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밀턴 아레오파티지카John Milton and the Self-Righting Principle시인으로서 존 밀턴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수 없다.리듬을 받지 않는 시로 그의 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은 영문학에서 최고의 업적중 하나이다.그러나 저널리즘의 어휘에 있어서는 밀턴의 명성은 문장가로서의 천재성보다 검열에 대한 완강한 저항으로 쓰여진 위대한 팜플렛의 자극적인 내용이 더 크다.이 자유표현에 대한 찬가는 아레오파티지카(Areopagitica)라는 제목으로 1644년 10월 24일에 발간되었다.: 허가 없이 출판하는 자유를 위해 영국의회로 보내는 밀턴의 연설이것은 작년에 그가 저서한 이혼에 관한 두편의 소책자에 대한 의의를 제기했기에 공식적인 불만으로 의회에 보낸 것이다.이 소책자에서 그는 이혼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아마도 그의 16세된 아내에 대한 불만인 부분도 있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선언이었다.한 구절은 영국 국교회에 대한 저주였다. 밀턴은 사회적 삶의 행복에 필요한 것으로 세가지 자유를 마음에 그렸다.- 종교, 가정,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자유가정적 삶과 공공의 삶을 주목할만하게 비교한 것에서 밀 턴은 아래와 같이 논하였다.그는 의회와 법정에서의 자유를 가정에서 아래계급의 사람들에게 헛되이 자랑하고 있다.자신은 노예의 상태에서 괴로워하면서도...훗날 여성의 질을 위해 투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밀턴의 감정적 생각을 뒷받침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의 의도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잘 교육받았지만 그의 아내 매리 파웰은 그와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사실을 그려볼 때 밀턴은 남성 권리를 찬양했기 때문이다.어쨌든 성직자들의 반응은 공포중의 하나였다. 의회 앞에서 설교한 영국국교회의 허버트 팔머라는 성직자는 이혼에 대한 밀톤의 변호에 “사악한 책”으로 영국 검열법을 어겼으며 불태워야한다는 교회의 반응을 말했다. 우연히 밀턴의 집에서 메리가 결혼한지 한달만에 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곧 성실청(星室廳, 웨스트 민스터 궁의 천장에 별 모양의 장식이 있는 방의 명칭) 앞에서 처벌이 집행되어져 왔다. 그러나 밀턴의 이혼에 대한 밀턴의 소책자들은 성직자들이 교회의 허가 없이 어 떤 책자도 출판될 수 없는 더 강력한 법칙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밀턴의 글들은 이미 영국 국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저주를 받고 있었다.밀턴은 청교도적인 특유의 self-rightousnees(자신의 공명함?)을 가지고 군주의 강력한 전제정치에 의문을 제기했던 그 전의 소책자에서 성직자들의 세속화를 비난했다. 회고해보면 그의 소책자를 출판했던 친구들은 감옥에 가고 또 다른 이들은 귀가 잘리는 형벌을 받은 반면에 밀턴은 어떻게 그 시기에 무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간다. 나중에 밀턴은 호민관 정치시대가 끝나고 스튜어트 왕조가 부활한 1660년에서야 체포된다.이후에 크롬웰은 다른 추종자들에게 살해당하지만 밀턴은 살아남아 그의 위해한 시를 쓰게 된다.흥미롭게도 검열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다룬 밀턴의 아레오파티지카는 출판당시에 영국의 수사학에 잔 물결을 일으켰다. 한세기가 지난다음 1728년까지 그랬다. 미국 식민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대결인 존 피터 젱거 재판이후에 아레오파티지카의 신판이 출판되어 검열의 종식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주장이 제기 되었다.밀턴이 아레오파티지카를 출판했을 때 청교도혁명이 발생한지 2년째 되는 해였다.출판자유를 위한 정열적인 논쟁이 있었던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단어들이 필요하다.칼뱅주의가 스코틀랜드에 유입되고 잉글랜드에 위협을 가할 때 매리 튜터는 잉글랜드의 종교를 카톨릭으로 정하는 배후정책을 단행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민주적이었던 밀턴의 정책은 이해할 수 없는 정열로 이를 싫어했다. 우리는 밀턴의 개인적 측면에 대해 다시 돌아갈 것이다.엘리자베스가 1558년에 44년간의 통치를 시작하려할 때 그녀는 도시에 거주하는 자유주의 자들을 융화시키는 노력했고 장로교주의를 지지하고 농촌지역의 사람들을 보호었다.크롬웰과 같이 밀턴은 청교도였으며 엘리자베스가 죽은 이후 여왕의 왕위를 계승한 스튜어트 왕조 밑에서 아픔을 겪었으며 투터 왕조보다 더욱더 성칠실 안팍에서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압박하였다.결국에는 올리버 크롬웰을 대장으로 따랐던 의회당원(Round-round, 왕당세력에 반발하여 머리를 둥글게 짤랐던 청교도들의 별명)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1세를쫓아버렸다. 처음에는 의의를 제기한 중간계층들의 목표는 주로 왕실의 권력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력을 증가시키고 그리고 영국국교회를 칼빈 교회로 바꾸는 신중한 것들이었다.