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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이론] 앙드레 안뚜완느의 연극세계 평가A+최고예요
    목 차Ⅰ. 연출가 연극연출가 연극의 생성과 흐름에서의앙드레 앙트완느(Antoine, Andr )의 위치ⅰ. 마이닝겐 극단 출현 이전의 상황ⅱ. 마이닝겐 극단의 업적ⅲ. 자연주의 연극과 연출가 시대의 개막- 앙드레 앙트완느의 테아트르 리브르-Ⅱ. 연극에서의 자연주의Ⅲ. 앙드레 앙트완느(Antoine, Andr )에 관하여Ⅳ. 자유극장(Th tre Libre)에 관하여Ⅴ. 제4의 벽 이란Ⅵ. Behind the Fourth WallⅦ. 앙드레 앙트완느의 연극 세계참고 문헌Ⅰ. 연출가 연극의 생성과 흐름에서의앙드레 앙트완느(Antoine, Andr )의 위치일반적으로 19세기를 배우의 시대라고 하고 20세기를 연출가의 시대라고 한다. 관객과 관중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한편의 연극공연을 예술적인 면에서 표하는 인물은 역시 연출가이다. 사회 문화적으로 볼 때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에 따라 그들의 여가 선용과 오락을 위해 읽을거리인 문학이 놀라운 상승세를 가졌고 그래서 연극에서도 텍스트중심주의가 팽배해 있어 연극창조에서도 희곡작가가 큰 세력을 가져 연극은 문학의 시녀 가 되었다. 19세기 전반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조명, 무대 테크닉이 작품의 무대화에 많은 가능성을 열었으나 연극 예술인들은 과거 인습과 전통에 묶여 이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본격적인 의미에서 연출가는 독일 공국 작센-마이닝겐의 게오르크 2세로써 그는 마이닝겐 극단을 창단 유럽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이는 후일 각 국의 자유극단 운동을 자극했는데, 이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부터 연출가의 연극 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출가의 연극은 자연주의 연극과 관련이 있으며, 마이닝겐 극단, 앙드레 앙트완느의 테아트르 리브르, 오토브람의 프라이에 뷔네로 계승 발전되었으며, 그 후 스타니 슬라브스키, 크레이그, 메이어 홀드, 라인하르트, 피스카토르, 예스너, 브레히트, 코포, 아르토, 장-루이 바로, 장 발라드 등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이제부터 연출가 연극의 성립과정을 고찰하고, 그 부르크 연기양식에 반하여 승화된 아름다움 , 조화로운 배합 , 고전적 엄격함 을 내세우는 바이마르 연기양식을 창조했다. 괴테와 비슷하게 극장 장, 즉 예술총감독으로서 괴테와 비슷한 작업을 한 인물로는 비인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에서 활동한 슈라이 포겔(Josef Schreyvogel,1768-1832), 브라운 슈바이크 민족극장의 클링에만(Ernst August Klingemann,1777-1832), 뒷셀도르프 시립극장의 임머만(Karl Leberecht Immermann,1796-1840)등이 있었다. 영국에서도 배우/극단 장으로 찰스 캠블(Charles Kemble,1775-1854), 맥크레디(William Chares Macready,1793-1873), 베스트리스부인(Vestris,1797-1856)등이 있었다.ⅱ. 마이닝겐 극단의 업적연극사가들은 현대적 의미의 연출가 연극이 독일 작센-마이닝겐의 공작 게오르크(Georg) 2세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데에 대개 동의하고 있다. 마이닝겐 극단 은 게오르크 2세의 주도하게 있던 궁정극장의 앙상블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이 궁정극장은 1831년 그의 부친인 베른하르트 2세에 의해 오픈 되었고, 1866년 공작위를 계승한 게오르크는 1870년부터 몸소 이 극장을 운영하였다. 그는 스타배우들을 초청해 오지 않고, 극단원 중 스타가 되는 배우가 있더라도 필요하면 언제라도 대사 없는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원칙에 기초해 작업하는 순수한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마이닝겐 극단은 극단전체의 앙상블을 깰 수 있다는 염려로 가급적 스타배우의 영입을 피했고, 특정역할을 위해 그런 배우를 임시 공용하더라도 초청배우 가 아니라 명예단원 으로 불렀으면 마이닝겐 극단 식의 프로덕션 방법과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게오르크 2세가 스타의 연기에 의존하는 당시의 관습을 과감히 깬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연극에서의 권력을 배우에게서 앗아온 것이라고도 판단되어진다. 그는 실력 있는 무대 디자이 일주일 후 국립 오데옹 극장이 몇 달 전에 거부했던《자크 다무르》를 자져 감으로써 앙트완느의 프로젝트는 소위 제도권 연극에 자극과 영향을 주는 실험적 작품의 선정 면에서 유럽최초의 획을 그었다. 그러나 앙트완느 자신은 애초부터 그런 아방가디스트가 될 계획이 없었고 그저 소개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신작들을 무대화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시작한 것이었다. 운영체계면에서는 테아트르 리브르는 예약 시스템으로 시작했다. 이는 주로 검열을 피함으로써 예술적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운 모험이었으나 두달 후 상연된 메테니에(Oscar M t nier)의 단막극《가정에서》(En famille) 덕에 예약자는 단숨에 3천명을 넘었다. 파리 슬럼의 삶을 생생하고도 사실적으로 다룬《가정에서》는 작품의 내용은 물론 그 무대 실현에서도 당시의 관습과는 완전히 단절된 자연주의적 작품이었다. 특히 스포트라이트를 제거했고, 공연동안 하우스 조명의 조도를 완전히 낮춘 것은 독일 무대에서는 이미 익숙한 것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선례가 없던 획기적인 시도였다. 예약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테아트르 리브르는 340석을 겨우 넘는 몽마르트르의 극장에서 세느 강 좌안에 있는 800여 석의 테아트르 몽파르나쓰로 옮겨야 했다.앙뜨완느는 자연주의 작품의 관철에만 주력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언급했듯 장르를 불문하고 무대화되지 못한 작품들을 무대화하려 한 연출가-주로 주역을 맡은 경우도 많았고- 였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그의 레퍼토리에는 모든 가능한 형식들, 즉 소극, 멜로드라마, 역사극, 운문극, 마임, 그림자극 등이 들어있었다. 또한 전망 있는 신인 극작가들의 작품들뿐 아니라 이미 문명을 얻은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다양했으며 여기에는 자연주의 소설들의 극화가 많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관객에게서의 성공이 보장되었기에 늘 빚에 시달리던 앙트완느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앙트완느가 선택한 레퍼토리에서의 중점은 이미《가정에서》를 필두로 시작된 단막극(quart작용이었다.앙트완느는 마이닝겐 극단의 지나치게 요란한 무대세트, 철저한 고증으로 치렁치렁한 의상, 현란한 조명효과 등은 비판적으로 보았다. 같은 해 테아트르 리브르는 파리 중심에 있는 살르 데 므뉘-플레지르(Salle des Menus-Plaisire)로 옮겼는데 이 극장에서의 첫 공연들, 즉 역사물들인 레옹 앙니크(L on Hennique)의《앙기엥 공작의 죽음》과 공쿠르 형제의《위험에 처한 조국》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닝겐 극단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이미 언급했듯 아직 무대화되지 않은 작품들의 소개에 앙트완느의 최초의 목적이 있었다. 소개되는 작품들에는 외국의 신작도 있었는데, 톨스토이, 입센, 하우프트만, 스트린드베리 등의 작품들을 무대화했다. 테아트르 리브르의 첫 시즌(1887-88)에는 톨스토이의《어둠의 힘》(1886)이 무대화되었다. 알코올 중독, 무지, 미신의 희생물이 되어 사는 러시아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생생히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짜르 치하에서 공연이 금지된 작품이었으므로 앙트완느의 무대화가 세계초연이었다. 당시 유럽 각국에서 외국 작품은 대개 번안이나 개작되는 것이 관습이었고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앙트완느는 이 폐단을 없애고 원작을 충실하게 번역한 대본을 마련했으며 심지어는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사투리에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해 러시아 영사관에서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이런 작업은 프랑스 연극 풍토에선 첫 시도였다. 