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린베리히(August Strindberg)《유령소나타》스웨덴의 위대한 극작가 스트린베리히 (1849~1912)는 초기 근대 연극의 척도를 확장하였던 실험적인 극작가였다. 그는 사실주의 무대를 개척하였으며, 일관성이 없는 꿈의 논리를 탐구했다. 그리고 음악의 개념을 연극에 적용했다.그는 몇 번의 정신적 질병을 앓은 후에 몇 편의 희곡을 썼는데, 그 중에서도「꿈의 연극(A Dream Play, 1902)」,「유령소나타(The Ghost Sonata, 1907)」가 가장 유명하다. 이 시기의 희곡은 스트린베리히 작품의 새로운 방향을 두 가지로 드러내주고 있는데, 그 하나는 꿈의 상태 즉 악몽까지도 다루고 있는 심리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적으로 쓰였던 그림 배경막 대신에 커다란 환등기를 사용하여 투사한 그림을 사용하는 기술적인 것이었다.)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였던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 이름. 그리고 그의 작품「유령소나타」- 작품 가득한 모호함. 잘 모르겠음- 어떤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사건과 관계에 얽힌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구체적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 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 사람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간략하게 몇 단어, 몇 줄로 정리를 해 보지만, 사실 이 연극은 내가 말하고 알 수 있는 그 이상의 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읽으면 그렇게도 어렵던 것이,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어보니 그 한 줄, 한 줄이 삶의 진실들에 대해서 정확히 이야기하고 있었다.등장인물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노인의 말‘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다 그래,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이라는 말을 빌지 않더라도. 또한 이들의 복잡한 관계만큼이나 삶 자체도 서로의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 차 쉽지 않다. 몇 명만 살펴보자.처음 등장한 학생은 우유배달 소녀에게 컵을 빌리는데, 곧이어 손수건을 꺼내달라며‘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좀 되어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는 그 전날 밤에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하고 간호하느라 꼬박 새운 데다 칭찬받을 것이 있어도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우리가 뒤에 알게 되는 노인에 비해 너무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학생이 말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 뒤로 극 내내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유령으로 나오는 우유배달 소녀만이 이 순간 딱 한 번 착한 사람으로 등장할 뿐이다.노인은 학생의 아버지 상인 아르겐홀츠씨를 파산하게 한 사람으로 그 외에도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찬 손을 가지고 있는데, 엄청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지치고 외롭다. 그는‘나는 일생동안 뺏어만 왔어. 그러나 이제 나는 주고 싶어. 그런데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거든. 나는 부자야. 굉장한 부자야. 그러나 상속자가 없어. 나를 죽도록 괴롭혀주는 아무짝에 쓸데없는 인간 밖에는. 내 아들이 되어 주게. 내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내 재산을 물려받아 주게. 그래서 인생을 즐겨주게. 내가 적어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도록 말야'라고 학생에게 제안하지만, 그의 제안은 죽음 앞에서 순수하다가 보다는 자신의 딸(피)인(하지만 호적상으로 대령의 딸로 되어 있다)에게 착한 사람을 짝지워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노인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인생은 온통 함정 투성이’이며‘내 나이 지금 꼭 팔십인데 그러나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면서도'그리고 우리가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세.'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망자를 판단하는데,‘자네나 나와 똑같은 인간이지. 그러나 그에겐 아주 유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그의 허영심이야.’라고 단정한다. 학생이’인정이 있으신 분이었군요.'라고 말하지만,‘경우에 따라''항상 그런 게 아니구요?’라고 묻자‘사람이란 으레 그런 걸세.’그리고 그는‘많은 사람으로부터 축복의 인사를 받지만, 나한테서는 축복의 인사를 받지 못할 거야. 우리끼리니까 얘기지만 그는 말 못 할 악당이었어.’‘항상 자기의 웅장한 장례식만을 생각하는 자비로운 악당이었어'라고 말한다. 