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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벳,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티벳,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20210393 강혜현토론 소주제- 중국이 티벳 독립에 반대하는 이유와 티벳 독립 여부가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간도, 요동)은 무엇인가.- 중국은 고구려사를 왜 삼키려 하는가.(동북공정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토론 내용- 중국의 티벳 독립 반대에 대한 이유와 우리가 본 티벳 독립의 정당성 여부-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와 고구려 역사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과 티벳과의 관계토론 방향-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 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중국, 티벳의 동시대 국가로써 소신 있는 우리나라의 태도는 무엇인가.티벳과 중국에 대해 알아야 할 10가지 사실들◇1949년 중국은 티벳 국을 침략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20만명 이상의 티벳인들이 점령의 결과로 사망하고, 6천개 이상의 사원들이 파괴됐으며, 수 천명의 티벳인들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있다.◇티벳의 정치적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1959년 티벳를 탈출했다. 그는 인도의 다람살라에 티벳 망명정부를 세웠다. 미국과 캐나다지역에 5천명 이상이 거주하는 것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약 13만명의 티벳인 난민이 살고 있다. 이 같은 폭력적인 세상에서도 대다수 티벳인들은 자유를 항한 그들의 투쟁에 있어서 비폭력과 자비라는 불교도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티벳은 독립국가이다. 중국 정부는 언제나 티벳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를 반박할 수 있는 많은 역사적 증거들이 있다. 티벳인들은 중국과 구별되는 독특한 문화, 종교 및 정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독립국가로써 티벳은 주권을 가진 정부와 통화, 우편체계, 언어, 법률, 관습 등을 행사했다. 또한 티벳 정부는 1951년 이전에 영국, 몽골, 네팔 등을 포함하여 외국과 승인된 조약을 맺기도 했다.◇현 서장(티벳) 자치구(T.A.R: Tibetan Autonomous Region)는 티벳이 아니다. 현재 중국정부는 역사적인 티벳 영토를 여러 개의 지역과 도로 나누어서 기티벳이 점차 군사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은 수백만 달러를 들여 티벳에 사회 기반시설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도로와 건물 그리고 발전시설 등이 직접적으로 티벳 고원을 중무장시키는데 지원되고 있다. 현재 티벳은 수 만명의 경찰과 군인들이 도심주변 안팎에 주둔하고 있어 마치 무장 국가의 그것과 닮아 있다. 게다가 경제 발전에 의해 창출되는 고용과 경제적 기회가 거의 없어 대부분의 일반 티벳인들은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돈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무역 거래가 중국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티벳 내 상황은 더욱 악화 일로에 있다. 1999년 미국 국무성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티벳 내에서 고문, 임의 체포, 공개적 재판 없는 구금 등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가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평화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티벳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긴 연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티벳 정보 네트워크(TIN)에 의해 인용된 이 보고서는 정치적 항의와 그에 따른 티벳인들의 구금이 티벳 전지역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중국은 인권 침해 사례와 환경 파괴 그리고 정치적 해결책이 필요한 더 큰 문제의 징조인 개인 자유의 제한 등에 대해 협상하기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비폭력적으로 티벳 내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행 조건 없이 달라이 라마 성하와 중국 지도부가 만나 협상해야만 한다.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1995년부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노력이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는 한중수교(1992년) 이후 수많은 한국 관광객이 백두산을 여행하고 연변 등 중국 동북지역에서 조선족 동포들을 만나, 동포애를 나누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일부 정치인들과 몇몇 과열 애국주의 인사들은 백두산 정상에 올라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는가 하면 “만주는 우리땅”이란 주장을 공공연히 하던 때였습니다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 2~3년 사이에 이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중국사’에 대한 개념을 가다듬었습니다.중국인들이 말하는 ‘중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 중국 영토안에 있었던 과거 모든 민족(즉 56개 민족)의 역사는 곧 중국역사’란 것입니다. 여기에는 과거 민족간의 차이나 대립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민족이 다르고, 그 민족과 한족 왕조간에 흥망을 결정짓는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벌어진 지리적 위치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이면 그것은 곧 중국역사란 주장입니다. 