그러나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집단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하우프만의 사회극《직조 공들》은 세심한 리허설의 결과로 무대화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때 이미 앙트완느는 극단 운영에 있어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외국 순회 공연도 성과를 거둘 수 없었던 그는 1895년 결국 테아트르 리브르의 운영을 양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7년 간 그는 110편이 넘는 작품을 무대화했고 그 중 대부분이 초연이었으며 외국 작품의 소개에도 주력함으로써 각 나라 자유극장 운동의 한 특색인 실험과 다국적 주의의 삶의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이론은 앙트완느에 의해서 연출이론으로 구체화되고 프랑스 연극 무대를 혁신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Ⅲ. 앙드레 앙트완느(Antoine, Andr 1858-1943)에 관하여프랑스의 배우, 제작자, 매니저, 극 평론가로 근대 연극의 개척자 중의 하나.1858년 리모쥬에서 출생하여, 8세 때 파리로 왔지만 가난하여 급비생(給費生)으로 들어간 쥬르고(Jurgot)학교도 퇴학할 수밖에 없게 되어 12세부터 자활의 길을 걷게 된다. 사환, 점원 등을 거쳐 1887년 가스회사에 고용되었다. 1879년 병역에 복무하여, 투니지아에 가서 4년을 지나고 제대하여 전에 일하던 가스회사에 복직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극에 흥미를 가지고 연극 학원에 다니는 동안 점점 여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상업연극에 불만을 느끼게 되고 연극 혁신의 희망에 불타오르게 되어 뜻을 같이한 동료들과 의논하여 1887년가스회사에 근무하면서 자유극장(Th tre Libre)를 창단 했다. 졸라 같은 작가의 도움을 받으며 코메디 프랑세즈의 관습과 블르바르극장의 천박성을 공격하였다. 그는 희곡의 예술적 가치와 새로운 것을 중시하고 무명작가나 외국작가의 신선한 작품을 상연했으나 자연주의적 사실주의가 그의 기조로서 발자크, 베크, 모파상, 톨스토이 하우프트만, 스트린드베리, 뵈른슨, 투르게네프와 특히 입센 등의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극단의 아마추어 배우들에게 자연스러운 연기술을 가르쳤고, 평면적인 무대 장치를 입체적인 무대장치로 대치했다. 그러나 그 당시 벌써 자연주의는 쇠퇴기에 접어들어 1894년 라 로셸(La Rochelle)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은퇴하였고 이어서 1896년에는 자유극장까지도 폐쇄되어 버렸다. 1888년 브뤼셀에서 마이닝겐 극단의 앙상블을 본 후, 1897년 앙트완느 극단(Th tre Antoine)을 창단 했다. 앙트완느 극단을 이끈 8년 동안 르나르, 돈네 등을 세상에 선보였다.《리어왕》의 라의
    예체능| 2005.01.13| 15페이지| 1,000원| 조회(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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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이론] 장 라신의 페드르 분석-연극기호학적 고찰-
    Ⅰ. 서론상연을 전제로 한 희곡을 분석하기 위한 분석틀이 기타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데 적용되는 분석틀과 다르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연극을 분석하는 데 적합한 도구를 찾는 게 그다지 쉽지 않은 이유로, 연극학자들은 많은 문예이론에서 자신의 유용한 도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본 연구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페드르는 다분히 프로이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상연되었을 때 어떠한 의미가 관객들에게 생성될 지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언어학에서 파생된 기호학적 개념은 연극을 바라보는 유용한 도구를 제시해 준다. 우리 주변의 세계를 대상과 거기에서 파생된 기호들의 집합체로 보고, 그러한 기호들 간의 의미 생성들을 이해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본질이라는 기호학적 사고방식은 연극 상연에서 보여 지는 무수히 많은 기호들과 그 기호들 간의 의사 소통을 분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원론적으로 이러한 기호학적 분석틀은 모든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겠지만, 본 연구의 연구자들은 분석 대상으로 라신느의〈페드르〉를 삼았다. 작품의 선정 이유로는 바르트에 따르면, 라신느의 작품에서는 성격은 존재하지 않고 상황만이 제시된다. 그는 라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A라는 인물이 왜 이렇게 행동하였을까 라는 고민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지적 능력은 그 인물이 어떠한 것을 대표하며, 어떠한 상황에서 그 인물이 행동하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권고하였기 때문이다.따라서 본 연구는 먼저 소쉬르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기호학에 대한 이해를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반 기호학이 어떻게 연극 기호학으로 발전하였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일반 기호학과 연극 기호학에서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한 분석틀을 가지고 연구한〈페드르〉는 잡지 등과 문학과 예술작품 같은 다양한 텍스트들 속에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우리가 날마다 대하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1-2. 소쉬르(Saussure, Ferdinand de;1857~1913))의 기호학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 차원을 지닌다. 장기에 견주어 말하면, 장기의 규칙이 랑그이고 장기를 두는 행위가 빠롤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랑그는 언어 능력이고 빠롤은 실제의 음성 언어 행위, 즉 말을 하는 행위가 된다. 당연히 랑그, 즉 장기의 규칙은 빠롤, 즉 실제로 장기를 둠으로써만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그런데 빠롤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무척 다양하다. 예를 들어 경상도 사람과 충청도 사람, 서기 2000년을 사는 우리와 고려 시대 사람의 빠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장기의 규칙은 같지만 실제의 장기판, 장기말의 재질은 다르기 마련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소쉬르는 따라서 빠롤은 언어학의 진정한 연구 영역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장기의 차, 포 등의 말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 포 등의 말이 어떤 규칙에 따라 다른 말들과 연관을 맺고 움직이는지를 연구해야 한다.소쉬르는 또한 언어 기호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같은 대상을 놓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dog라고 말한다. 결국 개, dog 등의 언어 기호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 또는 말의 소리와 그 의미 사이의 관계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어의 특성을 '언어 기호의 자의성'이라고 한다. 언어란 결국 하나의 사회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작용 하여 이루는 자의적 음성기호의 체계이다.