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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고전소설사 정리
    7-9-4 소설김시습- 고독한 예외자로서 반발에 찬 생애를 보내면서 스스로 ‘신세모순’이라고 요약한갈등을 하소연하느라고 여러 가지 표현방식을 택했다.또한 , 등을 지어서 생사나 귀신의 문제까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원론적 주기론을 수립하고, 그런 구조를 가진소설을 창안했다.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는 생각은 부정하고, 다만 억울하게 죽은 원귀는 기가 일시에 흩어지지 않고 죽은 현장에서 얼마 동안 떠돈다고 본 것이 에서 원귀이야기를 통해서 자아와 세계의 심각한 대결을 나타낼 수 있었던 근거이다.*에 들어있는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인데,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 , , -*는 설화와 관련된 소재를 가져왔어도 자아와 세계의 대결 방식을 전에 볼 수 없게 구현했기에 소설의 개념을 다시 규정해서 최초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또한 는 세계가 상호 우위에 입각한 대결을 벌여 세계의 횡포와 자아의 의지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쉽사리 판가름할 수 없는 진실성을 추구하느라고 만만치 않은 진통을 거듭한 끝에 자아의 패배에 귀착하지만, 작품 내적 자아인 주인공은 물론 작품 외적 자아인 서술자도 패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남는다. 자아와 세계의 상호 우위에 입각한 대결을 소설의 기본 특징이라고 보며, 소설의 개념을 다시 규정하면 가 최초의 소설임을 근거 있게 확인할 수 있다.*의 한계-는 중요한 대목마다 시가 삽입되고 시로써 심리묘사를 대신하는 등 서정적인 수법에 적지 않게 의존했으며, 논설처럼 전개되는 교술적인 대목도 배제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을 현실 자체로서 다룰 수 없었던 한계도 지닌다. 자아와 세계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긴박한 대결을 한다는 것은 일원론적 주기론자다운 각성에까지 힘입어 일단 선명하게 작품구조로 제시할 수 있었으면서도, 그때까지의 문학적 관습을 받아들여 절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8-1-6 허구적 상상에서의 문제 제기실기로 실상을 기록하고,다고 멸시받는 층의 잠재적인 역량을 암시했다.*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충격으로 인하여...①조선 전기의 사회와 문화가 이미 지녔던 모순을 격화시켜 상하관계의 질서를 뒤바꾸어놓았다.②현실인식의 새로운 표현방식을 개척하면서 문학에서도 변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했다.그러나 전란의 참상을 실기로 남기는 경우에는 현실 자체를 직시할 수 있었어도, 한시. 시조. 가사는 이미 굳어진 수사법을 청산하기 어려웠으며, 민간전승을 통해 여고된 경험을 새로운 갈래인 소설에다 응축시킬 때에도 기존의 관념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8-3 소설시대로 들어서는 전환8-3-1 ‘전’이라고 표방한 소설의 유래소설이 새로운 문학갈래로서 뚜렷한 모습을 갖추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소설시대가 시작된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그런데 소설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교술문학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사문학의 직접적인 선행 갈래인 설화를 혁신하기만 해서는 소설이 기록문학으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으므로, 다른 보완책이 필요했다. 이(理)와 이원적인 관계에 있는 기의 세계를 다루는 교술산문 특히 전(傳) 같은 것은 기에서 벌어지는 음양대결을 전개하는 서사문학과 상통하는 바 있어 그 형식을 가져다 쓰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은 기록문학의 갈래로서 공인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중세적 질서를 여러 모로 교란한다고 배격되게 마련인 소설이 말썽 없이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 전이라고 표방하는 것이 아주 유리한 방책이다.*허균의 전-, , , , 다섯 편 모두 불행한 처지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사실은 비범했으며, 놀라운 행적이 있으나 세상에 쓰이지 못하다가 결국 불행하게 죽거나 행방을 감추었다고 하는 공통점을 갖추었다. 그래서 자아가 세계와 겉으로는 화합하지만 사실은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다는 반어를 통해서 둘 사이의 대결을 새롭게 문제삼으면서, 특이하면서 효과적인 소설구조를 개척 관심과 기대에 맞도록 변문을 개작한 불교소설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러면서도 소설로서 미흡한 점이 으레 따르는 것을 보면 발전된 단계의 소설은 아니다. 