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질역학 프리젠테이션 -흙의 응력경로-학번 : 1999018198 학과 : 토 목 공 학 과 성명 : 박 상 민지중응력은 두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흙의 하중으로 인하여 생기는 응력을 상재압력 또는 초기응력 이라 한다. 외부하중으로 인한 응력의 증가분 이다.● 지중응력 분포● 상재압력연직응력연직응력 = 수평응력 = 전단응력 =● 상재하중이 재하되지 않을경우● Mohr원 이용최대주응력면 최대주응력 최소주응력● 좌표에 따른 응력● 응력경로(stress path)● 응력경로의 기본개념 : 흙이 파괴에 이를 때까지 응력을 받는 상태를 연속해서 표시한 경로를 응력 경로라 한다.연직응력증가 수평응력증가 전단응력증가● 상재하중 재하시● 응력경로(Stress path)(q)(p)● p-q 다이아그램p-q 다이아그램이란? 'Mohr원을 점(Mohr원의 꼭지점)으로 표시한 것'● 하중재하 전 상재압력● 하중재하 후 응력로서, 초기상재압력의 p,q값은 항상 Ko선 상에 있게 된다.● p,q의 정확한 이해p와 q는 Mohr 원의 꼭지점이라 하였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Mohr원 하나에 꼭지점이 두개씩 존재한다. 즉, 위 꼭지점과 아래꼭지점이 그것이다.● 주응력의 방향이 연직/수평방향일 때에 의하여 p,q값을 구할 수 있는 경우는 연직방향과 수평방향이 주응력이 되는 경우이다. 식(5.41)을 보면 인 경우,즉 수평 방향 응력이 최대주응력,연직방향 응력이 최소주응 력이 되는 경우 q값이 (–) 로 되어,아래 꼭지점이 (p,q)응력을 나타내는 점이 된다.● p,q좌표 도입 시 부호(+) 인 경우 : σ1 이 연직방향이거나, 연직방향으로부터 이내인 경우 (-) 인 경우 : σ1 이 수평방향이거나, 수평방향으로부터 이내인 경우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최근 일본의 독도탐사로 인해 독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한국이 침탈당하고 있는 권리는 무릇 독도뿐은 아닐것이다. 을사늑약으로 인한 외교권 박탈로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체결된 간도협약과 이미 유명해진 중국의 동방공정사업등 우리가 되찾아야할 권리는 너무 많은 듯 하다. 특히, 이번 독도 탐사를 구실로 한 도발 행위는 1876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맺은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상기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윤오호사건을 구실로 체결한 강화도 조약 전문 중 제 7관에 ‘조선국 연해의 섬과 암초는 극히 위험 하므로 일본국의 항해자가 자유롭게 해안을 측량하도록 허가한다.’ 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 생각된다. 이에 따른 독도문제의 발생 원인과 경과 그리고 각국의 입장을 살펴보도록 하자.I. 독도 문제의 발생 원인과 경과1952년 4월28일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장 제2조 (a)항은 이렇게 돼 있다. “일본은 조선(Korea)의 독립을 승인한다. 제주도, 거문도, 그리고 Dagelet(울릉도인지 독도인지는 여전히 불명) 등의 섬들을 포함한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와 자격, 청구권을 포기한다.”일본은 이 가운데서 ‘Dagelet’이 울릉도라고 주장하면서, 초안에선 원래 ‘제주도·거문도·독도’였는데 최종안에서 이처럼 독도가 울릉도로 바뀌었다는 걸 독도 영유권의 유력한 근거로 삼고 있다. 초안이 어떻게 돼 있었던간에, 이 제2장 ‘영토’ 항목의 기본정신은 일본이 침략으로 강점한 모든 외국영토을 이제 원래대로 돌려주기로 한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이처럼 조선 영토를 비롯해 대만, 펑후열도, 쿠릴열도, 스프라틀리(난샤) 군도, 남극대륙과 사할린 등이 포함된다고 명기돼 있다.일본은 Dagelet이 울릉도라면 독도는 조선에 돌려줘야 할 땅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니 일본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면 제주도와 거문도, 그리고 Dagelet을 제외한 모든 한반도 부속도서들은 거제도 진도 완도 강화도 흑산도에 이르기까지 전부훈독하면 '독섬' 혹은 '돌섬'이 되는데, 지금도 울릉도민들은 독도를 '독섬' 혹은 '돌섬'이라 부르고 있다. 1906년(광무 10) 4월초 울도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에 "본군소속 독도가 재어외양 100여 리에 이삿더니……" 운운하고 있는데, '독도'는 독섬, 즉 석도에서 차음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칙령 제41호는 대한제국 정부가 독도를 그 판도로 재확인한 것을 의미한다.일본 메이지 정부도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를 반포하기 이전부터 량고시마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 전쟁중인 1905년 2월 돌연 량고시마를 다케시마로 명명,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로 그 영토를 편입시켰다. 그것은 일본의 국운을 걸었다고 하는 '동해해전'을 얼마 앞둔 시기로 러시아 전쟁 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영토편입 고시절차가 비밀스러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측이 일본의 독도영토 편입을 알게된 것은 1906년 4월초였다. 참정대신 박제순은 이해 5월 20일자 지령 제3호를 통하여 독도의 일본영토 편입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그뒤의 한·일 양국 간 독도영유권과 관련된 교섭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하여는 한국 정부의 외교권이 1905년 11월부터 일본에 접수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러 일본이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는 것은 원래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닌 한국영토임을 역설하는 논리적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일본이 주장하는 ‘무주지 선점’ 즉 일본이 주인이 없는 독도를 선점했다는 주장에 어긋난다 할 수 있다.II.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일관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고유영토설과 편입설을 모두 주장하였다. 이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면 어떻게 편입이 가능하겠냐는 한국의 반박에 그 후에는 편입설만을 주장하였다가 이제는 고유영토설과 편입설을 섞어 그럴듯한 논리를 세우고 있다. 