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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라
    1. 어린이에 대한 도전제자들은 예수님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은 사람들을 가르치신다든가 병을 고치시는 등 다른 중요한 사역들에 비해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는 예수님은 너무 바쁘고 피곤하셔서 어른들 상대하기도 귀찮을 지경이라고 지레 짐작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예수님에게 나아가 무언가를 유익한 가르침을 얻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오히려 아이들을 사랑하셨으며 함께 있기를 즐기셨고, 어린이들 가운데서 사역 하셨으며, 심지어 애들을 소재로 어른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셨다.어린이들에게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모든, 교사든, 교회 지도자든, 그 누구든 어린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를 전면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은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어린아이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에서 6가지를 중심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1.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2. 신체적 정서적으로 절실한 어린이의 필요3. 어른들의 삶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중요한 영향4. 어린이의 영적인 개방성5. 어린이에 대한 신학적인 문제들6.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인 압력2. 수렁에 빠진 아이들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도덕적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하는 많은 정보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도덕적인 규범을 부정하는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자랄 것인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급격히 무너져가는 가정의 모습들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한다면 점점 어두워진다. 부모의 이혼, 편부편모에게 자라는 아이들, 부모의 맞벌이로 거의 버려지듯이 자라가는 아이들, 혼전 성관계로 인해 버려지는 아이들 등 이러한 모습 속에 자라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또한 날로 늘어가는 재난들이 있에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삼천포 코리건'이 되는 셈인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그 해결책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는 성경의 가정을 바라봄을 통해 그 해결책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가 영적으로 깊은 병을 갖은 이유는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가정의 기준을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성경에 나오는 가정을 통해 아이들을 잘 이끌어가는 일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다음 네 가지에 근거가 있다.첫째, 성경은 하나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둘째, 성경은 부모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거듭거듭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셋째, 성경은 충실한 자녀 양육과 부적절한 교육의 결과들을 실례를 들어 보여 준다. 넷째, 성경은 불임, 낙태, 영아 살해, 입양, 버릇없는 아이, 혼성 가족, 고아, 믿음 가운데 성장하지 못한 이아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아동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4. 성경 속의 아이들성경 속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참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으로 바라보았다. 어떠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느냐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행동들이 결정된다. 아이들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이들을 바르게 자라가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또한 축복으로 바라보기에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서 가르치게 된다.성경 속의 부모들이 자녀를 갖기 원한 이유들은 무엇일까? 첫째, 부모가 되는 기쁨 때문이다. 둘째, 민족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셋째, 부모가 노쇠했을 때 자녀들의 봉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낳으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바로 아버지께 간구 하는 것이다.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의 아이들에게 참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음을 우리는 알 수 따라서 분명 태아의 조성부터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인데 그것을 우리가 마음대로 지우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란 생각이 든다.유아 살해에 관한 내용 역시 하나님께서는 금하셨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몇 가지 경우에 성경은 유아 살해를 허락하셨다. 죄의 뿌리를 도말하시기 위해 또는 사람들의 진정한 순종을 확인하시기 위해(아브라함-하지만 죽이기 전 하나님께서는 막으셨다.) 허락하셨다. 하지만 이것을 제외하고는 금하셨다.낙태와 유아 살해에 있어 과연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둘 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무서운 죄인 것이다.6. 성경 시대의 가족 규모와 구성성경 시대의 가족은 거의 대가족이었다. 아버지와 어미니, 그리고 ‘전통에 가득한’ 아들들과 딸들이 가족을 이루었다. 여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친인척들, 그리고 종에 이르기 까지 다른 식구들이 보태지는 수도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첩, 또는 여종들을 두기도 했는데, 주인의 아이를 낳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족의 일부로 생각했다.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자녀가 많은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다. 또 이상적인 자녀 수는 일곱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한 자녀라면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충분하다고 믿었던 것이다.성경에는 일부다처제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어디에도 일부다처제를 옹호한다는 성경의 내용은 없다. 단지 일부다처제가 더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일부다처제로 인해 많은 갈등과 불화가 있었다.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려 할 때 양자를 입양해 자신의 대를 잊게 하였다.장자라는 것은 첫아기라는 의미에서 또한 부모를 공양 한다는 의미에서 참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장자는 하나님의 몫으로 구별했다.성경의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영적인 삶의 모델로서 작용을 하고 있었다. 또한 효성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7. 성경에 나타난 부모의 책임어떻게 하와 아버지에게 나누어 맡기셨다. 성경 시대에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키는 일을 주로 아버지가 맡아 했다. 