계열의 영웅소설이 지배체제에 반감을 가진 하층의 요구를 나타냈다면,불교소설은 생활의 고난을 초경험적인 전제에 따라서 제시하느라고 귀족적인 주인공의 무력함을 그렸다. 한쪽은 도술을 개입시켰으면서도 일원론적 소설로 자리를 잡았는데, 또 한쪽은 현세의 좌절과 시련에 관심을 모았으면서도 그것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삶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이원론적 소설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었다.이 두가지 방향이 교차되고 복합되면서 후대 국문소설의 다양한 모습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8-3-4 우화소설의 기여동물을 의인화한 이야기인 우화는 구전설화로서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으며 유형이 다양하다. 겉으로는 관습화된 동물 성격을 내세우지만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속뜻을 삼기 때문에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허위를 풍자하고 진실을 깨우치는 방식으로 긴요한 구실을 해왔다.우화의 내용은 특정 시기의 사회적 상황과 결부되는 의미를 가질 수 있게 구체화하는 것이 소설로 개조하는 작업의 필수적인 과제이며 그러자면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살리면서 곁가지를 여럿 두어서 현실적인 경험의 절실한 양상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고, 우화의 형식에 따라서 사건을 온통 창작하는 것도 가능했다.*우화소설이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소설에 머물고, 근대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우화는 기존 관념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태를 고발하는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는 유리해도 문제의 상황을 자세하게 다루기는 어려운 형식상의 제약이 있었다. 주제의식이 확대되자 협소한 형식과의 마찰이 더욱 커지고 소설형태 발전을 선도할 수 없는 한계가 한층 명확해졌기 때문이다.8-3-5 중국소설의 번역과 번안소설이 형성되고 정착되는 데 중국소설이 미친 영향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소설을 만들어내고자 할 때 필요딪쳐야 세상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나타냈다. 또한 세상에는 음모가 횡행하고, 뇌물과 독직이 끊이지 않는다는 데 관심을 가지게 했다.은 이상주의를 택했다면 는 삶의 실제 양상이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나타내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8-4-6 소설에 관한 논란소설이 산문으로서 가장 큰 구실을 하며 시가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인정되는 것은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가 끝났을 때 가능했으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소설에 대한 논의는 소설배격론에서 시작되었으나, 소설배격론도 그 나름대로 긍정적인 의의가 있다. 소설이 가치관을 혼란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타락시킨다고 한 주장은 소설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근거를 두었다.이식은 소설의 폐단을 강경하게 지적하고, 허균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중국 역대왕조의 내력을 다룬 소설은 신성한 사실에다 허황된 수작을 보탰으니 국가에서 엄중하게 금하고 태워 없애야 한다고 했다.소설긍정론은 소설 배격론의 주장을 일단 인정하면서 도의. 교화에 도움이 되는 예외적인 작품도 있다고 하는 데서 비롯했는데, 그런 논법은 작품에서 훌륭한 행실에 관한 표면적 주제를 내세운 것과 상통했다. 그런 한정적 긍정론은 이면적 주제까지 제대로 알아차린 배격론보다 소설의 실상 이해가 오히려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소설긍정론은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소설이란 원칙적으로 배격해야 하겠지만 그 가운데도 인정할 만한 작품이 있다고 했다. 국문시가를 평가할 때 정철의 가사를 먼저 들었듯이, 소설의 경우에는 김만중의 작품은 함부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고 했다.8-5-6 소설과 관련된 직업의 출현소설을 창작한 직업적 작가를 찾으면 문학담당층 확대의 또 다른 국면을 확인할 수 있다.*판소리광대와 소설 작자는 같은 목적을 아주 대조적인 방식으로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판소리광대는 인기를 모으고 수입을 늘리기위해서 이름이 나야만 했다. 청중과 직접 대면하는 얼굴이 또한 고정된 상표였다.-그런데 소설은 은 관심을 가졌다. 그렇게 해서 소재를 얻었다는 것을 야담집 본문에서 이따금 밝혔다. 하지만 야담을 기록한 사람들은 이야기에서 다시 자기 나름대로의 윤색을 보탰다. 