자신이 방금 한 말을 바로 그 다음에서 바로 뒤집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도 얼마나 그와 같은 모순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런 대화를 하는가.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우유배달 소녀인데, 이 우유배달 소녀는 노인과 학생 단 둘밖에 보지 못하는 존재이다. 처음에는 노인이 자신의 위와 같은 욕망으로 죽인 소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 우유배달 소녀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잘은 모르겠다.2장의 유령 만찬회에서는 노인과 아멜리아라고 불리우는 미이라이면서도 대령의 부인인 여자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노인은 목을 매게 된다. 1장에서 학생은'집앞을 지나면서 저 집안에 있을 모든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상상해 보았다‘고 이야기하지만‘실은 부인은 남편을 버리고 갔었고 남편은 부인을 때렸고 부인은 다시 돌아와 그와 재혼을 했네. 그리고 이제는 저 방안에 미이라처럼 앉아서 자기자신의 조상을 숭배나 하고있지.'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진실은 어디에 숨어 있나.유령 만찬회의 느낌은 신비롭고 왠지 음울했는데, 어쩌면 영혼은 다 빠져나간 사람들의 모임 - 마치 유령처럼, 그래서 그들은 진짜 유령인 우유배달 소녀보다 더 유령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극에 나오는 사람은 그렇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른 척 하고 있지만, 그런 모습을 한 면에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모이는 사람들이 항상 똑같은 얘기야. 아니면 아예 말을 않는단 말이야. 발각될까 겁이 나서 말이요.’20년째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면, 왜 그들은 그 동안이나 모였던 것일까. 유령 같은 자신들이 너무 두려워 동지들을 찾았나.노인은 대령이 지불하지 않은 약속 어음을 모두 가져왔다. 그리고 그는 벵트손은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이라며 해고할 것을 요구하고, 대령이 귀족도, 대령도 아니라는 것까지 밝혀낸다.‘무슨 권리가 있길래 거기 앉아 이런 식으로 남을 홀랑 벗겨내십니까?’그러자 노인은’당신은 당신이 누군지나 알고 있소?‘1장에서 한 말들을 다시 뒤집는 말이다. 당신이 누군지를 밝히는 심판관 같은 존재가 된다? 어떤 인간도 그럴 수 없는 존재인데 말이다.대령의 아내인 한때 아멜리아라고 불렀던 미이라는 노인 사이에서 딸을 낳았는데, 미이라는 그것을 죄악이라고 생각한다.‘우리의 죄악에 당신은 가장 큰 몫을 했죠.’하지만 노인도'그 죄악은 당신 남편이 내 피앙세를 뺏어갔기 때문에 발생한 거요. 나는 본래 태생이 벌을 주지 않고는 용서를 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내 지상명이지.’죄는 어디서 발생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이 그 숙주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이 극이 어떤 교훈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착한 사람이 되자’나 ‘죄를 짓지 말자’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죄악과 비밀과 범죄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묶여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속박을 끊고 제 멋대로 가버린 적이 수없이 많아요. 그러나 언제나 다시 서로 엉키게 되었죠.’하지만 이렇다면 무서워진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그리고 죄악과 비밀과 범죄로 묶여 있는 우리는 풀려날 수 도 없다. 그리고 누가 먼저 죄를 지었는가도 무의미해 진다. 원수를 갚은 것도 죄이기 때문이다.3장은 2장 유령 만찬회에 이어, 전체적으로 이국적이며 동양적인 히아신드의 방에서 이 극을 마무리된다. 하지만, 너무 애매한 느낌에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슴에 새겨 넣기보다는, 내가 머릿속에 이 극장을 만들고 등장인물들을 세워 놓았을 때 받은 이미지와 느낌들을 흡수하기로 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느낌도 포함되는 데, 마지막에 아르놀트 뵈클린의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이 작품이 게오르그 카이저의 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를 읽어가는 내내 나는 이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정거장식 구성이라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뭔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 - 즉 살아가야 할 가치(또는 이유) 같은 것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둘 다 찾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의 출납계원은 죽음으로 그 가엾은 생(生)에 마침표를 찍는지만, 의 벡크만은 넌 나보고 더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 왜? 누굴 위해서? 무엇을 위해? 난 죽을 권리도 없어? 아, 난 자살할 권리도 없는 건가? 나보고 더 피살당하란 말야? 더 살인을 하란 말야? 어디로 가란 말야? 