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기능과 문제점- 금성 출판사 『한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목 차머 리 말1. 삽화의 기능과 종류2.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삽화의 현재(1) 구성상의 문제점(2) 사진자료의 문제점(3) 문헌 자료의 문제점3. 새로운 삽화의 모색(1) 만화 자료(2) 동영상 자료맺 음 말참 고 자 료- -머 리 말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과서로 21세기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교육환경과 교과서의 진보가 학생들의 진화와 발전에 발맞추지 못하고, 학생들과 유리된 채 학교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사회가 진보의 물결을 넘고, 문화의 발전을 거듭할수록 교육계에선 학생과 학교현장?교과서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나, 현대 사회의 교육에 있어서도 이러한 간극의 해소는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남겨져 있다.2008년 전반기는 격변의 시기였다. 보수 진영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그와 발맞춰 사회?경제를 비롯한 국가 제반 사항들이 신자유주의 세계 속에 편입되어가는 양상을 띠었고, 이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세계화의 광풍을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정권은 역사 교과서의 이념 논쟁을 잊지 않았다. 다시금 반공이념을 내세워 기존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기 때문에 정권은 교과서에 칼을 대겠다는 입장을 천명하였으며, 또 이러한 역사 교과서 개정 입장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계급사회에 교육을 편입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역사학계는 즉각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고, 그로 인해 양자의 논쟁이 가열화 되어가는 국면을 맞고 있다.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상이 변할 때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것을 보아, 교육에서의 그 중요성이 남다른 역사교과서에 대해 필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과연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무엇인가?’, ‘과연 좋은 역사 교과서는 어떠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그리고 역사 교과서는 어떤 구성이어야 하는가?’하는 의문들은 관심을 이끌었다.윤희정은 교과서가 실제 수업이나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1. 삽화의 기능과 종류김융행은 삽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삽화란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이라고도 한다. 『새 우리말 큰 사전』에는 인쇄물 속에 끼워 넣어서 내용?기사 등의 이해를 빠르게 하며 보충적인 설명의 구실을 하게 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 수록된 삽화란 교재의 내용이나 추상적인 사실의 이해를 돕도록 하고, 보충적인 설명의 구실을 하는 각종 사진, 그림, 연표, 도표, 지도, 문헌 자료 등을 총칭하는 평면적 시각 자료이다.) 즉, 역사교과서에서의 삽화란 단순히 그림으로 된 삽입물을 넘어 사료까지도 삽화로 이해하여야 한다.또한 씨는 교과서 삽화의 기능을 정리함에 있어, 삽화는 ① 사실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에 도움을 주어야 하며, ②학생의 직관적 사고를 돕고, ③ 본문의 보완적인 위치를 떠나 훌륭한 자료의 기능과 내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김융행의 주장을 토대로 필자의 의견을 결합하여 다시금 바람직한 삽화의 기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첫째, 교과서 삽화는 학생이 본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데 기여해야한다.둘째, 삽화는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이어야 한다.셋째, 삽화는 교사가 지도하기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넷째, 삽화는 독자적 내용을 가지는 자료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다섯째, 삽화는 객관성과 정확성을 띠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이상의 기능이 바람직한 삽화가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요건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본고는 이후의 교과서 삽화 분석을 위의 기능들을 중심으로 살피며 전개하려 한다.다음으로 삽화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첫째, 시대적 상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물?유적 등의 사진이 있다.둘째, 사건이나 시대를 설명하는 간략한 그림이 있다.셋째, 연대기적 이해를 돕기 위한 연표나 간이 연대기표가 있다.넷째, 지도가 있다.다섯째, 사료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싣는 문헌 자료가 있다.)세분하면 위의 여섯 가지 이상의 종류로 구분할 수해와 탐구력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역사적 사료가 풍부한 만큼 풍부한 삽화를 활용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본문의 내용을 단순히 보충하거나, 증명하는 삽화 위주의 6차 교과서를 넘어서, 풍부한 삽화를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의 시대상 그리기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역사 탐구에 있어서 삽화를 통한 학습활동의 제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 편찬자들의 이러한 의도와는 다르게 교과서의 구성상에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우선, 삽화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삽화의 분량=학생의 이해’라는 등식의 사고를 정립하고 있어서, 많은 삽화는 학생의 수준 높은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많은 삽화를 싣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삽화는 학생으로 하여금 시대적 상의 이해보다 잘못된 이미지의 형성이나 학습 분량의 과도화만을 가져올 수 있다.실례로 교과서 154p에서 전시체제하의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을 설명하면서 황국 신민 서사비,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는 학생들, 남한 조선 신궁 이 세 가지의 사진을 설명과 함께 싣고 있는데, 분량 상 페이지의 반가량 된다.또 172p에서 역시 3?1운동을 설명하면서 3개의 삽화자료를 싣고 있는데, 태화관 유적지,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종로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 등의 사진을 싣고 있다. 