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종 차 별(부제 : 미국이 안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와 현실적인 해결방법)【목차】Ⅰ. 서론 --------------------------------------------- 2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미국Ⅱ. 본론1. 미국인의 인종관 및 민족관 ---------------------------- 32. 인종차별의 시작 ------------------------------------ 43. 독립운동과 인종폭동 -------------------------------- 4, 54. 인종차별주의 단체 - KKK [Ku Klux Klan] ------------------ 55. 남북전쟁 ------------------------------------------ 66. 미국의 인종차별 사례 ------------------------ 6, 7, 8, 9Ⅲ. 결론인종차별의 근원적 해결방법과 결론 -------------------- 10, 11Ⅰ. 서론2007년 들어 가장 큰 이슈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사건’ 이라고 말하겠다. 미국의 개인 총기소유의 총체적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희생자로서 이민자들의 고통을 보았다. 이민자 1.5세대로서 가해자는 어린 시절 미국시민권자인데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는 인종, 피부색, 민족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미국인들 밑에서 상처를 받아왔을 것이다. 가해자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NBC 방송에 보낸 메모와 동영상을 보면 그는 질서와 권위의 중심에서 벗어나 철저히 고립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부유한 계층을 증오한다고 한 것에 대해 나는 부유한 계층은 백인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버지니아 공대의 학생들 인터뷰에서 “소심한 성격에다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활달한 성격의 학생과 사귀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는 식의 한 학생의 발언이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단일 민족이라 하여 온 국민을 한 가족, 한 핏줄로 생각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물학적 특질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범주”로 정의된다. 사람들은 피부색, 모발특성, 기타 얼굴 및 몸에서 보이는 특성 등으로 인종을 분류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인종적 범주를 구분하는 기준이 한편으로는 세대 간에 유전되는 생물학적 특질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규정하는 특질 양쪽에 걸쳐 있다는 사실이다.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수많은 생물학적 특징들 중 어떤 것을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회에서 인정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자의적이다. 예컨대 외면적으로 뚜렷한 생물학적 특징인 신장이나 몸무게의 크고 작음은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채택되지 않는다. 반면에 실제 생물학적 차이가 거의 없는 기준으로 서로 다른 인종을 구분하기도 한다. 과거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오랜 혼혈의 결과 외면적으로는 거의 흑인의 특성을 보이지 않으나 사회적으로 흑인으로 규정된 경우도 있다. 그 당시에는 과거 5대조 선조 중 한 명이라도 흑인이 포함되어있으면 흑인으로 분류되었다. 역사적으로 악명 높았던 또 다른 인종 구분의 예로 유태인 민족을 들 수 있다. 독일의 히틀러는 학자들로 하여금 게르만 민족과 유태인 민족을 인종적으로 구분하는 유전적 특징을 연구하도록 하였으며 미국에서도 유태민족의 박해를 위한 근거로 생물학적 저열성을 거론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서유럽 민족과 유태민족을 인종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이다. 요컨대 인종범주란 부분적으로 유전적 특질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에는 매우 자의적이며 불확실한 범주 구분이다.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범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미국의 복잡한 인종 혼합은 토착 민족, 종교, 충성,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문제들을 상기시키는 자발적, 비자발적 이민자들로 구성되어있다. 긴장과 애매함이 미국에서의 인종에 대한 전체 개념을 에워싸고 있다.미국화는 하나의 언어가 미국 사회의 관심사와 이데올로기적 지주를 벗아니라 모든 문제가 미국인 스스로에 의해서 처리되어야 할 시기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 후 노예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문제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1787년 5월 헌법제정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는데 5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이 회의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이 때문에 그 회의에서 결정된 헌법초안은 독립선언서의 내용보다도 상당히 후퇴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의 기반을 뒤흔들 노예의 해방은 더욱더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1963년 버밍행 16번가 침례교회 폭탄테러로 4명의 흑인소녀가 죽은 사건에 분개해 1964년 여름에 미시시피 주를 비롯한 남부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여기에 맞선 백인 자경단(vigilantes)의 보복으로 미시시피 주에서만도 20여 개의 흑인교회가 불탔다. 그리고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인 필라델피아에서는 3명의 백인 민권운동가들이 백인 테러집단에 의해 살해되었다.1964년의 길고 뜨거운 여름에 북부에서도 흑인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은 뉴욕의 할렘, 로체스터, 그리고 뉴저지의 몇 개 도시로 번졌다. 북부에서 흑인들의 불만은 남부 흑인들의 것과 달랐다. 남부에서 민권운동은 ‘흑인차별법(Jim Crow Laws)’의 폐지와 흑인투표 방해 관행의 폐지를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북부에서는 빈곤의 문제가 더 중요하게 떠올라 흑인 소득 백인의 절반을 조금 넘을 정도로 낮았고 흑인의 실업률은 백인의 2배, 18-25세의 흑인 남성은 5배나 높았다.흑인폭동은 1965년에 들어와서 더욱 더 과격해져 8월에는 흑인들이 로스앤젤레스의 한 동네인 왓츠에서 재산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나 34명이 사망했다.)4. 