처럼 죽음으로도 외면당한 채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작가 W.보르헤르트는 1921년 5월 20일 함부르크에서 교사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나치스에 대한 솔직한 의견이 담긴 몇 장의 편지가 반국가적이라는 이유로 사형언도를 받고 수감되었다가 요행히 특사(特赦)를 받고 감방생활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보르헤르트는 18세였고 전쟁이 끝났을 때는 24세였다. 전쟁과 감옥생활로 건강을 해치고 전후의 격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그는 1947년 11월 20일 바젤 근교에 있는 요양소에서 26살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이 작품 는 죽기 1년도 못되는, 1947년 1월의 일주일동안 단숨에 쓰여졌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 나는 그의 슬프고 힘든 삶을 작품에서 엿볼 수 있었다.한 사나이가 독일로 돌아온다. 그는 오래 떠나 있었다. 로 시작되는 지문. 나는 처음부터, 오래 떠나 있었던 사나이가 그것도 전후의 1947년 독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슬픈 운명을 예감했다. 우리가 아는 2차 대전 후의 독일은 어땠던가. 바로 그 독일로 돌아온 사나이.그리고, 서막. 그는 죽기를 결심하고 물로 뛰어든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것은 매장업자다. 또 하나의 죽음을 마무리하는 직업 - 매장업자. 하지만 그에게 죽음은, 한 인간이 죽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죽음이다. 신(神)도 이런 지상의 현실이 슬퍼서 땅으로 내려온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고백하길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다.참 유연한 것은, 우리가 일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삶과 죽음 - 신과 도로청소부(매장업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뗄레야 뗄 수 없는 이 두가지 면을 보여주기 -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는 너무 어려운데, 이렇게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재밌었다. 물론 슬픈 극적 현실이긴 하지만.하지만 물인 엘베가 생각하기에, 그는 도피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제대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벡크만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개인의 삶을 던져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전쟁은 벡크만의 모든 것을 가져가버리고 난 뒤였기에. 그의 한쪽 다리와 아내까지도... 벡크만은 소녀의 구제를 받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아내의 옆자리를 차지한 남자처럼 외다리가 된 자(者)의 자리를 차지한 꼴이 될 뿐이다.전쟁은 개인의 삶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가져가 버렸다. 전(戰)후 사람들의 비극은 다만 이 뿐은 아닐 것이다. 전쟁은 무엇인가. 그것이 인간을 위해 창조된 일인가. 여전히 테러가 지구 곳곳에서 행해지고, 전쟁 무기가 제작되고 있는 지금 - 까지 여전히 유효한 문제다. 아마도 이것은 인류가 계속되는 한 유효하겠지.그는 연대장과 지배인, 크람머 부인을 차례대로 만나게 되지만, 연대장은 벡크만의 죄의식을 덜어주지 못하고, 지배인은 벡크만이 앞으로 먹고살 생계를 도와주지 못하고, 크람머 부인은 벡크만의 고향(집)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뒤에 만난 이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와 생각들이 있으니...그런데도 타인(他人)은 계속 나타난다. 타인은 정말 영원한 남일까? 이 희곡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문제다. 엘베가 던져버린 블랑케네제의 벡크만. 거기서 벡크만은 타인을 처음 만난다. 하지만 그 타인은 비로소 오늘에 처음 만난 타인이 아니다. 어제도 있었고, 그 예전에도 있었고, 항시 있는 타인다. 그리고 그는 긍정자다. 해답자. 타인은 그저 타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나는 영원히 타인이 될 수 밖에 없고, 가끔은 나도 내 자신이 낯설어 보이기까지 하니. 이들은 늘 나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내가 시험을 잘 보지 못했거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위로해 주는 이들 - 그들은 모두 나를 격려한다. 바로 긍정자들. 하지만 그 긍정적인 대답처럼 세상은 나에게 희망을 대답해 주지 못할 때가 더 많다.이제, '인간이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와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좌절한 벡크만은 이야기한다.벡크만 : 당신은 이제 동화책에 나오는 신(神)이예요. 오늘날은 새로운 신을 요구하고 있어요. 아시겠어요? 우리의 불안과 고뇌를 위해서는 새로운 신이 필요한 겁니다. 아주 새로운 신이. 우린 당신을 찾아 얼마나 헤맸는지 모릅니다. (...) 하나님은 그 때 어디 계셨죠?
