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매체의 발달목차1. 인쇄매체의 특성과 기능2. 인쇄매체 제작 매커니즘3. 인쇄매체의 종류와 각 매체별 성격4. 인쇄매체 제작 소프트웨어의 종류와 특징1. 인쇄매체의 특성과 기능-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이후 인쇄의 발명은 인류의 삶에 지대한 변화를 이루어 냈다. 인쇄가 가능해 지면서 정보와 문화가 활발히 유통되었으며, 인쇄물은 교육, 정보전달, 아이디어 교환의 수단이 되었고 이는 최근까지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요구를 상당 부분 만족시켜왔다.미디어는 다양한 진화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멀티미디어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멀티미디어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대체적으로 선형적 진화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시대는 이종 혹은 동종 미디어 간에 서로 융합·분열하는 복합적인 진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는 인쇄매체의 영역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기존 인쇄매체의 특성에 있어서 인쇄는 길고 오랜 역사를 통해 정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힘이 있으며, 체계화된 제작 프로세스와 방법론으로 잘 다듬어져 있어 사람들은 누구나 인쇄된 내용을 보고 쉽게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어 인쇄에서는 다양한 크기, 지질, 서체, 레이아웃을 표현할 수 있어 사용자들은 그 인쇄물이 어떠한 범주에 속한 것인지를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인쇄매체의 특징은 소비자가 정보를 처리하는데 매우 이성적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인쇄정보를 처리할 때 소비자는 좌뇌의 활동이 활발하며 눈이 글자를 따라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를 통해서는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며 일단 메시지를 읽는 소비자에게는 제품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인쇄매체의 기능을 살펴보자면 인쇄매체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한 부분으로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내용은 사실의 보도와 해설·계몽·오락의 3요소이며, 과정은 전달자·메시지·매체·수용자의 4요소로 이루어진다.매스미디어의 순기능은 사회질서 전수기능으로 정리했으며, 라이트는 오락제공의 기능을 추가하였다. 라자스펠드와 머톤은 매스미디어가 기존의 규범을 강화하고 특정한 이슈나 인술 혹은 조직에게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기능을 설명한다고 설명했다.위 내용에 따라 매스미디어는 환경감시기능, 상관조정기능, 사회유산의 전수기능, 오락적 기능의 4가지 기능을 갖고있다.매스미디어의 환경감시기능이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정리하고 분배하는 기능을 말하며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보도매체가 다루는 뉴스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상관조정기능이란 사실보도의 차원을 넘어서 환경에 관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처방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사회가 적응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기능을 말한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사건들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매스미디어의 상관조정활동은 여러사건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역할도 담당하며 매스미디어의 논평기능은 사건의 심층적인 배경과 의미는 물론 해석과 처방을 제시함으로서 의제설정기능을 하게 된다.매스미디어는 사회의 가치, 규범, 그리고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각종정보를 한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혹은 그 사회로 편입된 새로운 사회 구성원 들에게 전수하는 기능을 가진다. 사회의 규범을 내면화하는 매스미디어의 사회화 기능을 담당한다. 매스미디어의 사회화기능은 여러계층의 사회구성원들을 위한 교육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하며 일탈행위를 공개함으로써 기존의 규범을 강화하고 윤리를 재확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윤리의 규범화 기능'이라고 부른다.매스미디어는 뉴스나 논평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흥미위주의 내용이나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의 기분전환이나 휴식을 돕는 오락적 기능도 갖고 있다.위의 매스미디어 기능들이 인쇄매체의 주요 기능들이라 할수 있겠다.2. 인쇄매체 제작 매커니즘-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사용한 인쇄술을 개발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구텐베르크혁명이라 일컫는다. 알트스컬은 인쇄술이 중세사회를 무너트리고 세상을 통채로 바꿔 놓았다고 주장했다.