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이제 여름이다. 점점 더 더워지는 이런 날씨에는 학교 안에서 있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일주일에 나흘 수업이 있는 소위 말하는 주사파다. 작은 핑계만 있어도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전쟁기념관으로의 답사는 엄청난 행운 이였고, 독립기념관까지라도 한번에 날라 갈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교수님과 함께 떠나는 답사를 기대했지만 교수님의 사정으로 인해 아쉽지만 개별적으로 가야만 했고 교수님을 졸라 아이스크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나의 빛나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주사파의 이점을 살린 6월 27일 금요일에 친한 친구를 30분간 설득하여 우리는 전쟁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도로는 한산했고 우리는 소풍 나온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밖에 때때로 보이는 미군들이 우리로 하여금 거의 다 도착했음을 암시해 주었다. 드디어 전쟁기념관에 다다랐다. 정문에는 사람들만 도보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북문으로 들어갔다. 마침 전쟁기념관에 주차장이 함께 있어서 그리 싸지는 않지만(시간당6000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띈 건물의 이름은 전우회관이라는 곳 이였다. 우리는 거기가 전쟁기념관인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 엄청난 건물을 보고 금세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report를 쓰기위해 오긴 했지만 이왕 온 거 구석구석에 있는 먼지까지 싹 다 보자고 친구에게 권유했고 마침 친구도 할일이 없었는지라 그렇게 하자고 했다.우선 본 건물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념관 앞 광장을 살펴보기로 했다.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정문으로 들어 올수 없었던 나는 정문 쪽으로 향했다. 정문에서 주차장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고 걷다보니 작은 박물관이 아니라 정말 전쟁을 기념할 만한 곳이 구나 라는 생각을 했으며, 돈 많이 벌어서 이런 곳에서 살 거라는 친구의 말을 비꼬면서 정문 앞에 도달했다. 정문에서 본 기념관은 정말 웅장했고 정문에서 일직선으로 기념관의 정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어있는 듯 보였다.정문을 등에 지고 왼편으로 이상한 것이 보여서 가보니 ‘형제의 상’이라는 동상이 있었다. 이 동상의 모습은 말 그대로 두 명의 형제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 이였다. 동상 옆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육군 장교인 형과 인민군 군인인 동생이 6.25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 되었다고 했다. 말이 되는 소린가!!? 같은 민족이 둘로 나누어져 서로를 겨누는 것도 서글픈데 피를 나눈 형제가 서로의 목숨을 노리게 된 사건이 마치 한반도의 한 가족인 남한과 북한의 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형제의 상 뒤편으로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상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두 개의 동그라미 안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뭐라고 표현을 하기 어려울 모양인 것 같다.분수대가 있는 예쁜 연못을 가로질러서 멀리보이는 커다란 돌을 향해 다가갔다.그 비석의 이름은 광계토대왕릉비였다. 멀리서 돌이라고 한말이 떠올라 조금 부끄러웠지만 돌은 돌이였다. 진품은 아니었지만 대왕님의 북방토벌의 혼이 느껴졌다.다음으로 간곳은 야외에 설치되어있는 전시실 이였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있어서 앞으로의 답사가 더욱 기대가되고 있을 찰나에 눈앞에 보인 것은 여러 대의 탱크와 비행기, 미사일, 곡사포, 방사포 등 이였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대충 옥외 전시실에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M4A3 전차 - Tank (U.S.A)T-34 전차 - Tank (U.S.S.R)C-46 수송기 - Transport (U.S.A)C-123 수송기 - Transport (U.S.A)B-52 폭격기 - Bomber (U.S.A)호크, 지대공 미사일 - Surface-to-Air Missile, Hawk (U.S.A)132mm 방사포 - Multi-Rocket Launcher (U.S.S.R)S-2 해상초계기 - Serch-Patrol (U.S.A)위의 무기들 말고도 조금 더 있었지만 나의 기억력으로는 이것이 한계였다. 엄청나게 멋진 전차들과 비행기들의 나이는 나보다 많았고 무기의 기술력이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전시되어있는 미사일을 보니 북한의 노동미사일과 대포동 미사일이 떠올랐다. 