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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론]조지 오웰의 `1894년`
    2006. 5. 23 석사과정 2학기 이 신 우『1 9 8 4 년』, 조지 오웰 지음.Ⅰ. 시작하며조지 오웰의 본 소설의 제목 ‘1984년’은 사실 이 소설이 쓰여 진 1948년을 뒤집어 놓은 숫자에 불과하다. 사실 오웰은 본 소설을 쓰던 당시의 사회보다 훨씬 뒤의 시간적 배경을 상상했기 때문에 막연히 1984년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오웰은 본 소설에서 그의 다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동물농장’에서 묘사한 완전한 전체주의가 성립된 사회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저자는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모든 것이 당이 정한 기준에 의해 움직여야만 하고, 기준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철저한 감시와 통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며 대중은 철저히 자신 고유의 가치관과 본능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회로 풍자하고 있다.본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부에서는 주인공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 즉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과 그 사회 속에서 서서히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제 2부에서는 주인공이 큰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두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실질적으로 체제에 저항하고 자유를 추구하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마지막 3부에서는 결국 당의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결말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Ⅱ. 제 1부제 1부에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 모습은 대표적으로 우리가 최근의 미래의 모습을 다룬 영화들에서 주로 본 ‘어두운 도시의 모습’과 ‘감시’, ‘정보조작’, ‘대중의 감정통제’등으로 나타난다.먼저 당의 ‘감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거리 저편에 한줄기 바람이 먼지와 휴지조각을 날리고 햇살은 눈부시고 하늘은 맑은데도 도대체 사방에 붙은 포스터 외에는 색채란 게 없어 보였다. 검은 눈이 윈스턴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빅 브라더는 그대를 감시하고 있다’면서 을르고 있었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지붕 사이로 스치며 쇠 30초도 지나지 않아 방 안 사람들 반 이상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노성을 지르고 있었다. 2분 째로 넘어가자 ‘증오’는 광적으로 되었다. 윈스턴이 제정신을 얼핏 차리자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고 뒤꿈치로 제 의자의 가늠대를 맹렬히 차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공포와 복수심에의 강렬한 도취, 큼직한 쇠망치로 때려죽이고 싶고, 괴롭히고 싶고, 얼굴을 짓이기고 싶은 욕망이 전류처럼 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뜻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상을 찌푸리고 비명을 지르고 광적 상태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라는 건 등잔의 불꽃처럼 상대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꿀 수 있는, 추상적이고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감정이다. 그리하여 윈스턴의 증오는 한순간 골드슈타인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빅 브라더에게, 당에게, 사상경찰에게로 향한다.특히, 당이 ‘이중사고’를 통한 정보조작과 진실의 왜곡을 통해 대중을 통제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만일 모든 사람들이 당이 하는 거짓말을 믿는다면,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 허구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은 과거를 지배한다.’고 당의 슬로건은 말한다.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말소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것을 현실제어라 했다. 신어로는 이중사고로서 이것은 알면서 모른다는 것, 완전한 진실을 의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심스레 꾸며 놓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 말살된 두 개의 견해를 동시에 갖는다는 것,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다는 것, 논리를 이용하여 논리에 대항한다는 것,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당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다는 것,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는 다시 기억 속으로 끄집어내었다가 곧 다시 잊어버리는 것, 무엇보다 과정 그 자체에 똑같은 과정을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지배계급의 대중의 감정과 생각의 통제에 대한 의도는 새로운 언어 있다. 말살이 불가능하면 그걸 왜곡시키고 더럽히는 것이다.당의 여자들은 마찬가지다. 순결은 당에 대한 충성의 상징으로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다. 쾌락을 주는 성행위는 반역이다. 성욕은 사상죄다.사실 전체 나라의 인구 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계층은 이러한 불합리한 지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대중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의 수단은 결국 대중을 쉽게 무력화시킨다.희망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노동계층이다. 왜냐하면 오세아니아 인구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이 우글거리는 피압박 대중만이 당을 붕괴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이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몇 명의 사상경찰 정보원이 그들 속에 숨어들어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놈들을 잡아서 없애 버리면 된다. 그러나 당의 이데올로기를 그들에게 주입시킬 필요는 없다. 노동자들이 강렬한 정치의식을 갖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전체적인 이념이 없으니 그 불만을 어떻게 달리 해보지 못하고 사소한 투정으로 쏟아 버린다. 당의 슬로건이 표현하듯 ‘노동자와 동물은 자유다’결국 지배계급의 목적은 단순히 대중의 통제를 넘어서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대중의 완전 통일이다.당이 내세운 이상은 보다 거대하고 엄청나고 찬란한 것이다. 완전 통일을 향해 전진하며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슬로건을 외치며 쉴 새 없이 일하고, 싸우고, 승리하며 억압하고, 3억의 인구가 똑같은 얼굴을 한, 전사와 열광자의 나라이다. 그러나 현실은 황폐해가는 구역질나는 도시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밤낮 양배추와 쓰레기 냄새가 가는, 임시변통으로 땜질한 집안에서 구멍 난 구두를 신고 어슬렁댈 뿐.이러한 통제되고 감시받는 모순된 전체주의 사회에서 주인공인 윈스턴은 서서히 갈등하고 번민하기 시작한다.그가 지금하려고 하는 일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법은 아니었지만 발각만 되면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노동 25년형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미래를 향해그는 격렬한 희망에 넘친다. 