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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의 발달과 정신건강 문제
    노인의 발달과 정신건강 문제노인은 사전적 의미로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말하며 나이 많은 자를 말한다.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65세 이상의 자를 노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이혜원, 2004).전미애(1999)는 정신건강은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주요요인이며, 노인에게 있어서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노인의 경우 수입의 저하, 신체기능의 저하, 젊은이 지향적 사회로부터의 소외 및 상실감, 고립의 증대, 우울, 슬픔, 죄의식, 절망 등은 이들로 하여금 결국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며,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여러 가지 양상의 신체, 심리,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노인의 정신건강은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일이나 스트레스에 적응하고 정서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장애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다음은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주로 발생되는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정리해 보았다.우선, 안정성 있고 잘 성숙된 인격의 소유자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언젠가는 차차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게 되며, 때로는 다소 신체적인 변화와 관련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대개 심리적인 변화이다. 사람은 누구나 50넘어서 60사이에는 차차 자기가 늙어 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며,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도 희어지고 체력이 감소되었음을 느낀다. 동시에 지적 활동도 저하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옛적 젊었을 때가 즐겁게 회상만 되고 늙어가고 있는데 대해 그저 초조하고 불안한 생각이 든다.둘째로, 기억력의 감퇴도 현저하게 느끼게 된다. 대개는 오래된 옛날일은 잘 기억나지만 최근일은 잘 잊어버리고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기를 잘하고, 옛적이야기를 많이 하고 물건 잃어버리기를 잘하는 것 등도 노인들의 기억장애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셋째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도 점점 감소되고 융통성이 없어져감으로 완고하게 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옛날에 얽매여 변화되는 데에 저항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정균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고집이 세어 독단적으로 되기 쉬우며, 흥미권도 좁아질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의욕과 열성이 줄어들고 불평과 불만이 많아져 비관적이고 체념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였다(이정균, 1996).넷째, 고독감은 쉽게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요즘 같이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는 상태에서는 성장한 자녀들은 모두 독립해서 나가고, 더구나 도시생활에서는 서로의 유대가 없어지고 서로가 의지하고 마음의 유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항상 고독하고 쓸쓸한 감을 면하기가 힘들 것이다. 거기에다 의존심의 대상이었던 배우자나 집안사람들, 사회적 유대를 맺어주던 벗과 주위의 친지들의 죽음은 고독감과 쓸쓸함을 한층 더 심하게 할 것이며, 자연히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배우자와의 사별 이후 노인의 정신장애가 급격히 악화한다는 연구보고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직장에서의 은퇴와 이에 따르는 사회적 지위와 위신의 하락 그리고 권력의 감퇴와 그에 수반되는 경제적 타격 등은 노인들에게 사회적 소외감과 고독감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할 것이고 거기에 수반되는 죽음의 임박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다섯째, 가족이나 친척들이 같이 있음으로써 좋은 점도 있으나 반대로 여러 가지 경제적인 문제나 가족간의 불화, 우환 등이 있을 때는 오히려 노인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여섯째, 노인남성의 경우 노령이 되어 성생활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잘못된 감정이 그것이다. 80대까지도 적당한 상대자와 기회만 있으면 능히 즐길 수 있으나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공연한 창피감과 쑥스러운감 등을 느껴 성욕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해결 못한 성적 욕구를 노인들은 때로는 괴이하고 부적절한 방향으로 표현하고 해결하는 일도 있다.또한 스트레스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일들은 적절히만 대처하면 별탈없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우울감을 초래할 때도 있고, 심하면 흥분, 착란, 정신병적 사고를 보일 때도 있다. 무력감, 실패감, 자존심과 자신감의 손상 등은 화, 분노 등을 일으키고 적대적인 감정을 주며, 주위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우울은 더욱 심해진다. 일시적으로나마 분노를 터트리고 나면 결과적으로 죄의식을 느끼고 보복에 대한 현실적인 공포감 또는 자기 자신이 더욱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됨으로 더 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노인에 있어서 우울감은 흔히 있는 것이나 절대로 등한시하고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10.10.08| 3페이지| 1,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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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무용의 역사
