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행정이론의 주요 특성과 각 이론이 교육행정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1. 사회체제론1960년대 초에 교육행정이론에서 체제이론(system theory)이 대두되었다. 체제란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상호작용 하는 요소들의 결합체이다. 조직이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환경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조직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조망하는 하나의 방식이다.(환경)투입→ 전환 또는 처리과정(하위체제들)→ 산출< 전 과정 피드백>1) 개방체제의 속성: 개방체제는 환경과 상호작용(투입과 산출을 통해서)하는 체제이고, 폐쇄체제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없는 체제이다.■ 투입과 산출: 개방체제는 환경으로부터 투입을 받아들이고 이를 산출로 전환ㅅ켜서 환경으로 내보낸다. 학교는 학생(투입)을 받아들이고, ‘교육받은 학생’(산출)으로 전환시켜서 환경, 즉 다른 체제로 내보낸다.■ 안정된 상태: 개방체제가 체제의 요소들과 특질들을 역동적 상태(비율)로 유지함으로써 고도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역동적 상태란 행동이 없는 정지된 균형상태와는 반대로 불균형상태에서 질서를 찾아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을 시사한다. 학교는 문제(불균형 상태)를 해결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안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자기규제: 개방체제가 스스로 명령하고 체제에 영향을 주는 힘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인동과성: 개방체제들은 각기 다른 조건에서 출발하거나 각기 다른 과정을 밟더라도 결국에는 동일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목적이 분명하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역동적 상호작용: 체제의 효과는 체제의 목적과 관련되는 하위체제들의 기능적 상호작용의 결과에 의존하므로 하위체제의 개념은 중요하다.■ 피드백: 피드백은 개방체제가 그들의 산출과 과정을 평가하는 평가과정 또는 점검과정이다. 지속적인 점검은 체제의 존속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점진적 분화: 하위체제가 기능적이고 위계적인 순서로 분화되는 과정이다. 개방체제에 내재되어 있는 진화적 발달과정이다. 점진적 분화를 통해 체제의 능력과 효과성은 증대된다.■ 점진적 장치화: 모든 개방체제는 어떤 절차 또는 과정의 순서를 고정화하여 배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방체제는 규칙적인 절차와 실제를 적용하고 사용함으로써 일처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역소멸지향성: 개방체제는 생존하기 위해서 소멸경향성을 없애려고 한다.2) 사회체제의 속성? 사회체제는 개방체제이다. 지역사회와 사회의 세력들은 학교에 영향을 준다.? 사회체제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역할, 지위는 물론 욕구를 토대로 해서 행동한다. 학교에서 사람들은 행정가, 교사, 학생, 관리인 등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체제는 상호의존적이다. 학교장이 새로운 교과과정을 개설하라는 부모들의 요구에 직면할 때, 직접적으로 교장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도 영향을 받는다.? 사회체제는 목적 지향적이다. 모든 학교체제가 가지는 중추적 목적은 학생들이 성인 역할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다.? 사회체제는 구조적이다. 분업, 전문화, 위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체제는 규범적이다. 적절한 행동을 규제한다.? 사회체제는 제재(sanction)를 수반한다. 행동규범은 보상과 형벌을 통해 집행된다. 공식적 제재에는 정직, 계약종결, 신분보장과 승진 등이 있다. 비공식적 제재에는 빈정거림, 추방, 조소 등이 있다.? 사회체제는 정치적이다. 사회적 관계에는 불가피하게 권력관계가 끼어든다.? 사회체제는 독특한 문화 즉, 지배적인 공유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회체제는 개념적이고 상대적이다.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적 조직들에 적용하는 일반적 개념이다.? 공식적 조직은 모두 사회체제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체제가 공식적 조직은 아니다.3) 사회 과정이론인간의 행동은 조직 기대에 의해서 규정된 역할과 인간욕구를 기저로 하는 개인의 인성과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4) 체제이론과 교육행정체제이론은 구조와 인간을 다 함께 중시한다. 환경이 조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파악하며 조직을 이해하는 데 구조, 인간, 환경을 다 함께 중요시하는 통합적 지각을 제공한다. 조직을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주장하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필수적으로 생각한다. 또한 하위체제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중요시하며 조직의 개선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피드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직 구성원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조직이 무질서해져 소멸하려는 경향을 극복하고 조직을 유지 ? 발전시킬 책임이 있다.2. 대안관점기존의 관점과는 다르게 주관성, 비결정성, 비합리성, 개인적인 해석 등을 제안한다. 감정에 대한 신뢰, 상대주의를 추구한다. 단편성이 통일성보다 선호되며 조직의 독특한 특성이 규칙성보다 선호된다.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안적인 견해는 첫째,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행위자이다. 지식과 권력은 복잡하게 서로 관련되어 있다. 둘째, 사실은 사회적인 상황 속에 기초한다. 사실은 사회적이고 가치개입적인 과정을 통해서 해석된다. 셋째, 사회과정과 공식적인 계서제는 노출되는 것만큼 은폐한다.조직의 비합리적인 측면, 독특한 특성, 억압된 측면, 경계, 거절되고 주변적인 것, 침묵하고 무력한 사람들 등에 초점을 둔다.1) 해석론인간이 사회생활의 특별한 형식이 갖는 의미에 대해 특정 상황에서 특정 개인의 행동 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주관적 의미구조를 체계적으로 구체화한다. 