그러나 억압이 높아지자 크롬웰의 철기병으로 알려진 돌격대는 점점 과격해 지기 시작했다. 1642년에 시작된 내전은 뜨거운 민주적 선동의 부산물을 낳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롬웰의 통치가 민주적이고 왕조에 반대했다는 것에 표를 던지는 것은 실수이다. 1648년 크롬웰의 수행원들은 정치적 종교적 변화에 대한 안전보장을 위해 심지어 찰스를 왕좌에 복귀시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후 1649년 1월 30일 이들은 공화정 원칙에 중요해서가 아니고 찰스로 인해 영구적인 안정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찰스를 강제로 처형시켰다. 호민관 정치는 찰스의 아들이 영국 왕좌에 복귀해 찰스 2세로 즉위한 1660년 까지 11년이 계속되었다.밀턴은 중요한 시기에 살았던 주목할만한 인물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작가,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르네상스의 정치이론가들처럼 그는 그리스와 로마 고전에 자리를 두고 있다.그러나 그는 역시 청교도 세계와 미국 식민지에 수출되어 무르익은 상업적 폭발의 문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밀턴은 자수성가한 부모 슬하였지만 귀족이 배경은 아니었다.밀턴의 아버지는 금융인으로써 법률적인 서적을 조합하는 기술자이며 공증인, 법률서적 작가로써 부와 지명도를 쌓아왔다.밀턴은 중산층의 동료학자와 상인속에서 자랐으며 열성적인 청교도 신봉자가 되었으며 끊어오르는 저항이 생겨났다.밀턴은 성경에 대해 열성적으로 임했으며 그가 59세때 그의 위대한타고나면서 선(?)하고(이 관점에서 밀턴은 홉스와 확연히 다르다) 외는 정치적 무지와 동일시 하였다.여기서 밀턴은 교육과 지식이 지구상에 천국을 건설하는데 힘을 불어 넣어준다고 믿는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그리고 다른 낙천주의자들처럼 동일시 된다.밀턴의 실낙원에서 사탄(악마)은 전통적으로 발톱과 꼬리와 뿔이있는 것에서 벗어나 오히려 식견있고 용감하고 당당한고 심지어는 거인의 크기에 아름다운 형상을 한 비극적인 주인공이다.적어도 여기서는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전지전능함은 지은 것이 아니며여기는 시기의 대상이며 이 울타리 속에서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여기서 안전한 지배를 받으니 그러나 나의 선택이다.지배하는 것은 가치있는 것이다 지옥에서도천국에서 섬기느니 지옥에서 지배하는 것이 낫다물론 이것은 밀턴의 상상력에서 사탄이 전적으로 감탄할 만한 형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그는(사탄) 결국 악마이며 인류의 유혹자이다.사탄은 근대적인 방식으로 그의목적을 얻기 위해 자부심과 질투심에 호소해 인간을 신으로부터 내몰려고 한다.밀턴의 사탄은 정신적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차가우며 계산적으로 인간의 합리성에 호소하여 인간영혼의 파괴로 기쁨을 찾고 있다.밀턴의 사탄은 “정신이 자신만의 장소이며 그 자체로 지옥속에 천국이 될 수 있고 천국속에 지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게다가 밀턴은 사탄의 영혼의 독립성을 존경하지만 신의 선 아래서 단순히 귀족정치에 대해 반역하는 것을 비난하였다.그러나 밀턴은 사고에서 뛰어나고 강력했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17세기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시대의 혼란에 복종되었으며 그 혼란은 오늘날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밀턴의 사상을 교육받은 미국의 저널리스트들도 아직까지 실낙원에서 밀턴이 제기했던 불일치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이러한 불일치중에서 미국 저널리스트 아이디어를 맴도는 것은 검열에 관한 것이다.실제적으로 언론 자유의 개념에서 타고난 선과 악은 무엇인가?우리는 1644년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때는 밀턴이 이미 이혼에 관한 두 가지의 소명한 연설은 법률가 이소크라테스가 한 것이며 사람들은 모두 동등한 정치권리를 소유해야 한다고 정부제도에 호소한 내용이다.밀턴의 에세이는 많은 것이 있다. 학문적으로 검열의 실행의 역사이며 교회의 가르침에 준수하는 법률을 제정하는데 반대하는 신중한 선전이었다.이성, 논리, 합리성 책에 대한 경외성에 대한 우아한 찬송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에 대한 정열적인 확신이었다.밀터은 책에서 교회가 악마로부터 신자들을 구하기 위해 허가의 위협을 강요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자기 파괴적인지 적고 있다.그것을 접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악을 알수 있을 것인가? “그는 유혹과 외관상의 즐거움으로 포장된 악을 이해하고 고려할수 있다. 아직 절제하고 아직 구별하고 아직 진실로 더 좋은 것을 좋아한다면, 그는 진정 진실한 기독교인이다”밀턴은 저널리스트의 신념 체계에서 영구히 참을 수 있는 요소중 하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이슈에 있어 읽음으로써 인간존재로 접근할 수 있으며 이해뿐만 아니라 품위와 선 또는 밀턴의 표현을 사용하면 “인간 미덕”이다.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악에 대한 지식과 조사는 인간의 선을 구성하는데 매우 필요하며진실을 확정하는데는 오류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소책자들의 모든 형태를 읽고 이성의 모든 방법으로 듣는 것을 통해 죄와 거짓을 확인해 덜 위험하게 되고 더 안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복잡한 책을 읽는 것은 이익이다.오늘날 언론인들의 가치 속에서 최고의 가치 있는 것을 찾는 다양성에 관한 것은 밀턴의 찬양중에 똑같이 열정적이다.진실을 위해 “일반적이고 친밀한 연구”에서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기대한다.밀턴은 “배우고자하는 강한 욕망이 있는 곳은 많은 주장과 글을 많은 의견이 있다 선한 사람들의 의견은 지식을 만드는데 사용되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의 의견에 대해 마음을 닫는 것은 진실을 거부하는 것이며 흐르는 분수를 ”진흙탕으로 병들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진리와 거짓은 서로 부딪히게 되면 언제나 진리가 승리한다는 상징적 표현의 .
