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아동기(兒童期)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통 넓은 뜻으로는 출생에서부터 청년기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를 일컫는 말이다. 즉 아이가 태어나서 12∼13세경까지를 말하며, 이 시기는 다시 유아기(乳兒期:출생∼1세), 유아기(幼兒期:1∼6,7세) 및 좁은 뜻의 아동기(6,7∼12,3세)로 나눈다. 좁은 뜻의 아동기는 초등학교의 재학시기이므로 학동기(學童期)라고도 한다. 이 시기에 인간은 신체적, 인지적, 지능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이 모두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로, 한 인간의 앞으로의 모습을 결정하는 모든 측면의 학습과 발달이 일어나게 된다. 인간의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할지 모르는 시기인 이 아동기의 개념을 좀더 이해하고자 아동관의 변화와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아동관의 발달1. 근대 이전의 아동관1) 고대부터 4세기까지는 무자비한 것으로 신생아는 영혼이 깃든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 았으며 자주 살해되거나 죽게 내버려뒀다. 그리스에서는 국가의 봉사하며 건설수단으로 여겨져 결함이 있는 유아는 가차없이 살해되기도 하며, 풍속 미신 등에 의해 희생되었다. 아마존강 유역의 인디언은 아기를 강물에 넣어보고 건강한 아이만을 꺼내 키우기만 하는 등 그의 존재가치는 미미했다.13세기까지는 성적관계로 인한 귀찮은 존재로 여겨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희박하여 위탁모 나 유모에게 의탁하거나 남의 하인으로 팔아 넘기기도 하며 살해되기까지 했다. 영아 등 아동의 가치는 종족의 보존의 수단일 뿐 인격적 존재로 인식되지 못했다.2) 중세의 아동은 성인의 축소판으로 여겨졌다. 당시 아동이 세 살 내지 다섯 살 사이에 젖을 떼면 유모나 어머니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 보고, 즉시 성인 사회의 구성원이 되게 하였다. 성인이 지니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도덕적 특성은 이미 출생 당시에 타고나는 것이므로, 아동이란 어른으로부터 그 크기만 줄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아동관이였다. 즉 아동의 신체가 어른의 신체와는 다른 비율과 체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아동의 정신세계에도 역시 성다. 그는 신약성서를 독립어로 번역하여 독일어 통일에 공헌하였으며, 새로운 루터파 교회를 세워 성서 신앙의 입장을 지킨 인물이기도 하다.16세기의 유럽은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때문에 사회적·종교적 및 경제적으로 큰 변동기를 맞이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결과는 보통 교육과 문맹 탈피다. 아동들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형식적 학교 교육이 강조되었다. 이것은 바로 종교개혁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루터의 영향 때문이었다.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로 바꾸었다. 모든 사람은 성경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으로서, 그는 사람들에게 직접 모국어로 성경 읽기를 배우도록 하였다.당시 가톨릭 교회의 공식어인 라틴어 대신에 모국어로서 가르치고 배우도록 하였다. 종교개혁 이전에 부유층과 종교직에 있는 자만이 라틴어로 쓰고 읽기를 배웠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 국민들이 읽고 쓸 수 있도록 했다. 루터는 보통교육을 지지하고 촉구했다.루터는 가족이 아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이다라고 믿었다. 그는 부모들이 가정에서 종교적 수업과 직업교육을 제공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신분과 성별에 차별없는 의무교육의 실시를 주장하면서 여성교육도 주장하였다. 또 교육내용은 성서와 더불어 음악, 체육, 고전어, 수학, 자연과학, 여가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여 폭넓은 교육과정을 주장했다.아동에 대해서는 체벌을 금지하고 사랑으로 대하도록 하였고, 당시의 금욕생활과 체벌중시에서 탈피하도록 하였다.2) 코메니우스 (John Amos Comenius)코메니우스(1592∼1670)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신학과 철학을 배우고, 교사, 목사가 되었다. 그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교수학』(1632)를 저술하였으며, 세계최초로 그림이 있는 교과서 『세계도회』를 저술하여 감각적 직관을 강조하였다.그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믿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인은 신의 모습을 완전히 성취하기 위해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코메니우스는 금도 없다. 아동은 아직 어리므로 단지 백지로 혹은 원하는 모양대로 틀에 부어 만들 수 있는 밀랍으로 생각해 아동의 발달과 개발성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런 견해는 오늘날 현대의 유아교육과 실제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로크에 의하면, 환경은 정신을 형성한다. 모든 아동은 정신발달과 학습에 동일한 일반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가정한다. 학습에서 차이는 가정환경, 조기교육 그리고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다. 이러한 환경 중시의 견해는 오늘날 실조 아동의 보상교육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었다.그는 유아기부터 철저한 훈육을 강조하면서도 체벌을 반대했다. 체벌과 같은 노예적 훈육방법은 노예적인 기질을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그의 교육방법은 체벌보다는 칭찬이나 아동의 명예심에 호소하여 바람직한 지식이나 미덕을 스스로 흥미롭게 익혀나가도록 하는 것이다.모든 아동은 제각기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모든 아동에게 적절한 유일한 교육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기질적 차이는 용모나 신체 특징보다 더 다양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동의 공통된 특성을 살펴 볼 수 있다. 아동은 억지, 지배욕, 외고집, 공포심, 게으름, 거짓말 호기심, 흥미, 활력, 용기, 근면 등 여러 가지 기질이 혼합되어 있다. 이들의 본성에 근거하여 교육은 필요한 습관과 지식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고 하였다.4) 루소(Jeam Jacpues Rousseau)루소(1712∼1778)는 제네바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아동교육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루소에게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승화된 존재로서의 자연인이 가장 전형적인 인간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는 아동교육에 있어서 자연에의 복귀와 자연적인 접근을 주창하는 자연주의 교육을 주장한다.