즉 중국인들 스스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라고 불렀던 변방 민족의 역사까지도, 그들의 활동범위가 지금의 중국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해괴한 역사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은 그리하여 한족 왕조를 멸망시킨 거란족 몽고족 만주족의 역사를 모두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들 이민족과의 전쟁을 ‘중화민족 내부의 분쟁’이지, 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를 통해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도 ‘민족 내부의 분쟁’이라고 주장할 여지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이런 논리라면 청나라와 싸운 일본이나 구 러시아, 국경분쟁을 벌인 인도, 베트남까지도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나중에 우기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엄연히 다른 나라의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모습이 마치 일본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를 연상시킵니다. 아무 것이나 마구잡이로 먹어치우다가 배가 터지는 괴물 말입니다.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에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그러면 중국은 왜 동북지방의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억지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현재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동북지방(만주지역)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입니다.중국이 염려하는 것은 200만 조선족이 살고있는 동북3성 지역에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한국편입’을 주장하는국이 북한을 무력 점령하거나 혹은 내부요인에 의해 북한 김정일 정권이 급작스레 붕괴할 경우,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이 모국의 영향을 받아 어떻게 움직일 지에 대해 중국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신강 위구르자치구처럼 무장독립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반도 형세변화와 그것이 중국 동북공정 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시킨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해줍니다.조선족에 대한 중국의 3관교육중국 정부는 동북지역의 조선족들을 상대로 이른바 ‘3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3관 교육’이란 조선족들에게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을 심어주는 교육입니다. 歷史觀이란 바로 동북지역의 고구려 발해 역사가 조선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고, 民族觀이란 조선족이 비록 한국이나 북한과 혈연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현재 중국의 56개 민족 대가정(大家庭)의 일원이라는 것입니다. 또 祖國觀이란 조선족의 조국은 한국(혹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이러한 3관 교육 때문에 동북3성 지역의 조선족들은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중국은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동북3성의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고구려사의 중국역사 편입’ 작업을 해왔던 것입니다. 중국의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에 비하면, 제대로 된 ‘조선족 정책’ 하나 갖지 못하고 조선족 문제를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우리 정부(특히 외교통상부와 법무부)의 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하겠습니다.(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최근 한국내에서 농성과 시위를 통해 한국국적을 회복해달라고 주장하는 일부 조선족으로 인해 중국내에 살고있는 200만 조선족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제가 최근 북경에서 만난 몇몇 조선족들은 일부 조선족들의 국적신청운동과 노무현 대통령의 농성장 방문은 “몇만명 살리자고 수백만명 죽이는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저의 글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길게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 외교적 고려와 역사적 사고없이 불 국력의 소산입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않고 경솔한 주장을 한다면 한중 양국간에 오히려 불필요한 마찰만 야기할 뿐이며, 정상적인 학술연구나 인적 교류도 어렵게 만듭니다.중국의 견제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핵모험을 감행하는 북한을 귀찮아하면서도 북한 김정일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와 식량을 대량 무상지원하는 것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곧 중국 동북지방의 위협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넷째, 역사문제와는 별도로, 통일 후 한반도가 중국에 결코 위협이 되지않을 것이란 점을 중국에 납득시키는 것입니다. 중국은 통일 후 중국 동북지역이 한국쪽에 기우는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변에 미군이 주둔해오는 상황을 우려합니다. 