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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가의 대중화 요인분석 및 현대 대중가요와의 비교
    학사학위논문雜歌 의 대중화 요인분석 및현대 대중가요와의 비교? ? 대 학 교국 어 교 육 과최 ? ?2009년 2월- 목 차 -Ⅰ. 서론1. 문제 제기2. 연구 대상 및 범위Ⅱ. 본론1. 잡가의 특징(1) 유흥성(2) 다양성① 다양한 감정 표현② 동적 유흥③ 언어유희(3) 통속성2. 현대 대중가요와 잡가(1) 현대 대중가요에 나타나는 유흥성(2) 21세기 대중가요의 모습Ⅲ. 결론참고문헌Ⅰ. 서 론1. 문제제기18세기 이후 조선 후기의 사회는 여러 부분에서 급격한 근대적 변화가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농업에서 도시적 상공업과 임금노동 등으로 변화되었고, 사회적으로는 토지에 예속된 봉건적 신분관계로부터 상품과 화폐 소유 능력의 개인을 중요시하는 신분의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사회변화를 통하여 문화에 있어서는 일부 계층만이 향유하던 예술이 대중화가 되었다는 것이다.18세기 이전의 문학은 신분 계급을 통한 양분적인 문화가 성립되었다면, 18세기 이후의 문학은 계급간의 양분적인 관계가 무너지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대중)의 문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때에 성립된 예술은 이전 예술과는 달리 상업적인 전문 집단에 의해 생산, 공급됨으로써 근대적인 대중문화 시장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다수의 대중들에 의해 향유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도시유흥공간에 잡가가 드러나는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왜냐하면 이때에 수많은 가집의 편찬과 음악에 대한 대중적 수요의 증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18세기는 사설시조가 문학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였다. 생산력의 증가, 화폐 경제의 발달, 농민층의 분해에 따른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 등은 필연적으로 도시 성장을 가져왔다. 도시의 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중인들이 문화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을 것이며, 이들의 용구를 채워줄 전문 가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설시조는 상업발달, 도시의 활성화, 전문가객의 등장을 배경으로 하여 상업적 가창물로써 상품화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사설시조의 수용은 가객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유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잡가는 도시성과 상업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잡가의 담당층이 원래는 봉건체제 내의 하층적 집단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19세기 일대를 통해선 소위 중인 가객층이나 고급기생과 같은 예도적 지조를 견지했던 상층의 연예집단과 사대부집단으로 까지 확산되어 갔다. 더군다나 평양과 같은 지방 도시의 노래와 서울의 노래가 상호 교류되었던 것은 광범위한 개방성을 나타내고 있다.잡가의 이러한 광범위한 개방성은 사설에서도 드러난다. 판소리를 다듬어 차용하고, 지방 농촌지역의 민요까지 부르며, 한시의 구절을 차용하고, 사설시조를 확장하여 휘몰이 장단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위와 같은 요소들이 2가지 이상의 것들이 잡다하게 섞여 한 제목으로 묶여지는데 통일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잡가가 기존의 것, 익숙한 것들을 받아들여 가락에 용해시키는 유연성은 지녔으나, 의미의 일관성을 보이는 창조적 재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가의 담당층들은 통속화되면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지 않고 이왕에 있던 내용에 역동적 가락을 담는 것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속적 요소)를 가진 잡가는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유흥적 속성을 구현하게 되었다.경기 12잡가 중 하나인 중 일부분을 인용하기로 한다.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山川) 경개(景槪)를 구경을 가세.죽장망혜 단표자(竹杖芒鞋單瓢子)로 천리강산 들어를 가니,만산홍록(滿山紅綠)들은 일년일도(一年一度) 다시 피어춘색을 자랑노라 색색이 붉었는데,창송취죽(蒼松翠竹)은 창창울울(蒼蒼鬱鬱)한데,기화요초 난만중(琪花瑤草爛漫中)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난다.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삼춘가절(三春佳節)이 좋을씨고 도화만발 점점홍(桃花滿發點點紅)이로구나.어주축수 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이라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예 아니냐.양류세지(楊柳細枝) 사사록(絲絲綠)하니,황산곡리 당춘절(黃山谷裏當春節)에 연명오구재면 말니재요약장재면 우에머리 요산삼개로 에둘럿다(후렴)에여산에 김덩션이 수업에 북문지여나라에 공신되여 수셩옥이 와룔감투 눌너쓰고어주삼배 마신후에압해는 모홍갑이 뒤에는 권삼득이 소동옥이 심만여겁에 쌍화동 세우고어젼풍악을 꽝당치면서장안대로상으로 가진실네만 쳥한다바람이 불냐는지 남무둥둥 반춤츄며악수장마 지랴는지 만수백수 무산에 구름이 평펴졋네고셩에 삼일포 통쳔에 총셕뎡 평해에 월숑뎡 간셩에 쳥산덩이란다놀기조키는 남원에 광한루로다(전렴) 나니나 산이로구나 에찌어나 에어야지로구나 산이로구나일논산 이강경이요 삼포쥬 사법성은 에산포에로만 에둘럿다(후렴) 에에에헤에헤에 헤에헤에헤 어야지로구 산이로구나여초목이 동남풍에 거리심벽 우난소래 장부에 열네촌간장이 다녹아낸다(후렴) 에나무닙만 둑뚝떠러져도 한병인가 의심하고새만자르륵 나라드러도 자룡에 삼지창 만녀겨 의심한다.(중략)동수문박 셕나셔서 무너미을 얼픗니자 달악을 들쳐보니 도봉망월이 천축살(중략)경상도라 해동문거리 경기안성은 쳥용이요황해도문화 구월산 성디불당안에 거사사당녕이만히모혀 밤인 낮이나 낮이나밤이나 소구당당네놀량품배화 오강칠포대로 놀러가세위 노래에 나오는 장소는 모두 조선 후기에 발달했던 상업적 공간이다. 안산의 청룡사는 사당패의 본거지이며, 경상도 하동, 황해도 구월산 등지의 사찰은 사당패와 같은 직업적 유랑패의 주요 근거지였다. 서울 장안 및 동소문 밖과 무너미 달악원, 도봉, 만리동, 잠실, 용산, 마포 등 서울 주변의 지명들은 상공업이 발달했던 지역으로 대표적인 유희공간이다. 특히 잠실, 용산, 마포 그리고 오강, 철포 등지는 대체로 수로를 이용하여 상업이 번창하였던 당시 대표적인 도시공간들이다. 이 밖에도 지방의 지명들도 드러나 있는데, 관동팔경과 남원의 광한루, 논산, 강경, 그리고 포주와 법성포는 모두 조선 후기 당시 상공업이 융성했던 지방이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도시나 상공업지역은 위에서 보았던 상자연에 비하면 보다 현실적인 공간을 얘기하는 것으로 처럼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유흥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대목의 의미세계는 다분히 민요 장르에 더욱 근접한 경우를 드러낸다. 즉 “조밥나무”, “피죽새”, “함박꽃”, “뒤엉벌”과 같은 존재는 은둔한 선비가 처한 자연공간이 아닌 흔히 생활공간의 주변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것들인 바 이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명명되어 있는 이들의 존재는 사대부시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더욱이 “벌”의 움직임에 대한 골계적 묘사와 같은 경우(즉 “몸은크고 발은적어 제몸을 못이기어” 이하의 대목)는 사대부시가가 아닌 민요의 특징적 기법이라고 볼 때, 는 민요장르에 가까운 의미측면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도 민요장르의 구조적 특징을 지향하고 있다. 