인종차별주의 단체 - KKK [Ku Klux Klan])남북 전쟁 후에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 조직된 극우적 성향의 백인 비밀 결사대이다. 흑인과 흑인 해방의 동조세력을 적대시하였다.남북 전쟁 후 정권을 장악한 공화당 급진파들은 해방된 흑인들을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내전 이전의 남부백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북부는 석탄과 철광이 풍부하여 일찍부터 근대공업이 발달하여 시민계급이 주도권을 쥐고 보호무역과 중앙집권정책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60년 북부 출신의 노예 해방론자인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남부의 여러 주는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다음 해에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중인 1863년 연방제도와 민주주의의 유지를 강력히 주장한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였고 1865년에는 남부를 굴복시켰다. 결국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노예의 해방이 자유라는 좋은 결과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노예해방의 결과로 납부의 대노원제도가 붕괴되고 북부의 상공업은 크게 발전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해방 노예를 대종으로 하는 빈민층이 증대, 인종차별 풍조가 고질화되는 문제점을 남겼기 때문이다.6. 미국의 인종차별 사례① 2003년 미국 메이저리그의 타자인 새미 소사가 코르크가 들어간 부정방망이 사용으로 인해 마운드에서 퇴장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유명한 새미 소사의 부정방망이 사용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었지만 미국의 공인에게는 금기시 되어 있는 인종차별 발언을 정면 거론하고 나선 메이저리크 최고 투수인 마르티네스의 언급한 내용은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사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부정 방망이 사용이 마크 맥과이어나 칼 립켄 주니어(모두 백인타자)였다면 이렇게 헐뜯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도미니카 출신으로 영어가 서툰 소사에게 통역 없이 얘기를 하게 해 문제가 확대됐다”는 말로 파문을 일으켰다.)그리고 미국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한 배리 본즈에 대해 미국 국민의 52%는 기록 수립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AP 통신은 8일 지상파 방송 ABC 뉴스와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의 합동 여론 조사 결과를 인용, 본즈가 신기록을 세우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이 응답자의 37%에 불과했고 반대하는 쪽이 52%, 의견을 리케인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온 상황에서 관련 예산이 7천1백만 달러나 삭감되는 바람에 둑을 보수하는 공사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흑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뉴올리언스가 미 정부 정책에서 소외 됐다는 인종차별 문제가 대두 됐다. 지난 1일 부시 대통령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뉴올리언스의 둑이 무너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미국 내 언론의 인종차별적 보도미국 내 언론의 보도 태도도 인종차별적인 면을 드러냈다. AP통신사는 가슴까지 물이 찬 뉴올리언스 도심에서 흑인이 식품과 음료를 들고 가는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에 “가게를 약탈했다”고 설명한데 비해 거의 같은 상황의 백인에 대해서 AFP통신사는 “가게에서 빵과 소다를 발견했다”고 설명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문을 열고 장사한 가게는 없었다고 한다.또한 언론들은 이번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난민이라 표현한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지난 4일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미국 언론이 재난과 싸우는 흑인들을 ‘미국시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난민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난민이라는 표현을 두고 흑인 사회의 문제제기가 일어나자 ‘대피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이배큐이(evacuee)’나 ‘집을 잃고 다른 곳을 전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디스플레이스트(displaced)’등의 용어로 대체 됐다.)③ 미 대학에서 아시아계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대학마다 아시아계의 입학을 사실상 제한하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1996년 이래 소수계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 폐지된 캘리포니아·텍사스·워싱턴·플로리다·미시간 주 등지의 대학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은 캠퍼스 내 최대 인종으로 등장했다. 인종을 불문하고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뽑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아시아계 인구는 12%이지만, 9개 캘리포니아대에서 아시아계 학생의 비율은 37%에 달한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
신문 박물관학과:학번 :이름:보통 박물관을 간다고 하면 큰 규모의 박물관만을 생각했었고 학창 시절에도 주로 학교에서의 견학이나 과제를 위한 답사를 위해 많이 알려진 국립 박물관을 찾았었다. 그리고 이런 소규모 박물관에 대한 과제를 접하고 이에 대해 조사해 보지 않았을 때에는 김치 박물관, 금융 박물관, 아프리카 문화 박물관, 전통 술 박물관, 족보 박물관 등 우리나라에 소규모 박물관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존재도 많은 줄 몰랐다. 이런 많은 박물관 중에 선택하게 된 곳이 바로 신문 박물관이다.신문 박물관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신문은 그 나라 역사의 척도와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자료를 잘 보존하고 상세히 설명해 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는 그 나라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신문에 관련된 박물관이 많이 있고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이런 곳이 없었다. 그런데 동아일보사에서 새로 사옥을 지으면서 이런 의미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신문 박물관(프레시움) 소개이 신문 박물관은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건물인 동아미디어센터 3, 4층에 걸쳐 있다. 