누가 알랴? 당은 그 내부에서부터 썩고 있단다. 불굴의 투쟁과 부정에 대한 예찬은 부패를 감추는 가짜다.인간의 사랑뿐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 무차별적인 단순한 욕망, 이것이 당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힘이다.옛날에는 남자가 여자의 육체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또 그것만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순수한 사랑도, 순수한 욕망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 공포와 증오로 뒤섞이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든 순수할 수가 없다. 포옹은 전쟁이었고, 절정은 승리였다. 그것은 당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요, 정치적인 행위인 것이다.성본능은 당의 통제범위를 벗어나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므로 가능한 그것을 파괴시켜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성욕을 박탈하면 히스테리가 생겨 이를 전투열과 지배자 숭배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히스테릭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당)은 부모로서의 본능도 똑같은 간계로 이용한다.가족제도는 실제로 말살할 수 없고 실상 옛날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사랑하라고까지 한다. 반면에 아이들은 조직적으로 그들 부모와 대립하게끔 해놓고 부모를 정탐해서 그들의 과오를 고발하게 한다. 가정은 결과적으로 사상경찰의 연장이 되었다.당은 조직적으로 가족의 유대를 약화시키면서 가족적 충성을 호소할 수 있는 이름으로 당의 지배자를 부르게 한다.당은 결국 이러한 본능의 억제를 통해서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힘을 모두 빼앗아가고 있으며, 단순한 충동이나 감정은 쓸모없다고 설득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 세대 전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했던 개인적인 관계와 슬픔이나 위로와 같은 행동 역시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당이나 나라·사상에 충성할 필요도 없고 서로의 인간에 대해서 충실했다.서서히 윈스턴은 줄리아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게 되었으며 자신들만의 장소를 가지길 원했으며, 줄리아와의 상의 후에 자주 가는 상점의 2층 방을 빌리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동의했고 그곳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 오브라이언에게 찾아가 당에 대한 저항운동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저항단체의 책이라 알려진 ‘검은 책’을 읽게 된다.마침내 기대했던 메시지가 왔다. 그의 전 생애가 이 일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그는 조만간 오브라이언의 부름에 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일이 될는지 오랜 후가 될는지는 모른다. 그는 생각을 말로 옮겼지만 이제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애정성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것을 각오했던 것이다.윈스턴은 가슴이 너무 뛰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린 단행했다, 마침내 단행했다는 것뿐이다. “저희는 어떤 음모가 있으리라고, 당에 반항하는 어떤 비밀단체가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희도 거기에 가담해서 일해 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당의 적입니다. 영사의 강령을 믿지 않습니다. 사상범이죠, 그리고 간음자들이고.”묵직하고 검은 책이 나왔다. 윈스턴은 읽기 시작했다.제 1장 무지는 힘제 3장 전쟁은 평화그러나 결국 윈스턴과 줄리아는 ‘검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한 동시에, 당의 계략에 걸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왔구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들은 꼼짝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만 보며 서 있었다.그는 죽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복도에서 다시 가벼운 발소리가 났다. 채링턴 씨가 방에 들어왔다.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태도가 갑자기 점잖아졌다.윈스턴은 그것이 텔레스크린에서 들은 목소리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그는 확인하듯, 윈스턴을 한번 쏘아보더니 다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딴판으로 달라졌다. 서른 댓쯤 된 빈틈없고 냉정한 얼굴이었다. 윈스턴은 평생 처음으로 사상경찰관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Ⅳ. 제 3 부당의 계략에 걸려 붙잡힌 윈스턴은 결국 오브라이언의 고문에 견디지 못하고 당의 이념에 복속하게 되는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오브라이언은 당의 슬로져.”
    독후감/창작| 2006.06.07| 8페이지| 3,500원| 조회(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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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화이론]마이클조던, 나이키, 지구자본주의
    2006. 5. 2『마이클 조던, 나이키, 지구 자본주의』, 월터 레이피버 지음.Ⅰ. 시작하며저자는 본 책을 통해서 전반적으로 마이클 조던이 어떻게 이 시대의 신화가 될 수 있었는지를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마이클 조던은 운동선수 이상이며, 한 시대를 그저 상징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표하며, 반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구축해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시대는 미디어 혁명의 시대이며, 나이키와 같은 초국적 기업, 나아가서는 미국이 전지구적인 경제적·문화적 지배력을 구축해나간 시대이다.저자는 21세기가 1980년대의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혁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다소 기술중심적인 입장을 펴며, 역사학자답게 세밀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펼쳐나간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서술 과정에서 우리는 스포츠에 관한 흥미롭지만 어두운 면들을 만날 수 있다. 예들 들어, 마이클 조던과 같은 흑인 스타들의 탄생으로 흑인의 지위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고, 나이키 운동화 때문에 살해당한 미국의 청소년들이 있었으며, 초국적 기업들의 아시아 진출로 노동착취가 벌어졌다. 또한, 조던 자신도 화려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추하고 난처한 면까지 숨김없이 드러내야 했다. 저자가 ‘파우스트의 거래’라고 꼬집은 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미디어의 양면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었다.저자는 역사 연구에서 빌려온 평이하면서도 꼼꼼한 서술에 의지하여 경제적 지구화의 문화적 양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한다. ‘자본 대 문화 간의 대립’을 구체적인 맥락 하에 바라보는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의 지배가 확장됨에 따라 전지구적 문화의 획일화(이른바 ‘맥도널드화’)라는 현상이 수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고유한 전통의 끊임없는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행동주의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이 입고 있는 대학 티셔츠와 신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가 불쌍한 제3세계의 아이들이 하루에 1달러밖에 받지 못하고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런 운동은 시민 사회의 지구 주요 경쟁자였던 아디다스와 리복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 후 1986년 ‘저스트 두 잇’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냈으며, 87년부터 89년 사이에 나이키의 매출은 두 배가 되어 17억 달러에 이르렀다.