과학혁명의 구조와 이중나선- 과학에서의 주관성과 객관성을 중심으로전통적인 과학관에서 과학은 합리적이며, 엄밀한 학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즉, 과학은 객관적이며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고, 그 연구는 항상 엄밀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과학관에서 과학자의 활동과 과학 자체는 엄격히 구분되어왔다. 과학은 과학자의 활동으로부터 나오긴 하지만 그것과는 독립된 지식체계이며 객관적인 대상이다. 따라서 과학자는 그의 연구활동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하며, 따라서 가능한 한 과학자 개인의 주관과 편견을 제거하고 오직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규범처럼 생각되었다. 과학자의 몰주관성이야말로 과학의 객관성을 보증해 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증주의적 과학관은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며, 1950년대 중반까지는 거기에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그러나 1962년에 토마스 쿤의 가 발표되면서 이러한 전통적 과학관에 반박이 가해졌다. 즉, 과학은 반드시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사는 정통성을 달리하는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과정이다. 곧 불연속적이고 혁명적인 전환의 연속인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이론을 정당화할 어떤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한 과학자 사회(scientific community)가 합의하고 공인한 정통적 기준(패러다임)만이 있을 뿐이다. 과학사를 보면 하나의 인식틀이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의 패러다임에 입각한 안정된 과학을 쿤은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 부른다. 그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주로 기존의 패러다임을 확장하고 보완하는 작업으로서, 그것에 의해 주어진 기본 우주관을 토대로 더욱 광범위한 현상을 거기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이다. 물론 그 패러다임에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현상이 발견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한다. 하지만 기존의 과학자 집단은 자기들의 패러다임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그 모순을 제거하는 응급 조치로 맞서거나 그런 현상을 아예 무시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즉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 과학의 상태가 무한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패러다임의 기본 이론과 모순되는 문제들이 계속 생기고 그것을 소탕하려는 과학자 사회의 노력이 계속 수포로 돌아갈 때 그 과학자 사회는 위기에 처한다. 이제 종래의 패러다임으로는 현실을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과학자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위기가 진행 되어 가는 중에 마침내 대안적 이론체계들이 출현한다. 과학자들은 그 가운데 하나의 이론이 새로 제기된 문제들을 더 잘 해결해 준다고 믿고 이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주류 과학자 집단에서 이탈하는 첫 발자국을 옮기는 이들의 선택과 배신은 다소 모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설득력이 조금씩 강해지고 더 많은 과학자들이 거기에 가세하면 어느 순간 돌연 그것이 주류를 이루고 이제 거기에 순응하지 않는 과학자는 입지를 잃어버린다. 이 일련의 과정이 곧 '과학혁명'이다. 쿤은 이것을 "하나의 패러다임이 이와 양립할 수 없는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대체되는 축적되지 않은 변화의 에피소드들"이라고 정의한다. 새롭게 등장한 패러다임은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전제와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 따라서 같은 표준으로는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인 과학자들은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믿으면서도 이를 논리적으로 입증하기가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입각해서 연구하는 그 두 과학자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쿤은 말한다. 