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의 기사는 한겨례 신문 9월 11일 자에 실린 것이다. 기사는 로스쿨 인가 심사 기준 중, 저소득층 입학생에 대한 배려에 대한 평가 점수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기사에 따르면 인가 심사 기준 1000점 중에서, 저소득층 입학생에 대한 배려 점수는 55점에 불과하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5.5점에 불과하다. 물론 교원의 확보 여부와 교육과정의 타당성이 인가 심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여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인가 심사 기준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하는 부분은, 그 교육기관이 교육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항목이지,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항목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교원 확보와 교육과정의 타당성에 절반 이상의 점수를 배정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서 인가 심사 기준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정도를 문제 삼는 것은 로스쿨의 특성에 기인한다.즉 로스쿨이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며,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전제하고 기사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의 위치가 중상계층 이상이라고 생각했을 때,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가 없는 로스쿨은 중상층 계층이 차지하는 부의 재생산 기관에 불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인가 심사 기준이라는 것은, 학교 설립의 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에 불과하다. 즉 설립 기준이나 운영 지침이 아니라,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순위용 자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가 심사 기준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것이 “권고안”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여, 기관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이다. 즉 인가 심사 기준안에 따라서, 로스쿨의 향후 성격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사는 5.5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항목이, 로스쿨의 성격을 귀족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로스쿨의 도입은, 현재 학부체제의 모순을 고치기 위해서 미국의 로스쿨을 모방해서 진행되고 있다. 즉 현재을 바탕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보장받는 직군을 말한다. 즉 일반적인 노동자와 달리,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독점적인 보상을 받는 직군이다. 전문직 성립 요건에는 ?정형화된 이론적 배경을 갖추어야 한다. ?장기간의 훈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 ?엄격한 표준에 의해 선별되어야 한다. ?사회 변화에 맞춰 표준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등이 있다. 또한 이런 여러 요건과 더불어, 사회 변화에 더불어, 그 전문성을 유지·신장해야 하는 자기 개발 능력의 요구가 포함된다. 이를 고려한다면, 교원 연수는 교원의 전문성을 유지·신장하여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지키며, 학생들에게 보다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연수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크게 2가지 영역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매년 새롭게 쏟아지고 있는 교육학·교육공학의 연구 결과물과, 전공영역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다. 지식 기반 사회에서 지식은 1년마다 150퍼센트씩 늘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각 영역의 최신 연구 결과물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그 지식의 전문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법과 연수와, 교과 영역에 대한 연수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즉 교원의 끊임없는 재교육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시대에 뒤쳐져버릴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교육의 질에 대한 회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두 번째는 교원 개인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서다. 즉 정보화 시대에서 연수는, 자기 개발의 기회가 되어줄 수 있다. 즉 교육 복지론 적인 측면에서, 교원에게 유의미한 복지로서 연수를 평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타성에 젖을 수 있는 교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함으로서 교원의 건전성을 유지시켜준다. 이런 건전성의 유지는 표준에 부합하는 교원을 양성하는 효과를 만들어 준다.물론 현재에도 교원 연수는 이루어지고 있다. 사전 연수와 현직 연수가 병행되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연수 방법 또한 다양화되고 있다. 하지만 연수의 수행 유무에 의능과 별도로,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을 증가시키는 역기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에 와서는 논술 대비 전문 학원이 등장하여, 족집게 식으로 논술을 가르치기도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논술 고사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능이 변별 기준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급조된 변형 본고사라는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나는 이런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중등 교육 과정 속에서 논술에 대한 대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상 한국의 형식적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기란 힘들다. 우선 읽기에 대한 지도가 힘들며, 학생들의 글에 대한 첨삭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지도 교사 또한, 논술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술학원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은 당연할 것이다.