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는 기억하지 못한다..하지만 어느새 몸이 그것을 쫓고 있을 때... 나는 추억을 느낀다.‘기억상실자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그...기 롤랑.그리고 온전히 살아왔음에도 잃어버린 시간들 투성인 나의 기억들...과연 나는 그보다 얼마나 더 나에 대해 알고 있으며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도 끝내 무언가를 쉽게 내주지 않는 이 소설은 ‘당신은 누구입니까? ’ 라는 질문을 나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하지만 항상 반자동적으로 나오는 말 ‘저는 XXX입니다’ 라는 대답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게 한 그런 소설... 나에게 있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자욱한 안개를 가진 회색빛 하늘을 연상시켰다. 조각조각 널려있는 퍼즐을 맞추고 또 맞추었지만 커다란 형태조차 제대로 알수 없는 그런 소설... 이 소설은 나에게 있어 그렇게 다가왔다.‘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 속에서 나는 흥신소에서 기롤랑이라는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는 기 롤랑과 함께 사진 한 장과 신문의 부고란을 들고 다름아닌 그를 찾기 위해 나섰다. 사진 속의 인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면서 그리고 그 아련한 기억의 끈을 쫓아가면서 단서 속에서 그를 찾으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어디 메모라도 해놓지 않으면 금방 잊을 것 같은 그 실낱같은 기억의 조각조각에 머리가 아파왔다.그는 분명히 지금 ‘기 롤랑’ 이라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그는 그를 찾고자 하는가... 답답함 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가 간직한 사진 속이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리고 이제 희미해져 버린 그 기억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한참을 그를 찾으력 애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장의 귀떨어진 사진을 계기로 만났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등 그와 관련된 기억을 가진 사람들... 또 묻고 사진들을 얻어가며 나를 알아가려는 그를 보면서...프랑스식의 그 어려운 이름들과 몇 번 씩 되뇌어 봐도 잘 외워지지 않은 이름과 익숙하지 않은 장소들 속에서... 나는 책장을 다시 앞으로 그리고 뒤로 몇 번이나 넘겨가며 그를 애타게 찾았다.낡은 과자통 속에서 노랗게 바래져가는 몇장의 사진들, 지금은 바뀌어 버린지 오래인 전화번호들 그리고 차례차례 사라져 가는 몇 사람의 증인들...속에서 소설을 읽는 내내 행여나 조그마한 단서하나 놓칠세라 꼼꼼히 단서들을 읽어내렸다.나중에는 어느새 기 롤랑보다 그를 더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토록 한참을 찾았다. 그의 띄엄띄엄 혹은 갑자기 불현듯 과거의 사진처럼 불쑥 솟아나는 과거의 기억속에서 그를 꼭 찾아주고 싶었다.페드로 혹은 맥케부아라고 불렸던 그를..아니 지금은 기 롤랑인 그를..조금만 더 가면 그를 찾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어느새 책은 이미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페드로를 찾은 순간 이제야 그의 존재를 알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에 가득찼다. 그를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존재를 알고 있던 그 마지막 증인을 찾은 그 순간...이제 해결되었구나라고 하지만...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그 순간이 그의 존재를 확인해줄 그 마지막 증인까지 사라져 버린 그 순간이였기에...기 롤랑은 마지막에'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로 가볼 필요가 있다며 이야기를 맺는다. 그토록 지금까지 찾을려고 했던 기 롤랑은 지금까지보다 너무 쉽게 방향을 돌린다. 나는 그 속에서 맥이 쭉 빠려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말 그대로 그것은 허무함이었다.하지만 마지막 그 자신을 찾지 못하는 그의 모습 한 구석에는 그 곳엔 오랫동안 찾아왔던 제 자신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기억상실자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그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그...온전히 살아왔음에도 잃어버린 시간들 투성인 나의 기억들......왜 그의 모습에서 나를 봤던 것일까...기억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우리 또한 나에게 있어서 그 기억이라는 것이 휘발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때로는 매우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결국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흔히 대답하는 ‘XXX입니다’ 라는 이름도 그 이름이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가... 나는 XXX이 아니여도 되는데 왜 나는 XXX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살아가는가...단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니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그것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어쩌면 단지 3글자이고 나의 이름이라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또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모호하고 덧없는 존재인지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소설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개봉된 메멘토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기억이나 감각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에 의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냄은 이 소설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가 싶다.‘내가 믿고 있는 그래서 찾고 있는 나의 과거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되었다. 그리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며 살아가라는 사회 속에서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혼란마저 느꼈다.위트가 기에게 소설 초기에‘그렇지만 이거 봐요, 기, 나는 그것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군요.’