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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친구 감상문
    희곡시나리오론 REPORT [한국영화비평] 친구1.들어가면서...이제 흥행은 단순히 흥행으로 끝나지 않는다.누구도 흥행의 이데올로기의 총체적 광기를 내뿜기에 주저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관객들은 저항보다는 순종이 미덕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교묘하게 관리되어진 세상이다.개봉전서부터 가 광고에 이곳저곳에서 화려하게 뜨기 시작했다. 386세대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유쾌한 영화일 것 같다는 선입관을 주는 문구와 영화계의 두 명의 기린아-유오성과 장동건의 카리스마적인 연기력의 기대감들은 충분히 대박을 예감하게 하는 영화였다. 아니나다를까 영화는 최단 시일 내에 최다 관객동원의 기록을 경신했다.그래서인지 이때의 장안의 화제는 단연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를 놓고 사무실, 음식점, 주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격론이 벌어진다고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시켰는가?어떤 신화보다도 절절한 영화의 전략은 명료하다. 의 카메라는 필터와 특수촬영 및 현상을 통해 구름처럼 디디티 가스를 뿜어내는 소독차를 쫓아가는 장면에서부터 이 어지러운 해안도시를 회한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또한 의 모든 장면들은 의도가 각각 분명하다. 유년 시절의 장면들은 모노 톤에 가까운 화면으로 애상조의 음악이 감싸고, 고등학생이 된 친구들이 거리를 질주할 땐 카메라가 함께 달리면서 강렬한 비트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피가 튀는 칼부림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격하고 거친 편집과 불안한 사운드 효과가 조력한다.영화의 배경인 바다, 산, 번화가, 달동네, 롤러스케이트장,...그리고 학창 시절의 교복은 관객들로 하여금 옛 향수에 젖어 과거 학창 시절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복고주의가 은근히 판을 치고 있는 시대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리고 특히 이미 30줄에 접어든 유오성, 장동건 등등의 10대 학창 시절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흥행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요인은 아마도 관객의 기대 심리 탓이 아닌가 한다. 이를테면 기록이 소독차가 뿜어내는 모기 약의 희뿌연 안개 속으로 좋아라 달리던 아이들이 어떠한 길을 따라서 조직폭력배의 두목이 누가 되나를 밀착 취재한 한국판갱 영화일 뿐인 것이다.2.비평의 눈으로 읽기.2.1 누구나 지적하는 폭력성요즘 엽기문화 추세에 비추어 각종 범죄가 더욱 잔인해지고, 사람들의 심성이 나빠졌다.이제는 웬만한 범죄나 자극에 대해서는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실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실은 사이트가 인터넷에서 문제가 되더니만 이제는 그와 유사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영화는 4명의 친구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상택`과 `중호`는 대학생이 되고 `준석`과 `동수`는 수렁에 빠지듯 좋지 않은 모습으로 사회에 진출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두 명은 양지 생활, 두 명은 음지 생활을 한다. 이 영화는 여기까지는 좋았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관객들의 공감대 형성을 유도하고 호기심을 증폭시켜 놓는다. 그러나 갑자기 시작된 폭력 장면들로 곧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영화 곳곳에서, 사람을 효과적으로 살해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장면, 조직 폭력배를 신의와 의리로 뭉친 집단으로 우상화 시킴과 동시에 칼부림을 하는 장면, 심지어는 영화 속 준석이가 인턴(?)사원 교육이라며 신입조직원들에게 흉기(칼)의 길이와 폭은 어떠해야 하며, 어디를 찌르고 돌려야 상대를 주저앉힌다는 것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나와 과연 관객들이 이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또한 이러한 폭력장면들이 반드시 영화의 주제를 위한 필연성이 있는 장면들이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칼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그렇게 오래도록 리얼하게 설명하여 얻고자하는 카타르시스는 무어란 말인가. 게다가 이러한 장면들은 마치 제 살 깍아먹기식의 폭력영화로의 전락을 부채질하는 느낌마저 준다. 자극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폭력의 잔혹성에 주목하려한 것이라고 방어를 한다면 굳이 영화 스스로 표방한대로 `우정 드라마`에 과연 필요했던 것인가? 그러나 이와 비슷한 액션 영화로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인가? 역시나 에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우정`은 없었다.제작사측에서는 이 영화를 굳이 우정드라마로 홍보한 모양이지만, 이 영화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오히려 `액션활극`내지는 `느와르`정도의 수식어를 붙어야만 어울린다. 중반부터 종반까지는 마치 친구의 우정을 가장한 건달들의 세계를 보여주고는 있다. 