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를 읽고...이 책을 처음 봤을 땐 딥스라는 것이 유아교육에 관계된 단어쯤으로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서 한 아이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책이라 읽기에 부담도 없었고 내용은 대화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솔직히 섬머힐 보다는 좀더 재미있는 책인 것 같았다. 딥스라는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른 행동과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딥스의 그 일반적이지 못한 행동들 말들 생각들을 치료하는 과정들 치료방법이 쭉 적혀 있었다. 새로운 것은 놀이를 통해 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좀 색다르게 느껴졌다. 아직은 유아교육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놀이라는 것을 단순히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놀아주는 것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했는데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에게 놀이가 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딥스가 장난감 집을 문과 벽을 떼어 내는 장면이 있었다. 벽 싫어 문 잠그는 것 싫어 그 부분만을 읽었을 땐 가정에서의 구속들이 놀이를 통해 들어 나는 것은 아니 였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어 내려갔고 딥스에게 이런 행동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 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며 읽었고 개인적인 느낌을 정리해보았다.책제목이 딥스인 만큼 처음 열자마자 딥스라는 아이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설명이 되어있는데 집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모습, 다른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할퀴는 모습 교실 바닥을 기어다니거나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들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다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 곳 선생님들도 딥스를 정신박약이나 뇌손상을 입은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내 주위의 아이가 딥스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행동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서 왜 딥스의 이런 행동을 글 처음에 넣었을까? 하고 생각했고 이 책이 전개되는 방법이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답을 찾의 마음을 관대하게 만든다 라는 글 이였다. 낮에 떠오르지 않던 것들의 밤의 어둠 속에서는 그 형태를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것이다 . 또한 인간의 역량과 한계점을 평가해 불 수 있는 이로운 점이 있었다 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나에겐 밤의 어둠은 관대함보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이 들기 때문이다. 개인적 차이 인 것인지 아님 정신적인 면에서의 한 부분을 설명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계속 의문이다.흥미 있었던 것은 필자와 딥스가 놀이방에 함께 들어가는 것 이였다. 필자도 딥스가 낯선 자기를 따라 나서는 것을 의아스러워 했다. 읽는 나 또한 그랬다. 딥스가 한 말 중 잠긴문은 싫어 라고 말하는데 필자는 딥스가 문을 잠그는 것과 관련된 불행한 경험이 있음이 확실하다고 필자가 말했고 내 생각과 일치했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난 불행한 경험이 무엇인가를 상상해 봤다. 아동학대 뭐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아이를 가두어 두고 무관심 속에 방치 한 것은 아닌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딥스가 인형의 집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고통스럽게 필자의 눈에 비치었다고 했는데 딥스의 가정도 이 인형놀이와 같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딥스의 어머니를 보면서 틀에 짜여진 딥스의 가정환경을 엿 볼 수 있었고 딥스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필자가 딥스의 어머니를 평가하는 개인적인 부분이 들어가 있다. 필자에게 돈을 꼭 줄려고 하는 모습을 필자는 돈을 지불해 버림으로써 딥스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으로, 돈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라 했다. 물질 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족모두 갈등과 고통을 안고 있다 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일반 가정의 모습 또한 그렇지 않나 지금 우리들의 부모 또한 딥스의 어머니와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 풍요가 아이들에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의 부모 또한 알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A 선생님 도와주세요 라는 말딥스가 지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는 아이라 생각했지만 글도 읽을 수 있고 색도 구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딥스가 정서적인 문제가 더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은 소제목(A선생님 도와주세요)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였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놀이방 에서 딥스가 행동변화를 보인 첫 부분이라 의미를 두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필자의 생각을 정리 한 부분에서 마음에 드는 말이 있다. 