이런 논술고사의 단편 성을 지적할 때, 많이 거론되는 외국의 사례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다. 현재 란 제목으로 바칼로레아의 질문과 답안을 모은 책이 발간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의 바칼로레아에 대한 선망은 매우 높다. 특히 바칼로레아에 나오는 지문과 질문의 날카로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아서, 그 지문들이 대학 교양 과목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답안의 경우는 그것이 선별된 답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수준이 높다고 해서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칼로레아를 말할 때 잊어서 안 되는 사실은, 프랑스의 경우 중등 교육과정에 철학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글쓰기에 대한 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교육 과정에서부터 논술에 대한 대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히 그 수준 차이를 말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면 과제는 논술고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논술/글쓰기를 학교 교육과정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논술고사의 중요성을 말한다 하더라도 헛된 구호로 그칠 것이다.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평가는 과정을 통제·관리하는도에 따라 신분이 결정된다면, 그 결정의 평등성을 담보하는 것은 결국 수준 높은 공교육뿐이다. 모든 취직 시험에, 토익 점수가 반영되는 시점에서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직무유기일 것이다.또한, 중등교육에 만연적으로 퍼져있는 민족주의에 대해 사회적인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어를 하나의 언어로 판단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국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국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것을 “사용 가능한 도구”로 관찰함으로서, 언중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일이다. 또한 민족주의가 가지는 편협성과,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어 줄 것이다.나는 교육을 현재의 가치를 배양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 세계를 조정할 수 없는 전제로 판단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것의 조정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교육은 시행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가 영어 공용화라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를 무시하는 것이, 본질적이고, 전인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인적 교육이란 결국, 현 세계의 가치에 알맞은 인간을 마련하는 교육이다. 결코 정태화된 가치 기준을 그곳에 적용하는 것을, 전인적인 교육으로 판단하는 것은, 논의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육을 너무 이상적으로 평가하는 것인데, 그 이상성은 교육의 사회적 가치를 떨어트릴 뿐이다. 나는 영어 능력이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다면, 그에 대한 교육도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그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들에 대한 교육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함을 전제로 해야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국어 교육이 반드시 영어 교육보다 필수적이라는 말로 환원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과 목 명 : 교육학 입문교 수 명 : 이 준 수제 출 일 : 06. 10. 23.한겨례 신문 10월 16일학 과:문헌정보학과학 년:3 학 년학 번:2002312435성 명:이 승 욱기사요 장점을 지닌다. 이 상담과정의 도입만을 통해서도, 현 가정환경조사의 한계점들을 많은 부분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전문적인 상담 능력을 가진 교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 교원 연수 과정에 상담 과정을 반드시 포함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상담의 활성화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학급당 2명의 담임을 두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의 부담임제도와 달리, 교과목과 학생들에 대한 지도를 분담하는 담임을 2명을 임명하는 것이다. 이는 첫째, 교과목의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장점 둘째 학급인원의 실질적인 감소란 장점을 가진다. 또한 더 중요한 측면에서 학생들에 대한 접근을 다양화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세컨드 오피니언적인 접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한 학생에 대한 단일한 평가 기준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1학급 2담임제도라면, 교원과 학생·학부형간의 대화에서 좀 더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의견을 상대화함으로서, 하나의 의견을 절대화하는 것에서 비롯하는 오류들을 막을 수 있다.또한 간접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인 판단과는 달리 직접적인 접근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간접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전 수업 시간에 봤던 고래를 그리는 아이 이야기는 어른들의 몰이해성에 대해 비판적인 접근을 펼쳤지만, 아이들의 작문이나 그림을 통해서 학생이 처해 있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아이들에게 심적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왜곡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두 방법은, 각기 장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방법만을 수행하는 것은 부적당하다. 이 두 가지 접근을 적절하게 상호보완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⑤ 결론전술한바와 같이 가정환경조사는 형식적인 공교육이, 비형식적인 가정교육의 환경성을 파악하고, 이를 학생다.