신문 또는 언론을 뜻하는 PRESS와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의 합성어로 프레시움(PRESSEU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신문 박물관 프레시움은 한국이 걸어온 10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신문의 미래상을 가늠하는 장으로 가치가 있다. 세계적으로 신문 박물관은 1931년 독일 아휀시에 세워진 국제신문박물관을 비롯하여 미국 워싱턴에 세워진 뉴지엄(NEWSEUM), 일본 요코하마의 뉴스파크(NEW PARK)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도 2000년 12월 15일에 신문 박물관이 설립됨으로써 1883년 한성순보가 창간된 이래 100여년 만에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를 한자리에 놓고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신문은 역사의 그릇으로 신문지면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날 그날의 역사가 숨쉬고 있기 때문에 시대의 변천과 함께 명멸과 성쇠를 거듭했던 신문의 과거와 현재를 집약한 축소된 역사의 현장을 보존해 놓은 곳이 이 신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이 신문 박물관은 국내에 처음 설립되었다는 상징성을 넘어 신문을 통한 근현대사의 조망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언론 발달에 한 획을 긋는 작업이라는 언론사적 의미와 우리나라 박물관의 지평을 확장하는 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이를 설립한 동아일보사에서는 이 신문 박물관을 통해 독자와 청소년에게는 신문과 종이매체에 대한 이해와 친근감을 높이고, 언론인과 연구자에게는 전문적인 언론사료관으로 기능을 다해나가길 바라고 있다.◈ 신문 박물관(프레시움) 관람 안내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오전 10:00~오후6:00 (월요일 휴관)관람료 : 일반 및 대학생 3000원, 초?중?고등학생 및 군경 2000원패밀리 티켓 3인용 5000원, 4인용 6000원교통편 : 지하철 -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버스 - 광화문 사거리 하차위치 :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미디어센터 3, 4층◈ 신문 박물관(프레시움)의 전시 내용우선 이 신문박물관은 3층에 신문역사관, 4층에 기획전시관과 미디어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다.3층 신문역사관에는 1883년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가 창간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회상을 기록해 온 신문의 역사를 돌아보는 공간으로 세계 각국에서 발행된 신문과 한국 신문의 역사, 신문에 반영된 사회 문화의 발자취, 디자인 광고 만화의 변천사, 신문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신문 박물관 입장권을 구입하고 3층 신문역사관을 들어서 면 제일 먼저 많은 나라의 신문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보인 다. 이 신문 박물관이 2000년 12월 15일에 개관되어서 그런 지 2000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한 각국의 신문을 모아놓았 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국가를 비롯하여 콩고, 이집트, 스리랑카 등 평소 접할 수 없었던 각국의 신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국가별 일간지 발행 부수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중국한국북한일본6016만부9087만부908만부5737만부5052만부2210만부500만부7169만부세계 각국의 신문현황에 대한 현황도 도표와 함께 쉽게 정리되어 있어서 그 나라의 지표를 알 수 있었다.☞전 세계 일간지 총 발행 부수☞전 세계 발행 일간지 수499,549,000부161개국 6,844개☞인구 천명당 일간지 보급 부수미국아이슬란드중국노르웨이스웨덴한국북한일본236부519부43부607부511부412부221부577부각국의 신문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지나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전시관이 나온다.우리나라 신문의 역사를 애국계몽기(1883~ 1910)→식민지시기(1910~1945)→좌우대립기 (1945~1948)→정부수립?한국전쟁?재건기 (1948~1961)→경제 개발기(1961~1972)→독재 정권시기(1972~1987)→민주화 시기(1987~)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 위와 사진자료를 함께 실어 이해하기 쉽고 도 움이 되게 해놓았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신문 자료도 전시되어 신문의 변화된 과정과 직접 손으로 쓰는 신문에서 활자로 찍는 신문으로 변화한 시기를 알 수 있다.한성순보 : 1883년 10월 30일 에 창간된 한국 근대 신문의 효시독립신문 : 서재필이 창간한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매일신문 : 1898년 1월 26일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일간지신문 인쇄기의 변화도 한 눈에 알 수 있는데 시대별로 사용되었던 기계가 전시되어 있어 직접 만져볼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신문에 대한 욕구와 관심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큰 반원형 틀에 뜨거운 것을 부어 반원형 틀 안에다 글씨를 주조한 것을 찍어내어 그걸 이용해 신문을 찍었고 그 이후에는 팔만대장경처럼 글자를 일일이 찾는 사람이 있어서 글자를 네모난 틀에다가 맞춰 넣어 찍었다. 그리고 손으로 돌려서 인쇄를 하는 것에서 기계의 동력을 이용해 자동화 생산을 하는 과정으로 변모하는 것도 볼 수 있다.신문기자들이 사용하던 카메라들도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 밖에 신문기자들의 출입증, 보도리본 및 완장, 프레스 카드 등이 전시되어 있어 신문기자들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생각할 수 있었다.또한 예전 뉴스를 첨단시설 터치 스크린으로 클릭하여 볼 수 있게 해주어 그 당시 뉴스와 사건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두었다.전서구비둘기를 이용해연락모스 전신기문자를 부호로 바꾸어 전선을 통해 송수신텔레타이프먼거리에서 타이핑한 기사를 전기회로를 통해 실시간 통신요즘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정보까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예전엔 그러지 못해서 당시 이용했던 통신기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우리나라 일반신문 외에 어린이 신문, 스포츠 신문, 경제 신문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주었다.어린이신문은 1906년 라는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정기 간행물을 시작으로 최남선이 창간한 1908년 11월~1911년 5월까지 23호가 발행되었다. 