어린 시절에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가 수영경쟁을 하면 누가 더 빠른가 하는 순수한 입씨름, 학창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인 시절엔 맘이 맞아서 같이 지낸 추억은 그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옛 추억이겠지만 `동수`의 열등감 때문이었을까..?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준석`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됨으로써 생기는 벽은 그들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는 이렇게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현저히 부족했다.관객들에겐 그저 친구에게 등을 지고 이쪽 파와 저쪽 파간의 세력 다툼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종반부에 보여준 대사 속에서 우정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그들의 진정한 우정..남자들의 우정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건달들의 세계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준석의 명령 하에 동수를 칼로 찔러 죽임으로써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의심하게 만든다. 혹자는 영화에서 동수의 죽음은 상징적인 의미로 각박한 현대의 우정적 가치를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우정의 허망함이나 우리 사회의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그러나 분명 이 영화의 모든 홍보는 친구들간의 우정을 언급하고 있다. 처음 이 영화가 표방했던 주제가 무색하기 그지없을 뿐이다.`쪽 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라는 말 한마디로, 남은 자의 우정을 호소하는 감정의 조각들로 메우기에는 영화의 주제에 대한 결말이 아쉽다.그리고 모든 자료를 보면 4명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20대 초반, 20대 후반을 다루고 있다문제인 것이다. 또한 마치 우리 어른들의 향수는 주로 불량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에서만 느끼는 것인 양, 어린 시절 그들의 행위는 도저히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로만 점철되어 있기도 하다.2.3 여과 없이 터져 나온 거친 대사들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줄거리는 그야말로 건달세계에나 있음직한 3류 소설 어디에나 등장하는 단순한 스토리구조를 갖고 있다. 서로간의 오해가 살인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단순하고 단세포적인 건달들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으로 특이한 것이 없으며 이 영화를 더욱 저질이고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도무지 일반인으로는 입에 담지도 못할 험한 말들이다. 준석이가 그의 부하들에게 "빙신같은 새끼들이""씨발놈아, 뭘 째리보노? 눈까리 확 파뿌까.."이런 말들은 흔하게 나오고, "빠구리""씹새끼" 등 비속어나 은어의 사용도 빈번하다. 거의 이런 말들로 대사의 절반이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수위가 높은 욕지거리들과 은어의 사용은 관객들로 하여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대사들이 과연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이해되어야 하는 것인가.이 영화와 비교하기에는 좀 어색한 장르이긴 하지만, 한국영화 중 `접속`이라는 영화는 세련된 영상과 절제되고 감각적인 언어로 언론의 찬사를 많이 받았었다. 나는 한국영화도 저렇게 감각적이고 세련된 언어를 예술로서 표현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 봤었다. 그런데 약5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장르의 한국 영화에서 느끼는 언어 폭력은, 그동안 한국 영화가 가꾸어왔던 아름다운 언어의 틀을 깨부수기에 충분했다.여러 가수들이 욕설과 비속어가 삽입된 가사를 발표했을 때 사회적으로 큰 난리가 난 것처럼 문제시되고, 결국엔 절판되고만 기억이 있다. CD로 판매되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음침한 극장에서 `18세 이상 관람가`를 내걸고 동화상으로 전달되면 사회적 문제가 안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3.여성의 눈으로 읽기.이 영화는 홍보단계에서부터 남"딸내미"나 "먹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지 여자들을 성적 욕구를 분출시키는 배설욕구의 존재로만 생각할 수도 있게끔 사람들을 유도한다. 극중 준석이가 환각상태에서 진숙이에게 "저 씨발년이 지금 누구를 째리고 가노, 확 저년의 보지를 잡아 찢어삘까" "야이 씨발년아, 그래 느그 남편은 깡팬데 잘 생긴 대학생 친구들이 놀러오니까 보지가 벌렁벌렁 하나? 엉? 단체로 데씹 한번 놔주까 ?엉? 이 개같은 년아."등 각종 여자의 성기에 관한 욕설이 난무한 대사를 내놓는다. 이제껏 대중성을 띠고 나온 한국영화 중에 여자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내놓은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으며 굳이 "보지를 찢어삘까"같은 대사가 영화 구성상 꼭 필요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여자의 존재를 하찮게 보는 시각이 영화 전반에 은근하게 깔려있는 것으로밖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그렇다. 이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남자들의 우정(?)