전문적인 이야기꾼들이 자랑하는 수법도 이미 그랬지만, 윤색해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전설과 민담을 섞기 일쑤였고, 고정된 유형의 구조는 이지러지게 하는 대신에 세태 묘사를 두드러지게 하는 데 힘썼다. 지배체제에 바로 거역하는 구전설화는 채택하지 않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자세한 내용을 갖추어서 그리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국문소설이든 한문소설이든 어느 것이나 설화와 깊은 관련을 가졌다. 설화를 받아들여 개작하면서 사회적인 의미가 강조된 대결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국문소설은 광범위한 독자의 공상적인 읽을거리로 발전하고, 기존 윤리에 의한 자탄을 면하기 위해서 충신. 열녀. 효자의 이야기로 자처하면서 기반을 다졌지만,-전임을 빙자하거나 야담으로서 성장한 한문소설은 애초에 있는 사실을 알린다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삼았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국문소설이 중국을 무대로 설정해서 상층 가문에서 벌어지는 일을 길게 늘어놓는 관습을 마련할 때, 한문소설은 국내에서 실제로 있었을 듯한 사건을 집약해서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8-12-4 박지원의 작품박지원은 한문학의 최고봉을 이룩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후진의 숭앙을 모았다.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을 두고 모색한 바를 문장을 통해서 다채롭게 구현하느라고 전을 짓고, 이야기를 수용했을 따름이지, 당시로서는 저급한 문학인 야담이나 소설을 택했던 것은 아니었다.-해당 작품 아홉 편 가운데 일곱 편은 . 이라는 곳에 모아놓은 전이고, 두 편은 에 삽입되어 있다.박지원의 작품은 전과 야담을 기반으로 해서 한문소설이 발전된 성과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다시 그 어느 쪽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발한 구상을 작품마다 특이하게 갖추었다. 그래서 한문소설의 수법과 사상을 결정적으로 발전시킨 의의를 가지며 국문소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독자의 ..
    인문/어학| 2006.07.27| 11페이지| 1,000원| 조회(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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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화기문학론]은세계
    의 내용정리1) 눈보라가 치는 겨울, 강릉 경금 동리에 최본평의 집이라는 부잣집이 있었다. 그 집은 성실하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되었다.2) 어느 날 밤, 최본평의 집에 오륙명의 불한당(?)이 찾아왔다. 그 집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의 침입에 혼비백산 하였다.3) 그들은 강원 감영 장차로서, 최병도를 잡으러 온 것 이었다. 그 당시 강원도 관 찰사는 매관매직이 횡행하는 시국에서, 자기 배 채우기에 급급하였다. 그때의 영 문 장차들은 불한당과 같은 존재였다.4) 때마침 최병도는 강원 관찰사에게 죄가 없이 붙잡혀가 결박을 당했다. 돈을 주겠 다고 하자 그들은 갑자기 공손해졌지만 잡혀있긴 마찬가지였다.5) 최병도는 붙잡혀가 곤장을 맞고, 관찰사의 흉계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갖은 고 초를 겪고 풀려나 귀가하다 죽고, 부인은 정신 이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최병도 의 체포에 항거하여 동네 젊은이들이 민요를 일으키려고 시도 하기도 하나 최병도 의 만류로 그만둔다.6) 최병도가 죽은 후, 그의 부인은 아들을 낳는다. 최씨 부인은 몸이 쇠약해져 실진 하기에 이르렀다.7) 그리하여 최병도의 재산 관리는 최병도와 뜻을 같이 하던 김정수가 맡고, 다시 돈을 모아 최씨의 소생인 옥순, 옥남 두 형제에게 새 학문을 배워주기 위해 미국 으로 유학을 보낸다.8) 최병도의 딸 옥순과 유복자인 옥남이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들의 재산 관리인인 김정수와 더불어 미국으로 유학을 하였으나 다시 불운이 겹친다.9) 김정수가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최씨부인의 병은 여전하고 그 집의 재물은 반 정도만이 남아있었다. 김정수가 늘리어 놓은 최씨가의 재산은 관료에게 거의 빼앗 기게 되고 이후 김정수는 매일 만취로 세월을 보내다가 술 때문에 죽게 된다.10) 한편, 옥순, 옥남이는 갖은 고생을 겪고 공부를 마치고 10여 년만에 돌아와, 집 으로 가서 어머니를 재회한다. 거의 폐인이 된 어머니는 잃었던 정신을 되찾게 된다.11) 이튿날 옥남 남매는 기쁜 마음에, 어머니와 함께 선친의 명복을 빌려고 절에 가서 불공을 한다. 절에서 뜻밖에도 정부의 개혁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들을 만난다. 옥남은 '학정을 고치기 위해서는 고종의 양위가 지당하며 의병 또한 불가한 것.'이라며 만세를 부르지만, 옥남 남매는 의병에게 붙들려 간다.