그래서 이처럼 한 이론 체계에서 다른 이론 체계로 바꾸는 것을, 기존 질서와 단절하고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법으로서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 또는 기존의 신념 체계를 버리고 전혀 다른 것에 충성을 바치는 '종교적 개종'에 비유하고 있다.이러한 게슈탈트 전환의 대표적 예로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들수 있다. 왓슷과 크릭은 1953년 4월 25일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는 ‘핵산의 분자 구조 : 디옥시리보핵산의 구조’라는 논문이 발표했다. 이 논문은 겨우 9백 단어 분량의 아주 짧은 논문이었지만, 과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논문에는 지구의 생명 부호 외에는 어떠한 것도 실려 있지 않았지만, 이후 수많은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이것이 바로 쿤이 말하는 과학혁명 이다. 당시 DNA의 구조를 알면 생물의 활동과 번식에 관한 수많은 기초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뿐 아니라 당시의 수많은 과학자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DNA 연구는 한세기 전의 그레고르 멘델이라는 오스트리아 수도사의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까지 유전은 피를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됐다.다윈과 19세기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지적한 사람이 멘델이었다. 그는 1856년부터 7년 동안 완두콩 교배실험을 통해 씨앗마다 어떤 유전형질을 갖고 있는지, 또 어떤 경우 잡종이 나오는지를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유전은 피가 섞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뤄지지 않음을 증명했다. 멘델은 유전자의 우열에 따라 유전형질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이뤄졌을까. 또 유전자는 어떤 방법으로 자손에게 유전형질을 전달할까. 이런 비밀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은 멘델 이후 1백여년에 걸친 긴 연구를 하게된다.
국가안보의 개념과 중요성1. 국가안보의 개념가. 어원적 개념어원적으로 보면 안전보장(security)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securitas"에서 온 것으로서 'se'는 "어떤 상태로부터 벗어나거나 자유롭게 된다" 또는 "어떤 것에서 풀려난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curitas'의 어원인 'cura'는 공포, 불안, 근심이나 피해 또는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원에 따르면 안전보장(security)이란 "위험이라든가 위협으로부터 자기의 안전을 지키고, 공포, 불안, 근심걱정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국가적 차원에 적용해 보면 국가안전보장(national security)이란 국가가 외부의 침략이나 위협 또는 그로 인한 공포, 불안 및 근심걱정에서 벗어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나. 기존 학자들의 개념 정의우선 국가안보가 수단인가 목적인가에 대해 학자간에 이견이 있는 바 이를 소개하면,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은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국가가 전쟁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혹은 불가피하게 전쟁을 치루게 될 경우 승리함으로써, 자국의 핵심적인 가치들--예컨대, 전통적인 자유와 신념--를 희생해야하는 위험에 처하지 않는 정도만큼 안정적인 상황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국가안보는 타국으로부터의 공격을 억제하거나 물리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의미로서--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국가안보가 '수단'(가치를 파괴하려는 국가를 격퇴시키는 것)이자 '목적'(안보라는 가치를 유지하는 것)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키신저(Henry Kissinger)는 국가안보는 그 자체 목적이 아니고 국가적 목표와 의도를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하므로서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국방대학원 안보관계용어집에서는 국가안보를 "국가의 존립, 즉 국민 전체의 생존에 대한 위협을 미연에 고 나서 탈냉전기 국제질서의 변화에 부응한 새로운 안보개념을 제시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개념 정의로 평가된다.그러나, 이에 대해 몇가지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는 바, 첫째, 국가안보를 주로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관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 둘째, 국가안보를 달성해야 하는 최고의 절대적인 가치라기보다는 추구해 나아가야 할 하나의 목표로서 고려했다는 점이다. 