사가 엮은 이 책은 1998년 이후의 일본 내의 초등학교의 학급붕괴 상황에 대한 기사를 모아 놓은 것이다. 과연 일본의 급성장과 풍족함 그것의 기저를 이룩하게 한 교육의 기둥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함으로써 현재의 교육에 대한 반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자 한 의도로 쓰여졌다. 여기에서는 학급왕국으로 버텨왔던 일본의 학급은 이제 교사 한사람으로서 통제가 더 이상 되지 않는 상황이며, 아이들은 각자의 자아의 두드러짐으로 인하여 한 학급으로 지금껏 누려왔던 안정과 융화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됨을 화두로 제시하고 있었다.어쩌면 일본의 경제가 급성장하고, ‘풍족해진다’는 것은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의 종류 역시 많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역설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학교의 위기에 대한 힌트는 교사와 학교가 어떻게 스스로를 터놓고 커뮤니케이션을 해 나갈 것인가. 그와 동시에 부모들도 학교나 교사, 그리고 부모끼리 어떻게 관계를 맺어 가는가. 라고 생각한다. ‘학급 붕괴’를 생각하는 것은 학교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명확한 대답은 없다. 아마 이 문제를 접한 모든 이들의 대답이 다를 것이다. 교생 생활을 하면서 바라 본 아이들의 모습과 비교해보면서 과연 우리 교육에서의 아이들, 교사들, 학교의 이야기, 그리고 진정 나의 미래의 모습인 교사로서, 꿈과 같은 교육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Ⅱ. 교육 현장에서의 아이들 이야기1. 첫 번째 이야기교생일기 5(5월 12일)월요일 아침부터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래서 참.. 일어나기도 힘들고..겨우겨우 챙겨서 학교를 갔다. 왠걸~~ 애들이 아침자습시간에 너무 소란스럽고, 떠든다.선도부장인 경원이 마저도 전혀 신경 말하고..”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 속이려고 하거나 그런 것들이 없다. 그래 어쩌면 너희들의 그런 순진함과 솔직한 어린애 같은 모습이 가장 예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1학년 건물로 이동을 하던 중에 성민이가 학생부 선생님께 혼이 나는 것을 보았다. 아이에게 어느새 계속 집중하고 있었음을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성민이는 규칙적으로 조례시간이 돼서야 학교에 왔었다. 금요일에는 선생님께서 성민이를 개별적으로 청소시키시고,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내 말에 아랑곳 않고 결국 선생님을 뵙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아마 그 여파도 있었으리라. 예상이 되는 바였다. 선생님께선 착한 아이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우시고, 성민이와 같이 조금 유별난 구석이 있는 아이에겐 꽤 엄격하신 듯 하다.나는 아이가 2교시 마치고 학교를 나갔음을 종례시간이 돼서야 알게되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께서 성민이가 반에 오면 문을 걸어놔! 라고 하신다. 아이가 제 발로 나갔으니 못 들어 온다고 강경하게 아이들에게 주의를 시키신다. 나는 오늘 성민이에게 조금 미안한데.. 내일부터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이다. 물론 나 때문에 전적으로 학교를 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아이가 자기 반 교생한테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얼마나 창피해 할까가 걱정이다. 제발.. 그래도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 이 시기의 예민한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좀 더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2. 두 번째 이야기교생일기 14(5월 23일)우리 반 아이들과 첫 수업을 하였다.오늘 경원이가 3교시에 수학 시간에 불만을 가지고, 뒷문 유리창을 깼다.쉬는 시간에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유리컵 같은 것이 깨졌겠거니..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업 들어가기 전에 잠깐 나와보았더니, 우리 반 앞에 아이들이 웅성거리면서 서 있었다. 놀래서 다가가려니 아이들이 말렸다.승리가 보지 말라고 그러고.. 양현이도 그냥 담임선생님께 얼른 가보라고만 한다.정신 없다.이 근처에 앉아서 산만하게 떠들고,양현이와 자리를 바꾼 광남이는 앞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다. ㅡㅡ;애들을 조용히 시키다가 지쳐서 그냥 화가 난 체 그냥 수업을 밀고 나갔다.아니.. 그냥.. 나에게 배당된 시간을 위해 혼자서 수업을 한 셈이다.쉬는 시간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좀 더 자중하지 못한 것하며 너무 속상했다.물론 성원이는 수업에 너무 열심히 대답을 했고, 우성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있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전체 아이들한테 실망이었다.정환이는 책보다는 나를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민망할 정도였다.암튼 열심히 한 우리 반 아이들한테는 정말 미안할 뿐이다.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도 전에 한 3분 정도 일찍 마쳤다.그리고 그냥 정민이의 인사를 받고 나왔다.아이들도 어느 정도 긴장한 눈치다.종례는 특별한 날이니 만큼 선생님께서 하셨다.청소시간에 애들이 조심조심 눈치를 보는 듯하다.힘도 없고, 맘도 상해서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아무 말도 없이 그냥 힘없이 교탁에서 서 있다가 나왔다.승리가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준다.그래서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니 애들이 쫄았다고.. 그런다.암튼 많지도 않은 시간에 참.. 오늘 사건은.. 섭섭하고.. 아쉽고..후회가 많은 날이다. 내일은 최선을 다하리라.Ⅲ.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은 무엇일까?1. 아이들이 변했다학교의 위기라는 말을 매스컴을 통해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많이 들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아이들과는 강산이 한번 바뀌었을 만큼의 세대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던 차였다. 