의 주제“은세계”에서는 봉건 지배층의 정치적 부패와 이에 항거하는 민중의 반항 의식, 고루한 봉건 제도를 혁파하려는 개화 사상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밑바탕에 김옥균의 개화 의식과 고종의 양위(讓位)라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가 깔려 있어 더욱 주목된다. 이것은 이인직의 정치 성향과 지향점이 일본의 요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의 친일적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작품의 끝부분에서 옥남이가 의병을 폭도로 규정하는 것은 의병 활동이 가장 치열했던 당시에 일본이 주장하는 논리를 그대로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의 갈등 구조와 성격“은세계”의 갈등은 부(富)를 바탕으로 상승하려는 최병도와 이를 수탈하려는 정 감사의 갈등에서 알 수 있듯히 봉건 질서 속에서 이득을 보려는 지배 계층과 봉건 제도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평민 사이의 항거, 김정수의 주장에 당장 호응하여 민란을 일으키려는 농민들, 최병도의 투옥과 죽음을 슬퍼하고 동정하는 농민들의 노래 등에서 반봉건 의식이 팽배해 가던 19세기 말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1908년 원각사에서 창극으로 공연되기도 한 은세계는 아버지 최병도와 어머니 본평댁, 그리고 그들의 딸 옥순과 아들 옥남, 2대에 걸친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소설로서, 전반부는 최병도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옥남과 옥순의 이야기로 이루어졌으며, 작품 전반부와 후반부는 커다란 질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반부는 이인직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광대들의 창곡 ‘최병두 타령’을 개작한 것이며, 여기에다 후반부를 이인직이 창작적으로 첨가한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07.26| 2페이지| 1,000원| 조회(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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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화기문학론]이인식에 대해서
    이인식에 대해서...호는 국초(菊初). 1862~1916 경기 이천(利川) 출생의 신소설작가로서 언론인, 신극운동가이다.1900년 2월 구한국 정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하였다. 1903년 일본정치학교 졸업 후 일본 육군성 한국어 통역에 임명되어 노일 전쟁(露日戰爭) 당시에 1군사령부에서 종군하였고, 1906년 주필을 거쳐 주필로 옮기고, 다시 1907년 이완용의 도움으로 을 창간하여 사장으로 옮긴 후 이완용의 비서를 지낸다. 매국노 이완용의 앞잡이가 되어 한일 합방의 숨은 공로자로서, 합방 후에는 경학원 사성(經學院 司成)에 취임하여 지내다가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우리나라 본격적 신소설 작가인 그는 신소설을 쓰는 한편, 연극 개량에도 관심을 가져 1908년 11월 자신의 소설 [은세계]를 원각사( 圓覺社 )무대에 올려 최초의 신극을 공연하기도 하였고 신극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신파극을 수용하여 상업적 호응을 얻는 등 신연극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하였다. 일제의 주권 침탈 때 이완용(李完用)을 돕고 다이쇼[大正] 일본왕 즉위식에 헌송문(獻頌文)을 바치는 등 철저한 친일행동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처음으로 산문성(散文性)이 짙은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신소설을 개척한 공로는 크다.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 (1908) (1913) 등이 있고, 단편으로 (1912)이 있다. 특히 는 처녀 장편소설로서 본격적인 신소설의 효시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청일전쟁으로부터 10여년간의 옥련의 삶을 통하여 자주독립, 신교육, 신결혼과, 국제세력의 인식, 봉건성의 탈피 등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였으나 표면적인 주제의식과 내면적인 형상화간의 괴리가 있다. 는 관료층의 수탈과 학정에 대한 고발정신, 민요의 풍자적 삽입등 이야기의 현실성에 적절성을 얻었고, 객관적 관점이 살아난 작품으로 신소설 중 가장 뛰어나 작품으로 손꼽힌다.이인직의 작품 세계는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우선은 , , 등의 신소설의 형태로써 신교육 사상이나 개화사상이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 등 강원도를 배경으로 하여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가정의 여러 가지 사건을 그린 가정 소설류이다. 이 중 는 신소설을 대표하는 소설로서 문학사적으로 주목을 받는 작품이고, 은 고전 소설에서 많이 나타난 가정 소설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제 나름대로의 비판 의식을 담고 있어서 주목을 받는 작품이다.