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위트는 확실하고 찬란한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것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 부분에 가면 위트의 ‘인생에서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이 옳았습니다.’ 라는 말을 통해 그의 생각이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과거는 지금 나를 만든 어떤 무엇이고 하나의 기억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무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인간이라면 아마 생존의 문제를 떠나 자기를 알아가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평생동안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쉽게 나라는 존재에 다가가고자 책 속의 주인공에 초점을 맞춰서 질문을 한번 건네본다.‘어느날 당신의 기억이 깡그리 사라져서 당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이것은 나를 찾고자 하는 방법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체성이라는 정체된 본질의 나의 한 부분을 보고자 하는 질문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을 좀더 자유롭게 해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기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그때까지 사랑하고 있을까? 나의 옛 모습이 어느 부분을 기억이 날까? 그리고 그때의 자신은 과연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까? 라고 반문하면서...소설 속에 등장하는 해변의 사나이에 대해 읽으면서 모래에 찍힌 발자국은 과거 사건, 사람들간이 관게 등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모래가 발자국의 흔적을 몇 초동안 밖에 간직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들도 처음에는 선명하나 차츰 흐미해져 간다는 것 아닐까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체계들도 모래알처럼 흩날리면서 존재의 나의 정확성을 잃어가는 것이 아닐가. 기억이라는 그 휘발성 강한 그 무엇속에서 자신임을 규정하려는 우리에게 잊혀진다는 사실은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얼마나 자극적이고 허무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또한 지미 혹은 페드로, 스테른 혹은 멕케부아 중 어느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주인공 기 롤랑의 말은 나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그가 혹시 단편적인 기억속에 자신을 짜 맞추어 가면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구절이었다.이 글 속에서 주인공이 과거를 더듬어 찾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만나는 사람들이 주는 작은 상자였다. 초콜릿이나 비스킷의 낡은 상자들 속에 담긴 그 무엇들... 그 상자속에는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단편적인 기억들의 증거가 들어있었다. 머릿 속의 복잡하고 희미한 기억들을 더듬는 것보다 비스킷 상자 혹은 초콜릿 상자속의 기억을 믿는 것이 덜 혼란스러울 것 같은 현대인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믿기도 쉬운 것이라는 점에서 동의하지만 한낱 사람들의 살아있는 기억속에 존재하지 못하고 한낱 몇 개의 사진들로 밖에 증명도지못하는 우리의 존재가 조 금은 안타깝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힘들다는 말이 목 울대까지 차 올랐을 때 그렇게 고되고 어려운 시련 속에서 빼꼼이 내뱉는 그 위트와 재치 는 유머는 우리에게 얼마나 달고 또 얼마나 쓴웃음을 자아내는지......슬플 때 슬프다 힘들다 라는 말 대신 웃음으로 승화된 그 작품은 나에게 희극도 비극도 아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사람의 인생 역정을 그린 소설은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있고 희망, 절망, 갈등, 행복 속에서 주인공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묘미는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과 삶을 통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한 면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가 흘러도 국적이 다르다고 하여도 그 작품은 언제나 힘을 가지고 빛을 낸다는 것 그것의 문학이 아닐까? 그 시대 속에만 국한되어 있고 그 나라 속에서만 이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읽혀질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이 작품 또한 배경은 중국의 50~60년대였지만 작가 위화의 허구 속의 인물들 속에서 그 인물 나름대로의 성격과 목소리를 가진 존재들의 삶 속에서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인간의 문화적 보편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수업시간에 참여하기 위한 과제정도의 동기를 가지고 책을 폈던 나였지만, 한 장 한 장 책을 넘길수록 나는 어느새 허삼관이 편이 되어갔다. 아니 어떤 장면에서는 허삼관이 되어버렸다. 허삼관은 중국에서 사는 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한 가정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다가왔고 이 인물은 우리 나라에서 몇 년 전 베스트 셀러였던 김정현의 라는 소설을 문득 떠올리게 하였다.모두가 어렵고 힘들고 곤궁한 시대. 평등이라는 이상이 지닌 현실적 한계와 죽음으로서만 이룰 수 있던 꿈의 비극성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이웃나라의 글이 아닌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해되었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제쳐놓더라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선하면서 적당히 게으르고, 악다구니이면서 정 번이나 피를 팔게 된다. 장가를 가고, 빼앗긴 살림을 되찾고, 가족들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피가 땀처럼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피를 팔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나.’ 물러설 곳 없는 극한 상황에서 허삼관이 내뱉는 절박한 탄식에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다가도, 금세 배짱 좋게 탁자를 두드리며 돼지고기와 황주를 시켜 먹는 그를 보면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감돌아 버린다. 