즉, 일본의 고유영토였던 독도를 1905년 공식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하였다는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논리가 얼마나 어의없는 억지 주장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독도가 그들의 설명대로 임자없는 땅이었냐부터가 문제의 시작이 될 것이다.분명히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독도는 512년부터 우리의 영토로서 함께 살아 숨위어 왔습니다. 우선 그들이 주장하는 1905년의 시기 이전까지 우리 한국영토에서 독도의 역사가 어떠했느냐를 증명하는 것은 물론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 분명히 일본의 자료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1905년에 발견된 지도 이외에도 1905년 이후에 만들어진 지도에서도 독도가 한국령임을 표기해 놓은 것들이 있다.1) 1905년 7월 31일자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울릉도 현황' 보고서2) 1910년에 박애관에서 발간한 '조선전도'3) 일본 해군성 수로부에서 발간한 '일본수로지' 제6권4)1920년에 발간한 동 수로지 제 10권 상5) 동 수로부에서 1923년과 1933년에 각각 발간한 '조선연안 수로지'6) '역사지리' 제55권 6호(1930)에 수록된 오께바따세꼬의 논문인 "일본해에 있는 죽도의 일선 관계에 대하여"7) 1933년에 발간된 시바구즈모리의 '신편일본사지도' 색인8) 1935년에 발간된 샤꾸오꽅나이의 '조선과 만주 안내' 9) 1936년에 일본육군참모 본부 육지 측량부에서 발간한 '지도구역일람도'등을 들 수 있습니다.(참고서적 : 김병렬, '독도냐 다께시마냐'. 다다미디어)이러한 증거들을 제쳐 두고라도 , 만일 진정 그들이 독도를 선점하였더라고 한다면 선점후의 그들의 태도가 어떠하였냐 하는 것이겠다. 만일 당당하게 그들이 주인없는 섬을 차지했더라고 한다면 대외적이고 공식적인 공고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중요한 편입처리가 은밀하고 암암리에 일 개 현 과청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에 더해서 국제적으로 가장 큰 효력을 가지는 부분인 '실효적 지배'도 전연 이루어지지 않았다.● 1905년 시마네현 고시 공포 이후, 일본은 독도를 일본의 관유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끝에 프랑스가 패소했다. {110년간이나 우리 어민이 영해안에서 조업을 했으니 그 섬들의 영유권도 확보한 것}이라는 프랑스의 주장에 대해 재판소는 {1839년의 협정은 어업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영토문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법 이론이 그러니 할 수 없다}며 프랑스 출신 판사까지도 다수 의견에 동조했다.이 판례는 우리의 경우와 매우 흡사한 데 이러한 국제판례까지 도외시하고 {이번 협정에 독도 영유권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우리 쪽에서 할 말이 아니다. 나아가 [이번 협정은 어업만을 위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으니 이 점은 이로써 끝난다.우리의 영토인 독도가 유인도냐, 무인도냐 하는 논쟁 역시 현행 해양법상 무인도라는 것이 분명하고 무인도로 다루어도 영유권에 영향을주지 않으며 나아가서 EEZ(배태적 경제수역)의 기점으로 하지 않아도 우리의 국익상 추호도 손해가 없다.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성급히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 장차 유인도로 개발한 후의 일은 그때 가서 따지면 된다.무인도의 EEZ 기점 문제에 관해서는 영국의 [로크올] 바위섬 문제가 선례로 꼽힌다. 영국은 지난 77년 이 섬을 기점으로 200해리 어업수역을 선포했다가 97년에 철회하고 12해리 영해만 두기로 했다.이번 한-일 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해서 전개되고 있는여러 논점중에는 사실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흔적이 여러 군데 보인다.첫째,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서 옛날의 연합군사령부지령(SCAPIN)을 논하는 것은 그것을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증거다. 독도 영유권이 하필이면 겨우 그런 것까지 원용을 해야만 확보가 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둘째, 일-중 어업협정에는 분쟁중인 센카쿠 조어도가 공동규제수역 밖에 있는데 우리는 독도가 중간수역에 있다는 지적 역시 일-중협정을 잘못 읽고 있다.셋째, 한-일 어업협정에 독도가 표기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위에 말한대로 이번 협정은 어업만을 위한 것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넷째, 일부 보도에서 [이번 협정국의 권리와 접속수역에 관한 연안국의 권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별개의 수역으로 공존합니다.○ 접속수역과 배타적경제수역이 겹치는 수역에서 연안국은 접속수역에 대한 권리와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권리를 모두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업협정에 의하여 영해 외측의 일부 수역이 중간수역화 되고 이 수역에서 "어업에 관한 연안국의 법령"의 적용이 제한을 받게 됩니다. 접속수역에 관한 법령은 "어업에 관한 법령"이 아니기 때문에 어업협정에 의하여 제약을 받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어업협정 체결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독도 영해 외측에 설정된 접속수역에서 관할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습니다.○ 배타적경제수역으로 일본에 대항하느니 차라리 평화선으로 대항하는 것이 낫다고 어느 학자가 주장한 바 있습니다. 1952년 선포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의 선언]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평화선 선언이 배타적경제수역 제도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평화선 선언은 1953년에 어업자원보호법으로 입법되었습니다. 평화선은 자연자원에 대한 주권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1982년 채택되어 1994년 발효한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에 의하여 도입된 배타적경제수역에서는 연안국의 자연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뿐만 아니라 해양환경 관할권, 해양과학조사 관할권, 인공섬의 건설과 운영에 관한 관할권등 평화선보다도 더 포괄적인 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평화선보다는 배타적경제수역이 더 강한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선으로 대항할 때, 일본이 평화선보다도 더 강력한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대항해 오면 누가 유리합니까? 평화선으로 차지할 수 있는 수역의 범위를 보더라도, 평화선은 배타적경제수역보다 불리합니다. 평화선은 독도로부터 약 8.5해리 지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3해리 영해가 보편적이던 시대에 이런 선은 대단히 과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2해리 영해와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 시대에 독도로부터 8.5해리 지점을 통과하는 평화선을 한ㆍ일간 경계닙니다.