인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과혁의 획기적 발전을 야기하여 근대 사회를 불러왔다고 강조했다.맥 루한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발전 과정을 문자 이전 시대, 구텐베르크시대 및 전파시대로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문자 이전의 시대에는 구두커뮤니케이션이 지배했으며 문화 역시 구두문화의 성격을 띠었다. 구텐베르크 이후에는 인쇄매체가 등장하여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를 촉발했다. 20세기 들어 전파매체가 등장함으로써 지구가 하나의 촌락을 이루는 지구촌 시대가 가능하게 했다.인쇄술이 개발되고 제지술이 보급되자 15세기 말에 부정기 인쇄신문이 나타났다. 그 최초의 것으로 독일의 ‘플러그 블라트’를 들 수 있다. 이 ‘플러그 블라트’는 대개 4절 내지 8절의 1면 인쇄였으며 뒷 면은 뉴스를 추가하기 위해 백지로 남겨두었고 문장은 산문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 부정기 인쇄신문은 곧 독일로부터 이태리,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등으로 전파되었다.16세기에 교환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뉴스의 수요가 증가하자 인쇄업자들은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하기에 이르렀고 17세기 후반에 우편제도가 발전하여 매일 배달이 가능해지면서 일간신문이 등장했다. 1650년 독일의 라이프찌히에서는 서적상인 티모데우스 리츠치가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인 ‘아이코멘데 자이퉁’을 발행했다.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잇달아 일간신문이 출현했다.19세기에 들어 신문업계에 일대 변혁이 일었다. 그 변화를 주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19세기의 2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정파신문이 성행하였으나, 보스톤과 필러델피아에서 이른바 ‘페니 페이퍼’라고 부르는 대중신문이 등장하여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페니 페이퍼’는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1833년에 벤자민 H 데이가 뉴욕에서 ‘선’지를 창간함으로써 발전하였다. ‘선’지가 성공을 거두자 각지에서 ‘페니 페이퍼’가 속출했다. 이러한 신문은 때로 선정적인 기사를 다룸으로써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신문을 대중의 것으로 만들고 뉴스의 개념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데 큰 의 ‘뉴 저널리즘’이 대두하자 신문들은 정당이나 정부의 부정 부패에 대하여 투쟁하고 아울러 사회복지의 진흥에 노력을 기우리게 되었다. 이런 운동에 앞장선 것이 ‘뉴욕 월드’의 경영주였던 조셉 퓨리처였다. 그러나 신문은 정치적으로는 중립성을 견지하게 되었으나 신문 경영을 위해 상업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신문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정주의적 보도가 관행처럼 굳어졌고, 이에 따라 미국 신문계는 황색 저널리즘이 지배했다. 황색 저널리즘은 1900년까지 절정에 달하였다.그러나 20세기 들어 ‘뉴욕 타임즈’가 고급신문으로 자리잡으면서 권위지 시대가 열렸다. 이 신문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였다. 인쇄와 편집에도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이 신문은 권위지로 성과를 높이게 되었다. ‘뉴욕타임즈’의 선도로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수준높은 권위지들이 속속 출현하게 됐고 더불어 뉴스 뿐만 아니라 패션, 과학, 스포츠 등 여러분야의 전문적인 인쇄매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3. 인쇄매체의 종류와 각 매체별 성격- 인쇄매체는 먼저 발행 목적과 발행주기에 따라 나누어진다. 먼저 발행주기에 따라 단 한번 책으로 발간되는 단행본과 1년에 1번씩 발행되는 연간지, 계절마다 발행되는 계간지, 월별로 발행되는 월간지, 주마다 발행되는 주간지, 매일매일 발행되는 일간지 등으로 나누어진다.성격을 보자면 월간지의 경우 패션, 컴퓨터 등의 취미 혹은 가벼운 재미를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고 주간지나 일간지 경우는 시사, 경제나 혹은 스포츠, 연예 등의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것에 주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발행 목적으로 인쇄매체를 나누고자 한다면 먼저 인쇄매체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저널리즘 분야가 있다.저널리즘이란 시사적 문제나 사실에 대한 뉴스 등을 취재.편집하여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인 신문, 잡지, 방송 등을 통해 보도, 논평, 해설 등을 사회. 공중에 전달하는 활동, 또는 이러한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야를 말한다.보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문야라고 할수 있겠다.두 번째로는 아카데미즘의 성향을 갖는 인쇄매체이다. 아카데미즘 인쇄매체의 예로는 학술지가 있다. 이 학술지란 학회나 연구소 등에서 정기적으로 혹은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발행하는 논문집이라 할 수 있는데 교수들은 학위 논문이나 정기적으로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해야 하는데 이런 논문들을 자신이 속한 학외의 학술지에 싣거난 혹은 저명한 학회의 학술지에 투고한다.