Friedrich Durrenmatt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물리학자들 Die Physiker 」대상이 없는 예술, 예술의 목적을 예술 자체에 두고 예술 밖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이다. 그렇지만 예술의 가치는 예술의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목적, 그 대상, 즉 세계를 정복하려 하는 모험에 있다. (...) 예술은 세계의 정복이다. 왜냐하면 묘사한다는 것은 정복한다는 것이지 그대로 베껴 낸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을 통한 거리의 극복이다. (「예술」Kunst, 1947~48)작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그는 자기 자신이 이 세계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다른 어떤 것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현실이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하여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인간의 추상적 사고, 추상이 지배하는 세계의 지금의 무형상성(Bildlosigkeit)을 더 이상 회피할 수는 없다. 세계는 무시무시한 기술의 공간으로 변하거나 몰락할 것이다.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성장하겠지만 그러나 그 정신적 의미는 축소될 것이다. (...)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세계를 구원하려 하는 것을 포기하라. 이러한 세계를 형상화시키고 그 무형성에서 분명한 상(像)을 만들어 내는 것을 다시 모험하라. (「우리 시대에서 창작의 의미에 관하여」Vom Sinn der Dichtung in unserer Zeit, 1956)21. 극작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에 자신들을 내맡기도록 책략을 써서 유인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 저항하거나 현실을 극복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목차1. 들어가기2. 작가가. 현대 독일/스위스와(과) 독일어권 희곡① 독일의 정황 ② 독일어권 희곡이란? ③ 스위스라는 나라④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⑤ 막스 프리쉬 (Max Frisch)나. 프레드리히 뒤렌마트 (Friedrich Durrenmatt)① 작가 연보 ② 뒤렌마트와 브레히트 ③ 그의 다른 작품3. 작품가. 위해서 그의 연극기법인 소외효과(Verfremdungseffekt)를 사용하고 있다.⑤ 막스 프리쉬 (Max Frisch, 1911~1991, 스위스)40년대에 이미 프리쉬는 취리히를 중심으로, 뒤렌마트는 바젤을 중심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50,60년대에는 독일어권 무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 60년대 초반 공연된 동시대의 작가들 중 두 사람의 작품이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프리쉬는 반환상주의적 형식을 근간으로 비유극을 썼다는 점에서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고, 뒤렌마트의 경우는 브레히트를 비판하며 극복하려 했기에 브레히트의 영향권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관객의 계몽 가능성과 세계 변형의 가능성에 대한 브레히트의 마르크스주의적 낙관론과는 다른 입장으로 비관론적 세계관을 지녔다. 프리쉬는 연극이 갖는 정치적 기능을 외면하진 않았지만 인간과 세계의 변화는 오직 예술 공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뒤렌마트는 1955년 발표한 “연극의 문제들”에서 원자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크기를 알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린 오늘날에는 죄와 고난, 책임을 전제로 하는 비극이 불가능해졌으므로 희극, 그것도 그로테스크의 기법으로만이 비극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연극의 새로운, 지속적인 담론을 내놓았다.나. 프레드리히 뒤렌마트 (Friedrich Durrenmatt, 1921~1990)① 작가 연보1921 (1월 5일) 베른 (Bern) 주의 코놀핑겐(Konolfingen)에서 목사인 아버지 라인홀트 뒤렌마트(Reinhold Durrenmatt)와 어머니 훌다 침머만(Hulda geb. Zimmermann) 사이에서 출생.1941 취리히 대학에서 1학기, 이후 베른 대학으로 옮겨 철학, 문학, 자연과학을 공부함.1943 작가생활 시작. 「희극」(미발표 희극), 단편소설 「성탄절」, 「고문형리」1947 바젤 시에 살면서 배우 로티 가이슬러(Lotti Geiβler)와 결혼. 아들 페터(peter) 출생.(4월 19일) 취리히 문명 자체에 대한 인식의 바탕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런 위기가 우리의 현실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먼 곳에서 그리고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연극도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나. 구성 및 줄거리1막1) 살인사건의 수사 : 등장인물 - 수사반장, 수간호원, 여의사, 뉴턴,2) 뫼비우스와 가족의 이별 : 등장인물 - 뫼비우스, 선교사 로제, 로제 부인, 여의사3) 모니카의 죽음 : 등장인물 - 뫼비우스, 모니카2막1) 살인사건의 수사 : 등장인물 - 수사반장, 여의사, 뫼비우스2) 토론 : 등장인물 - 뫼비우스, 아인슈타인, 뉴턴3) 여의사의 음모 : 등장인물 - 여의사, 뫼비우스, 아인슈타인, 뉴턴줄거리는 1막의 ‘살인사건의 수사장면’에서 바로 ‘모니카의 죽음’으로 연결되며, 계속해서 2막의 ‘살인사건의 수사장면’으로 연결되는 전통극의 기본구조인 사건의 직선적 진행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1막의 ‘뫼비우스와 그의 가족과의 이별’과 2막의 ‘토론장면’과 ‘여의사의 음모’는 각각 속해 있는 막과 독립해 있다. 