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음악 축제목차1. 정의1-1. 축제란1-1-1. 축제의 분류1-2 지역 축제란?2. 현황3. 축제 사례3-1.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3-2. 과천축제3-3.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3-4.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3-5.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3-6.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4. 개선과제1. 정의1-1. 축제란축제는 영어로 페스티벌(Festival) 또는 카니발(Carnival)이라고 하는데 ‘예술적 요소가 가미된 제의’를 일컫는다. 축제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제사를 지내거나 경축하여 벌이는 큰 잔치나 행사로 규정하고 있으며 축제를 개인 또는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결속력을 주는 사건이나 시기를 기념하여 의식을 행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축제는 단순한 휴식이 아닌 재생산을 위한 휴식과 화합의 놀이마당에서 종합예술을 펼치는 고도의 인간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설, 단오, 추석과 같은 우리의 명절과 민간신앙 세시풍속 서양의 사육제와 추수감사절 등을 모두 축제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축제의 기능에는 첫째, 억압된 인간의 감정과 행동표현의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축제기간동안 일상의 일손을 멈추고 잠시나마 전통과 환상 속에 잠기는 것은 인간의 고귀함을 일깨워주게 되며 인간 본연의 위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셋째, 경직된 산업사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사회비판적인 기능도 한다. 넷째,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축제가 하나의 공동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회적 또는 종교적 목적의 활용수단이 되기도 한다. 다섯째, 지역간 국가간에 관광객 등의 인적, 문화적 교류와 병행하여 축제는 인간들의 새로운 의식, 새로운 관계, 새로운 혁신 등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또한 전통적인 성격을 가진 축제는 고전적인 유산과 흔적을 드러내는데 반해 현대축제는 국가내의 지역간이나 국제적인 교류를 촉진시켜 새로운 문화적 관여와 영향을 서로 주고 받게 되어 상호문화의 이질성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계기를 부여하기도 한다.1-1-1. 축제의 분류가. 주민화합축제주로 해당지역에서 전통적으로 개최되어 온 전통는 일상생활품이나 음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역특산물축제와는 차별화된다. 예를 들면 ○○ 가구축제, ○○패션축제, 상가가 밀집된 ○○동 축제, ○○거리축제, ○○보신탕축제 등을 들 수 있다.라. 지역테마축제지역의 자연과 생태 및 지리적 또는 산업적 특성에 의하여 현대에 와서 새롭게 발된 축제를 말한다. 지역 테마형 축제의 개최목적은 ① 지역특성을 이용한 축제 아이템의 문화적 가치 부여, ② 지역특성과 축제와의 상호 연관성을 통한 지역 이미지와 브랜드가치의 상승, ③ 지역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이와 같은 지역 테마형 축제는 해당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특색을 살려 얼마든지 새롭게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관광객의 참여기회와 호응도가 높다는 점에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차별화 된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보령 머드축제, 함평 나비축제, 김제 지평선축제 등 생태자연축제들을 들 수 있다.마. 스포츠 경연 · 산업박람회 축제레저스포츠문화의 발전으로 직접 참가하여 경연을 할 수 있는 황강레포츠축제, 제 주마라톤축제, 충주세계무술축제 등이 있고, 더 넓게는 올림픽, 월드컵 등 승부를 넘어서 지역, 국가, 이념을 넘어서 함께 즐기는 축제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포괄적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산업축제는 여러 회사들 개발한 신제품(프로그램이나 기기,음식등)을 홍보를 위해 무료시식회, 시연회를 하는 동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각종 이벤트와 함께 실시한다.바. 기타축제 (문화복지, 교육)문화복지형 축제는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축제와 지역주민들을 위안하거나, 문화적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한 축제.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등으로 격년제 또는 3년에 한번 행해지는 규모가 큰 예술 장르별 축제이다. 교육적인 축제로는 카니발, 페스티벌, 대학 동아리 축전 등 참여자들이 직접 배우고 참여하는 축제이다.1-2 지역 축제란?지역의 개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지역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공간에 대하여 인위적으로 영고 있다. 지역별로는 경남이 13.8%에 해당하는 112개의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그다음은 강원과 경기가 11.4%인 93개의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가장 적은 지역은 대전으로 전체의 2.0%인 16개의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그러나 2005년 이후 5년간 지역축제의 수는 전체적으로 35.3% 증가하고 있다. 