    서양 무용의 역사1.원시인류에서 무용의 최초의 의미는 제의였다. 이러한 추론의 근거는 구석기 시대의 벽화에서 짐승의 탈을 쓰고 춤추는 인간의 모습에 있다. 이렇듯 인류 시작과 함께 우리 인간들은 초자연적인 신적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기원을 담은 의식을 치루었다.1)원시 무용의 의미선사 시대 초기 춤의 형태로 지목받는 제의 형태의 무용들은 원시인들의 주요 활동 즉 사냥과 관련된 것으로 동물들의 번식을 증진시키고 성공적인 사냥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부족의 융성과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에의 신체 움직임을 통한 기원임과 동시에,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지배하는 우주적 힘과의 교감의 장소가 바로 춤이 일어나는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제의에서 동물의 흉내를 재는 제례 무용의 증거들은 원시 문명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 중 캥거루(Kangaroo)족은 제례 의식에서 캥거루의 움직임을 모방한다고 한다.의식(ritual)이란 종종 초자연적인 성격의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의도된 모방적이거나 상징적인 행위라 정의될 수 있다. 그 어떤 목적이란 그 제의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보통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인간 존재가 자신의 노력으로는 획득될 수 없는 특정한 사물을 강렬히 일어나도록 열망할 때 본능적으로 자신이 희망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계산되어진 행위를 모방하는데, 그것이 종종 다른 대리인이나 주선인을 통하기도 한다. 원시인들의 마음에는 의식적인 모방행위를 통해 욕구하는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종족들의 제의에서 비를 오게 하기 위해 땅 위에 물을 뿌린다든지, 곡식을 심은 뒤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깡충깡충 높이 뛴다든지, 북극 사람들이 한겨울에 불을 피움으로써 점점 일조시간이 짧아지는 해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이들 행위의 원칙은 모방적 주술(imitative magic)에 있다. 즉 유사한 것이 유사한 것을 낳는다는 믿음이다.이렇듯 많이 들어오면서 그리스 비극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디시람브로부터 그리스 비극이 탄생하였다고 하였다. 즉 다산과 부활을 비는 봄의 제례 의식이 격식을 갖춘 합창과 연극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비극과 희극에서 추어진 춤은 각기 비극적 테마와 코미디 혹은 풍자적인 테마에 따른 춤이었다. 그리고 기원전 508년부터 아테네에서 디시람브 스타일의 춤 경연 대회가 시작되었고, 이는 기원전 2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춤의 중요 기능 중의 하나는 교육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신체와 영혼의 이상적인 결합을 위해 무용을 권장하였다. 인간을 언어적 요소인 정신과 물리적 요소인 신체로 나눌 때, 무용과 음악 같은 공연 예술은 신체훈련에 좋고 시와 철학 같은 정치학은 정신훈련에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무용의 교육적 가치를 지적한 것인데, 소크라테스는 무용이 더욱 널리 가르쳐져야 한다고 하면서 무용으로 신에게 가장 아름답게 찬양하는 자가 전쟁에서도 가장 훌륭한 자라고 하였다. 플라톤은 자신의 책『법률(Law)』에서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것이 훌륭하게 교육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음악과 체조적 무용의 결합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춤의 형태는 오늘날의 체조와 같은 형태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춤을 어릴 때부터 개인교사로부터 배웠는데 그 움직임은 대단히 체육적인 것으로서 크고 박력 있는 움직임이었다. 인위적이거나 곡예 같은 동작은 없고 자유롭게 달리며 뛰어오르는 형태였다. 소년들은 짐네지움(gynnasium)이나 레슬링 학교인 팔레스트라(palestra)에서 군사교육의 일환으로 전술적인 발 움직임과 무기를 다루는 훈련, 즉 방패로 방어하는 전술과 도약하는 움직임을 무용 형태로 배웠다. 유명 정치인과 군인 그리고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춤솜씨를 자랑스럽게 느꼈으며, 공식 행사나 전쟁의 승리 뒤 귀환할 때,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춤추기도 하였으며 앞서 얘기한 디. 교회와 봉건 영주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지만, 교회가 교육과 학문의 주관리인이었고 사회적?도덕적 윤리의 원천이었다. 초기 기독교 사상의 특징은 천당이나 면죄부 같은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은 뒤의 보상을 강조하면서 모든 육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내세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신체는 방해물로 보여졌다. 영혼을 찬양키 위해 신체는 무시되고 응징하여야 할 대상이었다. 본능적인 인간성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나 이교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어떠한 것도 모두 마녀라고 몰아부쳐졌다. 그 중에서도 극장식 연희가 특별히 금지되었다.그러나 무용은 가장 그럴 것 같지 않은 교회의 보호 아래서 계속되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무용은 천국의 기쁨이나 천사 그리고 축복받은 춤과 같은 의미로 쓰였고, 이들 천사들의 춤은 원무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3세기부터 교회의 의례와 의식에서 무용이 쓰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기독교 예배에서 무용은 공식적인 부분으로 자리하였다. 