전자는 전통극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후자는 서사극의 형식을 취하면서 극 전체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서사극 형식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전통극 형식을 이루고 있는 부분보다 훨씬 더 극적(dramatisch)이라는 것이다.무대는 산중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한 요양소. 이곳에 물리학자 뫼비우스가 스스로 정신병을 가장하여 은신해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발견한 물리학적 대원리를 숨기기 위해서이다. 만일 이 원리가 세상에 알려져 악의를 가진 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전인류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거나, 그에 의해 파괴당할 수도 있는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뫼비우스의 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다른 두 국가는 각기 정보원을 이 정신병원에 환자를 가장하여 파견해 놓고 있다. 그런데 뫼비우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이 비밀은 가장 악한 의도를 가진 자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인을 통해 정신착란을 증명하려고자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즐기는 것체스바이올린 연주), 파이프담배그들의 주장자신이 아인슈타인이라고 주장솔로몬 왕이 출현하다고 주장본명알렉 야스퍼 킬톤요제프 아이슬러업적상응론의 창시자아이슬러 효과의 발견자장(場)의 이론과 중력론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연구독일어는 첩보기관에서 배움바이올린을 억지로 배움사용권총브로우닝)콜트필요이론중력의 문제를 해결소립자에 관한 통일된 이론자신의 설중요한 것은 우리의 학문의 자유이지, 그 밖의 것은 없소. 우리는 선구자적 업적을 쌓으면 됐지, 그 밖의 것은 필요없소.내게는 오로지 나의 참모부만이 중요하오. 우리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학문을 적용할지 결정해야 하오.그 결과라는 것이 엄청나게 파괴적인 것이었소. 나의 연구가 인간의 수중으로 들어갈 경우,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에너지가 방출되어, 어떠한 상상도 웃음거리로 만드는 무서운 기술을 가능하게 한단 말이오.② 정신병원 여의사 마틸데 폰 찬트 박사 : 곱추로서 성적, 육감적인 면을 전혀 표출하고 있지 않다. 다만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욕망의 화신일 뿐이며, ‘용기있는 사람’으로서 뫼비우스가 좌절해야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다.③ 수사반장 리하르트 보쓰 & 남자 간호인 지이베르스, 맥아더와 무릴로 : 간호사들의 살해를 수사하기 위해 온 수사반장. 하지만 그는 정신병자라는 장막에 막혀, 간호원을 교살했다는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세 물리학자들을 체포하지 못한다. 게다가,수사반장 : 당신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당신은 솔로몬 왕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이오. 솔로몬 왕을 체포할 수 없는 한, 당신은 자유요. (...) 처음엔 내가 개입할 수 없는 게 화가 났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갑자기 즐거운 기분이 되었소. 환호성이라도 치고 싶구려.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내 손으로 체포하지 않아도 되는 세 살인자를 찾아낸 것이오. 정의(正義)라는 것이 생전 처음 휴가를 맞았소. (...) 당신 덕분에 나는 이 휴원에 들어온 뉴턴과 국가적인 사명감 때문에 정신병원에 들어온 아인슈타인에 대한 뫼비우스의 설득력은 학설철회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높여주고 있으며, 또한 뫼비우스는 용감한 인간으로서 무대 전면에 나타난다.뫼비우스 : (...) 킬톤 당신은 물리학 연구의 자유를 유지하려고 했으며 물리학 연구에 대한 책임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아이슬러 당신은 특정 국가의 정치권력에 대한 책임이라는 미명하에 물리학을 묶어두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극중의 아인슈타인과 뉴턴 역시 뫼비우스와 마찬가지로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여 행동통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행동통일은 2차대전 중 독일 지식인들의 약점을 지적하고 문제해결을 꾀하는 진일보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특 킬톤과 아이슬러의 모순에 찬 태도에 비난을 가한 그는, 학설철회가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학자로서 뫼비우스의 학설철회의 