축제의 증가에 있어서도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증가하는 지역은 서울,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충남, 전북, 경남의 8곳이며 감소하는 지역은 부산, 인천, 강원, 충북, 전남, 경북, 제주 7곳이다. 경기도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경제상황이 나빠진 최근 3년간 축제의 증감은 이와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는데 전남이 감소율을 가장 크며 그 다음은 서울 대전 순이다.시군의 경우 최대 19개를 개최하는 지역이 1곳이며 12개인 지역이 1곳, 10개인 지역이 3곳 등을 나타내고 있다, 규모에 있어서는 5억에서 1억 사이가 40%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은 1억에서 5천만원이 17.7%를 차지하고 있다, 50억원이 넘는 축제도 9개나 된다. 이 같은 특성을 보이는 지역축제는 지역자원의 개발 및 활용에 대해 지역의 관심을 제고시켰으며 축제의 유형증가 및 '스타지역'을 창출함으로서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과도 달성하고 있다.또한 기초자치단체당 평균 0.03개(인구 천명 기준)의 지역축제가 운영되고 있다. 시군구를 비교할 때, 시 단위에서는 평균 0.02개, 군 단위는 평균 0.06개, 구 단위 평균 0.01개로 나타나 군 단위에서 가장 활발하게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표3].[표3] 인구 천명당 지역 축제 수 현황기준연도구분전체시군구2012평균0.030.020.060.01기초자치단체별로 보면, 2012년 제주시가 총 14건으로 최다 개최했다. 그 다음으로 제주도 서귀포시, 경기도 파주시 순, 경상남도 거제시 순으로 파악되었다.그런 한편으로 지역축제의 문제점도 많은데 우선 축제를 공공이 주도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축제가운데 60%가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안동시장이 추진위원장을 맡고 안동 지역 문화 관련 인사들로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축제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8년부터 지역민들의 의지 결집과 더불어 지역 전문 활동가들을 축제에 참여시키고자 노력했다. 이에 따라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지역 인력들이 축제를 진행하게 됨으로써 축제 역량이 해가 거듭되면서 축적되고 있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 선정 전국최우수 축제로 수차례 선정될 정도로 그 성공을 인정받고 있으며, 재정 또한 축제 수익금에 의한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제1회인 1997년에는 10월 1일부터 5일간 개최되었고, 1999년부터는 매년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개최하는 것으로 정했다. 또한 1997년 첫해 축제는 낙동강변에 무대를 설치하여 진행하고 하회마을에서는 선유줄불놀이행사만 하였으나, 1998년부터 하회마을 프로그램을 늘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1년부터는 안동시내로 축제장을 넓히기 시작하였고, 2005년에는 고정 무대를 만들었다.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행사는 한국탈춤과 외국탈춤 공연이 주를 이룬다. 첫해인 1997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여한 외국 공연단은 3개국 공연단에 불과했으나 2001년 제5회 때에는 7개국이 참여하였고, 2005년에는 러시아, 대만, 스리랑카, 베네수엘라, 태국, 터키, 멕시코, 일본 등의 공식초청 8개국과 타지역 축제와 교환 공연을 포함하여 15개국 공연이 있었다.한국의 탈춤 공연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3개 팀이 1997년부터 매년 참여하였고, 2000년부터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거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탈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5년 축제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비롯하여 봉산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은율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송파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 양주별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강릉관노가면극(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고성오광대(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통영오광대(악극축제2001년에 개관한 의정부 예술의 전당 개관1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 처음 열린 이래 해마다 5월에 9일 동안 열리고 있다.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경기도 의정부시가 후원한다. 수준 높은 실내극과 야외극, 거리극 등이 해외초청공연, 국내초청공연, 프린지(fringe) 섹션, 전시회, 참여프로그램 등의 부대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펼쳐진다.2002년 제1회때는 러시아의〈마리와사드〉, 일본의〈히비키〉등의 해외작품과 극단미추의〈변강쇠〉가 공연되었다. 2003년 제2회 때는 타이완의〈리어왕〉, 프랑스의〈레시프〉, 극단미추의〈심청전〉등이 공연되었다. 2004년 제3회때는 공연참가국이 러시아·미국·프랑스·일본·벨기에 등으로 늘어났고, 국내작으로는 뮤지컬〈명성황후〉, 오페라〈카르멘〉, 음악극〈피터와 늑대〉, 국악〈소리와 몸짓이 한데 어우러져〉등이 공연되었다. 그 결과 2004년에는 문화관광부특성화 연극제육성사업으로 지정되었고, 2005년에는 국내축제평가에서 최고등급인 A등급에 선정되었고, 경기도 방문의 해 10대 기념 축제로 선정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3-4.