그가 쓴 『에밀』은 출생에서 청년기까지의 아동을 가상적으로 양육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에 신은 모든 사물을 선하게 만들었으나, 인간의 손에 옮겨지자, 그것은 악하게 되었다. 라고 실려져 있어 그의 교육관과지위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루소에게 있어서 아동은 감각적 존재이며 도덕적으로 비사교적이다. 이러한 아동을 아동으로서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동을 연령에 맞게 대우하고 아동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아동으로 남아있게 해야한다. 아동에게 마치 성인처럼 사고하고 성인처럼 행동하도록 요구하면, 결국 아동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발달하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저지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또한 루소는 비슷한 연령의 아동에게도 획일적인 사고와 행동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왜냐햐면 인간의 선천적 능력은 개인에 따라 각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아동에게 있어 개인차의 존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루소는 개인차를 존중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아동의 선천적 능력을 계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동의 선천적 능력과 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아동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교육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을 위해서는 아동에게 획일적인 교육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별적인 교육을 시켜야한다. 따라서 루소는 서로 다른 경향을 지닌 아이들을 무분별하게 동일한 훈련에 닥치는 대로 참여시키는 것은 아이들 각자의 독특한 성향을 파괴시키고 우둔한 획일성만 남겨 놓게 된다고 보았다.또한 루소는 아동을 감각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아동기를 이성의 수면기 라고 규정하며, 따라서 이성이 나타나지 않는 시기에 지식을 제공하면 자연성이 위축된다고 믿는다. 또한 아동은 단순히 변덕스러운 감각적 유희를 즐길 뿐, 고차원적인 쾌락과 의지를 소유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믿는다.요컨대 각 개인은 각자가 독특한 기질을 갖고 태어나기 각기 다른 배경, 호기심, 소망, 기호를 갖고 성장하기 때문에 아동의 신체적 조건, 환경, 습관, 성장의 속도와 성숙도, 그리고 성장의 분야 등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교육이 가능하다. 그리고 아동들 각자의 자율성과 적절한 민주적 가치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 유아학교의 교육내용은 주로 댄스, 노래, 듣기, 음률암송 등이다. 이는 프뢰벨의 유치원보다 약 25년 앞선 것으로 그의 사상과 교육의 실제는 조기교육의 중요성과, 교육과 사회개선의 관계성에 관해 교육자들을 각성 시켰다. 오늘날 유아교육자 및 여타 교육자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를 개선하고 더 좋은 모습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6) 프뢰벨(Friendrich Wilhelm Froebel)프뢰벨(1782∼1852)은 유치원의 창시자로 유아들 교육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유치원 건설을 통해서 사회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그의 교육적 신념은 우주적 통일성에 대한 신념, 인간신성 및 성선관, 단계적 발단관 그리고 놀이를 통한 자발적 학습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 등에 기초하고 있다.프뢰벨의 교육목적은 우주적 통일성의 이해에 기초하여 신체적, 도덕적 그리고 지적으로 조화된 전인으로서의 어린이 발달이다. 특히 유아기 동안에는 어린이들이 안정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 사랑스럽고 행복한 환경조성이 필수 조건이다. 유치원 시기인 아동기는 가장 천부적인 자연성이 음악적 리듬, 그리는 활동 그리고 자발적인 놀이활동 등을 통해 발달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년기는 보다 목표 지향적인 교수에 의해 학습하는 시기로 프뢰벨은 기술하고 있다.프뢰벨은 놀이를 내적 충동과 생활의 독립적인 표현양식으로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놀이는 창의적 자기활동의 한 형태이며, 교육적 과정의 본질인 것이다. 따라서 놀이는 어린이의 신체적, 감정적, 지적인 성질들을 모두 조화시키는 어린이의 자연적 발달을 위한 가장 중요한 매체이다.이런 프뢰벨의 유아교육이론은 그 후 교육에 있어서 전인교육 사상이나 행함으로써 배운다는 교육사상, 교육에 있어서 특히 유아교육에 있어서 놀이, 게임 및 음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7) 듀이 (John Dewey)듀이(1859∼1952)는 미국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이다. 그는 전통적 교육으로부터 미국교육의 방향을 전환 다.
Ⅰ. 과 목 : 고등학교 1 학년 일본어Ⅱ. 단원 학습 목표.1. 일본어로 숫자어휘를 읽힌다.2. 숫자를 읽고 듣고 쓰고 말할 수 있다.3. 숫자의 청음과 장음 표현을 바로 발음 할 수 있다.4. 생활에 쓰이는 숫자를 일어로 표현 할 수 있다.Ⅲ. 지도상의 유의점 .1. 단순한 설명 위주의 주입식 방법을 피하고 생활에 쓰이는 표현과 다양한 소재의 사용으로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함으로써, 일어로 간단한 숫자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을 수 있도록 한다.2. 무조건 적인 학습이 되지 않도록 숫자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학습동 기 유발을 시킨다.Ⅳ. 본시 학습 목표☞ 인지적 목표 : 1. 일본어로 숫자개념을 익힌다.2. 숫자를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다.3. 숫자에 장음 탁음을 제대로 발음 할 수 있다.☞ 행동적 목표 : 1.수업 후, 他人에게 자신의 전화번호, 버스번호 등을 말할 수 있다.V. 수업전개{구 분시 간주 요 학 습 내 용 및 활 동학 습자 료수 업형 태학습내용교 사학 생도 입2분인사 및출석점검.みなさん,おはようございます. !.いい天氣ですれ.어제 축구 보셨나요?정말 우리나라 선수들 잘 싸워줬어요. 응원 열심히 했지요? 어디서 했나요?오늘 그래서 많이들 피곤할텐데,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그렇죠?네. 지각도 없고 결석한 학생도 없네요. 그래서 선생님도 기분이 더 좋아요~! 우리 한국선수들의 선전을기원하면서 대한민국! 박수.. 아시죠? 두번만 힘차게 외치고 더 힘차게 수업에 들어갑시다~시작!.Danke auch gut.2 아이들의 얼굴을 둘러보며결석생이나 조퇴생등이 있나 확인..おはようございます. !예 라고 대답한다000, XXX 에서요~ 대답한다.