과목정보 : 한국 문화의 이해. 김대식. 06.11.15 /Subject : 국립 중앙 박물관 견학 후 감상문 / T I t l e :『우리의 협소를 넘어서』우리가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 사회 성원들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가장 선결되어야하는 것은 성원들 사이에 공유되는 역사 경험을 정의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타자다. 극단적인 자생 론을 펼치지 않는 이상, 한반도라는 지역에서 유통된 문화 속에, 중국의 영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영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모방과 일방적인 수용으로 볼 까닭은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문화는 물 흐르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는다. 문화의 전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기력한 모방이 아닌 적극적인 변형과 대응이다. 우리의 문화를 말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타자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라고 생각한다.이 관점에서 흥미로웠던 것이 인도네시아 관이었다. 우리의 역사 인식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국립 중앙 박물관이라는 중요한 전시관에 인도네시아의 유물이 전시되는 것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두 문화의 직접적인 연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시아라는 전제 속에서, 중국이라는 타자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두 문화의 연관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타자에 대한, 여러 역사 공동체들의 대응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다면, 그를 통해서 우리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협의의 우리를 만든다면 은폐 될 수밖에 없는, 과거의 다양함과 변경의 이채가 있다. 이러한 다양과 이채를 배제하고 남는 우리 입맛에 맞는 한줌의 문화를 우리의 전통이라고 간주함은,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배타적으로 만들 뿐이다. 우리의 현재가 배타적이 될 때, 우리라는 정체성은 굉장히 협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협소의 악순환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인도네시아 관은 매우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분명 박물관은 2차 사료를 통해서 잊혀 진 과거의 사실들을 재구성하여, 역사적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박물관은 우리가 무엇을 우리의 과거로 기억하고자 함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공간이며, 더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우리를 누구로 정의내리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 내림’의 과정은 언제나 강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교과서를 통한 민족사적 역사 학습과 연계될 경우, 박물관은 “빛나는 우리 역사”를 예증하는 공간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역사 형성 과정은 오히려 역사를 협소하게 만들 뿐이다. 나는 과거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일군 삶의 총체가, 우리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문화의 아주 작은 부분만이, 유물의 형태를 갖고 현재까지 전달된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그 상징의 많은 부분들은 우리의 삶으로 전수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징들의 많은 부분이, 오히려 유물이라는 명확한 사물 때문에 가려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광개토대왕비의 거대함만으로 ‘자랑스러운 고구려’를 상상해낸다. 이러한 상상은 과거의 다양과 이채를 은폐하고, 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방해한다. 고구려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다만 넓은 영토에 만족하고 민족의 자존심만으로 박제하는 것이다.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해주는 공간이어야 하며, 또한 더 나아가 우리가 유물 때문에 보지 못하게 되는 과거의 다양함과 변경의 이채들의 상징들을 제시하는 공간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상징의 다양함과 이채로움이야말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어 와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만 박물관이 진실로 목표하는 것, 즉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과목정보 : 한국 문화의 이해. 김대식. 06.05.27 /T I t l e : 성균관대 박물관 전시회 『집안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견학 감상문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고구려에 대한 관심은, 가히 열풍 적이다. 세편의 고구려 사극이 동시에 방영되고 있고, 그 시청률 또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시장성이 없는 것은 취급하지 않는 미디어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고구려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장성이 있는 ‘역사 상품’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품성의 근간에는, 동북공정에 대한 국민적 반발과 민족주의가 있다.이런 상황에서 학계 일각에서 고구려 열풍의 일회성을 진지하게 지적하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동북공정과 고구려 열풍의 일회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고구려인가?”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동북공정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왜 하필 고구려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런 주기적 반복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고찰로 귀결되어야만 한다. “고구려는 한국판 시오니즘의 표출인가?” 