지금도 거리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의 가장,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는 가족들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하는 소설, 는 그 자체였다.허삼관 매혈기 제목 그대로 피 팔아 살아가는 이야기다. 허삼관 매혈기는 1950년대를 전후하여 주인공 허삼관이 가족을 위해 한 평생 피를 팔면서 살아가는 인생 역정의 이야기다. 생사 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대주는 허삼관은 피를 팔아 번 돈으로 성안에서 가장 미인으로 소문난 허옥란과 결혼하게 되고, 제목에서처럼 이 소설은 허삼관이란 인물이 피를 팔게 되는 상황적 에피소드를 기본 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아무리 명품을 걸치고 바르고 굴리고 다녀야 얼굴을 들고 다니는 시대라 해도 피를 팔아 삶의 고비 고비를 넘겼던 허삼관을 비웃을 수는 없었다. 우연히 고향 이웃들로부터 알게된 매혈을 통한 삶의 방식 이 도시 노동자였던 그에게도 여지없이 현실이 된 것은 어려웠던 5,60년대 중국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매혈은 가족간의 순수한 사랑에 기초한 자기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혈로 아내를 얻었고 매혈로 아이가 사고 친 비용을 갚아야 했고 전 중국이 정책 실패로 기근에 시달릴 때 가족을 먹여야했고 아들을 위해 상관을 접대해야했고 병든 아들을 구해야했다. 허삼관은 바보멍청이 쓸개 빠진 놈 중국식으로 자라 대가리였다. 처녀가 아닌 아내를 얻고도 그걸 몰랐고 자기 핏줄이 아는 큰아들 일락이를 자신의 아들인 줄 알고 키웠다. 아내에 대한 분노는 그녀에 개한 구박과 한 차례의 외도를 통해 해꼬를 트고 혈육보다 더 숭고한 부자관계를 키워 가게 되는 것도 결국 매혈을 통해서였다. 매혈 조금은 딱딱하고 섬뜻한 단어였지만 이 작품 속에서 피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모티브였다.피’이 글의 중심 소재이자, 주제인 이 피는‘돈’과 ‘힘'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오늘에서야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거라는 것을 안 셈이지요, 제가 공장에서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이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써 버릴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쓰도록 해야지요.”이 구절서 피는 돈과 힘을 상징했다. 처음에 건강을 나타내는 한 수단으로 매혈을 했을 때 나는 그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조상의 피 하면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피를 헌혈이라는 순수(?)한 목적도 아닌 체 파는 허삼관, 그것이 지금의 돈을 벌기 위해 어떤 것이든 물불 안 가리고 달려대는 지금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이 생각은 바뀌었다. 그는 자신이 피 흘려 번 돈, 그것을 정작 그가 큰 일에 쓰게 되는 돈은 모두 가족을 위해 썼던 것이다. 결국 그 힘과 돈이 의미하는 궁극적인 내용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고, 매혈이란 소재를 통해서 극대화 되어왔다. 그런 점을 통해서 중국 사람들의 사상 가운데 가정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볼 수 있었고 또 한번 문화적 배경을 넘어선 보편성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민족 또한 뒤지지 않는 것 아닐까? 단지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지 가족이라는 혈육은 정말 모든 시대와 상황 속에서 항상 우위에 있는 숭고한 단어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이 작품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다지 유쾌(?) 하고 하하~하고 크게 웃을만한 즐거운 일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허삼관이 성내 최고의 미녀 허옥란과 결혼할 때와 아들들이 출생되었을 때 빼고는 말이다. 그런데 난 이 작품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웃음이 입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듯 싶다. 중국인들이 과장을 많이 하고 흔지 않게 하는 중요한 이유였다.하지만 너스레 떨며 웃어대는 그 모습 뒤에는 더 깊은 아픔들이 속속들이 베어 나왔다. 허삼관은 성안의 생사공장에서 누에고치 대 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그 덕분에 ‘인생은 가파른 언덕을 넘는 것과 같다’는 진리를 몸소 경험하며 그 고달픈 인생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인생'이란 허삼관과 같은 노동자 계급에게만 해당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혈 두 노릇을 하는 이 두 얼굴의 혈 두를 보라. 그는 성안의 사람들이 쌀 한 줌에 목숨이 오가는 판에도 혈색 좋은 얼굴을 하고 배부른 권력층을 대표하고 있었다. 진리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들어맞아야 하는 이치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 곳에서도 지금 우리사회의 모순이 들어나고 있었다.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이야기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가장 가진 것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피를 파는 것, 피는 단순히 몸 속을 흐르는 액체는 아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확실히 피는 뭔가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는 분명하니 말이다. 허삼관 말대로 피는 힘이고 생명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목이 타들어 가는 언덕의 비탈길이 누군가에게는 한 몫을 단단히 잡을 기회가 되고 있는 그 모습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말 안타까웠다. 피라도 팔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것, 그런 피를 팔아 평등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인가? 왠지 서글퍼졌다. 작가는 평등을 말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불평등은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 이야기라는 것을 여실히 들어냈다.이 뿐만이 아니었다. 허삼관의 세 아들들은 장성하여 첫째는 식품회사, 둘째는 백화점, 셋째는 기계공장에 자리를 잡고 벌이를 하며 살게 된다. 허삼관은 더 이상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에 너무나도 흡족해하지만 이 얼마나 씁쓸한 일이란 말인가? 