아울러 한국의 경제력이 중국 동북지방에 미쳐 그곳의 조선족들이 심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경제적으로) 한국을 선택하게 될 것을 걱정합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수십만명(최대 30만명 추산)의 탈북자가 살고있습니다.한국 정부는 이러한 중국 정부에 대해,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중국에 결코 위협이 되지않을 것이란 점을 중국에 확신시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우선 통일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바뀔 것이란 점, 그리고 통일 이후 북한이 한국 및 국제사회의 지원속에 안정되면 북한주민의 대규모 난민사태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점, 오히려 중국내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되돌아갈 것이란 점 등을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남북한이 통일되면 한반도가 중국에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경제 생활권’이 탄생할 것이란 점을 중국에 알려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을 출발한 한국인들이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북경과 서안 등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한중 양국간 경제교류가 지금보다 더욱 활발해지고 나아가 자유무역지대가 출범한다면, 한국어를 구사하는 조선족들은 중국내 한국기업에 취업함으로써 경제안정을 누리게 되고, 중국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향유할 것입니다. 일원
    인문/어학| 2013.06.09| 10페이지| 1,500원| 조회(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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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누아르 이레느양의 초상 미술 감상문
    『 Portrait De Mademolselle Irene Cahen D'anvers 』- Pierre Auguste Renoir날 짜: 2005 . 10. 26해당과목: 프랑스 연극영화읽기담당교수: 박혜경 교수님학 과: 불어불문학과학 번: 20210393이 름: 강혜현Pierre Auguste Renoir인상주의는 빛의 진실을 추구하는 운동으로서 그 개념이 축소될 수 있는 미술운동이 아니다. 과거의 미술체계가 만들어져 가는 혼란기에 있었던 모든 시도들을 한데 묶는 미술운동에 대한 이름이라 해야 할 것이다.사랑스러운 여인과 아름다운 꽃의 화가로 알려진 Pierre Auguste Renoir는 처음부터 인상주의 그룹에 참가했고, 빛을 추적하는 그들의 새로운 시각을 화면에 재현했다. 그는 2회 인상주의 전람회에 “숲 속의 누드”를 출품했다. 그래서 알베로 볼프로부터 ‘여인의 토르소를 그리는 일이 시체의 완전한 부패를 연상시키는 녹색과 보라색 반점으로 썩어가는 살덩어리들의 집합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는 모네와 이웃에서 살았으면서도 풍경화에는 큰 흥미를 갖지 못했던 듯하다. 주로 인물화를 그렸고, “숲 속의 누드”에서 보듯이 인체의 미를 빛과 함께 추구했으나, 점점 인물들의 몸에 떨어지는 빛의 조각들에는 무심해진다. “물렝 드 라 걀렛트의 무도회”에서도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빛들은 부차적일 따름이다. 그는 춤추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밝고 신선한 매력을 가진 젊은 연인들의 경쾌한 몸짓과 사랑스러운 미소들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Renoir는 1876년경부터 먹고살기 위해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곧 부르주아 사회에서 각광받는 초상화가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여행 동안 라파엘로에게서 감동받은 듯, 한동안은 색채보다 데생을 더 중요시하는 그림을 그렸다. “도시의 무도회”와 “시골의 무도회”가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아름답고 행복한 장면만을 찾아 그려낸 Renoir는 인상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던 화가이다. 도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도자기 공장에서 일을 했던 그는 에꼴 데 보자르에 입학해서도 물감을 구입할 돈을 쉽게 구입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제작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낙천적인 성격을 간직하고 있었다. Renoir의 아름다운 예술은 이러한 낙천적 성격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행복한 인간들을 자기 주위의 어느 곳에서나 발견해낼 수 있었고, 그들을 최상의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그의 주된 소재는 그래서 여인, 아이들, 꽃과 같은 가장 생기 있고 발랄한 것들이었으며, 그는 그만의 독특한 화려한 색채들과 부드러운 필치로 이를 실현해 내었다.말년에 심한 관절염에 의한 고통으로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자 붓을 팔에다 고정시키고 팔레트를 무릎 위에 놓고 제작을 했다. 밝은 색채의 혼합물을 보여주고 술렁이는 인파에 쏟아지는 햇빛의 효과를 연구하는 인상화풍의 그림을 그리다 자적인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한다. 특히 등은 강한 의욕으로 빨강이나 주황색과 황색을 초록이나 청색 따위의 엷은 색채로 떠올리면서 부드럽고 미묘한 대상의 뉘앙스를 관능적으로 묘사 "만일 여인의 유방과 엉덩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며 여체를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고대 이후로 여체는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Renoir만큼 예술적으로 탐미한 화가도 드물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누드화가라고까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그는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렇고 말고. 