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과 목:도서관문헌이용법교수님: 이유정교수님학 과: 경영 학과학 번: 2002832017이 름: 구 기 정1. 학술 잡지- (월간)식당 : 외식산업의 종합경영정보지 / 한국외식정보- (월간)현대경영 / 韓國能率協會- (월간)호텔·레스토랑 : 관광·외식산업 업계의 종합정보지 / 에이치 알- (月刊)경영과 컴퓨터 / 민컴- (月刊)經理 / 月刊經理社- (月刊)自動化技術 / 첨단- (月刊)勞務管理 : 勞務·人事·總務·經營 /勞使新聞社- Computers & operations research / Pergamon Press / c19912. 사전, 백과사전- 경제신어사전 / 어울 / 매일경제신문사 /2000- (新)經濟·經營學大辭典 : 會計學·貿易學 / 經濟經營辭典編纂委員會 編 / 1996- 韓國主要企業事典 / 전국경제인연합회 / 서울 / 全國經濟人聯合會 / 2001- (圖說)小學校 學級經營事典 / 敎育技術硏究所 / 東京 : 小學館 / 19863. 연감, 통계- 한국벤처기업연감 /서울 / 데이코산업연구소 2000-- 한국CEO연감. 2004 / 최고경영자협의회 [편/ 서울/ 한국산업정보원 최고경영자협의회- 한국기업총람. 2003 / 한국기업평가 엮음 / 헤럴드미디어 / 2003- 병원경영통계 / 대한병원협회 외 저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 2003- 한국벤처기업연감 / 데이코산업연구소 / 20004. 편람, 인명사전- (코스닥등록법인)경영 인명록 /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 한국신용정보 [공편] /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 20015. 색인 및 초록지- 현대 경영학원론 / 윤재홍,안기명,안영면 지음 / 박영사 / 20001) 최근에 더욱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는 경영자들이 갖춰야 할 의사 결정능력, 문제해결능력뿐만 아니라 기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기업이 처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이에 대표되는 국제화, 정보화 및 지식자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경영의 객체인 경영프로세스를 통합적으로 보는 시작을 제시하였으며, 최근에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변화와 혁신의 사례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2) 이 책은 총7부 17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는 경영주체, 제2부는 경영환경, 제3부는 경영객체 - 경영프로세서 관리, 제4부는 계획, 제5부는 조직화, 제6부는 지휘, 제7부는 통제로 각 장에의 앞과 뒤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의 기업들의 사례들은 제시하였다.3) 색인가격 189가맹점(프랜차이즈) 121가상현실 260....효율성 172후방통합 237희생양 646. 연구 단체 및 학술 사이트- 기술경영경제학회 : http://www.technology.or.kr/국가 과학기술정책수립 및 기술개발전략수립에 기여를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로 학회발간자료, 주요행사, 관련 링크 등을 제공하며, 기술혁신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개발하고 보급에 진력함으로써 학문발전을 기하고, 산업현장의 기술혁신 활동의 효율적인 관리방안을 제시하며, 국가 과학기술정책수립 및 기술개발전략수립에 기여하는 동시에 과학기술주도의 새로운 사회개혁을 유도하고자 1992년 6월 23일 창립되었다.- 대한경영학회 : http://www.daba.or.kr/학회논문집, 발표논문집을 전문제공하며, 설립목적은 경영학 및 이와 관련된 인접학문의 이론·정책·실무·제도 등에 관한 학술연구와 이의 진흥과 보급, 학술교류와 친목 도모, 유관기관 및 외국학자와의 학술교류 촉진 등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대한경영학회의 활동은 경영학, 무역학, 경제학 이론과 실무에 관련된 연구와 학술조사와 학술지와 연구서적, 기타 간행물의 발간 및 배포 및 학술 및 연구발표회, 강연회, 세미나 등의 개최, 국내·외 학술단체 및 관계기관과 산업계, 유관기관 및 제학회와의 교류, 경영학 관련 분야의 학술상 수여, 산업발전과 기업경영에 기여한 경영자에 대한 경영자 대상의 수여, 적합한 제반사업의 수행 및 지원, 관련사업 등의 수행을 한다.
교육사회학의 접근이론은 사회현상에 대한 교육문제를 규명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문제나 현상을 접근하는 사회학 접근이론에 많은 영향과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사회과학에 속한 학문들은, 명칭은 다소 차이가 있어도 그 뿌리는 같은 이론이나 방법을 해당 학문의 성격이나 학자의 주관적 견해를 따라서 다양하게 활용하며, 문제의접근에 적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교육사회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론이나 모형을 적용할 수 있는데 오늘날 많이 거론되는 여러 이론과 모형을 종합해 보면, 크게 기능주의 이론적 관점과 갈등주의 이론적 관점, 그리고 해석학적 관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참고로, 기능주의와 갈등주의 이론이, 사회구조의 질서와 갈등을 연구하는 거시적 시각 (Macroscopic Approach)인데 비하여 해석학적 시각은 미시적 시각 (Microscopic Approach)이라고 할 수 있다.