나이키와 조던은 운동선수를 대신한 전문 대행사였던 데이비드 포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는데, 포크는 개인적으로 운동선수가 능동적으로 시장에 들어가 매출을 끌어올리고 다른 매출로부터 훌륭하게 수익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선구자가 바로 조던이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은 완벽해서, 나이트가 찾던 바로 그때 조던이 새롭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NBA는 야심차고 창조적인 새로운 총재 데이비드 스턴을 임명했으며, 그는 전지구적으로 프로 농구를 홍보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1987년에 포크는 나이키와 7년 계약을 맺었으며, 필 나이트는 조던에게 1,800만 달러를 주었을 뿐 아니라 에어 조던 운동화 한 켤레 당 인세를 지급했는데 그 인세는 적어도 1,800만 달러는 되었다.나이키는 시장에서 경쟁사들을 다음과 같은 단계를 통해서 밀어냈다. 첫 단계는 가장 눈에 띄고 특히 인상적인 운동선수들과 계약하는 것이었다. 찰스 바클리, 마이클 조던, 보 잭슨 등의 운동선수들은 나이키 전지구적인 광고의 모델들이었다. 다음으로 개별 스타뿐만 아니라 대학 전체와도 계약을 함으로써, 스포츠 팀으로 유명한 학교들은 거액을 받는 대신 거의 독점적으로 나이키 용품을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나이키는 엄청난 규모의 전지구적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여 세계로 진출하였다. 1989년 일본에서 전면적 광고캠페인으로 에어 조던 운동화는 판매 1위가 되었고, 코카콜라와 함께 10대가 가장 원하는 품목 중 하나가 되었다. 1995년에 이르러 외국에 의한 직접 투자는 미국에 이어 중국이 2위가 되었으며, 중국 시장은 매년 8퍼센트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다.스포츠와 광고가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을 연결해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케이블과 커뮤니케이션 위성 같은 하루 24시간 동안 역할 모델이 되고자 노력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조던은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경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이 이유는 경기장은 끊임없이 그의 사생활을 캐는 일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일은 너무 바쁘고 복잡하지만 농구는 나의 탈출구이자 피난처입니다.”라고 조던을 얘기했다.Ⅴ. 새로운 프론티어, 그리고 도심1992년 중반, 마이클 조던, 우승팀 시카고 불스, 미국의 올림픽 ‘드림팀’은 스포츠 세계를 지배했다. 조던의 나이키 광고 덕에 스워시는 전지구에 알려진 상징이 되었고, 필 나이트와 조던은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1년 후 두 사람은 가차 없이 공격을 받았는데, 나이트는 가난한 아시아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허리가 휘도록 착취하여 나이키를 살찌웠다고 비난받았으며, 조던 역시 아프리칸-아메리칸 어린이들로부터 막대한 이윤을 짜낸다고 더욱 더 비판을 받았다. 나이트와 조던에 대한 비난은 1990년에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는데, 이때는 10대들이 새로운 스포츠 의류나 운동화를 갖기 위해 서로 죽인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이다. 1989년 5월 메릴랜드에서 15세의 마이클 유진 토머스는 숲에서 목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그는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다. 신발을 벗겨간 살인자는 에어 조던 운동화를 갖고 싶어 하던 17세 소년이었다. 이 사건의 검사는 “운동 용품에 대해 사치품의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두고 사람들이 서로 죽이도록 만든다면 죄악이다.”라고 지적했다.조던, 나이트, 스파이크 리(에어 조던 운동화를 미화하는 인기 높은 광고를 만들었다)에게 살인에 대한 일정한 책임이 돌아갔는데, 조던은 침묵을 지켰으며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는 “마약 밀매자가 나에게 돈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바에는 차라리 그 상품(신발)을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광고협찬을 멈추지는 않았다. 1990년에 나이키는 “저스트 두 잇” 슬로건이 나오는 광고에만 6,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운장에서 한국인 경영자들이 종업원을 구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나이트 등 투자자들은 미국의 초국적 기업이 비록 적지만 새로운 중산층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점을 즐겨 강조했는데, 1993년과 1994년에 중국의 제조업 임금은 27퍼센트 상승했고, 1995년에는 14.5퍼센트 상승하였다. 이런 비율의 상승은 낮은 수준이었지만, 값싼 노동력이 큰 수익을 준다면, 15억 중국 소비자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이키의 판매대행사들에게는 희망적으로 보였다. 필 나이트는 이 기회를 잡았으며, “중국이 눈을 뜨면 사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예상 못 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중국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1992년 나이키의 미국 외 해외 매출은 10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15퍼센트만이 아시아 국가에서 나왔고 75퍼센트는 유럽에서 나왔다. 두 미국 회사, 리복과 나이키는 미국의 광고 기술과 테크놀로지를 전개하여 한때 강력했던 유럽의 경쟁사인 아디다스와 퓨마를 따돌렸다.옹호자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미국의 부드러운 힘인 미국 문화와 상업의 영향력은 이제 만개했다. 나이키 같은 초국적 기업은 이런 부드러운 힘을 예증했다. 초국적 기업은 미국의 초국적 커뮤니케이션의 지속적인 확산으로부터도 이윤을 얻었다. ABC 네트워크는 독일의 유력 텔레비전 방송국을 손에 넣었으며, ESPN이 유럽 최대의 스포츠 네트워크인 유로스포트의 3분의 1을 지배했다.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가 도전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 매출이 급증함에 따라 나이키와 같은 미국 기업의 광고들이 밀려들었으며 미국의 부드러운 힘이 외국 문화를 압도함에 따라 자크 랑과 같은 비판자의 반대도 별 효과가 없었다.앞에서 언급한 비난과는 관계없이 필 나이트의 야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장 성공적인 초국적 기업 중 하나인 나이키의 회장은 “진정으로 초국적 기업이 되는 여정의 절반밖에 가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조던은 끊임없는 미디어의 관심과 비판에 굴복하기 시록 되어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재단의 비난은 뼈아팠다. 이러한 비난의 한가운데에 서있던 조던은 노동과 임금 문제에 관해 침묵하였지만 야구에서의 좌절도 나이키에 반하는 주장도 피할 수는 없었다.야구의 가을 리그에서 조던이 겪은 좌절은, 겨울에 새로 지은 웅장한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불스가 승리를 거두는 상황과 중첩되었으며, 조던은 떠날 준비가 다 된 것처럼 보였다. 다만 야구에서 떠날 변명만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1994년 야구선수 파업이 벌어지면서 조던은 파업 때문에 야구를 떠나 불스를 떠난 지 17개월만에 복귀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NBA 시즌은 마지막 한 달이 남았으나, 조던의 영향은 엄청났으며, 특히 스포츠 비즈니스 면에서 그러했다. 