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우정(?)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들에 대해 여성들이(남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추측된다.)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혹자가 영화의 배경은 이미 흘러도 한참 흐른 옛날이라고 그 시대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미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현 시점에 복고적인 여성에 대한 비하의식에 향수를 느끼는 관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4.사회적인 눈으로읽기.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다만 잔인하게 살인하는 장면의 완전 공개와 살인을 하는 자세한 방법들의 소개에 있는 듯 하다.문제는 그런 모습이 멋있어 보이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동수가 수십 번씩 칼에 찔리는 장면이 롱 컷으로 계속되는 것도 문제이다. 유오성이 인턴(?)깡패들에게 살인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을 때, 동수가 칼에 찔려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청소년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을까? 그들이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꼭 얻어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다..
    독후감/창작| 2005.05.11| 8페이지| 1,000원| 조회(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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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문] 오딧세이아를 보고
    오딧세이 영화를 보고예전 군대가기 전 독어 시간에 한번 보았던 작품인 오딧세이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그때는 그냥 한 영웅의 모험을 다룬 일대기구나 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곤 여러 가지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이영화는 그리스 영웅서사시만의 특징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아니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작품이 그렇다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오딧세이아 책을 읽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책에서 더 많은 모험담과 영화상에서 표현되지 못한 느낌들을 받고 싶어서 일까? 아무튼.......구어체라 약간 읽는데 힘들었지만, 그 내용과 표현하는 방법은 절로 감탄하게 했다.호메로스는 맹인이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그가 내면의 빛으로 충만하여 다른 사람이 볼수 없는것들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그렇치 않고서야 전설로 내려오는 신화의 인물들과 현실에서의 일을 그렇게도 조화롭게 전목 시키고, 그안에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보여줄수 있을까......영웅 서사시이면서, 어드벤처인 오딧세이아를 읽고 난 후에 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 등의 작품들이 오딧세이아의 모험담적 성격을 많이 답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시간에 보았던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의 돼지가 된 부모님등도 키르케에서 부하들이 돼지가 되는 장면과 흡사함을 느낀다. 오딧세우스 모험의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는 오늘날의 많은 소설의 근원이 되는것도 호메로스의 멋진 상상력의 가공할 산물이자 힘인 것 같다.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해서 얘기 하면, 이 영화에서는 오딧세우스 운명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삶과 죽음, 슬픔과 두려움을 겪으며 자신의 영웅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의 상(용감하고 의리 있고) 을 보여주었다면, 오딧세이아의 오딧세우스는 그러한 영웅의 상에 덧붙여 지혜라는 뛰어난 머리를 보여줌으로써 내가 알고 있던 영웅상을 다르게 바꿔 놓았다영웅 시대의 단순한 사회가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처럼 저돌적이고 행동이 앞서는 영웅을 요구했다면, 이제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의 등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속임수를 포함해 머리를 많이 써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승리의 조건은 지략이요, 지략은 지식을 갈구하는 자에게서 나온다. 오디세우스의 20년에 걸친 참전과 모험은 이러한 진실을 알려주는 흔치 않는 그리스의 영웅담이다. 그의 계책은 정작 고향으로 돌아가 적들을 물리치고 아내와 나라를 되찾는 과정에서 더욱 극적으로 발휘된다.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 고향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10년 항해는 인간이 자아를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오늘날의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이렇듯 오딧세우스는 다른 시대의 어떤 영웅들보다 발전적인 인간의 모습을 지닌다. 