파울러와 신앙발달신앙 발달에 관한 연구 조사와 신앙 발달 이론은 70년대와 80년대 초에 등장했다. 이것은 콜버그(Lawrence Kohlberg)와 그의 동료들에 의한 도덕적 사고의 발달에 관한 연구를 뒤따랐다. 파울러는 4세부터 88세까지 400명이 넘는 사람들과 8년 간에 걸친 면담을 통해 신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앙발달의 단계(Stages of Faith) 이론"을 펴낸 것이다. 파울러에게 있어서 신앙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 관심사"로서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순례의 길이다. 파울러는 신앙을 관계성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앙은 자아(self)와 타인(other)과의 사이에서 날마다 변하는 세계(world) 안에서 초월자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인지는 이미지부터 시작되어 그 속에 저장되고, 상상(Imagination)은 성숙한 신앙의 한 요소로서 역동적인 삶을 추구하게 하는 힘이라고 본다. 신앙의 반대현상은 의심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상상(Imagination)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허무주의(nihilism)라는 것이다. 파울러의 6단계 신앙발달 이론은 피아제의 논리형태론, 콜버그의 도덕발달론, 에릭슨의 자아이론을 적용하여 제시한 것이다.1. 파울러의 신앙의 기본 개념파울러(Fowler)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연구한 것을 "신앙의 기원과 성장"에 대한 조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조사에서 사실이라고 여겨졌던 것에 대하여 쓴 책이「신앙의 발달 단계」이다. 파울러는 이러한 경험적 연구를 통하여 신앙 발달 이론을 하나의 발달 이론으로 정립한 이론 창시자이다. 파울러는 신앙과 성숙한 신앙이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신앙 발달을 배양해 내며, 또한 신앙은 발달해 가는 것인가 등의 매우 중요한 질문에 제기하고 답한다. 그러면, 파울러의 주된 관심은 무엇일까? 파울러는 신앙이 "일평생을 통해" 어떻게 "발달"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신앙을 연구했다. 파울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앙의 발달은해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공동체는 신앙을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요 6:44 ; 엡 2:8)이라고 생각했고, 생명력 있는 기독교 신앙을 증진시키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울러는 이러한 전통적인 신앙의 개념보다는 신앙을 하나의 복합적인 현상으로서, 그것은 의미의 변형과 유지와 관계가 있는 앎과 존재의 양식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파울러는 신앙은 특성, 패턴, 그리고 통일성을 가짐으로서,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한다고 본다. 우리를 압박하는 많은 힘들과 요구들 가운데서도, 신앙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보충하며 더 나은 존재가 되게 하는 힘과 가치의 중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신앙의 이해는 지금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신앙의 이해가 기독교교육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그룸은 기독교 신앙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응답 속에서 생활하는 삶"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러한 신앙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파울러의 신앙 발달 이론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생의 방식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이 삶의 형태와 양식은 어떤 것인가? 등의 구체적인 신앙적 삶의 형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파울러의 이론이 중요한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파울러는 신앙을 인간의 보편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한편, 그가 발견한 내용들은 기독교 신앙에 관하여 언급된 내용들(신앙의 지적, 정적, 행동적 차원)을 보다 분명하게 밝혀 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신앙의 세 차원 모두를 포함하도록 확장될 때 교육가의 과제는 신앙의 전통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파울러의 이론이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룸은 우리의 과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총의 도우심으로 또한 그들의 신앙 안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통하여 양육하는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앙 안에성된다. 이러한 선취적 작용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상상되며, 또는 얼마나 그러한 힘들이 인식되지 못하고 무시되느냐의 문제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이러한 파울러의 신앙의 보편성에 대한 이해는 근본적으로 틸리히(Paul Tillich)와 니버(Richard Niebuhr), 그리고 스미스의 신앙 개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틸리히는 그의 책 Dynamics of Faith에서 신앙을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상태"로 이해했다. 