신분의 세습은 이 시대에도 여무도 힘겨워 보였다.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 그리고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그는 자신의 피를 팔았고 그것을 통해서 이룬 자식의 직업이라는 그 작은 보상으로 그는 그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기뻐하고 있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이 이제 통하지 않는 상황, 이 속에서도 우리 나라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그리고 작품의 곳곳에서 들어 아는 자신의 생활을 위해 피를 파는 사람들의 가난과 고단한 삶을 보았을 때 정말 내가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돈 몇 푼을 더 받기 위해 물을 몇 공기씩 마시고, 오줌을 참느라 결국 오줌보(방광)이 터져서 죽은 이를 무지하다 미련하다 탓할 수 있겠는가. 아들의 병원 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몇 일 건너 수혈하다가 결국 쓰러져 자신의 피를 다시 수혈 받아야 했던 허삼관의 무모한 행동을 탓할 수가 있겠는가...또한 허삼관과 일락이의 관계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8년동안이나 자신의 아이라고 키워온 일락이, 세 아들 중에서 가장 의지했던 일락이는 허삼관의 아이가 아니었다. 하소용을 닮은 아이를 보면서 허삼관 또한 왜 밉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허삼관은 마지막에 아버지가 아닌 분노를 선택하기보다는 인간의 마지막 도리인 사랑을 택했다. 정말 낳아준 고생보다 키워준 노고가 더 크지 않냐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는 그렇게 이성보다는 인간의 감정을 택하면서 일락이는 그의 둘도 없는 아들이 된다. 이 부분에서 내가 허삼관이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고 정말 미워하려고 애쓰는 것 같이 보이는 허삼관의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웠지만 허삼관이 선택은 또 한번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바꾸어주었다.특히 마지막에 허삼관이 나이가 들어 정말 붉은 돼지 간볶음과 황주 두냥을 먹고 싶어서 피를 팔러 갔을 때 가슴 저편이 찡하고 시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본인을 위해서 매혈을 하러 갔을 때, 그는 너무 늙어버려 병원 측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가구에 페인트를
* 생활 속 환경 호르몬의 심각성 *환경호르몬? 컵 라면 용기에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냐? 그리고 난 여자니깐 상관 없지 않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무지한 내 모습이었다.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서 막연히 가볍게만 생각해왔던 환경 호르몬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환경 호르몬이라는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어려웠을 그런 내용들을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예를 통해 보다 친숙하고 알기 쉬우면서 더 와 닿을 수 있게 설명되어 있어서 우리 생활 속에서 경감 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앞에 처럼 환경 호르몬에 그다지 관심조차 없었던 나에게 무서움을 선물해(?) 준 책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바른 로션과 스킨, 밥으로 먹은 고기와 생선, 머리를 감을 때 쓰던 샴푸와 린스, 무심코 마신 캔 속에도 환경호르몬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침부터 환경호르몬을 몸 속에 축척하면서 오늘 하루도 마감을 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 환경 호르몬이 동물의 암수구별이 없어지며, 기형이 생기고, 남자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물일지라고만 생각했다. 특히 남자에게 더 문제이기에 여자는 그다지 상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와는 관계없는 문제라고 터부시했던 환경 호르몬 그것은 이미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환경호르몬'은 1996년 3월 미국에서 《잃어버린 미래(Our Stolen Future)》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환경호르몬' 은 몸의 정상적인 작용을 방해하는 유사호르몬으로 공식적인 용어로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이라고 한다. 몸밖에 있던 물질이 몸 안으로 들어가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동물을 통한 실험 결과 환경호르몬이 생식기의 기형, 정자 수 감소, 새끼 수 감소, 성장 지연, 면역기능저하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사람의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나와있었다. 환경호르몬 중 가장 조심 해야 할 것은 일반 쓰레기를 태우는 것만린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또 한번 걱정이 앞섰다. 특히 다이옥신은 한번 체내에 축적되면 배설 되지가 않으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 피해가 더 커져 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 처음 쓰레기 소각장에서 나온 소량의 다이옥신은 풀에 흡수가 되고, 이 풀을 먹고 자라서 풀 속의 다이옥신이 다량 축적된 소고기를 다시 사람이 먹게 된다. 한 번 축적되면 배설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풀과 고기, 사람을 거치면서 점점 더 높은 농도로 농축되어 최종 소비자인 사람의 체내에서 가장 높은 농도로 저장되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체에 유해한 다이옥신은 주로 소각장에서 폐기물을 태울 때 만들어진다. 최근 쓰레기 매립지의 부족으로 소각을 택하는 자치단체가 늘어나면서 다이옥신의 배출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소각을 한다고 해서 항상 많은 다이옥신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조금 비용이 더 들더라도 다이옥신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다이옥신 배출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하니 비용이 문제겠는가? 앞으로 조금만 미래를 내다본다면 당연히 다이옥신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이 밖에도 생활 속 환경 호르몬은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관련이 있다고 느낀 것은 화장품 속 환경 호르몬이었다. 