물론 풍부한 사진의 제시는 학습이해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과연 3?1운동을 설명하면서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세 개나 되는 삽화로 지면을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필자는 부정적이다.이러한 삽화의 과잉 삽입은 특히 인물 엿보기?한걸음 더 다가서기?역사 찾기 등에서도 찾아지나 추가적인 문제제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이러한 삽화의 과잉현상은 학생의 학습재적 동기에 기인한 측면보다 ‘多多益善’의 논리에 단편적으로 부합할 뿐이며, 학생의 커다란 사고증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 분량의 증가만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지니기에, 보다 개연성이 높고 중 발전을 105p로 다룸으로써 상대적으로 현대사회의 내용구성이 빈약한 면모를 지닌다. 절대적으로 광복 이전의 시기를 많은 분량으로 다룸으로써 현대사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현대사의 삽화 역시 상대적인 빈곤성을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편중된 내용 구성을 재고하여, 시대별?중요도별로 각 단원 및 페이지를 구성할 때 삽화 분량의 형평성도 회복할 수 있겠다.(2) 사진자료의 문제점우선 사진 삽화를 삽입함에 있어 새로운 변화들이 목격된다. 284p에서는 박정희 정부의 정책 구호들을 당대의 우표의 변천사를 삽화로 살펴봄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탐구하게 하는 활동이 눈에 띈다. 또 200~201p에 걸쳐 독립군의 전적지를 답사 형식으로 사진 삽화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구성은 학생들의 흥미요소를 적절히 이끌어 학습효과를 이루어내는 매우 효과적인 사진자료 활용의 사례이다. 그러나 역시 사진자료의 삽입에 있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포착된다.우선 내용상 학습재나 교수제로서 이해를 심화시키는 기능이 없는 삽화들도 많이 보인다. 210p에서 신간회의 해소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신간회의 해소를 주장하는 책의 표지를 싣고 있다. 이러한 삽화가 교사나 학생에게 얼마나 학습재로서의 기능을 충실이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물론 책의 내용이 아닌 표지를 보며 ‘오래된 책이구나’하는 인상정도를 기대한다면 이러한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이러한 표층적 이해를 넘어서는 깊은 이해적 측면에서 이 삽화를 볼 때, 큰 학습적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또 일제 강점기 독립열사?의사들의 항일 활동일지를 소개하면선 박재혁?김익상 등의 사진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도 다른 학습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불필요한 삽화들은 단지 지면만 차지할 뿐 어떤 학습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기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삽화를 신중히 선별하여 개재해야 한다.?학습자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학습자의 발달 단계에 맞는 인물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첫째로 사료 상 원문표기가 아닌 한글 전용 표기를 지향하고 있다. 17p에 조선 후기 사회개혁을 주장한 학자들의 관심사항을 살펴보며 유형원의 『반계수록』,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유수원의 『우서』, 박제가의 『북학의』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모두 한글 전용 표기로 수록하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 3학년에게 한문으로 된 원문만을 학습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으나, 한글 표기가 불가피하다면 원문과 병기했어야 했다. 한글 전용 표기에 의해 학생들로 하여금 이 시대의 학자층이 현대국어를 사용했다고 오해할 수 있으며, 잘못된 시대적 이미지가 학생에게 각인될 수도 있다. 때문에 사료를 개재할 때, 학생의 수준 편차를 고려하여 원문?한글본을 모두 실어 학생의 사료 이해에 보다 정확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또 239p 등의 문학작품의 수록에 있어서도 현대국어 표기 역시 원문을 지향하는 표기로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둘째로, 사진형태의 문헌자료의 수업 활용여부가 의심스럽다. 209p에 신간회 창립 보도기사 사진과 214p의 암태도 소작 쟁의에 대한 신문기사 사진과 같이 문헌자료를 옮겨 적는 것이 아닌 문헌 자료의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실은 삽화들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삽화들의 실제 수업 활용 가능성이 의심스럽다. 이러한 사진들은 그것이 신문임을 증명할 뿐, 활자가 작고 인쇄질이 뚜렷하지 않아 내용을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교과서의 삽화로 선정하여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때문에 이러한 삽화들은 내용을 발췌하여 옮겨 적는 형식으로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마지막으로 필요한 사료가 빠진 부분이 있다. 노동운동을 다루며 전태일에 관해 이전보다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반페이지 미만의 적은 분량이며, 더구나 심화 과정)에서만 전태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전태일의 죽음이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회적 변혁임을 감안할 때, 추가적인 서술이 필요하다. 금성교과서에서는 전태일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략하여 다루고 .
- -조선 민중들의 거친 숨소리의 복고- 안대회, 『조선의 프로페셔널』을 읽고 -과학의 비약적인 진보와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를 영위하고 있다. 현대의 지속적인 과학이론의 심화와 기술지식의 확장은 많은 분야에서 ‘편리’를 추구하며 발전해 왔고, 이러한 사회적 조류 속에서 많은 직업들은 인간의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른바 전문성은 새롭게 개인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로 자리잡았고, 현대는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조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전문가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에 대한 약간의 해답을 안대회는 그의 저서 『조선의 프로페셔널』)에서 제시하고 있다.『조선의 프로페셔널』의 서문에서 저자는 “의도적으로 지금까지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분야의 프로페셔널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했습니다.”