교회 무용은 근본적으로 행렬 형식이었으며 종교적 믿음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 외 무용 찬양은 무용극의 형태를 띠기도 하였으며 교회 마당에서의 연희 무용의 형태로까지 나아가면서 12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12세기 이후 중세 후반기에 종교 축일과 관련된 종교 무용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무용은 낮은 직급의 성직자들간에 인기가 이었다. 수사(monks)나 성가대 소년, 젊은 사제나 부집사 등은 종종 고위 성직자들에 대해 매우 경멸적이었는데, 이들에 의해 추어진 춤은 여러 교회 축제나 페스티발에서 원시 종교에서처럼 노래, 연기, 게임과 함께 이루어졌고 술을 마시며 성직자들을 풍자하였다. 이러한 조롱의 대상에는 추기경이나 교황까지도 포함되었다. 따라서 중세기간 동안 교회 축제와 관련된 춤의 전통이 풍부하다는 점이 기억될 만하다. 그 중 할례 축제 때 부집사들의 극적인 해학극에서 발생된 것이 바로 ‘바보들의 축제(feast of fools)'이다. 새해 초 때까지 움직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문헌 기록으로는 13세기와 14세기의 독일 베네룩스 제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무용사가들은 이를 병리학적인 정신이상이라고도 한다. 그런 기록에 따르면 1237년 독일 어린이들이 에르푸르트(Erfurt)에서 아른쉬타트(Arnstadt)까지 춤추면서 갔는데 도중에 많은 어린이들이 죽었다고 하며, 1347년 수백 명의 남녀가 아익스 라 샤 펠르(Aix-la-Chapelle)에서 메츠(Metz)까지 춤추며 가는데 성직자들이 이들이 걸린 마법을 풀려고 노력하였으나 소용없었다고 한다. 이런 무도광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신들린 증세를 나타내었는데, 예배 도중 갑작스레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런 무도광은 14세기와 15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고 17세기까지 계속되었다.그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14,15세기는 유럽인구의 절반을 몰살시킨 페스트가 전 유럽에 성행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갈 때였다. 한 마을에서 수 천명 혹은 마을 전체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11세기 말에서 13세기까지 이어진 십자군들의 성지에서의 잔인한 살상, 그리고 흉년과 화재 등이 끊임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화재로 인한 긴장의 감정적 배출구로 춤이 사용되어졌으며, 따라서 사회 불안을 반영하는 일종의 병리학적 정신이상이라고 하는 해석이 주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약학자 백맨(Backman)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것이 썩은 밀에서 생기는 화학적 성분인 맥각(ergot)중독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그는 유럽 교회의 날씨보고서를 제시하고 있는데, 비가 많이 온 지방에서 이듬해에 무도광 현상이 많이 일어난 사실을 든다. 썩은 밀로 만든 빵을 상습적으로 먹을 때 신체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무도광 현상이 주로 사회 하층 계급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가장 과학적인 견해라 생각된다.이들 신들려서 춤추는 집단들은 교회에 대한 어떤 저항 정신을 지닌 것은생하게 된다.춤은 프랑스를 위시하여 르네상스기 궁정 생활에서 매일 빠질 수 없는 행사였다. 궁정 연희에서 추어지는 춤의 스텝과 기교가 점차 정교해지고 어려워지면서 귀족들은 매일 연습해야 했고 이들 학습의 주된 내용이었다. 궁정에서 연희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 어떤 순서로 어떻게 입장하고 누구와 춤추는지 등이 사전에 정해지고 연습되어진 것으로서 즉흥의 요소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3대 의무는 우선 왕에게 충성하고 전쟁시에는 전쟁에 참여하며 전시가 아닌 때에는 왕의 연희에 참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이러한 연희 공연들이 번성하면서 무용 그 자체가 크게 주목받게 되고 이런 연희 중의 하나가 무용사가들에 의한 최초의 발레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것은 1581년 앙리 3세의 궁에서 이루어진 「왕비의 희극발레(Ballet Comique de la Reine Louise)」이다. 하지만 프랑스 최초의 발레를 이야기하자면 이태리 광이었던 프랑스와 1세의 이태리 출신 며느리 카트린 드 메디치(Cathrine de Medicci, 1519~1589)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와 왕은 이태리 예술가들을 프랑스로 데려와 이태리 가장무도회가 열리도록 하였고, 이태리 메디치 가문의 며느리를 데려옴으로써 프랑스 발레를 탄생시킬 감독을 데려온 것이었다.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카트린은 교황 네오 10세의 증조카였고, 어린 시절을 피렌체 메디치가의 궁전과 로마에서 이태리 르네상스의 영화를 누리며 사촌이자 후견인인 교황 끌레망 7세의 손에서 자랐다. 그녀는 14세 때 프랑스와 1세의 차남인 동갑네기 앙리 왕자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였다. 금실로 수놓인 보라색 돛을 지닌 8척의 범선 무리를 이끌고 프랑스 땅에 발을 디딘 그녀는 바로 이태리식 가장행렬로 궁에 다다랐고 곧이어 연희가 벌어졌다. 쾌활하고 놀이와 무용을 좋아한 카트린은 프랑스와 1세로부터 궁정 축제를 조직하고 일을 위임받았다. 그 일은 젊은 남편의 침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인한 괴로움으로다.