페이서스의 감독 래리 브라운은 “비틀스와 엘비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던은 농구를 그만 둔 동안 무뎌졌고, 불스 역시 다시 우승할 만한 응집력이 부족하여 1994년과 조던이 종반에 재등장한 1995년에 우승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케팅 열기는 되살아났는데, 조던은 불스로 돌아와서 과거의 23번 대신 45번을 단 유니폼을 입었으며, 45번 유니폼의 판매가 폭발했다. 잠시 야구에 몸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조던은 특히 냉전의 종말과 함께 이윤과 명성과 마케팅 가능성을 무엇보다도 높게 평가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수익성 높은 상품이었다. 따라서 조던과 나이키는 냉전 이후 미국 문화, 미국의 지구화, 미국의 마케팅, 미국의 부, 미국에 본부를 둔 미디어, 미국에 근거한 초국적 기업의 상징이 되었으며, 미국화의 어두운 면이 드러날 때 때로는 이런 미국화의 타락의 상징이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힘은 상상하지 못했던 부를 전보다 훨씬 빨리 창출하는 반면, 그런 부를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그 힘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렬하게, 그리고 수십억 시청자들에게 이런 의문을 던졌다.Ⅶ. ‘20세기 최고의 광고 협찬자’인가, 혹은 ‘교활한 형태의 제
    독후감/창작| 2006.05.09| 18페이지| 4,500원| 조회(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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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소외론]게으를 수 있는 권리
    『게으를 수 있는 권리』, 폴 라파르그 지음.Ⅰ. 시작하며저자인 폴 라파르그는 1842년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프랑스계 유대인 어머니와 스페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861년 툴루스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약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갔다가 파리대학에 편입하여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865년 파리 리애주에서 열린 제 1차 국제학생대회에 참가하여 2년 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던 그는 그 후에 IWMA에 깊숙이 관여하였으며 1866년 2월 의학을 공부하러 영국에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IWMA의 적극적인 조직원이 되어 수차례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면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1868년 파리로 돌아와서는 사회주의 성향의 출판사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저자는 1800년대 후반에 노동을 열정적으로 숭배하는 풍조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꼬면서 그러한 환상에서 노동자 스스로 깨어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라파르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일에 중독돼 있고 일부 자본가들과 유한계급은 끊임없이 강요된 여가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경제학자와 종교인들이 결탁하여 쉽게 속는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주입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뒤집는 것은 어려우며, 단지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환상을 깨고 착취당하고 있는 현실에 도전하여 ‘게으를 수 있는 권리’와 ‘충분한 여가시간’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종교 윤리와 경제 윤리 또는 자유사상이 설파하는 윤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의 무시무시한 결과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Ⅱ.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노동숭배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노동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과 같은 기이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성직자·경제학자·도덕가들은 이처럼 정신 나간 생각에 반대하기보다는 노동의 주위에 성스러운 광채를 드리우고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온갖 형태의 지적 할수록 그 만큼 악행은 줄어든다”라는 요지의 글을 썼으며, 『무역론』의 저자는 나태함을 근절시키고, 게으름에서 생기는 자부심과 독립심을 억제하기 위해 빈민들을 이상적인 “작업장work-houses”에 수용할 것을 제안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이 18세기 박애주의자들과 도덕가들의 이상이었으며, 우리는 그동안 이 최소 노동시간마저도 초과하여 일을 해왔다. 근대의 공장들은 이상적인 교정원(矯正院)이 되어버렸으며 그곳에서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12시간 내지 14시간 동안 강제적으로 일에 시달려야 했다.이러한 강제노동에 따른 불행과 굶주림으로 인한 고통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순전히 프롤레타리아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의 손으로 단란한 가정을 허물어 버렸으며, 불쌍한 여자들은 젖먹이를 안고 광산과 공장에 들어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일하면서 기력을 쇠잔시키고 있다. 어린이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대는 노동의 세기로 불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위의 현실처럼 고통, 불행, 부패의 시기이다.그런데도 이 시기 내내 철학자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노동의 장남인 진보라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구역질나는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1840년 빌레르메(Villerme) 박사는 한창 발전 중이던 자본주의 안에서 공업지대인 알사스 지방의 프롤레타리아의 기쁨을 찬란하게 그렸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1813년 근대 기계 공업이 막 태동하려고 하던 때)에 뮐우즈에 살던 노동자들은 모두 읍과 주변 마을에 거주하는 농민들로서, 거의 모두가 집 한 칸과 약간의 전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5년 알사스 지방을 방문하였을 때 근대의 자본주의 공장이 그 곳을 정복해 버렸으며, 인간의 노동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가진 공장은 노동자들을 단란한 가정에서 끌어내 날이 갈수록 처참하게 착취하고 노동력을 비틀어 짜냈다. “뮐우즈에서는 여름과 겨울 구분 없이 내내 아침 5시 정각에 작업이 시작되어 저녁 8시 정각에 끝난다.” 이리하여 고자를 괴롭힌다 - 을 일으키게 한다. 맹목적인 노동숭배에 사로잡힌 프롤레타리아들은 이러한 비참한 상황의 원인이 노동이라는 사실은 눈치 채지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하고 있다.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지나친 노동 뒤에는 공황이 오는 것을 피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집단 해고와 가난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산업 또한 어쩔 수 없이 파산하게 될 것이다. 제조업자들은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고 상품들이 팔리지 않는다면 만기 어음이 되돌아올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생산해 낸다. 상품뿐만 아니라 자본에도 잉여분이 있는데, 자본가들은 더 이상 자본을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면 자본가들은 담배를 피우며 태양 아래서 한가하게 빈둥대고 있는 행복한 나라를 찾아내 기차선로를 놓고 공장을 세워 그 저주받을 노동을 수입한다.