아니면 “잃어버린 주체성에 대한 회귀 본능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고민이 배제된 열풍은 고구려에 대한 역사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위험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이성적 대응 없이 감정적 대응만 존재하는 비정상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고구려를 국사로 인식하는 것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조차 없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고구려사를 국사로 인식하는 것은, 단일 민족적 회귀본능과 왕조사 위주의 단선적 역사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 결과에 의함이다. 민족이라는 이름아래서, 고구려에 대한 진지한 역사 인식은 오히려 없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고구려사 인식 수준이라면, 중국 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경박한 상대주의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중국의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를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지만, 우리의 논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기묘한 형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라리 분노할 만한 “꺼리”였는지도 모른다.이런 상황에서, 성균관대 박물관에서 『집안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이란 이름으로 전시회가 열렸다. 식민사학의 대표주자인 후지타 료오사쿠가 1930년대에 찍은 집안 고구려 유적들의 유리원판사진들의 첫 공개였다. 발굴이후 급속히 진행된 고구려 유적의 훼손을 고려한다면, 이 유리 원판 사진들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하지만 그 사료성에 비해 유리원판사진의 보존은 매우 열악하였다. 많은 사진들은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으며, 그 정도 까지가 아니더라도 식별이 불가능하게 훼손된 것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유리 원판 사진에 대한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어, 2006년에는 성균관대를 중심으로 중국 집안 현지에 대한 재촬영이 이루어졌다.
『누가 악을 허락했는가?』독자의 관심 유도어느 날 나치의 비밀경찰이 불만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거리로 나갔다. 곧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곤, 조심스레 다가가 총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경찰에게 이런 곳에서는 말할 수 없다 했다. 경찰은 남자가 불만분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경찰을 데리고 호텔로 갔다. 남자는 커튼을 치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남자의 언행을 보고 반동분자임을 확신했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남자가 마침내 경찰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말했다.“매우 위험한 의견이지만, 사실 나는 총통을 지지하오.”논의 주제 설정 및 자신의 견해 제시불만분자가 아니라 오히려 열렬한 지지자가 조심스러워야 하는 나치 체제의 모순에 대해 말하는 우스갯소리다. 물론 우스개는 사실성을 담보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우스개는 당시 독일국민들은 나치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였을 뿐이란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2차 대전 중 희생된 유대인은 600만 명이 넘는다. 그 참상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홀로코스트란 신조어를 만들어야만 했던 전례 없는 참극이었다. 하지만 그 실행은 나치와 그 친위대가 했고 일반 대중은 그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정신 이상자가 아닌 한, 그런 악행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에 대해 역사가들은 반대한다. 나치는 매우 광범위한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았고, 홀로코스트를 수행한 것은 이런 평범한 독일인들이었다는 것이다.600만이란 희생자의 수보다 더 아연한 것은, 당시 독일국민들이 나치의 강제력에 강요받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충성하면서 그런 극악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왜 독일국민들은 그 우스꽝스러운 인물에게 자신들의 자유를 헌납하고 충성을 바쳤으며, 인간의 양심에 전적으로 반하는 “악”에 동참하였는가? 이러한 나치에 대한 대중의 동의는, 대중의 우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우매가 파시즘이란 특수한 상황에서는 전쟁 이전의 경제규모를 되찾았으며, 정치도 안정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은 히틀러를 미치광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에 의해 미국의 단기차관이 빠져나가자 상황이 역전되었다. 경제는 곤두박질쳐서 실업자 수는 600만을 넘었고 정치는 혼란에 빠졌다. 히틀러는 이 혼란 속에서 미치광이에서 독일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나치는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서 대중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나치정권을 제 3제국이라고 하며 시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으려 했다. 이와 동시에 반유태주의와 반공산주의를 펼쳤다. 나치는 이처럼 결집과 배척이라는 두 방법을 통해 “게르만 민족-우리”라는 개념을 독일국민들에게 심었으며, 이 “우리” 개념은 열렬한 대중운동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우리”에 소속되어있다는 느낌은, 혼란 속의 독일 국민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었다. 또한 히틀러의 지도 아래서, 대중은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정서적 만족감과 무책임이, 무비판적 순종과 자발적 동의란 굴절을 낳은 것이다. 