딥스의 생을 바꿀 수 있는 변화는 어떤 형태이든 딥스의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딥스를 둘러싼 외부 세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딥스 뿐 아니라 나 또한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처한 현실은 내가 바꿀 수 없다. 그것을 이겨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이고 그 힘을 끌어내느냐 못 끌어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빛이 되기도 하고 어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두 번째 놀이방을 찾았을 때 딥스가 집에 가기 싫어요 라고 말했다. 치료 과정을 보면 딥스는 병정을 가지고 놀며 숫자의 합을 할 줄 알고 있었다. 앞에서는 딥스가 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두 번째 놀이에서는 딥스가 숫자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병정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딥스가 병정인형을 던져 놓고 그 위에 모래를 뿌리며 죽었다고 말했다. 딥스는 병정이 하는 이도 알고 있었고 죽음이 어떤 형태인가도 알고 있었다. 딥스가 지능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아이라는 것을 한번 더 보여주는 예가 아니가 싶다.딥스가 집을 그렸는데 자물쇠가 잠겨있고 지하실이 있고 창살이 있는 그런 집을 그렸다. 내가 집을 그린다면 어떻게 그렸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라면 나무 울타리에 빨간 벽돌집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굴뚝을 그렸을 것이다. 자물쇠 ,창살, 지하실을 그렸다는 것이 의아했고 딥스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이 갑갑하고 속박되고 어두운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딥스가 집에 가기 싫어하며 우리 놀이방 이라고 했던 말에 가슴이 아팠고 그 아이가 내 앞에 있다면 꼭 껴현재 상황과 인형놀이를 섞어가며 이야기했던 것이다. 수첩에 딥스가 모래놀이가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인형집과 병정들을 갖고 놀았다 라고 꼭 쓰세요. 라고 했던 것 앞에서 보던 딥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 이였고 필자를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처음으로 딥스가 웃었다는 것이다. 난 이 부분에서 딥스의 내면이 치료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으나 약간의 걱정도 생겼다. 딥스의 웃음의 범위가 필자와 놀이방이 전부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딥스의 웃음이 필자와 놀이방에서 어머니와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놀이에 있어서 딥스의 비밀이 담겨져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딥스의 감정을 엿 볼 수 있는 것이 나온다. 병정놀이를 하던 딥스가 병정하나를 아빠라 하며 세워놓고 주먹으로 꽝치며 넘어뜨리는 것을 반복했던 것이다. 일반적 상식 수준에서 봐도 어린아이가 이런 행동을 보인다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빠를 사랑하는 아이라면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난 놀이에서 보여주는 아이들의 행동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딥스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도 인격체로써 감정을 가지고 있고 자아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고 어른들과는 표현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딥스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던 것이다. 병정놀이를 할 때마다 아빠 병정을 정해놓고 모래바닥에 파묻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 딥스가 했던 말 이 병정은 이제 완전히 묻혔어. 이 높은 산을 올라갈 기회도 갖지 못했어 물론 꼭대기에도 올라가지 못해. 이놈은 다른 병정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고, 희망을 갖고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그는 묻혀 버렸어. 이 말에 많은 감정이 들어 있음을 난 짐작할 수 있었다. 병정이 아버지라고 했지만 그 병정은 딥스 자기 자신의 모습 이였다고 본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일을 자신이 아버지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가졌던 희망을 아버지가 이루지 못하게 했다고 딥스는 생각하고 있었고 그때 자필자에게 딥스의 어머니가 했던 말들에서 나타난다. 딥스의 부모는 딥스를 원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딥스가 자신의 인생을 망친 아이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태어난 딥스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지적인 부모들에게는 저능아 취급을 받으며 컷 던 것이다. 딥스도 부모의 그런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되다. 이 부분을 보면서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 했다. 부모사랑 없이 컷 던 딥스에게서 일반 아이들과 같은 행동과 감정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인 듯 하다. 아이들이 사랑 속에서 커야한다고 말들 하지만 정작 자신에 아이들에게 물질로만 사랑을 퍼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자신의 뒤돌아보게 만들만한 부분 이였다. 문제가 제시되고 문제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단계로 이 책에서 감정적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곳 이였다. 