왜 만드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옥외전시관을 둘러본 우리는 조금 발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이렇게 보다간 밤을 새서도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드디어 전쟁기념관 전시관에 들어왔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안은 선선했으며 박물관 특유의 건조한 냄새가 났다.우리를 처음으로 맞아준 곳은 호국추모실 이였다.호국 추모실은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방의 최일선에서 호국의 영령으로 산화하신 애국선열들의 정신과 위엄을 되새기는 곳으로써 을지문덕(乙支文德) · 김유신(金庾信) · 계백(階伯) · 서희(徐熙) · 강감찬(姜邯贊) · 윤관(尹瓘) · 최영(崔瑩) · 김종서(金宗瑞) · 권율(權慄) · 이순신(李舜臣) · 곽재우(郭再祐) · 조헌(趙憲) · 이강년(李康秊) · 유인석(柳麟錫) · 신돌석(申乭石) · 홍범도(洪範圖) · 김좌진(金佐鎭) · 지청천(池靑天) · 강우규(姜宇奎) · 안중근(安重根) · 윤봉길(尹奉吉) · 이봉창(李奉昌) · 김백일(金白一) · 김용배(金龍培) · 김풍일(金豊益) · 장세풍(蔣世豊) · 심일(沈鎰) · 임동춘(林東春) · 강재구(姜在求) · 이태영(李泰榮) · 지덕칠(池德七) · 진두태(陳斗台) · 이인호(李仁鎬) · 이근석(李根晳) · 이상수(李相垂) 등 35인 호국 선열들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내가 봤을때 아시는 분도 계셨고 모르는 분도 계셨지만 이분들을 모른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한편으로는 나라앞에 목숨을 바치신 이분들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분들의 흉상이 모셔진곳을 지나면 모든 호국 선열들을 위한 모금한이 있었는데 나도 엄숙한 마음으로 모금에 동참을 하고 다음 전시실로 갔다.다음으로 들어간 곳은 전쟁역사실이였다. 여기에 오니 교수님이 왜 우리들을 전쟁기념관으로 파견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이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의 여러 전투들과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책인 ‘조선의 무기와 갑옷’에 등장하는 여러 무기 사진들을 LIVE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역사상 큰 전투들(안시성, 매소성, 살수 대첩, 귀주 대첩등)에 대한 생생한 설명과 전술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각종 사료(삼국사기, 삼국유사 복사본)들이 전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권을 얻기 위해 침략한 영국, 미국(신미양요), 프랑스(병인양요), 일본 등의 나라가 우리를 어떻게 접근을 했는지에 대해 나와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의병활동 및 독립군의 활동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얼마전에 영화화되었던 안중근의사의 사진들과 문서들이 전시되어있었으며 그 옆쪽으로 탤런트 송일국의 외증조 할아버지인 김좌진 장군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정말 많은 유물들이 있는 가운데 내가 가장 감명 받은 것은 백범 김구선생님 쓰신 광복선언문이었다. 그 앞에서 그 글을 읽는 동안 그 글을 읽게 되기까지 희생된 사람들의 나라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다음으로 들어간 곳은 6.25전쟁실 이였다.이곳에는 6.25전쟁의 배경과 남침과정 그리고 반격과 북진, 중공군 개입에서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6.25의 모든 것이 시간별로 나열되어있었다. 우리가 지금 하나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물론 지금 어린아이들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전쟁 중이다. 북한과 대한민국은 전쟁이 끝난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전시실에서 남한과 북한은 휴전을 했다는 전시실 문구를 보니 새삼스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나라이고 나도 비록 휴전을 하긴 했지만 전쟁 중에 태어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과 우리 후손들은 전쟁이 끝난 그런 한반도에서 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 마련되어있는 전장체험실에 있는 영상관에서 6.25때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의 영상과 가족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음 전시실로 발을 돌렸다.