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북한강에 있는 자라섬을 이름을 딴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은 2004년 9월 미국,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등 12개국의 30여 개 팀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 정상급 재즈음악가들과 또 아마추어 연주인들이 펼치는 공연과 그 외 부대행사로 전시 및 이벤트가 열린다.2004년 시작한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은 매년 가을에 열리며 첫 회 3만 관객을 시작으로 2011년 8회에는 관객수 18만 8천명이였으며 2013년에는 누적 관객수 100만을 전망하며, 2010년 7회 때 엔 재즈 페스티벌 역사상 최고인 168,000여명으로 증가하였고, 약 255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국내 성공적인 대중음악 축제라고 할 수 있다.2005년 8월 가평읍 읍내리에서 문을 연 자라섬 재즈센터에서 축제를 주관하며,자라다.
독일의 노동운동① 성장· 지속되는 공업성장으로 공업화가 본격화되는 1850년대에야 비로소 뒤늦게 성장· 독일 노동자계급은 공통된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였으나 1848년 3월 혁명 이후 이어지는 결사금지의 정치적 탄압조치 → 1860년까지 별다른 노동 활동 할 수 없음· 마르크스의 영향과 정체된 실질임금, 열악한 노동으로 인하여 독일의 노동자 운동은 뒤늦은 출발과 법적인 금지조처에도 불구, 1894년 이후 조직적이며 급진적인 정치적 노동운동으로 전개② 특성· 급작스런 공업성장 : 비숙련노동자가 급증하며 엘리트 노동자의 성장이 불리-> 민주주의적·자유주의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온건적으로 진행된 영국과는 다른 전통을 보인 결과, 독일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에는 자유주의 운동이 너무 미약하다 여김· 공업화의 지역 차이로 인해 독일의 노동자운동은 두 갈래로 나뉨③ 두 갈래의 노동자운동1. 라인지방- 라살레 중심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남 : 노동자가 해방되는 사회주의를 지향.- 라인지방 : 공업화의 선두지역으로, 산업예비군이 집결되어 잉여착취의 가능성을 인식- 현재의 경제적·신분적 위협을 느낀 공장노동자와 가내노동자들, 소규모 수공업자들이 연대한 전독일노동자협회가 결성.→ 전독일노동자협회 :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에 위협되는 파업이나 노동조합에 반대하며노동자의 선거권 획득 및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미 이곳에는 1820년대 수공업자와 직물, 철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계급운 동의 초기형태라고 할 수 있는 임금파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정치적 조직과는 무관하게 옛 동업조합의 전통에 따른 지역별 노조와 생산자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 및 특혜가 확실한 서부 루르탄광지대와 보수적인 카톨릭지역은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았다.2. 남부지역- 남부지역 :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실제적으로 토지가 분할되어 작은 토지를 소유했고, 소규모 기업구조로 인해 공업화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별로 없었다.→ 사회주의적 혁명과는 무관한 사회개혁적 노동자운동이 전개. 노동자를 위한 교육연맹과노동자연맹이 결성되어 정치성이 배제된 노래모임 및 체조모임 등을 주도- 그러나 남독에서도 베벨과 립크네흐트가 중심이 되어 라살레의 협동조합운동을 비판하는 급진적 사회민주노동당(SDAP, 1869)을 결성하고 1870년대까지 노동자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자유주의 진보 정당 중심의 노동자운동과도 결별했다.④ 통합· 독일사회주의노동당 : 1875년 고타회의에서 상호대립을 조정하며 전독일노동자협회와 급진적 사회민주노동당 통합
아모레퍼시픽의 ‘IMC’ 전략 사례1. 서론교수님의 과제를 내주실 때 하신 본인이 관심 있는 기업을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아모레퍼시픽'이 떠올랐다. 아모레퍼시픽은 내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 중에 가장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관심도가 높은 회사니 이는 당연했다.나는 아모레퍼시픽의 문화마케팅이나 디자인마케팅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확실하게 아모레퍼시픽의 공익활동에 체감하게 된 건 작년 핑크마라톤대회에서 참여하고 난 뒤였다. 내가 참여한 핑크마라톤대회도 아모레퍼시픽의 공익활동 중 하나였고 아모레퍼시픽은 이 뿐만 아니라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이 글은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타깃으로 잡고 있는 주요 고객층에 대해 알아보고 아모레퍼시픽의 구축하고자한 기업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어떤 수단방법이 동원되었는지를 알아보자.2. 아모레퍼시픽은?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설립 이래 국내 화장 문화의 역사를 쓰며 화장품 시장의 변함없는 1위를 지켜오고 있다. 그동안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라는 소명을 통해 기업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했다. 현재 ‘2015년까지 10개 메가 뷰티 브랜드 육성으로 세계 10대 화장품 회사 성장과 5개 메가 헬쓰 브랜드육성으로 건강미용식품의 리딩기업으로 발전하겠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6년 지주회사로 전환되면서 기업 이미지를 구축을 더욱 강화했으며 2008년 IMC 시스템을 도입했다.3. 