그는 그렇게도 바라던 귀향 후에도 마지막까지 신중함을 잃지 않고 모욕을 참으며 때를 기다린다. 그의 행적은 거친 힘이나 지혜와 상상력, 책임감과 유머, 신중함과 정당함, 확고함과 인내를 보여준다. 오딧세우스는 평화를 사랑하며, 사려 깊고 자신을 억제할 줄 안다. 여기에다 남성적인 아름다움과 힘과 용기까지 갖추고 있다. 이것은 (일리아스)의 저돌적인 영웅들과는 다른 인간적인 남성상이며, 후대에까지 전해지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까지 있으니 어느 여자가 이런 남성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독후감/창작| 2005.05.01| 2페이지| 1,000원| 조회(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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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공연예술 활성화 위한 아트마켓의 기능과 역할
    공연예술 활성화 위한 아트마켓의 기능과 역할국내에서 아트마켓은 2000년 전후로 공연예술축제를 통해 크고 작은 시도가 있었지만(대표적으로 2000년 8월에 개최되었던 익산아트마켓(Iksan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Market)이 있다. 익산아트마켓은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공연예술마켓을 표방하였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익산시와 (사)아시아ㆍ태평양 프로듀서 네트워크 한국본부가 공동주최한 익산세계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의 행사 중 하나로 기획되었었다.)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트마켓에 대한 관심은 문화관광부, 지자체, 기획자 집단, 축제조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각기 성격이 다른 주체들이 아트마켓에 주목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아트마켓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유?무형의 상품을 유통하는 공간이자 장치로서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창의적으로 기획하는 공급자와 문화예술 상품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접하면서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내고 적용할 수 있는 소비자를 동시적으로 키워낼 수 있고, 그 결과로 문화예술 관련 시장을 자연스럽게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물론 아트마켓의 기능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갖추어져야 할 조건들이 많다. 마켓의 기능이 국제적인 유통을 전제하고 있다면 그만큼의 실력과 수준을 갖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풀을 일정 정도는 확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국내적인 유통을 전제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마켓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획자 집단이나 소비자의 그룹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 위에서 마켓의 정체성과 기능을 살릴 수 있는 마켓자체의 기획력과 운영전문성도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형성 역사가 다르고 기능과 위상이 각기 다른 에딘버러 프린지의 아트마켓, 호주 아델라이드 아트마켓, 도쿄무대예술견본시 등 해외의 유수한 아트마켓 사례를 접하면서도 국내에 벤치마킹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국내 문화예술 시장 실정에 적합한 아트마켓 모델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예술과 관련 기획적 역량, 효율적인 예술경영 기법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실질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문화예술 관련 많은 영역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의 부족함이 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또한 문화관련 전문인력 풀도 지역으로 갈수록 매우 허약한 것이 현실이다. 아트마켓의 관점에서 보자면 공급자와 소비자가 동시적으로 육성되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지난 8월 말 이틀간 개최되었던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마켓 2004(APM 2004)는 국내 상황에서 아트마켓의 발전가능성을 진단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복권기금의 사용범위가 7월말에 확정됨에 따라 무리한 일정으로 추진된 아쉬움이 있지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영역에서의 기획집단 역량이나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하는 전국의 수요 집단의 실정 및 현실적인 요구 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새롭고 독창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보다 대중적인 프로그램이 선호되기도 하고, 이미 문화예술 관련 교육을 추진해오던 단체의 프로그램이 마켓의 소비자였던 문예회관의 관심을 보다 쉽게 끌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곧 현재 문화예술교육 시장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실제적인 모습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마켓이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주체가 다양하게 형성되어감에 따라, 또 소비자의 인식이나 구매역량이 키워짐에 따라 점차 해소될 수 있는 현상적인 부분이다.