예 라고 대답한다.예 라고 대답한다.. 대한민국!짝짝짝짝짝!대한민국!짝짝짝짝짝!대화법전개5분`숫자읽기(원어민의 발음을 듣고 보고 따라 읽음으로써 본수업에 앞서 준비 및 확인이 가능하다)본시학습안내.오늘의 학습목표는 (PPT제시) 일본어로 숫자를 듣고 읽고 말하고 쓸수 있다 입니다.다같이 읽어볼까요?.숫 들어봅시다.(하이퍼링크 연결)이 사이트는 여러분 혼자서도 들어볼수 있는 곳이니까 시간 날때마다이곳에서 발음을 듣고 혼자 연습해보도록 하세요. (발음들려준다)일본어로 숫자를 듣고 읽고 말할수 있다"예"라고 대답한다(TAPE을 따라 읽는다)じゅう예 대답한다카셋트PPT강의법테잎듣기강의법{구 분시 간주 요 학 습 내 용 및 활 동학 습자 료수 업형 태학습내용교 사학 생전개6분점수말하기(간단한 숫자를 연습함으로써 부담감을 줄여 자연스러운 표현을 익힌다)자, 백단위, 천단위도 따라 읽어봅시다. (TAPE를 들려준다)잘 읽어주셨습니다.운동경기 점수 말하기요즘 나라 전체가 월드컵 열기로 뜨겁지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간게 언제인지 안는학생 있나요?네, 맞아요. 1954년이지요.(PPT 작동. 헝가리:한국)스위스 월드컵이였습니다.월드컵은 ワルド-ガップ 라고 표기하고 읽습니다. 따라해보죠.ワルド-ガップ그럼,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000학생이 일어로 읽어보세요.(무작위로 학생을 지목한다)네.잘읽었어요. 1954年 スイス ワルド-ガップ 라고 읽죠. 다같이 읽어봅시다. 1954年 スイス ワルド-ガップ이때 우리나라는 헝가리와 경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몇 대 몇일까요?여기서 몇 대 몇입니까? 는 何對何ですか 라고 합니다.(판서한다)아쉽게도 9:0으로 대패를 했습니다 .그럼 9:0입니다. 는 어떻게 말할까요? 0 은 ゼロ 또는 れい 라고하죠. (판서한다) 00학생 말해보세요. (무작위로 학생을 지목한다)네. 친구가 참 잘읽었죠? 따라해봅시다.그럼 48년만에 우리나라가 본선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죠? 모두들 그 날 잊지 않았을 겁니다.(PPT연다 한국:폴란드)(TAPE를 따라 읽는다)1954년이요ワルド-ガップ1954年スイス ワルド-ガップ답한다1954年スイス ワルド-ガップ답한다きゅうたいゼロです답한다きゅうたいゼロです판서PPT질문법강의법{구 분시 간주 요 학 습 내 용 및 활 동학 습자 료수 업형 태학습내용교 사학 생전개2002년은 어떻게 읽을까요?이날 우리나라가 2:0으로잘읽었지요. 따라해봅시다.ななたいじゅうさんです.(PPT를 연다. 배구)이번엔 バル-ポ-ル입니다. 배구를 valleryball이라고 하죠. 따라해 볼까요. バル-ポ-ル지난 26일엔 챌린지컵이있었습니다. 이날 우리나라가 일본이랑 경기를 갖었는데요. 3셋트 모두 우리가 이겨 승리했습니다. 3셋트째의 점수는 23:18로 이겼습니다. 韓國と日本は何對何ですか.000학생 대답해 보세요(무작위로 지목한다)네, 잘대답했습니다. 다같이 말해봅시다.にじゅうさんたいじゅうしちです.버스번호 말하기그럼 점수말하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요, 숫자가 쓰이는곳이 또 어디 있을까요?우리 버스번호를 말해보도록 합시다.;';''''''000000000ズズズズ000] 0 [[LLLL ㅎ한にせんにねん이요にたいゼロですにたいゼロですななたいじゅうさんですななたいじゅうさんです1954年スイス ワルド-ガップ답한다きゅうたいゼロです답한다きゅうたいゼロです(학생들 대답한다)PPT질문법강의법{구 분시 간주 요 학 습 내 용 및 활 동학 습자 료수 업형 태학습내용교 사학 생전개3분버스번호말하기(간단한 번호를 쉽게 읽고 말할 수 있게 한다)전화번호말하기(서로의 번호를 묻고 답하고 쓰면서 숫자를 듣고 말하고 쓸 수 있도록 한다)선생님이 학교앞을 지나는 버스번호를 준비했어요. 이 번호는 어떻게 읽을까요. このバスは何番ですか(8, 135을 차례로 제시한다.같은 질문으로) 000학생 읽어 보세요.(각각 무작위로 학생을 지목한다)잘 읽었어요. 다같이 말해볼까요?(8번, 135번을 차례로 제시한다)はち番です,いちさんご番です그럼 이번에는 이번호는 어떻게 읽을까요?このバスは何番ですか (135-3, 146-1, 522-2을 차례로 제시한다.같은질문으로)여기서 - 는 우리는 다시 라고 하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グシ 또는 の 라고 합니다.(판서한다) 000학생 읽어보세요.(각각 무작위로 학생을 지목한다)네,잘했어요.다같이 말해볼까요?(차례로 번호를 제시한다)그럼 이번에는 000학생 집앞에서 몇 번 버스가 다니나요?일어로 대답해주세요.네.잘 는 の 라고 합니다. 그럼 짝끼리네. 지금 000학생이 잘 말해줬지요? 그럼 ㅁㅁㅁ학생, 000의 전화각각 はち番です,いちさんご番です라고 대답한다.각각はち番です,いちさんご番です라고 대답한다.いちさんごのさん番ですいちよんろくのいち番ですごににのに番です라고 대답한다.いちさんごのさん番ですいちよんろくのいち番ですごににのに番です라고 대답한다.000라고 대답한다.000라고대답한다.학생들 대답한다판서그림카드판서질문법강의법{구 분시 간주 요 학 습 내 용 및 활 동학 습자 료수 업형 태학습내용교 사학 생전개10분전화번호말하기서로의 번호를 말해봅시다.(짝끼리 각자 연습하도록 시간을 준다. 3분)그럼이제 여러분 친구들이 자신의 번호를 말하면 기록해 봅시다.선생님이 다시 질문 할 꺼에요.00さん,あなたの電話番號は何番ですか.(학생을 지목하여 질문한다)ㅁㅁさん,00さんの電話番號は何番ですか. (학생을 지목하여 질문한다)여러분, 맞나요? 네, 잘 맞췄어요.(같은 방법으로 5번더 질문한다)그럼 이번에는 반대로 해볼까요.친구가 번호를 말해주면 일어로 다시 친구들에게 말해봅시다.지목 당하지 않은 학생은 각자 친구의 번호를 노트에 일어로 적어보도록 해요. 선생님이 돌아보겠어요.000학생 전화 번호가 어떻게 되죠?(학생을 지목하여 질문한다.질문중 학생들 사이들 돌며 검사한다)그럼, ㅁㅁㅁさん,00さんの電話番號は何番ですか(학생을 지목하여 질문한다)여러분 맞았나요?.네 잘해줬어요.(같은 방법으로 3번 더 질문한다)마지막으로 두명만 더 시키도록 하겠어요. 000학생, ㅁㅁㅁ학생 앞으로 나와주세요. 선생님이 말하는 번호를 000학생은 일어로, ㅁㅁㅁ학생은 숫자로 적어주세요. 나머지 여러분들은 노트에 적어주세요. 선생님이돌아보겠어요. 私の電話番號は945-8376です 先生の電話番號は何番ですか (학생들에게 질문한다)(같은(각자 서로의 번호를 말하며 연습한다)일어로000-0000 대답한다한국어로 000-0000대답한다.예 대답한다한국어로 000-0000대답한다.일어로 000-000대답한다.네 대답한다.칠판앞으로 모두 지워지면 빙고를 외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여러분 모두 16까지 일본어로 적어주세요.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칠판의 화면을 봐주시고요.(20까지 숫자가 적힌 PPT를 열어놓는다).자 적어봅시다.(1분)다 적었나요?그럼 선생님이 숫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돌면 여러분이 하나를 뽑아 일어로 큰소리로 친구들에게 말해줍니다. 종이에는 아라비아 숫자로도 적혀있고, 일어로도 적혀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읽어 주세요.네 개가 모두 채워진 학생은 빙고를 외쳐주세요. 상품이 있습니다.(학생들 사이를 돌며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수업에 참여도가 낮기 쉬운 뒤쪽부터 돈다)네. 벌써 빙고가 나왔네요.잘했어요. 상품입니다. 여러분들도 수고하셨어요.3.6.9 게임그럼 이번에는 다른 게임을 해보도록 할까요? 여러분 모두 369아시죠? 일어로 369를 하는겁니다. 369가 순서인 사람은 말은 하면 안되고 박수를 쳐야되는거 모두 아시죠? 뒷줄 맨 끝에 000학생부터 시작합시다.DFSFSDFSF(같은예 대답한다.예 대답한다.예 대답한다.(종이를 뽑아 읽는다)(빙고를 외친다)예 대답한다.{구 분시 간주 요 학 습 내 용 및 활 동학 습자 료수 업형 태학습내용교 사학 생정리5분5분4분369게임(게임을 통해 숫자를 정확히 알고 바로바로 듣고 말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9X9단학습틀린 사람은 앞으로 나와 벌칙을 받도록 하죠. 벌칙은 뭐가 좋을까요?네. 그럼 벌칙은 00로 하도록 하고 3명이 모이면 벌칙을 적용하도록 합시다. 그럼 시작해볼까요.(차례로 돌아가며 게임을 진행시킨다)(틀린 사람은 앞으로 나와있게하며, 벌칙을 적용시킨다.)9X9단의 학습여러분, 재미있었나요? 그럼 이번에는 숫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구구단을 익혀봅시다. (9X9단이 적힌 유입물을 나눠준다)일본에서도 이렇게 구구단이 있다고 합니다. 다함께 읽어봅시다.(학생들과 함께 읽는다)네, 잘 읽었습니다. 지금 읽은 구구단을 연습해서 다음시간에는 구구단 게임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러니까 연습들 해오세요.정리여러분, 오늘 목 한다)
