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절대왕정에 대한 이해: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목 차>1.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 속 과도기적 정치형태, 절대왕정2. 루이 14세 이전 프랑스의 절대왕정 형성과정과 특징3. 루이 14세의 프랑스 절대왕정4. 태양왕 루이 14세의 가장 모범적인 절대왕정5. 참고문헌1.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 속 과도기적 정치형태, 절대왕정16~18세기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가 지배하던 시대를 절대주의 시대라고 하며, 그 시기의 정치 체제를 절대왕정 또는 절대군주제라 한다. 이러한 절대왕정은 전제정치, 중상주의정책, 관료제, 상비군, 조세제도, 왕권신수설 등을 특징으로 하는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국왕과 시민계급의 결합으로 나타난 과도기적 정치 형태였다.) 이 시기에는 여전히 봉건사회의 잔재들이 남아있었으나,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초기 자본주의가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시민계급의 성장으로 근대문화를 형성하며 근대유럽사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유럽의 주도권은 지리상으로 발견을 선도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로부터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으로 옮겨졌고, 16세기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였다.) 이 레포트에서는 유럽 중에서도 프랑스에서의 절대왕정에 대해서 그 형성과정과 특징, 한계와 내재적인 모순 등을 살펴보며 ‘절대왕정’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2. 루이 14세 이전 프랑스의 절대왕정 형성과정과 특징프랑스의 절대왕정의 발전은, 영국과 1388년부터 1453년까지 약 백년간 계속되어온 ‘백년전쟁’이란 오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왕권의 강화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는데, 전쟁을 수행하는 긴급사태에서 성직자, 귀족, 도시대표로 구성되어 왕권을 제약했던 신분의회를 무시하고, 전쟁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만들고, 또 중세의 국왕처럼 기존 법을 수호하거나 시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법을 자의적으로 제정하였으며, 외적을 방비해야한다는 구실로 언제나 거대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에 세금이 부과된다면 교회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결국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일이키기 1년 전인 1516년에 프랑스 국왕과 교회는 협정을 통해서 국왕이 프랑스 교회의 고위 성직자 후보를 지명하고 교황은 지명된 성직자 후보 중에서 성직자를 임명한다는 ‘볼로냐 합의’가 체결되었다. 따라서 프랑스 국왕은 영국이나 독일에 비할 때 완전히 교회 장악을 할 수는 없었으나 영토내에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한편 국왕은 국가가 유일한 왕, 하나의 법, 하나의 신앙으로 다스리는 단합된 모습의 국가만이 강력할 수 있으므로 다양함은 힘의 응집에 해롭다고 생각하며 개신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16세기 전반의 프랑수아 1세(1515~1547)는 개신교가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며 국가에 위험한 사상이 된다고 보고 개신교 신조와 예식을 불법이라 선포하여 엄벌로 다스렸다.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 등은 영국과 독일의 종교개혁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국왕의 이러한 개신교 억압조치에 반발하였다. 이렇듯 가톨릭을 비판하는 것에서 나타난 개신교의 움직임은 국왕과 가톨릭이 한편이 되자 반국왕이라는 정치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고, 1563년부터 1598년까지 위그노 전쟁으로 알려진 종교전쟁을 치루었다.) 위그노 전쟁은 신?구도교의 대립이 주축이었지만, 귀족간의 세력다툼, 귀족과 왕권과의 대립, 그리고 왕위계승문제 등이 엉켜 장기간에 걸쳐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영국이 위그노를, 에스파냐가 가톨릭을 원조하여 국제분쟁의 양상까지 가미되었다.) 종교문제로 가장 잔혹했던 사건은 1572년 성 바르톨로뮤 기념일 사건으로, 프랑스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치는 섭정을 하는 동안 개신교에 대한 적대감으로 군대와 가톨릭 신도들에게 개신교도를 보는 대로 죽일 것을 명령하여 성인의 축제날 개신교도들을 습격해 잔혹하게 살해하는 참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개신교의 희생은 순교의 피가 되어 오히려 개신교의 성장에 기여하게 되었다.) 그 후 앙리 4세(1589~1610)가 즉위하며 1598년 ‘낭세(1610~1643)를 즉위시키며 국내 안정을 도모하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였다. 특히 루이 13세는 왕권확립과 관료조직 정비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 관료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는데, 그는 리슐리외를 재상으로 임명하여 18년간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였다. 