1.연극성 성격장애.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듯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스칼렛의 복수심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연극성 성격장애가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영화 속에서 결혼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 점을 들여다보면 첫 결혼은 사랑이 아닌 자신을 알아주지 못한 애쉴리에 대한 처절한 보복이었고 두 번째 결혼도 역시 사랑이 아닌 돈 때문에 동생의 애인을 유혹한다. 물론 멋진 남자 버틀러와의 결혼도 사랑 때문은 아니었다.도덕성이나 진실성에 대해 어떠한 가치도 부여 하지 않는 그녀 옆에서 살아야하는 여자(애인 뺏긴 동생등.)는 하루하루가 괴롭겠지만 영화 속의 그녀를 감상하는 우리에게는 정말 매력적인 여자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영화의 절정부분에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은 버틀러라는 것을 알고 뉘우치지만 그녀는 그가 떠난 후에야 깨닫는다.이런 성격 장애를 갖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후에야 돌아본다고 한다.2.반사회적 성격장애.영화 'Catch me if you can.' 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영화에서의 디카프리오는 위조지폐를 만드는 범죄자로 등장한다.그는 그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전혀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고 뉘우치려 들지도 않으며 경찰에 검거 되었는데도 끝없이 탈출을 행하여 또 다시 위조지폐를 만든다.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있는 것 같다.뿐만 아니라 디카프리오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고 이를 어려서부터 보아 오던 디카프리오까지 그의 아버지와 같은 행동들-비행기 파일럿을 사칭하여 어딜 가든지 눈에 띄는 것을 즐기고 위조지폐를 이용하여 자신이 엘리트임을 강조 한다.-을 무의식중에 즐기며 행하고 있다.또한 그는 아무도 믿지 못하며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어서 매년 크리스마스에 자신을 잡으려 하는 형사에게 전화를 거는 습관이 있는데 이 장면들에서는 편집성 성격장애도 의심해 볼 수 있다.위의 글로 종합하여 볼 때 디카프리오는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가장 부각되긴 하나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편집성 성격장애까지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사람인 것 같다.3.편집성 성격장애.영화 ‘쏘우’의 두 주인공.영화 쏘우의 두 주인공들에 대해서 말 해보려 한다.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들은 성격장애를 보이지 않던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개 되면서 이들은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서로 묶인 채로 정신을 차리게 되고 공포심과 두려움으로 인하여 편집성 성격 장애를 띄게 된다.서로를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이인 그들은 같은 공간에 묶여 있음에도 동지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서로를 믿지 못하여 서로를 죽이려고 안달이 난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이들은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나의 정보가 유출되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감정을 절제하는 편집성 성격 장애가 크게 나타나는듯하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때로는 ‘저놈을 죽일까?’라는 생각도 한다.결국에는 서로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해쳐 나가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상황은 편집성 성격장애라고 말할 수 있다.4.분열성 성격장애.영화 ‘Finding Forest'의 숀 코네리.이 영화에서 숀 코네리는 고지식하고 고집 센 작가로 등장 한다. 그는 항상 집 안에서 생활하며 밖으로 외출을 전혀 하지 않는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며 자말이라는 학생이 집으로 찾아 왔을 때도 무관심과 무정함을 보여 준다. 그가 유일하게 세상을 보는 것은 조그만 창문이며 이마저 세상과 단절되어있음을 보여주듯 검정색 커튼이 항상 쳐져있다.또한 그는 항상 정리를 완벽하게 하고 지내며 책장의 책이 조금 삐져나온 것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항상 그의 일과는 정해져 있으며 틀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한 예로 자말이라는 학생의 부탁으로 함께 야구를 보러 몇 십 년 만에 외출을 하는데 상당히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숀코네리는 세상과 단절하고 혼자 지내기를 편해하며 아무도 만날 의사를 보이지 않는 고립적 인간인 분열성 성격장애라고 판단된다. 또한 완벽한 정리 정돈과 지나치게 통제된 삶을 사는 그의 모습에서는 강박성 성격장애도 의심해 볼 수 있다.영화의 한 장면에서 자말이라는 학생이 글 쓰는 법을 지도해달라고 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하고 나중에 수락 하고 나서도 문을 걸어 잠그고 노트를 주고받는 식의 수업을 한동안 반복하는데. 분열성 성격장애를 갖은 사람들의 특징처럼 숀코네리는 가족조차도 없는 듯 하고-실제로 영화에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혼자 생활하며 직업도 혼자 할 수 있는 작가를 택했다.