라 밝히며, 본문에서 조선의 역사 속에 숨은 ‘전문가’들의 자취를 밟아나가고 있다. 여러 문헌들 속에서 10명의 ‘전문가’들을 추려내고, 그들에 대해 산발적으로 남겨진 단서들을 엮어 나가며 새롭게 역사를 구성하는 안대회의 서술들은 자못 흥미롭다. 특히 여러 인물들의 일화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하여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의 비주류 ‘전문가’들의 역사적 사료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 짐작되지만, 이러한 에피소드식 구성의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내용과 볼거리를 제공한다.안대회가 지목한 ‘전문가’들은 그들의 삶에 방식에 있어서 몇 가지 공통적인 특성을 보인다. 그들의 공통점을 자세히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우선 ‘전문가’들은 모두 각자 분야에 ‘벽(癖)’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조각가였던 정철조는 “벼룻돌을 깎는 벽”이 있었는데, 그의 조각에 대한 애정은 그의 호인 석치(石痴))에서도 잘 드러난다. 원예가였던 유박 역시 희귀한 꽃을 수집하고자 하는 벽(癖)이 있어 열성적으로 동백이나 종려나무 등을 구하려 하였다. 이렇듯 조선의 전문가들의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열정은 그들의 광적인 ‘벽’으로 나타났다.둘째, 조선의 전문가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 있어 최고라 지칭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공통점은 전문가로서 인정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써, 바둑기사 정운창은 당대 최고의 기사인 김종귀를 실력으로 제압하였고, 무용가 운심은 조선 팔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검무를 잘 췄다고 한다.셋째로, 이들은 대부분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고집스럽게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고집하였다. 음악가 김성기는 권세가 목호룡의 연주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며 단호히 요청을 거부하였다. 원예가 유박 역시도 당시 지배적이었던 완물상지의 정신을 거부하고, 꽃에 몸을 맡긴 채 즐기는 일을 당당히 천명하였다. 자신의 전문가 철학을 확고히 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넷째, 이들은 사회 주류 세력이 아닌 비주류 세력이었다. 시인인 이단전은 그 계급이 천민이었고, 책쾌 조신선 역시도 미천한 계급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 그리고 자기 분야에 대한 애정만으로 그 명성을 드날린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역사 속에 그들의 발자취는 더욱 눈에 띈다.마지막으로, 이들 ‘전문가’ 대부분은 술을 좋아했다. 음악가 김성기도 늘 술과 씨름하며 살았고, 책쾌 조신선 역시 애주가였다. 그들은 술과 음악을 통해 풍류를 즐기는 면모 역시 닮아 있었다.안대회는 이러한 특성들을 중심으로 조선사 속에서 전문가 10인을 선정하고 그들에 대한 인상적인 일화들과 기록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 특유의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문체로 독자들의 머릿속에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복원시키고 있다.안대회는 서문에서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전문가들에 대한 역사를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우선 그는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조선 사회의 주변부 사회?문화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사학계는 정치?경제사 일변도의 역사를 연구하고 추구해 왔다. 시대의 흐름과 조류의 거대한 맥락을 쥐고 있는 정치사 중심의 역사연구는 당대 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순기능으로 작용해 왔음은 분명하다. 그러한 중요성 탓에 정치?경제사에 대한 집중은 필요 이상으로 팽창해 오기도 했으며, 더불어 사회?문화사적 역사 연구의 소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조선사회의 다양하고 풍부한 이해는 결핍되어 왔으며, 그 결과 우리는 조선사회 빙산의 일각만을 목도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맥락 속에 『조선의 프로페셔널』은 우리에게 참신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조선 무용가의 삶을 운심을 통해 전달하고, 정운창을 통해 당시 직업으로서 바둑기사의 위상과 현실을 생생히 선사한다. 안대회는 조선의 사회?문화사를 거시적으로 살핌으로써 우리에게 정치사 일변도의 현 역사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다양한 방면의 조선 사회를 목도하게 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그는 또한 조선의 비주류 계층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일부 양반 계층의 전문가들도 다루고 있지만, 다수의 평민 전문가의 삶을 언급하고 있다. 책쾌 조신선의 삶은 지금까지 흔히 알고 있던 조선 사회의 직업과는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은은하게 다가오며, 천민으로서 시인이고자 했던 이단전의 삶은 당시 천민의 위치를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 서술 역시 주류 역사와 비교하여 참신함을 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정치사 중심의 역사연구 탓에 역사가 다루는 계층은 주로 양반 이상의 계급이었고, 또 고위관리에 한해 역사의 화두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다시 역사속의 평민 계급의 삶을 조명하는 일에 우리의 무관심을 야기시켰고, 이 역시 편협한 역사 이해만을 조장하였다. 때문에 그의 ‘평민’의 삶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조선 역사 전 계층을 아우르는 역사 서술의 시도라 할 수 있겠다.
동몽선습을 통한 역사교육의 문제점목 차머 리 말1. 구성 ? 형식상의 문제점(1) 연대표기의 문제점(2) 서술 구성의 문제점2. 내용상의 문제점(1) 엄격한 유교적 가치의 문제점(2) 중화사상의 문제점(3) 영웅주의 사관과 정치사 중심 서술의 문제점맺 음 말참 고 자 료- -머 리 말2008년은 역사학계에서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개정에 대한 논란이 가열화되는 시기였다. 정부는 이념논쟁을 내세워 ‘금성’교과서를 비롯한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 매도하고, 이에 대해 전면적인 개정을 실행할 의지를 천명하였다. 역사학계는 ‘학자의 양심’을 내걸고, 현 정권의 역사 교과서 개정의지는 “진보의 역사를 다시금 퇴보시키는 일”이라 주장하며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양자의 논란은 더욱 가속화되는 국면을 맞고 있다.이렇게 교육 현장에서 ‘교과서’의 내용과 적절성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필자는 과거 역사교재였던 『동몽선습』)을 분석하며 문제점을 살펴보고, 역사 교과서가 가져야할 적절한 내용과 특징을 살펴 바람직한 역사교과서의 청사진을 제시하려 한다.