1913년 1월 1일 는 ‘공부거리와 놀이감의 화수분’을 부제로 달고 격주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어린이 기자가 있어 소년기자제도를 통해 어린이들이 신문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었고 소년 한국일보가 1974년 비둘기 기자를 선정하는 등 각 신문사는 소년 기자를 선발하였다.스포츠신문은 일제시대부터 신문지면에 스포츠란을 신설하였다. 최초의 스포츠 일간지는 1963년 일요신문의 자매지로 창간한 일간스포츠 신문이고 1969년 한국일보의 자매지로 일간스포츠가 창간되었다. 1985년 이후 스포츠 서울, 스포츠 조선, 스포츠 투데이 등 스포츠 신문은 종합 일간지 보다 먼저 컬러지면, 한글 가로쓰기, 판형 변화를 도입하였다.☞신문 인쇄 변화1880년납활자 시대1900년활자와 평활판 인쇄기를 일본에서 도입1910년자동접지하는 프랑스 마리노식 윤전기 최초 도입(매일신보)시간당 양명 1만장 인쇄1912년조선 인쇄 주식회사최초 자동 오프셋 인쇄기1930년자동주조기(동아일보)1935년고속윤전기(조선일보)1950년해방 후 최초 색도 신문 인쇄(한국일보)1958년독일제 알버트 윤전기(동아일보)1960년다색인쇄기(최초컬러사진-중앙일보)1970년한글 사진식자기 글자판 제작1985년부분 CTS 방식1995년인터넷 신문경제신문은 황국협회의 보부상 모임인 상무회사가 1899년 상무발달과 상도확립을 위해 짧은 기간동안 상무총보를 발행한 것을 시작으로 1960년 한국일보의 자매지로 서울 경제신문이 창간되었다. 그리고 1966년 매일경제와 1973년 내외경제, 1979년 한국경제가 창간되었다.4층 기획전시관에는 80년 동안 한국 언론을 대표해 온 동아일보의 역사와 위상을 돌아보는 공간으로 사옥의 변천, 지면과 인쇄시설의 변화 등을 통해 동아일보의 성장과정과 동아방송 및 각종 문화사업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또한 신문과 관련된 주제의 기획전시가 열리는데 내가 갔을 때는 「신문이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일반인들의 신문과 관련된 사진작품을 전시해 놓아 감상할 수 있었고 자료물도 제공해 주었다.이 곳에는 동아방송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예전 라디오 프로그램을 선국하여 들을 수 있는 시설이 있었고 동아방송의 변천과정을 여러 자료와 기계 시설의 변화과정을 전시해 주어 방송의 변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4층 미디어 영사관에는 미래 신문의 발전상을 예측해보고 영상 매체를 이용하여 다양한 신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관람객이 직접 신문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신문 박물관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주요 신문사 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고, 비디오 영상물을 보면서 신문의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이 곳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내 사진이 들어간 신문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문 박물관의 입장권을 구입할 때 그곳에 신문제작쿠폰이라고 해서 입장권에 붙어 있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그 날짜의 신문에 원하는 배경을 선택해서 자신이 직접 입력한 기사화 함께 신문을 제작해 주는 것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신문의 제작과정을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배경에 사진만 넣어 프린트만 해주어 제작과정을 알 수 없었던 점이다.
이번 사회봉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사회봉사를 하는 것은 졸업을 하기 위해 해야하는 과정으로 알고 귀찮게 여겼었다. 수많은 봉사활동 중에 제일 편하고 가까운 곳을 찾으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사회봉사를 처음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서 하는 6시간의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였다. 학교 수업 2교시와 비슷한 아침시간에 진행해서 짜증도 나고 가기도 싫었다. 또 황금같은 토요일에 오리엔테이션을 해서 더욱 반감이 갔다. 하지만 3, 4학년이 되어서 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많은 2학년 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 이번 봉사활동을 신청하게 되었다.1차 예비교육을 하러 들어가면서 사회봉사활동에 관한 자료와 봉사활동일지를 적는 종이를 받았다. 그리고 춘강홀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대기했다. 1차 예비교육이란 말을 듣고 어떤 교육을 하는걸까 궁금했다. 교육이 시작되었고 비디오를 상영해주었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장애인을 돕는 대학생 동아리와 자원봉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주었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나 장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애로사항등을 전달해주었다. 실제로 장애인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삶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이런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주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의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생들의 자원봉사 비중이 제일 많다고 하였는데 계속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의 비중은 적고 우리학교에서 실시하는 사회봉사 교육처럼 참여하는 학생들로 인해 비중이 많은 편이라고 하였다. 학교 졸업을 위해 참여할 경우에는 장애인에 대해 나쁜 시각으로 보거나 비관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장애인은 무조건 부족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여 무조건 도와주게 되면 장애인에게 오히려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없었고, 현재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있는데 그에 따른 대응책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더 활성화되고 최신화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여러 교수님들이나 실생활에서 장애인과 직접 접하고 있는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될 경우에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예들을 많이 보여주어 사회봉사활동을 하는데 두려움이나 어색함 없이 봉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좀 쉬고 난 후에 두 번째 비디오물을 보았다. 이 비디오물은 만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애를 가진 한 까치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상이었다. 