물론 나이 많이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도 역시 예전보다 스승과 학교에 대한 권위가 많이 떨어졌다 라고 하셨지만 직접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교, 학생들의 관계를 학교붕괴라니.. 식의 끔직한 말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엄연히 일본과의 이야기일 뿐 우리에겐 적용하기에는 아직 그 시기가 아니라는 것도 맞지만, 문화적인 차이와 국민성이라는 사상적인 차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 실릴지도 모른다. 이후에 관찰한 성민이는 예의가 바르고, 어쩌면 어린애다운 모습을 더 많이 가진 그 나이의 평범한 아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자기들끼리의 서열과 권력이 존재함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된 이후에 지켜본 성민이는(우리학교 2학년의 짱이다.) 자신의 감정과 나이에 솔직한 반항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감정의 절제가 필요할 뿐, 그것에 대한 단순한 화의 표현이었지 교사에 대한 절대적인 반항이라거나 무시의 표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성민이의 도덕률에 따르면 말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을 어떻게 감사하는지 그 방법을 안다. 내가 교생으로써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관심을 표현하면 곧 그에 대한 친근함을 표시하였고, 예의바르게 행동할 줄도 알았다.분명히 중학교의 교실에서 종이 치고 나서도 아이들이 제대로 수업준비가 돼 있지 않고, 돌아다니고 하는 것은 목격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고는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아이들은 예전의 절제된 수업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질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아이들은 우리와 코드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경원이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충분히 학급붕괴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 한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오히려 성민이의 경우보다 더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 아이였기 때문이다. 말투에서 늘 누군가에게 욕구불만의 표현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왜요? , 뭘 요? 의 식으로 항상 말을 한다. 그게 처음에는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이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쪽지도 써보고, 많이 말도 걸어봤지만 오히려 무안할 정도로 삐딱하게 말을 하는 것이 내심 나를 더 위축하게 만들었다. 선생님께서는 경원이가 자기 과시욕이 많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서 지켜보면 힘들지 모른다고 걱정해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경원이의 말투에 몇 번 상처를 받고, 결국엔 경원이의 말도는 그 날 이후에 얌전한 고양이 마냥 눈에 띄게 변했다. 나와는 거의 말을 아꼈다. 그렇다고 아이가 아예 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이다. 아이는 나름대로 자기 선에서 절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보여졌다. 교생 마치기 전에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아쉽다는 마음을 먼저 전했다.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서로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이는 예전처럼 내 곁으로 와서는 반말을 하면서, 농담도 하고 여전히 짓궂게 했다. 아이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귀 기우려 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느 곳도 아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말이다. 교사라면 단순히 반항과 삐딱함이 그 아이의 전부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아이들 안의 내면을 천천히, 그리고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함을 그때서야 알게되었다. 이렇게 특정한 경우에 한해 문제아로 인식되어 두드러졌던 모습들이 아니라 이제는 37명 모두 각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만큼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사의 능력은 더욱 무한해야 함을 깨달았다.2. 교사의 모습은 어떠해야 되는가?학생들은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없다 고 한다. 이 말은 수업은 있되 참다운 교육은 없다 는 뜻이다. 아마 이것은 교사의 매너리즘적인 태도와 무사안일주의의 풍조가 교실의 분위기를 좌우한 데 기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인수 지음, 문음사, 「율곡 사랑의 교육이념」, 1997학급에서의 교사의 권위는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학급을 이끌어 가는 교사는 교사 스스로가 노력함으로써 지켜간다고 생각한다. 일기에 묘사되었던 수학 선생님의 경우에 아마 누구보다 열의에 가득 찬 분이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체벌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주 편안하게 보이는 선생님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은근히 수업 속에 집중하고, 통제되어 있는 아이들을 본적이 있다. 수업에서의 자신의 권위뿐만 아니라 학급에서의 학급 담임의 경우에서도 스스로가 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대 1의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순진하고,다.