즉 형식적 성격에 있어서 후렴을 사용하고 있음은 민요와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작품의 전체를 흐르는 경쾌한 동적 유흥세계 및 非유가적인 본능적 애정감정은 역시 민요장르의 전반적인 의미성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③ 언어유희 - 판소리적 요소그 밥에 엇던 돌이 드럿더냐쵸벌로 새문안 거지바위 문턱바위 문바위동구?? 곱바위 안바위 밧바위누각골로 나려 필운대 삿갓바위남산 ?고리바위 ?오? 걸바위쌍률졍? 죳바위 봉학뎡 벼락바위모화관 션바위 홍졔원 치마바위위의 은 휘모리 잡가이다. 지은 밥에 돌이 많다는 내용을 장황한 열거와 과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난감한 처지를 기발한 수사로 익살맞게 묘사하여 언어의 표현성을 최대한도록 살펴냈다고 할 수 있다. 즉 내용적 의미보다는 반복과 나열이 주는 효과를 이용한 흥겨움이 더 크다고 하겠다.?야?야?야?야감뎡일닉에숫?야두귀가축쳐졌다엘화청삽?리냐에헤히에헤야에헤히에헤야밤사?보즛지를말아이가이앙앙밤사?보고함부루줏다?방화를푹덥고토쟝국에다탕을?리라두둥둥?야내?령아(후략)위의 도 무의미한 의성어, 의태어가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위의 과 마찬가지로 의미보다는 흥겨움을 고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창가 작의 분리가 이 시기 시가의 전반적인 특성이었던특정한 생활양식, 즉 특정한 문화에 명시적 혹은 암시적으로 내재해 있는 의미와 가치를 구분하는 일이다.)’라고 정의했다.문화는 어느 사회에서든 결코 단일하고 통일적인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고 많은 분리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분리적 요소는 각 하위집단의 조건과 문제 가치와 행동, 생활 방식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하위문화 개념이 가지는 분석적 의의는 바로 그러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핌으로써 문화의 복잡한 실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당위성을 들어 현대 대중가요를 분석함으로서 청소년의 문화적 특성에 대해서 대략적이나마 접근하려 한다.(1) 현대 대중가요에 나타난 유흥성대중가요는 대중들이 즐겨 부르면서 유흥을 즐기는 대표적인 예술 갈래이다.)현대의 대중가요는 잡가의 계층적 구조처럼 담당층과 향유층이 분리되어 있다. 현대의 가수는 음반을 취입하고 TV에 홍보해서 자신의 음반을 판매하고, 일반 대중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음반을 구입한다. 여기에서 잡가의 담당층과 향유층의 관계에서 보면, 가수는 담당층이 되고, 대중은 향유층이 된다.조PD ? 이정현여기있는 사람들 모두 높이 손을들어리듬에 맞춰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이게 진짜 파티야 하는생각 너도들어나도 진짜 죽인다 하는 생각이 들어골아픈 소리해도 절대 난 안들어거기 있는 아가씨 나는 아주 맘에들어그아가씨 진짜 이쁜가 봐라 이리봐라나좀 봐라 하면서 손을 흔들어그렇게 슬퍼도 울지마 고개를 들어그냥 흔들면서 들어 손만 흔들어지금은 파티중이니 끼리끼리 온사람샘내지 말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노세(중략)하여튼 지금 내앞에서 허튼걱정은 하지마너무나 X같은 기분을 떨쳐진정 춤추고 싶은이는 춤을 춰종일 열받혀 있던 머리 식힐겸 춤을춰눈맞춰 볼만한 이 있으면 점을 쳐이기회를 왜 놓쳐 답답하면 크게 소리쳐여기 시간은 조PD 시간너의 시각과 청각은 빨간 노란 파란현란한 틀에 쌓여 대란을 치루는 중이군야순간이 모인거란다인생이란때지난 부끄러움에) (밍숭밍숭하면 뭘해)(음악은 나왔는데) (딴생각하는건 뭐래)(누도 몰라
    인문/어학| 2008.12.06| 27페이지| 4,000원| 조회(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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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손창섭 소설 속 인물
    손창섭 소설 속 비틀어진 인물 연구Ⅰ. 서론-문제제기 및 문제제기Ⅱ. 본론1. 가난과 훼손된 가족관계로 나타난 전후 시대적 현실2. 남성 인물의 특징 - 자아와 ‘아버지’의 부재1) 신경증적 자아와 왜곡된 부권의 부재2) 도착증과 자아와 부권의 부재3. 여성 인물의 특징 - 타락한 여성1) 물신화된 욕망의 추수2) 비틀린 신비화 혹은 성화(聖化)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손창섭 소설에 대한 연구는 대략 네 가지 범주로 유형화될 수 있다. 첫째는, 손창섭 소설에 그려진 특이한 인간형에 대한 연구들이다.) 이러한 연구는 인물들의 비정상성, 신체적 불구, 폭력성, 실직상태 등을 주목한다.두 번째는, 손창섭 소설을 실존주의나 허무주의, 소외와 같은 사회철학적 사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부류이다.) 손창섭 소설에서 허무주의나 부조리사상, 실존주의를 발견하는 연구들은 손창섭 소설에 나타나는 전후의 피폐상을 당시 한국의 문단에 유행했던 사회철학적 사상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던 시도로 이해된다.세 번째는 손창섭에 대한 전기적 연구와 정신분석학적 연구들이다.) 김상일은 「손창섭 또는 비정의 신화」에서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열등감과 폭력성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 지어 해석한다. 한편 정창범은 프로이드의 이론으로 손창섭 소설에 나타나는 과도한 성충동, 야뇨증 등의 이상 행위를 이해하고자 했다.네 번째 부류는 손창섭 소설의 미적 구조나 형상화 기법을 주제로 삼고 있는 연구들이다.) 아이러니를 통해 손창섭 소설의 미적구조를 살펴본 한상규의 논문이나, 주체나 화자의 문체를 통해 손창섭 소설의 의미를 규명하고자했던 강진호의 연구 등이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손창섭 소설에 대한 연구사를 검토해 보면 손창섭에 대한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손창섭이 신체적, 정신적인 불구자를 통해 비정상적인 어린 시적ㄹ과 전후의 피폐하고 결핍된 현실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손창섭은 「아마추어 작가의 변」이라는 수기에서, 자신의 소설이 수기이자 과장된 기변을 맴돌면서 의지하며 살아간다. 만기도 자기식구와 처가식구를 모두 먹여 살려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채익준은 아내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지도 못하고 만기가 대신 장례를 치른다.「설중행」의 귀남이는 상황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 하겠다.귀남의 모친은 일본 여자였다. 해방 다음 다음 해에 모친은 남편과 자식을 떼어 두고 본국으로 돌아가러버렸다. 그 때 귀남은 열 네 살이었다. 아홉 살짜리 남동생이 있었다. 모친이 떠나간 지 석 달 만에, 뜻밖에도 이번엔 부친이 덜컥 죽었다. … 중략… 그들 오뉘는 고모네가 맡아 주었다. 과히 궁하지 않은 고모네 집에서 여학교를 다녔다. 그 고모네가 육이오 사변 통에 폭삭 녹아 버리고 말 았다. 고모부만 피난 나간 뒤 아이들을 데리고 남아 있던 고모는 공습에 시체도 찾을 수 없이 되었 다. 옆집 방공호에 들어가 있던 아이들만이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고모는 가재(家財)와 함께 비산 (飛散)해 버리고만 것이다. 귀남의 남동생은 현재 어느 신문사 숙직실에서 기숙하면서 신문 배달을 하는 한편 야간 상업학교에 다닌다는 것이다.)이러한 인물들의 공통분모는 ‘가난’, ‘훼손된 가족관계’이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가족은 모든 삶의 정신적 지주이며, 디딤돌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이 정상적인 삶의 출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손창섭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가족관계가 훼손되고 파편화 된 상황에 처해 있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가난’과 ‘훼손된 가족관계’는 전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증언해 주고 있는 것이다.2. 