예전부터 화장품속에 화이트닝 효과는 납이라는 물질의 결과이다. 지속적이고 많은 양을 사용했을 때 나중에 피부를 더 상하게 만든다. 라는 이야기 정도야 들은 적이 있었고 그래서 평소에 자연재료를 이용해 만든 허브, 과일을 많이 첨부한 화장품을 쓰고 있었다. 자연적인 화장품인데 당연히 안심하고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자연적인 화장품에도 환경호르몬이 검출 된다니…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부분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국산과 수입 화장품에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자 유력한 발암물질인 프탈레이트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프탈레이트는 동물실험에서 간, 신장, 심장, 허파, 혈막막했다. 앞으로 소비자가 화장품의 성분 명을 표시를 더 꼼꼼히 살펴보고 스스로가 비교적 화학물질이 많이 함유되지 않은 환경호르몬이 적은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리고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화장품 말고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환경호르몬은 식품과 관련된 것이다. 식품에 첨가된 방부제, 식품첨가물, 농약, 컵 라면 용기, 염화비닐계 랩과 포장용기 등이 식품과 관련되어서 나타나는 환경호르몬으로 이는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곳곳에 노출되어있다. 나는 평소에 컵 라면을 즐겨 먹었고 플라스틱 용기에 랩을 씌우고 전자 렌지에 돌리는 등 몸에 안 좋은 행동을 골라서 해왔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자제하고 고쳐나가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환경 호르몬의 종류는 이 외에도 너무나 다양했고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었다.이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 호르몬을 예방하는 생활 습관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음식물을 섭취하는 측면에서 보면 지방 섭취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는다. 육류, 낙농제품의 과다한 소비를 줄이고 먹이사슬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음식 즉 식물성식품을 먹는다. 식물보다는 동물이 먹이사슬의 위쪽에 있고 오염물질은 먹이사슬의 위로 갈수록 많은 양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 등의 오염물질은 지방에 축적되는 성향이 있으므로 지방질이 많은 육류는 지방을 제거하고 먹는다. 육류 이외의 식품도 가능하면 지방 함량을 줄이는 조리 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생선의 껍질과 지방이 많은 부위 등은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오염된 하천에서 잡은 어류는 환경호르몬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음식 중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새우에서 육류보다 25배나 많은 다이 옥신이 검출되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새우가 들어간 음식도 못 먹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환경에게 준 피해들을 우리가 고스란히 받는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손을 자주 씻기도록 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젖은 걸레 등으로 먼지를 닦아내고 특히 문 옆이나 문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다. 그리고 어린이 장난감도 정기적으로 세탁하고 애완동물의 털 등은 실외에서 손질해 준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은 수도는 처음 몇 분간 수도 물을 틀어 물을 흘려 보낸 후 사용하고 집을 수리할 때는 납 성분 페인트에 주의하고 어린이, 임신부는 집 수리 장소에 있지 않도록 한다. 강한 독성이 있는 세제, 살충제의 남용을 피하고 주거지 주변의 정원이나 텃밭에 농약을 함부로 뿌리지 않는다. 바닥과 벽의 깨진 틈을 청소하여 메우며 독성이 적은 약품 등을 사용하여 바퀴벌레 등을 없앤다.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여 쓰레기 재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이 옥신의 주된 발생원인은 쓰레기 소각 시설이므로 쓰레기의 양을 줄이고 플라스틱이나 비닐 계열의 일회 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또한, 플라스틱이나 비닐 계열은 함부로 태우지 않아야 한다. 네 번째로 용기 사용측면에서 보면 1회 용품, 비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다. 1회용 식품용기의 사용을 되도록 줄이고 가공식품은 주의사항을 읽은 후 조리한다. 식품용기, 조리용기는 사용 전에 표시사항을 읽고 지시대로 사용한다. 전자레인지에는 전자레인지용 그릇만 사용하고 가열해서 안 되는 용기에는 뜨거운 음식이나 물을 담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할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나 랩에 든 음식을 직접 조리하지 말고 내열성 유리나 도자기로 된 용기에 옮겨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컵 라면을 조리할 때에도 전자레인지에 직접 넣지 말고 다른 용기에 옮겨 담고 끓는 물을 부어 10분 이내에 먹는다. 종이제품은 표백하지 않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비닐 제품과 랩의 사용을 줄이고 플라스틱으로 포장되거나 열로 봉해진 용기에 들어있는 지방성 식품은 되도록 사지 않는다. 앞의 네 가지 정도로 환경호르몬을 예방하는 생활 습관을 통해 조금이나마 환경호르몬에 노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나와있었다.또한 클로렐라’라는 녹색 플랑크톤이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클로렐라는 ‘다이 옥신’ 과 같은 환경호르몬과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물질까지를 몸 밖으로 배설하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제형 타입으로 만들어 진 것도 있지만 일반 가정에서 믹서기 등으로 갈아서 밀가루 반죽에 넣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아직 친숙한 식품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탁월하다고 하니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녹차’에 ‘다이옥신’을 배출하고 흡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녹차’의 식이 섬유는 ‘다이옥신’을 흡착하여 배설 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정말 녹차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차의 엽록소가 ‘다이옥신’ 과 결합해 소화관의 ‘다이옥신’ 흡수를 막고, 이때 티백 형 녹차보다는 가루녹차가 효과가 높다고 한다. 