필자는 바람직한 역사 교과서의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참고하였다.최상훈은 「역사적 사고력의 의미와 하위범주」)에서 역사교육의 목적을 학생의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으로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능력들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하였다.?연대기 파악력 : 시간에 따른 변화를 중시하고 인간의 삶과 여러 현상을 연대기 속에서이해하고자 하는 능력.?역사적 탐구력 : 사료를 근거로 과거사건 및 행위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통해 역사적이해를 도출하는 능력.?역사적 상상력 : 증거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증거에 입각해 과거의 공백을재구성하는 능력.?역사적 판단력 : 역사적 논쟁이나 딜레마에 접했을 때 합리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능력.최상훈은 위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고 능력을 역사교육의 중요한 목적으로 보고 있으며 필자는 그의 의견이 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또 윤희정은 역사 교과서에 대해서 다음 교사 요인과 교수 현장 요인은 배제하고 오직 『동몽선습』 내적인 내용에만 집중하기로 하는데, 이는 필자의 부족한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재의 절대적 가치에 관해 밀도있게 논의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필자의 짧은 식견 탓에 원문보다 역해본을 중심으로 내용을 인용하기로 하는데 이점 양해 바란다.1. 구성 ? 형식상의 문제점(1) 연대표기의 문제점우선 『동몽선습』은 연대표기에 있어 문제점을 보인다. 역사는 시간의 학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건 및 인물들의 인과관계의 명확한 이해가 매우 중요시되는 학문인 것이다. 때문에 명확한 연대 제시는 역사 교과서의 필수 요건이다. 다음을 살펴보자.태봉의 여러 장수가 왕건을 세워서 임금을 삼고 나라이름을 고려(高麗)라고 했다. 모든 흉적들을 쳐서 멸하여 삼한을 통일하고서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다. 말기에 이르러 공민왕이 후사가 없으니, 가짜 임금 신우가 혼암하고 포악하여 나랏일을 제 마음대로 했으며…(후략))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동몽선습』은 구체적 연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연대 제시의 생략은 저연령의 아동들이 인과관계에 의해 조직적인 역사상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야기한다. 특히 연대표기의 배제는 역사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인 ‘연대기 파악력’을 형성하는 데 큰 장애를 초래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918년 태봉의 여러 장수가 왕건을 세워서 임금을 삼고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다.”와 같이 구체적인 사건의 연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2) 서술 구성의 문제점『동몽선습』은 역사 서술에 있어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진한의 땅에 도읍하여 성을 박(朴)으로 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졸본에 이르러 스스로 고신의 후예라고 일컫고 따라서 성을 고(高)로 했다. 백제의 시조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하고, 부여(扶餘)를 성씨로 했다.)여기서 박세무는 고구려?백제?신라의 개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매우 개략적인 정보만을 실제 역사교육의 효용성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동몽선습』을 통해 역사를 학습할 경우, 아동들은 역사이해의 체계성이 부재하게 되고,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지식의 수준과 깊이가 얕은 저학년기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서인 만큼 내용에 있어서 보다 쉬운 서술과 자세한 내용이 요구됨에도 이를 간과하고 있는 『동몽선습』은 오히려 그 적은 분량이 학생들의 이해부족을 낳는다. 또 단편적인 역사 서술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해가 아닌 역사 암기를 조장할 뿐이다.이렇듯 『동몽선습』은 역사기술상에 있어 연대표기가 부재하고, 단편적 서술만을 제시하고 있어 효과적인 역사학습에 장애를 가져오고 있다.2. 내용상의 문제점(1) 엄격한 유교적 가치의 문제점역사 교육에 있어 ‘학생의 가치 판단 능력’을 증진시키는 일은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이다. 학생의 자발적 사고력과 성숙한 판단력에 의해 역사적 사건들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역사교육의 본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몽선습』에서는 어떠한 가치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을까?『동몽선습』의 저자 박세무는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절대적 유교적 가치를 지닌 인물이었다. 따라서 『동몽선습』 역시 그의 이러한 유교적 가치관이 깊게 투영된 저서라 하겠다. 이러한 그의 유교적 신념은 『동몽선습』의 내용구성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는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의 오륜)을 책에 싣고 있음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지금부터 이러한 유교적 신념이 역사서술에 지니는 문제점을 자세한 예를 통해 분석하며 살피겠다.우선 『동몽선습』은 각각의 역사적 사건을 유교적 가치에 따라 그 선악을 구분하고 있다. 저자의 유교적 잣대는 역사 사건의 의의를 분간하는 중요한 척도로 작용하는데, 다음과 같은 서술들에서 목격된다.공자는 하늘이 낸 성인으로, 천하를 두루 다녔으나…(후략))명제 때 서역의 불법(佛法)이 비로소 중국으로 들어와서 세상을 현혹하고 백성을 속였다.(후략))박세무는 자신의 사상적 신념에 따라, 공자의 등해 학생 스스로가 자발적 사고력에 의해 자신의 입장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동몽선습』은 전형적인 가치 주입식 서술의 표본을 보이고 있다.삼강오상의 도가 천지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한다. 삼대 이전에는 성스럽고 밝은 군주와 어진 재상과 착한 보좌가 함께 이 도리를 강구하여 밝혔기 때문에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고 어지러운 날이 적었으며, 삼대 이후는 용렬하고 혼암(昏暗)한 군주와 난신적자(亂臣賊子)가 함께 이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적었다.)위의 예문은 ‘유교’가치가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이를 중시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는 내용의 서술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화법을 통해 『동몽선습』은 학생들에게 유교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역사 교재를 통한 역사교육은 학생들이 교육의 객체로 머물게 하여 일방적인 수용자로 전락하게 만들고, 학생들을 유교적 가치만을 옳은 것으로 믿게 하는 흑백논리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유교 지배이데올로기만을 믿도록 만들어, 일인 독재의 합리성을 부여하고, 소수 엘리트의 다수 민중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관철시키고 있다.