대상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회사인만큼 여성을 주로 대상으로 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사회공헌 슬로건이 “beautiful people, better tomorrow 여성의 삶에 아름다운 변화를 위하여, 사회와의 조화로운 미래를 위하여”인 것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4. IMC아모레퍼시픽은 지속가능경영을 내세운다. 향후 100년 기업으로 영속적 기반을 구축하고, 지속가능경영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정립하였다.제품 안전성 강화 및 지속 가능한 혁신을 통한 고객 신뢰 획득 및 성장기회 창출, 전 밸류 체인에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여 환경경제효율성 향상, 임직원 근무환경 개선 및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개인 만족도와 삶의 질 향상, 비즈니스 파트너와 공정하고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이미지 구축을 내용으로 5대 전략방향을 가지고 실행한다.5.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도구2008년 도입된 IMC 시스템으로 아모레퍼시픽은 매체별, 브랜드별로 홍보를 진행하는 고전적방식에서 벗어난 고객 입장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품목’별로 광고, 홍보 툴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한다. 개별 품목의 이미지와 메시지에 맞는 적합한 매체를 선정해 TV, 인쇄, 잡지, 스마트폰, 온라인, 소비자 체험행사, 교육, DM, 매장 SI 등을 통합적으로 진행한다.1) 광고아모레퍼시픽은 고객 모두에게 ‘미와 건강'을 제공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제작된다. 제품의 브랜드를 내세우기 보다는 각 제품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 한다.2) 사회공헌- 한국유방건강재단2000년 국내 최초 유방건강 비영리 공익재단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하였다. 한국유방건강재단에서는 지난 10년간 약 2만명의 여성이 유방암 무료 검진을 받도록 했다. 유방암 조기 치료의 기회를 높이기 위해 연중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한국유방건강재단 홈 페이지에 가면 언제든지 무료 검진 신청을 할 수 있다. 특히 핑크리본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는 10월 한 달 동안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유방암 무료검진을 실시한다. 모자복지시설, 노인시설, 장애인 시설 이외에 농촌 지역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동검진차량 이 직접 방문하여 유방암 검진을 실시했다.이렇게 검진 뿐만 아니라 한국유방건강재단과 한국유방암학회는 2003년부터 전국 50개 병원에서 대국민건강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유방암 건강강좌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여성 대표암인 ‘유방암’ 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예방과 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사랑의 핑크리본 콘서트는 유방암 의식 향상의 상징물인 핑크리본을 모두 가슴에 달고, 유방암의 심각성과 조기검진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단순히 콘서트 뿐만 아니라 태평양 헤라, 베리떼, 랄프로렌 티셔츠, 핑크베어, 음악 CD, 아식스 스포츠 티셔츠 등이 준비된 바자회도 있다. 이 공연의 티켓 판매금과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재단에 전액 기부되어 저소득층의 유방암 수술비, 예방검진 비용, 학술연구비 지원등에 쓰이게 된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2008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여성암 환우들의 외모 가꾸기를 통해 자신감과 재활 의지를 함양시키는데 목적을 두었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은 암 치료 과정에서 외모 변화로 인한 상실감을 겪는 여성암 환우들에게 메이크업 및 피부관리, 헤어 연출법 등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노하우를 전수하여, 환우들이 투병중 겪는 외모적 결점을 극복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됬다. 특히, 이 캠페인에는 방문판매 경로의 아모레 카운셀러 및 교육강사 250인이 자원봉사자로 참가, 여성암 환우들을 위한 ‘진정한 미의 전도사’로 활동H한다.
패왕별희가장 오래된 취미이자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영화를 보는 것이지만, 나는 이 강의를 듣기 전에는 정말이지 중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양조위라던가 장쯔이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장쯔이를 처음 본 것도 중국 영화 속이 아닌 헐리우드 액션영화였었고, 그나마 동양의 문화를 담은 영화도 중국이 배경이 아닌 일본의 게이샤를 담은 ‘게이샤의 추억’뿐이었다. 중국 문화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중국 영화에 대해 눈이 어두웠다. 그런 나의 침침한 눈에 빛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패왕별희’이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또한 나는 이 수업을 패왕별희를 예로 들며 추천을 받았기도 했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하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정말 한 움큼도 저버리지 않은 채 상영하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고 반을 보고 난 후 다음 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힘들 정도였다. 