성우의 목소리가 웃기고 어린아이의 시각에 맞춰진 영상 같아서 처음에는 이런 걸 왜 틀어주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 보고 나니 1차 교육과정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았고 재미있었던 영상이었다. 한 소녀의 시각으로 까치라는 장애인을 가진 아이를 보면서 느끼고 깨닫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말도 잘 못하고 행동하는 데 불편을 가진 까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모든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된다. 전학을 왔던 소녀가 까치의 짝이 되고 까치를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수업시간에 쓸데없이 혼자 웃거나 수업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바보행동만 하는 까치는 같이 다니는 친형도 까치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 소녀는 그런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고 까치와 대화하고 훈련하여 까치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만인에게 보여주며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고칠 것을 바란다는 영상이다.세 번째로 장애인과 관련된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분을 초빙해서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시종 땀을 많이 흘리시면서 강의하시는 모습이 열성적으로 보였다. 주로 봉사활동을 한 대학생들의 예를 들어주었다. 제일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한 남자대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학생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으로 나온게 아니라 스스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나왔는데 독거노인과 대화하고 외롭지 않게 해드리는 봉사를 맡았다고 한다. 처음에 열성적인 중에 군입대를 하게 되었을 때 할머니의 배웅을 받는 뿌듯함까지 느꼈다고 한다. 장애인과 제일 가까이서 접촉하고 봉사를 안내해주는 일을 하고 계셨던 강사분의 이야기가 많이 와닿았다. 이 밖에도 많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문제점들과 주의해야할 점을 이야기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2차 영역별전문교육은 사회봉사 기관을 정한 후에 행해지는 교육이었다. 나는 가까우면서도 하기 쉬운 전산지원 봉사를 택했다. 복지관에서 행해지는 봉사활동이어서 지역사회복지관 분야에 들어가서 강의를 들었다.복지관에서 업무를 하시는 분이셨는데 봉사활동에 관한 8대 원칙 등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주시고 복지관에서 하게 되는 독거노인 봉사, 유아 교육 봉사, 장애인 관련 봉사 등의 여러 분야에 대해 설명해 주셔서 몰랐던 분야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을 수렴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고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일화도 재미있게 소개해 주셔서 듣는내내 지루함이 없었다. 그리고 복지관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셔서 복지관 업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고, 많은 업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특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이 갔다. 지역사회 행사를 주최하고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는 활동을 통해 거부감 없이 복지관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여 실제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지역사회를 위해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2차에 걸친 예비교육을 마치고 내가 지원한 봉사활동 기관에 가서 어떤 봉사를 하게 되는지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러 갔었다. 내가 지원한 곳은 연세대학교 가양4종합사회복지관이란 곳이었다. 주로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수업의 학점을 따거나 순수한 취지로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복지관이었다.이 복지관에서는 장애우 및 독거노인세대 방문 말벗, 가사도우미, 어린이집 보조교사, 청소년학습지도, 아동통합프로그램, 기타업무지원 등의 자원봉활동을 하고 있다.딱딱한 봉사활동에 대한 이론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얼음깨기 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서로의 벽을 허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동전을 모두 꺼내어 서로에게 질문을 해서 네 라고 대답을 할 경우 그 동전을 모두 빼앗기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서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대화를 해서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하는 자원봉사자들과 거리감 없이 친숙해질 수 있었고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웃사랑 이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서로에게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본격적으로 각자의 업무에 관한 봉사활동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주로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수업의 한 과정으로 참여하여 연세대학교의 학사과정에 맞춰져 있었다. 나는 전산지원업무를 담당해 워드나 엑셀을 다루어 자료입력을 도와주는 봉사에 지원하였다. 주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고 컴퓨터에 대한 간단한 지식만 있으면 되는 설명으로 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전산지원업무는 컴퓨터 지식이 부족하고 사업적 여건이 미흡하거나 지원을 해주고자 하는 어려운 사업자에게 컴퓨터의 하드웨어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고 컴퓨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봉사였다. 그런 고도의 업무를 할 능력이 안돼서 다른 봉사활동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입력 봉사에 지원하게 되었다.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노원시립시각장애인복지관이었는데 나는 그 전에 다른 봉사활동 기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기 때문에 이 복지관의 일정과 맞지 않아서 혼자 따로 가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혼자가서 그런지 업무에 관한 사항을 위주로 설명해 주셨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을 입력하는 봉사인 만큼 책을 입력하면서 주의해야할 점들이 많았다. 