이 심리적 굴절이 당시 독일국민들이 거리낌 없이 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독일국민들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정에서 다정한 아버지이며 사회에서 존경받는 시민인, 평범한 사람이 양심의 가책 없이 홀로코스트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위와 같은 현상은 나치즘이라는 특수한 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종류의 집단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집단이 제시하는 가치에 대해 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이 제시하는 가치와 자신의 가치가 다를 때 개인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그 심리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인은 집단의 가치를 수용하거나 집단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집단에 소속되어있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 아닌 그 집단의 판단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의 모순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대중의 경우는 이것이 더욱 심각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대중은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동의함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비판력을 잃고 수동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대중을 압박하는 것들은 대중에게 이익이 되는 모습/상관없는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다. 비판을 상실한 대중은 이 포장을 풀어헤칠 수 없다. 이것이 대중이 영악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실상 우매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은 대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이 대중에 함몰될 때, 모순에 둔감해짐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명함이란 오로지 개인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인 것이다. 물론 이는 만약 개인이 현실에 대해 무비판적이라면, 그는 이미 대중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가능한 반론 및 이에 대한 옹호이처럼 개인만이 현명할 수 있다는 논의는, 현재 사회에 대한 절망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에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의견이 채택된다. 곧 현대 사회에서 권력은 다수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그러한 대중이 현명할 수 없고 오직 개인만이 현명할 수 있다면, 이 사회의 모든 결정은 불합리한 것이 되며, 그것은 지나치게 절망적이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인 판단의 자유가 제거된 사회의 결정은 항상 불합리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가장 민주화된 국가라고 자처하는 미국에서 일으킨 이라크 전쟁만 보더라도 명확하다. 9·11테러 이후 많은 미국 시민들은 “우리”의 위험을 느꼈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열렬한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문제를 직시하기 보다는 언론에서 제시해준 의견을 수용하였고, 애국심에 경도되었다. 이는 개인이 스스로 판단함을 포기한 결과, 전쟁이라는 악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또다시 찬성한 것이다. 절망은 그 극복을 논의할 수 없보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개인성을 최대한 보장해준다는 것에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의해 핍박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이를 통해 개인이 대중으로 함몰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 본질을 포기한 순간, 어떤 제도 안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언제라도 다시 한 번 악마가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나치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느냐란 질문에 대해 Detlev Peukert은 “......일반 국민들은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더욱 예민해야 하고(중략) 또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를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보다 건강한 사회 건설의 기반이 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오로지 비판을 수행할 때만 현명해질 수 있고,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이 다시 시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독히도 개인적인 과정이다.Title : 누가 악을 허락했는가?어느 날 나치의 비밀경찰이 불만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거리로 나갔다. 곧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곤, 조심스레 다가가 총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경찰에게 이런 곳에서는 말할 수 없다 했다. 경찰은 남자가 불만분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경찰을 데리고 호텔로 갔다. 남자는 커튼을 치고 문이 잠긴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남자의 언행을 보고 반동분자임을 확신했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남자가 마침내 경찰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말했다.“매우 위험한 의견이지만, 사실 나는 총통을 지지하오.”불만분자가 아니라 오히려 열렬한 지지자가 조심스러워야 하는 나치 체제의 모순에 대해 말하는 우스갯소리다. 물론 우스개는 사실성을 담보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우스개는 당시 독일국민들은 나치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였을 뿐이란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2차 대전 중 희생된 유대인은 600만 명이 넘는다. 그 참상을 표현할 말이 없어서 홀로코스트란 신조어를 만들은 반대한다. 나치는 매우 광범위한 독일인들의 지지를 받았고, 홀로코스트를 수행한 것은 이런 평범한 독일인들이었다는 것이다.600만이란 희생자의 수보다 더 아연한 것은, 당시 독일국민들이 나치의 강제력에 강요받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충성하면서 그런 극악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왜 독일국민들은 그 우스꽝스러운 인물에게 자신들의 자유를 헌납하고 충성을 바쳤으며, 인간의 양심에 전적으로 반하는 “악”에 동참하였는가? 이러한 나치에 대한 대중의 동의는, 대중의 우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우매가 파시즘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인류 보편적 것인지를 알아볼 필요는 있다. 파시즘이란 체제의 독특성을 인정하지 않은 접근은 자칫 편협한 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1차 대전이후 독일은 안정 국면에 있었다. 종전 6년 뒤에는 전쟁 이전의 경제규모를 되찾았으며, 정치도 안정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은 히틀러를 미치광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에 의해 미국의 단기차관이 빠져나가자 상황이 역전되었다. 