이러한 소쉬르의 생각에 따르면, 언어 기호는 하나의 이름에 하나의 대상을 연결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음성을 결합하는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머리 속에 두 개의 사전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소리사전이고 하나는 개념 사상단위(思想單位)(the unit of thought)인 것이다.이를 좀더 체계화시켜 퍼스는 기호계(Sign)가 기호체(sign), 그 기호가 상징하고 있는 물질적 또는 정신적 형상(object), 그리고 기호체(sign)와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형상(object) 사이에서 생성되는 해석소(interpretant)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도식화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골격을 볼 수 있다.다시 간략히 설명하자면, 의미체(object)란 기호화된 의미의 영역이고, 기호체(sign)란 기호의 운반체(sign-vehicle)로서 물질적인 재료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형상일 수도 있으며, 해석소(interpretant)란 의미체와 기호체의 복합적 성격을 갖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자체의 고유한 영역을 차지한다. '해석소'란 영역의 타당성은 한 요소에 다른 한 요소를 부가할 때 그 합이 두 요소의 배열을 넘어선, 새로운 혼합적 개체를 또 하나 생성해 낸다는 제설혼합주의(syncreticism)와도 상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머니'라는 한국어의 기호를 살펴보면, ① /어/ /머/ /니/의 삼음절로 구성된 기호체(sign-vehicle)가 있고, ②자신을 낳아준 여자로서 (어머니)란 존재가 의미체(object)가 되며, ③/어머니/란 기호의 음성적 자질과 (어머니)란 실물적 존재가 연결되면서 우리는 /어 머니/에 대한 해석소(interpretant)로써 예를 들면 '사랑', '인자함', '희생' 등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기호의 삼각구조와 연상론(聯想論)을 살펴보면 퍼스는 인간의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무한대의 기호 진화현상(unlimited semiosis)"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하나의 컨셉트(사상단위)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또 다른 컨셉트에 의해 실체화(embodying)되고 그 두 요소의 합은 또 다른 매개체적 컨셉트를 생성하고, 그 생성된 매개체적 컨셉트는 계속하여 또 다른 컨셉트에 의해 대변된다는 "기호의 무한대적 연상과. 지각하기는 일종의 물질적 노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각하기와 물질적 노동 모두 다 ①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②자연과 대면하여 ③무엇인가 생산해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우리는 대상을 지각함으로써 지각편린, 즉 지각된 것percept을 생산해낸다. 따라서 기호생산의 첫 번째 삼자관계는‘물질(기호원료)―지각하기―지각편린’으로 이루어진다.하나의 작품이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려면 어떠한 형태로든 작가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지각되고 평가되어야만 한다. 즉 하나의 기호는 반드시‘사회적 지각편린’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 주관적이고도 개별적인 지각편린은‘기호화하기signifying’라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비로소‘기호’가 된다. 그리하여 기호현상의 두 번째 삼자관계는‘지각편린-기호화하기-기호’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기호는‘해석하기’에 의해 그 의미, 즉‘해석체interpretant’)를 실현해 낸다. 따라서 기호현상의 세 번째 삼자관계는‘기호―해석하기―해석체’이다. 기호현상의 세 가지 삼자관계도 모두 상품생산의 경우처럼‘물질적 대상―인간의 행위--생산된 것’이라는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여기서 첫 번째, 두 번째 하는 것은 설명의 편의를 위한 구분일 따름이지 기호현상이 꼭 그러한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의 기호 생산 과정은 오히려 세 번째 관계인‘기호―해석하기―해석체’부터 수행된다. 다른 사람들(관객)에 의해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하는 것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기호화하기에 의해 기호로 생산될 수 있는 지각의 대상을 만드는 것이다. 강의실에서 칠판에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선생이 어떤 단어를 써야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나서, 그 단어를 어떤 크기와 형태로 써야 강의실에 있는 학생 모두가 읽을 수 있을까를 결정한 후, 실제로 손과 팔을 움직여서 글을 쓰는 경우, 기호생산은 세 번째, 두 번째, 첫 번째의 삼자관계를 각각 거쳐서 이루어진다.교통sentation)이라고 일컫는-에 의해 일어나는 내적 커뮤니케이션은, 실재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화의 인간 커뮤니케이션과(거의)동일한 코드 또는 규칙(regles)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내적 커뮤니케이션도 상연을 전제로 쓴 작가의 작업, 즉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극적 관습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다.연극이 이중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라는 말은, 외적 커뮤니케이션과 내적 커뮤니케이션이 각기 다른 관습과 규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그 의미작용도 이중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 다시 말해 등장인물 A와 B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의미가 외적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는 내적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허구적인 이야기를 생산하는 1차 의미작용, 기호의 디노테이션, 명시적 내용 또는 환유는 내적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일어나며, 주제가 생산되는 2차 의미작용, 기호의 코노테이션, 또는 은유는 외적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또 한편으로는 작품의 성격 및 필요에 따라 내적 커뮤니케이션과 외적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이 서로 달라질 수 있음도 시사한다. 이를 다음과 같이 두개의 도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내적커뮤니케이션과 외적커뮤니케이션내적커뮤니케이션1차 의미작용외연작용명시내용환유이야기파뷸라외적커뮤니케이션2차 의미작용내포작용함축내용은유플롯주제관 객작가연출배우배우[무대 외적(사실커뮤니케이션)][무대 내적(허구커뮤니케이션)][즉각적 피드백][중재된 피드백][객 석]연기자등장인물등장인물연기자 연극 커뮤니케이션요컨대, '직접 보여주기‘ 예술이며 대상의 예술인 연극은 기호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없다. 그러나 연극은 직접 제시된 현존의 존재(사람이나 사물과 같은 대상)가 바로 부재의 존재(기호)가 되는 예술이다. 이처럼 연극은 대상이면서 기호라는 이중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기호학에서 간과하기 쉬운 연극
    예체능| 2004.06.05| 13페이지| 1,000원| 조회(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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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극 평가A좋아요