1. 들어가는 말.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나에게 있어서 무기라는 것은 흔히 영화에 나오는 쌍권총이나 우람 한 탱크들 그리고 가끔 뉴스에 나오는 최첨단 전투기나 미사일들이 내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철없을 때 휘두르던 강목? 그 정도다.문명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대인 살상용 무기들이 개발되고 우리는 아이러닉하게도 대량 살상무기들의 완성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수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도 무기가 있었을까? 기껏해야 무협지에 나오는 검이라든지 창, 활등이 전부이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결과 대답은 명확하게 NO! 였다.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물론 그 시대 사람들은 더욱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무기들이 존재 하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수많은 조선의 무기들 중에서 가장 멋지고 과학적인 ‘화기(火器)’에 FOCUS를 맞추어서 글을 전개해 나가 보려한다.2. 화기(火器)란?화기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결과는 이러하다.화ː기 (火器)[명사]1.‘화약의 힘으로 탄알을 쏘는 병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소총이나 대포 따위.]2.화로 따위의 불을 담는 그릇.위에서 첫 번째가 내가 말하려는 화기 이고 이는 말 그대로 ‘불을 뿜는 기계’ 정도로 해석 하면 될 것이다.조선시대에 존재하는 화기만 해도- 물론 내가 알아본 것보다 더 있을 듯 하다- 정말 여러 종류의 여러 용도의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3. 화기(火器)의 등장배경 및 작동 원리.화기를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화기를 작동시키는 ‘화약’에 대해서 우선 알아야 한다. 화약을 처음 발견된 시점은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우연히 발명 되어 졌다는 설이 가장 우세하다. 고대의 전투에서 사용되어진 화약은 여초와 유황, 그리고 숯을 섞어서 만든 흑색화약이다. 이중에 염초는 화약 제조의 핵심 원료로서, 그 화학 성분은 질산칼륨(KNO3)이다. 이 질산칼륨에 열을 가하면 대주실에 불을 붙이면 나선형으로 타들어가다가 대나무에 감은 횟수가 많으면 긴 시간 후, 감은 횟수가 적으면 그만큼 짧은 시간 후에 터지는 그런 무기였다고 한다.4. 조선시대 화기의 종류.조선시대의 화기의 종류에는 큰 분류로 총통, 조총 그리고 화거가 있다.총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고, 조총은 병사들이 들고 다니면서 쏘는-지금의 K-1 -소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화거는 나도 그렇고 우리들이 흔히 접해보지 못한 단어인데 이는 화살을 화약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발사 할 수 있는 자동활 정도로 이해하면 쉬울 것 이다.이 이외에도 기타 여러 가지 화기들이 있지만 나는 위에 언급한 대표적인 세 가지 화기들 중 가장 높은 파괴력을 지닌 총통에 대해서 중심적으로 이야기해 보려한다.5. 조선시대 총통의 종류와 특징.1) 일총통(一銃筒)일총통은 1448년(세종 30), 조선시대의 화약무기 대 개량 때 제조된 것으로 당시 장군화통(將軍火筒) 다음으로 큰 포(砲)이다. 청동으로 제조된 일총통의 구조는 장군화통과 같이 앞부분부터 취(嘴). 격목통(激木筒). 약통(藥筒). 족(足)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취부분에는 운반 때 사용하는 손잡이가 하나 달려 있다. 일총통은 차대전(次大箭)이나 중전(中箭)을 한발 발사할 수 있다. {국조오례의 서례(國朝五禮儀 序例)}의 병기도설에 의하면, 제원은 취의 길이가1척7촌2푼4리(52.8㎝), 격목통의 길이가3촌2푼3리(9.9㎝), 약통의 길이 2촌7푼6리(8.5㎝), 족(足)의 높이가 7푼(2.1㎝)으로 전체 길이는 2척3촌9푼3리(73.3㎝)이다. 포의 입 지름은 2촌1푼5리(6.6㎝)이며 취에서부터 약통 사이에 모두 8개의 대(帶)가 있다. 포의 무게는 41근8냥이다.일총통 중 현존하는 것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는 것인데, 이 포는 1978년 2월 10일 경상남도 통영군 산양면 저도 앞바다에서 어부가 건져 올린 것으로서 포속에서 격목(激木)과 화약이 같이 나왔다. 일총통의 취부에 四十一斤十一兩이라는 입지름은 8푼4리(2.6㎝)이며, 무게는 3근8냥이다.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총통은 길이가 43㎝로 병기도설 이총통의 길이 44㎝와 1㎝ 정도 차이가 나며, 총의 내부구조는 두 총이 서로 같다.3) 삼총통(三銃筒)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용한 청동제 유통식(有筒式) 화포로 세종 조에 세총통(細銃筒). 사전총통(四箭銃筒). 팔전총통(八箭銃筒). 이총통(二銃筒)과 함께 만들어져 북방 경비 및 실전에 널리 활용된 바 있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삼총통조에 의하면 이 총통은 나무로 만든 차중전(次中箭)을 발사하게 되어 있다.현존하는 삼총통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된 유물은 총길이 32.1㎝, 통신(筒身)길이 16.6㎝, 약실길이 7.6㎝, 병부길이 7.9㎝, 구경 1.7㎝로 통신에는 구연대(口緣帶)를 제외한 죽절(竹節) 4조가 시조(施條)되고 약실은 통신보다 도톰하다. 