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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밖에서 본 한국사
    밖에서 본 한국사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와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역사 교육을 되살펴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국내 역사학계는 일본 우익의 파렴치에 분개하고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재수정을 요구하면서,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항하기라도 하듯이 우리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렇듯 일본 우익에 맞서 우리민족의 자긍심과 우수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의 역사를 우리도 써내려간다면 진정한 역사적 교훈을 얻지 못한 채로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훗날 교단에 서서 역사를 가르치게 될 교사에게 과연‘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을 안겨준다. 이러한 고민에 진정한 답을 찾던 중 만나게 된 김기협 선생님의‘밖에서 본 한국사’라는 책은 이러한 나의 고민에 어느 정도 답문을 주었다. 우선 책제목에서도 말하듯이 밖에서 본 한국사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본다면 미화시킬 수도 있고, 작은 왜곡 따위는 크게 죄의식 없이 행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한민족이 아닌 한반도 주변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역사를 시간의 흐름이라 볼 때 이 흐름에서 분명히 내가 즐거웠던 일을 더욱 기억하고 싶고 남기고 싶겠지만, 즐겁지 못한 일도 남길 필요가 있고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 국가의 국사서술에서는 예외인 것 같다. 과거에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불쾌함을 남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는데 좋은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과거의 경험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이 책에서 소개된 自國民,自國 중심적인 역사서술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이다. 전방후원분은 일본 고분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이다. 무덤의 외형이 앞이 네모나고, 뒤가 둥근 모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후원부에 피장자가 묻힌 무덤시설이 있고, 전방부는 제사의례의 공간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 고분형식은 일본에서 3세기에 출현하여, 7세기 전반에 소멸하였는데, 현재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열도 전역에서 2천기 이상이나 발견되었다. 그런데 한국에도 이러한 형식의 고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남·전북의 해안과 영산강유역에 현재 14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고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축조방식이나 장례의식까지도 유사한 고분이 한국의“영토 안에서”, 더욱이 근대일본의 역사가들에 의해 ‘임나일본부’와 관련된 지역으로 지목되었던 곳에서 여러 기가 발굴을 통해 확인되면서, 이 고분들은 기존에 한국에서 출토된 왜계 유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1994년 광주시 명화동고분에서 일본의 전방후원분에서 장식용으로 사용하였던 하니와(식륜)와 거의 동일한 원통형토기가 무덤주위를 돌아가며 세워져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자,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즉각 “일본문화가 한반도에 유입됐다”고 대서특필하였고(1994. 5. 20), 그 다음날에는 한국정부 측 인사가 광주박물관에 전화를 해 “뭔가 대응책을 세우라”고 언급하였다는 웃지 못 할 일화는 이 고분이 이미 민족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난 2005년 10월 31일 한국 KBS 방송국의 저녁 9시뉴스는 “서울에서 500m급의 전방후원분이 발견되었다”는 엄청난 소식으로 시작하여 앵커는 “한성백제시대 초대형고분이 서울 강동구 일대에서 10여기 발견되었습니다. 고분의 외형이 고대일본의 야마토정권의 왕릉인 전방후원분과 동일하고, 그 크기가 500m에 달해 사카이쟜 외있는 일본 최대 전방후원분인 486m의 다이센고분보다도 컸기에 이 발견으로 한성백제가 중국요서와 일본열도로 진출한 강력한 국력을 가진 고대왕국이었음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습니다”며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이에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영산강유역에서 전방후원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고분의 연대나 규모가 일본의 것보다 늦고 작아, 일본 강에선 이러한 고분양식이 고대일본에서 전래되었고, 고대일본이 한반도 일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성백제의 수도 주변에서 고대일본의 것보다 빠르고 더 큰 초대형의 전방후원분이 발견됨으로 인해 한일고대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안이 너무나도 중요했기 때문에, 문화재청은 그 다음날 곧바로 실사에 들어갔고, 굴착해본 경사면에서 자연구릉의 풍화암반층이 드러나, 이것이 인공적인 구조물이 아님이 밝혀지게 되었다. 시굴이 이루어지면 더욱 명백해지겠지만, 이 방송은 오보라 판명되고 이것이 모두 한일의 역사쟁점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오보는 한국의 전방후원분을 둘러싼 한일학계의 충돌접점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사건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이것을 통해 우리의 역사 또한 우익의 성향을 가지고 국수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독후감/창작| 2009.10.05| 3페이지| 1,000원| 조회(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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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교육신조