    예체능| 2007.04.12| 17페이지| 2,500원| 조회(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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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교육의 발달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무용의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인류는 언어를 사용하기 전부터 손짓이나 표정 등을 이용하여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였는데 흥을 돋울 때나 신체를 단련할 때 강조되는 것은 근육의 긴장과 이완이 상호작용하면서 일어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고 의사를 전달할 때 강조된 것은 자연을 모방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점차 다양한 몸짓으로 발전하여 무용의 틀을 갖추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교육측면에서 보면 이미 광의의 무용교육이 행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록들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용이 장려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무용이 때때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무용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이래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호머의 대서사시 '오딧세이' 에서 이러한 예를 들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이와 같은 체조 무용이 성행하는데 그 이유는 균정한 미는 건전한 신체에서 얻어지며 그것을 무용을 통하여 이울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무용교육이 체육교육의 한 단원으로 자리 매김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무용을 하나의 교육활동으로 요구하는데는 무용이 가장 고상한 지적, 풍류적, 만족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대인들이 전쟁과 관련지어 춤을 생각했던 것은 유능한 전사라면 싸움뿐만 아니라 춤에서도 그 능력을 보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몸 동작을 체조라고 하지 않고 춤이라고 보는 까닭은 어떤 심리적 감정의 발현을 목적으로 행함으로써 춤의 예술적 특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신에 대한 찬미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무용은 아테네를 대표하는 예술인 연극에까지 활용하였다. 로마제국에서 무용이 처음에는 극예술 형태로 시작되었다가 그 후에는 상업화되었음을 발견한다. 또 로마의 신앙 생활이 점차 부패해 지면서 종교무용 역시 방종한 예술과 선정적인 예술이 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전 역사를 통틀어 무용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시저와 아우구투스의 통치기였다. 무언극 무용이 번성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무언극무용의 활력 적인 장면만은 몹시 즐겼다. 무희들이 말과 노래 대신 몸짓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무용은 로마 시민의 기질을 연약하게 만들뿐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무용의 퇴색에 금욕주의도 일정한 몫을 담당하였다.중세무용은 중세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크리스트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 무용하는 것을 장려 했는데 예술적인 의식이 필요하게 되어 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육체의 가치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신학이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무용도 차츰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혼란한 시대였던 중세의 상황이 민중들로 하여금 더욱 춤을 추도록 부추켰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중들은 그 고통을 벗기 위해 술이 아니면 춤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와 어두운 사회상황이 민중들에 의한 민속부용의 발생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민속무용의 형태를 보면 단독으로 추는 춤이 있으나 대개 손을 잡고 원형을 이루는 집단 무용이었다. 점차 쉽게 출 수 있는 춤으로 자리 잡아 갔다. 민속무용이 점점 민중의 생활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노랫말이 없는 음악에 맞춰 춤이 추어지는 형태로 나아가는 민속무용의 발전과정은 오늘날의 무용교육 단계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중세는 비록 암흑시대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독자적인 가치를 가졌을 뿐 아니라 오늘날 무용교육의 목적에도 부합되는 민속무용이 민중들 사이에서 싹텄던 시기였다.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비로소 무용은 귀족계급이 지녀야 할 필수 교양으로 여겨지고 많은 교육자들이 그 가치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여러 선구자들이 무용을 권장하였다. 교육으로서의 무용이 확립된 것은 로마에 살았던 메르꾸리아리스라는 의사에 의해 '체육의 기술'이라는 책이 씌어지고 난 다음부터다. 몽테뉴는 무용이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활용하는 교육이라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무용에 대한 관심은 르네상스 이후에도 여러 사람에 의해 계속되었다. 무용교사를 정식 교사로 채용하여 완벽하게 신체 단련과정을 교과과정에 도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신사로써의 품위를 이루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무용의 중요성을 인식한 여러 사상가들의 교육사상에 힘입어 미국, 독일 등 서구 각 국은 19세기 무렵 드디어 실제 학교 교육에 무용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활용된 무용은 사람들의 무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초기의 무용을 활용한 체조들은 사실상 일종의 체조라기 보다는 무용에 가까운 것으로 대중들에게 무용은 서서히 교육의 한 장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심신 훈련법에 의거 하여 교육을 받는 체조교사가 많이 양성되어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침으로써 무용이 각급 학교에 예술로서 도입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용이 지닌 교육적인 측면이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용의 교육적인 측면이란 창조적인 잠재력을 자극하고 종합거인 방법으로 자신과 사회적 인식을 촉진하며 건강에 관심을 두게 하고 자심과 타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예체능| 2007.04.12| 2페이지| 1,000원| 조회(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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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무용의 이해