십 몇 전 영화라곤 하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어색하지 않은 영상미였고 영화가 담는 시대 또한 중국의 근대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촌스러운 모습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경극이란 생소한 주제는 지루하지 않게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특히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는 빠져들기 충분할 정도로 매력 있었던 것 같다.1977년 아무도 없는 강당 같은 공간에 우희와 패왕의 분장을 한 데이와 샬로가 들어온다. 22년 동안 함께 연극을 하지 못했고 11년 동안 만나지도 못했던 두 사람은 그들을 알아보고 조명을 켜준 청소부 때문에 강당에서 연극을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은 1924년 군벌 시대로 올라가게 된다. 더 이상 기루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연홍은 관사부의 경극 무대로 도즈를 데러간다. 도즈를 경극 배우로 키워 입에 풀칠이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즈가 육손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게 되고 연홍은 과감하게 도즈의 손가락을 칼로 잘라내어 입단을 허락받게 된다. 피로 물들은 손을 안고 들어오게 된 도즈를 아이들은 매춘부의 자식이라고 놀린다. 이들을 노려보던 도즈는 어머니가강요당하게 되고 도즈는 그것을 거부해 계속해서 매질을 당했다.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서..“라는 대사를 피가 나도록 맞으면서도 도즈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고 라이즈와 도즈는 탈출하게 된다. 그러다 ‘패왕별희’를 보고 둘은 감동받게 되고 다시 극단으로 돌아온다. 극단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들을 도망치게 내버려뒀단 이유로 단체로 매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이에 도즈는 아이들에게 매질을 하지 말라고 자신을 때리라고 자진한다. 이 때 사부는 도즈를 무섭도록 때리게 되는데 도즈는 이때 끝까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모습을 본 라이즈는 주머니에 숨겨왔던 사탕을 입을 쑤셔 넣은 채 목을 매달고 자살을 한다. 라이즈는 도즈의 맞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도즈와 라이즈가 ‘패왕별희’를 보았을 때 뛰어난 연기를 보고 감동받은 라이즈가 했던 말은 ‘얼마나 맞았기에 저렇게 잘하는 것일까’였다. 이는 경극을 했던 이들이 얼마나 힘든 고통을 이겨내야 했는지 알려준다. 시신을 처리하고 난 후, 한 남자가 극단으로 오게 되는데 도즈의 외모를 보고 맘에 들어 노래를 시키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도즈는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라고 말하게 되고 남자와 극단장은 화가 내게 된다. 이를 보며 시토는 직접 담뱃불로 도즈의 입속을 지져버리며 ‘넌 여자야!’라고 소리친다. 이에 충격을 받은 건지 도즈는 피를 흘리며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사내아이도 아닌데..”라고 대사를 읊게 된다. 결국 도즈는 여자 역할인 우희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버리게 된다. 도즈와 시투는 무대에 서게 되고 큰 호평을 받는데 도즈를 장내시가 눈여겨보게 되고 사부는 망설이다가 항상 있었던 일이었기에 결국 도즈를 장내시에게 보내게 되고 이 둘은 밤을 보내게 된다. 이 때 도즈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다른 남자에게 맡기게 되면서 완벽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버린 것으로 생각이 된다. 충격이 컸던 할을 빼앗고 경극이 희생양이 되었던 문화대혁명 운동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된다. 이는 버려지는 것이 아이의 운명이었던 것을 도즈가 거역함으로써 나중에 벌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아이를 데려가는 장면 뒤에 잠깐 나오는 도즈의 슬픈 얼굴은 앞에 사부가 패왕별희의 줄거리를 이야기 해줄 때의 모습으로 이것이 경극 속 우희로 살아가게 되는 도즈의 앞날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도즈와 시투는 패왕별희라는 경극의 우희와 패왕 역할을 연기하게 됨으로써 데이와 샬로라는 가명을 쓴다. 1937년 항일 운동이 거세시던 시절, 패왕별희는 가장 있기 있는 경극이 되었고 전쟁 중에 연기나 하는 딴따라라는 비난도 함께 받긴 하지만 데이와 샬로는 인기스타가 된다. 이런 데이를 원대인은 만족스러워 했고 비싼 장신구까지 선물을 한다. 이렇게 여성스러운 데이와 달리 샬로는 기루를 다니게 되는데 기루에 주정뱅이들에게 시달리던 쥬산을 구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청혼하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결국 쥬산과 결혼하게 된다. 이것으로 데이와 샬로는 크게 싸우게 된다.그 후 일본이 득세를 하게 되고 경극무대에서 난동을 부리는 일본군과 싸우다 샬로는 붙잡혀 가게 된다. 샬로를 구하기 위해 주면 떠나겠다는 쥬산의 말에 데이는 일본군 장교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샬로는 풀려나가게 되는데 데이 덕분에 풀려났지만 샬로는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으로 데이에게 침을 뱉는다. 쥬산은 그대로 샬로를 따라가게 되고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쥬산과 샬로의 결혼식 날 데이는 원대인과 밤을 보낸다. 샬로에게 쥬산은 경극을 그만두고 평범하게 살자는 요구 했던 그렇게 소원했던 샬로와 데이를 사부가 불러 혼을 낸다. 경극을 그만 둔 샬로를 사부가 혼을 내자 쥬산은 데이가 아편중독자라 고자질을 하고 그것을 막으며 샬로가 대신 맡자 쥬산은 임신을 고백한다. 그 후 사부의 죽음으로 경극단은 해체되는데 이때 길가에 버려진 아이였던 서를 데이와 샬로는 데리고 온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장개석 정부가 북경에 들어선이 사이에 갈등을 하지만 결국 쥬산의 옆에 남게 된다. 