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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람기]전주박물관 관람기
    국립 전주 박물관을 다녀와서...교수님께서 왜 두 번이나 박물관을 다녀오라고 하셨는지...좀 귀찮긴 하지만 무언가 분명 의미 있는일 일 꺼라 생각하며 다녀왔다. 이름부터 다른 국립 전주 박물관 역시 학교에 있는 박물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어렸을 때 많이 가봤지만 소풍이나 견학이라는 이유로 갔기 때문에 가서 뭘 하고 왔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꼭 전주 국립 박물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너무 넓어서 이 많은 유물들을 언제 다 세세히 볼까 걱정이 좀 됐다. 1층에 있는 고고실로 향하였다.이곳은 선사시대부터 삼한, 삼국시대를 포함하여 대체로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고학적 연구대상이 되는 유적·유물자료들이 전시 되어있었다. 전시자료는 기본 주제별로 선사시대 문화를 조명하는 선사분야, 익산 미륵사지 발굴 조사 성과를 집약한 미륵사분야, 삼국시대 고분문화의 성격을 조명한 고분분야,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해양 제사유적인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분야의 네 분야로 크게 나뉘어져 있었다. 고고실안에 청동기 문화에 관련된 유물들이 있었는데 그곳에 제사장이 있었는데 고인돌, 돌널무덤, 널무덤등 여러 가지 무덤이 있었는데 사진과 사이즈만 나타나 있어서 크게 실감하지 못했으나 규모가 하도 커서 지배자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무덤이 있다고 한다. 무덤 이외에도 의기나 무구도 있었다. 좀 안으로 들어가니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이라는 전시란 에는 목긴 항아리와 그릇받침, 여러 가지 토기, 석제모조품, 여러 가지 금속 유물 등이 많이 있었다. 각각의 유물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하나하나마다 좀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분문화전시란에는 금동 장식품이 정말 많이 있었다. 신발에서 귀걸이까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정말 고대시대에도 장식을 정말 많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삼국문화전시란에 가니 여러 가지 신기한 토기들이 많았다. 작은 토기들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고 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의아해 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미술실이 있었다. 미술실안에 미륵사지 유물관이 있었는데 얼굴 모양이 그려져 있는 얼굴수막새 , 녹유연목와, 금동제판불, 명문와등 신기한 이름을 가진 유물도 많이 있었다. 회화전시란에는 고종황제어진과 내소사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그림이 있었다. 역사자료란에는 아주 눈에 익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있었다. 공예란 에는 정말 유명한 상감청자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말 겉이 매우 매끄렇게 보였고 정교했다 그 당시 도공의 기술이 짐작이 갔다. 그 다음으로 박물관에서 가장 재미있게 구경한곳이 민속실인데 이곳에 있는 유물들은 정말 왠지 모르게 반갑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음식란에는 상에 과 밥과 여러 가지 반찬 등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진짜 같아서 정말 진짜인줄 알았다. 농경란으로 위치를 옮겼을 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지역마다 다른 호미의 자루 모양 이였다. 처음엔 호미가 다 거기서 거기인줄 알았는데 지역마다 호미의 모양이 차이가 있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다. 따비라는 신기한 농기구도 보았다. 민속 공예란에는 한지를 만드는 작업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목기를 만드는 작업도 자세하게 전시되었다. 무가란에는 창을 하는 여자와 장구를 치는 남자의 모습을 나타냈는데 이 시대에도 노래와 춤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박물관 안을 모두 둘러 봤는데 이제는 정말 전국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다녀와서 그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교수님이 이제서야 박물관을 2번 다녀오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독후감/창작| 2006.09.19| 1페이지| 1,000원| 조회(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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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람기]전주 풍남제 관람기