띄어쓰기와 줄 바꾸는 작업에 신경을 많이 써야하고 저장법도 다르게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 주의할 점만 듣고 있는 책이었고 다른 한권은 표가 많은 책이라 표를 입력하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책에 따라 입력하는 방법도 약간 틀려서 많이 주의할 점을 들었다. 책을 직접 가서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서 입력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책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주의점에 관해 적힌 자료를 정독할 후에「공부습관, 10살 전에 끝내라!」라는 책을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히로시마현(縣) 오노미쓰시(市) 쓰치도 초등학교 교장 가게야마 히데오씨가 저서한 이 책은 읽기·쓰기·계산 등 기본기를 철저하게 반복시켜 완전히 몸에 익히게 하는 전통 방식’.‘기초’와‘습관’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에 대해 다루었다. 서른 살 때부터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며 현장에서 학습방법을 개발하여 책으로 썼다.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설학원 하나 없는 산골 학생들을 도쿄대,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 명문 대학에 다수 입학시켜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은 분이다. 이렇게 책의 내용에 대해 도입부를 먼저 읽은 다음에 입력하였다.하루에 3∼4시간씩 시간을 정해서 입력하였다. 봉사기관에 가서 직접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없이 입력할 수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입력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전화나 메일 등으로 문의해야했다. 그래서 봉사 담당자와는 대화하고 봉사의 의미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봉사의 의미를 알면서 봉사하는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이 책은 가정에서와 학교에서의 공부습관 방법을 예시를 통해 보다 재미있게 전달해 주었고, 이런 책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입력한다는 사실에 뿌듯했다.두 번째로 작성한 책은 「장한친구 희완이」라는 책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어린이들이 쉽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문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작가 윤기현님에게 부탁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서로의 다른 점을다.
안토니아스 라인이 비평문을 읽으면서 영화도 철학적이고 난해하여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비평문은 더욱 더 난해하고 어려운 단어들이 사용되어 이해하기 힘들었다. 같은 구문을 반복하여 읽어봐도 내용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에 관련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전체적인 시대에 대한 이해력, 철학적 지식이 있어야 이해되는 비평문이라고 생각한다.비평문을 읽다보면 이 영화가 댄 일가와 안토니아의 라인간의 갈등으로부터 여성주의적 시각을 나타낸다고 되어있다. 영화의 장면을 예시를 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를 설명해주면서 영화 속의 여성주의를 강조했는데 마지막에 ‘명시적인 남성적 악과 대결하는 에피소드에서보다는 안토니아의 세계관과 굽은 손가락의 세계관이 변별력을 가지게 되는 지점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안토니아와 굽은 손가락의 세계관에서 여성주의적 요소를 더 뚜렷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보이는 여성주의적 시각보다 안토니아와 굽은 손가락 두 인간을 살펴보면서 영화의 다른 요점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여성주의를 설명하면서 문단의 마무리를 그렇게 맺은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밑에 글을 계속 읽어보면 두 인간을 왜 비교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언급되는 곳이 있다. 언급되는 곳의 아래에 저 내용이 들어갔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나는 여성주의적 시각이 댄 일가와 안토니아의 라인간의 갈등으로부터도 보여지지만 안토니아의 자손들의 행동에서도 페미니즘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토니아의 손녀인 테레사 역시 딸을 낳고, 테레사가 오로지 아이를 갖기 위해 남자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갖고 임신이 되지 않을까봐 관계 후에 물구나무를 선다. 자신의 자손을 낳기 위해 남성은 그냥 도구로 여긴다. 테레사의 선택이나 행동에서 여성들의 인생에 반드시 남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남성 때문에 여성들이 불행해지는 것 을 용납하지 않는 것에서 페미니즘적 요소를 느낄 수 있었다.또 정박아인 디디는 자신의 큰오빠에게 강간당한다. 이 장면을 안토니아의 딸인 다니엘이 발견하고 같이 도망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디디는 안토니아의 집으로 와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디디의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품을 떠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미소짓는다. 그런데 아무도 그녀가 강간 피해자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디디에게나 주변 사람에게는 안경이 깨진 것보다도 덜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디디는 친오빠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상처를 딛고 후에는 미친 입술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여기서 남성의 구속과 굴레를 벗어나 남성 없이도 당당히 살고, 강간으로 인해 순결을 상실했지만 순결을 강조하지 않고 사는 것을 보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비평문에서는 영화 속 장면에 보이는 억압적인 종교의 모습에 대한 비평이 굽은 손가락과 안토니아 두 인간을 비교한다. 굽은 손가락은 삶을 부정적으로 보고 안토니아의 손녀로 미혼으로 임신한 테레사에게 세상은 악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에게 부정적인 일만 가득할 것이라며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는 등 비관적으로 살다가 생을 버린다. 