선혈(線穴)은 약실 정중앙에 뚫었고 명부는 약실 뒤쪽에 연결하여 약실보다 약간 가늘지만 점차 퍼지면서 끝부분에서 구 연대와 더불어 마무리하였다. 이 총통은 1986년 경상남도 하동 고현성지(古縣城址)에서 출토된 52점 중의 하나이고 이와 동일한 삼총통이 1970년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 면에서도 23점이 출토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로는 경희대학교 박물관과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도 각각 소장되어 있다.4) 사전총통(四箭銃筒)불씨를 손으로 점화, 발사하는 유통식(有筒式) 화기로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사용되던 화기이다. 기록에 따르면 1446년(세종 28)에 이미 삼총통(三銃筒) 300인, 사전 . 팔전(八箭)에서 각 250인이 나누어 받아 늘 발사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병기도설조(兵器圖說條)에는 사전총통이 세전(細箭) 4발이나 차세전(次細箭) 6발을 장전한 후 동시에 발사한다고 나와있다. 청동제이며 통신(筒身)과 약실(藥室), 자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구연에는 대선(帶線)을 둘렀고, 총신에는 죽절(竹節)이 있으며, 약실은 총신보다 중후하게 주2mm)이며, 폭발력을 키워주는 격목을 박는 격목통의 길이는 1촌8리(33.7mm)이며, 취는 격목통의 앞에 있는 것으로 발사물인 화살[箭]이나 금속 등으로 만든 총알[銃丸]을 넣는 곳으로 5촌1분7리(161.5mm)이다. 모병은 약통 뒷부분에 있으며, 손잡이용 나무를 끼우는 곳으로 길이는 2촌3분(71.9mm)이다. 사전총통은 세전(細箭) 8발이나 차세전(次細箭) 12발을 장전한 후 동시에 발사한다고 나와있다. 청동제이며 통신(筒身)과 약실(藥室), 자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구연에는 대선(帶線)을 둘렀고, 총신에는 죽절(竹節)이 있으며, 약실은 총신보다 중후하게 주조되었고, 자루는 총신과 같이 가늘다가 끝부분에서 약간 굵어진다. 그리고 자루에는 총 통의 명칭이나 제작년(간지). 용약. 장인(匠人)이 음각되지만, 양각된 것도 있다.현존하는 팔전총통은 일본인 길강신일(吉岡新一)의 저서{古銃}에 보이고 있는데 정확한 치수는 알 수 없다. 전쟁기념관에는 병기도설의 제원을 바탕으로 재현한 팔전총통이 전시되어 있다.6) 사전장총통(四箭長銃筒)조선 세종 때 새로 개발된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화약 병기. {세종실록} 1448년(세종 30) 12월 초6일에 처음 이름이 보이는 총통으로서 {국조오례서례 國朝五禮序禮}의 병기도설(兵器圖說)에도 그림과 설명이 있다. 병기도설에는 사전장총통을 약통(藥筒). 격목통(激木筒). 취(嘴). 모병(冒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약통은 화약을 넣는 부분으로 길이 2촌6분(79. 7㎜), 속 길이 2촌2분6리(69. 3㎜), 겉둘레 3촌8분4리(117. 7㎜), 내경 7분4리(22. 7㎜), 두께 2분3리(7. 1㎜)이며, 약통 끝의 막힌 부분의 두께는 3분4리(10. 4㎜), 약선을 끼우는 구멍의 직경은 6리(1. 8㎜)이다. 폭발력을 키워주는 격목을 박는 격목통의 길이는 7분4리(22. 7㎜)이며, 속길이도 같다. 겉둘레는 3촌4분3리(105. 1㎜)이며, 총통 입구쪽의 내경은 7분7리(23. 6㎜), 약통쪽 내경은 7분4리(.현재 경희대학교박물관, 전쟁기념관에 사전장총통이 전해오고 있다. 경희대박물관의 사전장총통은 총통의 모병부분에 "戊□鎭上 姜鍊官 四箭長銃筒"이라 기록되어 있다. 무(戊)자 다음이 확인되지 않아 제작된 확실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실록에 처음 보이는 1448년(세종 30)이 무진년(戊辰年)이므로 1448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크다.7) 세총통(細銃筒)불씨를 손으로 혈선(穴線)(도화선(導火線))에 점화발사(點火發射)하는 유통식(有筒式) 화기(火器)의 일종(一種)이다. 이 총통(銃筒)은 조선조 세종(世宗)이 즉위(卽位)하면서 화약(火藥)의 개량(改良)과 화기(火器)의 일발다전법(一發多箭法)을 연구케 한 국방정책(國防政策)으로 말미암아 사전총통(四箭銃筒)을 비롯 팔전총통(八箭銃筒), 삼총통(三銃筒) 등과 더불어 이미 세종 19년(1437)에 창제(創製)되었다. 이는 소지(所持)와 발사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유사시(有事時) 적과 싸울 때에 말위에서 쏘면 매우 간편(簡便)하고, 또한 위급(危急)할 때는 어린이와 부녀자(婦女子)라도 능히 발사할 수 있다 하여 평안도절제사(平安道節制使)에게 150개를 하송(下送)한 기록을 통해 지실(知悉)케 한다. 또한 이 총통에 대해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군례(軍禮) 세총통조(細銃筒條)에서는 그 제원설명(諸元說明)에서 약통장(藥筒長), 격목통장(激木筒長) 자장(자長)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모두의 길이는 4촌(寸)4분(分)8리(釐)이며, 무게는 3량(兩)5전(錢)이라 하여 그 규모(規模)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발사물(發射物)로는 차세전(次細箭)을 사용하고 발사할 때는 철흠자(鐵欠子 ; 집게)로 총통을 집어 발사한다 하였다.8) 만력을묘명 승자총통(萬曆乙卯銘勝字銃筒)(보물 648호)시대 : 조선 제원 : 전체길이 56.8㎝, 통길이 34.8㎝, 입지름 4㎝, 무게 4.5㎏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이 총통은 조선 선조(宣祖) 8년(1575)에서 11년 사이에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와 경상병사(慶尙兵使) 김지가 창제한 것이다. 따라서이다.