    ??Ⅹ?Ⅸ. 이탈리아와 르네상스르네상스를 바라보는 두 가지 대비되는 시각이 존재했다. 하나는 중세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시각과, 또 하나는 중세와의 연결을 강조하는 시각이 그러하다.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역사적 의의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두 가지 관점을 살펴보는 것은 그 시대의 연극을 바라보는 유효한 시각을 주는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했던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의 시각과 그 이후, 중세사 연구의 괄목한 성장으로 인해 접하게 되는, 그에 대한 비판을 살펴봄으로써 르네상스 연극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부르크하르트의 관점0. 인공물로서의 국가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대립은 이탈리아 내부에서 황제당과 교황당의 분열을 야기하여 지속적인 정치적 혼란의 요인이 되었다. 또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자치도시들이 난립하고, 중부에서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국가가 있었으나 그 휘하의 여러 귀족세력이 분열해 있었으며, 남부에서는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이 외국세력의 간섭과 침략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런 분열과 혼란은 유력한 당파 지도자나 용병대장에게 강력한 전권을 위임하여 내부의 안정을 찾으려는 소망으로 이어졌고, 그에 따라 서서히 전제군주들이 등장하여 자치를 누리던 도시공화국들은 군주국으로 변해갔다.14세기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은 더 이상 최고의 봉건군주가 아니라 잘해야 기성의 권력을 강화해주는 지도자 정도로 대접받았다. 교황 권은 그 스스로 통일을 이루지는 못하면서도 그를 좇는 추종자들과 지지 세력을 가짐으로써 미래의 어떠한 통일도 방해할 만큼 강력했다.() 14세기의 전제정치14세기에 등장한 크고 작은 전제국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국들은 독립된 국가로서, 또한 그것을 목표로 삼은 국가이었다. 모든 수단을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강구하는 것, 당시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군주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러한 행동은 전제국 내부의 절대 권력과 결합하여 아주 독특한단테는 정치 평론가이자 문필가로서 자신의 업적이 획기적이라는 것과, 자신은 그 방면에서 일인자로 불리길 원했다.유명인의 묘지 숭배도 생가 숭배의 일종이었다. 그 무렵 북유럽에서는 아직 ‘명소’라는 것이 생기지도 않았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자기네 출신이든 타지 사람이든 저명인의 유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상당한 명예심을 느꼈다. 어느 이상한 사람이 십자가가 있는 제단에서 등불을 가져다가 단테의 묘 옆에 놓았는데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받으십시오. 십자가에 달린신 저분보다는 당신이 이것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 후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자기 도시에 살았던 고대 시민들과 주민들을 추모하기 시작하였다.역사학과 지지학(地誌學)시인과 고전학자들은 세계적인 명성의 인물을 기리기 위해, 곧 유명 남녀들의 전기 총서를 제작하였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은 그들이 구사한 서술방식과 라틴어를 통해 오랫동안 서구의 독서계를 지배했으며, 이탈리아 시인들도 18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그 어느 나라 시인들보다 널리 세상에 알려져 있었다.무언가 거창하고 기억될 만한 것을 남기려는 절실한 욕구로 인해 세상의 이목을 끄는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로렌치노는 로마에 있는 고대 조각상을 훼손하여 몰차의 비방문으로 톡톡히 욕을 본 차에, 이 치욕을 잊게 해줄 ‘획기적인’ 일을 꾸민 것이 바로 자신의 친족이자 군주인 알레산드로 공작의 살해였다.(다) 근대적 조소와 기지명예와 근대적인 명성욕에 대해서뿐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개인주의 일반에 대해서도 조정장치로 기능한 것이 근대적인 조소와 경멸이었다. 14세기 등장한 단테야말로 경멸의 표현에서는 세상의 어느 시인보다 앞서 있었다. 특히 사기꾼들을 묘사한 저 거대한 지옥의 풍속화(『신곡』의 「지옥」편) 하나만으로도 그는 대희극의 거장으로 불려 마땅하다.15세기 중반에 가장 유명했던 익살꾼으로 세련된 기지로 알려진 피렌체 근방의 아를로토 신부와 광대짓에 능했던 페라라의 궁정광대 곤넬라가 있다. 프은 이 분야로 기울어 있었고, 그에 따라 여기저기서 혼합 가면극이 등장했다.무엇보다 희곡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들의 최고 개성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관조하는 능력을 타고났을 위대한 이탈리아 국민에게 이 같은 가면극은 사실상 보잘것없는 대용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희곡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이후로도 수백 년 동안이나 적대세력 때문에 막혀 있었고, 이탈리아인은 이 적대 세력의 등장에 일부의 책임밖에 없었다.인간의 발견은 개인과 민족의 정신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인간의 외모도 북유럽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고찰의 대상이었다. 육체의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판단을 했었다.이 방면의 대가는 보카치오였다. 그는 세밀한 묘사에 필요한 여유와 열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편소설에서 이 능력을 과시했다. 그는 『아메토의 요정 이야기』에서 약 100년 뒤의 화가가 그렸을 법한 방식으로 금발의 여인과 갈색 머리의 여인을 묘사했다.4. 사교와 축제() 신분의 동화중세에는 중세 특유의 궁정 풍속과 귀족들의 풍습과 예법이 있었고 중세만의 서민생활이 존재했다. 단지 그것이 나라마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핵심적인 면에서 중세와 가장 상반된 모습을 보인 것이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풍속이었다. 우선 그 토대부터가 달라서, 고급스러운 사교생활에서는 더 이상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근대적인 의미의 교양층만 있었다. 중세 때의 계급의식은 많든 적든 위력을 부렸지만, 시대의 일반적인 흐름은 분명히 근대적인 의미에서 신분의 융화로 나아가고 있었다.귀족과 시민이 적어도 12세기무터 도시에서 함께 살면서 행과 불행을 공유했고, 산중의 성곽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귀족의 오연한 자세가 애초부터 생길 수 없었다. 다음으로는 교회가 북유럽에서처럼 귀족의 젊은 자제들을 먹여 살리는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았다. 이어 절대군주와 전제군주들이 등장하면서 대다수 도시의 귀족들은 정치적 위험성이 없고 갖가지 향락으로 치장된 사이끌고 있었다는 것은 입증한다.또 다른 피렌체인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혹은 Petrarch)는 그 새로운 방향을 발견했다. 페트라르카는 피렌체 출신이면서도 장기간에 걸쳐 피렌체에 거주한 적이 없고, 아비뇽의 교황청에서 일해 본 경험을 가진 정치적 망명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페트라르카는 이탈리아에서보다는 남프랑스에서 성장했다.6. 휴머니스트 문화의 탄생이탈리아의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1808년 독일의 한 학자가 만들어 낸 것일 뿐, 르네상스 시대에 저술된 어떤 책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에 존재한 용어는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 휴머니스트 학문)였는데, 그것은 휴머니스트들이 매우 애호한 학문적 주제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 ‘휴머니스트’(라틴어로는 humanista)란 용어가 쓰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원래 특별한 과목들 - 문법, 수사학, 시, 역사학, 도덕철학-을 가르치는 교사를 지칭하는 학생들의 은어였다. 