더욱이 학생으로 하여금 역사 속에서 ‘민중’의 역량을 간과하게 만들어, 역사의 주인공은 역시 ‘기득권’으로 표방되는 지배세력으로 이해하게 하고, 민중은 ‘억압과 수탈 및 피지배’의 수동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게 하여, 역사의 진행을 ‘독재자에 의한 다수 민중 지배’로 이해하게 될 우려를 낳는다.앞서 이야기했듯, 역사는 학생들의 역사적 판단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성현의 말씀을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사고’와 ‘비판’의 과정을 거쳐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동몽선습』의 이러한 가치 주입적 내용들은 바르고 비판적인 역사 이해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2) 중화사상(中華思想)의 문제점)조선사회는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을 신봉하고, 중국을 예우하는 사회적 용들을 간과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구성은 중국사가 한국사보다 중요하며 고귀한 것이라는 인식을 낳을 우려도 감지된다.서술 내용에 있어서 한국사를 살펴보면, 철저히 중국 중심의 역사관이 드러난다.당나라의 고종(高宗)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서 도독부를 두고 유인원과 설인귀를 시켜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진무하도록 했다.)명나라 태조 고황제께서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고쳐 주셨다.)첫 번째 보기는 신라의 통일 과정을 서술하며 당나라의 개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신라의 통일에 대한 노력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다. 두 번째는 조선 개창에 있어 명나라의 개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렇듯 『동몽선습』의 중국 중심의 역사서술은 한국사를 서술하는 데에도 크게 나타난다.이러한 ‘소중화’사상에 입각한 역사의 서술은 역사의 주체를 획일적으로 ‘중국’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한국사를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게 한다. 한국사 자체의 자주적이며 발전적인 역량에 대한 사실들을 거세시키고, 중국에 대한 복종적 역사 인식만을 주입시킨다. 때문에 한국은 역사의 진보를 스스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지 못했다는 인식마저도 가져온다. 따라서 이러한 비주체적이고 사대적인 역사서술은 학생들의 역사적 사고력과 객관적 판단력 및 자민족 긍지 형성에 장애를 가져온다 하겠다.(3) 영웅주의 사관과 정치사 중심 서술의 문제점『동몽선습』은 역사적 사건의 나열과 정치적 인물들에 대한 행적 서술이 그 내용의 근간을 이룬다. 특히 여기서 유독 ‘지배자’ 및 왕정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역시 역사 이해를 표면적으로 진행시킬 우려를 낳는다.신라 말기에 궁예가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이라 하고, 견훤은 반란을 일으켜 완산에 웅거하여서 자칭 후백제라고 했다.)태봉의 여러 장수가 왕건을 세워서 임금을 삼고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다.)나말 여초의 정치 사회적 변동을 궁예?견훤?왕건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이 시기의 여러 정치적 변동이나 사회적 사상.
- -젊은 날의 이상으로의 회상-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와장석남의 「옛 노트에서」-사회가 세계화의 물결을 넘어 발전과 진보를 거듭함에 따라 인류는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와 삶의 편의를 영위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잉여 자원의 축적은 천민자본주의를 태동시켰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사회는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황금만능주의(拜金主義)만을 찬양케 만들었다. 물질만이 모든 가치척도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현대에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꿈꾸기’를 포기했다. 각박해진 자본주의 현실의 족쇄는 인간에게서 꿈?희망 그리고 이상(理想)을 앗아갔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들을 앗아갔다.꿈이 부재한 사회 속에서도, 몇몇의 시인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품고 빛바랜, 때론 잊히기도 한 예전의 꿈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 어려운 시절에 꿈에 대한 좋은 시들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여기서는 김광규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1979)와 장석남의 「옛 노트에서」(1995)를 중심으로 현대를 사는 시인들이 바라본 젊은 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의 제목은 동명의 유명한 노래 탓에, 제목만 보면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로 생각되기 쉬우나, 김광규는 “꿈?이상”을 “사랑”이라는 시어로 대변하였다. 젊은 날의 이상에 대한 시적화자의 그리움과 애정이 ‘사랑’이라는 세련된 시적 언어로 탈바꿈하여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제목은 먼지 앉은 옛 시절의 찬란한 이상에의 향수라는 주제에 꼭 맞게 어울린다. 오히려 명시적인 어휘를 활용한 “희미한 옛 꿈의 그림자”나 “희미한 옛 이상의 그림자”라는 제목은 시적 분위기를 약화시켜 어색함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시인 김광규는 제목 역시도 치밀한 언어의 제련을 통해 완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는 김광규의 시적 철학이 돋보이는 시이다. “독자들이 시를 읽을 때, 쉽게 읽혀지는 시가 좋의 생생한 고민들을 잘 담아내고 있고, 후반부의 “넥타이”, “월급”, “물가를 걱정”, “적잖은 술”, “비싼 안주”등의 시어는 이상(理想)이 결여된 현재의 시적화자의 현실을 또렷하게 비추며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기법은 시인의 정경 및 사건의 묘사와 연계하여 그 표현의 극대화를 낳는다.셋째로 시 안의 문장들의 주어와 술어가 명시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시적 개성은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등을 통해 목격되는데, 여기서 문장들의 주?술 관계가 명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장구조는 시의 마지막 행까지 계속되는데, 이 같은 문장의 규칙적인 활용은 독자가 시의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이러한 시인의 쉬운 시를 지향하는 시적 개성은 김광규의 다른 시에서도 많이 찾아지는데, 「어린 게의 죽음」 역시 이러한 맥락을 같이하는 시이다.