성직자출신으로 후에 추기경이 되는 리술리외는 프랑스 절대왕정 확립의 주춧돌로서 프랑스를 강국으로 만드는 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하였으며, 그가 지닌 생각은 국가이성이라는 것으로 국왕의 절대적 권위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든 것에 우월한 절대적인 권위, 즉 국왕의 권위와 국가의 필요를 동일한 것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리슐리외는 중앙 관료제의 권한을 강화하기위해 위그노를 무자비하게 박해했으며, 대귀족의 궁정음모와 지방귀족의 반항, 농민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국왕에 의하여 임명되는 지방장관을 새로이 전국에 파견하여 사법?치안유지?재무 등 지방행정을 관장하게 하였으며, 중앙의 국무회의를 강화하여 전문화하였다. 대외적으로는 30년 전쟁에 개입하여 독일의 신교도를 지원함으로써 프랑스의 국익을 증진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또 귀족들에게 전래되어온 특권, 즉 결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금지하고 국왕 재판에 위한 판결을 따르게 하는 등 귀족들의 거만함을 없앴다.이렇듯 리슐리외를 통해 절대왕정이 형성된 루이 13세의 부르봉왕가 절대군주들의 권력은 몇 가지의 왕국기본법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법위에 군림하던 존재였으며, 주권자로서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류하는 권력을 자신의 인격 안에 집중시켜 무제한적으로 모든 권력을 행사하였다. 왕의 사법권은 입법권으로 이어지며 국왕은 오직 자신의 권위에 의거하여 법을 제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왕의 모든 명령은 사법적 형태를 갖추었으며, 국왕은 외국과의 교섭, 군사 활동, 왕국의 방어와 내부질서, 종교, 교육, 경제, 재정문제 등 국가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업무를 담당했다. 오직 주권자인 국왕만이 관직자의 존재이유로 국왕주권의 원리 하에 국왕은 스스로 통치하며 홀로 결정했지만, 입법곳으로, 원칙적으로 조정과 같았다. 가장 활동적인 구성원들을 국왕의 심복들로써 참사회는 국왕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 의지를 선언하는 기구였다. 이렇듯 앙리 4세와 루이 13세 시대에 참사회는 국왕의 정치적 결정을 돕기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신하들을 대표했다. 그러나 루이 14세 시대에 계승되며 그것은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변화하며 확고한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3. 루이 14세의 프랑스 절대왕정프랑스 부르봉왕조의 루이 14세(1643~1715)는 ‘태양왕’이라고 불렸으며, 부르봉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대표한다. 루이 14세는 5세 때 즉위하여 모후 안 도트리슈가 섭정이 되고, 리슐리외의 뒤를 이어 철저한 국가이성의 추종자이 추기경 마자랭이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당시 프랑스는 에스파냐와의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피폐하여 국민들은 점차 반항의 기미를 보였고, 국무회의의 강화와 지방장관의 임명으로 권한이 축소된 파리의 고등법원과 귀족들은 ‘프롱드의 난(1648~1653)’을 일으켰다. 이는 절대왕정을 가장 크게 위협했던 사건으로 전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루이 14세로 하여금 파리를 떠나 모후와 함께 각지로 유랑하는 고난을 겪게 할 만큼 위협적으로 오랫동안 왕에게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나중에 파리가 싫어져 궁전을 베르사유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 프롱드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귀족들은 절대왕정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프랑스왕정은 루이 14세와 함께 절대왕정의 절정기로 들어서게 된다. 그 후 재상 마자랭이 정치를 독단하다가 1661년에 죽자, 루이 14세는 국왕의 직접통치를 선언하였다. 이는 ‘1661년 혁명’으로 불리는 통치변혁으로 약 40년간 유지되어온 총리대신체제에 종지부를 찍으며 더 이상 총리대신을 두지 않는 친정을 선언한 것이다. 동시에 국왕참사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진행되며 모후 안 도트리슈, 추기경들, 왕족들, 심지어 총리대신까지 참사회에서 제거되었으며 도원수, 제독과 같은 고관대작들을 격하시켰고 대법관과의 치이던 간주권마저 폐기했다.이러한 변화 속에서 루이 14세는 가장 중요한 국가문제를 처리하던 고등참사회)의 위상은 유지시켰지만, 3명 내지 5명의 장관으로만 구성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신분이 낮은 국무비서 중에서 그날의 장관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1661년 푸케의 실각이후 국왕재정참사회를 창설하여 국왕과 재무총감의 책임 하에 왕국전반의 주요 행정업무를 수행해나갔는데 이 국왕재정참사회의 2인자인 콜베르)는 여러 위임관직을 겸직하며 국정을 총괄하는 왕의 충실한 관리로서 전형적인 중상주의 정책을 채택하여 무엇보다 프랑스공업의 육성에 힘썼다. 