오늘날 교육사회학의 연구가 기능주의 관점이 주된 흐름이라면 갈등주의 관점은 기능주의 시각에 대한 비판, 도전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우선 기능이론은 사회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꽁트 (A. COMTE) 나 사회유기체설을 제시한 스펜서 (H. SPENCER) 까지 연유하여, 그 이론적 기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이론적 근거를 발전시킨 사람은 뒤르껭 (E. DURKHEIM) 이었으며, 사회학이론으로의 구축은 파슨스 (TALCOTT PARSONS) 에 의하였다. 기능론자 들은 한 사회를 구조와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며, 그 지속성과 번영을 위하여 질서, 균형, 안정을 추구하며,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또는 구성 요인간의 합의 (consensus)와 통합을 이루게 된다고 보고 있다. 뒤르껭은 모든 사회가 해체되지 않고 응결,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질서라고 생각했고, 이 사회질서의 기초는 사회 구성원간의 상호의존성과 합의에 있다고 하였다. 한편, 갈등이론은 마르크스 (K.MARX)나 베버 (MAX WEB다른 목적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한 집단의 목표는 다른 집단의 목적에 일치되지 않는다고 믿으며, 이러한 갈등현상은 외면적으로는 조용하게 보일런지 모르나,내면적으로는 활기찬 움직임을 가지며, 때로는 표면화되거나 폭력화 되기도 한다고 보고 있다.기능주의 이론의 교육의 사회화 기능을 통하여, 사회구성인의 지식, 신념, 태도, 이념 등의 공동가치나 공민성 계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갈등이론가들은 교화, 억압 등에 의한 잘못된 사회화를 교정할 수 있는 인간성 회복에 그 강조점을 두고 있다.▶ 두 이론의 교육적 관점기능이론과 갈등이론이 각각 설명하는 교육 및 교육문제의 설명은 매우 대조적이다.1. 기능이론의 학교교육에 대한 시사점기능이론가의 교육, 특히 학교교육에 관한 시사점은 뒤르껭과 파슨스의 연구와 논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뒤르껭은 사회가 해체되지 않고 지속, 통합되는 원인을 사회질서라고 생각하고, 이 질서의 기초는 사회 구성원의 상호 의존성과 합의에 있다고 하였다. 사회적 학습과정 즉, 도덕교육이 결과적으로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가치의 내면화는 사회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다.파슨스는 뒤르껭과 같이 학교교육의 사회화 기능을 강조하는 동시에, 산업사회에서의 인력배치 기능을 부가하여, 교육의 사회적 선발기능도 강조하였다. 파슨스가 말하는 사회화도 뒤르껭과 비슷하며, 이것은 학생들이 장래 성인이 되어 담당하게 될 사회적 역할수행에필요한 정신자세와 자질을 기르는 곳이 학교라는 것이다.2. 갈등이론의 학교교육에 대한 시사점갈등이론에 입각하여 교육사회학의 연구에 시사점을 준 학자는 월러 (W.WALLER), 보울즈와 진티스 (SAMUEL BOWLES & HERBERT GINTIS), 그리고 다렌돌프 등이다. 월러는 학교를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보고,그 속에서 학생과 교사 문화가 구분되어 서로 마찰, 갈등을 빚는 현상을 잘 지적하였다.보울즈와 진티스는 [자본주의 미국 사회에서의 학교교회현상을 교육적 문제로 연결지어 교육불평등 문제, 인간소외 문제, 교육계층화 문제 등을 문제시한다. 따라서, 갈등이론가들은 현대의 학교교육 제도가 사회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공헌하며, 교육의 내용도 특정계층의 지식을 형식적 교육과정에 투입하여 전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교육사회학의 새로운 접근'70년대에 접어들면서 종전의 교육사회학은 실증주의와 객관주의에 치우친다는 비판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교육사회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이 이른바 영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신교육사회학 (New Sociology of Education)'의 출현이다. 신교육사회학의 확립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학자는 영국의 마이클 영 (MICHAEL F.D.YOUNG) 이다. 