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어린 게의 죽음」부분.이 시에서 역시 작가는 시대적 상황과 어린 게의 죽음을 결부시켜 쉬운 언어로 시적현실을 노래하고 있음이 목도된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무차별적으로 희생된 생명들을 어린 게의 죽음을 빗대 표현한 그의 쉬운 언어 지론은 그의 시세계에서 일관성을 내포한다 할 수 있겠다.이렇게 독자의 쉬운 이해를 배려하는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보다 꼼꼼히 살펴보자.작품 첫 행에 시적화자는 “4?19가 나던 해 세밑”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적화자가 처한 시대 사회적 현실과 계절적 시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시적화자의 ‘과거’의 시적현실로서 ‘4?19라는 정치적 쾌거의 혁명기를 경험한 해라는 정치적 현실’과 ‘계절적 시간으로서 한해 끝무렵 겨울’을 제시하고 있다. 민중들의 요구성에 의해 성취된 4?19는 시적화자의 이상과 부합하며 그 실천의 역동적 결과물로서 시적화자의 ‘과거의 찬란한 이상과 변혁을 위한 실천’을 부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선 안 된다. 본질적으로 정치와 민중은 유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민중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민중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이라는 구절은 오히려 “정치적 모순을 극복하는 혁명을 지향하는”이라는 의미의 시적화자의 의도로 읽혀지며, 이러한 반어적 표현으로 시적화자의 현실 개혁의 의지는 더욱 강고한 것으로 자리한다.이러한 치열한 시대의식 아래 과거의 시적화자는 열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시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라는 역동적인 구절에서 시적화자의 애정과 열의가 물씬 느껴진다. “토론”과 “노래”라는 혁명을 위한 실천과 투쟁의 행위들이 “열띤”, “목청껏” 등의 시어로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과거에 시적화자가 자신의 삶과 이상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고한 것이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애정은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을 뿜으며”라는 어렵고 힘든 현실을 이겨내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무관심을 극복하며, 시적화자로 하여금 혁명적 실천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시적화자에게 이러한 이상은 너무도 숭고한 것이었다. 혁명에 대한 열망은 “때묻지 않은” 것이었고, 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순수와 순진을 머금은 실천은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였던 것이다. 너무도 순결한 것이기에 자본의 논리나 힘의 논리 따위에 지배받지 않는 혁명의 이상이었다. 과거에도 현실의 문제들은 시적화자를 옭아매고 있었으나 그의 이상에의 순수한 열정은 그보다 강했다.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시적화자는 작지 않은 고민들을 했지만, 이러한 사회의 족쇄들은 시적화자의 “노래”를 가로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더욱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이러한 이상을 위한 혁명은 민주주의를 향해 한껏 치솟다가 결국 좌절되었다. 4?19 혁명을 통해 이룩될 것처 혁명적 실천이 부재한 것이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을 뿐, 그들은 더 이상 “아무도” 혁명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더 이상 민주화의 투사가 아니었고, 정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소시민이 되어 있었다.“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 “포커”와 “춤”과 같은 철저히 현실 종속적인 가치들을 누리며 그들은 이미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다. 그 중 몇은 과거의 그리움을 되새기며 “동숭동”길을 찾았으나 현실의 속박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현재의 시적 현실에서 그들은 혁명의 동지가 아니라 물질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달력”을 “소중하게”, “돌돌 말은” 채로 있었다. 이는 그들이 일상의 희구(希求)와 물질적 가치를 버릴 수 없음을 쓸쓸하게 읊조리는 부분이다.여기서 “동숭동 길”의 정경은 시적화자의 현재의 내면과 교묘한 일치를 보인다. 사실 동숭동 길은 시적화자가 혁명과 이상의 뜻을 키우고, 그 좌절을 맛본 공간으로서 시적 화자는 “우리의 옛 사랑이 피 흘린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적화자는 동숭동 길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일부.시적화자의 삶은 새로이 “물질”의 가치를 내면화하였는데, 이는 시의 “낯선 건물들”의 들어섬과 일정한 대응을 보이고, 또 시적화자의 내면에서 꿈?이상은 빛이 바래고 남루해 졌는데 이 역시 “플라타너스”의 초라한 마른 잎과도 일정한 관계를 보이는 것은 작가의 세밀한 언어 장치로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플라타너스”는 시적화자의 젊은 날의 이상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키며, 꿈 없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채찍질하게 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작용한다. “바람의 속삭임” 역시도 시적화자의 현실적 순응태도(소시민적 삶)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가”하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묻는 시적 대상이다. 표면 상 그 개연성을 찾기 힘들다. 얼핏 보면 “옛 노트”라는 시적 소재와 시의 내용의 유기적 연관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작가는 여기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옛 노트”가 주는 인상은 젊은 날의 일기?꿈?기록 따위이다. 이러한 인상은 과거를 떠오르게 하고, 이러한 상상은 과거 젊은 날의 과감한 행동들로 연결되며, 이러한 상상의 실타래는 젊은 날의 꿈과 이상에 까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옛 추억을 머금은 노트를 펼치며 회상에 잠기는 시적 화자를 상상해보면, 이 시의 제목과 그 내용의 유기적 연관성은 매우 치밀해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시를 읽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 역시 시인의 치밀한 의도된 장치라 하겠다.장석남 역시 과거의 이상?