오히려 이번 아트마켓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향후 국내에서 아트마켓이 지속적으로 개최됨으로써 문화예술교육 영역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문화기획자 집단이 창의력을 키우고 예술경영의 능력을 전문화함으로써 실질적인 아트마켓의 공급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또한 문예회관 뿐만 아니라 질 높고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 각 문화공간이나 기관들이 주체적인 소비자로 전환될 수 있게 하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켓이 일회적으로 그치고 만다면 아쉬움과 과제만 남긴 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겠지만 소비자의 구매력을 보장하는 기금이 지원되어 지속적으로 운영된다면 국내 문화예술시장의 양대 주체를 적극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체능| 2004.11.03| 2페이지| 1,000원| 조회(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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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플 데이즈를 보고원더풀데이즈를 만들기 위한 7년의 노력을 했다라고 대중매체에서 한때 아주 소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일단 보고난 후 나 느낌은 세가지였다 "정말 시각적인 측면에서 잘 만들었다" "마무리가 그럭저럭 괜찮다" "스토리가 없다" 이다. 잘 만들어졌지만, 기술과 묘사는 뛰어나지만 스토리는 떨어진다.먼저 '그래픽'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면 이러한다. 구름 과 빛 하나하나 에 감동 스럽고,배경과 스케일은 헐리우드를 빰칠 정도이다. 신밧드 의 경우에서 3년동안 3000억원을 투자하고 원더플 데이즈 의 경우는 7년동안 1000억원 좀 넘게 투자를 했다고 하는데,인원과 시스템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렇게 만든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미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애니 산업은 정말 작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그림 하나하나에 만드신 분들의 땀과 정신.. 영혼이 담겨 있는듯하였다.그리고 한국적인 미도 잘렸다. 하회탈 가면과 한국적인 배경, 분이기 도 한목 했다고 본다.놀랍게도 의 기술력은 미국이나 일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에서 보였던 3D의 금속성도 이 영화에선 눈에 띄지 않으며(특히 두 영화의 트럭을 비교해보라!), 미니어쳐와 실사들도 크게 눈에 거슬리지 않으며(페퍼포크차량의 미니어쳐는 조금 눈에 띄긴했지만^^ 실제 빗방울의 클로즈업은 훌륭했다.) 빛의 방향에 따른 그림자의 섬세함이나, 바다 표면의 물결도 보다 한층 진일보했다.(바다표면은 급이다!)특히 수하와 제이가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의 풀샷은 (오우삼 영화같긴 했지만^^) 이 영화의 압권이며 탄피 뒤로 보이는 제이의 얼굴표정은 이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탄피도 훌륭하다!)또한 우디의 산소마스크에 보이는 우디의 숨결, 쇠사슬과 오토바이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오토바이와 소형비행기 메카닉의 정교함 등등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표현력과 기술력은 하나하나 꼽을 수 없고,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움을 안겨준다.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 영화는 표현의 사실감과 심도를 높이기 위해 실사 영화에서나 사용하는 미니어쳐와 매트 페인팅을 활용하여 전체 배경처리, CG를 이용한 3차원 소품(무기, 오토바이, 비행기 등 3D digital equipment)과 특수효과를 2D캐릭터와 합성한다는 복합제작방식을 택했다.2D 배경이 가진 단조로움과 3D가 가진 메탈릭함에서 벗어나 배경에서의 심도와 사실감을 살리기 위한 미니어쳐 세트와 매트 페인팅 기법, 이는 를 입체감 있는 비주얼로 만들기 위한 세트의 개념으로 활용된다. 여기에 2D 캐릭터와 3D 소품(무기, 오토바이, 비행기등)이 CG 특수효과와 함께 합성되는 것이다. 이런 3단계의 LAYER는 기술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다 입체적이고 사실감 있게 표현해 줄 뿐 아니라 각 단계를 보완하여 심도를 높여주어,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획일화 된 구분을 없애는 새로운 시도로, 이런 다양한 기법이 전편에 사용되는 것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다.