남성 인물의 특징 - 자아와 ‘아버지’의 부재)자아란 한 개인의 전제할 수 있는 일종의 구조이다. 이는 주체가 ‘아버지의 이름’을 상징적인 삼자관계로 받아들이는 지의 여부에 따라 가늠되는 것과 대조된다. 여기서 ‘아버지’란 실재하는 현실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금지와 규범을 부여하고 경계를 설정하는 상징적인 기능으로서의 러나 아버지인 오씨에게 아버지로서의 기능은 결여되어 있다. 오씨는 아들 병우에게 어떤 법칙들을 알려주고 금지하려고 하지만 병우는 아버지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병우에게 상징적인 아버지는 오씨가 아니라 장대, 장대식이다. 다정하고 가정적이며 온화한 아버지가 오씨라면 장대는 위협적이고 폭력적이며, 보복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띄고 있다. 병우는 이러한 두 아버지 중에서 자신의 가족 외부에 존재하는 폭력적인 장대를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오씨는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장대는 오씨가 결여하고 있는 상징적인 아버지의 요소 즉 자기 규제력과 통속력을 갖추고 있다. 오씨는 아들 병우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장대와 접촉하는 데 점점 그의 폭력적인 권능에 굴복하게 된다. 오씨는 자기 자신에게 부재하는 힘을 자대에게서 찾고 그에게 의탁함으로써 자신의 자신동일성이 유지되고 확인되는 기쁨을 느낀다. 즉 오씨 역시도 상징적인 아버지의 이름을 갖지 못한 자아였던 것이다. 오씨나 오씨의 아들 병우에게 부권으로 작용하는 장대의 법은 잔인한 폭력성과 보복성으로 유지되는, 왜곡된 부권이다. 즉 「공포」의 부권적 기능은 그 상징성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는 상태이다. 오씨로 형상화된 자아는 부재하는 부권을 왜곡된 폭력의 형태에서 찾고자 한다. 장대에게 굴복함으로써 안정감과 함께 희열과 기쁨마저 느끼는 오씨는 상징적인 부권이 기능을 내면화하지 못한 채 주체로 홀로서기를 두려워하는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2) 도착증적 자아와 부권의 부재)「광야」(『현대문학』, 1956, 4)의 승두에게는 ‘아버지의 이름’이 친부와 계부로 분열되어 나타난다. 아버지는, 죽어서 실재하지 않는 친부와 실재함으로써 나를 위협하는 의부로 구분된다. “원수를 갚았다고”라며 밤마다 꿈에 나타나서 승두를 종용하는 친부의외침은 실재하는 상징계적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하는, 승두의 오이디푸스적 충동을 반영한다. 승두가 호소하는, “자기는 계부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거꾸로 상징계적인 아버지를 없애고 싶다는 나 물신화된 욕망의 세계보다 타락적 이미지가 보다 부각되어 나타난다.손창섭의 많은 작품에서는 매춘녀나 작부가 등장한다. 이들은 가장의 책임을 떠맡아 생계전선에 뛰어든 인물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여성의 성을 생계 유지 차원의 노동으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문제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성인물들의 성적 쾌락에 대한 갈망이 서술자에 의해 초점화 되면서 타락의 주체이자 부조리한 사회의 해악의 근원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그 첫날 밤 일을 생각할 때 동주는 지금도 온몸에 오한을 느끼는 것이었다. 퇴폐적이랄 수밖에 없는 춘자의 흥분한 언동에서가 아니다. 도리어 반대로 동주는 그날 밤의 자기 자신에게 놀랐기 때 문인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여자의 피부에 접촉하지 못한데다가 건강도 지금보다 훨씬 나은 탓이겠 지만 춘자의 기괴한 이야기와 몸가짐에,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찡그려지도록 동주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동주는 그냥 수컷이었을 쁜이었다. 그 뒤에도 춘자는 거의 밤마다 동주를 가만 두지 않았다. 타오르는 듯한 젊음을 감당하지 못해 야위어 가는 동주의 육체에 매달려 내내 앙탈이었다. 그러한 춘자가 마침내 동주는 징그럽기까지 했던 것이다.‘동주’는 공산정 치하를 겪으면서 세상사에서 스스로 격리되어 있으며, 일본인 중학 동창의 여동생인 ‘춘자’에게 기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 부적응자이다. 그런데 실제로 ‘동주’를 부양하고 있는 ‘춘자’는 여러 남자를 거친 사생활이 문란한 여성이며 ‘동주’에게 성적인 부담감을 주는 인물로 제시된다. 전 남편들과의 기괴한 부부생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거나, 과도하게 성생활을 유도하는 ‘춘자’는 ‘동주’에게 본능적 쾌락의 추구 뒤에 엄습하는 현실에서의 무력감을 부채질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산다는 것의 무의미와 우울”에 압도되는 삶을 간신히 견디어 나가야만 하는 인물이다.또한 손창섭 작품 중에서 가장 긍정적 가치를 지닌 인물이 등장하는 「잉여인간」에서도 ‘만기’에 대한 여인들의 탐욕이 지나치단한 것이었다. 첫째는 과부라는 소리 가 듣기 싫어서도, 둘째는 용돈을 좀 맘 놓고 풍청풍청 써보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난 병준은 공연히 제 쪽에서 낯을 붉히었다. 정말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인 간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의 커다란 과오같이만 해석되는 것이었다.「피해자」에서 ‘병준’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대로 처자를 다스릴 자신이 없는 인물이다. 외모에서부터 내적 조건에 이르기까지 결혼이 실현될 수 없는 인물인 ‘병준’은 장인과 아내 ‘순실’의 농간에 말려 결혼하게 되지만 결혼 이후 ‘병준’의 인간적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물질적 탐욕에 사로잡힌 장인과 아내로 인해 자신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적 실권도 박탈당한다. 심지어 세 번씩 결혼한데다가 데리고 온 자식까지 강재 부양하도록 해 놓고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는 아내의 뻔뻔함 때문에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병준’은 사물화 된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에게 물질적 대상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므로 과도한 책임의식에 시달리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잉여인간」에서 ‘봉우의 처’는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일 뿐만 아니라 물질 중심의 가치관으로 타인과 교류하는 인간형으로 제시된다. 그녀는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를 중시하여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병원을 미끼로 ‘만기’의 환심을 사려 하는 물신화된 욕망의 주체이다. 만기를 유혹하는 일이 무위로 둘아서자 병원을 처분하겠다는 압박도 서슴지 않는 그녀의 모습ㅇ느 돈을 매개로 하여 성을 사고 파는 변형된 성의 상품화를 단적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는 사물화 된 사회 속에서 철저히 왜곡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의 주체를 여성으로 상정하고 성적 욕망과 물신화된 가치관을 결합한 왜곡 된 인간형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2) 비틀린 신비화 혹은 성화(聖化)손창섭 소설에서 창녀형 인물들은 경제적 억압과 성적 억압이라는 이중적 피해 상황에 놓여 있다. 다.