플라톤이 생각한 진정한 사랑이란...사랑. 이 한 단어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말인 듯 하다. ‘사랑’ 이라는 단어 속에는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많은 의미 들이 내포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나의 우주와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이렇게 우주처럼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완벽한 정의-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말한다면 사랑의 정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수에 비례하게끔 엄청난 수의 의미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나는 그 수많은 사랑들 중에서 향연이라는 작품 속에 내제 되어져있는- 절대 겉으로 나와 있지는 않다- 플라톤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한다.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적은 25편 중 플라톤의 대표적인 작품인 은 아폴로도오로스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서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향연을 이야기 해주면서 전개된다. 하지만 아폴로도오로스는 향연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라 향연에 참가한 아리스토데모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대충의 줄거리는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의사인 에뤼크시마코스, 작가인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등이 어느 날 술자리(향연)에 모이게 되었고 에뤼크시마코스의 제안에 따라 순서대로 에로스를 찬양하면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모인 사람들 중 가장 먼저 파이드로스가 찬양하였다. 그는 에로스는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최대의 좋은 것들의 근원이라 말하며 애자와 애소년을 언급하게 되는데 서로 사랑하는 관계인 애자와 애소년은 서로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루한 짓을 멀리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그것은 아름답고 훌륭한 일이어야 하며- 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이란 말을 하며 그것이 결국 고귀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말을 한다.그 후 몇 사람의 연설은 기록되지 않았고 뒤를 이어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이 나오는데 파우사니아스의 연설은 동성애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에 관계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이 후에 딸꾹질을 하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대신하여 에로스에 대한 찬양을 제안하였던 에리크쉬마코스가 연설을 하게 된다. 그 후에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시작되는데 위의 연설자들과는 다른 내용의 연설을 하게 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은 예전의 세상에는 지금의 사람보다 모든 신체기관이 2배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내용이었다. 남성, 여성, 남여성의 세가지 성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하며 이들은 지금의 인류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신들에게 도전하였는데 이에 신들이 이들의 몸을 둘로 나눠 지금의 인류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메게 된다는 주장을 하였다. 또 그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되면 자손을 만들고 남자와 남자가 만나면 서로 만나는 것에만 만족하여 욕망을 진정시키고 일하는데 정신을 쓰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 즉 애자가 애소년을 혹은 애소년이 애자를 사랑하는 것은 서로 한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고 그것이 결국 하나의 온전한 것이 되는 것이며 온전한 것에 대한 욕망과 그것에 대한 추구가 에로스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로인해서 그는 인류가 행복하게 되는 길은 사랑을 완전하게 하며,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소년을 얻어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사람들의 모습 속에 깃들어있다고 하며 예전에 나누어진 둘에서 본래의 모습이었던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이라 하였다. 