그러나 이처럼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불행은 프롤레타리아들이 기독교 윤리, 경제 윤리와 자유사상가들의 윤리에 내포되어 있는 온갖 편견을 짓밟아 뭉개버릴 경우 즉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 프롤레타리아들은 자연의 본능으로 돌아가야 하며, 부르주아 혁명기의 인권선언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신성한 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해야만 한다.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낮과 밤 시간은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 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하지만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노동의 해악을 덮어버리는 윤리 아닌 윤리는 사악하며, 지난 백 년 동안 온 몸을 바쳐 자유롭게 일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이 바로 이제까지 인류를 내몰아온 채찍 중 가장 가공스러운 회초리이며, 아무리 좋은 운동이나 사회 유기체에 유용한 열정도 하루 최대 세 시간으로 제한하고 현명하게 관리할 때만이 유용하듯이 이 노동은 단지 게으름의 쾌락을 위한 양념에 불과해야 한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Ⅳ. 과잉생산의 결과노동에 대한 맹목적이고 완강하며 가히 살인적인 열정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 기계를 자유로운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 위한 기계로 변질시켜 굶주림 때문에 배를 움켜잡고, 기계가 생산을 증대시키고 있던 그 때 경제학자들은 절제의 종교와 노동의 도그마를 설교하기 시작했다. 성급한 노동자 계급은 아무 생각 없이 노동과 금욕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나태함, 강제적인 향유, 비생산, 과소비를 평생 동안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노동자들이 과잉 노동으로 몸이 멍들고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다른 한편에서 자본가들은 남의 고통 속에서 풍요로움을 맛보고 있다. 자본가들은 토종 가축의 사육자들과 보르도 지방의 농민들을 격려하기라도 하긋, 최고급 송이버섯과 최상품 포도주로 조리한 최고급 닭요리로 온 몸에 살을 피둥피둥 찌우느라 정신이 없다. 또한 처세에 능한 일부 사람들은 없는 머리를 짜내 정치경제학이나 법철학을 고안해 낸 다음, 식자공이나 인쇄공의 여가시간을 빼앗아가며, 잔뜩 졸음만 쏟아지게 하는 두꺼운 책을 호화 양장판으로 펴내기도 한다.자본가들은 변화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노동자 계급이 체념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생활조건과 일에 대한 잘못된 열정에 이끌려 서서히 강요된 노동을 거부하고 부르주아들이 누리고 있는 즐거움을 제한하려는 모든 시도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바로 이때 프롤레타리아들은 자신들 스스로에게 사회적 의무로 부과해온 온갖 타락상을 무시하고 자본가들에게 노동을 부과해야 하며, 윤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주창한 노동이론을 자본가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단단히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들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로 마라”를 기치를 들어올려 1831년 리용에서 죽음 아니면 노동을 달라는 봉기를 일으켰다. 자본가들은 이에 대해 군대를 동원하여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예를 들어 용감한 벨기에 군대의 영광스러운 전쟁터는 다름아닌 보리나주(Borinage)와 사를르와(Charleroi) 평원이다. 벨기에 장교들은 이곳에서 무장하지도 않은 광부들과 노동자들에게 칼을 뽑아들고, 이들의 피의 대가로 훈장을 받았다.전혀 쓸모없는 자본가 계급은하고 길거리로 내쫓기며, 일을 멈추면 그나마 벌어들이던 약간의 수입도 끊기게 된다.노동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나쁜 버릇은 마치 악마처럼 노동자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다. 노동의 요구는 다른 모든 자연스러운 본능을 억누르고 사회가 요구하는 일의 양은 필연적으로 소비와 원자재 공급에 의해 제한된다. 따라서 하루 할 일의 양을 정해놓으면 노동자들은 더 이상 서로 시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일자리를 뺏고 다른 사람의 입에서 빵을 빼앗기 위해 서로 싸우지도 않을 것이며, 이를 통해 게으름의 미덕을 실천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조난당한 배에서 식수를 나누듯이 일을 똑같이 할당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정도로 성장할 수 없었다.그런데 일부 제조업자들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하루 노동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해 왔다. 알사스 최대의 제조업자인 부르카르 드 귀에브빌레는 “하루 12시간 노동은 너무 많으므로 11시간으로 줄여야한다. 또한 토요일에도 2시까지는 일이 끝나야 한다. 얼핏 보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이겠지만 이 조치를 받아들이기 바란다. 우리 공장에서는 이것은 4년간 실행해 보았는데, 이것이 훨씬 더 나았다. 평균 생산이 줄기는커녕 늘어갔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경제학자들은 마치 불운을 예고하는 까마귀 떼처럼, 작업 시간을 1시간 줄이면 영국 산업은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영국은 전처럼 세계 제일의 산업국가로 남아 있다. 이들은 인간의 생산성을 강화시키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유급 일수와 축제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의문의 여지없이 증명해 보였지만, 노동자들은 과로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힘까지 소진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결국 온 힘을 다 써버려 죽기 오래 전부터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되리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자본가들이 목재와 철로 된 기계들을 개선시키도록 하려면 반드시 급여를 올리고 살과 피로 된 기계들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05.09| 7페이지| 4,5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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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론]대중의 반역
    2006. 4. 18 석사 2학기 이 신 우『대중의 반역』,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Ⅰ. 시작하며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거대한 대중(mass)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중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해서 과연 올바른 결과인지 올바르지 않은 결과인지에 대해서 오르테가는 자신의 저서인 「대중의 반역」에서 논의하고 있다. 특히, 이 ‘대중의 반역’에 대해서 미국의 저명한 잡지 「월간 대서양」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이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 1부 ‘대중의 반역’ 부분에서는 대중과 소수자의 의미, 대중이 지배하게 된 상황과 그 위험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제 2부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 부분에서는 대중의 부상으로 인해 위험에 빠진 인류의 구원을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대중의 부상은 유럽의 급격한 인구의 증가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말 그대로 대중의 수를 증가시켰다. 