    나의 교육신조 (敎育信條)예비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 시점에서조차 제가 미래에 교사가 된다면 어떠한 선생님이 되어야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반성하며 이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친구 중에는 이미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도 있고, 교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친구도 있고, 교사 이외에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친구도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과 한자리에서 모이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교사의 사회적으로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 주변에서 교사에게 어떠한 기대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대충은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중고등학교친구들처럼 허물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교사의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서 속어나 비어가 나오면 친구들은“교사가 그러한 말을 해도 되는거냐?”, “우리나라의 교육자가 그런 말을 하다니”등과 같은 장난 섞인 어투의 농담을 하곤 합니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교사란 단지 교원자격을 자지고 중등임용시험을 합격했다고,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끈임없는 자기노력과 성찰활동,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함 등과 같은 수련을 통해서 사회의 모순을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바로잡아야 하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바른 교육신조를 가진 인물이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이렇듯 이상적이고 완벽한 교육의 신조를 설정하고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것보다는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으로 제가 교직에서 실천할 수 있고, 능동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교육의 신조를 세우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라 생각하여 다음과 같은 교육신조를 만들어 보았고 시간이 지나 교사가 되어서도 오늘의 교육신조를 되새기며 교육에 임할것을 다짐합니다.첫 번째, 체벌을 하지 않는 교사가 되겠습니다.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체벌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러한 체벌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그러한 분위기였습니다. 지금에서 보면 너무나도 터무니없고, 부당하게까지 여겨지는 일이지만, 그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의 분위기는 그러하였습니다. 하나의 예로 시험시간에 제가 뒤에 있는 학생과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한 선생님께서 부정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전 교무실로 가서 무지막지하게 맞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은 부정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선생님은 제게 더욱더 노하셨고 그래서 저는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제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지하철에서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못 본척하며 다음 칸으로 이동해 버렸습니다. 학교졸업한지가 10년도 넘었는데, 그 정도면 잊혀지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때 배웠던 과목이나 수업, 다른 여러가지는 기억남은 것이 거희 없지만 그때 그 기억만은 뇌 어느 부분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렇듯 교사의 무심한 체벌에 학생들은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며, 이러한 기억을 일생을 살아가는 내내 상처가 되는 이러한 체벌이 정말 학생을 바로 잡기 위한 교사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두 번째, 학부모님들의 선물이나 촌지를 거부할 수 있는 교사가 되겠습니다.저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보면 환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작게는 음료수부터 크게는 촌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교육학강의를 듣기 전에 일입니다. 저는 그 당시 어른분들이 주신 그러한 선물이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른신들이 주신 성의를 매몰차게 거부하는 것도 우리나라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몇 번은 거부하다가 결국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촌지를 받고 나면 제가 그 환자분을 대할 때 왠지 모를 부담감은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왠지 더 잘해주어야할것 같고, 남들보다 더 오래, 많이 해주어야 할것 같은 부담감이 들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육자가 촌지를 받게 된다면 그아이에게는 좀더 관심이 더 가게 될 것이고, 그만큼 다른아이는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사의 촌지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절대 받아서는 안되고 앞으로도 절대 받지 않겠습니다.세 번째,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존경받을 수 있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앞에서 체벌에서도 말했듯이 권위를 내세우고 학생을 억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교사는 당분간은 자신의 권위가 서고 권력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것은 권력에 의한 억압에 의한 것이지, 학생들에게서 존경심을 유발하거나 다시보고 싶은 선생님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네 번째, 끈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발전하는 교사가 되겠습니다.흔히 교사를‘철밥통을 가진자’라고 비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모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어느정도 동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매년 교과서가 바뀌고 수능이나 시험의 출제경향이 변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이를 반영하는 사립학원이나 입시학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 사태가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무너트릴 수 있기에 교사도 스스로를 개발하고 연구하여 학생들이 더 이상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공교육의 내실화에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육학| 2009.09.28| 3페이지| 1,0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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