그런 면에서 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史에 큰 획을 남길 것이고, 그 노하우는 앞으로 우리 애니메이션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끼칠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외국애니메이션으로 높아진 국내 관객의 눈높이에 우리 애니메이션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고, 또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일본의 아키라가 일본자국에서 흥행에 실패했고, 그 당시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욕을 해댔지만 지금 현재 아키라가 한국에서 개봉되기도 이전에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불법으로 들어온 그 애니를 이미 접했고 아키라는 외국에서도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만화와 관련된 사람들은 사람이라면 아키라를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비록, 그림은 거칠고 거부감이 들고 내용도 굉장히 암울하지만 그 새로운 남이 사용하지 않은 그 시도를 높이 사서 현재는 많은 매니아 층을 거느린 것처럼 분명히 원더풀데이즈도 그 세 가지 방식2D+3D+MINIATURE?(미니어쳐)을사용한 것이 언젠가는 인정받고 가치를 보게 될 것이다. 3D가 2D보다 딱딱하고 어색하다는 인식을 차츰 개선하여 나가서 슈렉이나 나모를 찾아서 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애니를 만든 것처럼 사람들은 찾게 되어 있다. 최초에 시도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당시에 그 시도를 한 자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 당시에 할 수 있었을까를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다. 초기에는 주목받지 못해도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발전되고 나중과 최초의 모습은 너무나도 현저히 차이가 나고 그 가치가 인정되면 사람들은 최초의 시도자를 찾기 마련이니까.... 원더풀데이즈는 최초의 그 시도로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 하다.하지만 애니는 그래픽으로 가치를 매기는게 아니다. 애니의 생명은 그 애니메이션이 어느 메시지를 암시하며 그 메시지 즉 스토리라는 큰 줄기를 타고 나아가 감동을 주는 것 이라 생각한다. 원더풀 데이즈, 애니메이션의 발전이라기보단 한국 기술계의 발전이라고 밖에..그래픽을 2d+3d+미니어쳐 보다도, 감동이 있는 2d그래픽이 느낌도 못주는 3d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원래는 아마도 환경오염에 대한 자연의 소중함 등을 소재로 한 것 같은데 소재는 괜찮았으나 그에 따른 스토리가 빈약하다. 같은 소재라도 원령공주(모노노케히메)에서와 같이 애니메이션 전 후반에 걸쳐 이따금씩 스토리의 주제를 부각시켜 주는것이이겠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나, 단 화려한 그래픽과 액션등에 치중하는 만큼의 감동을 줄수있다면 좋겠다. 뭐 원더플데이즈가 하도 그래픽이 좋다보니 스토리가 비교적 약해 보이는 것일수 있지만.. 그리고 더 아쉬운 것은 그것이 와 같은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왜일까? 기술은 점점 발전하는데 왜 스토리는 이후로 그것을 넘지 못하는 걸까? 이분법적 사고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늦추더라도 내러티브를 강화할 순 없는 걸까?
    예체능| 2004.06.01| 3페이지| 1,000원| 조회(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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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구스토 보알의 토론연극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의 메카- 토론연극 -들어가는 말196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던 시대에 이르러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찾는데 힘써왔다. 이에 따라 연극계에서도 실험적 성격의 형태를 띤 연극이 자주 나타났는데, 그 중 아우구스또 보알의 ‘억압 받는 자들’을 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연극은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연극이다. 그 속에서 모든 인간은 배우 이면서 관객 이다.그는 40년의 연극 궤적은 객석과 무대, 관객과 배우의 경계를 없애고 관객을 연극의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을 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를 보알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멀게는 1920년대 미래주의자, 다다주의자들에서부터 가깝게는 해프닝, 존 케이지, 백남준, 리빙시어터, 퍼포먼스 그룹 등 포스트모던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공연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이고 효과적인 시도들이 많이 있었다.따라서 공연예술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특징으로 관객의 참여에 의해 채워질 여지가 많은 개방성 및 즉흥성, 아울러 어디서든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확장 등을 들 수 있는 것이며 보알도 이런 흐름의 일부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보알은 자신의 연극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이라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억압이란 사회, 정치적인 외면적 억압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내면적 억압까지 포함한다.보알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시학에 포함될 수 있는 다양한 연극 형식을 실험했다. 