    “예술 속에 있는 너보다는 제 자신 속에 있는 예술성을 사랑하라.”-스타니 슬랍스키-Ⅰ. 서론나는 지난 한 학기동안 ‘무용의 이해’라는 예체능 교양 수업을 통해 많은 시각영상자료를 접해 왔고, 이를 통해 그동안 친숙하지 못해 왠지 멀게만 느껴왔던 무용이라는 예술장르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그 느낌이 잘 오지 않았는데 직접 눈으로 그 움직임을 체험하고 나니 무용만이 가지는 그 매력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큰 것 같다.무용이 이처럼 강한 호소력을 지닌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무용의 매개체는 인간 동작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람을 다룬 것이다. 그것도 지치지 않고 활달하게 움직이는 인간을 말이다. 무용영역은 말이라는 수단을 빌어 마음을 사로잡는 사상이 아니라 동작을 빌어 시각을 사로잡는 지각표상이다. 동작을 통해 그 성격과 감정의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감각적인 상상력이 일깨워 지고 아마도 이것들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직 무용만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대사회 속에서 무용이 어떤 예술 형태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나를 알아보기에 앞서 무용 본질을 연구해 봄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용 형태가 너무 다양하고 주어지는 동기 또한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간략한 정의나 설명은 불가능한 일임은 알지만 그것은 성격상 크게 발레, 현대무용, 사교무용, 뮤지컬 무용, 오락무용, 민족무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이 중 수업시간에 인상 깊게 본 비디오자료와 관련하여 현대무용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현대무용이 등장한 이론적 배경을 알아보는 것이고, 다음으로필요한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심도 있는 분석일 것이라 생각한다.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현대 무용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무용가의 개성 있는 표현을 위주로 하는 극히 개인적인 형태를 취함이 아닐까 싶다. 현대무용은 각 되었다.) 코르셋과 토슈즈에 갖힌 채 꼼짝 못하는 발레적인 한계성에 부딪힌 현대인의 저항의식이 신체의 자유를 부르짖는 동인이 되었으며, 이러한 자유사상에의 동경과 의지는 현대무용을 잉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예술적 반항의식은 그때까지 서양에서 유일한 예술무용으로 수용되었다. 여기에서 고전 발레의 정형성이란 신체의 결박으로부터 오는 부자연스러운 운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의 근저에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관념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의 육체는 오랫동안 인간의 문화를 지배하던 정신에 비해 경시되어 온 경향이 있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보다 저급한 것, 또는 영혼의 정화에 대한 방해요소로 취급되었고 이러한 심신이원론의 연원은 플라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바 그는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요, 무덤이고, 영혼의 목적인 이데아의 인식을 방해하는 것으로서, 영혼이 정화를 통해서 그의 고향인 신적인 세계로 돌아가려는 것을 방해하고 감성적인 세계에 박아두는 못과 같은 것으로서 전쟁과 그 밖의 인간적인 죄악들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악의 원천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고는 근세의 대 철학자 데카르트에 이르러 더욱 완전한 논리적 기반을 구축하게 도는데 이것은 근대까지 무용이 예술로서 발전하는 데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9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이러한 이성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인간의 육체는 다시금 정신과 동등한 위치로의 회복을 꾀하게 된다.이러한 심신일원론을 바탕으로, 고전발레가 지닌 육체적 결박성을 탈피함으로써 자유로운 신체의 표현을 구현해야 한다고 부르짖은 최초의 무용가가 바로 이사도라 던컨이다. 20세기 무용의 선구자로 꼽혀지는 미국 여성 이사도라 던컨은 신체를 빌어 표현되는 자유를 구사함으로써 열정적이고 광정인 정신세계를 무용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개시킴으로써 무대 예술계에 새로운 현대무용을 개안시켰다. 던컨의 무용은 그 시대의 무용과 사회인습에 대한 반항심에서 싹트며 창작되었다. 그녀는 체계적인 테크닉을갖추며 현대무용은 서서히 발전되어 왔다. 무용을 영혼의 외침으로 되돌리고자 한 던컨의 염원은 전통적인 발레의 고정성을 타파시켜 현대발레로의 발전의 동기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발레를 부정하고 발레의 형을 파괴했지만 새로운 방법론이 수립되지 못하고 그쳤기에 새로운 무용 방법론과 무용미의 형식을 요구 받음으로써 근대무용의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2. 현대 무용의 선구자, 이사도라 던컨이사도라 던컨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청각 자료에서 그녀가 직접 춤을 추는 모습을 다양하고 깊게 접하지 못했음을 아쉽게 생각하며, 그녀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나 가까운 인물의 춤을 상기하며 글을 썼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내가 처음 이사도라 던컨의 춤을 보고 느낀 것은 ‘충격’이었다. 