행동이 담고 있는 배후의 의미를 그 행동이 발생한 상황에서 간주관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냐이다. 행정연구에서 해석론적 관점은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이 갖고 있는 현상인식의 문제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학문탐구의 방식을 제시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프랑스 예술의 바탕이 된 파리의 자유Ⅰ. 들어가기 전에프랑스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중에서 프랑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은 유유히 흐르는 센 강을 따라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에펠탑이나 며칠을 구경해도 다 보지 못하는 대형 박물관들, 그 규모도 방대한 개선문이 있는 낭만의 샹젤리제 거리, 환상적인 모자이크 유리 장식이 있는 노트르담 성당 등을 떠올릴 것이다. 파리에서의 여행 일정이 이틀이나 삼일 정도로 짧다면 이 정도의 파리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멋진 파리의 모습에 경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이 진정한 파리의 모습일까? 오르세 미술관, 혹은 크고 작은 미술관들의 작품들, 혁명을 향한 바스티유 광장의 외침소리나 그들이 일궈낸 문학의 깊이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자유와 초탈의 분위기’ 고흐는 파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고흐라는 화가를 무척 좋아하고 그의 파리에 대한 느낌을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미술에 관심이 없던 나와 그의 인연을 맺어준 것은 작년(2005년) 여름 방학 때 유럽여행을 통해서였다. 약 한 달간의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프랑스였고 내가 들렸던 곳이 바로 파리였다. 약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직도 나의 가슴속에는 고흐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파리의 자유와 초탈의 분위기가 아련히 감돌고 있다.프랑스 문학과 예술에 대한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한정된 주제(예를 들어 포도주나 샹송, 아니면 특정 작가 등등)가 아니라 그것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더 근본적인 힘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수업시간에 봤던 프린트를 뒤적거리면서 고흐가 한 말을 보았고 순간 머릿속에서 전기가 지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고흐가 느꼈고 나도 느꼈던 그 자유스러움이었다. 파리가 선사해주는 몽환적 분위기와 자유 그리고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각자의 예술의 열정을 공유하였던 카페가 바로 프랑스 예술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충만한 녹색 세상이 펼쳐졌다. 분수대가 시원하게 주변을 식혀주고 있었고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가로수들이 햇볕을 가려서 따가움이 덜했다. 작은 산책로를 따라 양옆에는 커다란 가로수가 있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서 한 컷을 찍었다. 영국의 커다란 공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노부부가 있었는지 사진 뒷면에서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노부부가 배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앙에 커다란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배를 띄우면서 노는 아이들도 있고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책도 보고 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서도 한가롭게 벤치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도 파리지엔처럼 그 분위기에 동참하고 싶어서 의자에 앉아서 뒤로 기대어보기도 하고 눈을 감아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등 함빡 그 분위기에 취했었다.파리의 지하철은 수많은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공간이다. 지하철 곳곳에서는 거리음악가의 1인극부터 10명 남짓한 미니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다채롭게 펼쳐져 늘 눈과 귀가 즐거웠다. 또한 길거리에서도 바이올린 독주회나 은은한 하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샹제리제 거리로 향하는 도중에 바이올린을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한 남성을 볼 수 있었고 또한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 쾨르 성당을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하프연주를 생음악으로 듣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바쁘게 이동하는 일정 속에서도 무명 음악가들의 훌륭한 연주를 그 자리에 서서 차분하게 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파리시의 허가를 받아 세금을 내면서 연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름의 엄격한 심사 기준이 있다고 하니 무명이지만 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또한 이들 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도 돈이 떨어질 경우에 길거리에서 즉석 성악 공연을 해서 여행경비를 마련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실로 파리의 지하철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은 느낌이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갖가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당 건립에는 꼬박 40년이 소요되었다. 폴 아바디에 의해 1870년 공사가 시작되어 1914년에 완공된 로마 비잔틴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다.) 흰색 비잔틴 양식의 성당은 그 독특한 외관으로 파리답지 않은 인상을 주지만 몽마르트르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잔디가 깔려있었는데 그곳에 무작정 누워버렸다. 