그는 갈등론적 입장에서 쓴 '[지식과 통제 (Knowiedge and Control)'라는 문헌을 통하여, 신교육사회학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과 함께, 사회언어학적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번스타인 (B.BERNSTEIN)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교육학자들의 주장은 구조-기능주의적 교육사회학이 지식, 교육과정의 조직 및 학교나 교실에서의 제도적, 상호작용적 환경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교육사회학 연구의 주요 흐름을 보면 1960년까지 지배적으로 강조되어 온 구조-기능주의 이론에 대하여 '50년대까지 합의론적 기능주의와 인간자본론 그리고 '60년대의 접근화 리론을 들수있다. '70년대에 들면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대칭적인 신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교육에 갈등론적 관심은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기능주의와 갈등주의에 대한 관점의 차이1. 범죄의 원인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1)기능주의기능주의 관점에 따르면, 모든 사회는 특유한 유형의 범죄를 낳고 이에 대응하는 독특한 방법을 갖는다. 기능주의자들에 따르면 범죄는 사회의 질서에 위협이 되는 행위이다. 초기의 기능주의이론은 사회해체론 이고 현대의 기능주의 사회문제 이론은 제도형성이론 이다.2) 갈등주의갈등주의는 맑문에 가족 성원들은 대안적으로 일탈행동 혹은 비행을 보이거나 가족해체로 나타나는 가족문제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기능주의적 시각에서는 갈등이나 해체는 역기능적이며 이러한 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기능을 강화시키는 사회정책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을 강조한다.2) 갈등주의갈등주의적 시각에서 가족 내의 갈등은 가족관계에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부산물이며 가족문제는 가족 내의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가족내의 갈등을 비정상적으로 보거나 회피하기보다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족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혼은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갈등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설득과 협상에 의하여 상호 수용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내의 폭력을 갈등을 공격적으로 해결하는 건설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지적된다.3. 사회문제와 사회복지정책오늘날 두드러진 사회문제는 사회해체와 탈선행위이다.1)기능주의: 가족해체, 범죄, 비행 등 부적응 문제-비정치적, 비이념적 생활의 질 향상에 관심 -사회복지정책 -미국, 일본, 한국오늘날 사회는 다양화되어 가고 있어, 개인이 다양한 사회현상에 자신의 전체를 관여시킬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능력과 관심과 이해에 따른 분화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따라서 각자는 분업에 따르는 역할과 관심에 따르는 참여를 해야 했으며, 직능에 따른 계층분화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기능이 상호보완적으로 이 사회를 형성ㆍ발전시켜 나간다고 보는 견해이다.2)갈등주의: 빈곤, 실업, 기회의 불평등-분배ㆍ불평등 감소에 주력-사회정책-복지국가사회질서가 힘과 강제 즉, 지배와 복종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보며 사회현상의 분석수단으로서 사회적 갈등을 지적한다. 사회적 갈등은 어떠한 사회에서도 존재하지만, 그러면서도 사회조직이 통합될 수 있는 것은 강제적인 힘 때문이다. 기능주의에서는 사회의 이러한 갈등현상을 사회적 병리현상 또는 사회악으로 보고 이를 치료하고 제거하려는데 반해 갈등주의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오생이 가능하다.아무리 머리가 좋고 학교성적이 1등만 한다고 해도 머리 속에 내재된 것을 표현할 수 없다면 학생회장이 될 수는 없다. 학생회장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실히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내가 학생 때 반장선거 때도 그랬다. 선생님은 공부보다는 학급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아이들을 학급 임원으로 선택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학급선거를 토대로 선출하였다. 아이들도 반장이 꼭 공부만 잘하기보다는 학급운영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활발하고 리더쉽이 있는 아이를 선택하였다. 공부를 잘 한다고 하여도 소극적이거나 내성적이면 후보로는 되어도 반장이 되기는 힘들었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해서 고등학교로 자신의 모교에 가서 지금 현재 재학중인 대학교의 홍보를 나갈 때에도 과에서 학업성적이 우수 한다고 해서 나가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언변술이 있는 학생을 보낸다. 