    제44회 전주풍남제 효과전주역사 바로 알기 기존 종합운동장에서 열렸던 풍남제는 이번 제44회 전주풍남제에서는 장소를 옮겨 풍남문 일대와 경기전 앞 태조로에서 펼쳐진다. 전통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한옥지구와 공예전시관, 전통문화센타, 주조박물관 등을 배경으로 , , 등이 새로이 신설되었고, 여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전주의 역사를 흠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모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풍남제 , , , , 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며,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시민은 물론 관람객들에게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각 행사명에서도 보여지듯이 계층별 연령별 참여형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자 노력했다.이밖에도 금번 제44회 전주풍남제에서는 환경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마련한 이 전주천 남천교 일대에서 열리고, 새롭게 시도되는 은 태조로와 풍남문 일대에서 열린다. 그랜드세일은 축제기간에 세일을 하는 업소에게 풍남제에서 정한 청사초롱을 달아주는 행사로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자 한다.이러한 행사를 통해서 전주의 역사를 재발견하고 44년 동안 이어져온 전주만의 흥겨움과 풋풋한 인정을 풍남제 속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월드컵 기간동안 전주를 방문한 다른 지역 시민들과 외국인들에게 더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행사의 종류와 의미전주사람 전주의멋지역 민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 전통문화 단체나 동호인들이 직접 꾸미는 무대로 한국무용, 판소리, 민요 등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퓨전콘서트JAZZ와 우리 전통의 국악과 판소리의 어우러짐으로 자유로운 FUSION 음악을 들을 수 있도하여 지역음악문화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무대이다.BIG BAND장발에 나팔바지를 입고, 통기타 하나면 즐거웠던 1970년대의 세션맨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꾸며진 BIG BAND 공연풍남가요제순수한 시민들의 자유 참가 이루어지는 시민가요제이다.한지패션쇼1전주의 특산물 "한지"를 이용하여 화려한 의상들을 선보이는 패션쇼맘판1318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직접 꾸며나가는 무대로 중창단활체조, 플롯연주, 에어로빅, 풍장, 아코디언 등으로 이루어진다.전주의 향기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 국악 단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온고을의풍류2전통문화예술의 본고장으로서의 역량을 선보이는 무대로 병창, 판소리, 부채춤, 소고춤 등 전통예술 분야별 특색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다.은빛예술무대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숨은 장기를 보는 무대로 한국무용부터 장고, 부채춤에 이르기까지 어르신들의 장기를 볼 수 있는 활기찬 무대가 될 것이다.소리고을소리여행국악실내악단"소리고을"이 전북의 산과 들을 국악관현악으로 재구성한 국악 실내악 공연으로 마령면 평지리 들노래, 순창금과들노래, 덕진채련 등을 명창 한다.신파극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극단 "우레"가 공연한다.무성영화"별들의 고향"을 변사의 구성진 목소리와 함께 비 내리는 스크린을 보면서 추억을 떠올려보자.구연동화5월 3일 다섯 손가락, 강아지 똥5월 4일 매미와 댕댕이, 반딧불5월 5일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어린이들의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공연입니다.