■ 우리겨레와 숨쉬는『동해』동해는 우리민족이 약 2000년전부터 사용해온 이름이자 우리역사와 함께 숨쉬는 이름이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왕기사)에 의하면 "東海" 이름은 삼국이 건국되기 전인 기원전 59년부터 호칭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기념비에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도상에 나타난 이름을 보더라도 1530년(중종 25년) 이행, 홍언필이 지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팔도총도(八道總圖)"에도 "東海"가 표기되어 있다.외국의 자료를 보더라도 몽골을 방문한 이탈리아 수도사인 카르피니가 쓴 "몽골견문기"에 삽입된 세계지도(빈랜드지도)에 동해를 뜻하는 "mare Occeanum Orientale" 표기가 등장하고 있는데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440년에 제작된 필사본이 남아 있다.그러나 "日本海"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602년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이다. 일본은 이 지도를 근거로 "일본해"가 "동해"보다 먼저 사용되었다고 줄 곳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보다 무려 1650년이나 앞서 있으며, 팔도총도는 약 70년이 앞선 것이다. 또한 빈렌드 지도도 이보다 약 160년 앞선 것이다. 또한 곤여만국전도 이후 상당기간동안 "일본해"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이와 같이 "東海"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겨레와 함께 숨쉬는 이름이자 우리 역사와 함께 불러온 이름이다. 따라서 "일본해"가 먼저 사용되었다고 하는 일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외에도 곤여만국전도와 비슷한 시기인 17세기 초반인 1615년 고딘호가 제작한 아시아지도에도 "한국해(MAR CORIA)" 표기나 나오며, 1647년 영국의 항해자 두둘리는 동아시아지도에 "한국해(MARE DI CORAI)"로 표기하였다. 또한, 1705년 프랑스의 저명한 지리학자 기욤드릴이 제작한 "인도-중국지도"에도 "동해 또는 한국해(MER ORIENTALE ou MER DE COREE)"로 표기하였記}(1623)에 속한 [萬國全圖]를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알레니의 [萬國全圖] 원도에는 우리 나라의 동해와 서해에 대해서 아무 명칭도 기록하지 않았으나, 규장각 소장의 [天下都地圖]에는 동해와 황해를 각각 '小東海' 와 '小西海'로 표기하고 있다. 지도는 필사하는 과정에서 원도의 일부를 수정 또는 보완하는 예가 흔히 있다. 즉 알레니의 만국전도에 동해와 서해가 결여되어 있어서 동해와 서해의 명칭을 보충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해를 '소동해'로 한 것은 다른 바다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작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이 지도의 소동양, 대동양의 표현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한편,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를 겪은 후인 1872년 조선 정부는 전국 각 군현에 명하여 읍지와 지도를 만들어 바치도록 하였다. 이 때 편찬된 지도 중 함경도 [端川府地圖], [戊山地圖], 강원도 [平海郡地圖], 경상도 [蔚山牧場地圖] 등 郡縣 및 鎭堡 지도에 '동해'라는 표기가 나타난다.시대별 문헌 및 지도에 나타나 있는 동해 관련 표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 나라 고지도에서는 기본적으로 바다에 대한 的確한 표기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東海'로 표기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官撰地圖에서 '동해'라는 표기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서양의 문헌 및 지도지리상의 발견시대를 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 서양은 자국의 결핍을 충족시키고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15세기 이후 발견시대가 끝나는 18세기말까지 각종 세계지도상에서 표기되고 있는 고유지명은 탐험의 결과, 지도의 제작자, 발행자, 지도의 축척과 용도 등에 따라 각양 각색이다. 그래서 西洋의 古地圖를 통해 동해 명칭의 체계적인 변천과정을 추적하는 데는 사실상 많은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즉, 동해의 지리적 윤곽이 세계지도상에서 정확하게 표현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동해관련 명칭도 일관되기보다는 이 海域에 대한 인식과정 내지 정보의 획거치게 된다.- 일본의 문헌 및 지도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초기 지도들은 東洋的 思考의 영향으로 인하여 바다에 대해 특별한 명칭을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더욱이 '일본해'라는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도쿠가와 막부의 겐로쿠(元祿)시대 한 프랑스 지리학자가 일본 전국의 지형을 정밀하게 답사 측량한 결과와 일본측 자료를 근거로 제작한 [일본열도의 지도(CARTE DES ISLES DU IAPON)]를 보면 '일본해'라는 바다 이름은 없고 단지 '동양해(Ocean Oriental)'라는 표기만이 사용되었다. 동 지도는 서구인이 일본에서 실제 현지답사를 통해 제작한 최초의 일본 지도라는 점에서 가장 권위있는 지도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동 지도는 프랑스에서 제판되었는데 明治 初年에 한 독일인이 이 고지도를 휴대하고 일본에 와서 이를 일본 정부에 기증하여 현재 帝室 博物館에 보관되어 있다.江戶 시대에 비교적 일찍이 제작된 지도로는 幕府의 [寬永日本圖], 石川流宣의 [本朝圖綱目] 등이 있으나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1788년 江戶 시대의 대표적 지리학자인 長久保赤水가 제작한 [地球萬國輿圖] 나 1802년 石家崔高가 제작한 [圓球萬國地海全圖] 등 이 시기의 지도에는 대부분 '일본해'라는 명칭이 없었으며 19세기초 이전 일본에서 제작된 지도들은 대부분 동해 해역에 지명을 표시하지 않았다. 일본 국사대사전에 1671년부터 1821년까지의 일본도 9장이 소개되어 있는데 한결같이 바다이름이 없고 일본해라 표기한 지도는 하나도 없다.