물론 어머니도 교사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자식들을 하나님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치라. 아이들에게 성경 역사를 가르치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라.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며 주님이 제시하는 삶의 기준과 요구 사항들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르치라. 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되게 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기술들이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진리와 성경적인 안목 등을 갖출 수도 있다.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주의를 끌라. 대화로 진리를 전달하라. 하나님의 진리를 눈으로 보게 하라. 호기심을 자극하라. 규칙을 세울 때는 근거를 제시하라.자녀를 경건하게 훈련시키고 말씀으로 먹여야 하는 부모의 책임을 온통 남에게만 떠넘기는 요즘 아버지 어머니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가장 으뜸가는 삶의 목표,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는 목표를 잃고 헤매이게 만드는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자녀를 제대로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들이 마땅히 가야 할 바른 길, 그러나 좁은 길을 걷게 하라.9. 성경에 나타난 성장의 단계성경에 쓰인 용어들이 앞에서 열거한 단어와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약 성경 곳곳에서 아이들의 성장 단계를 묘사하는 생생한 단어들을 찾아볼 수 있다.10. 성경 가족 안에서 아이들이 맡은 역할자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려면 함께 놀아주는 게 빠르다. 놀이는 아이들을 둘러 있는 세계에 대해 아이들이 반응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의 아이들은 대부분 농경문화 속에서 살았으므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냥, 낚시, 물매질과 활쏘기 등 집 밖에서 사는데 필요한 기술을 익혀갔다. 아이들과 청년들 가운데는 음악적인 재능을 키워가는 축들도 있었다. 몇몇 동물들은 아이들의 좋은 , 공경하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나 자기를 돌봐주는 어른이 하는 말과 행동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않고 그대로 흉내내는 습성이 있다. 자녀가 자랄 동안 부모가 돌봐주는 것처럼, 아이들도 성장한 후에는 연로해진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또는 부모를 도와 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자식 노릇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른들처럼 무슨 일이든 내키는 대로 할 수 없고, 심기 불편한 부모의 꾸지람 쏟아지는 '대상'이 된다는 것 말고도, 아이들은 여러 문제에 부닥친다. 요즘 자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생각해보자. 편애, 집안 싸움,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 형제 사이의 갈등, 질병, 결혼의 울타리 밖에서 태어난 아이들, 고아 등 참 많은 삶의 문제들이 있다.우리 크리스천은 이런 아이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11. 예수님의 탄생과 소년 시절인간 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정녀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남성이 개입되지 않았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수태했다.이사야는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으며,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미가는 그 장소를 정하게 지목했다.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그렇게 먼훗날 이뤄질 일들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날 것이라는 이 선지자들의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예수님의 탄생은 천사가 한밤중에 양떼를 치던 목자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천한 일을 하던 목자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들이 천사가 "곧 그리스도 주"라고 부른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렸다.때마침 베들레헴으로 여행 중이었던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이 아주 불편한 시기에 태어난 셈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표와는 어김없이 들어맞는 탄생이었다. 예수님은 '때가 차매', 즉 가장 적합한 시간에 태어났다. 다음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며, 다.
    독후감/창작| 2006.09.28| 8페이지| 1,000원| 조회(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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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유사 그리스도인
    매튜 미드 (Mattew Mead, 1629~1699) :매튜 미드 목사는 영국 남부의 버킹엄셔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출생과 교육 등의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버킹엄셔의 부룩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것과 1658년 1월 22일에 쉐드웰의 뉴채플 교회의 목사직을 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1662년 기도 방식 통일 법령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는 다른 성직자 2천여 명과 함께 성직에서 추방당하고 1년치 생활비를 몰수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매튜 미드 목사는 헨리 버튼이 1644년에 설립한 비국교도 교회인 스탭니의 우스터 하우스에서 죠 오웬, 카릴, 그리피스 등 청교도 거목들의 참석 하에 위임식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1671년의 일입니다. 스탭니에서 설교했던 매튜 미드에 대해 역사가 캘러미는 많은 회중이 그의 설교를 듣기를 열망했고 캘러미 자신도 미드의 열렬한 추종자였다고 증언합니다. 캘러미에 따르면 미드는 매우 사려깊은 사람이었고 탁월한 설교자였다고 합니다.매튜 미드는 연륜이 더해 가면서 복음적 열정과 영혼에 대한 사랑도 더해 갔습니다. 그는 불필요하고 무익한 논쟁을 싫어했고, 복음의 본질적 교리를 깊이 연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미드는 1699년 10월 16일 향년 70세로 소천되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조금도 동요의 기색이 없었고, 친구가 심경을 묻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사명을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라고 담담히 말한 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크게 외친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내용 및 나의 생각들.......바울은 매우 바리새인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되었을 때 바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순간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그 시간인 것이다.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또 유사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 아닐 수 없다.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던 사람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 참 많은 것을 했던 사람이 죽기 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안타깝고 당황스러운 이야기 이다. 