이러한 중상주의정책의 일환으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국제무역의 증진과 식민지획득에 노력하며, 유럽전체가 불화기로 접어든 17세기 후반에서 프랑스의 국부와 국력을 크게 증가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1682년 파리 교외에 호화찬란한 베르사유궁전을 짓게 되는데, 베르사유궁전은 지방총독들에 대해서 3년 단위로 궁정에 체류하는 것을 의무화하여 그들이 왕권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하고 만들어졌다. 이는 아마도 루이 14세가 이룩한 가장 눈부신 업적 중 하나로 절대주의의 한 표상이며 귀족들의 질서와 규율을 위한 도구였다. 루이 14세는 칼과 창으로 귀족을 억압한 것이 아니라 궁정에서의 일상생활을 완벽하게 조직화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귀족들을 축제, 연회, 연극, 무도회 등에 수없이 초대하며 그럴 때마다 새로운 복장이나 예절, 형식을 갖출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찬란하고 화려한 귀족의 에티켓 등이 끝없이 새롭게 제정되고 귀족들은 온 힘을 쏟아 예절을 배우고 의상을 마련하였다. 이렇듯 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식할 듯한 의례는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와 허영심을 고묘하게 이용해 그들을 통제하려는 억압체계였다.) 이러한 즐거운 궁전연회 속에서 과거에는 강력한 왕의 견제 세력이었던 대다수의 귀족들은 나날이 가난해졌고, 자신의 영지를 관리하지 못하면서 봉건제의 특징이면서 왕권에 대한 큰 위협이었던 지방할거주의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Ⅰ. 머리말Ⅱ.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특성Ⅲ. 사회진화론의 한국에서의 기능Ⅳ. 맺음말Ⅰ. 머리말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은 20세기 초 한국사회에 크게 유행하던 사조로서, 1900년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실력양성운동 또는 계몽운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기도한 지식인들이 논거로 삼은 중요한 이론의 하나였다. 사회진화론은 한마디로 찰스 다윈 Charles Darwin(1809-1882)이 주장한 ‘생존경쟁 · 적자생존’등 진화와 자연도태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생물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용시킨 사회이론이다. 이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사이 서구 산업국가들의 정치, 사회, 경제현상을 설명하려는 보편적이 이론체계로서 등장하여 19세기 유럽중심의 사회에서 백인종 주도의 세계 지배 원리로 이용되어졌다. 즉, 자본주의의 발달과 제국주의의 팽창이라는 시대적인 분위기와 접합되며 제국주의의 이론적인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구에서부터 동아시아에까지 이르는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전개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당시 한 국가의 국제관계상의 입지에 따라서 전혀 상이하게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흔히 세계에서 강자로 인식되는 서구산업열강에서의 사회진화론은 각종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 간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며 제국주의의 이론적인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확장 위협에 직면한 약자로서 소위 약하고 무능한 나라였던 한국에서의 사회진화론은 수용은 부국강병을 위한 자강론으로 발전하였다. 사회진화론의 서구적 원형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이론상 모순적인 변형으로 파악되며, 한국에서의 사회진화론의 특수성이라고 규정지을 수도 있다. 이처럼 1920년대까지 사회진화론은 왜 한국이 국가간 생존경쟁에서 약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강자가 될 수 있는지, 왜 개화와 근대화가 필요한지를 한국인에게 설명하고 그 같은 논의에 기반하는 실천적 운동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이론이었다.) 사회진화론은 1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근대며 다위니즘이라는 개념아래 생물학 뿐 만이 아니라 철학, 사회학, 정치학, 역사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스며들며 중세이후 교황청이 독점적으로 관리해온 창조도그마를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길을 열었다.)이처럼 다윈의 생물학적 이론이 사회 정치적 관점에서 파악되면서 사회진화론은 비합리적이고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기반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사회과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은 차이성만이 아니라 동질성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 가운데 사회진화론의 전개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영국의 사회학자 스펜서(Herbert Spencer)는 다윈의 이론에서 자신의 사회철학의 확충을 위한 좋은 기반을 발견하여 사회도 생물과 같이 하나의 유기체이며 생물의 발전법칙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회생물학적인 이론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전시켰다.) 