즐거운 일이다” 라고 자신이 얘기한 것처럼 보는 이에게 무한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림을 그렸다.그의 그림은 사회비판적이거나 이념적 배경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로지 일상적인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여유로움과 삶의 기쁨을 화면 가득 채웠을 뿐이다.『 Portrait De Mademolselle Irene Cahen D'anvers 』1879당시 별로 많지 않았던 그의 예술의 이해자였던 은행가 루이 깡 단베르 씨의 귀여운 막내딸이 모델이 되어 주어서 Renoir는 퍽 조심스레, 그리고 정성스레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동그랗고 까만 눈을 하고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소녀의 아직 때 묻지 않은 시선은 너무나 사랑스러우며, 그런 소녀의 순수함 만큼이나 Renoir의 색채는 사람의 감정을 편안하게 만드는 파스텔 톤의 색조로 고결하고 우아하게 표현된다.풍성하고 붉은 기운이 도는 긴 머리를 한 쪽 어깨위로 길게 늘어뜨린 소녀의 머리칼의 한 가닥, 한 가닥은 Renoir 특유의 흐르는 듯한 붓놀림으로, 산만한 듯하면서도 매끄럽게 다듬어졌으며 투명한 피부색의 윤곽은 부드러운 붉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감싸여 더욱 돋보인다.가지런히 맞잡은 두 손은 이레느 깡 단베르양의 차분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면서 루이 깡 단베트씨의 곱게 자란 막내 아가씨답게 얌전하고 품위를 느낄 수 있게 하며 전체적 분위기를 기품 있게 만들어 낸다. 순수하지만 긴장된 소녀의 눈매는 안타까움과 함께 작품의 기품을 더욱 높게 만들며, 수많은 소녀들의 초상화를 그린 Renoir지만 이레느 깡 단베르양이 그의 그림 속 많은 소녀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기품’ 때문일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10.12| 3페이지| 1,000원| 조회(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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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 을 보고
    오늘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보았다.찍고 싶은 영화를 찾았다.바로 이 작품, 델리카트슨 사람들이 그 지표의 일부가 되어줄 것 같다.영화는 인육을 먹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델리카트슨에서의 일을 그리고 있다. 자칭 예술가이고, 써커스 단원이기도 한 뤼종은 델리카트슨에 일자리를 구하러 온다. 정육점에서 일하게 된 뤼종은 주인의 딸 줄리와 사랑에 빠진다. 사람들은 고기맛을 본지 오래되었다며 정육점 주인을 채근하고, 줄리는 사랑하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지하인간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결국 정육점 주인과 마을사람들은 뤼종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찾아오고, 줄리와 뤼종은 어려움 끝에 이를 물리치게 된다. 정육점 주인은 뤼종을 죽이기 위해 던진 부메랑에 맞아죽고 연인들이 첼로와 톱악기를 연주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영화는 현실을 강렬히 풍자하고 있다.배고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경기불황에 고통받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정육점 주인은 고기-즉 재산과 힘을 소유한 권력가다. 어려움 속에 사람들은 타락했고 자신들의 룰을 만들어 살인과 비리를 정당화한다. 고기를 얻기 위해 형이 사랑하는여인을 환청에 시달리게 한 남자. 살고 싶으면서도 압박에 못이겨 반복적인 자살기도를 하는 여자. 담배를 피우는 어린아이. 동굴같은 집에서 두꺼비들과 달팽이에 둘러싸인 채 숨만 쉬는 할아버지. 돌아가신 엄마의 고기를 받아들며 애도하는 여인..어느 하나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나타낸다. 낮에는 레이디의 모습, 밤에는 변태성욕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나 살인에 무감각한 정신병을 자랑삼아 드러내는 우리의 현실이 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가면은 벗겨지고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마치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현실처럼.그러나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영화에서는 코메디와 음악,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다.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가 실패하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내고, 섹스신을 생활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동작들의 오케스트라로 구현했다. 줄리와 뤼종이 같이 첼로와 톱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걸작이고 영원히 마음속에서 귓가에서 떠나지 않을 것만 같다. 자못 코믹스럽게 사람들의 행위를 관찰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사회의 삶이란 저렇게 우스울 정도로 처량하고 처절하며 추악하다는 것. 그것이 영화의 진실이다.영화에서는 시종일관 안개가 깔려있고, 번개와 비가 쏟아진다. 마지막에 연인이 악기를 연주할때 비로소 처음으로 안개가 걷힌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다니엘이 인간이 되었을 때 흑백에서 칼라로 화면이 전환된 것이 생각났다. 너무나 명료하게 희망이 보였다.영화의 음악은 지나칠 정도로 이중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영화를 보고 ost가 너무나도 듣고 싶어져서 인터넷을 뒤져서 감상했다. 가늘고 애처로운 멜로디. 그러나 경쾌함을 잃지는 않는다. 굉장히 소리에 민감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좋았다.