    인문/어학| 2007.06.16| 13페이지| 2,000원| 조회(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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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가의 민중의식과 현대적 의의
    무가의 민중의식과 현대적 의의Ⅰ. 서론Ⅱ. 본론1. 무가의 개념2. 무속에 대한 잘못 된 인식3. 무가에 나타나는 민중의식4. 무가와 무속의 사회·문화적 의의5. 무가의 현대적 의의Ⅲ. 결론Ⅰ. 서론무가는 무당들이 굿을 할 때에 부르는 노래다. 무당굿은 우리 민중의 삶의 역사에 뿌리박은 채 적어도 천년이 넘게, 어쩌면 오천년이 넘게 연륜을 쌓아 왔을 것이다. 굿을 한국 원시종교의 의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민중 놀이로서의 유희적인 의미가 더 큰 민속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한국을 식민지화하려고 한국의 민중 문화를 연구했던 일본인 학자들 가운데에는 굿이나 무속을 가지고 한국 문화의 야만성과 미개성을 증명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곧, 한국 문화 속에 들어 있는 외래 종교의 요소들을 다 빼면 남는 것이 바로 고유한 한국 종교일 터이니, 불교, 유고, 도교, 기독교의 요소들을 제외하고 나니까 맨 밑바닥에 남는 것이 바로 기생과 창녀들의 원형인 무당가 야만스럽고 미신 투성이인 무속 종교뿐이라고 말하면서 한국 문화의 미개성과 저질성을 알만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고 우수한 일본 민족이 미개한 한국 민족을 지배라는 것을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으로 우겨대려는 속셈이 일본 학자들의 한국 무속 연구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전통 무속 신앙은 미신으로 몰리면서 대립적인 상황으로 갔었다. 김동리의 소설 ‘巫女圖’에서도 이러한 기독교와 무속 신앙과의 대립을 엿볼 수 있다.오랜 세월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무속신앙은 서구문화의 유입과 외래 종교의 보편화로 점차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본고에서는 무속신앙 중 특히 무가의 민중의식과 현대적 의의를 살펴봄으로서 무속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Ⅱ. 본론1. 무가의 개념무속(巫俗)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민간신앙(民間信仰)의 하나로서, 무속적 세계관을 주축으로 전해지는 종교·신앙적 현상을 말하고, 무가는 그 무속제의(巫俗祭儀)의 현장에서 무당에 의해 구연(口演)되는 구비전승물(口碑傳承들여 행해진다는 특수성이 있다. 그 전승자·향유자들의 신관(神觀)을 비롯하여 우주관, 윤리관, 내세관 등 일체의 무속적 사고가 의례 및 동작과 함께 직접 언어로 표출되기 때문에, 무가는 무속제의의 구비경전(口碑經典)이라 할 수 있다.2. 무속에 대한 잘못 된 인식우리가 흔히 부르는 무속(巫俗)이란 용어는 조선조의 유학자들이 무당을 천시하여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조선조가 무당을 천민(賤民)의 하나로 규정하고 그들의 풍속을 무속이라 하였던 것이다. 이 용에는 이미 천하고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후 학술용어로서 계속 통용되어 온다는 것은 그 전체 현상을 객관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무(巫)가 조선조 때 천시된 것 외에도 일제시대 때 민중의 종교로서 박해의 대상이 되었던 점, 그리고 해방이후 서구식 내지 기독교적 가치관에 의하여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낙인 찍혀온 사실은 무(巫) 신앙과 바른 이해를 끊임없이 저해하였다. 그러나 무는 고대에 신교(新敎)라 불리었거니와, 이후 혹독한 탄압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민중에서 두루 신앙되어 온다. 이러한 신앙의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고 거기다 신령, 무다, 단골 상이의 신앙구조를 강조하여 이것을 무교로 부르는 이들도 있다. 말하자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종교의 성격과 면모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려는 의도만은 거기에 충분히 엿보인다.무는 미상불(未嘗不) 종교이다. 그것을 두고 종교라 하면 저항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일반인들은 뚜렷한 기준 없이 기독교나 불교 등 기성종교들을 염두해 두고 그런 느낌을 가질 것이다. 한편 그들의 막연한 인식 이면에는 무에 대한 종래의 선입관, 즉 무언가 귀신스럽고 저질스러운 미신이라는 고질적인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학문에 종사하는 이들은 종교의 기준으로 몇 가지 항목을 으레히 들먹인다. 교조(敎祖)나 교리(敎理) 또는 경전(經典)이 없고 교단(敎團)이라 부를 만한 조직이 없다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이들의 머리에는 종교의 기준과 관련하여 에 비교 종교학이나 종교 인류학에서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학자들은 그래서 종교를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반응’ 내지 ‘상징적 체계’로 넓게 파악한다.이러한 기존의 개념 때문에 우리는 무속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신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속에 대해 제대로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3. 무가에 나타난 민중의식무가들 중 서사무가들 속에서 밝혀낼 수 있는 민중의 마음과 삶의 철학을 와 를 중심으로 공통점을 살펴보겠다.첫째, 삶의 과정에서 고난과 시련의 운명적인 한계 상황을 긍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바리공주가 일곱째 딸로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는 것이나 당금 애기가 중과 인연을 맺도록 사주책에 운명지어져 있었다는 것들이 주인공의 운명이면서 곧 인생의 보편적인 한계 상황일 수도 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고통스러운 삶의 세계 속으로 내던져진다.그러나 서사 무가의 주인공들은 주어진 운명에 대해 실존 철학에서처럼 반항하거나, 전율과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도전적이고 영웅적인 투쟁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는다.