마치 자연적인 움직임에 근거하고 있는 듯한 동작들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용이라면 단순히 신체의 움직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정하고 정형화된 형식이 분명 있을 텐데 저렇게 자유스러워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춤은 나무의 흩날림 같기도 하고 바다의 파도가 밀려드는 것 같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이사도라가 보여주는 연기는 절대로 즉흥적인 것이 아닌 아주 세세하게 계획된 것이라는 점이다. 발레가 복잡하고 체계화된 동작으로 발과 다리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사도라 던컨은 가능한 자유스러운 방법으로 전신을 이용하여 무용하였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곧 그녀의 무용이 그녀의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나왔음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던컨은 여성으로서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눈총을 받았고, 미국에서 던컨의 사랑 행각은 그녀가 죽은 후까지도, 무용보다도 더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춤을 개인적 정서의 표현으로 본 것, 즉 어느 주인공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념의 서정적 분출로 본 던컨 자신의 춤이라는 것이다.던컨이 개인의 감성에 의존한 예술을 추구했기 때문에 오래 갈 만한 학)던컨의 춤을 보면 그녀가 우상의 신격 존재를 믿었을 뿐만 아니라 삶의 희노애락이 이 다신들의 변덕과 기분에 따라 좌우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녀는 미의 계시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치 않고 그 능력이 침체될 때는 신이 좌우하는 자신의 운명에 또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여유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런던에서의 방랑시절 대영박물관에 나가 그리스 조각을 연구하고 조각을 통해 새로운 무용의 길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후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직접 찾아가 그리스에 영주를 희망할 정도로 헬레니즘에 심취했다고 한다.‘던컨니즘’ 무용은 해설적, 희랍식, 또는 조형의식으로 분류된다. 워크, 런, 호프, 스킵, 리프 등 간략하면서도 다양한 동작을 우아하게 변화시키며 연결한 것이 던컨무용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져 왔지만 이렇게 말한다. “단지 우아하지 말 것, 발랄해야 할 어린 소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우아하기만 하다면 그 누구도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무용이 내적 세계로부터 쏟아져 나온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 때 무용은 그 의미를 잃게 되고 관객은 피곤해질 뿐이다.”)이사도라 던컨은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과 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이란 단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규격화되어 온 춤의 이상형이란 결코 인간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우리의 심금을 울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그녀는 실제 ‘감정적 체험’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 같다.)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고대 그리스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의상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맨발로 머리를 묶지 않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그녀의 사상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이러한 변형들, 즉 발레의 전형적인 여성 무대의상과 억압하는 여성복장에서의 탈피는 아마도 당시 보수적인 사회로부터 ‘벌거벗었다’라는 평판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 현대에 와서 던컨의 의상은 성스럽게만 보인다. 이후, 발레를 포함한 모든 무용수들도 유행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하지만 던컨이 듣고 감상하는 음악인 순수음악에 접한 것은 무용을 음악에서 해방시키려는 방법의 하나로 시작되었지만, 실은 까다로운 조건의 음악의 노예로 전락하는 결과를 나은 것 같다. 결국 잘 발달된 음악형식에 의존하게 되어버린 것이다.가만히 그녀의 춤을 보고 있노라면 시대의 세습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신선한 젊은 마음과 육체를 느낄 수 있다. 이사도라 던컨이 개발하여 무용 속에 남겨진 자연스러움과 리듬운동 등은 그녀의 제자들 작품 속에서도 간 혹 반영되고 있지만, 그녀의 무용은 극히 개인적이고 지나치게 그녀 자신에게만 집착되어 그녀의 제자들조차도 재창조 해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이미지는 낭만적이며, 진취적인 것이다.죽음마저도 비범했던 그녀. 안타깝긴 하지만 20세기 초반 발레 위주의 무용계에 던진 자유로운 정신만은 길이 남아 현대 무용의 효시가 되었다. 여성에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고 순종적인 삶을 기대하던 20세기 초반, 이사도라 던컨은 진정 자신의 온몸으로 참다운 여성이라고 생각한다.3. 현대 무용의 흐름중앙 유럽 무용으로도 불려지는 20세기 독일 무용은 헝가리 태생으로 독일에서 가르치며 나치 점령 후 영국에 이주한 루돌프 본 라반의 이론과 분석을 토대로 시작된다. 전 유럽 및 미국 무용계에서도 라반의 영향력은 인정되고 있으며 그가 창안한 무용표기법, 즉 라바노테이션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기실 던컨이 선을 그어준 최초의 현대무용은 다만 자유분방하다는 면에서만 새롭다고 할 수 있었지만 다시금 관객의 열광적 환영과 떨어지면서부터 방법론에 대한 반성과 인식이 필요하게 되었고 무용미의 본질의 추구로부터 요구되어지는 새로운 무용의 기본 형식과 훈련법, 창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반주음과의 관계 등 그 실제적 방법론의 획득이 바로 그의 노력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던컨을 일컬어 현대무용의 어머니라 하고 라반을 가르켜 현대무용의 아버지라고 표현한다.)독일인들은 그들의 20세기 무용을 표다.