신문연극, 보이지 않는 연극, 토론연극, 욕망의 무지개 등이 그것이며 이들 형식들은 현실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되고 발전, 확장되었다. 다양한 연극 형식들로 대변될 수 있는 보알의 지난 40년간의 작업은 사회정치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또 거기에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유기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공통원리는 관객이 연극의 생산자로, 주체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난 그의 이론에서의 중심이 되는 토론 연극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고 한다.본 론토론연어떻게 춤을 추는지 보여주는 무용이 있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첫 부분에서는 배우들이 노래를 하지만 다음에는 관객과 함께 모든 이들이 노래하는 뮤지컬이 있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또 이처럼 연극에서도 먼저 배우들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그려보고 그 다음엔 관객들이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것이 바로 토론연극인 것이다.토론연극은 구체적인 갈등이 담긴 짧은 장면을 보여 준 다음, 극에서 주인공이 해결하지못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풀어보는 연극이다.'보이지 않는 연극'에서의 관객은 분명 수동적 구경꾼 역할에서 해방되어 있으나 그들 자신은 자신이 참여하고 주도하고 있는 것이 원래 허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만큼 오히려 에너지가 순수하게 폭발되기도 하겠지만 연극적 경험이라는 차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이와는 달리 '토론연극'은 관객이 연극이라는 분명한 상황인식 하에 현실을 연습하는, 예술과 현실이 이상적으로 혼융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알은 토론연극을 미래에 대한 리허설로서 관객이 주도권을 잡는 연극형태의 최고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토론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동등한 비중으로 극중 현실에 참여하는 연극형태이다. 우선 미리 준비된 10분에서 15분 정도의 공연을 관객 앞에서 보여준다. 이 공연에는 항상 불만족스러운 해결책이 들어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나은 해결책, 대안이 있는 관객은 연극 속에 끼어들어 그 대안을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 있다. 관객은 자신이 들어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스톱!'을 외치기만 하면 된다. 관객이 원하는 지점에서부터 장면을 다시 시작하며 관객의 개입에 의해 극의 흐름과 결말은 원래의 그것과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게 된다.보알은 그의 저서에서 토론연극의 규칙들을 얘기 했는데 그것은 이러하다.보알의 규칙@ 텍스트는 반드시 각 인물의 성격을 분명하게 묘사해야 하며, 그래서 관객-배우들 이 각각의 이념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인공이 제시한 처음 해결책은 적어도 한가지, 그 오류를 토론연극을 진행하는 동안 함께 분석해 나가는 것이다.* 토론연극이 선전선동극도 아니며 고리타분한 교훈극도 아니기 때문.* 공연 -혹은 모델- 은 관객으로 하여금 해결책을 강구하고 억압에 맞서는 새로운 방법을 계발해 낼 수 있도록 실수나 실패를 보여주어야 함@ 공연의 방식은 사실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등등의 어떤 스타일도 무방하다.*단 초현실주의나 혹은 그와 비슷한 비이성적인(irrational) 형식을 제외.@ 인물의 이념, 직업, 사회적 기능 등을 성공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우의 훈련 된 신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인물의 행동과 변화가 논리적이어야 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대사 없이도 그 특성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시각화되어야 한다.@ 의상은 관객-배우들이 입고 벗기 편하도록 야단스런 장식을 피한 간편한 것이 좋다.이와 같은 방법들로 우리는 보다 더 효과적인 토론연극의 장을 열수 있는 것이다.그럼 이제 토론연극이 진행되는 순서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토론연극은 배우와 관객-배우들이 하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놀이라 할 수 있다. 보알은 공연 놀이(The Performance Game) 라고 표현 했는데 이러하다.시작할 때는 다른 전통적인 연극과 똑같이 시작한다. 먼저 관객-배우에게 주인공이 제시한 해결책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묻는다. 그런 다음에는 관객들에게 이 극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해 보이겠다고 말한다. 연기자들이 극을 다시 진행시키면 관객들은 가능하면서 타당한 새로운 해결책들을 제시함으로써 극을 변화시킨다. 즉 다른 말로 하면, 배우들은 적어도 관객-배우들이 '있어야 할 세계'를 고수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우선 관객들에게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한 첫 단계로 주인공이 실수를 할 때는 언제라도 그/그녀를 차단시켜야 한다고 일러둔다. 관객들은 그저 무대 앞으로 가서 'stop!'