그는 신앙을 종교 또는 신념과 너무 쉽사리 동일시하는 것을 일축하면서, "어떤 가치들이 인간의 삶에서 구심력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우리의 궁극적 관심사들의 실재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궁극적 관심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신적 가치들(god values)"로서, 그 궁극적 관심이 명성이나 힘, 부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가족, 대학, 국가 또는 교회에 투입될 수 있으며, 혹은 사랑이나 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궁극적 관심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궁극적 관심은 신조 또는 일련의 교리적인 명제들에 대한 신념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다. 그래서 파울러는 이러한 신앙의 이해에 근거하여, 신앙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어떻게 내기에 걸고 있는가에 관계가 있으며, 신앙은 우리가 우리의 가장 깊은 사랑과 우리의 가장 고귀한 충성들을 투자하는 방법들을 형성해 준다고 생각하였다.이에 반해 니버는 신앙을 유아기에 우리를 길러 준 사람들과 맺게 되는 최초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신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신뢰와 성실, 혹은 불신과 배신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성장한다고 보았다. 니버는 신앙의 핵심을 신뢰와 충성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신앙은 가치의 근원과 충성의 대상으로서의 어떤 실체에 대한 신뢰와 충성의 태도와 행위이다. 이 인격적 태도 또는 행동은 양면적이다. 이는 자아에 집착하는 가치에 대한 언급과 그리고 자아가 향하 영향을 미치어 우리를 확대시키기로 하고 위축시키기도 하며, 우리를 형성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를 파괴시키기도 하는 강력한 힘의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유지시키고 "존재를 더욱" 결속시켜 줄 것을 약속하는 힘들에 충성을 바치고 우리 자신을 헌신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적 가치를 소유하는 가치와 힘들의 중심은 우리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위험한 권력의 세계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음을 약속하는 것이라는 것이다.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신앙에 관하여 성찰해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서로 다른 다양한 신앙 관계를 나타내는 삼각형들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파울러는 말한다. 파울러는 우리가 맡고 있는 각각의 역할들을 통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고 있는 각각의 의미 있는 관계들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가 일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각각의 제도를 통하여 우리는 가치와 힘의 중심들에 대한 공유된 신뢰와 충성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됨으로, 이들 각각의 맥락에서 우리는 공통의 목표들을 가지며, 공유된 의미들을 소유하며, 공유된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공통된 희망들을 기념하고 갱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신앙은 이렇듯 다양한 역할들과 맥락들 및 의미들을 통합시키고, 효과적으로 화합시킬 수 있어야 함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3) 상상으로서의 신앙파울러는 신앙은 우리의 삶을 우리가 궁극적 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전체적 이미지들과 관계시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고 제시한다. 신앙은 가치와 힘들의 중심에 우리를 결속시키고, 우리를 공유된 신뢰와 충성의 공동체 안으로 삼각형적인 연결을 가능케 함으로써 궁극적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 구성에 그 형태와 내용을 부여해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상상으로서의 신앙은 우리의 실존의 궁극적 조건들을 포착하여 그것들을 포괄적인 이미지로 통일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미지에 비추어 우리의 반응들과 주도성들, 즉 우리의 행동들을 구성한다. 상내지는 삶의 중심적인 가치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다른 것보다 포괄적이고 중심적이라고 한다.이 앎이란 인간이 갖는 어느 한 기능만을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식의 기능이 참여한다. 여기에는 이해하고 깨닫는 인지적인 측면과 함께 신뢰, 충성, 의지와 같은 정적인 측면도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동시에 이 앎에는 자신을 투자하고 헌신한다는 의미에서 객관적인 방관자의 자세가 아닌 참여적이다. 그가 앎으로서의 신앙을 정의하면서 "구성한다", "형성한다", "유지한다", "집착한다", "투자한다", "헌신한다"등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앎"으로서의 신앙은 오늘날의 객관적, 과학적 인식론과의 차이를 가진다. 특히 파울러는 피아제나 콜버그의 이론에서 나타난 인식과 신앙의 인식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며 먼저 감정적 차원에서의 차이를 말한다. 피아제나 콜버그가 인식의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면에 치중되어 있으며, 신앙적 인식은 이를 넘어선다고 주장한다. 물론 신앙의 인식에는 논리적이고 객관적 인식의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제한되지는 않으며 감정적이고 상상적이며 전체적인 인식의 형태가 참여된다고 한다. 그는 전자를 이성적 확실성의 논리, 후자를 확신의 논리라고 부른다. 전자의 논리는 우리는 신앙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는 가능한 자아의 참여를 억제해야 하며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인식해야 한다. 후자의 논리에서 우리는 주관적으로, 실존적으로 참여하며 대상이 우리에게 말하고 요구하는 것을 듣고 응답한다. 그러기에 신앙의 인식에는 자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3. 신앙의 구조파울러는 신앙에 대한 탐구를 구조주의적인 관점으로부터 시도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사고와 개념에 깃들어 있는 기초적인 구조들 또는 작용들" 다시 말해서 신앙 활동을 하게 하는 인간 능력이 지니는 법칙들과 규격화된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파울러는 피아제나 콜버그와 같은 여러 발달론자들에 의해 지식을 제공받고 또한 자신의 독자적인 탐구를 통하여 인간이 신앙 .