이 사람의 삶이 바로 유사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이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어째서 그 누구 보다 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던 그들이 그런 안타가운 모습들을 갖게 되는 것일까?이 사람은 분명 신앙적인 삶에서 성숙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람은 성경 지식에 대해 매우 박식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큰 은사를 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 또 수준 높은 신앙고백을 할 수 도 있고, 죄를 미워하고 대적할 수도 있고, 기도를 많이, 열심히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신앙적으로 성숙한 말씀을 두려워하는 일, 천국의 소망을 갖는 일, 그리스도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일, 성령을 받는 일, 믿음을 갖는 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일,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일 등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분명 성숙한 신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인데 도대체 왜 그들은 유사 그리스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 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은혜와 위선을 가리는 일곱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연인의 양심은 종교적 의무를 제한한다. 자연인의 양심으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게 되면, 보통 하나님의 일을 제한적으로 행합니다. 그의 일은 한계가 있다. 그의 복종은 한계가 있는 복종이다.둘째, 새로워진 양심은 보혈로 죄의 제거를 바란다. 자연인의 양심이 죄를 발견하고 죄를 책망한다면, 그는 양심을 만족시키지 않고 죄를 지적하는 양심의 입을 막아 버리기를 구한다. 자연인이 행하는 종교적 의무의 대부분은 양심을 잠잠케 하고 질식시킨다. 그러나 신자는 양시의 입을 막기 보다는 양심의 외침에 못 이릅니다. 자연인의 양심이 많은 봉사를 하게 할 수는 있지만 결코 거룩함에 도달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마지막으로 자연인의 의무는 처음에는 크나 나중이 미약합니다. 자연인의 양심이 의무의 샘이라면, 샘물이 처음에는 많이 흐르지만, 날이 갈수록 감소하고 마지막에는 말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중생한 양심, 즉 성화된 마음이 의무의 샘이라면 이 샘은 결코 마르지 않습니다. 이 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흐릅니다. 오히려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이 흐릅니다.우리는 지금 이야기 한 것과 같은 것들로 우리의 모습을 진단 할 수 있다.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무늬만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한번 다시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앞의 일곱 가지로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일곱 가지다 조금씩 나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다시금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나에게도 많은 자연인의 모습이 있다. 이러한 모습들을 지금까지는 어떻게 보면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또 그 모습들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아니한다면 결코 안 됨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제법 신앙인의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죄인들의 양심에 조명된 말씀의 능력 때문이다. 말씀이 비록 효과적으로 모든 이에게 작용하지는 않지만, 죄인들의 양심에 작용하여 죄인들을 갱신시키지는 않지만, 말씀은 개혁시키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죄를 분별하고, 법이 되며, 심판이 되는 삼중 능력아래 있는 사람은, 즉 마음이 샅샅이 파헤쳐져 드러나고, 양심이 구속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죄악된 형편과 상황이 심판받고 정죄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할 수도 있고 신앙을 고백하며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명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명성을 얻고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 신앙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경우입니다. 는다면, 그가 얼마나, 대단하게 자신의 경건을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잘못 인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뉘우친다고 하여 모두가 철저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부터 온 것이 아닌, 단지 본성적이고 이성적인 것도 있습니다.오직 성령의 역사만이 죄의 자각을 통해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끈다. 자연적인 죄의 자각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무서워하게 합니다. 범죄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분리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죄의 자각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영혼을 쫓아내지 않고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죄의 자각과 회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차이이며, 보통의 것과 구원하는 것의 차이이다.두 번째로는 철저한 은혜의 역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인 죄의 자각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마음에 먼저 역사하는 철저한 은혜의 역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마음에 은혜의 작용이 없다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신앙 고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상태의 변화, 즉 마음에 은혜의 작용이 없다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인 정원에서 자라는 허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나면서부터 거짓되고 심히 사악합니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신실함에 더욱 반대되는 것입니다. 부패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본질에 큰 차이를 초래했습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혼에 은혜의 작용이 있기까지는 어떤 영혼 속에도 신실함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종교적 의무를 모두 행하고도 여전히 유사 그리스도인에 불과한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신앙 고백을 하면서 여전히 유사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상태를 자신이 스스로 속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태를 오판합니다. 사실은 악하고 위태로운데 선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속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노의 그릇으로 생각하십니다.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면빠져 전적으로 천국을 무시하도록 유혹할 수 없다면 천국에 이르기에 부족할 만큼만 신앙을 고백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는 어떤 죄는 떠나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래도 행하게 합니다. 어떤 신앙적인 일을 행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나머지는 무시하게 합니다.