인형극/저글링/마임김현철의 마임과 저글징, 우석대학교 "피노키오"가 펼치는 「사자와 꿀벌」,「게으름뱅이 심심이」인형극을 볼 수 있는 즐거운 무대입니다.각설이패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옛날 장터에서는 쉽게 볼 수 있었던 각설이 패를 구경할 수 있다.암행어사/망나니패단막극으로 꾸며지는 암행어사와 망나니 패의 공연을 볼 수 있다.약장수/악극패심청전 중 뺑덕이네가 심봉사패와 함께 황성으로 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우리가락생활체조우리 고유의 멋과 가락, 율동이 깃든 생활체조동호인무대아코디언 연주, 생활체조, 에어로빅, 풍물 등 여러 동호회들의 장기를 볼 수 있는 무대이다.취타대풍남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전통 취타대의 연주를 보고들을 수 있다.인간조각퍼포먼스태조 이성계, 이순신, 유관순, 황진이 등 역사 인물로 꾸미는 STOP MOTION기접놀이전주기접놀이는 평화동, 삼천동 일대의 각 마을에서 성행된 민속행사이다2년 을미(1895년) 8월 15일에 제작되었으며 당시 상좌(上座) 임성숙(林成淑) 씨와 회원 윤공여(尹公汝)씨의 성함이 기록되어 있고 龍 그림은 1936년 벽곡(碧谷)이 그렸다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는 1940년대에 제작된 정동마을 용기가 남아 있다.기(旗)에는 용을 비롯 거북이나 물고기를 그렸는데 이는 용신(龍神)을 믿는 우리네의 기우(祈雨)의 뜻으로 풀이 된다.주민들의 구전에 따르면 당초 각 마을에는 똑같은 크기의 백기와 용기를 가지고 있었는데,백기(白旗)는 남성기라 해서 마을 공동작업과 마을주민의 행사에 등장했으며 용기(龍旗)는 여성기라하여 기접놀이 때만 등장했다고 한다.용기가 출동할 때는 으레히 영기(令旗)가 길을 안내했다.주민총화와 단결·협동 속에 기(旗)와 예(藝)가 포함된 기접놀이는 다른 기놀이와 많은 상이점이 있어 중요한 우리만의 민속자료인 것이다.난장의 어원난장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난'은 , 에서와 같이 출중(出衆)의 난(出) 의뜻이다. 즉, '안(內)에서 밖(外)으로 난다.' '들어난다.' '노천에 떨어져 나타난다.' '정기적인것을 벗어난 비정기적인 것'등의 뜻이다. 따라서 난장은 정기적으로서는 장이 아니라 정한날짜 외에 특별히 며칠 더 터놓는 장이다.요즈음의 난장은 향토 음식과 민속공예품을 전시 판매하고 한편에서는 오락도 한다. 난장의의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을 먹고, 놀이판과 굿판에서 구경도 하고 함께 즐기며,웃음과 화합의 장으로 삼은 데에 있다.시장제와의 관련을 중심으로 난장에 대한 사적 고찰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사자료》제45집의 조선의 향토신사(鄕土神祀) 제2부제6장 시장편은 다음과 같다.'조선은 예부터 중농억상(重農抑商)의 경제 방침을 견지하여 왔기 때문에 상업의 발달을볼 수 없다.물화(物貨)교환은 오로지 한 달에 여섯 번 열리는 정기 시장에서 물물교환 적인 형태로이루어졌다. 따라서 한 시장의 큰 발전을 이룰 수는 없었고 소시장의 분포는 널리 퍼져서산간 벽지의 부락 부근에 1, 2개의 시장이 있다.이러한 조선의 행위를하였으므로 오락 향락의 장이 되었다.따라서 이 신성한 신인화락(神人和樂)의 신사(神事)는 부정(不淨) 타락하였다.이에 1915년경의 엄중한 단속으로 인하여 점차 쇠퇴하게 되었고, 현재에는 신 시장 개설의 선전과 공공사업의 주지(周知) 등의 경우에만 겨우 그 잔영이 남았을 분이다.'이상과 같은 시장제의 영향을 난장이 받았을 것이다.설령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음식점이나 술집 혹은 도박판과 같은 현상들, 즉 경제성과 오락성에서 시장제와 난장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여하튼 난장은 농촌 사람들에게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생활의 일부였다.백종일(百種日)을 전후해서 서는 시장을 백종장이라 한다.이 백종장은 여러 가지 놀이와 흥행이 벌어지는 현장이다.이 백종장이 서면 주인들은 머슴에게 새옷 한 벌과, 장에 나가 먹고 즐길 수 있는 돈을 주는데, 이 돈을 '백종돈'이라 한다. 이 백종돈은 농촌에서 머슴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집안 장정과 아이들에게도 준다.그러면 이들은 모두 새옷을 입고 장터에 나가, 물건도 사고 음식도 사먹으며 굿을 구경하며 신나게 하루를 보낸다.이처럼 백종은 농부들과 머슴들의 명일이었으므로 이를 '머슴날'이라고도 한다.농촌 사람들이 한번쯤은 다녀오는 민속명절이었다.서로 서먹서먹한 사이일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음식을 같이 먹었다. 그럼으로써 마음에 맺힌 이야기들을 하여 응어리진 마음을 푸는 계기로 삼았다.경제를 초월하여 인색하지도 않았고, 속박을 초월하여 생활의 해방감을 만끽하는 날이 되었다.난장의 특징과 유래옛 난장의 특징과 유래들을 문헌으로는 알 수 없고 현장조사에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유래설에는 장설(場設), 놀이설 등으로 나누어 보아 왔으나 주종 선호관계에 정론을 얻을 수 없다. 