둘째, 서사 무가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버림받은 여자라는 점이다. 그들 모두는 운명적으로 버림받은 딸, 곧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여자이다. 바리공주와 당금애기는 부모에 의해 버림받거나 내쫓겼으며 심청이는 죽음의 길로 팔려간다.셋째, 약자인 주인고의 삶의 노력이 남을 구제하게 된다는 점이다. 곧 버림받은 여자들은 한을 품고 복수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바리공주는 저승에 가는 과정에서 닥치는 여러 가지 고난들을 감수하고 풀어나간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무감각하다고 말할 만큼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담담하고 강인한 삶에의 의지와 인간으로서의 성실성이 충만해 있다.넷째, 이야기 줄거리를 이루는 장면이 ‘삶의 세계→죽음의 세계→삶의 세계’라는 식의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삶의 세계에서 시작되어 죽음의 세계로 갔다가 다시 삶의 세계로 와서 완성되는있지 않을까 한다.다섯째,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원인이 있지 않은 타인의 고난을 홀로 감수한다는 점이다. 무가의 주인공들이 대행하는 고난의 감수는 반드시 혈육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무가에서 구원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혈연 공동체적이다. 의 경우에 혈육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은 고난을 감수하고 끝내는 혈육을 구원받게 하지만 그 구원의 결과는 같은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된다.여섯째, 죽은 자와 산 자가, 신과 인간이, 버림받은 자와 버린 자가, 헤어졌던 혈육들이 모두 함께 모임으로써 무가의 삶의 의미는 현실 속에서 완결된다는 점이다. 양극적인 단절을 극복하고 서로 화해하고 즐기며 함께 살 때 모든 삶의 의미는 완성된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신까지도 그 현주소는 ‘지금의 여기’임이 드러난다. 신도 인간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즐길 수 있을 때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며, 무당 굿에서의 절정도 이 ‘선’인 즐겁게 함께 사는 화해의 장면이다.일곱째, 서사 무가의 세계에서는 약속의 윤리가 신성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인간과 신 사이거나 인간들 사이의 약속이거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약속에는 혈연적인 공동 책임이 있다. 바리공주는 약수를 구해 오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저승에 다녀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약속을 반복하고 그 모든 약속들을 지킨다.여덟째, 무가에서의 저승은 하늘 위에 있는 것도 땅 밑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멀리 있기는 하지만 이승과 같은 지평 위에 놓여 있는 어느 곳이다. 바리공주의 경우에도 당금애기의 경우에도 저승은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어떠한 운명적인 고난이라도 우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소처럼 끈질기게 견뎌 나가는 자세와 지극한 정성은 반드시 보답을받는다고 확신하는 신념과 희망, 약하고 서러운 사람이나 버림받고 저주받은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는다는 역설적인 구원관, 그 구세주는 반드시 여성이라고 하는 여성 메시아관, 우주는 ‘지금의 여 보는 가치관, 약속을 신성시하는 윤리 의식 또 신도 인간의 노력으로 조종할 수 있으며 인간의 삶의 세계에 찾아 왔을 때에 비로소 신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하는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의식 구조 같은 내용이 서사 무가에 일관되어 있다.무가를 부르는 무당들이나 그것을 듣고 즐기는 민중들의 의식 속에 무가가 가르쳐 주는 삶의 의미와 가치가 덕목으로 손꼽혀 체계적인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주입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무가가 가르치는 삶의 의미는 모래밭에 물이 스며들 듯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민중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의식의 심층을 이루고 삶의 내용과 형태와 방법을 지배하고 그 방향을 이끌어 왔는지도 모른다.4, 무가와 무속의 사회·문화적 의의무속은 기층민중의 일상생활에 깃들어 온 민간신앙이자 민속예술이다. 그들은 무속적 의례와 관습을 통해 고난의 현실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삼는가하면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자기 위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안택굿, 조상굿, 재수굿, 씻김굿, 별신굿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무속의례는 신성성과 주술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들이 신봉하는 신들의 위계나 상호 유대가 체계적이지 못하다. 즉, 무속신은 조직과 체계보다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그들의 직능을 중심으로 설정되는 듯하다. 따라서 무속적 의례에서는 인간의 행·불행과 관련해서 신이 존재하는데, 그 신은 인정이 많을 뿐 아니라 본능적·충동적 욕심까지 지니고 있다. 위령굿, 혼인굿, 등은 바로 이러한 관념에서 행해지는 제의들이다.이 같은 다신적 자연신관을 바탕으로, 무속에서는 인간 중심의 현세적 실리주의 내지는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한다. 떄문에 유·불·도 등 외래종교사상의 유입이나 사회역사적 소용돌이에 놓이면서도 무속은 가족공동체나 생활공동체의 안정과 무병장수, 다복과 풍요를 희구하는 기층민중의 소박하고도 진솔한 소망을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무속과 무가는 그 근본가치는 지속적으로 유지하되 역사의 국면에 따라 민중적다.