즉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문법학교의 휴머니스틀과 교양과목을 담당하는 대학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단의 과목들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고전문학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 아니었다.르네상스 시대에는 휴머니즘을 결코 철학으로 정의하는 일도 없었고, 이것을 학문적 주제로 삼아 가르치지도 않았다. 르네상스 전체를 통해 모든 진지한 철학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와 스콜라 철학 위에서 이루어졌다.‘잃어버린’ 고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문제는 숙고할 볼 가치가 있다.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이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모든 저작들은 라틴어 번역서로이기는 해도 입수해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7. 사고방식의 변화사람들은 고전어를 애써 숙달하고 고전문헌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문화사 사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언어와 문학을 회복시키는 일은 고대 로마문명의 고향인 이탈리아가 그 고대오가 주어졌다. 배우들은 그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이 맡은 배역의 대사와 상대배역과의 대화를 상황에 따라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나갔다. 따라서 상황에 즉흥적으로 대처할 줄 아는 배우의 창의력과 순발력이 매우 중요했다. 배우는 창조해 낸 인물에 부합하는 즉흥적인 대사를 만들어내고, 무대상에서 상황을 어떻게 즉흥적으로 대처할 것인가를 연구하며, 그 인물이 가지는 성격에 맞는 의상 등 연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가 직접 준비한다. 줄거리가 달라져도 같은 배우가 항상 같은 인물을 맡게 되므로 배우는 맡은 인물을 연기함에 있어서 굉장히 숙달된 연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즉흥연기하기에도 수월했다. 즉흥연기를 스테이지 비즈니스(stage business)라고 하는 희극 장면 연출법인 라찌(Lazzi)가 있었으므로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라찌(Lazzi)란?이탈리아어로 ‘돌다’, ‘속이다’ 또는 ‘이탈리아인의 비즈니스’를 의미했다.라찌는 독창적인 장치들과 코믹 비즈니스로 가득한 이탈리아 코메디 즉흥연기자들의 주된 자원들 중의 하나로 정교한 코믹 비즈니스였다. 라찌는 아를레끼토나 다른 인물들이 무대공포증이나 어떤 장면에서 템포감이 떨어질 때, 또는 연극이 주제와 거리감이 있는 농담들로 인해서 극 흐름에서 벗어났을 때, 자신의 대사를 강조하고 싶을 때 등 배우에 의해 자발적으로 장면 도중에 행해졌던 것들이었다. 따라서 라찌는 배우들의 영감과 상상력을 통해서 무대위에 나타났는데, 특히 몸의 유연성과 기민함이 요구되는 아를레끼노를 맡은 배우들은 이 라찌에 능통해 있어야만 했다.-풀치넬라(Pulcinella)와 그의 주인(Coviello)사이의 라찌* 혼동의 라찌: 코비엘로가 풀리첼라에게 사랑스런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고 그의 뒤에 숨어서 사랑과는 관계없는 허튼 소리를 속삭이고, 풀치넬라가 이를 따라하게 한다. 마지막에 코비엘로는 풀치넬라에게 교살하는 행위를 가르쳐주고 여자에게 그와 똑같이 하게 한다.* 파리 라찌: 주인의 집을 지키려다 나가려는 풀치넬라에었다.
    예체능| 2004.06.02| 72페이지| 1,500원| 조회(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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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요약본 평가A좋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시학』이후에 언급될 내용은 시의 일반적인 본질, 시의 여러 종류와 각 종류의 기능, 훌륭한 시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플롯의 구성, 시의 구성 요소의 수와 성질이 될 것이다.제1장〔기본 문제들〕서사시, 비극, 희극, 디튀람보스, 피리취주, 키타라 탄주는 모방의 양식이다. 그러나 모방의 수단, 모방의 대상, 모방의 양식(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즉 율동과 언어와 화성을 사용하여 모방하게 되더라도 이것들을 단독으로 혹은 혼합되어 사용되어 진다. 그밖에 화성 없이 언어만으로 모방하는 예술이 있는데 이때 언어는 산문이 아니면 운문이다. 운문의 경우 상이한 운율이 혼용되기도 하고 동일한 운율만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모방에는 고유한 명칭이 없으며, 운율의 이름에다 시인의 이름을 붙인 것들로써 이것은 시인이 사용하는 운율에 근거하여 붙인 공통된 명칭에 불과하다. 율동과 노래와 운문을 모두 사용한 예술이 있는데 디튀람보스와 송가(nomos)와 비극과 희극이다. 이들의 여러 가지 예술의 이러한 차이점을 모방 수단에 있어서의 차이 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은 이들의 차이점은 어떤 것들은 앞서 말한 수단들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고, 다는 것은 따로따로 번갈아 사용하는 데 있다.제2장〔모방의 대상〕모방하는 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데 행동하는 인간은 고상한 선인이나 비열한 악인이므로 사름들을 보통보다 더 좋게 또는 더 나쁘게 또는 보통과 같게 모방하게 된다. 이런 차이는 그림이나 춤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라 비극과 희극이 나누어진다. 희극은 사람들을 보통보다 못나게(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함), 비극은 더 잘나게(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함) 나타낸다.제3장〔모방의 방식〕모방을 구분함에 있어 모방의 대상들을 재현해내는 방식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어떤 대상을 모방하면서 한 가지 수단을 사용하되 3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를 써도 된다.■ 때로는 서술적이게 때로는 극중인물이 되어 말하기 ■ 처음부터 끝까지 한목소리(서술체)로 티로스극의 형식을 벗어버리고 짧은 스토리와 우스꽝스런 조사를 버리고 위엄을 띠었다. 단장 운율 이 장단 4보격 운율 을 대치했다. 대사가 도입되자 비극장르의 자연적 성질에 알맞은 운율이 저절로 어울렸는데, 단장운율 이 모든 운율 중에서 대화체에 가장 가깝다.■ 에피소드(삽화, 장면)의 수가 많아 졌다. 기타 여러 가지 기술적 장치들이 생겼다.제5장 〔희극과 서사시와 비극의 관계〕희극은 보통보다 못난 사람들의 모방이다. 그러나 인간의 온갖 악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아니며, 희극적인 것은 우스꽝스러운 것의 일종이다. 이것은 고통이나 파괴의 성질을 띠지 않는 일종의 결함과 창피를 말한다. 비극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만, 희극은 그렇지 못한데 이유는 희극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시적인 플롯 구조의 사용은 본래 시켈리아에서 온 것이며, 아테나이 시인들 중에서는 크라테스가 처음으로 단장격 욕설방식을 버리고 보편적인 이야기와 플롯을 엮어 냈다.서사시는 모방이라는 점과 일상 언어의 운율과 도덕적으로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비극과 일치하나, 일상 언어의 운율과 이야기라는 방식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극과 다르다. 또한 서사시는 시간제한이 없는데 반해 비극은 가능한 한 하루 동안의 일로 제한한다. 서사시의 속성들은 모두 비극에도 속하지만 비극의 모든 속성들이 서사시에 속하는 것은 아니므로 우수한 비극과 졸렬한 비극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서사시의 우열도 알 수 있다.제6장〔비극의 정의, 비극의 여섯 요소〕비극의 본질을 정의하자면 ■ 심각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 그 여러 부분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아름답게 꾸민 언어로 되어있고 ■ 이야기가 아닌 극적 연기의 방식을 취하며 ■ 연민과 두려움을 일으켜서 그런 감정들의 카타르시스 를 행하는 것이다. 