분명히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무시하고 그냥 누웠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고 여행에 따른 피로와 긴장감을 놓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예술가들을 끌어들였던 이 매력적인 공간의 힘을 느끼고 그곳에서 숨쉬며 살아갔던 예술가들을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예술가들의 안식처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몽마르트르이다. 왜 그들은 여기에 모여들어 이곳을 은밀하고도 신비스러운 낭만과 정취가 넘실대는 곳으로, 혹은 순간적이고 덧없는 환락과 취기의 장소로 표현했을까? 사실 가난한 화가들이 생활비가 부족해서 파리 도심으로부터 쫓겨나 이곳에 정착했다는 경제학적인 답이 있긴 하지만 몽마르트는 그것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곳에서 숨쉬며 살다간 예술가들의 영혼이 황량한 그곳을 바꾸어 놓았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골목길과 계속해서 몸을 힘들게 하는 언덕과 계단에서 나는 이 곳에서 호흡했던 화가들의 그림과 그들의 열정과 현실이 주는 절망감에 짓눌린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있는 무명화가들은 광장 중심에 있는 카페와 주변에 있는 카페 사이에 있는 좁은 공간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고 있는 화가들은 예전 선배들의 정신을 많이 잊어버렸는지 예술가보다는 장사꾼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 과거 이곳을 지키던 낡은 옷을 입은 무명의 화가가 테르트르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다 옆구리에 포도주 병을 끼고서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났다. 힘든 삶이지만 예술을 위해 숨쉬고, 누군가가 자신의 세계를 알아줄 수 있는물의 모든 파이프와 구조물 등을 외부에 노출시켰다. 투박한 파이프 기둥, 튜브형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그대로 노출된 천장과 케이블 배관 등 짓다가 만 건물 같은 어수선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기능은 매우 다양하고 합리적이다. 1만 5,000톤의 철재를 사용했다는 퐁피두센터는 연간 800만 명의 관람객을 맞이한다. 언뜻 보기에 무질서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설계자는 건물에 나름대로의 통일성을 부여해 노란색은 물, 파란색은 공기 등 식별이 쉽도록 색을 칠했다.) 밑으로 내려가는 넓게 펼쳐진 경사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특히 건물 앞 광장은 젊은이들의 열기가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젊은이들이 모여 갖가지 묘기와 재능을 선보이는가 하면 잡다한 물건을 파는 잡상인에 이르기까지 퐁피두센터 안과 밖은 문자 그대로 역동적인 문화예술 공간이 되고 있다. 마술을 하는 아저씨가 손뼉을 치면서 주위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재미있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물론 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웃기에 같이 따라 웃었다. 불어도 공부해야 할까보다. 그리고 철사를 이용해서 갖가지 동물과 로봇 그리고 여성용 장식품을 만들어 파는 잡상인도 있었다. 절대 허접해 보이지 않았고 아이디어도 좋았다. 광장 옆에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끔씩 볼 수 있었던 가운데에 물이 나오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분수대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었다. 해골모양의 머리에서 물이 나오고 앵무새 머리모양의 분수대는 일곱 방향으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뱀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양,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모양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흔히 상상했던 그런 평범한 모방정도가 아니라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창의적으로 그린 초현실적인 그림같이 신선하며 재미있고 친숙했다. 그리고 분수대 하나까지도 평범하게 만들지 않고 신경을 쓴 그들의 세심함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모습은 그 앞 벤치에 앉아있던 연인들의 포즈였다랑스 국민의 기질은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한편 분석적이고 재치가 돋보이며 말하기 좋아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면 친절한 인상을 하면서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고 카페 근처에서 두리번거리자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가르송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삐끼들 대하듯 무시하자 화를 냈다. 프랑스인들은 참으로 여유롭다. 주말도 아닌 평일 오후에 한가롭게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길가에서 마주치는 낯선 행인에게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새삼 삶의 아름다움까지 일깨워준다. 여유는 대화를 낳는다. 이제는 세계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고 큰소리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삶에 찌들어 자기 살기 바쁘지만 프랑스인들은 혼자 있을 때는 책을 읽고 둘만 모이면 장소를 불문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정치, 경제에서부터 자기 집 커튼과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시답지 않은 화제임에도 프랑스인들은 진지하게 듣고 웃으며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때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논쟁으로까지 치닫는다. 