경제는 곤두박질쳐서 실업자 수는 600만을 넘었고 정치는 혼란에 빠졌다. 히틀러는 이 혼란 속에서 미치광이에서 독일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나치는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해서 대중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나치정권을 제 3제국이라고 하며 시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으려 했다. 이와 동시에 반유태주의와 반공산주의를 펼쳤다. 나치는 이처럼 결집과 배척이라는 두 방법을 통해 “게르만 민족-우리”라는 개념을 독일국민들에게 심었으며, 이 “우리” 개념은 열렬한 대중운동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우리”에 소속되어있다는 느낌은, 혼란 속의 독일 국민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었다. 또한 히틀러의 지도 아래서, 대중은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정서적 만족감과 무책임이, 무비판적 순종과 자발적 동의란 굴절을 낳은 것이다. 이 심리적 굴절이 당시 독일국민들이 거리낌 없이 악을 이다.
■핵심용어 : 평등주의■현안문제 : 한국 사회의 평등주의가 바람직하게 작동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기본전제 : 평등주의는 사회적 가치(권력·지위·부)를 평등하게 분배함을 추구하는 이념이다.■근 거 :한국 사회는, 불평등구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분노와 적개심) 반응하며,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가 낮다.이는 한국 사회가 세계적으로 높은 평등 지향적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평등주의를 완화할 사회 기재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물론 평등주의는 높은 성취동기로 나타나,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한국 사회의 평등주의는 ‘책임과 의무’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논의의 진지성을 훼손하고, 개인적·사회적 갈등을 가중시킨다.① 성 취 동 기 -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비리와 부정이 만연하게 된다.② 시기와 질투 - 성공한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판단한다.③ 분노와 불신 - ②가 사회적으로 확산된 형태다.④ 존경의 철회 - ③에 의해서, 사회적 지위·권위에 대해 부정적이 된다.이는, 각종 대안의 공신력을 약화시킨다.⑤ 자 기 부 정 - 실패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긍정적 노력을 약화시킨다.또한 이러한 의 심성들은, 사회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으로 나타난다.① 목적과 수단이 전치되어, 연고주의, 패거리주의, 기회주의가 나타난다.② 의무감이 결여된 한국형 자유주의가 만연하게 된다.③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게 된다.의 결과, 평등주의가 내세우는 사회적 가치의 분배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힘들다.한국의 평등주의가 ( → )나타나는 까닭은, 평등이 자유가 아닌, 권리와 쌍을 이루었기 때문이다.이는 역사적으로 자유가 억압받고, 자유주의가 약했기 때문이다.① 식민지배와 한국 전쟁으로 인해서, 시민계층(자유주의 세력)이 부재했다.② 권위주의 정부가 자유를 평등하게 억압하였다.③ ①과 ②에 의해서, 중산층이 부정적인 형태(교양 없는 중산층)로 형성되었다.④ 자유-평등의 결합이 강조되는 경향이, 외환위기 이후 좌절되었다.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효율과 분배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데, 자유가 결여된 평등주의는 그 대안이 되어줄 수 없다.■결 론 :그렇기 때문에, 평등은 자유와 함께 이행되어야 하며, 상호 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논의의 깊이에서 비판을 시작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 사회에 평등주의가 만연하다고 전제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 사회가 평등한 사회인가는 증명하지 않는다. 즉 한국 사회가 불평등 구조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하지만,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인가는 논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평등주의가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여 나타난다면, 논점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변혁이 되어야 한다. 옳지 못하다. 책임과 의무가 배제된 것은, 오히려 자본가와 정치권력의 결합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기실, 이러한 경박한 자유주의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경박한 자유주의가 평등주의의 왜곡으로 인해서 형성되었다고 말하지만, 이 인과성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자유주의 세력이 자생하지 못하였고, 그 빈곳을 교양 없는 중산층이 채웠다( -③). 여기서 말하는 교양이 없다는 것은, 자유주의적 가치인 책임과 의무를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과 의무가 결여된 자유가,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강화했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평등주의가 강조된 까닭은, 심성적 습성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방종에 가까운 자유에 의해 형성된 사회의 불평등 구조 때문이다.
君子之德 風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小人之德 草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草上之風 必偃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논어》〈안연(顔淵)〉풀김수영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강의명 : 학술적 글쓰기교수명 : 원 만 희[4조 발표 보충 자료]Subject : 대중은 우매한가?T I t l e : 혁명 과정에 살펴본 대중의 우매[4조구성원]학 과학 년학 번성 명?1이승영1김혜민1전세종1이주희1김봉수문헌정보학과3이승욱1. 문제 현상권력이 일단 국민의 손에 들어왔을 때 다수의 지배가 허용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다수가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들에게 가장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다수가 지배하고 있는 정부는 정의에 입각할 수 있는 정부라 할 수 없다.