물론 국가안보 위협이 주로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겠지만, 오늘날 국내문제와 국제관계가 밀접히 연계되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국가안보의 위협은 국내와 국외 구분 없이 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겠다. 또한, 국가안보는 국가가 책임지고 달성해야할 최고의 가치로서 생각되는 바, 단순히 추구해야 하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안보의 목표를 체제생존, 시민의 생명 및 생활양식으로 한정하고 있어 이를 좀 더 포괄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사항을 참조하여 국가안보의 개념을 재구성해보면, 국가안보란 "일반적으로 국가정부의 책임으로서 국가 및 시민의 핵심적 가치가 대내외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을 방지하여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안전이 유지되는 것"(목표 또는 수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위의 개념 정의는 탈냉전기 안보개념의 변화들을 반영하여 국가안보의 개념을 다소 포괄적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그러나, 포괄적인 만큼 추상적이어서 안보개념의 모호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우선, 여기서 문제는 국가가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 국가 및 시민의 '핵심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백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물론 국가안전보장의 핵심적인 목표는 살아남는 것, 즉 생존이므로 국가안보는 국가의 생존 그 자체를 수호해야 할 지상의 가치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국가는 원래 영토, 주권에다 국민의 존재까지 포함하므로 국가안보는 영토와 주권의 유지는 물론 국민 개개인의 생존까지 도모하는 것이라고 해석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 즉 국제체계에 영향을 받는 바 국제체계와의 상호작용 또는 상관관계에 따라서 안보상황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한다. 그래서 동일한 안전보장 노력을 해도 외부환경 여하에 의해서 획득되는 안전도가 일정치 않다. 예컨대, 존 헤르쯔(John Herz)의 '안전보장 딜레마'(security dilemma)가 지적하듯이 전년도에 비해 2배의 국방비를 지출하여 국방력을 증강시켰다 하더라도 상대국이 훨씬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국방력을 증강시키면 오히려 더욱 불안전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국방비를 감축했을지라도 상대국이 국방비를 더욱 감축하거나 또는 상대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오히려 안보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 또한 국가의 내부상황 역시 국가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즉 아무리 군사력이 월등하더라도 국가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 사회적 소요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된 경우에 비하여 국가안보는 상대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국가안보는 그 나라의 내부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외부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달라지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으로서 결코 일정 불변할 수 없다.요컨대, 월퍼스(Arnold Wolfers)의 지적처럼 국가안보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가안보의 개념, 범위, 궁극적인 목표,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등을 모든 국가에 획일적으로 일반화시켜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금세기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왈츠(Kenneth Waltz)가 언급했듯이 "국가안보는 무정부적인(anarchical) 국제체제에서 국가의 존립 이유이자 국가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라는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 영토와 주권, 체제보전 및 국가적 번영을 이룩함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겠다.2. 국가안보의 중요성 : 위협의 유형과 의미가. 탈냉전과 국가안보 위협국가안보 개념은 대내외 위협에 대해 적절히"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부에 귀속시키는 크고 주된 목표는 무정부 상태에서 매우 불안한 자산(생명, 자유, 재산을 모두 포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국가의 주된 임무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오는 위협과 국가 내부의 무질서에서 비롯되는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 즉 국방과 치안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민생치안은 국가안보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내 행정에 관한 것으로서 제외되었고, 국가안보는 주로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생존을 유지하는 군사안보에 관한 것으로 여겨졌다.