    인문/어학| 2006.07.26| 1페이지| 1,000원| 조회(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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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플라톤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비교 평가A+최고예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돈이다. 재미있게 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또 가족과 자기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서도 돈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하는 등의 의문이 바로 그런 것일텐데, 그렇다면 또다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즉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적 논리가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들은 지금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면서 정신 세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부족하긴 하지만,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한 생을 다하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철학은 당연한 귀착일 수 있다.철학은 약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기 훨씬 전부터 철학은 있어왔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물음, 인간의 세계에 대한 물음은 비단 소크라테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가 반론하지 못할 만큼의 오래된 철학자이고, 또한 그들 나름의 철학을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해놓은 이들은 없었다. 본 보고서에서는 이들 두 철학자의 삶과 철학을 조명함으로써 오늘날에 있어 이들의 철학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I. 플라톤의 철학플라톤은 주지하듯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양의 고대?중세?근대?현대를 통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기에 플라톤적일 수밖에 없었고,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철학은 플라톤의 그것에 대한 반론의 과정이었기에 플라톤은 후세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여겨진다). 플라톤에게 있어 그의 철학은 이상 국가에 대한 철학이며, 이데아에 대한 이론이며, 영혼에 대한 물음이며, 그의 인식에 있어서의 상기설(想起說)의 문제이다. 즉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이상 국가를(馬)의 이데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여러 말들 중에서 이를 ‘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공통된 의미 기반으로서 말의 이데아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좋음(to agathon=善)에 있어서도 훌륭함(arete, 좋음) 자체가 먼저 있지 않고서 이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데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결국 알 수 있는 세계―가지(可知)적인 불변의 세계인 이데아계(界)―와 볼 수 있는 세계―가시(可視)적인 변화의 세계인 현상계―로 구분되며, 이들 간의 관계는 분유(分有, methexis)라는 개념으로 이루어지는데, 현상계의 개별적인 사물은 이데아의 보편적 본질을 나누어 갖는다. 즉 보편자는 개별자의 본질이고 개별자는 보편자를 나누어 가질 때에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플라톤의 이데아란 물질적 형상(形象)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고, 이렇게 볼 때 그는 철학적 관념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데아의 이데아인 좋음(善)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이데아들을 비추는데, 그 어떤 이데아도 좋음의 이데아와의 관계가 없이는 올바르게 인식될 수 없다. 절제(節制, sophrosyne)를 바르고 참되게 쓰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절제(절제의 이데아)가 아니며, ‘쾌락과 욕망을 지배하고 좌우하여’(『향연』196c) 올바르게 쓰일 때에야 비로소 참된 것이다. 따라서 절제의 이데아는 좋음, 올바름의 이데아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이데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psyche)을 돌보라”라는 소크라테스의 권유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오늘날에서처럼 당시 헬라스인들에게 혼(魂)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원시적 신앙적 형태로서 인식되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 인식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한 전제로서 영혼은 육체보다 선재(先在)하여 이미 이데아 계에 존재하였으며, 인식이란 영혼이 신체와 결합되기 이전에 직관했던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수학을 배우지 않았던 소년이 감 헤겔의 변증법과 플라톤의 그것과 동일하다고는 볼 수는 없다. 『플라톤』의 저자 박종현 교수에 따르면, “…영어의 ‘dialectic', 독일어의 ‘dialektik'을 헤겔의 경우에 ‘변증법’이라 옮기듯 플라톤의 경우에도 그렇게 옮겨 놓으면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선입견을 갖게 하여, 플라톤의 인식이론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만다.(p.53의 주37)”고 하며, 플라톤의 디알렉티케는 테크네(techne) 즉 기술이나 방법적 체계로써 헤겔의 그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플라톤에게서 중점적인 내용은 ‘국가’에 관한 것이다. 