다만 마테오리치가 제작한 [坤輿萬國全圖]를 복제한 [坤輿萬國全圖屛風]과 司馬江漢이 1792년에 제도한 [地球圖]가 예외적으로 '일본해'와 '日本西海'라는 표기를 사용하였다. ( 司馬江漢의 地球圖와 네델란드인 Pieere Mortier의 1720년 世界圖를 비교하면 司馬江漢이 사용한 일본서해 지명도 서방에 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일본 학자는 [坤輿萬國全圖]를 통하여 마테오 릿치의 제도학과계속 '동해'라는 원래의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일부에서는 '태평양 및 동조선만' 등의 명칭을 사용하였다.1900년대에 들어서 중국의 학자들은 서양의 문헌 및 지도와 접할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일본해'라는 표기가 점차 늘어났으며, 1905년 러일전쟁 후에 체결된 [日俄朴司茂斯和約 (러일 Portsmouth Treaty)]에서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당시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동해'라 지칭한 이 해역의 명칭이 공식적으로도 대체되기에 이르렀다.이후 중화민국 시기의 중국 문헌과 지도에서는 완전히 '일본해'라는 명칭이 자리잡았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에도 중국은 계속하여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문헌 및 지도동해를 구성하고 있는 또다른 국가인 러시아에서 동해 명칭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1639년경에 러시아인이 처음으로 태평양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러시아인들이 地理的인 發見을 시작한 시기였다. 이후 아시아의 북동부 해안과 태평양 연안에 대한 개발과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 17세기 한반도 및 동해에 대한 러시아인의 인식은 매우 낮은 상황이었다.당시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실사지도에 따르면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의 바다를 'Eastern Sea(동쪽 해)' 혹은 'Ocean(대양)' 이라고 명명하였으나 지도상에 한국은 아직 표시되지 않고 있다.러시아 지도상에 처음으로 한국이 등장하는 것은 1673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은 그리 정확한 것이 아니었으며 1687년 닉 위첸(Nic Witzen)이 제작한 Noord en Oost Tartarye에도 韓半島는 섬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17세기 후기부터 18세기 초에 제작된 The Drawing of all Siberian Towns and Lands, The Drawing of all lands Siberia, town of Tobolsk and all differ가 제국주의시절 이루어졌음을 시사해주고 있다.한편 '일본해'라는 명칭은 국제적인 표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국제사회에서 공인을 받았다는 점도 그 배경과 연유를 따져본다면 수긍하기 어렵다. 전술한 바와 같이 지명의 국제적 표준화 작업의 실질적인 출발은 20세기에 들어서인데, 당시 일본은 이미 제국주의적인 배경에서 '일본해'로의 명칭을 공식화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이 일본의 植民地化 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일본해'라는 명칭이 국제적 공인을 획득하였다는 사실은 국제법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해”만의 사용은 옳지 않을 것이다.* “동해”와 “일본해”의 倂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명에 대한 국제적 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국제사회의 인식이 확립되어 있으며 다양한 차원에서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체계화된 국제법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법적 구속력이라는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국제기구의 결의만이 존재하는 실정이다.현재 세계지도에서 2개 이상의 나라로 둘러싸인 바다의 명칭이 특정국의 명칭으로 표기되는 사례는 ‘일본해’밖에 없다.영국·프랑스·덴마크·독일로 둘러싸여 동해와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북해(North Sea)’의 경우도 ‘영국해(England Sea)’ ‘독일해(German Sea)’ ‘덴마크해(Denmark Sea)? 등으로 제각각 불렸지만, 관련 국가들의 합의를 거쳐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 초판이 나올 때는 ‘북해’로 확정됐다.특히 IHO는 바다 명칭을 둘러싼 나라 간의 분쟁이 계속되자, 1974년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바다 명칭이 한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 조정된 새 이름이 나올 때 까지 관련 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모두 표기한다”는 기술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국제적으로 지명을 표준화하려는 노력을 총괄하고 있는 유엔 지
■『동해』표기의 역사연도국 가제 작 자지 도 명동 해 표 기BC59한국김부식의 삼국사기(권13, 고구려본기 제1) 및이상국의 동국이상국집에 "동해" 이름 언급東海(...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414한국광개토대왕기념비東海1440이탈리아카르피니(수도사)빈렌드(세계지도)mare Occeaum Orientale1530한국이행, 홍언필新增東國輿地勝覽 八道總圖東海1602이탈리아마테오리치坤與萬國全圖日本海 (일본해표기 최초지도)1613중국창왕四海華夷總圖東海1615포르투갈고딘호 데 헤레디아아시아지도MAR CORIA1647영국로버트 두들리동아시아지도MARE DI CORAI1700프랑스Danet GL'ASIXE DRESSEEMER DE COREE1705프랑스기욤 드릴인도-중국지도MER ORIENTALEou MER DE COREE1710이탈리아TI 슈포트지나제국도(IMPERIUM SINICUM)MARE COREANUM1737러시아러시아정부세계지도KOPRCKOE MOPE1748프랑스해군기술장교중국대륙지도MER DE COREE1748독일Bellin.NDAS KAISERTHUM CHINADAS MEER VON KOREA1749프랑스SansonL′ASIEMER DE COREE1751프랑스로베르트 드 보공디L′EMPIRE DU JAPONMER DE COREE,MER DU JAPON1762프랑스로베르드 드 보공디시베리아 혹은 아시아부의러시아, 중국령 타타리아,엘뤼트의 나라와 일본섬MER DE COREE1768영국브리테니카백과사전SEA OF COREA1777이탈리아안토니오자타아시아전도MAREDI COREA1794영국Dunn. SamuelTHE EMPIRE OF JAPANCOREAN SEA1794일본가스라가와(桂川甫周)아시아전도朝鮮海1796영국앤빌레&로버트라우리에THE AMPIRE OF JAPANCOREAN SEA1800프랑스드조쉬아시아지도MER DE COREE1805프랑스드조쉬아시아지도MER DE COREEou du JAPON1808영국Faden.WASIAGULF OF COREA1809일a)'로 표기1991한국, 유엔가입1992한국,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 참석하여 일본해를 동해(East Sea)로 표기 주장1997한국, 제15차 국제수로기구(IHO)에 참석하여 동해(East Sea)를 일본해(Japan Sea)와 병기주장1997∼2002 미국 멕널리사지도, 영국 브리테니카백과사전,프랑스 르피가로 등병기 East Sea/Japan Sea또는 Sea of Japan/East Sea2003미국 USA투데이, WTO, 영국 BBC, 미국 LA타임즈 등병기 East Sea/Japan Sea또는 Sea of Japan/East Sea2003프랑스 국방부 해군 수로국발행 해도목록병기 Mer de l' EstMer du Japon일본이 주장하는 일본해'북해(North Sea)'가 표시된 새 지도독일해(German Sea), 영국해(England), 덴마크해(Denmark Sea)로 제작각 불리던 분쟁의 바다가 주변국의 합의로 '해양과 바다의경계'에 '북해(North Sea)'로 표기되었다.