1. '도덕성'에 관한 고찰심리학자들은 도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정의적 요소, 인지적 요소, 행동적 요소를 가정하여 연구해왔으며 각각의 입장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측면이 다르다. 먼저 정신분석이론가들은 도덕발달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다. Freud에 의하면 자녀가 부모를 얼마나 좋아하는가가 부모의 도덕기준을 내면화하는데 영향을 준다. 그리고 부모의 도덕기준을 내면화한 아동은 그것을 위반했을 때 죄책감이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인지발달이론가들은 도덕의 인지적 측면 또는 도덕적 추론을 강조하였고 도덕에 대한 아동의 사고방식이 성숙하면서 도덕적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사회학습이론가와 사회정보처리 이론가들은 어떻게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억제하고 유혹에 저항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1) 프로이드의 도덕성에 대한 주장프로이드에 따르면 초자아는 남근기에 발달하는데(3-6세) 그 시기에 아동들은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 상간적 욕망 때문에 동성부모에 대한 적대적 경쟁심을 경험하게 된다. 우선 소년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적대감이 형성되고,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아동들은 아버지의 도덕기준을 포함한 여러 속성을 내면화한다. 프로이드는 남성의 초자아가 아동초기에 출현해서 6-7세에 성숙되며 이에 따라 외디푸스 갈등이 해소된다고 가정했다.소녀들은 아버지의 애정을 두고 엄마와 경쟁하기 시작하는 남근기 동안에 비슷한 갈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측되나, 소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것만큼 어머니를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어머니들은 소녀들을 결코 거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도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동일시하면서 두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드는 여성들의 초자아가 남성들에 비해 더 약하다고 믿었다.2) 도덕성에 대한 피아제의 주장Piaget은 도덕 발달의 기본골격을 마련하우연히 컵 15개를 깨뜨린 아이가 잼을 훔치려다 컵 한 개를 깬 아이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즉 자신이 나쁜 행동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2) 상대적 도덕성(자율적 도덕성)의 단계10-11세가 되면, 도덕발달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자율적 도덕단계의 아동들은 사회규칙들이 변경될 수 있으며, 규칙이 사람들의 동의여하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임의적 합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규칙이란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위배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제 아동은 행동 자체의 객관적 결과보다는 의도에 의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다.2. 콜버그의 도덕발달 이론콜버그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10, 13, 16세의 소년들의 반응을 토대로 Piaget의 도덕발달이론을 정교화하고 확장시켜왔다. 딜레마를 보고 소년들은 두 가지, 즉 규칙, 법, 권위적 인물에 복종하는 것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규칙과 명령을 어기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여기서 콜버그는 삐아제가 도덕성을 타율적 도덕성과 자율적 도덕성으로 양분한 것은 도덕성 발달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삐아제가 주로 어린이를 연구의 대상으로 한 것에서 성인까지 확대하여 도덕성 발달을 3 수준 6 단계로 확대하여 제시하였다. 콜버그는 그의 도덕성 연구에서 질문지를 사용하였다. 콜버그는 질문에서 단순하게 "예" 혹은 "아니오"라는 응답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논리에 관심을 두었다.- 하인즈가 약을 훔치다"유럽의 한 부인이 특수한 종류의 암을 앓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 부인의 병을 치료하는데는 오직 한 가지 약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약은 같은 마을에 사는 어느 약사가 최근에 발명한 라디움 종류의 약이었다. 그 약을 만드는데는 원가가 상당히 비싼 데다가, 그 약사는 약값을 원가의 10배나 요구하였다. 라디움을 200 달러에 구입해 가지고 그 조그만 약을 2,000 달러에 팔려고 한 의 문제를 어린이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도덕성 판단 단계에 맞게 소집단을 형성하여 도덕성 문제 및 도덕적 가치 갈등에 대하여 토론을 하게 함으로써 도덕성발달이 하위단계에서 다음 상위단계로 이행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어린이는 자신의 현재 도덕성 단계보다 한 단계 상위단계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며, 보다 상위단계의 판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이론은 부모나 교사들이 어린이의 연령에 따라 어떻게 도덕 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유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예컨대, 아주 어린 아동들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는 즉각적인 처벌로 어린이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성숙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사회적 제재보다 보편적인 가치기준 혹은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이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하였으나 이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인 서구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과 또한 도덕판단력과 도덕적 행위는 일치하는가에 문제가 있다.1) 제1수준, 전인습적 : 전도덕성도덕적 선악의 개념은 있으나, 준거는 권위자의 힘이나 개인적 욕구에 관련시켜 해석한다.