이렇게 전문 분야들의 학술지들이 아카데미즘 인쇄매체라 할수 있겠다.세 번째로는 상업성을 갖는 인쇄매체 이다. 원래 거의 모든 인쇄매체는 광고나 혹은 홍보에 일정 이상의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이 상업성을 갖는 인쇄매체는 전문적인 광고나 판매 판촉 등을 전문적으로 하며 무료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인쇄매체를 말한다.네 번째로는 매거진이 있다. 이 매거진의 인쇄매체는 잡지이다. 잡지의 종류들도 다양하다. 스포츠 전문잡지, 연예 전문잡지, 컴퓨터 전문잡지 등과 더불어 영화, 패션, 과학, 부동산, 건강 등 다양한 주제들의 잡지가 있다. 잡지의 경우 보도중심의 저널리즘과 혼동 할 수도 있지만 잡지가 보도중심의 저널리즘과 다른점은 시의성의 차이와 조금은 더 천천히 자세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다섯 번째로는 홍보를 위한 인쇄매체이다. 이 홍보를 위한 인쇄매체로서는 회사의 소식을 전하고 조금이라도 더 회사를 홍보하기 위한 사보가 있다.여섯 번째는 커뮤니티 기능을 갖는 인쇄매체로 지역지, 회보, 학보 등이 있다. 이중 학보의 경우 학교내의 저널리즘적인 요소와 아카데미즘적인 요소와 커뮤니티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마지막으로 일곱 번째로는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요소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형태의 인쇄매체가 되겠다.4. 인쇄매체 제작 소프트웨어의 종류와 특징- 첫 번째 인쇄매체 프로그램으로 페이지메이커가 있다.페이지메이커는 미국 앨더스사에서 개발한 탁상 출판 프로그램으로 1985년에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를 위해 개발되었으며 2년 후에 IBM PC에 이식되었다. 사용하기 쉽고 기능이 풍부하여들었다.
미디어의 발달목차1. 미디어의 정의2. 미디어의 종류3. 미디어의 발달가. 인쇄미디어나. 전파미디어다. 영상미디어라. 인터넷1. 미디어의 정의미디어란 매체(媒體) ·수단(手段)이란 뜻으로, 불특정 대중에게 공적 ·간접적 ·일방적으로 많은 사회정보와 사상(事象)을 전달하는 신문 ·TV ·라디오 ·영화 ·잡지 등이 대표적이다. 매체와 수단에 따라 신문 ·잡지 ·도서 등의 인쇄매체와 TV ·라디오 ·영화 등의 시청각매체(비인쇄 또는 전파매체)로 나누어진다. 인쇄매체는 19세기 중엽 윤전기 등의 발명으로 이루어졌고, 시청각매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무선전신의 송수신기술과 영화기술 등의 발명으로 이루어졌다. 최근의 기술적 발달로 더욱 다양화하는 매스 미디어의 성립기반으로는 근대산업의 발달에 따른 도시에의 인구집중, 교육의 확산, 경제적 여유와 여가시간의 증대 등 대중사회 형성의 여러 조건을 들 수 있다.쉽게 말하자면 한가지의 정보를 대량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달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2. 미디어의 종류미디어의 종류는 이 미디어의 종류를 나누어보자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다.1. 인쇄미디어2. 전파미디어3. 영화4. 영상미디어(TV)5. 인터넷인쇄미디어의 종류로는 신문, 잡지, 사보, 전단지, 학술지 등의 인쇄를 통하여 제작된 미디어이다. 단, 일기나 혼자서 그린 그림 등은 미디어라 할 수 없다.전파미디어는 전파를 사용하는 매체로 라디오가 있다. 또 필름에 기록을 극장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영화와 영상미디어인 TV도 미디어이다.VTR이나 DVD도 미디어로써 영화와 같은 미디어라 할 수 있다.다음으로 뉴 미디어인 인터넷이 있다. 이 시기에서부터는 미디어의 종류가 다방면으로 늘어나는 특징을 갖으며 블로그, 홈페이지(포털), 모바일, 위성, 케이블, 더불어 요즘 한창 떠들썩한 UCC도 각각 하나의 미디어 매체라고 할 수 있다.3. 미디어의 발달- 인쇄미디어: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사용한 인쇄술을 개발했다. 인쇄술이 개발되고 제지술이 보급되자 15세기 말에 부정기 인쇄신문이 나타났다. 그 최초의 것으로 독일의 ‘플러그 블라트’를 들 수 있다. 이 ‘플러그 블라트’는 대개 4절 내지 8절의 1면 인쇄였으며 뒷면은 뉴스를 추가하기 위해 백지로 남겨두었고 문장은 산문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 부정기 인쇄신문은 곧 독일로부터 이태리,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등으로 전파되었다.16세기에 교환경제가 더욱 발전하고 뉴스의 수요가 증가하자 인쇄업자들은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하기에 이르렀고 17세기 후반에 우편제도가 발전하여 매일 배달이 가능해지면서 일간신문이 등장했다.19세기에 들어 신문업계에 일대 변혁이 일었다. 그 변화를 주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19세기의 2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정파신문이 성행하였으나, 보스톤과 필러델피아에서 이른바 ‘페니페이퍼’라고 부르는 대중신문이 등장하여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이후 미국에서는 이른바 ‘뉴 저널리즘’이 대두하여 신문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게 되었다. ‘뉴 저널리즘’이 대두하자 신문들은 정당이나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투쟁하고 아울러 사회복지의 진흥에 노력을 기우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문은 정치적으로는 중립성을 견지하게 되었으나 신문 경영을 위해 상업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신문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정주의적 보도가 관행처럼 굳어졌고, 이에 따라 미국 신문계는 황색 저널리즘이 지배했다. 