그러나 실로 격렬한 논쟁의 와중에서 상대의 발언을 최대한 존중하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남의 말을 가로막는다든가 의견 차이를 인격에 대한 도전과 모욕으로 여기는 치졸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필요한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 또한 타인의 간섭이나 피해를 거부하는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은 대체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배타적 이기주의와는 구분된다. 생활수준에 관계없이 몸에 배어있는 프랑스인들의 여유로움은 단기간에 막대한 치부를 한다거나 급격한 신분 상승을 꿈꾸기 어려운 사회 여건,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긍정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철저히 즐기려는 현실주의적 경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불 수 있다.Ⅵ. 여유를 바탕으로 태어난 예술, 카페는 예술교류의 장이었다.'카페(Cafe)' 즉 커피라는 음료가 프랑스에 들어온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 음료를 파는
교육행정 이론의 주요 특성과 각 이론이 미친 영향1. 과학적 관리론과학적 관리론은 미국의 Taylor(1947)이 창시한 것으로 공장종업원들의 업무수행 방식에 대한 연구(1900~1915)를 통하여 생산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생산성 향상의 장애는 관리자와 근로자 간의 적대심과 비능률이라고 보고, 이를 제거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조직관리가 과학적 ?합리적 ? 능률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하여 생산현장에서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작업능률이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을 추구 하였다. 네 가지 지침을 제시하였다.(1911)(1) 관찰과 분석에 기초한 과학적 방법으로 조직의 업무수행 시간 ?동작을 연구하여 가장 적절한 작업표준을 정한다.(2) 직무에 가장 적합한 종업원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선발하여 직무와 업무절차에 대해 철저하게 훈련한다.(3) 종업원과 도급계약에 의해 정한 작업표준과 절차에 따라 서로 협력하여 업무를 수행한다.(4) 관리자는 업무를 기획 ? 준비하고 감독하는 책임을 맡고, 종업원은 이에 따라 작업한다.이 네 가지 지침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과 동작 연구를 통한 최선의 작업방식의 선정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성을 증대시켜 관리자와 종업권간의 분업, 임금유인체제 등의 과학적 관리가 조직적 태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주먹구구식 방법보다는 연구와 실험에 근거를 두어 생산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명확한 지침을 관리자에게 제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2. 행정관리론Fayolr이 모든 관리자는 본질적으로 같은 과업을 수행한다고 보고, 조직을 관리하는 행정기능으로서 계획, 조직, 명령, 조정, 통제를 제시하였다.(Urwick, 1937). 이 다섯 가지를 행정 과정이라 지칭한다.(1) 계획 : 미래를 연구하고 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것(2) 조직 : 사업의 인적 ? 물적 자원을 조직하는 것(3) 명령 : 직원들로 하여금 그들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4) 조정 : 모든 활동을 통합하고 상호 관련시키는 것(5) 통제 : 모든 일이 정해진 규칙과 주어진 지시에 따라 수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뒤이어 Gulick과 Urwick 이 아곳들을 보다 구체화하여 POSDCoRB의 일곱 가지 절차를 거친다고 말했다. 기획, 조직, 인사, 지시, 조정, 보고 , 예산편성의 일곱 가지 행정과정에 대한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이들은 공공행정에 초점을 두고 행정 전반에 폭넓게 접근하였다. Fayol은 또한 자신의 행정경험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14가지 관리 원리로 요약하였다. 이 원리들은 분업, 권한, 규율, 명령통일, 지휘통일, 일반직 이익에 대한 개인적 이익의 종속, 보상, 집권화, 책임계열, 질서, 공평성, 직원 신분보장, 자발성, 단체정신의 원리들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명령계통, 권한의 배분, 질서, 능률, 공정성 및 안정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Fayol은 조직을 관리하는 행정가들이 관리 원리를 습득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에 대한 철저한 훈련과 준비를 강조하였다. 행정가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전문 기술자들이 하는 일과 동등한 중요도로 보았던 것이다.3. 관료제서구 유럽사회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산업사회가 발달하여 점차 도시화되어 가고 있었다.사회가 점차 산업화 되어가고 그와 동시에 인간의 중요성은 점차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때 독일의 Max Weber는 인간과 조직이 권위주의적인 산업가들과 기존의 정치체제에 의해 지배된 조직과 비교되는 이상적인 조직으로 관료제를 제시하였다. 관료제 이론은 귄위구조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조직체에는 통제와 권위가 있게 마련이라고 보고 권위가 정당화되는 방법에 따라 권위 유형을 전통적 권위 , 카리스마적 권위, 합리적 ? 합법적 권위로 구분하였다.(1)전통적 권위 : 이는 하위자가 상위자의 명령을 전통에 따른 것이라는 근거에서 정당한 권위로 받아들일 때 나타난다.(2)카리스마적 권위 : 이는 상위자의 비범한 능력에 달려있는 경우에 나타난다.(3)합리적 ? 합법적 권위 : 이는 법에 근거하여 권위가 발생되는 경우이다. 개인은 그가 지닌 법적 기위에 따라 권위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여 받고 그 권위를 행사하며 법적지위를 상실하면 자동적으로 권위를 상실하는 것으로 간주된다.Weber는 이러한 합리적 ? 합법적 권위가 관료제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상적인 관료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1) 분업과 전문화: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한 과업이 구성원의 직무로서 배분되고 전문화된다.(2) 몰인정성: 구성원의 직무수행이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에 지배되지 않고 합리성에 근거한다.(3) 권위의 위계: 부서가 권위에 따라 위계적으로 배치되고 하위 부서는 상위 부서의 통제와 감독을 받는다.