사단은 그 영혼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버리기보다는, 그 영혼이 신앙을 고백하는 데까지는 양보를 합니다. 그리고 회심을 제외하고, 즉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 응답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행하는 데는 동의합니다.또 우리의 방법이 세속적이고 육적일 때 우리는 유사그리스도인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세속적이고 육적인 방법이야말로 많은 사람에게 큰 장애가 됩니다. 그러한 방법은 흔히 경건과는 배치됩니다.또 우리의 마음에 내재하는 정욕이 있어 그리스도께 진심으로 응답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까지는 오지 않습니다.우리는 우리의 경계선이 아닌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 그 경계선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에까지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멸망하는 사람들 모두가 멸망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그들은 세상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지도 않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도 세상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것을 - 모든 정욕과 모든 아끼는 것들과 모든 사랑하는 죄 - 버려야 한다면, 데마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말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유사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한쪽은 정욕을 사랑합니다. 또 한쪽은 그것을 방해합니다. 신앙 고백을 한 후에 정욕과 그리스도는 영원히 갈라집니다. 그들은 잘 되어갑니다. 그러나 결국 부족하여 영원히 멸망을 당합니다.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검증하며 유사 그리스도인의 모습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수가 있습니다.우리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할 다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징표와 신앙의 외적 표증에
    독후감/창작| 2006.09.28| 6페이지| 1,000원| 조회(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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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요람에서 강단까지
    제 1장 의사전달자로서의 자녀가정은 그 어느 교실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활발하고 생동적인 의사전달 훈련장이 될 수 있다. 자녀의 의사전달력 향상을 도움으로써 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끔 이끌 수 있다. 이 책은 자녀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의사전달을 활용하도록 부모가 이끄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포함하고 있다.제 2장 의사전달 기법과 자녀를 위한 목표와의 관계복잡다단하고 경쟁이 심한 세상에서 뛰어난 의사전달력을 보유한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자녀에 비해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또한 대다수의 직종들이 좋은 화술을 요구한다.대다수의 부모들은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내 자식이 삶의 목적의식을 갖기 바란다.”, “내 자녀가 자기 주변 세계를 인식하기 바란다.”, “내 자녀가 더 잘 배우기를 바란다.”, “내 자녀가 창조적 사색가가 되기를 바란다.”, “내 자녀가 품위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기 바란다.”부모의 목표는 한마디로 의사전달력과 필연적으로 관련된다. 의사전달 훈련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회에 기여하고, 영향력을 끼치고, 동료들 가운데 선의의 경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들이 기꺼이 따를 만한 모범이 되게 해준다.제 3장 의사전달력 훈련의 여섯 가지 기둥가정환경이란 일상 생활을 통한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서, 때로는 무의식중에 부모가 자녀에 게 의사전달을 가르치고 모범이 됨으로써 이루 어진다.목적의식은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일상 생활의 흥미와 의미를 느낌으로써 얻어진다.인식은 세상에 대한 아이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다.학습은 자녀가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을 즐기 는 데서부터 비롯된다.창조적 사고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흥미롭고 신 나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의젓함은 폭넓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편안한 마음가짐을 배움으로써 온다.공감은 남의 경험을 경청하고 배우는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제 4장 의사전달력 함양에 초점을 맞춘 가정환경 조성의사 전달력을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은 바로 부모이다.성을 말로 전달한다. 또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과 가족회의를 통해 우리는 열린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이다.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라. 긍정적인 눈맞춤을 하라. 감정표현을 조심하라. 자녀의 수준에 예민해져라. 의사전달을 분명히 하라. 이 것들을 지킴으로 우리는 부모로서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제 5장 자녀의 삶의 목적의식 강화훈련가정 환경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할 첫 번째 기둥은 목적이다. 목적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모든 것, 특히 의사전달 기법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목적은 실제 의사전달 기법으로 간주할 수는 없으나, 의사전달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필수불가결이다.삶의 목적 개발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포인트는 첫째, 자녀를 뚜렷한 목적이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며 살고, 둘째, 자녀의 의미감각 개발을 돕고, 셋째로 자녀의 적극적인 응원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제 6장 자녀의 주변 세계 인식 돕기위대한 의사 전달자들은 자기 주변에 대한 인식 능력이 예민하다. 일상적인 일들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정신적 통찰력으로, 그들은 인간의 조건과 의미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한다. 인지는 작가를 더욱 눈부시게, 연사를 더 재치있게 그리고 내담자의 욕구를 평가할 때 상담자를 더욱 숙달되게 만들어 준다.관찰력 개발에 초점을 둔 간단한 활동을 통해 자녀가 자기 주변을 좀더 잘 인식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리고 관찰 내용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해석이란 말한 사람의 신빙성과 능력에 관한 판단을 하는 것, 그리고 메시지의 감정적인 영향을 탐지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메지시를 해석하는 것은 메시지를 이해하는 첫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그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정보를 평가하는 것은 아이에게 자기가 보는 대상에 대한 느낌을 계발하여 자기 삶 속에 응용할 수 있게 해준다.제 7장 자녀가 더 잘 배우는 길의사 전달력 훈련의 세 번째 기둥은 학습이다. 