고등학교때 학교의 선배가 현재 재학중인 학교의 홍보를 위해 후배들을 방문하여 학교의 설명을 너무 잘해 그 선배에게 우리반의 친구들이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답변을 들으면서 ‘저 선배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가봐’ 라고 생각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부는 그리 잘 하지 않았던 선배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이것들은 기능주의 한 예로써 들 수 있다.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교사들을 무조건 교실에 앉아서 조용히 책만 보면서 공부하는 것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다. 일률적으로 모든 학생이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공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이것은 교사들이 국.영.수. 즉 수능에 관련된 공부만 공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미술,음악,체육과 같은 예체능 등의 특기능을 살려서 대학에 가고 싶어 운동장이나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감상한다든지 음악실에서 악기연습 등을 하는 것을 교사들은 그것을 핑계로 논다고 생각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견혜가 있다.그리고, 모든 학생이 자리에 앉아서 특별히 튀는 있다.
관념론과 실재론에 대해 알아 본다면,1. 관념론:관념, 관념적인 것을 실재적 또는 물질적인 것보다 우선으로, 이념, 정신, 이성, 의지 등 정신적 요소를 강조하였으며, 계급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육체,정신노동의 분리에 의한 사고가 원시사회의 종교적 관념을 계승하는 동시에 자연과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추상적으로 행해지는 가운데 발생, 외계 또는 물질적 세계의 실재에 대한 근세 이래의 인식론적 문제의 입장을 나타내는 경우에 쓰이며외계 또는 물질적 세계의 존재를 사람이 이에 대해 가지는 관념으로 환원시켜 개인의 정신과 이를 통괄하는 정신으로서의 신에 대해서만 실재성을 인정하는 주관적 관념론 - G.버클리외계는 인간 주관의 아프리오리(a priori)적 인식의 여러 형식에 따라 구성되며,객관적 타당성을 가진 현상 이라고 보고, 이 현상의 배후에 참다운 실재로서의 ‘물자체’를 상정하면서 그 구체적 인식은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 - I.칸트(비판적,초월론적 관념론)외계에 대하여 그 자체로서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는 위 두 경우와 같지만,이를 주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 관념,정신의 전개라고 보는 – G.W.F.헤겔(절대적 관념론)과 같은 형의 부류가 있다.대표적으로 (독일)관념론 시대는 I.칸트로부터 G.W.F.헤겔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며, 대표자로 칸트, 피히테, 셀링, 헤겔 등이 있다.관념론자의 탐구는 철학 문제에 새로운 국면을 노정하고 철학 사상을 진전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어떠한 것으로든 인간쪽의 자발성 없이는 인간의 인식활동,실천활동을 이해할 수 없는 이상, 관념론적인 것은 인간의 현실과 떼놓을 수 없는 하나의 구성요소로 간주된다.2. 실재론:인식론의 사고 방식으로 의식, 주관과 독립된 객관적 존재를 인정하고 현실세계의 경험을 토대로 그것을 올바른 인식의 목적 또는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우리의 인식과는 독립하여 있는 존재를 상정하여,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갖는 지각이나 인식의 여부에 상관없이 이 존재는 실제로 있다는 입장을 가리킨다.실재론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소박한 형이상학적 유물론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있으나 직접 여건의 주관성, 상대성은 예로부터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심리학의 발달과 함께 예시되는 착각 등에서도 명백하다. – 지각, 경험을 그대로 실재라고 생각하는 ‘소박실재론’따라서 빛깔, 냄새와 같은 주관적 제2성질 배후에 실재하는 객관적 성질로서의 물리적인 연장, 고체성, 운동과 같은 제1성질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인식의 근대과학에 의한 설명과 물질의 기계적 고찰의 진전에 따라 유력,경험적 실재로서는 심리적 착각 등의 예에서 제1,2성질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며 연장이나 운동 그 자체는 경험에서의 추상의 소산이다.I.칸트는 제1성질을 포함한 경험적 인식의 모든 대상을 ‘현상’이라 하고 그 배후에 인식의 가능성을 초월한 ‘물자체’를 상징하였다. 칸트 이후의 다양한 실재론의 입장은 물자체라는 문제의 개념을 둘러싸고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19~20세기에 걸쳐 G.W.F.