(4) 규칙과 규정: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를 포함한 역할 수행이 규칙과 규정에 따라 일관성 있게 규제된다.(5) 경력지향성: 구성원들은 자신의 직무를 경력으로 간주하고, 연공서열이나 실적 또는 양자를 조합하여 승진이 결정된다. 관료제는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행정체제로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이루어지면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있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경우 효율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등의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관료제의 특징역기능순기능분업권태전문적 기술몰인정성사기 저하합리성권위의 위계의사소통 두절훈련된 순응 및 조정규칙과 규정경직성과 목적의 도치계속성과 통일성경력지향성업적과 연공서열 간의 갈등유인가4. 인간관계론1930년대 세계 공황이 심화되면서 고전적 조직이론으로는 조직 관리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고전적 조직이론은 사람을 통제하여 조직의 효율성,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 목적이 있었으며, 조직의 공식적인 구조에만 집중한 나머지 인간에 관한 관심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단점이 있었다. Hawthorne 공장에서 조직 내 물리적인 요인과 생산성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결과적으로 사회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다원직인 사회로서 공식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이 계산되어 나오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적이 요인이 생산성의 주요 요소로 발견되었던 것이다.이 실험 결과로부터 학자들은 공장의 물리적인 작업환경보다 근로자들의 사회 심리적인 요인이 생산성의 증가에 더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소속감, 응집력, 사기와 같은 조직 내 인간의 사회심리학적인 요인이 중요하며 이의 충족을 통해서 동기가 유발되고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이 발견하였다. 또한 , 조직 구성원의 사회 심리적 요인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비공식집단의 중요성과 집단 역학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인간 관계론이 교육행정에 미친 영향은 비공식조직이나 소집단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의 구성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지도하는 민주적 지도성이 중시되고, 조직 내에서의 구성원들의 사회심리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특히 지도성에 관한 실험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민주형 지도성은 인간관계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조직의 중요한 인간적인 요인을 조명하였지만 조직생활의 복잡한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 제한점이었다.
<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하루의 실천만으로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서 저자가 덕의 일상적 실천, 즉 중용의 습관화를 강조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이 말은 무척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쉽게 와 닿았던 말이기도 하다. 내가 서두에서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의 궁극적 목적(행복)과 이를 위한 실천의 덕(중용)을 한눈에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인 니코마코스가 정리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아테네에 리케이온 이라는 학원을 열었는데, 그때의 강의 노트를 아들 니코마코스가 편집해 잭으로 냈다고 한다. 그렇게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 책으로 일컬어지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 탄생된 것이다. 이 책에는 인간의 삶과 행복, 쾌락 등 여러 가지의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덕을 위주로 이 책을 고찰하고자 한다.나는 왜 사는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뾰족한 답은 찾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거나,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 목표를 답으로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돈이나 사랑, 학벌, 건강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인생 목표를 자신이 사는 이유로 내세웠을 경우, 그것이 만족되었을 때는 그 사람의 삶의 이유는 없어지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전자의 경우에 속했다. 항상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었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일상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한 후로 그 질문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인간은 왜 사는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간단하게 답하였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고 말이다. 요컨대 인간 삶의 최종 목적이자 선(善)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그의 스승인 플라톤이 말하는 선의 이데아와는 달리,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선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현실 세계 바깥에 있는 완전 무결한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선과 행복을 다루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현실주의적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여기서 정말 그가 주장하는 대로 행복은 우리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일까? 