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절대왕정에 대한 이해: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0.04.11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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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수업시간에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프랑스 절대왕정을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1.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 속 과도기적 정치형태, 절대왕정
2. 루이 14세 이전 프랑스의 절대왕정 형성과정과 특징
3. 루이 14세의 프랑스 절대왕정
4. 태양왕 루이 14세의 가장 모범적인 절대왕정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 속 과도기적 정치형태, 절대왕정
16~18세기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전제군주가 지배하던 시대를 절대주의 시대라고 하며, 그 시기의 정치 체제를 절대왕정 또는 절대군주제라 한다. 이러한 절대왕정은 전제정치, 중상주의정책, 관료제, 상비군, 조세제도, 왕권신수설 등을 특징으로 하는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국왕과 시민계급의 결합으로 나타난 과도기적 정치 형태였다. 이 시기에는 여전히 봉건사회의 잔재들이 남아있었으나,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초기 자본주의가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시민계급의 성장으로 근대문화를 형성하며 근대유럽사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유럽의 주도권은 지리상으로 발견을 선도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로부터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으로 옮겨졌고, 16세기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였다. 이 레포트에서는 유럽 중에서도 프랑스에서의 절대왕정에 대해서 그 형성과정과 특징, 한계와 내재적인 모순 등을 살펴보며 ‘절대왕정’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2. 루이 14세 이전 프랑스의 절대왕정 형성과정과 특징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발전은, 영국과 1388년부터 1453년까지 약 백년간 계속되어온 ‘백년전쟁’이란 오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왕권의 강화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는데, 전쟁을 수행하는 긴급사태에서 성직자, 귀족, 도시대표로 구성되어 왕권을 제약했던 신분의회를 무시하고, 전쟁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을 만들고, 또 중세의 국왕처럼 기존 법을 수호하거나 시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법을 자의적으로 제정하였으며, 외적을 방비해야한다는 구실로 언제나 거대한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세수입으로 제정을 확보하고, 신분의회의 동의를 얻어 상비군을 보유하게 된 국왕은 근대적 민족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 영국과의 전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민족의식을 이용하여 교회와의 싸움을 주도하였다. 성직자임명권을 두고 서로 누구에게 있는가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국왕은 교회를 장악하여 교회가 일반 민중에게 왕권신수설을 가르치고 면세의 특권을 누린 교회에 세금을 매기길 원했지만, 교회측에서는 성직자임명권을 국왕에게 빼앗기고 방대한 교회 재산에 세금이 부과된다면 교회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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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무. 2004. 두리미디어.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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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학서. 2006. 청아출판사. 이야기 세계사 2.
민석홍. 2003. 삼영사. 서양사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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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림. 2005. 태양-왕에서 인간-왕으로: 정치사의 부활과 루이 14세 연구. 서양사론 8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