헤겔을 정점으로 하는 독일 관념론에 대한 반동, 비판으로서 전유럽에 다채로운 실재론과 실증주의의 입장이 생겼다. - 칸트를 실재론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신칸트학파의 일원, 유물론, 모사설을 주장하면서도 소박실재론과 객관의 정적인 인식을 버리고 동적인 과학적 실재론의 입장을 위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이상의 유럽 대륙,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한 흐름 외에 영미에 유력한 현대실재론.대표적으로는 아리스토 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있다.3. 실재론과 관념론:대표자인 칸트는 인식주관이 ‘선천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인식형식과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인식내용으로 말미암아 현상계에 대한 실질적 인식이 성립된다고 보아 소박한 실재론을 완전히 역전시켜놓은 칸트는 버클리와 같은 관념론 내지 현상론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선험적 감성론’의 결론은 시.공간이라는 감성형식은 선험적으로는 주관적 관념이지만 경험적으로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시.공간은 현상으로서 실재하고 물자체로서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시.공간의 조건은 현상으로서의 모든 사물에 타당하기 때문에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며 경험적 관념론은 부정된다. 시.공간은 현상을 직관할 때 논리적으로 먼저 있어야 하는 형식이지만, 현상을 넘어서 물자체에 적용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선험적 관념성을 지닌다. 칸트는 경험적 실재성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대상이 주관적인 관념으로서만 있다고 보는 경험적 관념론을 배척하며, 또 사유로서의 자아가 실재한다고 보는 관념론도 배척한다. 인식형성과 무관한 사물의 실재를 주장하는 소박한 실재론을 부정하는 동시에 물자체의 실재성을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이성주의자들의 선험적 실재론도 역시 부정한다.형이상학적 관념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저런 물체가 있다’ 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저런 주체가 이런저런 감각을 갖고 있다’ 라고 이해한다면 ‘주관적 관념론’이고, ‘그 문제의 물체가 객관적 정신이 내리는 참된 판단에 의해서 확인된다’라고 이해한다면 ‘객관적 관념론’이 된다. 첫번째의 주관적 관념론의 경우에는 실재론자들이 우리 정신과 독립하여 외부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 존재들이 주체의 현상들로 환원되는 반면 두 번째의 객관적 관념론의 경우에 그 존재들은 객관적 정신의 현상들, 즉 그 정신의 지향적 대상들이 된다. 위와 같은 구분에 의하면 헤겔은 ‘객관적 형이상학적 관념론’의 입장인 반면 맑스와 엥겔스는 이점에서 헤겔과는 달리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로 분류될 수있다.관념론과 실재론은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보편개념의 실재를 인정하는 의미에서는 대립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훈민정음’ 에 대하여우리 나라의 대표 문화 유산으로 따지자면첫째. 석굴암과 불국사(세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지정)둘째. 고려시대의 거란족을 무찌르기 위한 팔만대장경셋째.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수 있는 창덕궁과 후원넷째. 문화의 르네상스, 꿈의 신도시로 불러지며 실학이 담겨져 있는 조선시대의 군사지로 건축된 수원 화성다섯째. 중묘여섯째. 경주일곱째. 판소리여덟째. 한글아홉째. 조선시대 기록문인 조선왕조 실록열째. 고인도 유적으로 들수 있습니다. 그중 훈민정음에 대해 알아본 것은 뜻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이 제일 쉽고 손쉽게 그리고 없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 훈민정음의 창제 : 단군(檀君)이래 문화적으로 가장 찬란한 꽃을 피웠던 시기라면, 조선 왕조의 세종 시절 중에서도 세종 25년(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일 것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일은 우리 민족 문화사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문화적 위업이다. 