오직 그 자체에 두 가지를 겸한 양면성, 즉 경제성과 오락성이 동일하게 공존하고 있다. 시전(市廛)의 상행위와 오락(씨름판)이 동반하는 형태이다.난장의 목적난장을 트는 목적은 새로이 시장을 개설하고 일반에 널리 홍보시키기 위하여서이거나, 혹은 기존 시장의 부진중적 대제전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축제의 묘미와 더불어 훈훈하고 적나라한 인간미를 맛볼 수 있으며, 비합리적인 현실 세계에서 삶의 희망을 갖는지도 모른다. 난장은 일정(日政)때 사라졌으나 우리 고장 봉동 같은 곳에서는 60년대까지도 존속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큰 난장은 순박한 농민들의 해방감을 주는 마당이었음은 틀림이 없다.풍남제의 역사 (시청 홈페이지)전주(全州)라고 명명된 지 1,300여년 된 고도 전주는 옛날 4대문을 가진 성곽도시였다.전주는 삼남(三南)의 거진(巨鎭)으로서 정치·경제·문화·교육의 중심지였기에 경기전·객사·풍남문·향교 등의 문화 유산이 옛모습으로 잘 보존된 지역이다. 풍남문(豊南門)은 전주부성의 남문인데 풍남문이라고 명명된 것은 1767년(영조43년) 3월 전주에 남문과 서문이 불타고, 민가 1,000여 호가 소실되는 큰 화제가 발생했다. 이때의 관찰사 홍낙인은 다시 문루를 복원하는데 남문은 풍남문, 서문은 패서문이라 이름지었으며, 그 뜻은 왕조의 발상지를 풍패(豊沛)라 하는 중국(漢 고조 유방이 풍현에서 낳고, 패현에서 자라 힘을 길러 왕이 됨)을 본따 명명한 것이다. 이는 전주가 조선조 왕(王·전주 이씨)의 본향이기 때문에 일컬어진 말이다. 이러한 옛 성곽도시 전주가 일제침략기에 이르러 우리문화말살정책에 의하여 성곽과 문루가 헐렸는데, 오직 풍남문만이 남아 전주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전주시에서는 단오절이 되면 자연발생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이 날을 기념하여 1959년 6월 2일 단옷날을 『전주시민의 날』로 정하고 시민축제 행사를 해오던 중, 1967년 풍남문 중건 200주년을 맞아 시민풍남제(豊南祭)라 부르게 하였다.축제의 효과전주 역사와 문화의 대표지역인 한옥마을(교동촹풍남동)과 향시(鄕市)의 시초인 남밖장(남부시장) 일대를 아우르는 핵심지인 경기전의 수려한 자연공간에서 온고을의 풍요로운 멋촹맛촹인심이 담긴 축제장을 조성하여 방문객들에게 인상깊은 경험을 제공한다.가족지향적 민속관광축제로서 온가들었다.
    독후감/창작| 2006.09.19| 10페이지| 1,000원| 조회(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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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학]구심력과가속도 결과보고서
    실험 결과보고서실험 제목 : 구심력과 가속도과 목 명 기술작문 및 발표담 당 교 수 고 영 호학 과 컴퓨터공학과학 번 200310920이 름 김 두 수제 출 날 짜 2006년09월18일1. 실험목적물체가 일정한 원궤도를 따라 일정 속력으로 회전할 때 구심력을 측정해본다. 회전 속도와 질량, 회전 반지름을 변화시켜가면서 구심력을 측정해 본다.2. 실험 관련이론① 구심 가속도물체가 등속 원운동을 할 때 속력은 일정하지만 운동 방향은 계속 변하므로 속도 가 변하는 가속도를 갖는다. 가속도는 언제나 원의 중심을 향하므로 구심 가속도라고 한다. 가속도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여기서 물체가 원둘레를 한 바퀴 도는 동안에 속도 벡터도 방향을 만큼 바꾸게 된다.)② 구심력원운동을 하려면 원운동의 중심을 향하는 가속도가 필요하므로 가속도를 생기게 하는 힘이 물체에 작용해야 한다. 이 힘을 구심력이라 한다. 그러나 이 구심력은 속도의 크기는 변화시키지 못하고 속도의 방향만 바꿔준다. 구심력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정 리1. 구심 가속도 ()2. 구심력 ()3. 실험장치 및 방법컴퓨터, 인터페이스, 파워앰프, 베이스 및 수직 지지막대(60Cm), 상단 지지막대(30Cm), 멀티 클램프, 힘센서, 포토게이트, 클램프, 측정용 회전대(DC모터), 질량(10g, 20g, 50g짜리)1. 지지막대(60Cm)를 세운뒤 회전대를 베이스의 중앙쪽에 고정시킨다2. 베이스의 수평조절 나사를 이용해서 회전대의 수평을 조절한다.3. 질량 10g을 회전대로부터 5Cm거리에 설치한다4. 힘 센서를 상단에 고정하고, 철사가 수직이 되도록 정렬한다.5. 지지막대 하단에 ㄷ클램프를 끼우고 포토게이트를 설치한다.6. 힘센서는 아날로그 채널A에 파워앰프는 채널B에, 포토게이트는 디지털채널1에 연결한다.7.신호발생기의 출력설정은 AUTO, DC3V로 잡고 하단의 출력전압측정 체크를 없앤다.8.TIMERS 버튼을 누르고 Label에 Time Between blocker를 입력한다. Done버튼을 누른다.9.계산기를 띄우고 Velocity = (2*pi*radius)/t를 입력한다.10. START버튼을 누르면 장치가 회전하게 된다.11. 전원을 3, 4, 5, ... 10V 으로 변화시켜가면서 그래프를 관찰한다.12. 질량을 10, 20, 30, 40g 으로 변화시켜가면서 그래프를 관찰한다.13. 