(1) 1단계(주관화 - 복종과 처벌지향)하인즈가 약을 훔치는 것은 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한다. 권위자의 벌을 피하고, 권위에 복종한다. 3세-7세에서 나타나는 이 단계는 벌과 순종을 향하여 있다. 놀이 친구를 고자질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 나이 또래의 어린이는 "차라리 말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매맞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2) 2단계(상대화 - 상대적 쾌락주의)약을 훔쳐서라도 하인즈는 자기 아내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자신의 욕구충족이 도덕판단의 기준이며, 욕구 배분의 동기는 있으나 자신의 욕구충족을 우선 생각한다. 8세-11세의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이 단계는 순진한 도덕적 상대주의(naive instrum적 개념을 유지해 주는 동년배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도덕적 판단의 특징적인 결과는 보다 덜 반항적인 청소년들과도 마찬가지이다.(4) 4단계 (사회화 - 사회질서와 권위 지향)법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하인즈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법과 질서를 준수하며,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무를 다한다. 18세-25세의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이 때에는 법과 질서가 호소력이 있다. 친구의 비행을 말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행위가 법을 어겼는가? 또는 공공의 질서를 심각하게 방해하였는가 이다. 정의는 자신의 의무를 행함으로, 자기 자신의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소수의 권리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없다. 가장 성숙한 측면이 탈 인습적 측면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관습이 이해된다. 그러나, 다른 것을 고려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3) 제3수준, 후인습수준 : 자율도덕성자신의 가지관과 도덕적 원리원칙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별개임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행위를 하게 된다.(5) 5단계 (일반화 - 민주적 법률)하인즈가 약방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것은 잘못이나 인명을 구하기 위한 일이므로 용서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시기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공리주의, 가치기준의 일반화를 추구한다. 25세 이상의 시기에 나타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상호 유익을 위하여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므로 소수까지 포함된 모든 개인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 모두의 관심거리가 된다. 어떤 친구의 비행을 말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이제는 그 친구가 그 행위를 하게 된 이유에 달려 있게 되고, 가능한 여러 행동이 그 친구와 보다 넓은 공동체에 끼칠 영향력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의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6) 6단계 (궁극화 - 보편적 원리)법이나 관습 이전에 인간 생명이 관여된 문제로서 생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생각도 풀리지 않는다. 어제 저녁에 한번 풀어봤는데 해법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그 문제를 풀던 연습장이 쉽게 손닿는 곳에 있다. 감독 선생님의 눈도 피할 수 있다. 이 시험은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중요한 시험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1단계 : 만약 발각되어 처벌받을 위험성이 전혀 없다면 부정 행위를 하겠다고 말 할 수 있다. 또는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 해도, 만에 하나 발각되면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는 등 신체적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정 행위를 안 하겠다고 말 할 수도 있다.2단계 : 내신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부정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말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부정 행위를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의 내신이 불리해져도 나의 내신만 높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부정 행위를 할 수도 있다.3단계 : 선생님에게 발각되지 않아도 옆의 친구들이 보고 나서, 나를 부정 행위 잘하는 놈이라고 놀려댈까 봐 하지 않을 수도 있다.4단계 : 처벌에 상관없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상관없이, 부정 행위를 하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이며 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무조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안 할 수 있다.5단계 : 단순히 교칙이나 사회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 행위가 사회에 보편화되면 사회구성원들이 살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아주 넓은 시야에서 생각하고 부정 행위를 안 할 수도 있다.6단계 : 극히 일부의 철학자들에게나 나타나며,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는 각 발달단계가 순서대로 진행된다고 가정하며 일단 한 사람이 도덕적 발달의 상위단계에 도달하면 결코 전 단계로 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콜버그 이론의 검증미국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연령증가에 따라 전인습 추론(1,2단계)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약 22세까지는 인습적 추론의(3,4단계) 사용이 증가하였다. 또한 후인습 추론(5,6단계) 도 연령에 따라 증가되다.