어쨌튼, 국가라는 실체가 성립한 이래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책임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생존을 유지함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군사안보는 국가안보의 중심적인 분야로 자리잡아 왔다. 국제질서의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한 현재의 탈냉전기적 상황에서도 군사안보는 여전히 국가안보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남아 있다. 군사안보는 주로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자(realists)들에 의해서 강조되었는 바, 이들의 시각은 "국가안보는 밖으로부터 오는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영토와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간주한다.이처럼 현실주의자들이 군사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제체제의 무정부적 속성에 기인한다. 신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케네스 왈츠(Kenneth Waltz)가 지적한 바와 같이 유사 이래 국제체제의 구조(international structure)는 단극, 양극, 다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지만, 국제체제 자체의 본질적 속성은 여전히 무정부적인 상태(anarchical system)로 남아있다. 국제연합과 같은 초국가적 국제기구가 있지만 세계정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초강대국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제법이나 각종 규약, 관례 등을 통해 일종의 체제(regime)가 형성되어 국가간의 관계를 규제하고는 있지만, 국내법에서처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고 오직 국제사회의 정책, 군비통제 등 모든 군사안보 분야의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기본적이고도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고려된다. 군사안보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쟁의 방지에 있고, 동맹, 중립화 정책, 군비통제 등은 바로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대국보다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하며, 최소한 상대국과 대등한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함으로써 힘의 균형을 통한 억제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갈등관계에 놓인 국가간에 군비경쟁이 불가피하고, 군비통제는 양자간 군사력의 균형을 통해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고려된다. 경제학에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어 시장 기능(market mechamism)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것처럼,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자들은 개별국가가 각기 군사력을 증강하는 가운데 국가들간에 자동적으로'힘의 균형'상태에 도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요컨대,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사회의 무정부적 속성에 따른 국가간 갈등과 경쟁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개별국가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서 군사력을 배양할 수밖에 없으며, 전쟁억제 또는 평화는 오직 힘의 우위 또는 균형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현시점에서도 군사력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안보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냉전의 종식과 함께 전세계적인 군비축소의 분위기와는 역행되게 중국, 프랑스가 핵실험을 강행하는 이유는 바로 국가의 외교 및 안보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최후 수단은 역시 군사력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가간에 무역마찰이나 외교적 갈등관계에 놓여 있을 때 대부분 협상이나 타협을 통해 조정이 가능하지만,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서 군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쨌튼, 군사력의 뒷바침 없이는 국가의 외교적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군사력은 국가의 가장 효과적인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