    교육학| 2003.07.15| 8페이지| 2,000원| 조회(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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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마게스트에 관한 독후감
    책에 관한 독후감 ; REPORT소속 ;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2학년학번 ; 9917601 장지은과목 ; 지역사회 개발론교수님 ; 강성권 교수님제출일 ; 10월 18일 목요일★서 론 ; 리포트를 준비하면서의 동기성의 부여먼저 라는 생소한 책을 교수님이 읽으라고 하시는 데는 분명히 그만한 깊은 뜻이 있으셨다고 본다. 양자론적 입장에서 본 21세기 한국의 길을 모색하는 철학적 사색이 이 책의 주이다. 양자론이라니??? 정말로 나에게는 생소하고, 적응하기 힘든 분야의 주제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의 관점으로 과학적 메시지에서 철학적 문명의 길을 찾아낸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목도 라고 지은 듯 하다. 아랍인들이 천동설을 처음 접하고 나서 "알마게스트(가장 위대한 것)"라는 말로 표현했듯이, 물론 지동설이 나오기 전이지만 그 당시에 천동설은 그만큼 획기적이고 대단한 것이었단 말이다. 그러한 의미로 지금의 저자가 밝히는 인동(人動)설에 그 대단한 이름(알마게스트)을 붙인 것이다. 인간이 신(新) 문명을 위해 움직이고 대비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을 밝힌 것이라고 파악된다. 즉 이것은 인간이 다가 올 시대를 위해 해야할 일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천년의 도래가 이러한 자명한 패러다임을 부여하였고,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우리 청년의 힘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책을 읽게 하셨다고 생각이 되어진다.새 천년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우리나라의 국난(IMF)이나 미국의 '테러'라는 세계적인 비극이나 모두가 우리가 해야하고 알아야 할 무언가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에 일어났다고 본다. 물론 미국의 테러가 남의 집 불구경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불조심해야겠구나"식의 경고성 발언임을 누구나 깨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러한 일들은 우리를 고통과 고난에 힘들어 지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읽게 되는 양서와 철학적 사색은 어떠한 답을 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저자가 이 책를 도와주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기대를 바탕으로 우리를 이 어려운 철학적 사색의 길로 인도하신 교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책을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생각들을 서술하도록 하겠다.★본 론 Ⅰ ; 양자론적인 저자의 메시지 찾기양자물리학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양자물리학은 미시세계의 작은 극히 작은 물질인 전자, 원자 등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이러한 미시적 세계를 연구하는 양자물리학에서 인간의 길을 찾는 그 핵심적인 이유는 문명과 역사와 인간의 길을 이어주는 철학이 아닌 과학적인 모색이 없이는 공허한 울림만이 되고 만다는 동기에서였다.양자물리학의 철학적 표상을 새롭게 세상을 바꾸어 나갈 원리로 보고 있다. ①인간의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미시적인 세계의 독립적이면서, 미 확정적인 가능성을 열 수 있는 한가지의 수단이 된다고 보고 있는 것 ②또한 의지와 의식을 기초로 한 창조와 변화 역시 그 반대로 역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미래의 방향이 현재에 미치는 것과 같은 경우) ③일정한 법칙과 에너지를 갖는 전자에게도 어떤 충격이 가하면 준위에 변화가 있는 양자도약의 상태가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이 그 세 가지의 철학적 표상이다. 그리고 양자물리학의 내포적 '상보성의 원리', '완성과 통일의 원리' 또한 우리가 생각할 거리가 됨을 상기시킨다. 이외에도 원효, 백범김구 선생, 주역 등의 이론과 사상가들의 영향도 책의 주변 배경이 됨을 밝히고 있다.양자문명이란? 양자문명은 양자물리학의 철학적 원리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될 때 출현하는 문명이다. 양자문명은 인류가 지향해야할 지고지선의 문명이며 그 이데아는 조화와 상생·완성과 통일이다. 이 길은 양자론의 상보성의 원리에 있으며,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상보성의 원리야말로 새로 다가올 이데아적 문명을 지칭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서양의 고전적인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양자적인 시각이 조화와 완성의 합일된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양자문명인 것이식의 종속변수이듯이 가시세계인 인류의 역사 또한 인간의식의 종속변수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그렇다면 역사도 소립자의 세계처럼 인간의 의식이 가 닿았을 때 나타나는 집단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역사를 양자역사라고 한 것이다. 스스로를 자기판단력과 자주의지를 가진 역사창조의 주체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양자역사의 주체자가 됨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양자인간이란? 미래의 창조적인 변화를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주체적인 인물을 말하며,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용신; 인간을 비범하고도 창조적으로 변모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양자인간은 양자의지를 풍만이 가진 인물이라고 한다.양자의지란? 인간의 의식활동이 뚜렷한 미래지향적 목표를 가진 연속적인 것이라면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인자(因子)는 '목적론적 사고(思考)'라고 할 수 있다. 목적론적 사고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에서의 의지와 의식구조를 말한다. 양자론적 신념이란 '인간의식이 물질세계의 생성·발전·소멸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의지란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용기를 말한다. 