배울 수 있는 능력과창 시절 내내 독서를 잘해 온, 아주 다양한 배경 출신의 자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시절부터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책을 읽어주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어린이들은 열세 살 정도까지는 추상적 사고력을 갖추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때까지 그들의 생각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을 필요로 한다. 부모는 이것을 고려하며, 아이의 열의를 키워 주는 학습, 재미있는 학습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그리고 흥미있는 학습을 해야 한다.제 8장 창의적인 사고력 기르기사고와 창의성 그리고 의사전달력은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는데, ‘말씀’ 즉 로고스는 그리스어로 말과 마음을 뜻한다. 하나님은 우주를 그의 마음으로 창조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주가 존재하도록 말씀으로 명하셨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만큼, 생각과 말 그리고 놀랍도록 복잡하고 아름다운 창조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이상에 비추어 볼 때, 의사전달 기법의 연마를 통해서 사고력의 증진을 꾀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창의적 사고를 북돋울 최선의 길은, 생각과 의사전달력을 독특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적용시키는 창의적 활동을 통해서이다. 창의적 원리를 활성화시키는 강력하고 실질적인 두 가지 방법은 연극과 이야기하기다.연극은 지능과 신념, 명석함과 상상력, 창의성 등의 지적 기술을 가르친다.이야기하기는 자신의 상상의 산물로써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창작 행위이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가치관이 전달되는 가장 좋은 방법도 바로 이야기하기라는 것이다. 부모의 이야기는 자녀를 과거와 연결시켜 주고, 옳고 그름의 차이를 가르쳐 주며, 경건한 성품을 기르도록 도와주고, 삶이 관찰과 발견과 상상의 신나는 과정임을 확인시켜 준다.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모습대로 지으실 때, 언어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주셨다. 우리가 이 강력한 선물을 되도록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안정감을 결여시키는 최대의 단일 요인인 것 같다. 부모는 자녀에게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부드럽게 일러주는 것을 통해 아이들의 행동이 더 편안하고 바람직함 품행을 하게 할 수 있다.제 10장 대인관계 : 삶의 기술 돕기의사 전달은 다른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 자녀가 듣고 배우고 보다 원만한 인간으로 성숙하도록 해준다. 아울러 이웃의 삶에 충만함과 의미를 더해 주면서 격려할 기회를 갖게 한다. 남을 이해하고 삶과 연결짓는 능력을 공감 또는 감정이입이라 부른다. 공감은 우리가 남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확실히 알도록 관심을 나타내는 능력을 뜻한다.공감은 예수님이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신 성품이다.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셨다. 비록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경험을 겪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그들과 동일시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공감적 의사전달력을 개발하는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은 능동적인 듣기와 숙달된 대화 능력이다.능동적인 들음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깔린 감정에 듣는 사람이 주의를 기울일 때 발생한다.우리는 아이들이 어른들과는 따로 떨어져 다른 아이들과 놀기를 기대한다. 인간적인 관계를 회피함으로써 일방통행의 잘못된 의사전달의 본을 자녀에게 보이고 있다.감정이입은 의사전달력에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어떻게 감정이입을 하는지는 모르고들 있다. 무시무시할 정도의 불안한 침묵이 우리의 영혼에 침투해 있는 것이다. 듣기와 대화하기 학습은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 같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그들을 접하고 그들을 사랑해야 할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제 11장 각 어린이를 위한 의사전달력 훈련 활동모든 프로젝트는 자녀의 목표의식 강화, 주변 세계 자각, 보다 나은 학습자 되기, 좀더 창의적인 사고력 키우기, 의연한 태도 계발, 남과의 유대관계 형성의 여섯가지 중 하나 혹은 두 가지 영역의 기법을 함양하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목적의식 느낌으로써 감각을 높여주고 보다 깊은 차원의 표현을 하게 해준다.독창적인 사고는 자녀에게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또는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생각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생겨난다. 그것은 자녀에게 삶에 관한 독특하고 새로운 조망과 함께, 빠르고 힘있는 사고력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오르도록 박차를 가함으로써 뛰어난 의사전달을 뒷받침하게 된다.의연한 태도는 다양한 환경에서 편안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배우는 데서 생긴다. 그것은 자녀가 청중 앞에서든지, 아니면 자녀가 처할 어떤 사회적 상황이든지 간에 늘 의젓할 수 있는 자신감을 길러 준다.공감은 남들의 경험을 듣고 배우는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다. 그것은 자녀의 대인 관계 기술을 향상시켜 주고 타인들로부터 호감을 받게 하여 메시지의 힘을 늘려주기도 한다.이 프로젝트들이 자녀의 사회적 영향력의 근저를 형성하고, 자녀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그들의 성숙을 도와주는 소금의 역할을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게 되리라 믿는다.제 12장 영아기의 의사전달부모가 갓난아이와 어떻게 대화하느냐가 훗날 자녀의 의사전달력 발달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발견하고 대부분 놀라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영아와의 의사전달이 무의미하다는 낡은 교육철학이 끔찍한 결과를 낳은 놀라운 사실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언어 발달을 단계별로 연구한 많은 사람들이 영아의 발성은 실제로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려는 시도라고 결론지었다. 뿐만아니라, 영아는 날 때부터 남들의 대화에 예민하다. 또 다른 영아 연구가 발탁스 교수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목소리에 담긴 감정의 특색에 반응을 보이며, 목소리에 표현된 감정을 분별하여 얼굴 표정과 맞추는 것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의사전달을 매우 갈망하기 때문에, 악기를 포함한 어떤 소리보다도 어른들의 목소리에 더 관심이 있다.전문가들이 영아기를 효과적인 언어 사용 능력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로 보는 것은 이제 놀랍지 않다.아기의 발단단계를 알아보자.1단계 : 발성, 2단계 :
    독후감/창작| 2006.09.28| 7페이지| 1,0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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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대안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평가A좋아요