사회진화론은 위의 스펜서의 사회생물학적 이론과 다윈의 진화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다위니즘의 융합으로 생겨났다. 당시 사회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19세기 후반에 영국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과학과 기술의 대량적 진보로 생산력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다수의 평등 대신 소수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의 모순이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기득권 계급과 보수적 지식인들이 가지는 경제적 불평등을 합리화시켜주고 사회적 갈등을 잠재워 줄 수 있는 버팀목으로서 기득권 계급의 수용에 부응하여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바로 사회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진화론은 사회학의 한 학파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정책의 행동방침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정치이데올로기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이는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이론으로 선전됨으로써 자연도태가 진화의 개념보다 강조되었고, 국가사이의 분쟁과 사회 내의 갈등관계를 설명하는 모델로서 그리고 사회의 불평등과 인종적 불평등을 자연의 법칙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19세기말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사회진화론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회진화론자, 특히 있는 이론적 지지 기반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시기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진화론자로는‘카토 히로유키’가 있는데, 그는 본래 천부인권론을 신봉하며 일본에 입헌주의를 소개한 자유민권론자였으나 사회진화론을 접하고 나서는 처음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1882년 그는‘인권신설(人權新說)’이라는 저술을 발간해 생존경쟁과 자연도태의 개념을 소개하며 인권을 망상이라고 비판하고, 민권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우승열패의 결과로 얻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확고한 국가체제가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확고한 인권도 있을 수 없으므로, 서구 열강과의 관계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는 일본의 당면과제는 강력한 민족국가의 확립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생존경쟁과 우승열패를 인간사회의 자연스런 법칙으로 이해하는 카토의 입장은 서구의 사회진화론이 그랬던 것처럼 강자의 권리만을 옹호하고 약자의 생존권을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하였다.) 명치시대의 대표적인 계몽지식인인 후쿠자와 유키치가‘문명의 개략(1875년)’에서 세계의 문명을‘야만’, ‘반개화’, ‘문명’ 세 가지로 분류한 것을 통해 당시 사회인식론으로서 국가 간의 생존경쟁을 사회진화론적 사고에서 파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30년 이후 일본근대사에서 강조되며,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일본민족이 지도민족이고 제국 내의 국민은 모두 황민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대동아공영권’을 통해 사회진화론적 의미를 포함한 일본의 우등민족 의식을 살펴 볼 수 있다.3.중국의 사회진화론중국에서의 사회진화론의 수용은 1895년 청일전쟁 패배로 인해 일본과 서양의 부강, 그리고 중국이 약체로 된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반성에서 이루어졌다. 1898년 엄복(嚴復, 1853-1921)은 헉슬리의‘진화와 윤리’를 중국어로 변역하여 서구의 진화론을 소개하며 일본과 서양의 부강이 사상과 학술이라는 이른바 형이상학에서 비롯되었다 보고 사회진화론을 중국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진화론이 생물계뿐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중국을 거치면서 약자가 강자가 되기 위한 필요성을 촉구해주는 자강의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엄복, 양계초 등에 의한 초기 수용단계에서는 진화의 주체를 인민이 아닌 국가로 상정함으로 말미암아 민중들의 민권과 자유를 유보하고 말았다는 한계를 지니며, 아울러 제국주의적 침략의 논리를 분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동조하고 말았다는 결함을 지닌다. 그러나 엄복과 양계초 이후 중국에서 진화론의 전개는 장병린, 노신, 이대조 등을 거치며 진화의 주체가 점차 국가-민족-인민으로 변화해가면서 민주의 혁명을 가능케 하는 이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Ⅲ. 사회진화론의 한국에서의 기능1. 