꿈에 대해 노래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명확하게 대비시키며 과거를 긍정적인 이상이 시적화자 내면에 자리하던 시간으로, 현재를 그러한 꿈이 부재한 부정적인 공간으로 읊조리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희미한 옛 사랑의 노래」는 ‘과거→현재’로 단순하게 배열되고 있는 반면, 「옛 노트에서」의 시간은 ‘과거→현재→과거→현재’의 형식으로 시간을 복잡하게 넘나드는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우선 작품의 계절적 배경을 살펴보면 “6월” 무렵이다. 시적화자는 현재를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이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앵두가 결실을 맺어 익어가는 계절은 초여름의 무렵인 6월 즈음임을 감안할 때, 시를 관통하는 계절적 배경은 6월임을 알 수 있다. 왜 시인은 과거의 꿈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면서 하필 “6월”을 설정하였을까? 계절적으로 볼 때, 6월이란 계절은 사실 그리움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오히려 가을이나 겨울의 생명이 꺼져가는 계절적 분위기가 찬란했던 지난날을 회상하기에 더욱 적절함을 지닌다. 시인의 이러한 계절적 배경의 설정의 이해를 위해서는 시적화자를 넘어서, 시가 쓰여진 당시 시인의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 1995년 당시 시인은 갓 서른을 넘기고 이 시를 지었다. 30대 초반이란 나이는 계절로 환산하자다.
- -과학사 REPORT토마스 쿤의 패러다임론과 국어교육과학혁명으로부터 비롯한 사회의 진화와 과학기술의 진보가 거듭됨에 따라 인류는 유례없는 물질문명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Alvin Toffler가 예견했던 제 3의 물결의 조류를 넘어 현대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과학은 인류에게 많은 편리와 풍요?유용성을 제공하며 발달해 왔고, 이러한 발전은 과학자들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개별적인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연구는 어떻게 과학의 총체적 발달을 가져왔는가? 여기서는 토마스 쿤의 저서인 『과학혁명의 구조』의 패러다임론을 토대로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고자 한다.그는 『과학혁명의 구조』의 후기(後記)에서 패러다임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있다. 그는 패러다임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특정 공동체 구성원(과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가치?기술 등의 총체’이며, 또 하나는 ‘이 같은 구성체 중 한 요소로서, 다른 문제해결을 위한 모델과 범례로 사용되는 구체적인 문제해결의 예(例)’가 바로 그것이다. 쿤은 이중 후자에 주목하며, 즉 패러다임이란 하나의 수용된 ‘모델’또는 ‘패턴’이라 정의한다. 여기서 쿤은 대부분 과학의 연구 활동들은 새로운 이론을 탐구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와 같은 구체적인 문제해결의 예, 즉 패러다임을 모델로 하여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작업이라 하였다. 이는 과학자 집단에 의해 이미 공인된 패러다임을 전제로 그 위에 그것이 제시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실체는 과학혁명의 구조를 살핌으로써 보다 명확해진다.쿤은 과학의 발전을 혁명적 단계로 보았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전(前) 과학 - 패러다임의 출현 - 정상과학 - 정상과학의 위기 - 경쟁적 패러다임의 출현 - 과학혁명 - (새로운) 정상과학 - (새로운) 정상과학의 위기 - …’의 단계로 진행된다고 하였다.자연과학에서 성숙되지 못한 시절에는 여러 학파들이 난립하여 각기러다임(pre-paradigm)의 시기가 존재한다. 이 때 학설을 평가해 주는 방법에 대해 일치된 준거점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기준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된 여러 학파들이 난립하여 존재한다. 과학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학파들 중 하나의 학파가 승리하게 됨으로써 전과학의 시기가 종결되고,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시기가 도래한다.정상과학의 시대에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근거하는 연구 활동들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확립된 선배 과학자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모델로 그것이 제시하는 여러 문제 해결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이다. 정상과학의 시기에는 패러다임에 관해 흔히 보수적이며, 대개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기에 일관적이고 집중적인 연구에 의한 능률성을 얻게 된다.그러나 패러다임은 결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후 정상과학의 연구 작업에서 더욱 세련되고 명료화되어야만 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작업이지만, 사실 수집?이론의 정식화 등을 통해 패러다임을 더욱 세련화시킨다. 비록 패러다임이 아직 불완전하더라도 이것이 세계의 진실이라는 신뢰감은 정상과학에서는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즉, 정상과학의 시기에는 그 패러다임이 당면한 문제해결이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에 대한 믿음을 쉽게 버리지 않고, 이를 ‘패러다임을 평가해 주는 반증 사례’가 아닌 ‘변칙성’으로 간주한다.그러나 이러한 변칙사례가 증가하면 정상과학에 대해 과학자들의 의심이 깊어지는데 이 시기에 정상과학의 위기가 도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칙성의 증가에도 과학자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변형시키거나 보조 가설을 설정함으로써 이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패러다임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며, 그 패러다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게 된다.이러한 갈등이 고조되다가 경쟁적 패러다임이 출현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불신에 의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러 새로운러다임과 대결하는 양상을 띤다. 패러다임의 경쟁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중 하나가 승리하여 인정받게 되면, 새로운 정상 과학이 시작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교체과정을 쿤은 ‘과학 혁명’이라고 지칭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교체로 인해 정상과학은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재편되고, 이러한 재편으로 새로운 정상과학이 태동한다. 새로운 정상과학의 태동으로 다시 과학발전의 주기의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쿤의 과학관의 핵심은 패러다임의 교체를 통한 과학의 발전이 혁명적이라는 데 있다. 