라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선은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한다.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면 행복이 무엇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이 연이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책 전체를 통해서 윤리학의 목표는 잘 사는 것 에 있으며, 잘 산다는 것 은 결국 인간답게 사는 것, 인간다움(본질)을 잘 실현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쳐 나아간다. 그리고 인간다움은 다른 존재들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 즉 이성적 사고를 잘 발현하는 데 있으므로, 결국 잘 사는 것 이란 이성적 삶, 지혜로운 삶 이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사유를 본질로 삼는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다. 행복이 무엇인가 알았으니 그 행복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다.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한다는 막연한 말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으로서의 행복을 '완전한 덕에 따르는 마음의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덕을 도덕적인 덕과 지적인 덕으로 구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서 주로 도덕적인 덕에 의해 논하는데, 그에 따르면 도덕적인 덕은 중용(모자람도 지나침도 없는 적절한 상태)을 핵심으로 한다. 이 중용은 산술적으로 중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적절함을 찾아내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중용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뜻하지 않은 우연이나 일시적 충동으로 중용에 맞게 행동할 수도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성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시적으로 우연히 중용에 맞게 행동했다 해도, 그것이 결코 영원할 수는 없다. 시종일관 중용에 맞는 행동, 즉 덕 있는 행동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는 덕의 습관, 중용의 습관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구체적인 삶 속에서 중용의 태도가 습관화된 상태, 바로 이것이 인간으로서 최선이라고 간주되는 '행복'의 경지이다.우리는 이제까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생의 행복과 그 실천방법으로서의 중용을 살펴보았다. 이것들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평범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위의 내용 중 몇몇은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다 들어봤음직하다. 하지만 신선하고 색다른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시 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오랫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연구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책인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 오늘날까지 읽혀지는걸 보면 이 책의 가치는 설명이 된다. 이 책에서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이론은 이론적 가치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큰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모든 고전이 그렇듯 말이다. 그렇다면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서 그가 주장한 철학적 이론들이 현대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이후 그의 사상은 유럽에서는 상당기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의 사상은 10세기경 아라비아로 수출되어 오히려 그 곳에서 더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가 다시 유럽 무대에 등장한 것은 아라비아어로 번역된 그의 책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걸출한 기독교 학자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유럽 지성사의 기둥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세계를 객관적인 물리법칙으로 설명하는 근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비과학적이고 권위적인 것으로 온갖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법, 21세기가 시작되는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근대 과학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근대 자연과학은 세계를 단순히 이용 가능한 '물질'로 보았기에 환경 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낳았다. 반면, 모든 것을 그것이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제 우리에게 또다시 새로운 혜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 문제 뿐 아니라 인간 유전자 복제 등 현대의 민감한 도덕적 문제들을 개별적인 과학 분야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 힘들다. 세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그 가운데서 그 문제가 지닌 의미에서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서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시대를 뛰어넘어 오랜 기간 살아남는 사상에는 그 나름의 진리가 숨어있다.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리와 지혜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똘레랑의의 개념과 그 교육적 의미1. 