즉 양자론적 신념과 자유의지의 결합 어인 셈이다.용신이란? 저자는 용신의 과정이 없이는 양자인간이나 의인은 탄생될 수 없다고 말한다. 비범하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변모하는 새로운 인간이 되는 과정이야말로 스스로를 빛나게 하고, 한 인간 뿐만이 아니라 민족과 시대의 역사까지 밝힐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인간혁명의 과정이다.★본 론 Ⅱ; 양자론을 바탕으로 저자가 남긴 의미와 그에 대한 나의 견해이상의 양자론적인 저자의 풀이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양자론적인 용어의 풀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대서사시의 서막에 불과하다. 저자의 큰 첫 번째의 화두는 과연 왜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나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는가? 하는 우리의 시대적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큰 실타래를 풀기 위하여 양자인간, 양자의지, 양자역사, 양자문명과 용신이라는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준 것이다.첫 번째 질의에 관해서는 그의 답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예언적인 이미지의 것들이고, 낙관적인 시선이 묻어있다. 그가 보는 두 가지의 원인 중에, 한가지는 우리나라의 人和(인화)의 실패라는 문제를 꼽았다. 인화를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사람들을 서로 융화하고 합치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라고 본 것이다. 인재는 풍성하되 제대로 써먹지를 못했다고 했으며, 우리네의 인성이 자리 잡지 못해서 좋은 인재를 뿌리내리도록 하는 제도권의 미비함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숨은 속뜻엔 독일의 열린교육의 이념을 실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슈타이너의 말에서 그 해답 있다고 보았다. 새로운 문명의 시대적 사명을 가진 민족이 한국인이며, 그러한 위대한 민족에게 역사의 시련과 고난은 어쩌면 당연하게 있어야 하는 담금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담금질이 안된 민족이 어떻게 시대적 사명을 다하겠냐는 말이다.본인이 낙관적인 분석이라고 보는 데는 이와 같이 만인이 인정하는 선각자를 내세워 우리의 과거의 역사 속에서의 시련과 고난을 당연히 거쳐야할 자명한 단계로 보는 저자의 시각에서 비롯한다. 그러한 논리 속에서의 한국인은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행하기 위한 진지한 목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련의 역사를 가져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시각은 물론 자긍심과 목적의식을 가지게는 할지 몰라도 어떻게 보면 자만심을 심어 줄 수도 있다고 봐진다고 본인은 생각한다.그리고 다음으로 세계의 주역으로 우리나라가 우뚝 설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와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이다. 그 물음에 대하여 조건 세 가지를 갖춘다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① 천시(天時) ② 지리(地利) ③인화(人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천시란 '세계 역사 발전의 주류가 태평양과 동북아시아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이며, 지리란 '어 돈·사람·물자가 몰려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며, 인화란 '인재를 양성하고 그들을 화합시켜 한국을 선진국으로 밀어 올릴 정치력과 제도'를 말한다. 천시의 시대는 아직 완전히 도래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천시의 시대는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이 되는 시점이 될 것이며, 남북의 통일 묘합이 이루어 진 때를 말한다. 그리고 지리 역시도 이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외국으로의 넓게 사업과 외교가 추진되는 시기를 완성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인화는 1984년부터 1988년에 이르는 민주화의 정착화 단계에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이모든 천·지·인이 합치되기 시작하는 단계에 IMF라는 그물에 걸린 것이다. 이것은 민주화라는 시대 명제를 왜곡한 잘못으로 결국은 인화로 인한 실패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러하기에 시대 정신을 왜곡함으로써 역사도 마찬가지로 추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론은 천시와 지리, 인화를 절묘하게 조화하는 것만이 우리가 세계의 주역이 되는 방도이며, 거기에 우리의 민족적 높은 이상을 플러스시킨다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 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양자역사론이다.두 번째의 저자의 화두는 대의문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다. 그의 의문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혼란에 빠지며,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는 그 방책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눈에 드러나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의 마직막 힌트는 바로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나머지 우리는 다른 것에 더 열중하여 문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이 풀어야 할 제일 처음의 문제이며, 그것도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를 제일 먼저 풀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의 화두에 비하여서는 의외로 쉽게 답이 찾아지는 듯했다. 용신론의 이름으로 인간은 비범하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변모해야 하며, 변모함으로써 스스로를 버리고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버리고 변화혁명하지 못한다면 결국에 민족도, 나라도, 인류의다.
    독후감/창작| 2003.03.29| 5페이지| 1,000원| 조회(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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