또한 딥스를 치료하면서 딥스의 어머니도 치료되어 가고 있음이 보여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딥스에게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점을 발견했다. 딥스의 놀이에서는 현실이 항상 반영된다는 것이다. 아빠가 데리러 오는 날에는 아버지가 놀이에 등장하고 동생이 오는 날에는 동생이 놀이에 등장한다. 딥스가 놀이를 하면서 놀이에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이 반영된 놀이에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 이였다.딥스가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와의 이야기 중 정원사 제이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함을 알 수 있었다. 딥스의 감정을 소중히 생각해주는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난 궁금증이 생겼다. 정원사나 필자에겐 마음을 여는 딥스가 왜 친구들이나 부모들에겐 마음을 열지 않는지 왜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드러내는지.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라는 그런 일반적인 대답이 아닌 듯 했다. 딥스가 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쪽에서만 주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희망을 키울 수 있고 자신의 눈 높이에서 자신을 바라 봐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원하고각한다.
{오웬(1771~1858)★ 잠깐! 먼저 이것부터 알자!!!오웬은 사상적인 면에서는 로크, 교육방법면에서는 페스탈로치의 영향을 받았았다는 것을먼저 이해하시고...또 오웬은 교육을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기억하세요^^{시대적 배경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서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석기시대 이래의 인간 문명의 일대 변혁이었다. 산업혁명은 생산력의 확대, 부의 무한한 축적, 공업의 고도화를 일으켰으나 반면에 사회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산업혁명의 진전과 사회적으로 공장이 기계화되어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 없게 되면서 빈곤에 허덕이는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은 전혀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루 종일 공장에서 심한 노동에 종사하는 어린아이들의 순수성이 오염되어 점차 무지와 악덕과 도덕적 타락에 빠지게 된 것을 바라보며 이러한 하층 노동자층의 노동의 성격과 도덕적 타락의 방지책을 교육적 측면에서 가장 먼저 고민을 가지고,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이에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성격형성학원과 유아학교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생 애영국의 근대교육의 사상가요 실천가로 불려지는 오웬은 1771년에 태어나 1855년에 죽기까지 산업혁명기에 주로 활약하면서 실로 다채로운 생애를 보낸사람이다.오웬은 1771년에 웨일지(Wales)의 뉴타운(New Town)이라는 소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마구(馬具)를 만드는 사람으로 마구상을 경영하였고, 직물상과 철물상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며, 우체국장도 하였다. 오웬이 태어난 가정은 당시로서는 중산층에 속하였으나 오웬은 초등교육 밖에는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점원으로 취직하여 직업전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오웬은 지방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잘하고, 3R's와 음악, 스포츠를 잘하였으며, 대단한 독서가 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7세때 2년간이나 선생의 조수가 되어 학비를 벌 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 오웬은 어려서 부터 매우 우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는 어린시절부터 공부를 잘하였으며, 대단한 독서가였다.9세 때에는 포목상에 취직하여 점원으로 일하였고, 10세때는 단신으로 런던으로 가서 18세가 될 때까지 런던을 비롯하여 만체스타(Manchester)등지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동안에 일찍부터 사업가로서의 소양을 쌓았다. 특히 16세 대는 당시 영국에 있어서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만체스타에 가서 일하게 된 것이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전환기기가 되었다. 그는 19세때 독립된 공장의 경영주가 되었고, 20세때는 란카샤에서 5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직공장의 지배인이 되었으며, 그후 연사공장을 경영하기도 하였다.1800년에 결혼하여 스코틀랜드의 거물인 실업가이자 그의 장인인 데일로 부터 영국 제일의 방직공장인 뉴라나크(New Lanark)를 물려받아 경영을 하게 되었다.이후 오웬은 1816년에는 유아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사설보육시설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성격형성학원 (New Institution of the Formation of Character)이라는 최초의 유아학교는 2∼6세의 유아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이학원이 이룩한 성공적 결과는 공장법(Factory Act)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1825년, 미국 인디애나주에 건너가서 뉴하모니 평등촌을 설립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834년에 영국 최초의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대노동조합(Grand National Union)을 결성하여 사회주의 사상운동 및 노작활동을 하였으며, 1858년에 고향인 뉴타운에서 88세로 일생을 마감하였다.그의 주저로는 (1813), (1813~1814)(1820)