회전반지름을 5, 6, 7, 8Cm로 변화시켜가면서 그래프를 관찰한다.5. 실험결과 및 고찰오차 요인① 실험 기구의 부정확성...(용수철의 힘이 일정했는가의 문제)실험에서 용수철의 길이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는지도 잘 알 수 없고, 그 상수값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실험값조차도 신뢰할 수 없었으나, 이런 오차 요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한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과학| 2006.09.19| 4페이지| 1,000원| 조회(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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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언어연습문제풀이
    제2장 연습문제 1번 3번 5번 풀이1.다음 프로그램을 실행 시켜보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해 보시오.#includevoid main(void){int i,j,k;i=0xffff;j=65535U;k=-1;printf("i=%d,%un",i,i);printf("j=%d,%un",j,j);printf("k=%d,%un",k,k);}-실행시i=65535,65535j=65535,65535k=-1,4294967295-이유i에서 0x는 16진수를 의미하고 ffff는 16진수인데 10진수로 고치면 65535가 된다. 그러므로 65535가 출력된다.j에서 숫자뒤에 U라는 문자가 있는데 이 함수는 int함수이므로 문자는 생략되고 숫자만출력된다.k에서 첫 번째는 %d는 부호있는 정수형출력이므로 -1이 출력 되고 두 번째는 %u는 부호없는 정수형 출력이므로 부호를 없애야 하므로 가장 큰수인 4294967295가 출력된다.3. "i+1"은 i와1의 합을 의미한다. 다음 프로그램의 결과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설명하시오.#includevoid main(void){int i,j;i=32767;j=-32768;printf("i=%d,i+1=%dn",i,i+1);printf("j=%d,j-1=%dn",j,j-1);}-실행시i=32767,i+1=32768j=-32768,j-1=-32769-이유i는 32767인데 i에 +1을 했으므로 32768이 되었다.j는 -32768인데 j에 -1을 했으므로 -32769가 되었다.5. 시스템에서 제일 큰 정수와 제일 작은 정수를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시오.#includevoid main(void){int i;long j;i=-1;j=-0x7fffffff;printf("가장큰수=%un",i);printf("가장작은수=%dn",j);}제 3장 연습문제 2번 3번 6번 풀이2. 정수를 입력받아 16진수로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시오./* 임의의 정수를 입력 받아 16진수형으로 출력하라. */#includevoid main(void){int a;printf("임의의 정수 : ");scanf("%i", &a);printf("16진수 = %xn",a);}3. 두 실수(double형)를 입력받아 두 수의 곱과 합을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시오.(곱은*, 합은+를 사용한다. 즉, a *b, a+b 형태로 사용한다.)#includevoid main(void){double a,b;printf("첫 번째 정수 입력 : ");scanf("%lf", &a);printf("두 번째 정수 입력 : ");scanf("%lf", &b);printf("a+b=%fn,a*b=%fn",a+b,a*b);}6. 하나의 정수와 실수를 입력받아서 그 두 수를 더한 결과를 출력시키는 함수를 작성하시오.#includevoid main(void){int a;float b;printf("첫 번째 정수 입력 : ");scanf("%d", &a);printf("두 번째 실수 입력 : ");scanf("%f", &b);printf("a+b=%fn",a+b);}제 4장 연습문제 3번 5번 7번 11번 풀이3. 선분의 양 끝점 좌표를 읽어서 그 선분의 중앙점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시오.#includevoid main(void){float a,b;printf("첫번째 좌표를 입력하세요:n");scanf("%f",&a);printf("두번째 좌표를 입력하세요:n");scanf("%f",&b);printf("(%f+%f)/2=%f",a,b,(a+b)/2);}5. 화씨 온도를 읽어서 섭씨 온도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시오. 단 화씨와 섭씨온도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C=5/9 (F - 32)#includevoid main(void){float a;printf("화씨온도를 섭씨온도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입니다n");printf("화씨 온도를 입력하세요:n");scanf("%f",&a);printf("섭씨온도=%fn",(a-32)*5/9);}7. 