    인문/어학| 2007.10.12| 2페이지| 1,000원|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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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모신 숭배신앙
    『세계 각 민족의 지모신 숭배신앙』날 짜: 2005. 10. 6해당과목:담당교수:학 과:학 번:이 름:토지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고 있는 농경민들게서는 토지를 신성시하는 사상이 일찍부터 발달하였는데, 이것은 필요한 모든 것을 어머니로부터 얻는 아이가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으로 이러한 사상이 바로 대지모사상이다. 우리나라 역시 대지모 사상이 발달하여 각 지방마다 토지를 수호하고 농사의 풍흉을 관정하는 지신을 제사하는 사당이 있었으며, 우리조상이 가지고 있던 대지모 사상은 서양의 “가이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땅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불리며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지모사상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라 할 수있다. 여기서는 인간들로부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던 대지모신을 숭배하는 세계 여러나라의 신앙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알아보도록 하자.㉠ 인도 - 하랍빠 종교원시 시대부터 시작된 생산과 그에 관련된 여러가지의 상징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한 다양한 형태의 신앙은 힌두교가 체계화되면서 母로 그 상징성이 대표되는 여신, 즉 모신을 중심으로 집성되었다. 구석기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체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체의 뼈에 붉은 색칠을 하였고 그것은 미이라 풍습을 낳기도 했다. 반면에 신석기인들은 매장 풍습을 전대와 달리 했으니 죽음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죽은 자를 땅 속에 묻고 그 행위를 경건하게 하였으니 그들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죽은 자가 땅으로부터 나오는 식량에 무언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땅과 모신이 근본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생각 속에서 죽은 자는 생산의 수호신이 되었고 모신은 죽은 자의 수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모신은 땅과 동일시되어 지모신이 되었다.인도에서 지모신의 부각은 하랍빠 종교에서 잘 찾아볼 수 있는데, 하랍빠 문명은 기원 전 2500년 경부터 1500년 경까 이 시기에는 모헨조다로와 하랍빠를 비롯한 많은 도시가 발달하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교역을 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도시 문명과 그 배경이 되는 농경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 시대의 발달된 농경 문화는 지모신 숭배를 낳기에 충분했고, 이 곳에서는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많은 수의 여자가 발굴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나체이거나 혹은 여자의 성적 특징이 과도하게 강조된 모습을 띈다. 몇 몇 소상들은 특이한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그것들이 일종의 여신상으로서 숭배의 대상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정한다. 하랍빠에서 발굴된 어떤 것은 머리를 밑으로 하고 두 다리를 거꾸로 들어 벌리고 있는 누드 여인의 다리 사이 음부에서, 어떤 종류인지는 확실친 않지만,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형적인 지모신 숭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랍빠 문명에서 발굴된 인장들에는 상당 수의 지모신과 관련된 것들이 많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이 시대에 이미 정착 농경 생활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나아가 도시 문명이 크게 발달한 당시의 물질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하랍빠 문명에 나타나는 지모신은 베다 시대의 전기 즉 리그베다 시대인 기원전 100년 경부터 약 500년간의 목축 및 반유목 생활의 시기를 제외하고 오늘날의 힌두교에까지 끊임없이 내려오고 있다. 지모신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사람들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한국 -정월대보름, 집들이정월대보름 :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 ?여성 ?대지의 음성원리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전하는 말에는?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중국사람은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준다. 개인적인 기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다리밟기,고싸움,돌싸움,쥐불놀이,탈놀이,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다.집들이 : 집이 완성되어 새 집에 들어가 살 때도 제례를 지낸다. 마당 복판에 돗자리를 깔고 젯상을 차리고 가족이 집문 안에 드는데 맨 먼저 그 집 맏아들이 금속제의 기물에 오곡의 씨앗을 담아 두 손으로 안고 들어서고 그 집 안주인이 거울을 가슴에 안고 뒤따라든다. 뒤이어 가장이 가신의 신주를 받들고 차례로 들어와 마당의 복판에 마련해 놓은 젯상 위에다가 이 세 개의 신기를 얹어놓는다. 