일본은 .일본해.라는 명칭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 쪽에서 먼저 확립되어 200년에 걸쳐 사용돼 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도의 대부분이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대양에서 분리된 해역은 그 해역을 격리하는 주요한 열도나 반도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태평양에서 일본 열도 때문에 분리된 해역은 .일본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일본측의 주장의 잘못그러나 이런 일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서양에서 동양이 제대로 포함된 세계지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16세기 이래 동해는 .동양해(Oriental Sea). .한국해(Korea Sea). .일본해(Japan Sea).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19세기 초까지는 .동양해.나 .한국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 일본해.가 많아진다. 또한 일본 열도 때문에 태평양에서 없다.분류지도수한국해34한국해,일본해 병기3중국해11일본해6기타5합계59 캐임브리지대학 도서관 소장 서양 고지도외무부가 1997년 케임브리지대학 도서관 소장 지도를 조사한 결과 총 61점의 지도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국해 명칭으로 나타났다.표기명칭16 C17 C18 C19 C합계한국해--62-62동해-17-8한국해,동해병기--2-2일본해--6410중국해1-3-4무기명--134합계1181790 영국 국립도서관 소장 서양 고지도주영 한국대사관은 2001년 7월 영국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양 고지도의 동해 관련 표기를 조사했다. 총 377점 가운데 1997년 조사한 케임브리지애학 소장 지도와 중복되지 않은 새 자료 90점 중 '한국해'가 62점이고 18세기 지도에 '한국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표기명칭17 C18 C19 C연도표가 없음합계한국해-93304127동해-----한국해,동해병기-1--1오리엔탈, 한국해병기-1--1일본해--9211기타-2--2무기명764926합계71034315168 미국 남가주대 소장 지도 '동해' 표기올해 인터넷에 공개된 미국 남가주대 소장 동아시아 지도 컬렉션 중 동해 관련 표기가 있는 것은 모두 141점이다. 그중 '한국해(Sea of Korea)'나 '한국만(Gulf of Korea)'이 128점이고, '일본해(Sea of Japan)'는 11점이었다.BBC, "동해" 병기지도 첫 사용영국 BBC 방송이 인터넷판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관련 기사를 게재하면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지도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BBC 방송은 그동안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거나 아무 표시가 없는 지도를 사용해 왔습니다.BBC 방송은 어제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노 대통령 취임 전날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한국 동쪽 해상에 떨어졌지만 피해는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CNN, 동해-일본해 병기"미국의 USA 투데이와 LA 타임스 등 일간 신문에 이어 CNN 방송도 동해 해역을 동해 와 일본해로 병기하기 시작했다고 주미 한국대사에서 동해를 일본해로만 표기하는 사례를 발견할 때마다 해당 언론사에 동해 명칭을 사용해 달라는 요청 서한을 발송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美교과서"동해 병기"-민간외교 승리네티즌들 끈질긴 문제제기 수용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국내 네티즌들의 노력으로 미국 유수의 교과서출판사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기로 결정했다.초.중.고생 네티즌 1만2천여명으로 구성된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http://www.prkorea.com)는 9일 미국의 대규모 교과서 출판사인 `BJU Press(www.bjup.com)'가 동해를 일본해와 함께 표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BJU Press'는 이날 반크에 보낸 서신에서 "동해 표기와 관련, 반크를 통해 흥미롭고 유익한 자료를 얻어 검토한 결과 일본과 한국측이 합의를 통해 결정을 내릴때까지 우리가 발행하는 교과서내 세계지도에 동해와 일본해를 공동으로 표기하기로결정했다"고 밝혔다.이 회사는 미주지역 일선 초.중학생을 상대로 역사, 세계지리, 수학, 제2외국어교과서와 CD-ROM 타이틀 1천200여종을 발행, 공급하는 25년 전통의 교과서 출판사다.`반크' 한국 바로알리기 기획단장 박기태(31)씨는 "최근 미국의 일선 교육현장에서 북핵문제로 인해 한반도 문제가 자주 수업에 거론되지만 대부분 교과서에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속국'으로 기술돼 있는 등 정보 왜곡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런 마당에 미국 교과서에서 `동해'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박씨는 이어 "특히 올해 여름 미주지역의 대대적인 교과서 개편에 앞서 이뤄진미국 대규모 출판사의 동해 병기 결정은 향후 미국내 교과서 출판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동해 표기에 대해 꾸준한 문제 제기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전세계 100여개지도 출판사, 여행 사이트의 `동해(East Sea)' 표기 결정을 이끌어낸 `반크'는 지난2월부터 이 단체가 구축한 `온라인 교과서 오류시정망(http://www.prkorea.com/pu사원은 "프랑스 국방부 소속 수로국이 1999년 발간한 해도 목록에는 동해가 일본해로만 표기됐으나 2003년 1월판에는 동해(Mer de lEst)와 일본해(Mer du Japon)가 병기(倂記)됐다"고 3일 밝혔다.민간 지도 제작사들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사례는 있었지만 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해도 목록에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된 것은 처음이다.프랑스 수로국은 3~4년마다 해도 목록을 개정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지난해 4월 열린 국제수로기구(IHO) 정기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주장한 동해.일본해 병기 방식을 지지했었다.해도 목록은 해도 번호와 축척.