다음 프로그램의 실행 결과는 무엇일까?#includevoid main(void){int a,b,c;a=b=c=0;a=++b + ++c;printf("n%d%d%d",a,b,c);a=b++ + c++;printf("n%d%d%d",a,b,c);a=++b + c++;printf("n%d%d%d",a,b,c);a=b-- + --c;printf("n%d%d%d",a,b,c);a=++c + c;printf("n%d%d%dn",a,b,c);}-결과-*************2311. 한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을 16진법 코드로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시오.#includevoid main(void){char a;printf("한 문장을 입력 받아 16진법 코드로 출력하는 프로그램 입니다n");printf("한 문장을 입력하세요(영어만)n");scanf("%c",&a);printf("16진법 코드=%x",a);}5장 연습문제 4번 5번 6번 10번 풀이4. 1에서 1000까지의 정수 중에서 다음의 순열에 해당하는 것들을 모두 출력하시오.(인접한 두 수의 차가 1부터 시작해서 계속 증가하는 순열)1 2 4 7 11 16...#includevoid main(void){int i=1,j=1;while(i
    공학/기술| 2003.06.19| 4페이지| 1,000원| 조회(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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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리학의 특징과 위치
    한국 성리학의 특징과 위치참고문헌-윤사순,「한국 성리학의 특징과 위치」『한국사 시민강좌』4, 1989.1. 성리학의 이미와 특성성리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성명 의리의 학의 준말로 성명과 의리를 즐겨 캐고드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로 해서 때로 동양사상 중 유학이나 불교, 도교 등과 무관한 것으로 믿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유학 중의 하나이다.유학을 선진본원유학, 한당훈고유학 등으로 세분 할경우에, 바로 송명시대의 유학이라 지칭되는 것이 곧 성리학이다.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학자와 경향에 따라서도 이것은 다양한 명칭을 갖는다.(정주학·주자학·육왕학·양명학·이학·도학·심학·신유학)정호(1032-1085)·정이(1033-1108) 형제와 주희(1130-1200)·육구연(1139-1193), 왕수인(1473-1529)이 학문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들은 또 나름대로 이 또는 심에 더 치중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다만 이중에서 송학·정주학·이학·도학이 송대의 한 계통이고, 명학·육왕학·양명학·심학이 전자에 대립하여 주로 명대에 일어난 계통으로 분별된다.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전자인 정주계의 이학이 크게 발달하였다. 때문에 대부분 성리학이라고 하면 전자를 가리킨다. 또한 같은 정주계의 이학이면서도 한국에서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 이학이라는 용어보다는 성리학이라는 용어를 더 즐겨 사용하여 왔다.(중국과는 다른 한국적인 특색)성리학이 중국에서 발흥하게 된 배경-당말이래 송·명대의 특수한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여건이 그 발흥배경으로 작용.다만 사상적 여건만을 위주로 본다면 특히 안록산의 난 이후 많은 민란에 의해 당의 폐쇄적인 귀족사회가 붕괴되면서 야기된 혼란을 계기로 관료학자(사대부)와 유학자들이 그 시대의 혼란과 모순을 불교와 도교의 사상적 약점에 돌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약점에 돌려 그 극복을 유학의 재건 부흥을 통해 이룩하려 한데서 성리학이 발흥하게 되었다.당시 유학자들의 판단에 의한 불교나 도교가 지닌 현실 대응의의 철학이나 수양에 맞설 유학의 형이상학적 이론과 수기의 이론이 유학경전 그 중에서도 특히 『논어』『맹자』『중용』『대학』에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은 이 네 경전을 유학의 가장 중요한 기본 경전으로 간주하게 되었다.(사서라는 명칭이 이러한 생각에서 생겨남) 이대가지 『중용』과 『대학』은 『예기』의 한 편에 불과할 뿐 독립적 서적이 아니었다. 이것이 독립적 서적으로 간주되고 그것도 공맹의 서적들과 나란히 하는 정도로 중요시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 내용에 이러한 것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2. 