에릭슨의 발달이론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출생으로 1960~1970년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처음에는 화가를 지망하였으며 뒤에 유럽을 방랑하였다. 그 자신을 알려고 한 이 여행은 그 후의 저서 곳곳에 나타난다. 빈대학교에서 안나 S.프로이트 등으로부터 정신분석학을 배웠고, 31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이후 미국 각지에서 임상(臨床) 연구에 종사하였으며, 인간 형성을 문화·사회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특히 청년기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 위기’ 해결방법 여하에 따라서 역사의 양식을 창조하는 측면을 밝혀냈다. 정체성 개념에 의해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학적 자아심리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인문·사회 등 여러 과학과 사회사상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주요저서로는 발달의 사회성을 주창하는 《유아기(幼兒期)와 사회》(1950) 《정체성과 생활주기》(1959), 개인생활사와 역사의 만남을 예증하는 《청년 루터》(1958) 《간디의 진리》(1969) 등이 있다.프로이드(Freud ; 1856-1939)의 신봉자였던 에릭슨(Erikson ; 1902-1994)은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학력은 고졸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서 20세기 지성사를 빛낸 거장(巨匠)으로 인정받고 있다. 에릭슨이 “정체성(ident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심리학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준 점을 고려해 보면, 고졸 학력자에 불과한 사람을 미국의 간판 대학에서 교수로 발탁해간 서구의 학풍도 놀랍지만, 그러한 경이적인 성취를 일궈낸 에릭슨이 걸어간 삶의 여정 그 자체는 더욱더 극적이다.에릭슨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 유태인이었던 에릭슨의 어머니는 첫날밤에 남편과 헤어지는 불운을 경험하였다. 집안어른들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남편이 첫날밤에 자신이 범법행위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로 도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생활 측면에서 여성편력의 문제가 있음을 고백했기 때문론은 1950년 백악관의 아동위원회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 발표에서 에릭슨은 아동이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성숙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인간의 의지로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에릭슨이 이러한 내용의 발달이론을 제안하게 된 배경에는 에릭슨의 넷째 아이 닐(Neil)이 다운증후군에 걸린채 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이 자리잡고 있었다.에릭슨은 자신의 넷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에 걸렸다는 사실을 1994년에 죽기 얼마 전까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쳤다. 에릭슨의 넷째 아이 닐은 태어난 후 21살에 죽을 때까지 줄곧 가족과 떨어져 병원에서 지냈으며 에릭슨은 닐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거의 방문을 하지 않은 채 지냈다. 에릭슨은 닐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라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아버지없이 태어나 자신과 외모가 판이하게 다른 양부와 함께 생활하면서 겪었던 수많은 내면적인 갈등들을 반평생을 살아내고서야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던 에릭슨으로서는 자신과 외모가 판이하게 다른 다운증후군에 걸린 닐이 과거의 상처를 끊임없이 자극하게 될 고초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을런지도 모른다.아마도 에릭슨의 행적에 대해서 비정한 부모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는 것은 남다른 법일 것이다. 장례식에서 가장 뜨거운 회한의 눈물을 흘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부모가 아닐까?에릭슨은 수십년 간 남모르는 아픔을 속으로 삭히면서 닐의 출생으로 인해 또다시 펼쳐진 삶의 위기를 창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아이덴티티 이론이다. 선천적인 기형으로 태어난 닐에 대해서 부모로서 에릭슨은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지 않으면서도 사회로부터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많은 아동들을 위해서는 많은 일을 하였다.사실 언뜻보면, 사회가 아동들에게 많은 것을 해 줄 거인 어깨 위의 조그만 난장이에 불과합니다. 제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멀리 내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스승인 프로이드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에릭슨이 남긴 이 말은 겸손한 그의 인간적인 품성을 반영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는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남다른 이유가 있다. 에릭슨이 이러한 말을 남기게 된 배경은 그의 8단계 발달이론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Erickson의 사회성 발달 이론에릭슨은 프로이드와 마찬가지로 그의 탁월한 통찰력으로서 인간의 발달과정을 이론화했다. 