여기서 본다면 영화 내내 샬로는 데이와 쥬산 사이를 선택하는 기회를 얻지만 그 때마다 쥬산을 선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쥬산은 샬로를 설득해 데이를 구하고 서로 길을 가자고 이야기 하고 샬로는 이에 동의에 원대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재판에서 유리한 증언을 하지만 데이는 이에 차갑게 일본을 찾아간 건 강제가 아니라 자발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끝까지 원대인은 데이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때 장개석과 대립하던 모택동이 인민해방군을 이끌게 되고 중국은 내전상태로 돌입하게 되어 재판은 휴정에 들어가게 된다. 서를 데리고 샬로를 찾아간 데이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파는 장내시를 보게 되는데 이 장면 역시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장개석은 대만으로 도피하게 되고, 모택동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노선에 편입시키면서 사회는 공산주의를 외치게 된다. 이 때 데이는 아편 중독으로 힘들어했는데 샬로와 쥬산을 그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데이는 엄마를 부르며 쥬산에게 안기는데 쥬산은 그런 데이를 아이처럼 안아 준다. 쥬산과 데이는 샬로를 사이에 둔 적이지만 데이에게는 자신의 엄마처럼 홍등가의 여인이었던 쥬산에게 의지했고 쥬샨 역시 아이를 유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성애를 느꼈던 거라 생각된다.서는 공산주의에 물들게 되는데 아편에서 이겨낸 데이에게 경극단원들이 찾아가게 되지만 이후 현대경극에서 서와 후배들은 데이와 의견을 달리하게 되는데. 쥬산 때문에 샬로는 나서지 않게 되지만 전통예술을 지키려 했던 데이는 이상한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결국 우희 역을 데이가 아닌 서가 서게 되고 언제나 옆에 있었던 우희 역에 데이가 아니라서 안한다고 이야기 하는 샬로에게 데이는 직접 가발을 씌어주면 무대로 내보낸 뒤 데이는 퇴장한다. 여기서 쥬산은 데이에게 연민을 느끼는 듯 하다. 퇴장 후 데이는 경극 복장을 모조리 불 태워 버린다. 그 후 시간이 흘러 1966년에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샬로는 빈 무대 위에 심쥬산은 그런 샬로를 말리지만 샬로는 큰 소리로 계속 외치며 경극 분장 도구를 불 속에 던지고 쥬산이 달려 나와 불 속에 검을 줍는다. 데이는 샬로에 대한 분노로 쥬산이 창녀 출신이라고 폭로하게 되고 사람들은 쥬산을 몰아세웠다. 공산당원들이 샬로에게 쥬산을 사랑하는지를 묻자 샬로는 자기가 살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모든 게 불타버리고 쥬산은 데이에게 검을 내민 뒤 돌아서는데 나중에 미안함을 느낀 데이가 쥬산을 찾아 나서지만 쥬산은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샬로는 죽은 쥬산을 발견하고 모든 것이 데이의 탓인 듯 분노한다. 한 편 서는 원대인이 데이에게 선물한 장신구를 착용해보며 우희 분장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이는 공산당에 물들어 경극을 배척하고 그의 스승을 배신했지만 그 역시 경극을 배운 자로써 완전히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11년 후 1977년, 텅 빈 강당에서 데이와 샬로는 극을 시작한다. 데이는 “나는 비구니. 사부에게 머리를 깎여.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계집아이도 아닌데..”라고 말한다. 여자인 우희로 살아왔던 데이가 그 순간만큼은 남자인 도즈였던 것 같다. 데이는 우희처럼 패왕의 칼을 빼들고 자살을 한다. 그런 데이를 바라보며 샬로는 데이가 아닌 ‘도즈야’라고 부르며 끝이 난다.는 중국의 격동의 시기가 영화 전반에 녹아있는데, 이러한 시대적 혼돈은 우희로 살았던 도즈에게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 전쟁이 한창인 시절에도 전쟁 중인데 연기나 하는 딴따라라는 비판은 데이가 되어버린 도즈에게는 들리지 않았고 샬로를 구하기 위해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을 때도 자기 나라를 침범한 적들이 아니라 그에겐 샬로를 구할 수 있는 길이었을 뿐이다. 경극을 관람하는 태도가 무례한 국민군에게 “일본놈들도 관람태도가 이렇게 무례하지는 않았다”라고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것도 도즈에게는 그들이 국민군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극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산단원들에게 붙잡혀간 후 그들 앞에서 쥬산이 창녀라고 폭로하는 것도
니얼퍼거슨『금융의 지배』20대 초반 여성이 금융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편견만큼이나 별로 없다. 접하게 될 계기도 그리 많지 않고 따로 관심을 가질 이유가 딱히 없다. 그렇기에 나는 예금 말고 은행에 관심을 가졌던 건 오로지 ‘등록금’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과제가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니얼 퍼거슨은 『증오의 세기』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그 책은 이미 한번 읽었고 내 관심분야였다. 물론 그 책도 딱히 나랑 연관되는 건 없었지만 평소 나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흥미가 있었는데 이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증오의 세기』를 찾게 되었다. 그렇기에 『증오의 세기』를 과제로 하는 것이 나에겐 쉬운 선택이었지만 왠지 이번 기회에 과제라서 생기는 강제성을 띄지 않고는 보지 않을 책을 보는 것도 내 시야를 넓히는데 좋지 않을까란 생각에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곤 그 생각이 좋았다는 것을 책을 다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화폐 부상의 첫 번째 필수단계는 은행업의 진화였다. 