이라고만 말하면 된다. 그러면 그 즉시 배우들은 모든 움직임을 멈출 것이고 곧바로 관객은 자신이작을 지목하여 배우들에게 알려준다. 배우들은 거기서부터 다시 극을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관객-배우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교체된 배우는 극에서 완전히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에 남아 관객-배우의 코치 내지는 지원자로서 그를 격려하고, 만약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그것을 정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관객-배우가 주인공을 대신해서 연기하는 순간부터 나머지 배우들은 그를 괴롭히는 억압자로 화하게 되고, 또 이미 그런 역할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억압의 강도를 높임으로써 관객-배우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관객-배우가 포기할 경우에는 다시 배우가 역을 맡아서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빠른 속도로 극을 진행한다. 그러는 가운데 또 다른 관객-배우가 무대로 나와 "stop!"하면서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를 말하면, 거기서부터 극이 다시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해결책이 시도된다.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관객-배우가 배우들의 억압을 깨뜨릴 수도 있을 것이며, 그 때는 모든 배우들이 차례로 항복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모든 역할이 관객-배우에게 개방되어, 주인공 관객-배우 대 억압자 관객-배우들 간의 싸움으로 변하게 되며 따라서 관객-배우가 얼마나 세세하게 꼬치꼬치 따지느냐에 따라 억압의 정도가 달라지게 된다. 배우들은 모두 무대 중앙에서 물러나 자기 역할을 하는 관객-배우의 코치이자 지지자로서 기능 한다. '토론'이 끝나면 '미래의 상황모델'을 만들도록 하는데, 이번에는 관객-배우들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진다.여기 까지가 보알이 말한 연극놀이의 진행 방향이다. 이처럼 그의 연극에선, 인물 (주인공)이 항복하고 나면, 관객-배우가 그를 교정하기 위해 무대로 나가 그에게 가능한 해결책을 보여주고 상황을 바로잡는다. 가공의 현실 안에서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관객-배우는 실제에서의 자기 행동을 준비하는 것이다. 관객-배우는 토론연극에서 현실과 가공적으로 직면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후에 공포, 동료들과의 논쟁 등 - 그리고 만일 토론 연극에서 이 모든 문제들을 극복해낸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보다 더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그럼 이제 보알의 유럽에서의 실험의 한 가지를 예를 들어 보도록 하자2) 직장에서는 리더, 집안에서는 노예파리에서는, 한 은행에서 파업을 하는 동안, 직장에서는 조합장이지만 집안에서는 노예로 사는 한 여성에 대해 토론연극을 했다.- 제 1장과중한 업무, 몰려드는 고객들, 은행 문을 닫자마자 조합장은 그녀의 동료들을 조직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약속을 만들고 조정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충고에 따른다.- 제 2장조합장의 남편이 들어온다. 그는 아내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는다. 이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동료들을 남겨둔 채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제 3장그녀의 집이다. 남편은 퇴근한 후 소일거리에 몰두하고 있어서 귀찮은 집안 일을 거들 틈이 없지만 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수발을 들어준다. 끊임없이 주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놀아준다. 이 장면은 그녀가 완전히 가족의 노예임이 분명해 질 때쯤 끝난다.- 토론많은 여자들이 억압을 깨기 위해 주인공을 대신해서 연기했다. 동시에 은행동료들은 억압자로 변해서 그녀가 남편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남편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직장에서는 계속 일하기를 원했지만, 상관이 나타나서 그녀를 해고해 버렸다. 이 상황은 한 여자 관객-배우가 가장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때까지 계속 반복되었다. -남편을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 것! 그렇게되자 남편 역의 배우는 항복을 했고 다른 관객-배우들이 나와서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을 시도했다. 집안에서의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한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조합장 역의 관객-배우가 너무나 일에 몰두한 나머지 딸과 남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자, 전에는 욕조에서 '엄마 엄마...'하며 울던 아이가 이제는 '아빠, 아빠...'하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아이들을 다!
    예체능| 2004.06.01| 5페이지| 1,000원| 조회(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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