구역 등을 게재한 책자로, 프랑스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해도를 제작한다.USA 투데이,"동해"병기 방침미국의 유일한 전국 종합 일간지인 USA 투데이 가 앞으로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바다를 표기할 때 일본해 와 함께 동해 도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이 신문은 지난 15일자에 동해를 일본해 로 표기한 데 대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사는 한국인 지질학자 김영식씨가 항의 서한을 보내 정정을 요구하자 이같이 회답하고 "기사에는 동해 또는 한국해로도 알려진 일본해 로, 지도에는 일본해 옆에 나란히 동해를 함께 표기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외국지도 '동해' 단독표기 늘어”국정홍보처는 25일 외국 언론 및 지도제작사에서 최근 동해에 대한 ‘일본해’ 표기를 고쳐 ‘동해’ 또는 ‘동해/일본해’로 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홍보처는 “캐나다 최대 지도제작사인 아이티엠비(ITMB)가 지난 6월 ‘국제여행지도’에서 동해를 ‘EAST SEA’(동해)로 단독표기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 일간지 5월31일치와 프랑스 월간지 는 ‘Mer de l'Est’(동해)로, 멕시코 일간지 는 ‘MAR DEL ESTE’(동해)로 단독표기했다”고 밝혔다.또 미국 3월29일치와 프랑스 일간지 5월29일치,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백과사전 사이트, 오스트레일리아의 세계여행 사이트인 ‘로운리플래닛’ 등은 ‘East Sea(Sea of Japa.kr
{{【VTR감상문】『내가 생각하는 통일의 방향과 방법』{{과 목한국 근현대사의 이해교수님학 과학 번이 름Ⅰ. 들어가며1년전 온나라에 퍼지던 월드컵의 감동과 열기는 아직도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 을 외치는 모습은 국제적으로도 화제가 된 하나된 우리의 모습이였다. 그러나 그 월드컵 홍보 사이트중, 우리나라가 'North Korea'로 표기되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잘못 표기된 우리나라의 명칭에 분개하기 보다 우리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불리게 되는 지구상에 마지막남은 분단국가라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이다.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동일한 문화 유지해오고, 통일 신라 이래 1,300여년 이상 통일 국가 형태 지속해온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작은 국토는 나눠져 있었다.이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본고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일정책의 흐름에 관해 살펴보고 앞으로 그 방향과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Ⅱ. 본론1. 남한의 통일정책1) 제 1공화국(1948-1960)의 통일정책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UN의 협의하에 북한지역 자유 총선거를 천명함으로써 북한정권의 수립으로 한 국가안에 체제가 다른 두정권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뒤 1950년 6.25일 전쟁으로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라는 다른 이념적 체제로 확실한 분단국가가 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과 북진 통일을 천명하였다. 이승만정권의 '북진통일론' 1948년 8월 성립한 이승만정권은 '민족 구성원 모두의 열망'이라는 이름아래, 북한 동포가 스스로 북한을 수복할 수 없을 때에는 무력으로 주권을 되찾을 권한이 있다면서 '북진통일론'을 내세웠다.이승만의 통일정책은 결국 분단체제를 더욱 굳게 하면서 안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대화하여 독재체제를 더욱 굳게 하면서 안으로 반공이데올로기를 극대화하여 독재체제를 유지.강화하는 중요한 발판이었다.2) 제2공화국(1960-1961)의 일 기반 조성을 위한 구상을 발표하고, 1972년 7.4 에는 대외적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는 국제 분위기에 맞춰 자주,평화 , 민족적 대단결의 통일원칙하에 남북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하에서도 크게 바뀌지않았다. 그러나 6.23 평화통일외교정책 선언으로 북한의 정치 실체를 인정하고, 1974년에는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간의 신로 조성,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 자유 총선거 실시"라는 평화통일 3대 기본 원칙으로 '선평화 후통일'로 기조를 바꾼다.4) 제 6공화국(1988-1993)의 통일정책6공화국은 남국사이의 화해와 협력모색이라는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을 시도하였다. 1988년 7.7선선에서는 북한을 대결의 상대가 아닌 선의의 경쟁자로 간주, 함께 번영을 이룩하며, 남북간 인적, 물적 교류 협력의 기본 방향이 설정되었다. 또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으로 자주, 평화 민주의 통일원칙을 제시하고, 교류오 협력을 통한 신뢰의 회복으로 쌍방 합의하의 민족공동체 헌장을 채택하여 과도기적 통일 체제인 '남북연합'의 단계를 갖고, 통일 헌법에 따른 총선거 실시로 통일국회와 통일 정부를 수립하여 완전한 통일 국가인 '통일 민주 공화국' 수립을 주장하였다. 이는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에 대응하려구 마련한 이 통일 방안은 지금까지 추상적이며 원칙만을 강조해온 한계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통일과정과 통일된 국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통일방안보다 진전된 것이다.그런데 먼저 이 방안은 남북한의 결합 방식과 관련하여 북한의 연방제와는 달리 `1민족 1국가 1체제`라는 '단방제`를 지향하고 있다. 연방제가 남북한의 현실을 인정한 위에서 통일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단방제는 결국 어느 한 체제를 포기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결국 남한 체제를 뼈대로 삼는 흡수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이 방안은 분단에서 완전한 통일에 이르는 경로로서 과도기를 담당할 수임 권력기구의 설치와 운영을 전제로 하고 있다.그러나 통해 북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나가자는 정책이였다.6) 국민의 정부(1998-2003)의 통일정책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2000년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 열리고, 6.15 남북 공동 선언으로 남북관계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국민의 정부는 포용정책과 포괄적 접근을 해나가면서 많은 물자지원과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 햇볕정책으로 평화적인 교류와 남북 경제 협력을 활성화하여 민족 공동체 건설을 지향하였다.7)참여정부(2003- )의 통일 정책현정부는 평화번영정책으로 통일 정책을 추진중이다. 