물로 우려 마시는 녹차보다도 가루 녹차가 수용성 성분과 지용성 성분을 그대로 흡수해서 식이섬유와 엽록소를 더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는데 주의해야 한다. 최근 ‘다이옥신’ 에 노출된 실험용 쥐의 생식 장기와 정자 운동 능력 및 정자 수에 미치는 녹차의 효능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다이옥신’ 을 투여한 쥐는 고환과 전립선의 중량이 늘어나고 정자수가 감소된 반면에 ‘다이옥신’ 투여 후 녹차를 주입한 쥐는 장기 무게의 증가가 억제되고 정상군과 비슷한 수준까지 정자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차를 하루에 한잔씩은 마셔야겠다는 다짐도 해보며 환경호르몬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우리 사회에서 환경호르몬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경우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위에서 말한 식품들이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환경호르몬을 섭취하는 것을 줄일 수는 있다지만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물이 오염되면 아무리 내성이 강하거나 분해능력이 뛰어난 물고기라도다.
수업명: 현대디자인의 이해수(4-5)언론영상학과2학년어둠을 저주할 시간에 촛불을 밝혀라{위의 단 한 구절로써 내가 추구하는 생활 방식은 설명될 수 있다. 어릴 적 무심코 봤던 이 구절은 커가면서, 어느덧 내 마음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구절의 의미는 암담한 시련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피하고 등지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내가 이 구절을 좌우명으로 택한 이유는 내가 위와 같은 사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구절을 택한 이유는 좌우명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어떤 것을 바라보기보다는 부정적 시선으로 많은 것들을 바라봐 왔기 때문이다. 눈앞에 벌어진 어떤 상황이나 일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삶 또한 긍정적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였을까? 나는 모든일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가 활동하는 공간인 방의 소품만큼은 밝은 환한 계통의 색을 택한다. 어떤 책에서 실내의 색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작업능률의 향상과 심리적 안정감등의 여러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색채는 우리들의 생활에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색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이를 통해 물리적, 생리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 방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자연스런 나무 결이 그대로 살아나는 듯한 색으로 차분함을 강조해서 꾸몄지만 그 외의 소품들은 색이 환하고 밝은 느낌의 것들을 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키스하링 노트왼쪽의 수첩도 나의 기분을 상승 되게 해주는 디자인 물 중하나이다.희망 이나 긍정 이라는 밝은 느낌을 가진 이 수첩은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인데 키스 하링 이라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상품화한 수첩으로 겉 표지에 그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수첩의 겉 표지는 노랑, 빨강, 파랑 등 거의 원색에 가까운 색들을 대부분 사용해서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사람에게 날개를 그려 넣어서 현실보다는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듯 하다. 날개를 달고 날개 짓을 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서 안타까움도 느껴지지만 날 수 있을 거 같은 희망도 보여지는 듯했다. 어린아이가 매직으로 쓱쓱 그려놓은 듯한 낙서같이 보일 수도 있는데다가 원근법이나 모델 링, 꾸밈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단순해 보이는 그 그림에서 다가오는 강한 자유라는 느낌은 내 기분을 한껏 밝아지게 해주는{{것 같다. 단 두 사람을 표현하긴 했지만 그림이 꽉 찬 것 같은 체적효과는 공허함이나 외로움과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이 수첩을 계기로 키스하링 이란 인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끔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테크놀러지, 힙합 댄스와 관련된 이미지가 등장한다. 율동적 리듬에 따라 몸을 흔들고 있는 듯한 키스하링 특유의 인물들과 컴퓨터 머리에 지네 같은 몸과 다리를 한 상상의 동물 등은 그가 나이트 클럽에서 보았던 힙합 댄스를 비롯해, 쿵푸, 공상과학영화, 비디오게임, 만화 등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개 단순하게 그려져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삶과 죽음, 사랑과 전쟁 같은 보편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어 폭넓은 관객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나도 싸이트에서 가끔씩 찾아보는 곳▲ 키스하링의 또 다른 작품 인데, 팝 샵은 키스하링의 드로잉이 새겨진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장식용 자석을 팔았던 소매점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그의 작품이 상업화되어 수첩, 달력, 카드, 가방 등에 이용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몸에 지닐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나와는 다른 특이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의 자유분방함과 세상을 단순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눈이 부럽기도 했다. 그 중 내 수첩에 그려진 사람들이 날개를 달은 모습은 상상, 희망, 어떤 밝고 행복한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수첩이기에 하루의 일과를 정리할 때 수첩을 펴면서 기분이 ▲ 키스하링 작품한껏 좋아질 수 있을 것이고, 수첩을 닫으면서 또 한번 입에 웃음 을 띠게 하는 디자인 물이기에 이 수첩은 내가 원하는 나의 생활 방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 디자인 물을 선택하게 되었다.