이러한 대중의 수의 증가로 결국 그 동안 소수의 귀족층만이 누리던 문화를 대중이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정치적 권리, 경제적 행복 역시 대중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즉, 현대의 대중은 대중으로서의 속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소수자들과 엘리트들의 지위와 장소를 대신 점유하게 된 것이다. 특히, 오르테가는 대중의 속성에 대해서 스스로의 힘과 재능에 자족하는 존재이며, 그들의 평균적인 기준으로서 사회를 지배하려고 하고 그것이 실패하였을 경우에는 대중 자신의 안일과 무사주의를 방해하는 문화나 도덕을 내팽개치고 일탈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오르테가에게 있어서 대중이란 그 본질상 스스로 자신을 지도할 수도 동시에 또한 지배해서도 안 되는 존재인 동시에, 사회를 통치·지배하는 일 역시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오르테가는 현재 대중의 성장과 그로 인한 대중의 지배가 오늘날 유럽을 최대의 위기로 변화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대중은 그들이 과거에 누리던 것보다 더 많은 향락을 즐기는데, 그것은 욕망뿐만 아니라 욕망을 만족시킬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문제는 대중의 속성에 있다. 대중은 모든 차이가 나는 것, 모든 우월한 것, 개성적인 것, 자질이 풍부한 것, 선택받은 자들을 분쇄해 버린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상이한 사람, 모든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사람’은 진정한 ‘모든 사람’이 아님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란 본래 대중과 대중으로부터 동떨어진 특수한 소수파와의 복잡한 통일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란 단순히 대중을 지칭할 뿐이다.2. 역사수준의 상승대중의 시대는 거대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과거 로마제국 역사 또한 봉기의 역사이자 대중 지배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대중이 지배자들인 소수자들을 흡수·폐기하고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렸으며, 그러한 이유로 군집·포만 현상이 나타나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인류사회란 본질적으로 언제나 귀족적이며, 귀족주의 한에서만 사회이고 귀족주의적이기를 그만둘 때 사회는 사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귀족이라 하는 것은 자기들끼리 초대를 하고 초대를 받고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나 소수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세상의 모든 사물이 고유의 덕과 사명을 지니고 있으므로 넓은 세계 속에 있는 이 조그마한 ‘우아한 세계’도 고유한 덕과 사명을 지니고 있을 것이나 진정한 귀족사회의 거대한 사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이다. 현대의 대중의 양식이 현대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승리를 거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행복한 소수’에게만 허용되었던 것들이 대중에게 노출되고 있다.여기서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해야 할 내용이 나오는데, 대중이 점차 더 많은 것들을 향유함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 오늘날의 대중은 지금까지 다만 소수자를 위해 느끼면서도 19세기는 아직도 과거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즉 그들은 언제나 과거를 향하고 있었으며, 현재를 성취시켜 준 과거에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 현대인은 자신의 삶이 과거의 어느 삶보다 나은 것으로 보는데, 우리는 과거로부터 아무런 표본이나 규범을 발견할 수 없는 시대, 수세기 동안의 끊임없는 진화가 계속된 후에 나타난 시대로 보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결국 우리 시대의 높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충만의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든 시대보다 위에 있고, 알려져 있는 모든 충만 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시대가 스스로 느끼고 있는 인상을 정식화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지만 현대는 다른 시대보다도 풍요하다고 믿고 있는 동시에 하나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금방 죽을 것 같다는 점을 부정할 자신도 없다. 즉, 현대는 다른 시대보다 위에 있지만 자기 자신 스스로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시대, 실로 강하나 동시에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시대, 자신의 힘에 긍지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 힘에 두려움을 느끼는 시대라 할 수 있다.4. 삶의 확장대중의 지배와 역사 수준의 상승 및 시대의 높이는 결국 보편적인 하나의 사실을 암시하는 징후에 불과한데, 그것은 간단히 말해 세계가 갑자기 커지고 세계와 함께, 그리고 세계 속에서 삶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삶은 사실상 세계화되었다는 것이다.오늘날은 최근에 발명된 기구들로 인해 모든 일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스로 대단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사람들의 삶이 다른 시대보다 나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사람의 질이 아닌 사람의 양적 진보 가능성만이 증대된 것이다. 이러한 충만한 시대의 착각은 시대의 방향을 우주의 역학에 맡기고 장래에 대한 관심도 흐리게 하는 시각상(視覺上)의 착각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그 관대한 미래주의의 가면에 숨어서 미래에의 배려를 게을리할은 그런 편의를 마치 자연권인 것처럼 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7. 고귀한 삶과 평범한 삶, 혹은 노력과 게으름과거에는 평균인의 삶이 곤경과 위험과 결핍, 운명의 제약과 예속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현대에 평균인은 실로 무한한 가능성과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그 누구에 의해서도 종속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대중은 어떤 특별한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닌, 이미 주어진 생득적인 상태로 삶의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그러므로 현대의 대중은 상황이 억지로 강제하지 않는 한 자신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며, 자기가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서 선택된 인간 혹은 우수한 인간은 그보다 훨씬 높이 있는, 그보다 우월한 어떤 규범에 직접 호소하고 그것에 기꺼이 봉사하려고 한다. 우수한 인간은 어떤 탁월한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을 경우 그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봉사의 필요성이 부족할 때 자기를 강제할 더욱 복잡하고 힘겨운 새 규범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규율에 따라 사는 삶, 곧 고귀한 삶이라 할 수 있다.고귀한 삶은 곧 귀족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현재 귀족의 의미는 변질된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는데, 본래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역동적인 것이다. 귀족이란 ‘잘 알려진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진 사람을 뜻한다.