섬머힐난 학과숙제로 섬머힐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생소한 제목의 책이었고 이 책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이상적인 교육 그러나 현실과는 먼 그런 교육의 내용이 담겨저 있었다.이 책을 다 읽고 난 의문이 생겼다 . 섬머힐을 졸업하고 사회 나온 아이들 또는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한 아이들이 현 제도권에서 얼마나 적응을 하는지 과연 교육의 효과가 빛을보는지 말이다. 예전 난 TV 방송에서 우리나라 대안학교라해서 시험적 케이스의 소규모 학교들을 방송한 것을 본적이있다 . 이 아이들의 구성이 참 재미있던 것이 일반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런아이들도 섬머힐처럼 대안학교에서는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 . 이런아이들도 교육에 흥미를 느끼고 적응 하는 것을 보면 이상적인 교육이라 보인다. 허나 대안학교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이 교육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어떤 교육을 받던지 간에 이 아이가 마지막 나올곳은 사회인데 이 학생들이 얼마나 적응을 할지 의문 스러웠고 그 해답이라는 부분의 예로 학교시절 글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인정받는 카메라맨 ,또는 연장공...등등 이 책을 다 읽는 동안 내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고 이책을 읽고 나의 느낌대로로 섬머힐의 장,단점과 이상적인 교육과 현제도권의 교육의 조화를 생각해 적어보았다1.섬머힐의 목표섬머힐의 이념은 자기자신이 될 수있는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해석하기엔 교육의 주체가 공부하는 아이들이 이어야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진 아이들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뜻의로 보았다. 현제의 교육상황과는 반대되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앞으로 현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엔 틀림없는 사실이다링컨의 말을 바꿔 아이들의, 아이들에의한, 아이들을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2.아동교육우리처럼 유아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부분이 눈에 먼저 들어 올꺼라 생각이 든다. 아동교육부분에 제일먼저 지적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생들의 모습을 그대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난 이부분을 읽으면서 서태지의 교실이데아가 생각이 났다. 다듬어지고, 규율에 얽매여, 자유로움을 잃어버린 아이들 , 현교육이 똑같은 붕어빵을 찍는 틀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이 책에서 어린이들의 자유에 대해서 많은 비중을 두어 이야기 하고 있으나 존 스미스라는 고등학생의 부분은 예로써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들었다. 부모에 틀에 맞추어져 일반적 생활, 성지식, 습관마저도 모두 부모가 넣어준 틀 데로 살고있다는 것을 설명하려한 듯 하나, 표현이 적절치 못하여 약간의 거부감 또한 들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잘못된 지식을 강요하고 있다는듯의 표현이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제3의 눈으로 본 존 스미스라는 아이의 모습은 부모가 조종하는 로봇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안타깝고 감정에 치우친 표현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아동이생각하는 자유와 부모가 생각하는 자유, 그 사이의 차이와 갈등을 중점으로 들어 설득력 있게 인간냄새가 나도록 표현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동교육 부분에서 자유로운 어린이에대한 정의는 자기자신의 법칙에 따라 생활할수 있는 어린이라고하였고 자신의 딸 쏘에를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 온 사람이 쏘에에 관해서 자유와 방종을 사이의 한계를 알고있는 자연스런 어린이라고 말하였다고 되어있다. 이 부분에서 궁금한 것은 자유와 방종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익혔다는 뜻이 되는데 부모의 해석없는 자유와 방종의 구분을 어린 쏘에는 어떻게 알았을까? 현대의 어른들도 자유와 방종의 구분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쏘에는 어떻게 자연스럽게 자신의것으로 받아 들였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고 섬머힐의 교육이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아동교육부분에 있어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어린이의 행복과 안녕은 우리들의 사랑과 우리들이 그들을 인정해 주는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 이였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님의 칭찬, 또는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했었고 내가 최고이고 뭐든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독점적인 사랑, 감상적인 사랑에 구분을 준 것이 인상깊었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글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 또는 내 주위의 아이들을 얼마만큼 인정하고 그들에게 감상적인 사랑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요즘 부모들을 보면 봄날에 엄마닭을 졸졸 딸아 다니는 병아리가 생각난다. 애들을 부화하지 않은 달걀인 듯 끼고 품고 그러다 병아리 되면 자신이 배운 것을 그대로 가르쳐주며 부모만 따라와라 하고 가르치니 말이다. 그럼 병아리는 커서 또다시 이 순환을 반복하고 지금의 교육모습이랑 너무나 비슷한 듯 하다. 아이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사랑의 첫걸음은 바로 아이를 인정하는 것, 어렵지만 쉬운 방법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