그 여러 부분에 따라 여러 형식-> 어떤 부분은 운율적 언어로, 어떤 부분은 노래로 되어있 음아름답게 꾸민 언어->리듬과 선율이 있음비극적 모방은 배우들의 행동으로 제시되므로 시기 때문이다.제7장 〔비극적 플롯의 일반 원칙〕비극의 정의-> 완전하고 전체적이며 일정한 크기가 있는 행동의 모방전체->처음, 중간, 끝이 있음을 뜻한다. 잘 고안된 플롯은 임의 지점에서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 된다.플롯은 기억 속에 쉽게 담을 수 있는 길이여야 한다.여기에서 말하는 길이에 대한 기술적 정의는 연극 경연과 관객의 집중력과는 관계가 없다. 한 비극 작품의 적절한 크기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또는 그 반대의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들을 개연적, 또는 필연적으로 연결하는 데 필요한 범위로 제한된다.제8장 〔플롯의 통일성〕하나의 플롯은 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다고 해서 통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모방적 기술에서 모방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모방이다. 마찬가지로 플롯은 하나의 행동에 대한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단일한 행동을 모방한 것이어야 한다. 그 각각의 부분이 서로 긴밀히 짜여져 있어서 그 중 하나라도 자리를 옮기면 전체가 일그러지거나 망가지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요소가 들어 있든 없든 전체에 뚜렷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요소는 전체 중의 부분이 되지 못한다.제9장 〔개연적 및 필연적 연결성〕이상의 논리에서 볼 때 시인의 일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개연성이나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리라 기대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일어난 사실을 이야기하는 역사가와 다른 점이다. 이런 이유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며 더 심각하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때 보편적인 것이라 함은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의하여 어떤 종류의 인물이 어떤 종류의 말이나 행동을 함직함을 말한다. 시는 등장인물에게 특정한 이름들을 붙이면서도 바로 이러한 보편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희극에서는 개연적인 사건들로 플롯을 구성한 다음에 비로소 인물들에게 일상적인 이름을 부여한다. 비극에서는 실제 이름들을 고수하는데 이는 사람들은 가능한 것을 믿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데 전에 발생한 적이 없는 사와 비슷한 종류의 파괴적이거나 고통스러운 행위들이다.제12장〔비극의 부분들〕비극을 양적으로 구분 짓는 부분들은 도입(프롤로그), 장면(에피소드), 퇴장(엑서더스), 합창(코로스) 등이 있다. 합창부분은 합창입장(파로도스)과 합창노래(스타시몬)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은 모든 극에 공통된다. 반면 배우들의 노래와 응답(콤모스)은 일부의 극에만 있다.프롤로그-> 비극에서 합창대의 입장 앞에 오는 부분전부에피소드-> 완전한 두 곡의 합창 노래 사이에 있는 부분전부엑서더스-> 마지막 합창 노래에 뒤따르는 부분전부합창 중파로도스-> 처음의 합창전부스타시몬-> 장장단격이나 장단격이 아닌 운율로 되어있는 합창노래콤모스-> 합창대와 배우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탄식이다.제13장 〔플롯의 내용〕가장 우수한 비극의 구조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어야 하며, 두려움과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들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 선한 사람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두려움도, 연민도 일으키지 않고 오직 불쾌감만 줄 뿐이다. ■ 악한 사람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겨가는 모양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 ■ 극한 악한 사람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져서도 안 된다. 이런 플롯은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는 있으나 연민이나 두려움을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연민은 부당하게 불행을 겪는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고, 두려움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따라서 비극의 적절한 주인공은 그런 극단적인 인물들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사람으로 도덕성과 정의감이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아니며, 악한 기질과 악한 기질과 악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어떤 착오 때문에 불행에 빠지는 사람이다. 훌륭한 플롯은 단일해야 하고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 이중적이어서는 안 되며 불행에서 행복으로가 아니라 정반대로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 원인은 악한 본성 때문이 아니라 악하기보다 좋은 편인 사람이 저지른 중대한 착오나 실수여야 한다.그다음으로 좋은 형식은 이중구조를 .■ 인물은 실제 인간성과 같아야 한다.■ 인물은 일관된 성격을 가져야 한다.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모방의 대상일 경우에도 그 의 일관성 없음을 역시 일관되게 나타내야 한다.플롯구성과 마찬가지로 성격 구현에서도 언제나 필연성이나 개연성의 원칙을 추구하여 한 인물의 말이나 행동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이유가 있게 하여야 한다.사건들의 연결에 있어서도 얽힌 이야기 가닥들을 푸는 일도 플롯자체에서 생겨나야 한다. 초자연적 능력의 개입은 사람이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극의 범위 밖에서 생긴 사건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플롯의 사건들에 비합리적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비극은 우리자신보다 잘난 사람들의 모방이므로 시인은 성을 잘 내거나 게으르거나 결점이 있는 인물을 묘사하면서도 그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훌륭함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시의 기술에 반드시 끼어들게 마련인 판단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이런 일에 오류를 범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제16장〔깨달음의 수법〕깨달음의 종류■ 무슨 징표를 통한 깨달음이 있는데 이는 기술적으로 가장 열등하고 주로 능력부족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시인이 조작한 것으로 자연히 비예술적이다.■ 기억을 통한 깨달음이다. 무엇을 보거나 들을 때 예전에 경험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추리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깨달음이다.가장 잘된 깨달음은 사건들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는 개연적으로 연속되는 여러 행동을 통해 놀라움이 증폭되면서 생기는 경우이다.그다음으로 잘된 것은 합리적 추리에서 오는 깨달음이다.제17장 〔플롯 구성의 기본방식〕시인은 플롯을 구성하고 언어로써 세세한 부분들을 꾸미면서 가능한 한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상상해 봐야 한다. 이렇게 마치 자기가 사건이 발생하는 곳에 직접 가 있는 듯이 플롯을 최대한으로 생생하게 그려보는 사이에 시인은 자기 목적에 꼭 들어맞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모순 되는 점을 놓칠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된다. 가능한 한 시인은 창작과정에서 인물의 몸짓까지 포함하여 자세히 그려보아야 한다. 이다.