인류학자 엘리아테에 의하면 금속은 땅속 곧 지모신의 태내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모태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성장과 번창과 풍요를 비는 뜻에서 이 금속성 용기를 먼저 들고 새 집에 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금속용기에 오곡을 담아두는 것도 바로 오곡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현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성장하는 지모신 속에 오곡을 담는 것은 원시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적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또는 금속물을 앞세워 새 집에 드는 이유도 금속물의 귀신을 쫓는 힘을 인정하는 원시인의 공통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몽고 - 어워(우리나라의 돌무더기)한?몽의 민속에는 매우 유사한 것이 많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의 돌무지 서낭당과 비슷한 몽골의 ?어워?라는 것이다. 어워는 돌무더기를 쌓아 올려 놓고 숭배하는 몽골의 민간신앙물이다. 중국 문헌에는 ‘악박’ ‘오포’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금도 몽골인은 길을 가다 어워를 만나면 차에서 내려 어워를 세 번 돌면서 여행의 안전을 기원한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바치기도 하고, 길가에 뒹구는 돌을 주워 바치기도 한다. 소박한 행위지만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몽골의 어워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청대의 문헌인 ‘종군잡기’나 ‘몽골길림풍토기’ ‘청회전’에 어워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학계에서는 몽골의 어워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때는 라마교라고 불리는 티베트불교가 쇠퇴만 이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민속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몽골인은 예부터 하늘을 받들고, 대지와 물의 주인인 ?에투겐?을 섬겼다. 에투겐은 어원상 ‘처음’ ‘어머니’ ‘어머니의 배’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몽골인은 비옥한 토지와 풀의 생육이야말로 대지와 물의 주인인 에투겐이 베푸는 은총이라고 여겨, 대지를 ‘나의 황금 대지’라고 부르며 숭배했다. 일종의 지모신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조상 대대로 정성을 다해 섬겨온 특수한 제사를 ‘어워’라고 했다. 몽골의 무당들은 물의 주인을 ‘로스’, 대지와 흙의 주인을 ‘사브다그’라고 부르며, 그들이 산 정상이나 봉우리 혹은 높은 언덕에 머무르고 있다고 믿는다. 바로 그 자리에 약간의 흙을 쌓고 돌과 나무 등을 얹어 장식을 더한 것이 ‘어워’다.㉣ 중국 -중국의 기낙족들 사이에 전해지는 아모요백의 이야기에서는 그녀가 하늘과 땅을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과 인간을 만든 창조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명실상부한 대지모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아모요백은 처음에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고 생물들을 창조하여 먼저 질서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에 붙은 때로 사람과 동?식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구분도 없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혼돈의 상태가 뒤따랐다. 아모요백은 이 혼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홍수를 동원하였다. 곧 그녀는 인간들 가운데서 마흑과 마뉴 오누이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멸망하게 만들며, 그들로 하여금 호로 씨를 심게 하여 그 호로 열매에서 만물이 생성되게 함으로써 두 번째의 창조로 이끌어가고 있다. 삼국 시대에 오나라의 서정이 지은 「삼오력기」에 실려 있는 글에서는 반고가 계란과 같은 알 속에서 하루에 한 장씩 성장함으로써 하늘도 한 장씩 높아지고 땅도 한 장씩 두꺼워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화적 기술은 그가 거인으로 천지를 분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반고 신화에서는 반고가 남신인데 반해, 앞에서 설명한 기낙족의 아모요백 이야기에서는 아모요백이 여기 때문에 파생된 것이 아닐까 한다.㉤ 북아메리카 -Charles H. Long의 「창조의 신화」에서 대지의 여인은 오늘날과 같이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으로 인식되기까지의 과정이 기술되고 있다. 이 신화에서 대지의 여인은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그녀는 남편과 그의 친척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슬픔에 빠져 울게 되었다. 그때 그녀의 눈물에서 올드 원이 태어나 다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우주를 만든다. 그리고 그 대지의 여인을 지구로 만들고, 그녀의 신체 부위들을 가지고 지금의 삼라만상을 창조한다. 그리고는 대지의 여인을 모든 생명들의 근원인 대지의 어머니[大地母]로 바꾼다.㉥ 그리스 -가이아(Gaia, 대지)태초에 카오스(Chaos, 혼돈)가 존재했고, 다음에 눈 덮힌 올림포스 정상에 살고 있는 신들의 영원한 기반이자 넓은 가습을 지닌 가이아(Gaia, 대지)와 대지의 심연 속의 어두운 타르타로스(Tartaros, 지하감옥)와 신들 중 가장 매력적인 에로스(Eros, 사랑)가 생겨났다. 카오스로부터 에레보스(Erebos, 어둠)와 닉스(Nyx, 밤)가 생겨났다. 이 둘은 서로 어울려 아이테르(Aither, 창공)와 헤메라(Hemera, 낮)를 낳는다. 가이아는 제일 먼저 우라노스(Ouranos, 하늘)을 낳아 자신을 뒤덮게 했다. 가이아는 또 요정들이 사는 우레아(Ourea, Hill, 언덕)와 폰토스(Pontos, 바다)를 홀로 낳았다. 다시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동침하여 열두 명의 티탄들(Titanes), 즉 오케아노스, 코이오스, 크레이오스, 히페리온, 이아페토스, 테이아, 레아, 테미스, 므네모시네, 포이베, 테티스, 그리고 막내이자 가장 교활하고 무서운 크로노스를 낳았다. 원초적 총체인 가이아는 대지인 동시에 원초적 어머니인 셈이다. 가이아와 함께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해 사물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힘인 ‘에로스’가 태어났다. 카오스는 성적 결합 없이 홀로 에레보스와 닉스를, 가이아 역시 홀로 우리노스와 산들과 요정들, 바다를 이다.