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비범한 노력이므로, 고귀하다는 것은 용감하다거나 우수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만, 세습 귀족은 본래의 귀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귀족이란 노력하는 삶과 동의어의며 자기 자신을 극기하고 의무와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스스로를 탁월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고귀한 삶은 평범한 삶과 반대되는 것이다. 평범한 삶은 어떤 외부의 힘이 작용해서 거기에서 벗어나도록 자극을 주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고 그 속에 안주해 버리는 삶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곧 대중이다.8. 대중은 왜 모든 일에 폭력적으로 개입하는가대중의 반란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와 존재하지 않는다.가장 두려운 것은 평균인이 과학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과학에 바치는 감사와의 사이의 불균형이다. 아프리카 오지(奧地)에서 흑인들이 역시 자동차를 타고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평균인에게 감사의 마음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명을 지배하기 시작한 유럽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복잡한 문명과 관련하여 원시인이자 별안간 등장한 야만인이며 ‘수직적 침입자’이다.10. 원시성과 역사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자급자족한다. 반면에 문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생존하지도 않는다. 문명은 인위적이어서 예술가나 기술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문명의 편리를 누리길 원하면서 그것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문명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현대의 대중이 문명에 대해서 자연처럼 자연발생적이고 원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대중은 원시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이 문명에 대해서 어떠한 관심도 갖지 않게 된 이유는 바로 점점 더 복잡해지는 문명에 대한 사람의 대처능력의 뒤처짐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문명을 형성하는 원리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보통 사람의 수용 능력을 넘어섰다.문명의 진보에 접근하는 방법은 바로 문명의 배후에 있는 과거를 많이 알고 많은 경험을 쌓는, 즉 역사를 잘 아는 것이다. 과거에 유의하고 과거를 고려해 처신함으로 과거의 오류를 멀리 피하는 것을 통하여 현재의 문명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19세기는 이미 ‘역사적 문화’를 잃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볼셰비즘’과 ‘파시즘’의 등장으로 설명된다. 그들 이념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잘못이 없으며, 문제는 반역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방법에 있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시대의 높이’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과거를 개선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과거 전체의 모습을 조망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과거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그 대신에 그 일부를 붙들고 늘어져 싸움을 거는 것 있다.
    독후감/창작| 2006.04.28| 10페이지| 4,500원| 조회(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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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2006. 3. 28 석사 2학기 이 신 우『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Ⅰ. 들어가며사회학 분야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막스 베버의 은 출현 직후부터 비판가들과 저자 사이에 격렬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고, 이후로도 지금까지 그 논란이 종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베버의 저서가 아주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의 ‘선입관’에 대해서 일종의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은 칼뱅교에서 발전되어진 종교윤리에서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의무로서의 일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Ⅱ. 문제(1) 종파와 계층지방의 직업통계 자료를 보면 한 가지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자본소유자와 경영자층, 상급의 숙련노동자층, 특히, 근대적 기업에 있어 높은 기술적 또는 상인적 훈련을 받는 구성원들이 매우 높은 프로테스탄트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이 특별히 종교개혁을 받아들일 소지를 가졌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은 카톨릭의 강한 비세속성, 카톨릭의 최고 이상인 금욕적 성격이 현세의 자본이나 재물에 대해 신자들로 하여금 무관심하게 만드는데 실패한 원인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측에서는 이러한 견해를 카톨릭적인 삶의 영위가 갖는 금욕적 이상에 대한 비판에 이용하며 카톨릭측은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한 모든 삶의 내용의 세속화 결과로 주장되는 물질주의에 대한 비난으로 답한다.몇 가지 매우 외적인 측면에서 시작한다면 실제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내면적인 형태의 대표자들 중 상당수가 상인권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경건파 중 가장 진지한 신자들의 대다수가 상인권 출신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 사실이 상인결합시켰다는 사실 역시 주지해야 한다. 더 이상의 사례를 제시하지 않고도 위의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충분히 지적된다. 즉, 노동의 정신 또는 진보의 정신, 아니면 그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프로테스탄티즘이 환기시켰다고 하는 그 정신은 ‘세속성’이나 아니면 ‘계몽주의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극단적인 종교가들도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기는 근대적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초기의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의 일정한 특징과 근대의 자본주의적 문화 사이에 어떤 내적인 친화성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좋건 나쁘건 간에 그러한 친화성을 소위 그것의 다소간 유물론적인 혹은 반금욕론적인 세속성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순수한 종교적 성격에서 찾아야만 한다.(2) 자본주의 정신‘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개념에 대한 확정적인 정의는 이 글에서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그리고 논의의 본질적인 결과가 지적하는 바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 나타난 ‘윤리’를 통해 저자는 그의 ‘최고선’을 발견하게 된다. 즉, ‘돈을 벌고 더욱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 버는 것을 그 자체로 자기목적으로 여기므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행복’과 ‘효용’에 대립되는 전적으로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근대 자본주의 추진력에 대한 문제는 우선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화폐재고의 원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의 문제였다. 