    인문/어학| 2006.10.12| 6페이지| 1,000원| 조회(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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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용가의 배경설화 연구 평가A좋아요
    處容歌의 背景說話 硏究국어국문학과 0326044 최영서Ⅰ. 서론Ⅱ. 본론(1) ‘處容郞 望海寺’에 나타난 歷史的 事實(2) ‘處容’의 正體1. 巫俗的 觀點2. 역사적 실존인물(3) ‘龍’의 意味1. 民俗象徵2. 神話的 象徵(4) 疫神의 존재Ⅲ. 결론 *부록- 원문해석삼국유사 영인본 복사본Ⅰ. 서론處容說話와 處容歌에 대한 연구는 민속학적 관점, 역사학적 관점, 불교학적 관점, 연극사적 관점 등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분석 · 규명되어 왔다. 그리하여 처용의 존재나 용의 상징성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본고에서는 이들 성과를 토대로 하고 대부분의 설화가 그 발생 · 유포 당시의 사회 제반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 밑에서 憲康王대에 형성된처용 설화와 그 가요를 당시대의 사회 제반상과 결부시켜 해석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1) 處容郞 望海寺에 나타난 歷史的 事實헌강왕대는 신라 하대에 해당되는 시대라 중앙 진골귀족 사이에 정권 싸움 내지 왕위쟁탈 싸움이 수시로 일어났기 때문에 당대의 시대사조는 불안과 위기의식으로 말미암아 세기말적 풍조로 깊이 물들어 있었다. 崔柄憲 교수가 헌강왕대를 중심한 신라하대의 사회실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함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 하겠다.헌강왕대는 중앙 귀족들의 도에 넘치는 향락생활에 대하여 그 이면에서는 몰락하고 있던 일반민 중들의 불만이 팽배하여 있어서 파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불안은 귀족들 에게도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실이나 귀족들의 醉生夢死하는 세기말적인 향락 생활도 실은 그들의 불안을 잊고 태평을 가장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헌강왕은 이러한 정치적 · 사회적 불안과 위기의식의 발생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고, 유고정치의 구현을 위해 國學에 행차하여 박사 이하에게 經義를 강론케 하기도 하는가 하면, 佛力에 의한 왕권 회복과 호국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호국사찰인 皇龍寺에 행차하여 百高座를 베풀고 講經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민심 수람을 위한 지방 순행을 했으. 처용의 정체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①僻邪假面의 인격화, ②護國護法龍의 불교적 상관인물, ③巫堂 혹은 巫堂의 神主, ④역사적 실존인물 등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③이 수량면에서 가장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중에서 처용의 정체에 대해 처용을 무당으로 보는 무속적 관점과 실존인물이었을 것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살펴보겠다.1. 무속적 관점金烈圭는 용신의 子룰 재연한 男巫. 그는 接神한 巫婦와 맺어져 당대 제 1급의 國巫노릇을 함, 金東旭은 남해안의 호국용으로 인식되어 온 용신제의 사제자(동해용신의 아들인 巫祖), 金宅圭는 동해용신으로 분한 主巫에 종속한 助巫로서 가무에 뛰어난 倡夫巫, 徐大錫은 동해용신을 몸주(주신)로 한 강신무, 朴魯?은 주술의 능력과 가무의 의식을 통해 기상의 변괴를 물리칠 수 있는 覡이라고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처용의 정체에 대해서 무속적 관점에서 많이 해석하고 있다. 처용이 무당 혹은 신격 그 자체라는 견해는 무엇보다 처용이 東海龍子로 설정되어 있고, 疫神을 물리쳤다는 관련설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 처용의 출현처인 울산의 處容島와 그곳의 신당인 처용당을 들고, 거기서 처용맞이 굿이 있었으며 그 굿의 口述相關物이 처용설화라는 관점을 취하는 데서 찾고 있다.그러나 처용을 무당이라고 보기엔 어색한 점이 많다. 處容郞에서 ‘-郞’을 볼 때 신격이 아닌 ‘화랑’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처용이 부른 가 疫神驅逐의 주술력을 갖고 있다면, 처용 사건 이후에 驅儺儀式에서 를 계속 재연함으로써 족할텐데 처용가면은 왜 생겨났으며 는 왜 필요했을까? 신라말기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역신을 구축할 때에 처용가면이 소용되거나 로 새로 개작되어야 했던 까닭은 신라의 가 그러한 주술력을 애초에 갖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실제로 의 관련설화에 나타나 있는 서사문맥을 꼼꼼히 따져보면 가 주술적 기능이 있어서 그 결과로 역신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내를 범했음에도 노함을 나타내지 않고 가무를 하며 점잖게 물러나는 처용鼻荊郞呪詞」를 문에 써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습속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여기서 비형랑이 郞이라는 약호로 기호화 되어 있는 점, 집사직을 맡아 王政을 보좌한 점, 귀신을 부리거나 쫓는 주술력을 갖게 된 점 등이 처용랑과 너무나 흡사함을 할 수 있는데, 이로써 본다면 비형랑의 경우도 무속적 관점에서 이해할 경우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니라 무속의 신격 혹은 그 신격을 모시는 무당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비형랑은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하면 화랑인 용춘, 무사랑과 더불어 미보랑을 섬겨 문보파를 형성한 화랑으로 분명히 실존인물이다. 따라서 처용랑의 경우도 화랑으로서 무속사회에 이끌린 비형랑의 경우와 동궤의 인물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하겠다.(3) ‘龍’의 意味1. 敏速象徵용은 四肢를 가지고 물 속에서 살며, 때로는 하늘에 오르는가 하면 바람, 구름, 번개를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영력을 가진 것이라 민간 신앙에서 믿고 있었다. 용은 춘분에는 하늘에 올라가고 추분에는 연못에 잠긴다고 여긴 것이다. 용은 왕자나 위인과 같은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로 비유되고 있다. 천자에 대해서는 얼굴을 容顔, 덕을 龍德, 지위를 龍位, 의복을 龍袍 등이라고 한다.그리하여 용은 水神으로 승천하고, 천자로 상징하고, 용꿈을 꾸면 貴子로 탄생하고, 희망적인 일이 생기며, 招福하는 영력을 지녔으며, 풍년과 흉년을 예고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처용은 용왕신 곧 造化主의 신을 모신 무당으로 제례의식의 기간에는 금욕생활로 일관해야만 했다. 처용이 용왕신 굿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처용의 아내는 獨守空房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의 아내는 욕정을 이길 수 없어 꿈 속에서 악신과 몽정상태에 빠져 있었다. 악신은 불체의 모습만으로 출현하여 몽정을 유발케 되었다. 처용의 아내는 악신의 불체와 어울리게 되었던 것이다.이와 같이 처용의 정체가 무당이라고 봤을 때 용은 무당들이 숭배하는 용왕신이었을 것이다.2. 神話的 象徵신화적 상징에서 용은 비극적 순환상징이다. 비극적 순환상징은 물의 세계 → 식물 세 때 처용은 영웅으로 출현하여 악신을 물리치고 왕의 딸과 결혼하는 천자로 상징된다.처용가의 배경설화를 다시 재구성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헌강왕의 딸이 깊은 중병에 걸려 어느 의사도 못 고치는 역병의 고통 속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이러한 질병은 경주의 여러 곳에서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헌강왕의 딸 송주도 역신에 걸려 고통 받고 있었다. 이 때 신령스런 영력의 소유자인 처용을 초빙하게 되었다. 처용은 공주에게 붙어 있는 악신과 사투 끝에 승리하여 악마를 불리치고, 공주는 씻은 듯이 완치되어 일어섰다. 