    예체능| 2004.03.26| 10페이지| 1,000원| 조회(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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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가부끼 정리
    1. 들어가는 글현재 일본에서 공연되고 있는 고전무대예술(古典文化藝術)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연극을 양식별로 분류하면 가부키(歌舞伎), 신파(新派), 신국극(新國劇), 신극(新劇), 경연극(輕演劇), 레뷰 그리고 노오(能), 교겡(狂言), 분라꾸(文樂) 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歌舞伎는 일본의 舞樂, 能, 狂言과 더불어 일본의 4대 연극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고전연극으로 가부키는 일본의 연희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연희로 처음부터 관객에게 흥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중극으로서 시각적 화려함과 독특한 무대 양식이 특징인 짙은 일본색을 가진 연극이라고 볼 수 있다. 노오(能)나 교겡(狂言)이 귀족과 무사의 연희였던 반면, 가부키(歌舞伎)는 에도시대에 서민의 연희로 탄생해 오늘날까지 4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연희로 여전히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2. 가부키(歌舞伎)의 어원가부키라는 말은 원래「가부쿠かぶく(傾く)」즉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또한 가부쿠かぶく란 「눈에 뜨이게 특이한 모습을 한다」「우스꽝스럽게 한다」「멋대로 행동한다」「호색한다」는 등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든 정상적인 궤도로부터 벗어난 행동을 가리킨다. 이런「가부쿠(傾く)」를 추구하려는 풍조는 16세기 말 당시의 젊은이와 호사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의 세계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6자(1.8미터)나 되는 큰 칼을 차고 다니거나, 3자 정도 되는 긴 담뱃대를 쓰거나, 포르투갈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부터 수입된 호화스러운 물건으로 실내 장식을 하는 등, 남의 눈에 확 띄도록 별난 언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부키모노(歌舞伎者, かぶきもの)」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전화되어 불량배나 노름꾼, 도적 등을 모두 가부키모노(歌舞伎 者, かぶきもの)라고 불렀던 것이다.따라서 가부키 풍속에는 자연히 해방적인 유희라든가 해학, 또는 호색(好色)이라는 뜻도 포함. 이것을 와고토 라고 한다. 겐로쿠 가부키는 가미가타와 에도에서 각각 독자적인 특색을 지닌 가부키연희로 성장해 간다. 즉, 저급했던 가부키는 1664년을 전후하여 본격적인 연극으로 발전하여 우수한 작가와 배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기간은 약 70-80년(1670-1750)이 걸렸다. 가부키 발생초기는 약 100년간의 전란이 끝난 후라서 문화의 전반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평화 시대로 들어선지 100년 쯤 경과하자 일반문화가 만개하게 되었다. 겐로쿠(元祿)가부키 또는 겐로꾸문화라 함은 겐로쿠시대(1688-1703)까지의 의미가 아니라 겐로쿠시대를 중심으로 한 70-80년간을 말한다. 겐로꾸 시대는 일본역사상 최초로 민중의 무화가 꽃피워진 시대였다. 겐로쿠 시대는 도시 조닌(새로 성장한 도시 자본가)의 경제적 성장과 부의 축적을 배경으로 여러 가지 서민문화가 일제히 꽃피었던시기이며, 가부키는 그 대표로서 에도, 가미가타에서 제각기 독자적인 양식이 탄생하고 내용이 복잡해짐에 따라 배우의 역할이 분화 정비되어 연기술이 확립된 시기였다. 그에 따라 연기 연출의 유형이 많이 형성되었다. 에도에서는 초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창시한 아라고토(괴력, 용맹한 무사라든지 초인적인 귀신 등을 주역으로 하는 연극)가 무사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흥도시의 거친 기풍에 맞아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편 교토에서는 초대 사카타 도주로를 대표로 한 초기 가부키의 유곽놀이 연극의 전통을 이은 와고토의 연기양식이 확립된다. 성인 남자가 중심이 된 야로 가부키는 점차 종래의 여자 가부키, 미소년 가부키 중에 있던 노오가쿠의 연희 형식을 섭취해 갔다. 당시 가부키의 연희 내용과 형식도 노오가쿠에서 가져온 것이 많았으며, 거기에 풍류춤 같은, 민간에서 유행한 가무가 함께 어우러져 사실성이 짙은 것으로 발전해 갔다.이막, 삼막의 연속극이 가부키에 나타남으로써 배우들도 이 때까지의 연기로서는 마음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온나가타를 잘하는 사람, 미남으로 주역을 맡는 사람, 는 河竹默阿 와 제휴하여 그에게 수많은 각본을 받았다. 잔기리 교겐(散切狂言)도 그 중 하나이다. 1872年(明治 5年) 佐橋富三郞의 「其紛色陶器交易(소노이로 도리토키노 고우에끼)」, 「靴補童敎章(쿠쓰나오시 와라베오 오시에)」등이 교토(京都)에서 상연되었고, 도꾜(東京)에서는 그 다음해 河竹默阿 의 「東京日新聞(도꾜 니치니치 신분)」이 10月 마모다자(守田座)에서 상연되었다. 잔기리 교겐(散切狂言)은 1877年(明治 10年)정도부터 10여年간 이따금씩 공연되었지만, 그 후에는 연기되어지지 않았다. 