1880~90년대 개화사상과 사회진화론19세기 중엽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확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서구제국주의 세력의 침투에 위협을 느낀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과 부국강병을 급박한 국가과제로 설정하였다. 한국의 사회진화론은 서구로부터 직접 수용된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일본과 중국의 사회 진화론을 통한 재수용과정을 거친 것이다.) 한국에서의 사회진화론은 초기 수용단계에서부터 곧 바로 사회에 적용되는 전형적인 사회진화론의 형태로서 발전되었는데, 부국강병이라는 당시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목표와 구체적으로 연관되어 수용되었고 학문적인 성격보다는 계몽적인 성격을 띄며 소개되었다. 한국은 1870년에 들어 일본에 의해 강제 개국을 당하며 제국주의 침략이 가속화되는 동시에 개화라는 말이 선진적 인사들에 의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880년대 들어서는 중인 및 천인 출신의 신지식인들과 계몽적인 양반자제들에 의해 중국의 양무운동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은 개화사상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당시 개화사상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유길준(1856~1914)은 1880년대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후쿠자와 유기치’, ‘에드워드 모스’의 지도를 통해 사회진화론을 접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여 개화의 당위성을 사회진화론에 근거하여엄한 국제 현실을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당시 서구에서 유행하던 사회진화론을 가감없이 소개하였으며, 서구 진화론자들이 주장한 인종주의마저도 그대로 답습하였다. 이처럼 이시기 사회진화론을 유포한 지식인들은 서양인들이 지니고 있는 정복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편견까지 아무런 비판이나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다. 즉, 제국주의의 폭력적 성격에 대해 냉철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선망하면서 개화자강을 통해 제국주의의 대열에 가담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관점은 당시 대한제국 집권세력의 무능력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드러내주기도 하지만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국으로 진출하는데 은연중 기여한 셈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진해서 제국주의의 논리에 세뇌되어가던 자칭‘선진적 지식인’들의 몰주체적인 모습을 극명하게 대변해준다. 또한 이는 훗날 한국의 근대화가 모방적 근대화의 길을 걷게 만든 이념적 선구가 되었다.)2. 1905~10년대 자강운동론(실력양성론)과 사회진화론1890년대 중반 사회진화론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우승열패, 자연도태 등의 강자의 권리 개념이 단편적으로 전달되었다면, 1900년대 이후는 양계초의‘음빙실문집’을 수용하면서 좀 더 심화된 지식이 전달되었다. 즉, 1880·90년대의 유학생과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일부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있었지만, 그것이 널리 알려지고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한국에서 사회진화론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가 “애국계몽기”로 불리던 1905년부터 1910년의 시기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국권회복운동의 방법으로서 의병투쟁론과 자강운동을 제기하였는데, 사회진화론은 바로 이러한 자강운동의 이론적 기반으로 작용했다.)자강운동은 생존경쟁에서 약자의 부적자의 나라를 강자의 적자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실천운동적 시도로서, 이를 통해 20세기 초두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국가적 위기에 당면하여 그 원인을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에서 찾
아동의 독서능력과 독서흥미의 발달학번:성명:1.서론독서는 문자나 문장 등을 읽는다는 단순한 개념에서부터 저자의 사상과 감정의 의미 해득이라는 복잡한 개념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목적도 다양하여 그 종류 또한 기호해독의 입장에서 접근한 정의, 의미의 측면에서 접근한 정의, 커뮤니케이션 형태의 측면에서 접근한 정의 등 학자마다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독서란 글쓴이가 기호화 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독자의 뇌에 재생되도록 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면, 즉 읽을 자료, 독자의 지식, 생리적, 지적활동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독자의 마음속에 깊이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제부터 아동들의 독서능력과 독서흥미의 발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2.독서의 개념2.1.