헌강왕은 기뻐하며 공주를 아내로 맞게 하고 처용을 높은 자리에 등용했다. 이 때 역신은 사탄이며, 늙은 왕은 신라의 헌강왕이며, 영웅은 처용으로 천자가 되고 왕의 딸과 결혼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상징했다고 생각된다.)이 때는 용왕신 신앙을 하던 민간신앙과 불교신앙이 접맥되어 천자를 龍子로 말을 바꾸고, 천신을 용왕으로 대입하여 배경설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4) 疫神의 존재처용가의 내용 중에 서라벌을 ‘동경’으로 묘사한 것을 볼 때, 이 노래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라벌을 동경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태조 이후이므로, 아마 처용가도 처용의 설화를 기반으로 고려 때에 만들어졌을 것이다.또 역병 귀신이 처용의 아내와 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은 역병 귀신이 아니라 처용으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신분이 대단히 높은 사람일 것이다.이 처용 이야기의 앞뒤에 헌강왕이 등장한다. 당시 헌강왕은 지금의 울산 지역인 개운포 부근을 순행하고 있었는데, 처용은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처용의 아내는 대단한 미인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당시 신라왕은 어느 누구의 부인이든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기 때문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처용의 아내를 헌강왕이 취했을 가능성이 짙다.이는 처용이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걸 어쩌리.”라고 하는 한탄조의 시구로 노래를 끝내는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처용으로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낸 처용의 출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역신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 중에 다름 아닌 헌강왕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시 막강 권력을 가진 왕들의 횡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이렇게 처용가와 그 배경설화는 어떤 관점을 통해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이 앞으로도 필요하다.※참고문헌김경수 외, 『처용은 누구인가』, 도서출판 역락, 2005.김상억, ?處容歌考?, 『한국시가연구』, 태학사, 1983.김승찬, 『향가문학론』, 새문사, 1991.김영철 외, 『韓國詩歌의 再照明』, 형설출판사, 1984.김학성,「처용가와 관련설화의 생성기반과 의미」, 『대동문화연구』제30권, 성균관대 대 동문학연구원, 1995.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신라와조실록』, 웅진닷컴, 2001.유경환,「처용가에 나타난 용의 상징성」,『어문연구』제26권 제3호, 한국어문교육연구회, 1998.장진호, 『신라향가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6.정병현, 「처용가 연구」,『한국국어교육연구회논문집』제22권, 한국어교육학회, 1982.정은미, 「처용가의 무가적 성격고찰」, 『사림어문』제6권, 사림어문회, 1989.최혜실, 「문학에서 해석의 객관성 문제-의 해석을 중심으로」,『국어교육』제6권,한국어교육학회, 1995.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역주 삼국유사』, 이회문화사, 2002.?*부록[處容歌]東京明期月良 ?? ?긔 ?래夜入伊遊行如可 밤드리 노니다가入良沙寢矣見昆 드러? 자리보곤脚嗚伊四是良羅 가?리 네히어라二兮隱吾下於叱古 둘흔 내해엇고二兮隱誰支下焉古 둘흔 뉘해언고本矣吾下是如馬於隱 본? 내?다마?奪叱良乙何如爲理古 아?? 엇디 ?릿고*배경설화 원문[處容郞 望海寺]:三國遺事 弟2 紀異 第二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自京師至於海內.比屋連墻,無一草屋.笙歌不絶道路.風雨調於四時.於是大王遊開云浦.(在鶴城西南.今蔚州).王將還駕.畵曷穴於汀邊.忽雲霧冥日壹.迷失道路.怪問左右.日官秦云.此東海龍所變也.宜行勝事以解之.於是束力有司,爲龍?佛寺近境.施令已國終亡.
    인문/어학| 2006.10.12| 8페이지| 1,000원| 조회(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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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가요]만전춘 별사의 일관성 문제
    「 의 일관성 문제 」국어국문학과 0326044 최영서Ⅰ. 서론 1) 전체 시형Ⅱ. 본론 2) 연의 짜임* 원문 3) 음보율1. 형식적 일관성 2. 내용적 일관성Ⅲ. 결론Ⅰ. 서론고려가요는 비록 현존하는 작품수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자유로운 표현 방식과 진솔한 성향, 세련된 기교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풍부한 시적 상상력을 부여해 주고 있는 귀중한 작품들이다. 이 중 는 1연의 순국어식 표기와 2연의 한문식 표기, 그리고 5연의 혼합된 표기와 같은 문체상의 부조화나 일정치 않은 연 구분 등의 형식상의 부정연성으로 인해 편장된 노래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통일되고 정제된 시적 구조체며 수준 높은 상징시로 보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왔고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적 가치와 미적 특성이 상당히 밝혀진 작품이다.고려가요 가 합성 가요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 한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을 살펴보면 앞에서 언급한 부정연성이 반드시 그러하다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고에서는 의 형식적 내용적 일관성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이려고 한다.Ⅱ. 본론*만전춘 별사 원문滿殿春 別詞어름 우회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어름 우회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情졍둔 오?범(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耿耿경경 孤枕上고침샹애 어느 ?미 오리오西窓서챵을 여러?니 桃花도화 l 發 ?두다桃花도화? 시름업서 笑春風쇼츈풍??다 笑春風쇼츈풍??다넉시라도 님을 ?? 녀닛京경 너기다니넉시라도 님을 ?? 녀닛京경 너기다니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여흘란 어듸 두고 소해 자라온다소콧 얼면 여흘도 됴?니 여흘도 됴?니南山남산애 자리 보와 玉山옥산을 벼여누어錦繡山금슈산 니블 안해 麝香각시를 아나누어南山애 자리 보와 玉山을 버어(여)누어錦繡山금슈산 니블 안해 麝香샤향각시를 아나누어藥약든 가?을 맛초?사이다 맛초?사이다아소 님하 遠代平生원?평?애 여힐? 모??새< 악장가사(樂章歌詞) >1. 형식적 일관성1) 전체 아소님하遠代平生원?평?애여힐?모??새이 구분 표지에 의하면 만전춘은 고려가요의 일반형인 연장체 노래이며, 전체는 여섯 개 연으로 나뉘어졌음이 드러난다. 악장가사에 쓰인 ○표지는 음악적 단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반드시 문학적 연구분 표지라고는 할 수 없으나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음악적 단위와 문학적 단위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두 단위가 합쳐져서 연을 이루기도 하고, 그 이상이 합쳐져서 연을 이루기도 한다. 그 중 만전춘은 두 단위가 일치하여, 연구분 의식이 뚜렷한 경우에 속한다. 이 점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연에 따라 내부 구성이 서로 다른 사실을 보강하여 정형성을 유지하는 기능도 동시에 가진다.이처럼 단순하게 보이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고문헌에 달리 표기된 것이고, 하나는 후대의 학자들이 각 연의 음악이나 의미상 상관성을 근거로 재분류한 것이다.병와의 악학편고에는 이라는 제목 아래 ‘五章’이라고 부기하여 놓았으며, 가사의 記寫에 있어서도 끝부분인 “아소 님하 遠代平生애 여힐?모??