노력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문제해결의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힘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뫼비우스의 노력은 용기있는 인간의 모습이 되어 작품 속에 나타나며, 단순한 학자이기보다는 지식인으로서 그 위상이 정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요양소에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망상을 가진 여의사에 의해서 뫼비우스의 학설철회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③ 뫼비우스와 솔로몬 왕솔로몬 왕으로 자칭하고 정신병원에 들어온 뫼비우스는 인류의 파멸을 막아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한다. 여기서, 지혜와 영화의 왕인 솔로몬은 뫼비우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솔로몬 왕을 찬미했던 시편은 급속도로 발전한 현대 과학문명 앞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찬미할 수 있는 찬가가 더 이상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지혜는 인간에게 크나큰 자만심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뫼비우스 : 선교사님, 나는 솔로몬 왕을 얼굴로 맞대고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술라미스(:성가이름)를 찬송하는 위대한 영화의 왕도 아니며 (..문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Arthur Miller -무엇을 보든, 듣든, 읽든 나와 가장 가까운 것이 제일 먼저 다가온다. 즉,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 조금 빗나간 이야기이지만, 요즘 나는 [X]이라는 희곡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넘나들기가 너무 어렵다. 그 매끄러운 전환을 위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르지만, 이것에 손을 대면 저것이 흐트러져 버리고, 저쪽을 망치질하려면 이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일까? 이 작품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내게 다가온 것은 - 아주 유연하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작가의 글쓰기였다.주인공 윌리 로먼. 그는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윌리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뉴잉글랜드 담당으로 매주 지방을 전전하는 외판원이다. 그에게는 비프와 해피라는 두 아들이 있는데, 윌리는 재주는 있지만, 서른네 살에 이르도록 (비프)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즉 돈도 벌지 못하고 기반도 잡지 못한) 아들들이 걱정이다.그러나 윌리의 문제는 여전히 고등학교 때 인기있던 비프의 추억에 잠겨 사는 것! 그의 현실은 꼭 울안에 갇힌 것 같구려. 거리엔 자동차 행렬 뿐이고, 아무리 둘러봐도 신선한 공기 마실 곳이라곤 없거든. 당근인들 재배할 수 있느냔 말이야! (p 297)이지만, 그의 중얼거림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과거에 머무를 뿐이다.이제 그의 두 아들을 살펴보자.- 비프 : 해피보다 두 살 위이고 체격도 좋으나 최근에는 좀 여위도 자신을 잃은 것 같다. 되는 것이 없고, 아우보다 꿈은 많으나 실현성이 희박한 편이다.- 해피 : 키가 크고 힘차 보인다. 그에게는 성적 매력이 역력하다. 많은 여성들이 발견해 온 일종의 냄새라고나 할짜? 그도 형처럼 갈팡질팡이지만 좀 성질이 다르다. 그는 패배를 맞아들이는 것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만족한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갈피를 못잡고 고집스럽다. (p 298)비프는 말한다. 꿈도 많았고, 계획도 많았지. (p 299) 하지만, 전쟁 전에 집을 나간 그는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채 집으로 귀향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비프는 동생 해피와 함께 ‘happy (성공)’을 꿈꾼다. 바로 빌 올리버에게 돈을 빌려 운동구상을 차리기도 계획한 것 - 이제 만사가 좀 풀려가는 것 같다. 하지만 올리버는 비프를 기억하지 못하고,15년 동안 잠꼬대를 해 온 거야. 난 외판원이 아니라 발송부원이었어. (p 372) 비프가 깨달은 현재의 자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처음 비프가 체육관 비품실에서 훔친 새 공을 가져왔을 때, 윌리는 비프를 제대로(!) 나무라지 않았다. 게다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수학 과목이 낙제하고, 비프를 원하는 - 유명한 대학 세군데 중 한 곳도 못 가게 될 판국임에도, 윌리는 기벽과 개성이 꽉 차 있어. 걔가 뭘 훔쳤다는 거야? 돌려주면 되잖아? 훔치긴 왜 훔치지? 내가 뭐랬기에? 단 한번도 그릇된 말이라곤 한 일이 없어. (p 317) 라고 비프를 두둔할 뿐이다. 이렇게 잘못된 아버지의 긍정적(?) 사고방식은, 나쁜 손버릇을 가진 비프를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했고,게다가, 비프는 보고 말았다. 자신이 그렇게 따르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스타킹을 다른 여자에게 주어 버린 것을... 