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위의 글은 소로우의‘시민의 불복종’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소로우는 현재 민주주의 정치가 ‘다수’의 편의에 맞춰서 운행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즉 다수의 편의에 맞추는 것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는 다수의 판단이 아닌 양심에 기초해서 운용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물론 소로우의 문제제기는 옳지만, 각자의 이해가 상충했을 때 가장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결정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는 밀의 의견도 옳지 않을까?하지만 문제는 다수의 결정이 소로우가 말한 것과 같이 다수의 편의를 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수의 손해를 위한다는 것에 있다. 즉 다수의 결정이 다수의 이익과 배치되어 나타나는 것이다.현대 민주 사회는 모든 개인이 똑같은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의 최대 집합인 대중은 현 상황에서 소로우가 말한 것과 같이 가장 힘이 센 거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인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상황을 지지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우리조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대중 속에서 개인은 자신들의 주체성을 망각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지지하게 되는 까닭이다.2. 혁명☞혁명은 대중의 힘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는 사건이다. 즉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 대중들이 극도로 분노하고, 그 분노가 폭발적인 방향으로 분출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은,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문화적 자유와 경제적 이익을 성취하기 위하여 가장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혁명이 쿠데타와 달리 정당할 수 있는 것은, 혁명이 ①사회 성원들 사이의 동의를 얻고, ②사회 성원들을 위하여 진행되기 때문이다. 즉 쿠데타와는 달리 혁명은 반드시 다수(대중)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며, 다수를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하지만 현실에서 혁명의 결과는 반드시 다수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소수 계층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도 많고, 극단적으로는 혁명에 의해 독재체제가 수립되는 경우도 있다.대중이 가장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인, 혁명이 이렇게 변질되는 까닭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 대중이 과연 현명한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3. 러시아 혁명사)☞ 혁명전의 러시아경제적 배경당시 전 유럽 중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짜르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 진행에 따른 경제적 모순 누적정치적 배경중간 계급에 대한 정치적 양보가 거의 없는 상황(의회제도/선거 미약)1차 세계 대전 참가에 따른 불만 가중문화적 배경노동자들에게 미르(농촌 공동체) 공동체 의식이 잔존해 있는 상황에 의해서, 공동체적 활동에 익숙해져 있음☞ 혁명의 과정2월 혁명① 제1차 세계대전 참전 ? 동원령, 군수공업의 강화 ? 민중의 생활 압박② 입헌민주당를 중심으로 전쟁 수행상의 실책에 대해 비판③ 배급제 실시 ? 시민들은 빵을 요구하며 시위에 참여 ? 군부마저 반란④ 니콜라이 2세 퇴위 ? 임시정부 설립?① 임시정부 계속 전쟁정책 펼침 ? 대중의 불만이 높아짐② 10개항의 4월 테제 발표 ? 볼셰비키 : 임시정부에 대항③ 볼셰비키 : 수도의 군대와 노동자들의 무장시위운동을 조직군사혁명위원회가 설치되어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④ 레닌을 의장으로 하는 인민위원회가 정부로 선임10월혁명☞ 혁명의 결과① 혁명은 성공하기 힘든 조건에서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현실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줌제 3세계 근대화에 하나의 역할 모델로 작용② 그러나 일당 중심의 독재 현상이 나타남 ?당에 의한 권력과 부 독점노동자를 위하는 국가에서, 노동쟁의를 금지하는 모순 ?폭력적 진압4. 대중의 우매를 조장하는 외적 요인☞ hegemony사 전 적 의 미: 지배권, 맹주권, 패권일반적인 사용: 정치적 지배헤게모니의 이론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그람시의 작업을 통해서?강제력만이 아니라 사회제도, 관계, 관념을 이용하여 피지배 계급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그를 통해 현상을 유지하는 수단 (대중이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상식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함)?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①엘리트는 제도, 이념, 문화 /군대, 경찰, 감옥 등을 통하여 다른 계급을 어떻게 지배하는가?②지배집단이 현상유지를 위해 ⓐ강제력을 사용하는 방식ⓑ피지배계급의 자발적인 동의를 창출하는 방식☞ 프로파간다/상징조작프로파간다라틴어로 선전(宣傳)을 의미하는 프로파간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흘려서 의도하는 방향으로 설득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때 매우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신교와 구교 간의 선전이 활발했으며 미국,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선전활동은 중요시되었다. 20세기 들어서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선전활동은 비약적으로 발달했으며, 대중의 현명한 판단을 어렵게 하고 있다.상징조작지배자가 여러 종류의 상징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질서를 형성·유지하고, 나아가 이 질서에 피지배자를 자발적으로 참가·복종시키려는 시도상징의 종류예 시언어 상징자유·평등·박애 등의 추상적 개념물적 상징기념비·국기·조상(彫像)·제복 등조형적 상징파시스트류의 경례 등행동적 상징행진 등상징조작의 전형적 기술의 하나가 사람들의 태도·행위·가치관을 미리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조직적 커뮤니케이션활동이라고 하는 ‘정치선전’이다.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선전기술의 고도화로 인하여 현대사회에서는 상징조작의 여지가 확대되고 있다.5.대중의 내적 약점☞ 군중 심리군중 속에서 개인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고 개인의 이익을 망각하도록 만드는 병리적 심리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