즉 그는 국가의 이상적 형태를 이루기에 앞서 철인의 통치 구조를 꿈꾸었고 또 그러한 통치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서 위에서 살펴본 바의 철학을 내세웠다. 그는 『Politeia(국가, 정체)』에서 먼저 ‘올바름―정의(dikaiosyne)'에 관해 이야기를 한 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즉 ‘훌륭하게 사는 것’인가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답하며, 아울러 모든 이데아들의 궁극인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언급도 이루어진다. 요컨대 플라톤은 이 책에서 국가의 정체(政體)에 관한 올바름과 올바르게 사는 것에 대한 원론적인 탐구로 당시의 시대를 진단하였던 것이며, 후의 『법률(Nomoi)』에서는 이를 처방하였던 것이다. 플라톤은 ‘정체’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이 책의 제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들어 가장 현명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의 나아갈 바를 설명하였다. 즉 그는 동굴에 갇혀 지내는 죄수들이 항상 동굴 안쪽으로 고개를 고정하고 밖에서 비치는 사물의 그림자만을 보고 지내게 되었을 때, 이들이 정작 사물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빛에 비친 그림자뿐, 그 실체는 알지 못한다. 이는 곧 자신의 생활 테두리 안에서만 살아가는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것과 같다. 따라서 플라톤에 따르면, 이러한 우리들을 이끌어줄 현명한 사람이 있어야상학은 존재자로서 존재자일반의 원리를 다루는 제1철학으로서 보편적인 존재를 탐구하지만, 그는 보편적인 존재가 개별 사물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는 개개의 사물로부터 초월하여 사물은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며, 보편적 본질은 개개의 사물에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즉 참된 실재는 초월적인 사람 자체, 소 자체가 아니라, 이 사람, 이 소라는 구체적 개체이다. 따라서 사물의 본질은 사물의 바깥에 있을 수 없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철학적 의의를 갖지 않는 시적 비유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 계와 현상계라고 하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 때 이데아와 현상계의 개별적 사물과의 관계가 설명될 수 없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생성-변화-소멸해 가는 현상계와 영원하고 완전하여 생성 원인을 내재하지 않는 이데아 계라는 두 세계를 상정해 놓은 플라톤의 학설에 대해 이런 이데아로는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먼저 플라톤적 실재는 질료(質料, hyle)와 분리된 형상(形相, eidos)인 이데아이며, 아리스토텔레스적 실재는 질료와 형상이 통일적으로 결합된 개체이다. 이처럼 두 철학자의 형상론은 서로 상이하지만, 질료는 불완전성과 형상은 완전성?실재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전혀 없는 순수 질료와 질료가 전혀 없는 순수 형상을 설정하고 양극단 사이에 사물의 목적론적 위계를 세웠다. 두 번째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인 형상을 사물의 인과적 발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처럼 미리 주어져 있는 궁극의 정신적 목적에서 찾는다. 즉 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는 목적이 있으며, 모든 발전의 끝이자, 최고의 목적은 순수 형상인 신의 완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 두 철학자는 모두 목적론자라고 할 수 있으며, 하는 욕구로 나타난다. 따라서 신과 세계의 관계는 신은 세계로 나아가지 않지만 세계는 신에게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이어서 살펴 볼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관인데, 그는 플라톤의 그것과는 달리 신비적이고 종교적이지도 않으며, 치자의 덕(arete, 훌륭함)을 다루었던 『국가?정체』에서처럼 재산과 가정에 관한 비정통적인 사상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플라톤처럼 영혼을 두 부분, 즉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누고 전자는 혼의 탐욕이며 후자는 식물에서처럼 영양섭취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실천적인 활동을 위해 덕을 지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으로 나누고, 윤리적인 아레테(사람의 훌륭한 상태, 덕)를 설명한다. ‘덕이란 선택과 관계되는 습성, 즉 굳어진 성격 상태(hexis)이니, 그것은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용(中庸, mesot?s)에 있는 것으로, 이 중용은 이성에 의해서 결정되고 슬기로운 사람이 그걸 결정함에 있어서 취함직한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중용이란 동양에서의 그것처럼, 양극단의 중간이며, 이것이 바로 덕(훌륭함)이다. 용기는 비겁과 무모함의 중용이요, 너그러움은 방탕과 인색함의 중용이며, 겸손은 수줍음과 뻔뻔함의 중용인 것이다. 이의 판단은 선천적으로 슬기로운 사람들, 즉 실천적 지혜를 타고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실천적 지혜는 사물의 필연적 법칙성을 파악하는 지식과는 구분되며 반드시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개연성을 지닌 지식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은, 인간의 가치가 천부적이고 자연적인 소질에 의해 결정되며, 노예와 어린이는 정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예제에 근거한 신분 사회적 정의관이라 할 수 있다. 보편적 정의는 법과 연관되는 정치적 정의인 반면, 특수한 정의는 개인에 관계되는 정의이다. 시정적 정의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행위에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이를 이익과 손해 사이의 산술적 균등 상태로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분배적 정의는 시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다.