    1. 대안교육이란 무엇인가.-대안교육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대안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 살펴봐도 쉽지 않은데, 한글학회가 간행한 『우리말 큰 사전』에서의 뜻은 다음과 같다.대안(代案): 어떤 안에 대신하는 말.예)“그렇다면 무슨 대안이라도 있단 말씀이오. 대안을 말해보시오.”-대안교육의 영어식 표현: alternative education ( 다른 어떤 유형의 교육을 대체하는 것.)-최근 들어 국내에서의 대안학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대안교육에 대한 나름의 개 념 정의가 시도되고 있다.①사전적 의미에 기초한 정의: 기존의 교육과는 다른 교육으로서 현재의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교육 방법.②다른 정의: 근본적으로 사고의 변화, 가치 형성에 있어서의 변화, 현 사회 질서와 학교 제도가 뿌리를 두고 있는 토대 그 자체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책에서의 대안 교육에 대한 정의대안교육은 1990년대 이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공교육 제도로서의 학교 교육을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거부하며, 일부 학부모와 교사, 교육 운동가를 중심으로 민간 부분에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다. 대안 학교는 이러한 실천이 학교 형태로 진행되는 것을 뜻한다.2. 대안교육의 시작과 급속한 확대1)간디청소년학교의 개교- 한국교육의 획일성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학교급과 학년이 같다면 전국 어디서나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이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을 국가교육과정과 검?인정 교과서제도를 고수해왔다.- 획일적인 학교교육은 국가가 관리하는 대학 입학 시험 제도를 통해 한층 강화되었으며, 학력경쟁사회는 학교 교육을 입시 위주의 파행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최근의 학교붕괴의 큰 원인으로 학교 교육의 획일성이 지목되고 있다.- 대안학교는 국가 주도의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획일성에 반발한 민간의 자발적인 교육 운동으로 등장했다.2)학교 탈락자 문제와 ‘특성화엇인지를 보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계절제나 방과후 프로그램형 대안학교가 제외되는 약점이 있다.-대안 학교가 학습자의 학습권 실현을 추구하며 등장했지만 실질적인 학교 운영에 있어 학습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유형화 할 수 있다.①교육주의적: 학습자가 배우는 내용을 교사나 학교 설립자 등 교육 실시자가 결정하는 경우, 미리 정해진 교육과정을 운영.②학습주의적: 학생과 그 대리인인 학부모가 결정하는 경우. 고정된 교육과정 없이 학생들의 개별적인 처지와 요구에 따라 유동적인 교육과정을 운영.4. 한국의 대안학교1) 도심의 대안학교-서울시 교육청 ‘도시형 대안학교’학교 중도 탈락 현상과 대응-2001년 3월 시작된 서울시 교육청의 ‘도시형 대안학교’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비행으로 인해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의 위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도입됐다.다양한 체험기회 보장, 교육효과 극대화-도시형 대안학교는 서울시 교육청 관내 고등학교의 재학생으로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퇴학 처분이 내려진 학생과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대안학교 위착 과정은 학년별로 별도의 대안학교 학급을 운영, 학급당 인원은 25명.-도시형 대안학교들은 의 ‘자율학교’에 준해 운영된다.-교육과정의 편성에 있어 큰 자율성을 누릴 수 있다. ‘도시형 대안학교’에서는 위탁 학생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육과정은 교과 활동과 특별 활동으로 편성된다.-대안교육 교과는 인성 교육활동 및 진로 교육 활동으로 나누어 학교별로 운영한다.대안교육 운동과 제도교육의 성공적 결합-서울시 교육청의 ‘도시형 대안학교’는 기존 학교에 비해 교육과정 운영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개개인이 원하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습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서울시 교육청의 ‘도시형 대안학교’는 민간의 대안학교 운동을 제도권에서 수용한 대표적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2) 미인가에서 특성화고등학교로 -간디학교과정 자진 해산과 동시에 평생교육시설로의 전환을 요구했으나 허가되지 못함.-자진 해산에도 불구하고 2002년 중학교 신입생을 선발해서 전남 장성의 ‘한마음 공동체’에 교사를 파견해 이동수업을 함.교육의 권리를 바라보는 시각차*경상남도 교육청과 간디학교 사이의 갈등 원인①미인가 중학교 과정 운영②고등학교 과정에 대한 재정 지원 중단.-우리 사회의 교육을 관리 통제하고 있는 법과 행정이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그리고 이에 더 나아가 대안학교를 만든 국민의 자유로운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는가로 귀결된다.중학교 과정의 해산 결정-간디학교가 중학교 과정의 인가를 신청하게 된 것은 반복되는 작은 갈등을 끝내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인가 학교운영이라는 표면적인 갈등의 이면에는 학력 인정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간디학교 중학교 과정 학생들은 대부분 도시 지역 출신으로 중학교를 자퇴한 뒤 간디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의미 교육이 적용되는 일부 농어촌 지역 학생들은 퇴학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이들은 배정받은 중학교에 무단으로 결석을 하고, 검정고시 치를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야만 했다.-간디학교가 중학교 과정을 자진했기 때문에 ‘특성화중학교’로 인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그러나 간디학교 중학교 과정을 비롯한 미인가 중학교 과정 대안학교가인가를 받더라도 의무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완전 의무교육 상황에서는 제도권 내부로 진입하더라도 미인가 상태에서와 같은 자율적인 교육과정은 운영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평생교육시설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4)미인가 대안 초등학교-광명 YMCA 어린이학교 볍씨-교육 목적:‘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할 일꾼을 키우는 것이다.-교육 과정: ①몸 교과: 나들이, 놀이, 텃밭 가꾸기 등②생각교과: 말과 글, 수학, 민주시민이 기본 영역.③마음 교과: 풍물, 도예, 명상, 표현과 감상 같은 활동-‘볍씨 학교’의 교육과정 구성과 교육 활동에 학부모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생명 살림의 학교를 지향.②학생과 교사의 상생적 만남을 위한 소규모 학교를 지향.③지역민의 삶에서 배우고 익히며 학생은 지역의 꿈과 희망으로 자라는 지역 공동체 학교를 지향-목표: 누가 누구를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실천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3단계의 독특한 교육과정-‘작은 학교’는 3년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는 독특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①자기 발견의 기간②검정고시 준비 기간③진로 모색 기간-일반교과, 체험 교과, 주제 교과.십대는 사회적 자원이다. -하자 작업장 학교십대는 사회적 자원이다.-‘하자 작업장 학교’는 ‘십대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다.’를 설립 이념으로 한다.-도시전체를 학교로 본다는 의미에서 ‘도시를 학교로’,‘ 벽이 없는 학교’라 불리기도 한다.3대 운영 원리와 일곱 가지 약속①구체적인 경험과 작업을 통해 배운다.②문제 해결과 소통을 통해 배운다.③‘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자’-기존의 학교에 비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중도 탈락 학생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학교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도시 전체를 학교로- 서울 네트워크 스쿨-목적: 탈학교 십대 문제를 학생들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단속이나 선도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학교가 아닌 새로운 배움터를 제공하자는 것.-‘서울 네트워크 스쿨’은 서울시 전체를 배움터로 삼는 소외 ‘도시를 학교로’ 혹은 ‘벽 없는 학교’를 지향한다. 학교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관계망이며, 정보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현장은 어디든 학교라는 것이다.