{pupa 곰돌이 메이크업 세트 ▶오른쪽 사진은 pupa(화장품회사)의 곰돌이 메이크업 세트 이다. 겉에서 보면 곰이 엎드려서 자고 있는 모습을 지닌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물건이지만, 뚜껑을 열면 안에 아이 쉐도우, 마스카라, 립 클로즈, 거울 등의 간단한 화장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들어있는 화장품케이스이다. 가끔씩 이 곰돌이 모양의 케이스를 보면 엎드려서 자고 있는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엎드려서 책을 보거나 전화를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이 디자인 물을 보면 꼭 나 같다는 생각에 가끔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디자인 물을 처음 구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봐오면서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그것은 바로 대체될 수 없는 차별화 라는 것이다. 이 상품을 구입할 때 화장품이 필요하다는 것보다는 디자인이 참 예쁘다 라는 생각에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이 디자인 물이 단순한 장식품이었고, 안에 화장품이 각각 흩어져 있었다면 이 물건은 어쩌면 내 생활 방식과는{별로 관계없는 단지 잘 디자인된 장식품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의 단순한 화장품케이스 와는 달리 귀여운 동물을 캐릭터 화해서 케이스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화장품이라는 단순한 기능뿐만 아니라,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 장식품과 같은 보는 즐거움을 줄 수 있기에 이 화장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것들과는 또 다른 차별화로 인해 그것을 사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해주는 것이다. 현대 사회 그곳은 거대한 시장이다. 이제 사람은 이 사회 속에서 분명 하나의 상품이며 우리의 가치는 가격으로 매겨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도 할 수▲ 뚜껑을 열었을 때의 모습 있다면, 즉 내 자리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이 많아졌을 때 나는 한 단계 나를 더 발전시켜 대체 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남과 차별화 된 어떤 것들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위의 화장품 케이스가 나의 어떤 미래의 목표를 표현해 주고 있는 듯해서 나의 생활 방식에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중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pupa라는 화장품 회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외에도 다양한 모양의 케이스로 이제 브랜드 대열에 우뚝 서 있는 회사이다. 대체될 수 없는 차별화 이 디자인 물을 통해 나는 다시금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디지털 카메라의 정면 모습세 번째로 나의 생활 방식을 바꿔놓은 디자인 물은 왼쪽의 디지털 카메라이다.디지털 카메라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린 요즘, 어디서나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다양한 색과 모델, 기능을 가진 여러 개의 카메라 중에서 나는 이 것을 택했다. 이 디지털 카메라는 Nikon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coolpix 2500 이다. 겉은 스틸 재질로 쌓여져 있고 본체는 약간의 펄이 들어간 은색을 띠고 있으며 렌즈를 감싼 면과 사진이 보여지는 화면은 펄이 들어간 파란색 이여서 단정하면서도 밋밋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도 이 카메라 디자인의 특징은 렌즈가 돌아간다는 점에 있다. 기존 카메라는 찍는 사람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지 못하고 찍어야하는 반면, 이 제품은 렌즈가 돌아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찍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내 모습을 찍을 수 있다 라는 점에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적어도 두 명이 있어야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던 전과는 달리 혼자서도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혼자 있는 시간들까지도 다 카메라에 남길 수 있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였지만 나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읽고...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은 신문에도 많이 소개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해준 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지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중국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탓 이였을까? 이제야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유명한 도서라 그런지 조금은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열었다. 하지만 생각 외로 기행문 혹은 일기형식으로 된 이 글은 편안한 문체로 보는 사람에게 중국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떤 이는 연어에서 강물 냄새가 난다고 했다. 이는 힘겹게 상을 거슬러 올라온 그들 생의 냄새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까닭이 아닐까? 우리가 연어의 생을 관찰하고 그들의 의지를 생각하며 그 힙겹지만 숭고한 삶을 느낄 때만이 우리는 그들에게서 강물 내음을 느낀다. 한비야. 그녀에게선 바람 냄새가 난다. 연어에서 강물 냄새가 나듯 그녀에게선 그녀가 디딘 땅 곳곳의 바람냄새가 은은히 풍겨오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녀를 바람의 딸이라고 부르는 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며 이 호칭이 그녀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느낄 수 있었다.이번에 그녀가 전해온 바람은 중국.