그것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그런 아버지의 부정 앞에서 비프가 선택한 것은 떠나는 것. 자신의 우상을 잃었을 때, 제대로 서 있을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프는 하기 학기를 통해 수학 점수를 따지 못하고, 그토록 원했던 버지니아 대학에 영원히 가지 못한 채 - 오늘의 요모양 요꼴(?)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버나드 : 전 이따금 비프가 그때 벌써 모든 것을 단념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보스턴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p 363)너무 이른 나이에 비프는 많은 것을 단념해 버렸고, 그것을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 탓으로 돌려 버린다. 물론 아버지와 같은 주변인이 ‘나’의 많은 부분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자신의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던 아버지가 겪은 시련은 또 어땠을까?한때 윌리도 잘 나가는 외판원이었다. 하지만 36년이 지난 지금은, 고작 주불 50 달러를 벌지 못해 친구 찰리에게 돈을 꿔야 하며, 게다가 하워드에게 뉴욕 일자리를 부탁하던 자리에서는 지금의 직장마저 잃고 만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쏟아 부은 두 곳 - 직장과 아들들에게서 모두 외면 받은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와 가족(인간)으로부터의 소외다.Raymond Williams는 고대 비극에서 볼 수 있던 사회에 대항하는 야망에 찬 자아의 영웅적 행위는 20C에 와서 자아에 대항하는 자아의 비극적 위치로 바뀌었고, 인간은 스스로 갇히고 죄책감을 느끼며 고립된 세계에서 자기 자신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도시화와 산업화 사이에서 ‘성공’을 쫓아가지 못하고, 막연한 처세와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특별히 그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못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삶 속에 잘못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잘못만으로 이 비극이 초래되었나. 그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적 인물이다.윌리는 돌아오는 길에 씨앗을 산다. 물론 해가 들지 않는 마당에서 식물이 잘 자랄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나마 윌리는 희망을 꿈꿔 보는 것이다. 오늘, 그가 보게 되는 것은 안정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친구 찰리와 그의 아들 버나드. 그들과 함께 달려왔던 과거의 윌리는 항상 앞서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비프 : 오늘이야말로 진실을 들으셔야 해요 - 우리 부자가 어떤 존재라는 걸요. (...) 제발 절 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그 허황된 꿈을 태워 버리세요. (p 397, 399)하지만 윌리가 듣고 있는 것은,윌리 : (흥분하여 눈을 크게 뜨고) 그놈이 울었어! (... 부성애에 벅차 목이 메며 소망을 외친다) 그놈은 그놈은, 훌륭하게 될 거야! (p 400)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아버지 윌리다. 이제 윌리는 또다른 꿈도 꾼다. 바로 죽음. 그것을 통해서 윌리는 마지막으로 아들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한평생 집세 치르느라고 죽도록 일하고 결국 내 집이 되면 그 집에 살(住) 사람이 없단 말이요. (p 295) 라고 이 연극 시작에 한 대사의 확인일 뿐이다.인간의 쓸쓸함, 고독을 이 작품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며 - 그런 까닭에 나는 ‘나’라는 이유만으로 ‘내’ 책임일 뿐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주기 위해서 가끔 ‘나’를 숙여야 할 때도 있지만, 그 뒤의 몫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몫.나를 만드는 것이 나 뿐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 싼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될 때 - 동지들이 생겨서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더 고독해 지나.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tot)이 작품이 사무엘 베케트의 라는 것을 몰랐다면, 나는 이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을까? 아니,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을 1학년 1학기에 처음 만났음에도, 나는 읽기가 난해하다 - 라는 이유를 달아 지금까지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다.처음에는 Text만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읽을 때는, 나름대로의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세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자꾸 소극장위로 올라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좀 큰 극장에 세웠다. 