추진 원칙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하고, 상호 신뢰 우선과 호혜주의로써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국제협력을 도모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정책이라는 원칙하에 평화 증진과 남북한 모두의 번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2. 외국의 통일 사례1) 동 · 서독의 통일ㄱ 사회주의 체제의 동독 국민들이 자유주의 서독으로 편입하는 방식ㄴ 통일 이전에 긴장 해소를 위한 노력 : 동 · 서독 기본 조약 체결, 유엔 동시 가입 → 다방면에 걸친 통신과 교류를 비롯한 협력 사업 추진ㄷ 통일의 후유증 : 막대한 통일 비용과 동 · 서독 주민의 이질감과 갈등 발생 → 점진 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독일의 통일 일지-1945년 독일의 패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구소련에 의해 분할됨.-1949년 미국, 영국, 프랑스의 통치 지역은 서독으로, 구소련의 통치 지역은 동독으로 나 뉘어 분단 국가가 탄생됨.-1953년 동독에서 공산 독재 반대 시위가 일어남.-1969년 서독 수상 브란트 동독 방문, 교류 협력 강화-1985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개혁 개방 강조-1987년 동독 국민 탄압 강화-1989년 동독인들의 대거 서방 탈출로 동독 공산 정권 붕괴 이후 자유 선거로 서독에 편입됨.2) 예멘의 통일ㄱ 남북 예멘 정상 회담에서 통일 헌법안 승인 → 합의에 의한 통일(1990년)ㄴ 권력 분배 문제로 내전 발생 후 북예멘이 승리하여 재통합됨(19이 없는 외세의 지원은 진정한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음.※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1975년, 통일을 이룬 공산 베트남은 경제 개혁으로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있어서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부 베트남에서 4년 연속으로 계속된 극심한 자연재해는 농토를 황폐화시켰으며, 특히 1978년 베트남 전역에서 발생한 대홍수는 300만톤의 식량피해를 가져왔다. 베트남이 전형적인 쌀생산 농업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연 재해로 인한 농업 생산 부진의 결과는 단순히 식량 부족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는 공업 원료와 기계 및 설비의 수입에 할당되어야 할 외화가 식량 수입에 모두 쓰이게 된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업부문의 성장까지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 된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제도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경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것이 도이모이 정책이다. 이후 베트남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교전국이었던 우리 나라와도 수교를 맺고 경제 교류를 하고 있다. 도이모이 정책에 따른 빠른 경제 성장으로 베트남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2. 통일의 방향한반도의 통일의 문제는 우리민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로 추진되어 왔으며, 현재도 국가 정책과 민족문제의 높은 우선순위에서 다뤄 지고 있다. 그러나 통일의 문제는 조급하게 해결되어 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며, 또한 미루어서도 안되는 국가의 큰 과제이다. 현재 우리에게 있어서의 통일은 과거로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 우선이 아니고, 평화 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통일이 되어도 평화가 깨지면 통일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분단이 계속되어도 평화만 지속되면 통일 이상의 의미를 지닐지도 모른다. 예멘이 평화보다 통일을 앞세워 내전에 휘말렸던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또한 통일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루어 져야한다.우리는 지난 과거 외세의 개입에 의해 지금의 분단이 이루어 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의 우리의와의 손을 끊고 자기들 고립된 상태에서 지낸 여러 공산국가의 몰락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통일의 사안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그리고 통일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지가 필요하다. 독일의 통일에서도 알수 있듯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독일보다 경제적 조건이 낫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서 국제적인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이때까지의 남북한 대립으로 인한 불안은 국제적으로로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인 협력하에 통일을 이룸으로써 좀더 발전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이 네가지를 방향으로 하여 내가 생각하는통일의 점진적이고 단계적 통일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해 보았다.1) 정치적남한과 북한은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과도 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 체제의 통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서둘러서는 안된다.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서서히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야한다. 우선 1국가 2체제를 이루어야한다. 그리하여 두 정부가 하나의 체제를 위해 서서히 노력한 끝에 하나의 완전한 체제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남북연합같은 과도기적 단계의 정치기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국명과 국기, 그리고 국가의 선택도 중요할 것이다.2) 경제적북한과 우리나라는 굉장한 경제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통일에서도 알수 있듯이 경제적인 조화도 굉장히 중요하다. 북한의 개방화 분위기를 타고, 몇해전부터 활기를 띠고있는 기업의 대북 진출같은 정책이 더 활성화되어 북한의 경제 부흥을 꾀하여야한다. 또 국제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통일 후에는 국방비에 쓰이던 돈을 북한의 경제적인 활성화를 위하여 투자하여야 할 것이다.3) 문화적50여년의 분단은 우리의 문화에 있어서 이질감을 낳았다. 경제적, 정치적인 차이로 그 문화 또한 너무나 그 골이 너무나 깊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우리의 왕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