성리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성리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송(북송)에서 발흥할 무렵, 즉 고려 인종기 전후(11-12세기)로 보인다. 당시 고려에서는 송의 서적을 적극 수집해 들여왔고, 김양감·윤언이 같은 대학자가 사신의 임무를 띠고 송에 가고, 중국 사신들이 고려에 빈번히 왔으며, 고려의 중국 유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최충의 구재학당의 재명이 대부분 솔성·성명·대중 등 성리학자들이 특히 중요시한 '중용'의 용어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 예종 때 왕의 임석 하에 행하여진 중신들의 경전강론의 분위기를 가리켜 "삼강오상의 가르침과 성명도덕의 도리가 만당에 가득찬 것"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중국에서 발흥·성장한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알려졌음이 분명하다.그러나 성리학이 적어도 송학 내지 주자학(정주학)으로 대성된 것은 주희의 학문적 공헌이 있은 뒤의 일이며, 또 한국에서 크게 발전한 것도 주자학(정주학)이다. 따라서 주자학으로서의 성리학의 도입은 충렬왕 때(13세기 후반)부터라고 추정된다. 안향(1243-1306)은 자신의 호를 회헌이라고 하여 주희(회암)에 대한 존모의 뜻을 표하면서 성리학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였다. 거의 같은 무렵 백이정 역시 충선왕을 따라 원도에 10년간 머물다 돌아오는 길에 성리학 관계 서적을 많이 구해왔으며, 권부 등은 주희의 '사서집주' 등을 전파하고, 나아가 과거에서까지 그것을 채택케 국교로서 통치원리에 해당했음을 고려하면 성리학이 조선의 새통치 원리여야 한다는 신념을 드러내었고, 그의 이같은 노력으로 성리학은 양반사대부 중심의 조서사회의 통치이념으로서의 관학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권근-『입학도설』, 『오경천견록』 등의 저술을 통하여 비교적 순수한 성리학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러한 연구에 큰 업적을 쌓았다. 무엇보다도 경전에 대한 나름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저술인 『입학도설』은 비록 『대학』·『중용』으로부터 출발하는 초학자를 위하여 저술한 성리학 입문서이지만, 그 내용을 모르고서는 성리학적 사색을 절대로 할 수 없는 요소들만 수십개 골라서 그림으로 그리고 개략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천인합일이 유학의 이상임을 암시하고, 그 이상을 심성의 파악에 의하여 이룰 수 있음을 가르친다. 그 심성파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는 사단·칠정과 같은 명칭의 정들을 설명하고 그거에 대한 이기론적 해설까지 첨가하였다. 여기서 인간의 심에 대한 심도 높은 그의 연구열과 수준을 엿보게 된다.이러한 심성파악의 문제가 16세기 후반 이황, 이이에 이르면 사단칠정과 이기해석론으로 구체화되어 3백년간 학계의 제일 가는 논쟁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권근의 이러한 경향이 조선성리학의 철학적 탐구에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실제적 시각으로 보아서는 당시의 정치가 덕치·예치에 의한 왕도 또는 인정을 이상으로 한 것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점을 고려하면 권근의 이 태도는 군왕 및 지배층의 심성수양에 의한 덕치·인정의 가능근거를 밝혀주었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4. 의리 실천의 도학적 경향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말까지의 기간은 성리학사의 관점으로 볼 때 사림파 학자들의 활동이 크게 돋보인 시기였다. 사화기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의 많은 사화를 겪은 사림파 학자들은 15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간 성리학 특유의 의리의 실천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한국성리학은 일종의 실천성리학으로서의 도학의 특색을 이 시인 기능 위주의 관료제를 한층 더 강화·발전시켰다는 판단이 나완다.대의·의리·명분으로 일컬어지는 성리학의 규범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사림에서 얼마나 투철하였던가는 뒷날 그들이 설정한 한국성리학의 도학적 학통관에 잘 나타난다.