만약 화폐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진 것으로 주는 물물교환식으로 모든 거래를 한다면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 너무 소모적일 것이다. 이는 수렵 채집사회의 실상을 조금만 떠올려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일찍이 최초의 신용거래는 고대 메소포타미야에서부터 시작됬다.초기 고리대금업을 파악하기 위해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을 살펴볼 수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는 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살 1파운드를 요구한다. 여기서 초기 신용시장에서 불공평했던 이자율을 부과했던 대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갈등을 폭력사태 없이 해결할 수 있었던 법정의 중요성과 무엇보다 인종적 소수였던 채권자가 인종적 다수였던 채무자의 적대심에 겪었던 취약한 입지를 알 수 있다.17세기 이후 은행업은 성장했고 이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산업혁명보다 금융혁명이 앞선 것이다. 선진 경제권 대부분은 영국의 선례에 따라 독점적인 중앙은행에서 치조직에 의해 초기 채권시장은 부흥했다. 18세기 중반, 런던 채권시장은 크게 번성하고 콘솔공채는 압도적으로 많은 거래가 성사되었다.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런던 최고의 금융기관 설립자로 워털루 전투 전후에 가문의 부를 일으켰다. 부는 채권을 통해 계속해서 쌓였고 이후 이들은 거의 100년 동안이나 채권시장을 지배했다.하지만 채권시장이 보기보다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데, 20세기 아르헨티나에는 제대로 되지 않은 금융관리와 채무 불이행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세상의 모든 자원이 무가치 해졌고 1988년 1인당 국내 총생산이 1959년과 같은 수준을 기록했다.이렇게 화폐부상은 은행업의 진화에서 채권시장으로 또한 주식회사 혹은 유한책임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개인이나 소수로는 절대 가능할 수 없는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모험적인 장기 사업도 주식을 통해 수천명의 재원을 모아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주식은 일종의 모험이기에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과 절망을 비례하여 안겨주었다. 주식이 일제히 오르면 투자자들은 행복하기 마련이고 이를 앨런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이란 명칭으로 이야기했다. 이에 반해 주식이 떨어진다면 그 행복감은 절망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것을 동물에 빗대어 묘사할 수 있는데, 낙관적으로 전망해 주식을 사는 사람은 황소이고 비관적으로 전망해 주식을 내다 파는 사람은 곰이다. 이는 그것의 본질적인 속성을 암시한다. 즉 확실한건, 주식시장은 인간의 심리의 반영하는 거울이다. 주식은 등장 이래로 계속해서 금융거품이 존재해왔다. 터무니 없이 치솟아 상종가를 치다 돌연 바닥으로 추락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순진한 초심자를 영악한 내부자가 먹이로 삼아 이윤을 취하는 사기 행각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금융거품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데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먼저, 변위요인으로 경제 여건에 변화가 생기면서 특정 기업에게 새로운 이윤 창출기회가 열린다. 상상 속에서나 일어나는 낙관적인 생각일 뿐 현실 속에선 5년에 한 번씩 발생한다.주식시장 붕괴가 펼쳐진 과도한 긴축 통화정책의 위험성은 대공황을 통해 선명히 드러났다. 이후 대공황의 재현을 막는다는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듯 했는데, 최초의 주식회사였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살펴보면 암스테르담 은행이 주식시장 거품과 붕괴를 피해 간 배경에는 건전 통화의 공급이 있었다.이렇듯 바람 안부는 날이 없는 금융시장과 두꺼운 꼬리를 18세기 등장한 보험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보호 수단이 되어 주기 시작했다.보험은 초라하기 등장하였지만 현재 세계 금융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한 규모의 기관 투자자가 되었다. 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보험 회사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주식 시장 투자가 허용되자 1950년대 중반 무렵 영국 주요기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영국 경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험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규모였다. 가입자가 많아질수록 평균의 법칙에 따라 매해 지급하는 보험금 예측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보험은 일상에서 겪는 위험 및 불확실성이 금융 분야의 위험 및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영역이다.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닮아있다.보통 복지국가를 영국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나 복지 국가를 사회주의자나 자유주의자의 고안물로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국가 차원의 강제적인 건강 보험과 노령 연금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곳은 독일이었다. 이에 반해 영국은 20년 이상이 지나서야 독일의 선례를 따랐다.