즉 과학지식이 관찰과 실험의 검증을 통해 누적적이고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과학관에서 탈피하여, 한 시대의 과학은 당대의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인식체계인 패러다임에 의해 규정되며,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때 과학은 그 근본으로부터 완전히 바뀌는 혁명적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때 두 가지 패러다임은 양립할 수 없다. 그는 이러한 혁명은 본질적으로 진보의 과정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다른 두 패러다임의 우월성을 비교할 수 없다고도 하였다. 즉 패러다임의 절대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살핀 쿤의 ‘패러다임’은 그 스스로 정치에 적용시키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패러다임론으로 국어교육 이론의 발전 역시 설명할 수 있을까?필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국어 교육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야기하려 한다.첫째, 국어교과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식교과’에서 ‘기능교과’로 전환되었다. 과거에 국어 과목은 그 자체로서 학생들에게 하나의 독립된 학문이었다. 이때에는 국어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고, 학생들은 국어를 알기 위해 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따라서 국어의 문법?국어사 등 지식 영역이 중시되고, 문학을 학습함에 있어서도 작가의 생년?작품 발표년도?수사법?문체의 구조 등 실로 국어의 지식적인 영역 자체가 강조되는 교육을 시행했다. 이러한 시도는 학생들로 하여금, 국어 교과의 심층적인 이해와 체계적인 내용 지식 구성 등의 순기능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대부분 학생의 자발적 활동과 창의력을 거세시키고, 피동성만을 배양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더불어 심리학 연구에서 ‘국어 그 자체를 학문으로 배우는 교수법은 학생들에게 어떠한 이해의 심화에도 기여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와 ‘학생의 창의적 사고력 육성’이라는 새로운 교육 목표에 의해 도전받는다. 그런 과정에서 지식교과론은 심각한 위기에 당면한다.이러한 위기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인 기능교과론이 대두되었다. 국어는 그 자체가 학문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른 학문을 하거나 사회성을 기르는 도구적인 교과라는 관점이 등장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서는 국어교과는 실생활에 필요한 국어 능력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실생활에 필요한 기능인 말하기?듣기?읽기?쓰기가 강조되었고, 문학을 지식의 대상으로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표현된 감정 등을 읽어 내려가는 등의 창의력 학습이 중시되었다. 또 상대적으로 국어 지식영역과 문법?국어사 등은 비중이 줄어들었다. 이는 학생의 창의적 사고력을 증진시키고, 학생의 문제해결 능력의 증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으나 학생의 지식수준 저하의 문제와 직결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모순에 의해 다시금 주입식 교육이 제고되고 있는 실정이다.두 번째로, 주입식 교육이 학생 탐구중심 교육으로 전환되었다. 과거 4차 교육과정 당시만 하더라도, 국어교과에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논리가 팽배해 있었다. 즉 학생들이 많은 지식을 학습할수록 역량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많은 양의 내용지식을 학생에게 주입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국어 교과서의 내용은 방대해졌고, 교사가 지도해야할 분량은 늘어만 갔으며, 학생이 습득해야할 내용지식의 양은 과도하게 부과되었다. 이러한 학습 내용의 증가는 교사에게 한정된 수업시간 내에 많은 양의 내용지식을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부여하였고, 따라서 교사는 설명을 통한 단순한 지식의 전달하는 교수법을 선택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소위 주입식 교육이란 것이 태동하였다. 이는 방대한 분량의 국어 전달함으로써 풍부하고 다양한 국어지식에 학생들이 접할 기회를 제공하며, 심화된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주입식 교육의 과도한 분량에 있어서 학습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도태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실제적 경향과 더불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학자가 ‘학생들이 흡수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은 각 발달단계별로 한정되어 있다.’는 연구결과를 주장함으로써 주입식 교육의 효용성에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즉 학생들의 수용량은 정해져 있는데, 그 이상의 과도한 지식을 주입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러한 의심과 주입식 교육의 위기가 극에 달하였을 때, 다양한 대체 패러다임들이 등장한다. 그중 학생의 창의적 사고력과 탐구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탐구중심 교육이론이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다다익선’과 주입식 교육의 교육적 효용성을 부정하며, 학생들의 창의력 계발과 탐구력 증진을 위한 국어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많은 내용지식에 대한 일괄적인 학습은 학생의 이해 증진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학생의 지식체계에 혼란만을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하였다. 때문에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심리?정서?사고 수준을 고려하여 중요한 내용들을 선별하고, 이러한 내용들을 토대로 학생의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즉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교육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국어교육계는 큰 인상을 받으며, 기존의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기에 이르렀다. 단순한 지식 노출의 집합체였던 교과서를 탐구학습 및 학생활동 중심으로 전면 재구성하고, 학생의 흥미를 이끌기 위한 다양한 시도(만화?삽화)들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학생의 흥미를 적절히 유도해 내고, 학생의 사고?탐구 과정을 중시하였으며, 학생 주도의 국어 수업을 진행토록 하였으나 학생의 지식의 폭과 이해의 깊이를 좁히는 결과를 보였다. 이 역시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되어 다시금 주입식 교육의 효용성에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