결국 사람마다 자기 자신의 소년을 얻는 것, 자신의 반쪽을 찾는 것을 도와주는 신, 즉 에로스를 그런 이유로 찬미하여야만 하며 에로스는 그런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다고 하였다.-여기서 최초인간의 세 가지 성 이야기는 얼마 전에 감동 깊게 감상한 이라는 영화에 중간에 등장하는 ‘origin of love’라는 노래의 가사였다. 그때 그 노래 가사를 지금 다시 보니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와 동일했다.-이후에 아가톤의 연설이 시작된다. 그의 주장은 에로스라는 신이 신들 중 가장 어리다는 것이었으며 가장 아름답다는 그야말로 찬미를 하게 된다. 이에 소크라테스가 이에 특유의 화술로 반박을 하게 된다. 아니 반박을 했다고 하기 보단 아가톤 스스로 자신이 틀렸음을 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그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것이 결핍, 즉 현재 강하면서 강하기를 원하고 아름다우면서 아름답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강함과 아름다움이 현재 내게 존재하고 있지 않을 때 그것들을 추구한다는 말을 하며 그런 성질로 인해서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결국 추한 것이 아니냐는 아가톤의 연설의 모순 됨을 지적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람들은 자기의 다른 반쪽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서로 다른 개념의 사랑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랑이란 그저 아름다운 것에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출산이며 진정 가치 있는 일은 지식의 출산-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지식의 출산은 철학을 뜻 하는 듯 하다- 이고 그것을 위해 학습이 있으며 그리하여 불사적인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육체적인 아름다움보다 정신적인 아름다움의 가치를 강조하며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하였다. 그러한 아름다움이란 궁극적 목표가 되며 그러한 것들은 어느 면을 보아도 추함을 가지지 않고 아름답다는 말을 하게 된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것은 근원적 아름다움과 영원한 가치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고대 그리스에서의 지식인들이 교육의 의무를 떠맡고 소년들에게서 성적 봉사를 받았었다는 기록이 있는 시대상의 이유에서였겠지만 '향연'에는 동성애에 관한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정신적인 사랑이 육체적인 사랑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고 이성간의 사랑을 찬미하는 부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신적 사랑의 고귀함에 대한 찬미는 그것이 결국은 얻기 힘들며 사람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것, 결국 누군가에게서 혹은 무엇인가에서 -그것이 학문에 대한 탐구이거나 혹은 자신의 절제이거나-사랑받는 것과 또는 그것들을 진실로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특성이며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을 이루는데 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성의 차이는 그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구별로써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대화를 나눈 모든 이들의 의견은 그래서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대전제 아래 그것의 특징적인 모습들을 말하고 있는 등장인물들 중에서 파이드로스의 견해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대상이 자신과 동성이든 이성이든 간에 관계없이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이려 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납득되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아가톤의 연설은 후에 소크라테스에게 반박당하며 그 모순 됨을 드러내었으나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과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사랑을 하는 이는 사랑받는 대상을 아름답게 생각하게 된다- 을 이야기하였다.