이렇게 미래의 충격에 대비하는 방지책은 보험과 복지만이 아닌데, 또 다른 방법은 바로 ‘헤지’다. ‘헤지’는 농업에서 기원했다. 수확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 때의 가격은 무엇보다도 작물을 심는 농부에게는 중요하다. 수확물이 시장에 나올 때 파종 시 약정한 가격으로 사게끔 상인들과 계약을 맺어 두면, 농부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만약 인도 날짜에 시장가격이 예상보다 떨어지면 농부는 보호를 받는다. 초기 농부들이 짜낸 상한가를 치던 주식이 갑자기 급변하여 곤두박치는것처럼 땅에 붙어있는 집이 태풍에 산산조각 나지 않은 이상 갑자기 없어지진 않는다. 그렇기에 부동산은 절대 안전 자산이라고 인식된다. 부동산 게임은 영어권 국가에서 사랑받는 경제 게임이다. 부동산만큼 대중의 상상력에 침투한 경제 현실도 없는데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부동산을 일방적인 투기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발전만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부동산에 투자하면 곧 부자가 된다고들 생각한다. 그렇게 이렇게 안정한 투자대상을 놔두고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행동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또다시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는다. 최근 10년간 주식시장과 주택에 각각 투자했다면 오히려 주식시장이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였다. 집처럼 안전하다는 이 표현 한 마디에 전 세계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갈망하는 이유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이것은 금융계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표현에 가깝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일만큼 안전한 대출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채무자가 채무를 갚지 못할 경우, 저당 잡힌 집을 가지면된다. 그렇기에 신규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독보적인 자금원은 바로 주택 담보 대출인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부동산 구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959년 이후 미국의 주택 담보 대출 부채 총액은 75배 늘어났다. 금융기관은 주택구입자의 자산 포트폴리오나 부채 상환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회수 가능한 안전한 대출 주택 담보 대출로 안정적인 이자 수입을 원한다. 돈을 빌려줘서 받은 이자 수입을 챙기다가 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집을 받으면 되기에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주택구입자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위험성에 노출 되어 있다. 이는 1914년 미국의 대공황, 2008년 금융 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영어권 국가에서는 부동산 게임이 사랑받아왔던 탓에 부동산 정책이 정치적 실험장이 되었다. 부동산 소유 귀족정치에서 주택 소로 모기지를 채권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1983년 새로운 형태의 모기지 담보부 증권이 되었다. 증권화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월 스트리트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과거 잠잠하던 채권 시장에 괄기를 불어 넣었고 개별 거래보다 익명거래가 더 중시되는 새로운 풍토를 만들었다. 1980년과 2007년 사이 정부 보증 보기지 담보부 증권은 2억 달러에서 4조 달러로 증가했다. 2006년, 5000억 달러 이상 팔린 부채 담보부 증권은 이 중 절반이 서브프라임 대출과 관련된 익스포저 상태였고 일 년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이상징후가 생겨났다. 그 여파는 전 세계 신용시장에 퍼졌고 일부 헤지펀드는 무너져내렸다. 많은 은행과 금융회사 손해는 막대했다.정부가 주택 소유를 장려한다면 자본주의를 위한 정치 유권자 형성에 도움은 주겠지만 긍정적일수는 없다. 이는 주택투기를 부추겨 자본시장을 왜곡하기도 한다. 주택편중현상은 모든 부를 주택에 투자하는 경향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택시장은 위험과 무관하지 않다. 고도의 차입투기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거는 것과 비슷하다.1세기 이상 세계 경제의 금융속도를 영어권 국가가 좌우했다. 하지만 이는 현재형이 아니다. 지금은 세계 금융세력의 균형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잠자고 있던 사자였던 중국이 깨어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경제는 1인당 국내 총생산이 증가했고 연평균 복합 성장률 8.4퍼센트를 기록했다. 과거 30년 동안 성장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졌고 현재 그 속도가 오히려 가팔라졌다. 그렇기 원래 세계 금융속도를 자지우지 하던 미국은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값싼 중국 제품을 수입하는 게 최선이었다. 미국은 제조업을 아웃소싱하면서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했고 결정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채권을 중국 인민 은행에 팔면서 상당한 저금리 기조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국과 미국이 결합한 이중국가가 바로 '차이메리카(Chimerica)'이다. 차이메리카는 전 세계 토지면적의 10분의 1을 차지할 뿐 아니라 지난 8년간 세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