신라시대의 불국사, 석굴암이나, 고려 시대 금속 활자의 개발, 또 조선 시대 거북선의 축조 기술 등도 위대하지만 그 어떠한 문화적 업적도 민족의 유일성을 보장하는 우리말을 담는 그릇, 곧 우리 문자인 훈민정음에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세종 25년, 1440년대. `조선`이라는 새 왕조를 세운지 28년이 지난 뒤 네 번째 임금으로 등극한 세종대왕 때에는 고려 말기에 극도로 문란했던 나라 안의 경제 상황은 할아버지 태조 대왕과 아버지 태종 대왕 시절에 전제(田制) 개혁을 통하여 정리되었고, 골육간의 싸움을 벌였던 것도 부왕 시절에 깨끗하게 잊혀졌으며, 나라 밖으로는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중국이 조선보다 한발 앞서 명나라를 세워 안정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세종의 치세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하여 대체로 세가지 방법의 시대사적(時代史的)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사상사적(思想史的)관점, 둘째는 정치사적(政治史的)관점, 셋째는 문화사적(文化史的)관점이다.2. 훈민정음의 의미 : 훈민정음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1) 세종대왕이 세종 25년 (1443년) 음력 12월에 창제한 문자를 뜻하며, 현재는 한글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2) 세종 28년 (1446년) 음력 9월 상한에 완성된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뜻한다.3. 한글창제의 제정 동기와 목적 : `훈민정음`이란 위대한 문화적 창조의 동기와 목적에 관하여는 `훈민정음` 가운데에서 세종대왕이 몸소 말씀하였다.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 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이 말씀이 지극히 간단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우리가 알고자 하는 바가 다 들어있다.1)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배달말이 있으니, 이 말을 적어 내기에 알맞은 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 알려진 모든 다른 나라가 각각 제 나라 말에 알맞은 글자가 있는데, 우리나라만은 글자가 없어, 남의 나라의 글자, 한문을 빌려 쓰니,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2) 남의 글자 한문은 우리말과 서로 통하지 않는 글자일 뿐더러, 본디 어렵기 짝이 없는 글자이기 때문에, 우리 배달겨레에게는 이중으로 어려워, 백성들이 다 배워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하늘이 내린 성인이로되, 한학에 정통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세월을 허비하였을 것이니, 시간과 경제의 여유가 없는 일반 대중이야 얼마나 그것이 어려운 일인가 함을 아프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3) 일반 서민이 글자를 깨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다 함이다. 곧 아랫사람의 뜻이 위에 사무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이 억울한 일이 많아 정치가 명랑하지 못하니, 어진 정치의 이상에 위반함이라고 생각함이다. 정인지의 꼬리글 에서도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4) 이 새 글은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쉽게 익혀서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쓰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라 하였다. 곧 민중 문화의 보급과 생활의 향상을 꾀함에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이 밖에 다른 원인을 들 수도 있는데 그것은,몽골에게 큰 곤욕을 당하기까지 하였으니, 겨레 의식이 눈뜨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고 ,원 나라, 명 나라의 갈음에 즈음하여 왕조를 세운 조선 왕실에서는 저절로 자아의식이 생기게 되었으며,세종대왕이 동북으로 `육진`을 개척하고, 서북으로 `사군`을 차려 놓고, 남쪽 백성들을 옮겨, 자아 충실의 필요감이 강렬하게 되었으며,세종대왕이 전제, 세제를 개혁하여, 백성과 나라의 부강을 꾀하였으니,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에는 백성들의 지식의 보급이 앞서는 조건이 됨을 실감하였을 것이다.4. 가림토 문자 : 단군조선 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으로부터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가 있었으나,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만으로는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았다.