    예체능| 2007.04.12| 8페이지| 1,500원| 조회(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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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 (忠)에 대한 모든 것
    충(忠)에 대한 탐구순 서1. 충 (忠) 이란? 2. 충의 시대별 의의 3. 역사적 인물 4. 미디어 속 충 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 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1. 충(忠) 이란?일반적 의미 : 군주와 신하 사이의 낡은 봉건적 윤리 덕목 글자의 의미 : (중)中 + (심)心 → 자기 자신 및 타인, 국가에 대하서 조금의 속임이나 꾸밈없이 자신의 온 정성을 기울임2. 충의 시대별 의의삼국시대효 사상이 국가로 확대성충, 계백고려시대잦은 침략으로 인해 호국정신이 강조됨최 영조선시대통치이념:유교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이순신, 김시민일제강점기국가존립 위기에의 대응의병, 안중근, 윤봉길3. 역사적 인물◎ 계백 “한 나라의 힘으로 나·당의 큰 군대를 당하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잡혀 노비가 될지도 모르니 살아서 욕보는 것이 흔쾌히 죽어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고는 처자를 모두 죽이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하였다. 또한, 병사들에게도 “옛날 월왕 구천은 5천명으로 오왕 부차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오늘 마땅히 각자 분전하여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격려하였다.◎ 정몽주 정몽주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군주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결국 정몽주는 자객들에게 죽고 만다.3. 역사적 인물◎ 이순신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이순신은 특별한 전란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병기의 점검과 군사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 애국심과, 뛰어난 전략 전술, 그리고 생사를 초월한 정신력으로 23번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조국과 백성을 지켜냈다. 충과 무의 정신을 완벽히 실현해 낸 이 장군에게 사후에 충무공(忠武公)의 시호가 내려졌다.3. 역사적 인물◎ 안중근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전에 2천만 동포에게 피로써 유언을 보내 왔다. ▲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 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 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여한이 없겠노라.3. 역사적 인물4. 미디어 속의 忠◎ 아! 대한민국 (가요)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 끝없이 펼쳐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단심가 (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 가실 줄이 있으랴.◎ 삼국지 (소설) 솔밭처럼 갈라진 천하. 헝클어져 어지러워진 천하. 그 선혈이 낭자했던 강호에는 목숨을 걸고 싸웠던 수없이 많은 명장들과 지략가들, 그리고 그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겁 없는 죽음을 선택한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죽기를 마다않고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것일까. 그것이 충이 아닐까.◎ 칼의 노래 (소설)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여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전투 전후의 심정,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권력의 덧없음과 폭력성 등을 그려내고 있다 (기록유산) 난중일기 이순신,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극한 충성심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7년의 난 동안 이순신의 피와 눈물이 헤아릴 수 없이 배인 것이며, 왜적과 싸우면서 틈틈이 계속하여 쓴 것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하여 390여년을 간직해 온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국민영웅인 이순신을 인간적인 영웅으로 그려낸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선 영웅이순신의 외피를 벗겨 그의 인간적인 면에 천착해 들어가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두었다.◎ 황산벌 (영화)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① 정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올바른 참여를 하도록 한다. - 선거, 시민단체, NGO나 NPO 등에 가입 캠페인 및 집회 참가, 유명 정치인과의 만남 탄원 및 헌법소원, 봉사활동, 퍼포먼스/ 행사참여, - 국회, 정당, 청와대 등 각종 정치관련 사이트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건의하며, 인터넷에 올라온 정치관련 기사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② 사이버 외교 활동에 관심을 갖거나, 만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 ※ 반크 (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 주는 사이버 관광가이드이자 사이버 외교사절단. 1999년 개인적인 펜팔사이트로 시작해서 현재 1만8천5백여 명의 회원이 등록된 단체로 발전했다.