    인문/어학| 2006.07.26| 9페이지| 1,500원| 조회(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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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소설]옥갑야화 평가D별로예요
    열하일기의 라는 대목에 허생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작자가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옥갑이라는 곳에 머물 때 동행한 비장들과 함께 밤새 주고받은 수작을 적고 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관의 돈벌이가 그날의 화제였고, 변승업의 경우에 관한 논란이 이어졌다. 이런 경과를 서술한 다음에, 작자는 자기가 윤영이라는 이야기꾼에게서 들은 허생의 내력을 좌중에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 대목이 바로 허생전이라 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다시 이야기꾼 윤영에 관한 말을 보태서, 그 사람은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자취를 감춘 부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체가 작품 한 편이라 할 수 있는 짜임새를 갖추었고, 액자 형식으로 해서 그 속에 이 들어 있다. 전편의 주요 등장인물은 변승업, 허생, 이완, 그리고 윤영이다. 이 네 사람의 관계로 그 시대의 움직임을 축약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완대장이 앞장서 북벌론을 실행하려고 하는데, 변승업 같은 사람은 국경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해 돈을 모았다. 나라를 끌고나가는 두 방향이 거기 있다. 윤영은 세상을 꿰뚫어보는 이야기꾼이면서 끝내는 자취를 감추어 잘못된 세상과 맞섰다. 남산골 샌님인 허생은 이런 시대에 글 읽는 선비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다. 윤영이 허생의 이야기를 했고, 허생은 변승업에게서 돈을 꾸었으며 이완이 자기를 찾아오자 면박을 주었다. 그 네 사람이 허생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 관련을 맺었다. 또한 이 작품은 소설이 흥미 본위의 읽을 거리로 상품화되기만 새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허생은 박지원이 생각한 실학하는 선비이다. 선비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이룬 것이 없다. 허생 이야기는 구전설화로 전하고, 여러 야담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박지원이 자기 나름대로 작품화했는데, 세상을 구할 방책을 거기서 내놓을 수 없었으며, 문제가 심각함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의 라는 대목에 허생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작자가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옥갑이라는 곳에 머물 때 동행한 비장들과 함께 밤새 주고받은 수작을 적고 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관의 돈벌이가 그날의 화제였고, 변승업의 경우에 관한 논란이 이어졌다. 이런 경과를 서술한 다음에, 작자는 자기가 윤영이라는 이야기꾼에게서 들은 허생의 내력을 좌중에 털어놓았다고 했다. 그 대목이 바로 이라 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다시 이야기꾼 윤영에 관한 말을 보태서, 그 사람은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자취를 감춘 부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체가 작품 한 편이라 할 수 있는 짜임새를 갖추었고, 액자 형식으로 해서 그 속에 이 들어 있다. 전편의 주요 등장인물은 변승업, 허생, 이완, 그리고 윤영이다. 이 네 사람의 관계로 그 시대의 움직임을 축약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완대장이 앞장서 북벌론을 실행하려고 하는데, 변승업 같은 사람은 국경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해 돈을 모았다. 나라를 끌고나가는 두 방향이 거기 있다. 윤영은 세상을 꿰뚫어보는 이야기꾼이면서 끝내는 자취를 감추어 잘못된 세상과 맞섰다. 남산골 샌님인 허생은 이런 시대에 글 읽는 선비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다. 윤영이 허생의 이야기를 했고, 허생은 변승업에게서 돈을 꾸었으며 이완이 자기를 찾아오자 면박을 주었다. 그 네 사람이 허생을 중심으로 해서 그런 관련을 맺었다. 또한 이 작품은 소설이 흥미 본위의 읽을 거리로 상품화되기만 새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인문/어학| 2003.10.19| 1페이지| 1,000원| 조회(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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