새”를 제 5장의 끝에 붙여 놓았다. 그러면서도 이 앞에 ○ 표시를 해두어 연구분의 애매함을 보였다. 이것은 원래의 만전춘 음악이 조선 후기에까지 전해지면서 얼마간 변화를 일으켰거나, 음악이 전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문헌적 정리를 하면서 임의로 처리한 결과로 보인다. 바꾸어 발하면 병와 시대에 이르러 고려 음악 특유의 후렴구 또는 前後節式 가창법이 드물어진 결과이다. 그러므로 병와의 기록은 5장설의 근거가 될 수 없고, 6장에 대한 의식이 약화된 모습일 뿐이다.연 구분 문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이 있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만전춘의 형태에 대한 접근은 악장가사의 구분 표지 단위에 의의를 두지 않은 경우와, 의의를 두되 그것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의 두 방법으로 나누어진다. 후자는 또다시 재배열을 시도하는 경우와, 기존의 배열을 인정하는 경우로 나뉜다. 그런데 악장가사는 음악에 딸린 가사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가사집시라 뎌듸 새오시라경겨 고침샹애 어느?미 오리오셔창을 여러?니 도화 l 발?두다도화? 시름업서쇼춘풍 ??다 쇼츈풍 ??다넉시라도 님을?? 녀닛경 녀기다니넉시라도 님을?? 녀닛경 녀기다니벼기 더시니뉘러시 니잇가 뉘러시 니잇가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여흘란 어듸두고 소해 자라온다소콧 얼면여흘도 됴?니 여흘도 됴?니남산애 자리보와 옥산을 벼여누어금슈산 니블안해 시향각시를 아니누어남산애 자리보와 옥산을 벼여누어금슈산 니블안해 샤향각시를 아니누어약든 가?을맛초? 사이다 맛초? 사이다아소 님하원? 평?애 여힐? 모??새이렇게 연과 행을 나누어 놓고 볼 때, 각 연이 동일한 구조는 아니지만 그 구성 방식에 있어서의 공통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발견된다.첫째, 매연이 전절과 후절의 결합으로 한 단위를 이룬다. 이 점은 고려가요의 일반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고려가요는 작품에 따라서 후절이 후렴구로서 동일한 형태를 가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독자적 내용을 갖춘 후절이 더 일반적이다. 한 연 구성에 있어서 전절은 보통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 많고 서술적이어서 길어진 대절을 이루며, 후절은 그것을 모아서 마무리 짓는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짧고 집약된 소절을 이룬다. 만전춘에서 전후절의 크고 작음이 큰 차이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전대절과 후소절의 특징은 제대로 보여 준다고 하겠다. 앞서 살펴 본 전체 6연 구성도 이런 축면에서 다시 확인된다. 마지막 연은 전절 없이 후절로만 이루어져서, 전체를 마무리하는 기능이 강조되었다.둘째, 반복을 활용한 행의 정제이다. 만전춘에서 구나 행의 반복은 각연을 형성하는 하나의 형식적 특징을 이룬다. 여기에는 강한 규칙성이 있어서, 단순히 음악적으로 실현하기에 부족한 노랫말을 보충하는 정도로 여길 수는 없다. 이 반복구의 규칙성은 그것이 놓이는 위치와 반복되는 단위를 통해서 확인된다. 우선 반복구가 온전히 규칙적으로 사용된 곳은 각연의 후절이다. 제 6연을 제외한 다섯 개 연에서 후절은 뒷구를 반복하여 한 행을 이루며, 그 일정한 위치에서 전후절 분리의 기능을 한다. 한 작품 안에서 그 구성단위에 따라 음보율을 달리하여 변화의 미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규칙화시켜서 안정감을 확보한 율격 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이러한 음보율에서도 반복의 기능은 강한 규칙성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면에서 검토해 보면 의미가 있다.첫째, 전절이 2음보와 변별되는 면이다. 전절을 2음보로 해석할 수도 있을듯하나, 반복의 단위가 4음보를 한 덩어리로 하고 있는 점에서 이것이 2음보의 배수와 다르게 이해된다.둘째, 후절의 다른 배열 가능성에 대한 검토이다. 이것을 한 행으로 배열하여 6음보로 하든지, 2음보 단위의 3행으로 보든지 각연에 걸친 규칙성은 유지된다. 그러나 우리 시가의 전통에서 6음보는 어느 하위 장르에서도 보편적 음보로 나타나지 않는다. 설사 6음보화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문장 구성의 자연스러운 다음절화 때문이지, 여기서 보이는 것처럼 한 부분을 반복시켜 가면서까지 한 작품의 다른 행보다 과다음보를 만들지는 않는다.한편 후절을 2음보 단위 3행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으나, 고려가요가 가지는 일반적 규칙성과 거리가 멀다. 민요에서 2음보 단위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단순한 리듬을 주고 받은 식의 노동요나 동요에서 발견될 뿐이고, 대개는 3음보나 4음보가 중심을 이룬다. 고려가요는 민요에 근거를 두기는 하였으되, 궁중 악장으로 정제되는 과정에서 보다 복잡한 규칙에 편입되었다. 그것은 궁중 음악이 민요의 가장 단순한 형태를 수요하기에는 이미 너무 전문화한 까닭이기도 하다. 여기서 2음보 1행은 각연의 전후절 변환 기능을 집약적으로 가짐으로써 평면적 구조를 깨뜨린다. 이는 향가의 차사나 경기체가의 “위”의 전통에 기인하되, 여음으로 후렴구를 이루지 않는 작품에서 실사가 그러한 전통에 참여하는 한 방식을 그렇게 며련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은 반복을 통해 4음보를 유지하면서 의미의 집중도를 증가시킨 장치이다.셋째, 문법적으로나 음절수의 자연스러움에 바탕한 일부 행의 음보 축약를 유지하면서 후절 2음보 1행이 변환 장치로 마련되어서, 음보율 통일을 정연히 나타내는 율격 구조가 확인된다.2. 내용적 일관성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노래는 전체가 6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이 새면 떠나야 하는 님과의 아쉽고도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 1연으로 시작해, 이별 이후의 적막함(2, 3연), 님의 귀환에 대한 바램(4연), 아름답고 끝없는 사랑의 희망(5, 6연) 등을 노래하고 있다. 각 연별 사의를 검토함으로써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어름우희 댓님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어름우희 댓님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情정든 오?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제 1연에서는 시적 화자와 님 사이의 뜨거운 애정이 묘사되어 있다. 얼어서 죽더라도 님과 같이한 오늘밤이 더디 새기를 바라는 열렬한 사랑이다. 우리는 이 죽음을 초월한 사랑에서 이별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 그리고 미래에 걸쳐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위와 같은 극단적인 안타까움은 나타날 리 없기 때문이다.耿耿경경 孤枕上고침샹애 어느 ?미 오리오西窓서챵을 여러?니 桃花도화 l 發 ?두다桃花도화? 시름업서 笑春風쇼츈풍??다 笑春風쇼츈풍??다제 2연에서는 1연에서 비친 이별의 그림자가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시름에 잠긴 시적 화자와 아무런 시름없이 봄바람을 만끽하는 복숭아꽃이 좋은 대조를 보여 준다. 그런데 대조란 공통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혀 관련 없는 두 가지를 대비시켰을 때 대조의 효과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을수록 대조의 효과는 커지게 마련이므로 오직 하나의 의미자질이 서로 상반되고 여타의 의미자질이 모두 동일한 두 단어의 대조 효과가 가장 커지게 된다. 따라서 시름에 잠긴 시적 화자와 봄바람을 만끽하는 복숭아꽃의 대조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기 위해서는 시적 화자가 복숭아꽃과 최대한의 공통점과 최소한의 차이를 보여 주어야 한다.넉시라도 님을 ?? 녀닛京경 너기다니넉시라도 님을 ?? 녀닛京경 너기다니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3연은 있다.
    인문/어학| 2006.05.31| 9페이지| 1,000원| 조회(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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