반짝하는 애국심이나 분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외국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진정한 한국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과 대한민국의 위상을 점차 높여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책 안에 가득하다.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반크의 활동 20만 사이버 외교관 양성, 해외 이메일 펜팔친구 사귀기 운동, 오류시정 프로젝트 사업 전개, 국제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의 활동중국의 동북공정,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 해외 사이트의 오류 시정 한국 홍보 동영상 발송 직지 바로 알리기 이순신장군 알리기 반크 동아리, 어린이 반크※ 이순신장군 관련된 오류를 적발 http://qtv.freechal.com/Viewer/QTVViewer.asp?qtvid=488847 srchcp=N q=반크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cf) 한국에 대해서 잘못 알려진 것들. ♠ 동해 - 일본해로 알려짐 ♠ 한국은? 중국의 속국(미국의 SAT2 세계사편) ♠ 김포공항을 국제공항이라고 소개 - 인천국제공항이라고 변경 ♠ 조선왕조를 이씨왕조라 설명 ▶ 조선왕조로 변경 ♠ 버스 탈 때 토큰사용 - 버스카드나 현금사용 ♠ 태권도를 전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지만 태권도를 담은 그림들 사이에 김홍도의 '씨름도'가 있음. 씨름을 태권도로 오해할 수 있음. - 해당내용 삭제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반크의 회원은? 1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로 회원가입은 누구나 가능하다. (평생회비 2만원) ※ 가수 김장훈의 후원, 콘서트 http://search.pandora.tv/frame/outSearch.htm?ref=na ch_userid=dytn id=10081853 keyword=%B9%DD%C5%A9 의의 반크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배워서 세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자는 건전한 목표를 제시한다. 세계화 시대에 먼저 자신의 나라를 바로 알고, 전 세계에 알려서 나라사랑(충)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③ ugly korean의 이미지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한다. ugly korean이란? 국제 망신을 시키는 한국인 사기, 폭력, 불법영업, 원정출산, 지나친 사치, 외국에서의 성매매 등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결과를 초래④ 법을 준수하여 사회의 질서를 안정시키는데 일조한다.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⑤ 가정의 건강을 지키는 것 또한 작지만 큰 충의 실천이다!5. 현대사회에서의 충, 그리고 실천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①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현실 – 가난의 대물림 독립유공자의 후손의 약 80%가 고졸, 60%가 무직 60%가 스스로 하층민이라고 인식 월 생계비 25만원 그리고 그 가난의 대물림② 왜곡된 충의 사례-일본의 우익 독일의 나치스 VS 일본의 군국주의 전범의 처리는 거의 비슷하지만 이후에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임.◇ 독일 전범의 자손이 조상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피해자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실제로도 많은 보상과 공개적인 사과를 함.◇ 일본 전범인 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함. 자신의 조상이 전범이었음을 알려 지지율을 올리는가 하면 일본이 전쟁의 주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사실만을 부각하여 마치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인 양 주장함.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야스쿠니 신사는 어떤 곳?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에 의한 희생자에 대해 일본 국민들이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명예나 영광이라는 도착된 생각을 갖도록 한다. (왜곡된 충) 침략국가가 일으킨 잘못된 전쟁에서의 일본 전사자들을 '영령'으로 칭송하는 일은 국가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사자를 이용하는 것이다.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우익단체들의 심각한 역사 왜곡 (일본 후소샤 교과서) -침략의 정당화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만화 혐한류 (일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국 문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는 심판의 오심이 결정적이었다. 한일 합병 조약은 합법적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평화롭게 공존했으며, 배상 문제가 끝났기 때문에 일본은 더 이상 한국에게 사죄와 보상을 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은 검도·유도 등 일본의 문화를 모방하여 자신이 종주국이라 우기고 있다. 또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을 모방하고 있다. 한글 전용은 한국인들의 지나친 한글 우월주의 때문에 채택되었을 뿐 실제로는 국한 혼용보다 불편한 것이며, 한국인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옛 사료를 읽을 수 없어 한일 간의 제대로 된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6. 충의 덕목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들질의 및 응답 시간 입니다.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교육학| 2008.11.09| 28페이지| 3,000원| 조회(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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