제도 밖에서 자기 길 스스로 찾기‘서울 네트워크 스쿨’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안교육기관이다. 학교 밖 학생들도 학습하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대안의 학습 공간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자 한다. 개별화된 학습, 각자의 경험을 존중하는 학습인 ‘자기 길 스스로 찾기’의 원리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공동체 -들꽃 피는 학교가정의 보호가 필요한 5. 외국의 대안학교1.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킬 권리와 자유가 있다.-미국 홈스쿨링85만 명이 홈스쿨링을 하는 나라미국 가정들이 홈스쿨링을 택한 계기 두 가지① 보수적인 기독교 가정이 홈스쿨링을 택함.② 학교 교육의 전문화와 관료화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학습에 대해 보다 넓은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기를 원하는 경우- 미국의 홈스쿨링 가정들은 1980년대 들어 조직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종교적, 철학적 신념이 같은 사람끼리 소규모로 모임을 꾸리고, 도시?주?국가 수준의 거대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는다.(국가센터, 전국 홈스쿨링협회, 홈스쿨링의 법적 보호를 위한 협회, 정기 간행물 발행 등)부모는 자녀를 교육시킬 권리와 자유가 있다.-연방헌법에 교육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는 미국은 교육에 대한 책임이 각 주에 있다. 각 주는 의무 취학과 교육의 질적 보장을 위한 교사 자격증 교육과정 지정 등을 바탕으로 한 의무학교취학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홈스쿨링의 정착 역사는 이 법에 대항한 수많은 재판을 통해 교육의 자유를 쟁취해온 투쟁사하고 할 수 있다. 홈스쿨링이 정착하게 된 법적인 기반은 미국 헌법의 제1수정 조항과 제14수정 조항 때문이다.제1수정조항에 “모든 시민은 적법한 정차에 의하지 않고는 그 자유에 대한 권리가 박탈당하지 않는다”하고 규정되어 있으며 이 자유에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시킬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제 14수정 조항은 “모든 시민이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자유에는 종교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홈스쿨링 가정들은 주마다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다.2. 학생의 자유로운 의사 존중 -영국 섬머힐 학교학생의 자유로운 의사가 학교의 확고한 원칙- 섬머힐 학교는 영국의 학교 형태 가운데 ‘독립학교’에 해당한다. ‘독립학교’는 의무교육 연령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역 교육청의 재정 보조를 받지 않으며 교육과정 등 학
    교육학| 2006.09.28| 12페이지| 1,000원| 조회(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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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하나님과 문화
    1. 세계는 과연 무대로서 적합한가? 신학, 문화 그리고 해석학케빈 반후쩌인생의 중앙 무대, 그리고 인생의 또 다른 무대들로 통하는 그 지혜의 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찾아서 또렷한 목소리로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신학이 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한 마디로, 무대의 방향을 궁극적으로 설정해 주는 것이 곧 신학의 주요 과제인 셈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반드시 해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 배우들은 천상의 것들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에 일차적으로 그것들을 해석해야만 한다.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세상의 공연을 평가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야 할뿐만 아니라 세상 그 자체를 해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란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신앙을 “무대에 펼쳐 보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곧 문화인 것이다.칼 헨리 박사는 문화 및 문화적인 경향들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와 분석의 중요성을 올바로 파악한 분이었다. 그는 현대 대중 매체가 천성적으로 우상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에게 환상적인 신화를 창조하는 기계 장치를 제공해 주었으며, 이러한 기계 장치는 임의대로 새로운 현실을 가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문화는 “특정한 신념의 접착제, 즉 인생과 현실에 대한 확고한 안목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접착제 같은 안목이 그것의 응집력을 보존시켜 준다”그렇다면 현대 문화들을 형성하고 있는 가치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궁극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들이 참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유익한 허구들임을 인정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수많은 현대 서구 사상가들은 모든 가치관들이 신화가 만들어 낸 열매라고 선포하면서 그것들을 그런 식으로 추켜세우고 있다.헨리 박사의 작품은 “신학, 문화 그리고 해석학의 관계”라는 우리의 주제에 대한 탁월한 서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신학은 성경 해석학 및 문화 해석학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해석은 신의 말씀이라는 문학적인 틀에 입각해서 세계를 해석한다. 그 해석학의 적극적인 화두는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과 “신앙적인 실천을 추구하는 이해”를 의미한다. 우리가 더 이상 의미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면, 절대적인 선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해석학은 인간의 공통된 몫이자, 특권이며 책임이다. 성도이자 죄인인 우리의 해석들과 실천들은 언제나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가 세계를 열었으며, 굉장한 속도로 이 문화가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훌륭한 백신으로 지급 성장하고 있다.기독교의 이야기가 순식간에 열강들을 무너뜨렸으며 문명들을 탄생시켰다. 제1막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공연활동 이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의 활동들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그 공동체는 지금 2막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제1막을 회상함과 동시에 마지막까지 그 호흡을 이어가야 한다. 세계가 마침내 안정된 무대가 되어서 만사가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을 내다본다는 점에서, 그들은 복음을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예언을 공연하고 있는 것이다.2. 다원주의 시대의 기독교 전도카슨현대 서구 문화의 큰 특징은 다원주의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산된다는 데 있다. 다원주의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선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를 좌우하기도 한다. 신학이 세계화하는 과정에 다원주의는 기회도 제공하지만 위험도 던진다.대다수 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에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다원주의가 있다고 한다. 다원주의는 갈수록 다양성을 띠어 가는 서양 문화의 현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미국 사회만 보더라도 인종, 전통, 종교, 가치관이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태계, 아일랜드RP, 스웨덴계 국가이고,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흑인 국가이며, 조만간 세 번째로 규모가 큰 히스패닉 국가가 될 것이다. 