이에 반해 안토니아의 세계는 안토니아의 라인 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그것은 자연적 삶과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무들, 곡식들, 풍경들로 채워진 공간으로서의 자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왔다가 가고 변함없이 또 오는 시간으로서의 자연 안에서 생명은 자살하지 않고 후손을 다시 잇고 자연이 베푼 공간에서 스스로 무리없이 위치 지우며 사는 삶이 안토니아가 추구하는 삶이라고 했다.핍박하고 핍박받는 세계, 악과 고통과 무의미가 버섯처럼 창궐하는 세계에서 굽은 손가락은 자살하고 안토니아의 삶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이렇게 두 인간을 비교함으로써 안토니아의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지속이라는 당위와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주고 있다.그러나 종교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비평에 소홀하다. 그래서 이 영화 안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종교는 여성과 가족에 대한 신화를 유포하는데 있어 지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비판하고 있는 구교는 신부의 성추행, 보름달을 보며 늑대울음 소리를 내는 미친 마돈나와 그녀는 사랑하는 아래층의 신교도가 죽음으로만 화해할 수 있었던 점을 미루어 볼 때 그 자체로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다. 모든 죄의 근원이 여자 라는 설교를 하다 자신의 성추행 광경을 들키자 구원은 여자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고 얘기하는 신부의 모습에서 굳어버린 종교적 가치관을 보게 된다. 이 영화는 여성과 나아가 소수에게 권위적 모습을 띠고 있는 종교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동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규모도 있고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절을 답사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규모 있는 절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았다. 보통 절이라고 생각하면 산기슭이나 산 속에 위치한 그런 절을 떠올리게 된다. 산 냄새도 나고 물도 흐르는 평화로운 공간으로, 스님들을 수행하고 채식으로만 차려진 사찰음식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빌어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가려고 서울에 있는 절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니 서울에도 절이 엄청 많다는 것을 느꼈다. 어두울 때 밖을 바라다보면 빨간 십자가들을 한 교회들이 수백 개가 보인다. 그런데 절은 교회처럼 생활에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산이나 지방 쪽에만 많이 있는 줄 알았는데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정토종, 진각종등 여러개의 불교종파가 있고 교회의 천주교, 기독교처럼 나름대로의 철학이나 수행면에서 틀린 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종파의 절을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나는 조계종파의 절인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에 위치한 화계사를 답사하였다. 총 3명의 인원으로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만나서 가기로 하였다. 수유역에서 만나서 지하철에 나와있는 정보를 참조하여 5번 출구로 나와서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보가 잘못되어 있어서 한동안 헤매다가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3번 출구로 가서 02번 마을버스를 타서 도착하게 되었다. 화계사를 찾아가기 위해 교통정보를 알아봤을 때는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었다. 하지만 표지판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다 보니 당당한 화계사의 일주문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에 사진을 찍고 가을정취를 느낄 수 있는 5분 정도 화계사 길의 낙엽을 밟으면서 가니 화계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계사를 보았을 때 첫 느낌은 국제사찰이라 규모가 꽤 크다고 들었는데 다른 절과 다른 것이 없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된 가람배치를 볼 있다.화계사 홈페이지에서 화계사를 소개한 것을 줄여 설명하면 화계사(華溪寺)는 백운대?만경봉?동장대가 위치한 삼각산에 자리하여 서울 시내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산수가 수려하고 산기슭의 울창한 숲에 감싸여 있어 시내의 번잡함을 잊게하는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화계사는 숭산행원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지를 받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파하는 수행도량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120여개의 선원이 숭산 조실스님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화계사 서울 국제선원과 계룡산 무상사와 영주 현정사에서도 외국 수행자들이 모여 조실스님의 지도하에 하안거와 동안거를 여법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적광전에서는 음력 초삼일 신중기도, 매월 음력 18일 지장재일, 24일 관음기도 및 법회를열고, 각종 49일 및 100일기도로 신심을 닦아가고 있으며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는 철야 삼천배 기도를 드린다. 이 외에도 학교에서 동아리 형식으로 국제선원, 선우회, 신행단체에서 반야심경, 영어참선법회, 금강경, 능엄경, 참선법회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절에서도 이러한 여러 프로그램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번 절 답사를 갔다가 지장전에서 두 분의 불자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지장전 내부에 대해서 질문에 대답해주셨고 불경을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불교를 믿으시는 분들도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느꼈고 종교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가람배치도 넣기가람배치에 대해 설명하면 가람(伽藍)이란 말은 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사찰을 뜻하며, 가람배치(伽藍配置)란 말은 사찰 건축의 형식화된 틀, 혹은 정형화된 공간배치를 의미한다. 불교사원을 건 축할 때는 중요한 건물들, 즉 금당(金堂), 탑(塔), 문(門), 회랑(回廊), 강당(講堂), 경루(經樓), 종루(鐘樓), 승방(僧房) 등의 규모와 상호간의 거리 및 위치 등에 공간적인 규칙성이 있는데 이를 가람배치라고 할 수 있다. 