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이어지는 사림의 학통관은 실제 학문의 전수관계는 학문의 업적만으로 설정되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성리학이 지닌 도학의 측면인 '의리구현'을 기준으로 설정되고 인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조에서 수많은 청백리는 물론 애국 충절의 학사·의사·열사가 속출한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5. 심성 위주의 이론 탐구16세기 사림파 학자들이 성리학 탐구의 주역이다(퇴계 이황, 율곡 이이, 사단칠정에 대한 이기해석론이 대표적인 이론 탐구).사단칠정론이란 정지운(1509-1561)이 그의 『천명도』에서 사단(측은·수오·사양·시비의 정)과 칠정(희·노·애·구·애·오·욕)에 대하여 각각 '발어이'하고 '발어기'한 것이라고 한 해석이 발단이었다. 이것을 본 퇴계가 사칠을 각기 '이지발' '기지발'이라 하였다가 기대승(1527-1572)과의 논변 긍에 사단은 '이발이기수지', 칠정은 '기발이이승지'라고 해석함. 그후 율곡이 사단 칠정 어느 경우에나 모두 '기발이승일도(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이라고 해석함. 이 해석들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내용이 곧 사칠론의 핵심.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해석 형식 자체이기도 하지만 해석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해석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는 퇴계·고봉 사이에서만도 8년여의 세월이 걸쳐 진행되었고, 그후 유록 이이와 우계 성혼(1535-1598)간에 행해진 논변을 비롯하여 학계에서 행해진 검토는 무려 3백여년에 걸친 것이었다. 학계는 마침내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학파까지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퇴계학파·율곡학파 또는 주리파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조선조 당시 적어도 사단칠정론을 중심으로 한 심성의 연구는 중국의 연구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었다.(독특한 학파종대에는 서민계층에서도 오륜적 예의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름. 까닭에 16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퇴계·율곡에 의해 우리 실정에 맞는 향약(예안향약·해주향약·청원향약 등)이 나오고 나아가 철학적 근거가 심성론의 각도로 밝혀질 무렵에는 적어도 양반층에서는 예의 세목에 대한 지식이 절실히 요구되어 『가례』등의 예서로서도 만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 점이 17세기 예학 흥기의 학문적 원인이 됨)17세기가 되면 한 집안이나 한 나라에 있어서의 계통 통서를 바로 하는 일이 예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진다.(예; 종통 의식 위에서 일어난 복상 문제 즉 예송). 따라서 예송형식의 당쟁은 바로 성리학의 명분론적 사고가 정치현실에 투영된 합리적 형식적 생활양식일 뿐이다.7. 인성·물성의 동이론18세기에 이를 무렵 성리학계(이론탐구분야)는 '인물성동이론'을 둘러싸고 격론을 벌이게 된다. 이것은 원래 청풍의 황강(충북 제천 한수)에 살던 권상하(1641-1721)의 문인들 사이에서 발달하였다. 그 문인 중 특히 이간과 한원진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논변화되었다. 내용은 글자 그대로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다른가를 따지는 것인데, 이간은 서로 같다고 주장한 반면 한원진은 다르다고 주창하면서 각각 그 이유를 제시하고 상대를 공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변을 전개할 당시 동료 학자 중 대체로 호서의 학자들은 다르다는 주장에 동조한 반면, 낙하의 학자들은 같다는 주장에 동조하여 양편으로 대립 대결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그리하여 뒷날 이것은 '호락논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여기서 중심 문제롤 삼는 성은 본성(본연지성)을 의미한다. 이간에 의하면 본성은 오상(인의예지신)으로 얘기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주의 근원인 태극으로서의 이(성즉리)이므로, 모든 사물이 다 태극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상, 인성과 물성은 같다는 것이다. 반면 한원진은 인의예지와 같은 본성은 다 기질로 해서 있게 된 것, 즉 차별적인 기 가운데 그것도 마음의 기 가운데 있게 된 뒤의 이를 성이라 한다.
    인문/어학| 2003.06.19| 9페이지| 1,000원| 조회(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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