그 정신이 개화하여 작용하는 곳에서는 그 정신이 화폐재고를 자신의 작용수단으로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는 화폐증식을 위한 직업에 대한 몰두를 필요로 한다.생활방식을 자본주의적인 성공조건에 적응시키지 못하게 되면 성공할 수 없는데, 한때 자본주의가 형성 중이던 근대적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중세적 경제 질서의 옛 형태를 부수고 나왔다면 같은 현상이 종교적 세력에 대한 근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실 결실 따위의 역할을 행한 한에서만 역사적인 고찰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탐구를 해보면, 즉시 그러한 단순한 문제 설정은 합리주의의 역사가 결코 여러 생활영역에서 평행적으로 진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부적절한 것임이 드러난다. 우리가 탐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자본주의 문화의 특징적 구성요소 중 하나인 직업사상과 직업노동에의 헌신을 낳은 구체적인 합리적 사고와 삶의 형식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우리의 관심 대상은 모든 직업개념에 내재하는 것이지만, 특히 이 직업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그 비합리적 요소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3) 루터의 직업개념·탐구의 과제이미 독일어의 ‘직업(Beruf)’ 이라는 단어에, 그리고 아마 보다 분명하게 영어의 ‘calling’이라는 단어에 종교적 내용, 즉 신으로부터 받는 임무라는 것이 적어도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며, 이 말은 강조하면 할수록 그 점이 보다 분명하게 감지된다. 그리고 그 말을 역사적으로 여러 문명 언어들과 비교하여 추적해보면, 우선 드러나는 것은 다른 민족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주로 프로테스탄적인 모든 민족에게는 그러한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직업’이라는 개념에는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파의 중심 교리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 교리는 도덕적 계율을 명령과 권고로 나누는 카톨릭적 태도를 거부하고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승적 금욕주의를 통해 현세적 도덕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세적 의미를 완수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러한 현세적 의무는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곧 그의 직업이 된다.특히, 루터의 경우 이러한 사상은 그의 종교개혁 활동의 첫 십 년 동안에 발전되었는데, 처음에 그는 현저히 중세적인 전통적 생각에서, 세속적 노동은 아무리 신에 의해 의욕된 것이라 해도 피조물에 속하는 것이라 보았고, 마치 먹고 마시는 것처럼 도덕적으로는 무관한 신앙생활의 불가결한 자연적 토대라고 보았다. 그러나 오직 신앙뿐이라는 사상이 보다 분명하게이 일단 정해준 그 직업과 신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며, 지상의 노력은 주어진 삶의 지위가 정해준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는 루터가 근본적으로 새롭거나 원칙적인 근거에 입각하는 직업노동과 종교적 원리의 결합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다.그러므로 루터주의적인 의미에서의 단순한 ‘직업’ 사상은 현재 알려진 한에 있어서, 우리가 탐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종교생활을 루터주의적 형태로 재편성한 것이 아무런 실천적 중요성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중요성은 분명 세속적 직업에 대한 루터와 그의 교회가 갖는 태도에서는 직접적으로 도출할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파에서 가능할지도 모를 정도로 그렇게 쉽게는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Ⅲ.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1) 현세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적 담당자는 네 가지로 구별되는데, ① 칼뱅주의가 특히 17세기에 자신의 주요 전도지역에서 취했던 형태, ② 경건주의, ③ 메서디즘, ④ 침례교 운동에서 발생한 교파이다. 이 운동들은 서로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며, 비금욕적인 프로테스탄트 교회와의 분리도 엄격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먼저 칼뱅주의에 대해 살펴보면, 신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위해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은 오직 신의 위엄을 영광케 한다는 목적의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세상에서의 칼뱅교도들의 사회적 노동은 오직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 노동일뿐이다. 그러므로 이의 현세적 삶에 봉사하는 직업노동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청교도적 금욕주의는 ‘일시적 감상’에 대하여 자신의 ‘지속적 동기’ 특히 금욕에 의해 연마된 동기를 유지하고 관철시킬 수 있게 해주는 작용을 했으며, 교도는 자신의 행동만이 아니라 신의 행동도 검사했고 삶의 모든 세부에서 신의 손길을 보았다. 그리고 칼뱅의 순수한 이론과 반대로 청교도는 왜 신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세속적 직업생활 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려 했던 한, 경건주의적 원칙의 실천적 결과는 ‘독실한’ 경건주의자들이 제2 류의 기독교도로 여긴 평범한 개혁파 기독교도의 단순한 세속적 ‘명예’가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생활방식을 직업에서 금욕주의적으로 통제하고 보다 확고하게 직업윤리를 종교적으로 확립시켰다.다음으로 메서디즘에 대해서 살펴보면, 감정적이면서도 금욕적인 신앙을 칼뱅주의적 금욕의 교리적 토대에 대한 점증하는 무관심이나 거부와 결합시킨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미 그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동시대인들에게 그 분파의 추종자들의 특징으로 눈에 띈 것은, 구원의 확신에 도달할 것을 목적으로 생활방식을 ‘방법적’으로 체계화하는 점이다. 메서디즘은 그 윤리에 있어 경건주의와 마찬가지로 취약하게 정초된 형성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메서디즘에서도 ‘보다 높은 삶’, ‘제2의 축복’에 대한 추구는 예정설에 대한 일종의 대응물로서 작용했으며, 영국을 기반으로 성장한 메서디즘의 윤리적 실천은 어디까지나 영국의 개혁파 기독교인 청교도의 윤리적 실천을 지향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것의 ‘부흥’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칼뱅교를 제외하고 프로테스탄트적 금욕주의를 독자적으로 담당한 두 번째 교파는 침례교와 16·17세기에 그로부터 직접 유래했거나 그 종교적 사고형식을 채택하여 발생한 교파들인 메노파, 퀘이커교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냉정하고 양심적인 침례교적 생활방식의 모든 방법은 비정치적 직업생활의 방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여기서 침례파의 구원교리가 개인적인 신의 계시인 양심에 의한 자기 검사에 부여한 엄청난 중요성은 직업생활에 독특한 성격을 주었고, 이것이 자본주의 정신의 중요한 국면에 대해 갖는 대단한 의미는 나중에 가서야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침례교, 특히 퀘이커교에서 현세적 금욕이 취했던 특수한 형태가 17세기의 판단에 따르더라도, 보통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윤리’의 중요한 원리의 실천적 증명에서 나타남을 알게 될바이다.
    독후감/창작| 2006.03.28| 6페이지| 4,500원| 조회(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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