프로이드의 징신분석학적 개념이 실은 고대의 희랍신화에서 발생된 것이 많은 데 반해 에릭슨의 개념은 시, 민속 그리고 일상생활의 지혜를 참조하고 있다.그러나 기본적으로는 프로이드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새로운 이론을 전개했다. 에릭슨은 아무런 공식적 학위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하버드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1. 주요개념◇ 발달 단계의 확장◇ 자아 강조 : 자아는 성격의 독립적인 부분이다.◇ 성격형성에 문화, 사회, 역사가 미치는 영향 인식1) 자아심리학Freud에 있어 성격의 지배세력은 원욕(id)이었지만, Erikson(1963)은 자아에게 더 큰 역할을 허용함. 인간의 현실적 행동에서 보여지는 모습 즉 자아의 분석에 치중하였다.2) 인성발달의 과정에릭슨의 인성발달은 개인의 세가지 요소, 즉 생물학적 요소, 자아, 사회의 집단 구성 원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생물학적 과정, 자아과정, 그리고 사회적 과정 등과 같은 조직과정에 의해서 개체의 인성발달은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3) 자아정체성(Identity)자기의 연속성, 단일성 또는 독자성, 불변성.-"개인의 동일성에 대한 의식적 감각(Erikson, 1968)"4) 미덕(virtue)기본적인 인간의 힘- 갈등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결과들이며, 인간의 적응에 필요한 것.-"미덕은 활성화되는 중요한 것, 무있다.- 취약한 시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기- 새로운 환경의 요구가 있는 시기위기를 긍정적으로 해결해야 성격이 정상적으로 발달한다.각 단계마다 적응적 방식의 대처와 부적응적 대처 방식이 있다. 이 두 방식이 모두 자아정체감에 흡수되어야 한다.▶Creative balance :적응적 대처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부적응적 대처가 자아정체감에 통합되어야 각 단계의 위기가 해결된다.◆ 심리사회적 힘 Psychosocial strengths(or virtues)각단계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면 심리사회적 강점이 촉진된다.이는 potency이다.(1)제 1단계 : 신뢰감 대 불신감이 단계는 프로이드의 구강기에 해당되는 시기로서 ,출생에서 약 1세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 동안에 유아가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는 주로 돌보아 주는 사람인 어머니와의 관계이다. 유아가 생의 초기에 처음으로 맺게 되는 사회 관계에서 어머니가 유아의 신체적, 심리적 욕구와 필요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면서 그를 일관성 있게 돌보아 주면, 유아는 어머니 또는 돌보아 주는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기가 오줌을 쌌거나 배가 고플 때 어머니가 곧 이를 알아차려 그의 요구에 잘 응해 주면,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번에 비슷한 사태에 부딪쳤을 때에도, 어머니가 곧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거나 고통을 덜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아기의 요구와 필요에 잘 응해 주지 못하거나, 아기를 다루는 방식에 일관성이 없게 되면아기는 불신감을 가지게 된다. 에릭슨에 의하면 아기가 일단 어머니에 대한 기본적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면 다른 상황에서도 신뢰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잠시 아기 곁은 떠나도 아기는 마구 울거나 불안해 하지 않고, 어머니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다.에릭슨은 이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생의 후기에 맺게 되는 모든 사회 관계에서의 성공적인 적는데, 예를 들어 , 등의 말을 자주 반복하여 사용하며, 특히 (안 해 !)라는 말을 씀으로써 자기주장을 표현한다. 이와 같이, 유아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려고 하게 되면, 사회는 부모를 통하여, 유아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키게 된다. 예를 들면, 용변훈련을 통하여 유아에게 때와 장소를 가릴줄 알도록 하게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아가 사회의 기대나 압력을 알게 된다. 만일 이때 용변훈련에서 실수를 한다든지, 걷기, 뛰기 같은 신체적 통제나 自助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사회적 기대에 적합한 행동을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수치심과 회의감을 갖게 된다. 수치심이란 자신이타인들의 눈에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갖는 느낌이다. 예컨대, 오줌을 싼 유아는 타인들이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볼까 봐 부끄러워하게 된다. 회의감은 자신이 강한 존재가 아니며, 결국은 타인들에 의해서 자기가 통제 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의지will - 허용과 통제세상(부모)이 얼마나 아이들이 하고픈 것을 허용하는가?의지라는 것은 고집이 세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자신의 추동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어쩔 수 없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리고 결단력있게 행동하는 것을 배운다."따라서 의지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치와 회의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자유와 자기 제약을 연습하는 깨지지 않는 결심이다." the unbroken determination to exercise free choice as well as self-restraint아동의 의지는 성인이 되어 추동과 충동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이상적으로 개인의 의지는 규칙이나 이성에 의해 제약되면서도, 타인의 의지와 함께 어울리면서(joins with others) 모두가 a sense of power를 갖게 한다. 의지는 법이나 외적인 필연성을 수용하는 기초가 된다. 법이란 우리의 추동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형태의 자아 통제를 제공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