독서과정)애들러(M. J. Adler)와 도렌(C. Van Doren)은 독서의 수준을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2.1.1 제 1단계(초급독서)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라, 6세부터 기본적인 독서 레디네스가 갖춰지면 초등학교 말 또는 중학교 말까지 읽기의 기본적인 기술훈련을 통해 어휘력이 급속히 증가하고, 다양한 내용의 책을 독서하여 그 체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읽기 능력을 완성시키는 시기이다.2.1.2 제 2단계(점검독서)주어진 시간 안에 책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는 독서로 골라읽기와 표면읽기로 나뉜다.골라읽기는 표제와 서문, 목차, 색인 등을 통해 논의의 요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계통을 세워서 띄엄띄엄 골라 읽는 기술이다. 표면읽기는 읽기 어려운 자료의 경우 전체를 훑어보는 것을 말한다.2.1.3 제 3단계(분석독서)이해를 깊이하기 위해 철저하게 읽는 복잡하고 계통적인 독서로 독자의 상당한 노력이 필요로 한다. 읽기 시작하기 전에 우선 책의 전체적인 주된 부분을 파악하는 점검독서와, 책의 구조를 분석하는 내용해석, 독자가 저자와 의논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비평으로 나뉜다.2.1.4 제 4단계(신토피칼 독서)하나의 주제에 대하여게 타협 짓도록 한다. 명제를 세우고 일련의 질문을 만들어 저자에게 묻고, 저자의 대답과 대립되면 논점이 생긴다. 대립의견을 정리 분류하여 그 논점을 명확히 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주제에 대한 논고를 분석한다.2.2 독서의 목적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양을 쌓기 위하여, 특정분야를 연구하기 위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 정보와 수단을 얻기 위하여, 여가선용과 오락을 위하여, 인간의 사고능력 향상을 위하여, 시민으로서 자유스런 사회생활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을 읽는다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간은 정보(Information), 연구(Research), 여가(Recreation), 사고(Inspiration)를 위해서 독서를 하게 된다.3. 독서능력독서능력이란 지능만큼 소질적인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학력만큼 습득된 대로 있는 것도 아닌 지능과 학력의 중간에서 생기는 인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인자가 이루어지면 그 후의 학력은 그것을 기초로 하여 증진하게 되도, 증진된 학력은 다시 그 능력을 상승시킨다. 이 러한 피드백 과정 속에서 독서능력은 점진적으로 향상되어 가면서 전체적으로 발달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3.1 독서능력의 구성인자)3.1.1 글의 인지독서할 때 비약과 정류, 역행을 하는 안구운동을 조절하여 글의 행간 운동을 빨리하고, 정류 시간이나 역행 회수를 단축하는 능력인 안구 운동 조정력과, 문자를 인지하는 능력인 독자력과, 어휘를 인지하는 능력인 어휘력 등이 있다.3.1.2 글의 이해문맥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법력과, 문장이 전달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능력인 문장 이해력이 있다.3.1.3 독서의 반응과 전후의 사고 융합문장에서 받아들여진 의미를 비판하는 능력인 비판력과, 문장이 자극하는 정서적 감동을 음미하는 능력인 감상력이 있다.3.2 독서능력의 발달 요인)3.2.1 지능독서에 있어서는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고 관념과 구상을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문맥관계에 파악과 글 뜻의 이해, 문제 해결의 통찰과 가치 판단 등 독해있을 경우는 독서 능력의 발달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된다.3.2.3 흥미독서에 대한 욕구나 흥미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독서로부터 멀어져서 그 능력도 역시 발달하지 않게 된다. 도한 흥미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사람도 그 능력이 이상하게 발달하게 되어 인격적 조화에 결함이 생긴다.3.2.4 경험독서능력의 기초형성은 풍부한 생활 경험으로부터 얻은 정보의 기억과 풍부한 어휘의 습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경험의 배경이 부족한 사람은 독서에 대한 저항을 쉽게 느끼고, 의미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게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3.2.5 성격적(인격적)요인독서능력의 발달은 정상적인 사회적 적응, 정서적인 안정 및 성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3.2.6 교육적 요인아동?학생의 독서 능력을 올바로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부모가 책을 읽어 주는 등의 적절한 지도로 언어인지능력을 길러준다. 여기에 있어 아버지의 참가가 큰 몫을 한다.3.2.7 가정 및 사회 환경적 요인부모의 직업 차, 거주지 부근의 사회적 환경, 경제 상태의 차, 도시와 농촌 등의 지역차 등이 아동?학생의 독서 능력과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음은 바로 이러한 가정 및 사회환경적 요인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입증 한다.3.3 독서능력의 발달단계)독서능력은 일반적으로 연령과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달해 나간다. 