    인문/어학| 2007.10.12| 6페이지| 2,000원| 조회(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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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감상문] 천국을 향하여 부산국제영화제 파라다이스 나우
    『 Paradise Now 』2004∥Palestine, Germany, Nethelands, France ∥drama∥ 90min- Hany Abu-assad날 짜: 2005 .11 . 9해당과목: 프랑스 연극영화읽기담당교수: 박혜경 교수님학 과: 불어불문학과학 번: 20210393이 름: 강혜현Hany Abu-assad2005년 베를린영화제 푸른천사상『천국을 향하여』는 자살테러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과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가는 행동에 대한 비난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영화는 너무나 절박하여 극단적인 폭력 외에는 기댈 데가 없는, 예전에는 한번도 조명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Paradise Now』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는 ‘테러’ 이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감독 하니 아부 아사드의 영화『천국을 향하여』는 역시 이러한 ‘테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자폭 테러에 자원한 이를 ‘테러리스트’로만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눈으로 ‘테러’를 바라보고 있다.영화는 사이드와 칼레드라는 두 청년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자동차 정비공인 이들은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일절하지 않는 평범하고 어수룩한 젊은이들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어느 지방에서 자폭테러를 감행할 지원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마치 당연한 듯 자원, 자신들의 성명을 남긴 비디오를 결코 장엄하지 않게 찍어낸다.‘순교자’의 최후 성명이 담긴 비디오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태연히 대여되어지고, 자폭 테러를 일상으로 여기는 그들의 현실은 ‘현실이 지옥이고 상상 속이 천국이라면, 상상 속의 천국이 낫겠다’ 라는 할레드의 말과 함께 영화 속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더욱 더 깊게 맺혔으며, 잔인하게 각인됐다. 스무 살의 청년 칼레드와 사이드는 현실의 지옥보다는 비록 허구일지라도 마음속의 천국을 택하겠다는 그들의 신념대로 움직인 것이다. 그것이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거나 윤리적으로 옳지 않음을 안다할지라도 그들에게 있어 죽는 건 같은 것이었다. 이스라엘, 그들과 다른 건 단지 군대일 뿐이다.우리의 언론은 팔레스타인의 ‘지하드’, ‘하마스’ 같은 단체를 언급할 때 그 단체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에 의해 과격단체나 무장단체로 표현될 뿐이다. 반면 이스라엘군이 ‘라파’시에 미사일과 탱크를 동원, 팔레스타인 민간인 60-70명을 살해한 사건은 ’테러’가 아닌 ‘군사작전’이라고 보도됐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친이스라엘적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살상을 정당화하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과 만행은 국가라는 단어로, 세계라는 단어 아래 은폐되어졌었다.목숨을 헌 신짝 버리듯 하는 위험한 사람들로 매도되어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얘기처럼 의식이 없지 않다. 종교적 가르침에 그처럼 맹목적으로 빠져든 사람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그들이 왜 ‘자살테러’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순교자’로써 죽음을 택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없다는 좌절과 분노가 그들을 극도로 몰아갔다는 것을, 세계 여러 국가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적 태도가 그들의 가슴을 얼마나 찢어놓았는지를 우리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팔레스타인의 ‘자살테러’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다만 ‘순교’냐, ‘테러’냐 하는 말장난은 그만하고 이제부터라도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이스라엘에 편향된 시각을 벗어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각과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영화가 단 한번도 이스라엘적 입장에 서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희생과 희생이 악순환을 이룬다는 지적과 살아남기 위해 이스라엘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가지지 못한 자의 비극,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된 시민들의 모습은 과연 누구의 신이 옳은 지를, 누가 희생자이며 누가 피해자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독후감/창작| 2007.10.12| 3페이지| 1,5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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