이렇게 해서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加臨多)문자가 탄생하게 되며,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 재창조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28자)이다.1) 가림토 문자는 훈민정음의 원형 : 가림토 문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근세조선시대 세종 때에 이르러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창제 되었으며, 최근에는 주시경 등에 의해 24자로 재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문자가 되었다.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며, 배달국의 분국이 있었으며 그 후예들이 살고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스토 알파벳과 구라자트 문자의 원형이 되었다.2) 가림토 문자 창제동기 :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B.C, 2181년)에 갸륵 단제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해도 열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한다."3)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①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세종실록 103권 ; 세종 23년에 발표한 글)②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③ 언문은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자형은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옛것과 반대되므로 실로 근거할 바가 없다.(한글 재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유학자들의 집단 상소문 중)4) 해외에 남아있는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우리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제를 입증해준다. 단군조선이 있었다면 단군할아버지도 실제하셨던 민족의 조상임을 믿을 수 있고, 가림토 문자가 발견되는 곳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5. 훈민정음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다.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세종 25년(1443)에 우리말의 표기에 적합한 문자체계를 완성하여, 28년(1446)에 정인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설명한 한문해설서를 전권 33장 1책으로 발간하였다.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창제당시 28자로 오늘날에는 24자만 사용되는데, 이는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등 집현전의 8학자가 집필한 것으로 훈민정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제1부는 세종이 지은 것으로 책의 본문에 해당되며, 제2부는 세종의 명령에 따라 젊은 학자들이 지은 본문에 대한 주석이다. 예의편이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 순인 6장으로 나뉜다. 끝에는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이 붙어있다. 세로 32.3cm,가로 20cm의 크기로 당시 중국과 일본의 책들보다 크며, 정교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되어 있으며,원문으로 간행한 한문본(漢文本)이 두 가지,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언해본(諺解本)이 네 가지 있다. 한문본은 모두 목판본이고, 『세종실록』에 실린 훈민정음 예의본과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원본은 1446년 세종 28년에 정인지 등 여덟 명이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해설서로, 『훈민정음』 또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한다.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한 훈민정음의 원본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종어제서문] 다음에 [예의편](例義篇)에서는 새로운 28자의 음가와 운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1면이 7행이고 1행은 11자이다. 이 서문과 예의편은 『세종실록』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6. 훈민정음, 즉 한글의 조사를 선택한 이유 : 우리나라 문화 유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 먼저 생각을 해 보았다. 문화유산하면 거대한 성벽이나 건축물 등 나와는 조금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 가까이 내가 바로 사용하고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글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