처음 헤드윅이라는 영화를 감상할 때는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한다는 고정관념과도 비슷한 생각으로 처음 감상하였다. 나는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봤는데 그때 당시의 기분은 설명 할 수 없는 찝찝함과 아니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기분이 좀 더러웠다. 하지만 그때에도 영화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멋진 rock&roll의 멜로디와 리듬은 나를 영화에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강의시간에 이 영화를 다시 한번 접하였다. 난 나름대로 한번 본영화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보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느꼈던 그런 기분과는 전혀 다른 그 무언가가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마치 전혀 다른 영화를 보는듯한 생각이 들었다.이 영화의 장르를 사람들은 독립영화다 실험영화다 뮤지컬형식의 영화다 정말 많은 말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내 생각에 이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으로 꾸며진 열정과 감성 그리고 음악이 함께 내제되어 있는 그냥 볼 사람들만 보는 하나의 매니아층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영화에서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에니메이션은 이 영화라는 주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사이드디쉬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에니메이션에는 헤드윅의 삶이라든지 철학 등이 간단명료하게 직설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정말 영화에 있어서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다.영화 헤드윅의 장면 중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장면은 Origin of Love (사랑의 기원)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가사를 보면 원래 사람은 한 몸에 두개의 얼굴 네 개의 팔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의 세 가지 성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신의 노여움을 받고 우리는 제우스신의 번개 가위로 인하여 세 가지 성이 반씩 쪼개지는데 그때부터 남자는 자신의 반쪽인 여자를 찾아 헤맨다는 신화와도 같은 내용의 노래이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 신화는 실제로 그리스의 신화라고 한다. 나는 이 가사 내용을 보면서 정말 멋진 가사라고 생각했고 왜 남자는 여자를 찾고 여자는 남자를 찾는가에 대해서 유머러스하게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바보스럽다. 또 처음에 나오는 노래에는 동독과 서독의 중간에 베를린이 있는 것처럼 자신이 없다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한하는데 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간적인 자신의 입장을 비유한 것 같다. 이처럼 헤드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자신이 겪은 일들, 또 자신의 인생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일생을 노래하고 연주한다는 것이 멋지고 부럽기도 하다.영화에서 나누어지는 동독과 서독의 관계를 마치 남자와 여자를 빗 대여서 말한 것 같고 이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 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사회적 성(gender)과 생물학적 성(sex)의 경계선이 모호해짐을 뜻하는 것 같다.사회적 성이 생물학적 성을 지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금기시 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돌려 말할 꺼리 도 없이 정면 돌파하고 돌파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 공연 중간에 헤드윅이 자신의 가발과 옷을 벗어 던지는 장면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성 정체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행위라고 생각했다.마지막 장면에 헤드윅은 알몸으로 거리를 걷는 장면이 나온다. 그동안의 가면과 가발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어 두었던 자신을 모두 벗어버리고 걸어가는 이 장면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감동과는 또 다른 어떠한 것을 느꼈다. 여기서 헤드윅은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性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을 찾은 것이다.성폭행하는 미군과 달콤한 젤리로 헤드윅을 유혹하던 미군을 영화에 출연시킨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세련됨 뒤에는 보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 헤드윅의 공연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인상 찌푸리는 미국인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그런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기 위함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