이제 그들도 좀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에스트라공이 말했다.에스트라공 : (다시 단념하면서) 아무래도 안되는걸.나는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에스트라공은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었다.제 1막 시골길. 나무 한 그루.에서부터 다시 읽는다.해질 무렵. 나지막한 언덕에 앉아 있는 에스트라공이 장화를 벗으려고 한다. 숨을 헉헉 몰아쉬며 양 손으로 장화를 벗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념한다. 지쳐서 쉬다가 다시 한번 시도해본다. 역시 아까처럼 해보지만 허사다. 블라디미르 들어온다.처음 읽을 때 Text만 읽기도 힘들었었는데, 다시 읽을 때는 Text만이 연극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 자체가 행동을 가지고 있고, 그 행동을 이해하고 따라가야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된다. 대본 자체가 강하게 액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 연극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다른 대본을 읽을 때도 상상의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배우를 세운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 행동/움직임들이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에스트라공이 되어 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블라디미르가 된다. 그러니 더 재미가 난다. 그들의 놀이에서 움직임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연극은 이 움직임으로 더욱 명확해지는 추상화 같았다.고고(에스트라공)과 디디(블라디미르)가 기다리는 고도는 누구일까? 분명히 내일도 오지 않을(확실할 순 없지만) 고도를, 그들은 기다린다. 연극안의 그들조차도 잘 모르면서 기다리는 이름.포조 : 그자가 누구야?블라디미르 : 아, 그 사람은... 우리하고 좀 아는 사이입니다.에스트라공 : 그렇지도 않습니다. 안다고 할 처지도 못되지요.고도를 해석하는 것은 여러가지인 모양이지만, 내가 만난 고도는 지루한 매일매일에 희망을 주는 내(我)밖에 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의 하루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하루와 많이 닮아 있다. 나는 가끔 거울을 보고 놀고, 그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리고 특별한 일 없이 (레포트를 써야 한다든가, 누구를 만난다든가 하는) 방안에 누군가와 둘이 있게 되면, 아무 연관성 없이 분절되는 대화들을 나누고 발톱을 깎았다 귀를 후볐다 - 그렇게 지내는 모습에서 고고와 디디를 보았기 때문이다.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말을 한다. 일상의 대화 중 특별한 사건(토론을 벌인다던가)에 관련되어, 또는 옆사람이 한 말을 절대로 씹지 않고 꼬박꼬박 대답을 하고 말차례를 기다리며 - 그런 시간을 얼마나 보내나. 그렇다면 고도를 절대적인 신이라고 생각했을 때, 삶의 ‘영양가’라는 요소는 어떻게 판별되고 수치로 재어질 수 있을까. 목적 없는 대화는 하지 않기 - 그렇다면 삶의 영양가가 높아질까.블라디미르 : 얘길 나누다 보면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갈 거야.얘기로 그럭저럭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바꿔 생각하면, 그 얘기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 그러나 그것이 (조금은 말하기 어렵지만) 내 시간과 삶을 채우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본질을 파악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 바로 나조차도 말이다. - 꽤 철학적인 고민을 주는 작품이다.의미. 그들은 한페이지 내에서도 일관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고고가 한 말을 다시 디디가 하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툭툭 던지고. 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는 대화를 녹음해 본다면 그와 같지 않을까.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리고 또 금방 시작되는 다른 문장들. 삶은 연속되지만 그 시간은 분절되고,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메우며 삶을 산다.고고와 디디는 포조와 럭키를 만나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이상하다.블라디미르 : (더듬거리면서도 단호하게) 인간은 말입니다... (럭키 쪽을 가리키며) ... 저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인간이라면... 그럴 수는 없는 거요... 없구 말구... 이건 인간에 대한 모욕이오!주종관계인 듯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게다가 한마디도 하지 않던 럭키가 쏟아낸 말들은 보고만 있어도 눈이 핑핑 돌아가는 말들이다. (그것을 전혀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포조는 담뱃대와 시계를 차례로 잃어버리고 퇴장한다. 그러나 2막에서의 이들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