똘레랑스의 개념똘레랑스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또는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 를 뜻한다고 한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똘레랑스라는 말은,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이런 삶의 자유를 나와 다른 사람이 공유하기 위해 서로의 의견이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을 위해 정해 놓은 규칙이나 제도라 할지라도 맹목적인 적용보다는 이성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특별한 상황 아래에서는 그 규칙과 제도를 넘어 행동할 수 있는 삶의 넉넉함까지 느낄 수 있게 된다.그러므로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는 사람을 증오하게 하고 지배하려는 대신 자신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이나 이념을 상대에게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당연시된다.이제 똘레랑스의 개념을 정치적·문화적·사회적인 면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ㄱ) 정치적인 면에서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의 저자 홍세화는 정치적 격변기에 처한 한국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행복을 위해서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런 관심의 결과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 한국의 정치 실정은 비판적인 목소리나 행동에 너그럽지 못했다. 수없는 정치적 반대파들이 제거되었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연약한 개인마저 짓밟아 버렸다. 같은 목소리가 아니면 적으로 간주되는 현실이었다.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아니면 권력의 입장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그들의 주장을 펴 왔고 그러다가 체포되고 영어의 몸이 된다. 사실 그들의 죄는 책의 본문에서도 상세하게 표현되었듯이 단지 다른 견해를 가진 것뿐이었다. 그들의 행동이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것 하나로 그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으니 말이다.오늘날에도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반대하고 본 다는 식의 대립 의식이 만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무대가 아니다. 한 나라의 정치는 한 나라의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데에 그 목표가 있으며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권한을 위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치야말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집합장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곳에서 정치적 똘레랑스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모든 국가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 똘레랑스를 찾아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권모 술수로 점철되는 정치 권력의 생존은 무서울 정도이다. 그것은 정치가 국민의 삶 이전에 그들의 욕망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많은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 오늘날의 정치적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의 갈등 속에서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소중한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우리 나라의 경우는 그 어느 나라의 경우보다 정치적인 똘레랑스가 필요하다고 본다. 남과 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 현실이 어둡기만 하다. 거기다가 이적 행위니 또 반국가적이니 하는 말들이 국가보안법에 살아 있으니 어느 때든지 무기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정치적 신념을 당당하게 펼 수 있기에는 제약이 많다고 생각된다. 통일을 위해서 국민 모두는 통일의 가치에 대해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사람의 말이 훌륭하니 모두는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획일성에 지나지 않는다.지난 5년 동안 햇볕 정책 은 남북의 적대감을 해소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의 태도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자라나는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옛날 우리 아버지들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도록 배웠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꾸준히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적대감 속에는 건강한 비판 정신이 살아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오직 미움과 증오만이 가득차 있어서 새로운 가치관이 만들어지기 어렵게 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정치적 똘레랑스가 이 땅에 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ㄴ) 문화적인 면에서미국 사람들은 알라스카에 사는 사람들이 물개를 잡아서 날것으로 먹고사는 것을 보고 그런 삶을 천시하는 의미로 그들을 에스키모 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기들이 사는 방식이 세련되고 고상하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런 예는 아주 많다. 지금의 미국 땅 안에 살고 있었던 인디오들을 미국의 개척자들은 수백 만 명이나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남은 얼마 안 되는 수를 보호구역 안에 살게 하고 생활보조금을 준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보호되어야 하는 인간이란 말인가?