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녀가 중국으로 간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 땅까지 밟게 된 것이다. 1년이라는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그 어렵다는 중국어를 배워왔을 뿐 아니라 나 같은 중국에 대해 무지한 이들을 위해 그 동안 중국에서 그녀가 본 것들, 배운 것들, 그리고 느낀 것들을 고스란히 그림을 그리듯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중국여행 목적은 중국어 연수를 넘어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중국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만큼 알고 있었을까? 평범한 나에게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나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앞으로 미국을 이길 수 있는 강대국의 가능성을 가진 나라, 하지만 우리 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 등... 이런 정도 었을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생각인지 모르겠다. 지리적 위치상 인접한 거리에 비하면 우린 그 동안 중국을 너무도 모르며 또 등한시하며 살아왔다. 지금 중국은 어떠한가? 세계에서 몇 개 남지 아른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지만 시장, 경제면에서는 자본주의의 틀을 적절히 사용해 가장 빠르게 거대하게 이루어지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고 2008년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열리고, 몇 십 년 뒤에는 지금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이런 중국에 바로 인접해 있는 우리가 중국을 소홀히 한 채로 어떻게 21세기를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국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텐데 말이다.한비야라는 여행작가 눈을 통해 중국에 대해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정말 큰 기쁨이었다. 전 세계 65여 개국의 오지를 찾아다니고, 800킬로미터에 이르는 우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녀가 남긴 글에서 그녀의 진솔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진지한 인생관을 전부터 들어온바 있었다. 이번 중국견문록에서도 어김없이 그녀의 에너지 넘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중국이라는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아직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이 거대한 나라를 그녀의 눈을 통해 구석구석 숨김없이 만나볼 수 있었다. 학생 이여서 그런지 책에서 관심이 가고 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중국어 공부였다. 영어 못지 않게 그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요즘에 한 언어를 정복 개상으로 여기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더 많은 문화를 알아 가는 즐거운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참 부럽고 인상깊게 느껴졌다.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여러 가지영역에서 점점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어는 우리말에 없는 발음과 성조 때문에 익히기 쉽지 않다고 들었고 몇 마디의 중국어를 배웠을 때도 어렵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이런 중국어에 정면 승부를 걸었다. 방법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외우고 또 외우고,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중국어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성실과 끈기에다 중국과 중국인의 대한 진지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그녀는 중국어 실력은 일취월장을 이루는 듯 보였다. 주위의 모든 중국인들이 그녀의 중국어 회화 선생이고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곧 실전 연습이다. 이렇게 중국어 공부 하나에도 그녀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큰 원동력을 엿볼 수 있다.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적극적 자세와 긍정적 시각이었다. 초등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영어라는 언어를 배우면서 작가처럼 꾸준히 요령피지 않고 단지 노력하고 도 즐거운 마음으로 조금씩 익혀나갔다면 지금쯤 한국어 못지 않게 영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도 누구와 있어도 자신감과 겸손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이 글을 읽는 나 자신까지 에너지가 솟구치게 만든다. 중국어 공부 못지 않게 이 책을 통해서 그녀가 중국에 있으면서 중국사람과 만나 그들에게서 느낀 중국이라는 나라를 보여준 것은 중국이란 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또한 중국의 문화적, 사회적으로 작가가 체험한 것에 대해서 조금씩 서술 되어있는 부분은 역사와 문화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들 이여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수업 할때도 느꼈던 것이었지만 중국이 유교, 불교 등 예의, 예절바른 나라 라는 이미지가 나의 머릿속에서는 가득했었는데 나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렸던 것이 바로 돈에 대한 중국 사람의 생각과 태도였다. 자본주의 경제 틀이 도입 돼서 인지는 몰라도 중국사람들은 새해인사마저 돈 많이 버세요. 라고 했고, 숫자 8 에 돈을 번다는 의미를 부여했으며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지나가면서 봤던 중국의 복권 열풍은 우리 나라 못지 않게 아니 훨씬 더 심한 것 같았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복권같이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정 반대로 부러움을 느낀 것도 있다. 바로 우리 나라보다는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의 모습이었다. 우리 나라도 요즘 남녀평등을 실현하려고 노력은 하는 중이고 그래서 많이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사회의 이곳 저곳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은연중에 남성 우월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남녀평등이라고 했을 때는 서양이란 조금은 다른 문화권이라는 생각에 우리와 그런 사상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동양의 나라 중국에서 남녀평등이 이뤄지고 있다니 더욱 부러움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