默阿 는 생애 24편의 잔기리 교겐(散切狂言)을 썼으며, 역사적으로 잔기리 교겐(散切狂言)은 가부끼(歌舞伎)에서 신파(新派)로의 중개자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시대의 풍속극이라고 해도 작극법(作劇法), 연출법 등 모두 가부끼(歌舞伎)와 같아서 본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못하고, 가부끼(歌舞伎)에서 나온 잔기리모노(散切物)도 신파(新派)의 출현에 의해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1886年(明治 19年)에는 연극 개량회(演劇改良會)가 조직되어, 다음 해 텐란 가부끼(天覽歌舞伎)의 상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1877年(明治 10年) 이후의 연극 개량 운동(演劇改良運動)의 귀결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즉 1878年(明治 11年) 4月 당시의 위정자와 十郞(단주로), 勘 등이 모여서 가부끼(歌舞伎)의 개량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개량 운동의 제 1보가 내딛어져, 이후 차차 이러한 풍조가 두드러지게 되어 연극 개량회(演劇 改良會)의 조직화를 보기에 이른다.이 사이에 앞서 말했듯이 十郞(단주로)의 활력극(活歷劇)과 菊五郞의 잔기리모노(散切物)가 공연되어지고, 또 흥행사인 守田勘 는 외인극(外人劇)을 흥행시키는 등 연극계로써도 정계와 호응해서 착착 개량의 방향을 만들어 가게 된다. 또 요직자의 파티에 있어서의 출장 공연, 외국 귀빈의 관극(觀劇) 등도 이루어지게 되어, 정계에 대한 연극계의 협력 상태가 발전되어, 이들 사상(事象)의 연장 상에 텐란게끼(天覽劇)가 「モンナウンナ」(メ�テルリン作) 「祖國」(サルドウ�作) 등의 번안을 냈다. 흥행사로서의 川上(가와카미)는 여배우의 육성과 함께 2, 3류 배우를 같은 극장에 출연시켰으며, 같은 공연물을 갖고 각지에 흥행한 「川上革新 (가와카미 혁신단)」을 조직해 활동했다.1910年(明治 43年)에는 다시 제도권 배우 생활에 들어가, 그가 말한 정극(正劇)의 상연에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다. 그 해 그는 또 오사까(大阪)에서 「帝國座(데고쿠자)」라고 하는 극장을 건설해 1896年(明治 39年) 「川上座(가와카미자)」의 실패를 되돌리려고 했다. 「帝國座(데고쿠자)」는 순 서양식의 극장으로, 극단의 작자인 柳川春葉, 佐藤紅錄에게 부탁해 재기를 기대했지만, 1911年(明治 44年) 11月 새롭게 변하는 시대에 족적을 남긴 채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전술한 대로 1891年(明治 24年) 1月 伊井蓉峰의 지도와 함께 세웠던 「濟美館(사이비깐)」은 「伊佐水 演劇(이사미 연극)」이라 하여 1895年(明治 28年) 아사쿠자자(淺草座)에 출연했지만, 곧 분열되었다. 이어서 1901年(明治 34年)부터 5年에 걸쳐 니혼바시(日本橋)의 마묘자(眞妙座)에서 「女夫劇(미요도게끼)」를 공연했으며, 그 중에 近松門座衛門(치카마쓰 몬자이몬)의 작품은 「天の網島(텐노 아미지마)」, 「堀川波の鼓(호리까와나미노 쯔즈미)」, 「心中宵庚申(신쥬 요이고신)」, 「冥途の飛脚(메이도노 히끼야꾸)」, 「夕霧阿波鳴門(유우기리 아와노 나루또)」등으로 계속되었다. 이른바「近松硏究劇(치카마쓰 연구극)」으로 연극사적으로 주목해도 좋을 사건이었다. 그 후 伊井(이이)는 小山內薰(오사나이 카오루)의 연출로 「Romeo and Juliet(ロメオとジュリエット, 로미오와 줄리엣)」과「サップオ」등을 상연하였고, 1912年(明治 45年) 7월 메이지자(明治座)를 매수해서 「己が罪」「夏草物語」등을 공연했지만, 경영면에서 그다지 원활하지 못해, 메이지자(明治座)는 1919年(大正 8年) 松竹의 경영으로 옮겨지게 된다.伊井(이이)는 1915年(大을 필요로 한다. 다테는 항상 반주음악을 타고 행해지며 리드미컬하고 무용적이고 유동미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다. 다테에는 반드시 일정한 형이 있다. 주역을 어떻게 하면 빛나게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다테의 기본이 있다. 다테에 사용하는 무기에는 검 외에 창, 왜장도, 봉, 짓테, 사닥다리등이 있다.c. 롯뽀(六法)가부키에서 배우들이 무대에 들어설 때 손발을 내저으며 위세 있게 걷는 걸음걸이를 말한다. 앞으로 나갈 때 왼발과 왼손, 오른발과 오른손을 같은 쪽으로 내미는 걸음걸이이다.d. 단마리가부키 연기의 하나로서 한자로는 암투 또는 암도 라고도 쓴다. 등장인물들이 어둠 속에서 대사 없이 무언으로 서로 더듬어 찾는 동작을 과시하는 연기법을 말한다.e. 게렝무대에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교묘한 기교와 수법의 뜻으로 쓰이고, 가부키의 연기와 기예에도 응용하게 되었다. 몸을 공중에 뜨게 하는 장치, 재빨리 변신하는 연기, 겉옷을 재빨리 벗고 속에 입은 옷을 드러내는 연기 따위를 말한다. 곡예적인 요소를 도입해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f. 배우의 세습배우는 세습제. 어려서부터 많은 수련을 쌓으며 부친이나 스승으로부터 연기형식과 팬들까지 물려받는다고 한다.2) 음악성가부키의 음악은 악기나 도구를 사용하는 반주, 효과음악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첫째, 무대 왼쪽은 검정 발 속에서 연주하는 게자 음악이고 이는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노래, 샤미센, 악기 등으로 구성되며 이들을 이용하여 장면에 적합한 분위기나 바람, 비같은 의성음을 담당한다.두 번째로 관객으로부터 보이는 장소에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이는 게자 음악처럼 극 진행을 돕기 위한 반주나 효과음이 아니라 배우의 기예와 대등하게 연주자 개인의 기예를 들려주려는 성격이 강하다.세 번째로 나무막대이다. 막을 열거나 닫을 때의 신호이며 동시에 배우가 대기실로 들어가거나 대기실에 개막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나무막대로 나무바닥을 치는 소리로 클라이막스의 선명한 인상을 주기도 하며 발소리나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의 의한다.
    예체능| 2004.03.10| 32페이지| 1,000원| 조회(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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