이를 종합 해서 송영숙은 독서능력의 발달 단계를 크게 6단계로 나누었다.3.3.1 독서 준비기(~5.5세)출생후부터 만 6세 정도 까지로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동일한 어휘를 지적하고, 같은 음을 재생하는 능력과 지시를 듣고 그것에 추종하는 기능이 발달하는 시기이다. 독서에 필요한 생리적 또는 심리적인 여러 가지 요인이 발달하며, 독서에 필요한 기술, 정보, 흥미 등의 모든 형태를 습득하기 위한 준비기이다.3.3.2 독서 입문기(5~7세)이 시기는 독서 준비기를 거쳐 비록 한정적이긴 하지만 단어를 인지하는 글자의 기초학습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아동은 보통 음성 언어에서 문자세)초기에는 내용이 쉽고 간단한 문자의 경우 독립하여 스스로 읽기 시작하며 친근하지 않은 단어의 의미와 발음에 대한 초보적인 기술을 익혀 나가는 시기이다. 읽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충분히 이해도 하게 되면 안구운동도 부드러워진다. 특히 이때는 낱말에서 낱말로 읽어나가는 대이므로 속도는 아직 느리며 2~3개월 또는 5~6개월 걸린다. 후기에는 단어의 어휘력도 상당히 발달하고 새로운 낱말이 다소 나와도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글 뜻을 인지하는 능력이 획득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순독에서는 벗어나지만 문자 언어를 음성 언어로 바꾸어 의미를 파악하는 내면적 회화를 하는 것이 보통이며, 아직도 낱말에서 낱말로 읽어가는 시기이므로 보다 빠른 독서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3.3.4 전개 독서기(8~11세)독서 기술이 발달하여 속도도 빨라지고 읽은 글의 이해와 기억도 다소 완성되어진다. 내용을 대강 잡는 속도, 자료를 찾는 속도, 특히 상세하게 조사하기 위한 정독, 분석적으로 읽는 법등, 목적에 따라 적절히 읽을 수 있게 된다.3.3.5 성숙 독서기(12~15세)독서 기술이 한층 더 숙련되어 어휘의 인지가 빠르고 새로운 어휘의 해석이나 이래, 어구의 요점 파악 등이 휠씬 진보되며, 폭 넓고 다양한 유형의 독서 자료 선택과 그에 대한 효율적인 독서 기술이 한층 더 숙달된다. 또한 이시기에는 다독하는 경향은 감소되고, 읽은 글을 평가 또는 비교도 하게 되어 독서력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3.3.6 사색 독서기(15세~)독서 목적, 독서 자료에 따라 적당한 독서 기술을 구사하여 평가, 비교, 종합하고 사색하여본격적으로 창조적이고 연구적인 독서를 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4.독서흥미독서흥미란 능동적인 흥미로서 그것이 동기가 되어 그 목적을 달성하는 행동을 일으키는 방향성, 혹은 유의성을 의미한다. 독서 흥미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에는 욕구의 직접적, 간접적 충족, 욕구 불만의 보상, 현실도피, 모방심리등의 내면적인 요인과 도서체제, 독서자료의 입수조 생활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므로 개인의 생활 전반의 문화 수준을 좌우하고 개인의 인격형성에 본질적인 영행을 준다고 할 수 있다.4.1 독서 흥미의 발달 단계4.1.1 초현실적 반복 이야기기(2~6세)어린이가 주어지는 환경을 그대로 모방하는 결정적 시기이고 규범, 예의, 지식, 태도 등 생활의 기본적 습관의 자립심을 기르는 시기이다. 따라서 반복되는 자장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듣기를 좋아하며 단편적으로 동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한 이야기도 즐긴다.(그림책, 초현실이야기등)4.1.2 옛날 이야기기(4~6세)이 시기는 제1반항기라고 하며, 자기 주장만을 강조하고 떼를 쓰면서 어머니를 괴롭히는 단계로서 개인적인 태도변화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자기중심적인 시기이다. 이럴때 일수록 어린이의 주장을 무조건 억압하지 말고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구별을 이해시켜 선을 찬양하고 악을 증오하는 심정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조화되고 명확한 가치판단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즐겨 들려준다. 또한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상상세계에서 모든 일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좋다.(옛날이야기, 동화책, 그림책류등)4.1.3 우화기(6~8세)아직 자기중심적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생활환경이 가정에서 학교로 확대되어 새로운 환경에서의 행동규범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규칙에 주의하고 이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규칙을 순응하는 것이 선이면, 위반하는 것이 악이라는 선과 악의 가치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덕성을 명백히 하고 그 갈등을 즐기나 아직 타인의 도덕율에 의존하는 타울 도덕시대이다. 글을 읽기 시작하나 그림의 보조가 필요한 시기다.(옛날이야기, 그림책류, 우화, 일화등)4.1.4 동화기(8~10세)미분화된 자기중심적인 심성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현실을 이해하고, 자주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자기만의 생활을 개척하는 시기이다. 개인적응이 주가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주관과 객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