이 집단들이 이렇게 성장해 갈 수 있는 배진적인 탈축주의로 몰아가지 않는다. 모든 이해 행위는 필연적으로 해석이라고 말한다.역사적 개신교에서는 적응교리, 즉 하나님이 인간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주들 안에서 인간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주들 안에서 인간들과 의사 전달을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와 문화에 자신을 적응하시는 방법에 관한 교리를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 가지 의미에서 궁극적인 ‘적응’은 성육신이다. 그것이 바로 신학자들이 종종 기록된 말씀과 성육신 하신 말씀 사이의 유사성들에 자주 주목해온 한 가지 이유이다.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더라도 그 내용의 진실성을 보증하는 이는 초월적이고도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일관성이 있다는 점과, 그 계시를 일고 이해하려는 인간의 시도들은 비록 완전한 이해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주관론이나 심지어 유아론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장하기를 원할 것이다. 어쨌든 현대의 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냉소적인 말장난을 하고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할 때 독자들이 그것을 다소 이해해 주기를 기대한다.다원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성경의 전체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기독교 증거는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세계관들 앞에서 성경 이야기 및 그 정점인 복음으로 대면하는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조금씩 약진해갈 여유가 없다. 그럴수록 조금씩 입지를 잃어갈 것이다.성경은 인간들이 중요하지만 반역한 존재들이라고 강조한다. 현대의 분위기는 인간들이 중요하지도 않지만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우리가 안고 있는 딜레마의 본질은 인식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딜레마를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둔 복음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고독이나 다른 인간들로부터의 소외나, 성취 결여, 물질주의, 가난, 부패한 정부, 혹은 환경 파괴가 아니다. 모든 문제들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뿌리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서 동시에 나타난다. 인류학이 이 분야에서 해를 끼칠 수 있게 된 데에는 문화가 성격 적 인간관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쟁점들을 전지는 사실이 한몫 했다.복음 적 인류학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진단할 수 있는 질문은 복음 적 인류학자들의 작업과 가르침이 선교사들에게 타문화 권에서 성격 적 개념들을 사용할 역량을 증진시키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개념들을 사용할 경우 더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게 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대답이 후자 쪽으로 기운다고 믿는다. 복음 적 인류학자들이 선교 학에 많은 유익을 끼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 분야에서는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렇지 못하다. 이 분야에 끼친 주요 공헌이라 할 것 같으면 선교사들에게 문화적 차이들을 존중하라는 당부와, 정죄 하려는 충동이 민족 중심주의의 발산이라는 경고였다. 이것은 중요한 공헌이고, 필요한 첫 단계이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민족 중심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선교 인류학이 여태까지 균형 잡힌 통합을 인정하는 중간 노선을 수립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선교사들은 양방향으로 잡아 끌린다. 인류학자들은 다 문화적 상황에서 죄 개념이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데 비판만 하고 말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교사들에게 다 문화적 상황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데 적합하고, 타 문화권 사람들의 양심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선하고 진실하여 그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따라서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주지시키는데 적합한 죄 개념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복음적 선교사들은 수 년 혹은 수십 년을 다른 사회 사람들과 지냄으로써 현장에 토대를 두는 이점을 지니는데, 이것은 인류학자들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이점이다. 하지만 비교 문화적 선교사의 과제가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만이 내놓을 수 있는 이해를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대단히 어려운 일인 반면에, 복음 적 선교 단체들은 배경 적이고 구체적인 지적 작업의 필요를 경시하면서 열정적으로 영혼 구원에 힘써왔다.목표하고 있는 가치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수행될 것이다. 그들은 가치 지향적 표준들을 가지고서, 그것으로써 자기들의 작업을 평가하고, 그것으로써 끊임없이 작업을 개선할 것이다.7. 역사가와 옛적부터 계신 이르이스 스피츠역사가들은 특히 고대와 중세 초기 역사에서 끊임없이 발견되고 연구되는 모든 시대의 복잡한 정황들과, 반주류적 경향들, 그리고 새로운 차원들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럴지라도 그들이 과거 사건들을 기술할 때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려면 전반적인 개념들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가는 장기간에 걸친 실재들과, 대단히 더디게 진행되는 기본적인 발전들을 인식해야 한다.모든 역사가들은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반 그리스도인이든 상관없이 공통된 문제들에 부닥친다.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들, 증거의 문제들, 파이를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시대 구분의 문제로서, 이 시대 구분이라는 것은 역사의 의미에 관해서 역사가와 서양인의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결백하지 못한 용어이다.물론 역사 연구는 다양한 차원의 복잡성과 깊이로 수행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 유익할 뿐 아니라, 개인적 생활에서 얻는 관점에서도 유익한 지식을 얻는다. 보다 깊은 차원에서 보자면, 역사는 분석적 차원에서 연구될 수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 역사가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겸손하게 원인들보다 요인들에 관해서 말한다.기독교 문화는 자체의 체계에 유대교를 흡수했기 때문에 다른 문화와 비교할 수 없이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시간을 중시하는 세계사 기술은 선지자 다니엘과 유대교의 묵시적 글들에서 끌어온 네 왕국 사상에 기초를 두었다.역사가들은 광범위한 연대기적?지리적 한계들과 역사 구분들의 테두리 안에서, 두 가지 목적, 즉 첫째, 역사 발전이라는 일반 개념과 조화를 이루고, 둘째 모든 시대의 독특한 특징들을 고정하는 것을 허용하고, 색다른 유형의 역사 발전과 뚜렷한 관계를 맺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탈리아의 탁월한 르네상스 학자 다.
    독후감/창작| 2006.09.28| 36페이지| 2,000원| 조회(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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