황색 저널리즘은 1900년까지 절정에 달하였다.그러나 20세기 들어 ‘뉴욕 타임즈’가 고급신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권위지 시대가 열렸다. 이 신문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하였다. 인쇄와 편집에도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이 신문은 권위지로 성과를 높이게 되었다. ‘뉴욕타임즈’의 선도로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수준 높은 권위지들이 속속 출현하게 됐고 더불어 뉴스뿐만 아니라 패션, 과학, 스포츠 등 여러분야의 전문적인 인쇄매체들이 등장하게 되었다.우리나라에서의 최초 신문은 김옥균 등 개화당 인사들의 노력으로 정부의 박무국에서 발행한 한성순보이다. 한성순보는 1883년(고종 20년) 10월에 정부의 박문국에서 발간한 신문으로 열흘에 한 번씩 나왔지만 1년만에 폐간되고 1886년에 한성주보(漢城周報)로 개제되었다.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으로 한문체로 발간되었다 .일간이 아니고 관보(官報)의 의미도 있어 신문이라고 하기에 미비한 점도 있으나,새로운 소식을 게재하며 정기적으로 발행되었으며, 그 체계가 신문의 형태를 따랐기 때문이다.- 전파미디어: 라디오는 1차 대전 중에 군사적 용동의 무선통신용으로 사용되었다. 종전 후 미국에서는 수신기를 판매하기 위해 라디오를 통한 방송을 시작하였다. 그 후 수신기의 판매가 확대되고 라디오방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라디오방송국이 늘어났고, 수신기보급의 확대를 위해 방송내용도 오락적 성격이 강해진다.20년대 중반이후부터 수신기판매가 한계에 다다르자 재정적 어려움에 달하자 광고를 도입하는 운영방식이 시도된다. 그 후 30년대부터 라디오 광고방송이 상용화되는 단계에 접어든다. 이로써 미국식의 상업적 라디오방송제도가 확립된다. 하지만 초기에 라디오방송이 인기를 끌어 방송국이 여러 개 생겨나자 주파수 혼선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전파를 유효적절하게 배분해주어야 할 사회적 필요성이 제기되자, 정부는 이를 계기로 방송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방송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간섭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정규 라디오 방송은 1927년 2월 16일 사단법인 경성방송국(JODK)이 출력 1kW, 주파수 690kHz로 정식으로 개국하면서인데, 세계 6번째이다. 당시의 라디오 수신기는 수화기식과, 많은 사람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전지식 수신기로서 확성기가 달린 수신기였다.- 영상미디어: 1800년대에 이르며 사진이 발명되고 사진의 기술력또한 꾸준한 발전을 이루어온 결과 사진의 셔터스피드와 네가티브의 발전으로 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는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최초로 스크린투사 방식의 공개 영화 시사회를 열었다. 이후 많은 영화사들이 생겨나고 이 영화사들이 미국 서부로 몰리면서 영화의 메카 헐리우드가 탄생하게 되었고 영화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1927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탄생하였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천연색필름이 도입되며 컬러영화의 시대가 열렸다.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것은 기록에 의하면 1899년 한국을 여행하던 미국인 여행가 엘리아스 버튼 홈즈(Elias Burton Homes)가 고종황제 앞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상영하였다고 한다. 이 신기한 구경의 대가로 그는 황제로부터 비단과 부채 등의 하사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의 상영은 고종황제를 비롯한 한정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인 상영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보다 몇년이 더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 신기한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1903년 6월 23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광고를 통해 보면, 동대문의 한성 전기회사 기계창고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10전의 입장료를 받고 단편영화를 상영했었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다.첫 대중상영에서 성공을 거두자 한성 전기회사 마당은 "동대문 활동 사진소"로 불리우며 점차 관람시설도 갖추어 나가게 되었고 1907년에 이르러서는 "광무대"라는 이름의 정식 공연장으로 점차 서울의 명물이 되어갔다.1923년에 들어서 "서선 키네마"라는 영화사의 작품인 "국경"이 제작되면서 부터이다. 당시 5만원의 제작비를 들여서 한국과 중국과의 국경지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화 한 우리나라 최초의 극영화로 기록되는 이 영화는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영 하루만에 종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