그 배치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선정(禪定)에 드신 모습으로 어느 한 손이든 단전에 갖다댄 모습이다. 상품인(上品印)이라고도 하며, 마음으로써 중생을 편안케 하며 마음으로써 무엇인가 전달하는 모습이다. 검지, 중지, 약지를 엄지와 붙여 수인을 짓기도 하는데 이는 상품인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각각 상품상생(上品上生), 상품중생(上品中生),상품하생(上品下生)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상품상생인은 마음으로 통하는 중생가운데서도 가장 잘 통하는 손모습을 나타내고 있다.화계사 대웅전 벽화. 비람강생상기원전 7세기 경, 히말라야의 남쪽 기슭에 석가족(釋迦族)이 살고 있는 카필라 국이 있었다. 지금의 북부 네팔에 위치한 카필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이었다.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은 왕비가 40세가 넘도록 태자를 낳지 못한 것을 늘 걱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후 태기가 있었다. 해산할 때가 가까워지자 왕비는 그 당시의 풍습에 따라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으려고 콜리야족(Koliya 族)이 살고 있는 데바다하(Devadaha)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룸비니(Lumbimi) 동산에 이르러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우수(無憂樹)나무 아래에서 팔 가까이로 늘어진 무우수 나무의 가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바른편 옆구리로 태자가 탄생하였다.룸비니 동산에는 서기광명(瑞氣光明)이 비추어 덮이고 사천왕(四天王)들은 공경히 태자를 모시려 할 때 태자께서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니 사색(四色) 연화(蓮花)가 솟아올라 태자의 발을 받드는지라 태자는 즉시 오른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쪽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에서나 홀로 존귀하네.온 세상이 모두 고통 속에헤매이니내가 마땅히 모두를편안케 하리라.하셨다. 이때에 허공 중에서는 오색채운(五色彩雲)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로 아홉 용이 각각 머리를 들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고 하늘 사람들은 공중으로 비단옷을 내려 태자를 입혔다.왕은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높여 대웅보전이라고도 하며 항상 사찰의 중심에 위치한다. 대웅전에는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에 두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봉안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무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상의 좌우에는 제각기 협시보살을 봉안하기도 한다. 또한 삼세불과 삼신불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삼세불로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이 협시하게 되며, 다시 그 좌우에 석가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의 상을 모시기도 한다. 갈라보살은 정광여래로서 과거불이며, 미륵보살은 미래에 성불하여 미륵불이 될 미래불이므로 과거, 현제, 미래를 연결하는 삼세불을 봉안하는 것이다. 삼신불은 법신, 보신, 화신으로 구별하며, 일반적으로 법신은 비로자나, 보신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화신은 석가모니불을 지칭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웅전에 봉안하고 있는 삼신불은 선종의 삼신설을 따라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봉안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있다.대웅은 석가모니불에 대한 수많은 존칭 가운데 하나이며, 대웅전은 대영웅 석가모니불을 왕으로 모신 궁전이다. 크나큰 영웅의 궁전인 대웅전, 권력과 금력과 무력으로 이 세상을 휘어잡는 영웅이 아니라 도력과 법력으로서 이 세상을 밝힌 참 영웅이 계신 궁전이란 뜻이다.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법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기 전에 자신 속에 깃든 그릇됨부터 다스렸다. 먼저 그 마심을 항복받아 대웅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이것이 세속적 영웅과 출세간적 영웅의 차이점이다. 권력으로 누르고 금력으로 뿌리고 무력으로 죽여서는 결코 참된 영웅이 될 수 없다. 내 마음 속의 그릇됨을 다스려 스스로의 진실을 체험한 자야말로, 그리고 그 전실의 힘으로 고뇌하는 사람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자야말로 참된 영웅인 것이다.명부전은 죽은 뒤 명부세계의 주인공인 지장보살과 좌우보처인 도명존자, 무독괴왕, 그리고 염라계의 십대왕과 사자들이 모셔져 있다. 현재의 건물은 맞은 배지우뚝하며 입은 굳게 다문 듯 작아서 매우 용맹스런 인상이다. 목은 짧고 굵으며 어깨는 두텁고 가슴은 넓으며 팔다리의 비례는 상체의 튼튼한 몸매가 잘 어울려 어느 곳 하나 허한 구석이 없는 미장부상(美丈夫像)이다. 설법인을 짓고 있는 손매도 탐스럽고 탄력이 있어 젊음이 넘쳐나는 고귀한 표현이며 어깨선도 부드러우면서 풍부하여 귀족적인 기풍이다. 무릎도 전후좌우의 길이와 폭이 알맞은 비례를 갖추면서 넉넉한 두께를 유지하여 안정감을 드러내니 당당한 위풍이 전신에서 구석구석 드러난다. 불의의 표현도 그 당당함에 걸맞도록 상당한 두께를 주었는데 의습선의 흐름이 매우 사실적이다.좌우에 협시하고 있는 도명존자상과 무독괴왕상도 지장보살상과 같은 조각솜씨이고 십대왕상을 비롯해서 판관, 동자, 사자, 수문장상도 모두 같은 양식 기법이다. 당시를 대표할 수 있는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복장 유물까지 온전하게 출현되어 가치를 더해준다. 지장보살 복장 발원문에 의하면 이 지장보살과 시왕상은 1649년(인조 27) 황해도 견불산 강서사(개명된廣濟寺)에서 조성되어 광조사(廣照寺)에 봉안되었던 것이다. 발원문 말미에 화부질(畵負秩)이 나오는데 영철(靈哲),인명(印明),상원(尙元),운혜(云惠) 등 여러 사람의 이름이 보이고, 지전(持展) 성현(性賢)이다. 발원문과 함께 여러 책과 불사리가 출현였다.삼성각(=삼성당)은 고종 22년 서기 1885년에 금산(錦山)스님이 산신각을 고쳐지었다. 건물이 쇄락하여 이를 헐고 주지 진암(眞菴)스님이 1975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 건물에 동기와를 올린 것이 현존한다. 안에는 1973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독성탱화, 그리고 산신탱화를 모셨다.삼성각을 들어서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칠성탱화이다. 이 곳은 불상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3점의 탱화가 눈에 띄었는데 먼저 칠성탱화가 눈에 띈 것은 수업 시간에 어떤 절에 관한 자료를 보면서 무척 신기했었기 때문이다. 어떤 절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별의 위치와 관계된 절의 배치와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