유럽 인들은 남아메리카에 쳐들어 와서 그들을 총칼로 정복하고 그들의 문화를 강요했다. 원주민들의 삶터가 불타 없어지고 그들의 문화적 유산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파괴되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자기들의 문화를 강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저항했고 수없는 목숨들이 처절하게 죽어갔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누구의 행복을 위한 전쟁인가?문화는 우월하고 열등한 개념으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문화는 거기에 몸을 담고 사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긴 시간 속에서 그들에 맞게 만들어지고 변화해 온 것이다. 그래서 문화는 그 문화 밖의 다른 잣대로 재기 어렵다.우리 나라 안에서도 문화적 똘레랑스는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아침 일찍 택시를 타러 나간 사람이 여자 기사를 만나면 재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못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쾌감을 느끼고 있다. 영호남의 반목 속에도 이런 찌꺼기가 남아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꾀는 많은데 책임감이 없고 잘 배반한다든지, 경상도 사람들은 똘똘 뭉치기만 잘하지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생각은 하기 어렵다는 말은, 영남과 호남 사람들이 서로를 비하하기 위해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이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지방을 여행하는 목적은 그 지방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새로운 삶의 체험 즉 문화 체험이 여행의 주된 기쁨이 된다. 많은 여행은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체험하게 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한다. 그런 사람에게 편견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지방과 지방, 나라와 나라의 관계 속에서도 문화적 편견을 버려야 할 때이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의 정신은 뒤쳐져 있는 것 같다.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런 삶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인가를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체험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이질감은 곧바로 문화적인 적대감으로 변할 것이다.ㄷ) 사회적인 면에서한 사회는 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다. 그러기 때문에 그곳에는 보이지 않게 인정되는 사회적 가치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가치는 그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예를 들어 우리 나라에서는 몸 파는 여자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여자들이 손님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게 된다.언젠가 라디오 시대 라는 프로에서 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슬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어느 집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 있어 경비원은 달려갔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어 경비실에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사골물을 우리느라고 가스레인지에 통을 올려 불을 켜 놓은 상태에서 주인이 외출을 했던지 그 뼈가 타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불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 황급하게 조치를 하고 나중에 주인에게 말을 했더니 주인은 별다른 감사의 말도 없었다고 한다.그런데 얼마 있다가 심심할 때 먹으라고 그 집 부인이 떡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 때의 고마움이 있어 그러려니 하고 떡을 먹으려고 그릇을 여는 순간 쉰 냄새가 코를 찔러서 그것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는 수고까지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편지에는 아파트 경비원 중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곳에서 일하다 정년 퇴직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며,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을 홀대하고 함부로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목멘 소리를 담고 있었다.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까닭은 한국 사회의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 때 항상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인기 학과에만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도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살고 싶지 천시 받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사회적 똘레랑스가 부재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우리가 가끔 듣게 되는 악담들도 사회적 똘레랑스의 부재를 나타낸다. 택시를 타고 가다 택시 기사와 시비를 벌일 때도 시비를 벌이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택시 운전이나 해 처먹어라. 는 말로 그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다. 이런 악담이 택시 기사에게만 가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조금 괜찮은 직업에 종사한다면 아니, 그렇지 않을 때에도 상대방에게 이런 악담을 퍼붓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설득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