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 뉴스기사를 보자. 정치면에는 수많은 여·야 정치가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비난하며 정권을 잡기위해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사회면에는 수많은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하고 권력을 잡기위해 계속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높은 부와 지위를 얻기를 원하며, 인생의 승리자로 남겨지길 원한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리더’가 되길 원하고, 리더의 자질인 ‘리더십’에 대한 기사와 책은 인터넷과 서점의 단골메뉴가 된지 오래이다. 이러한 ‘리더십’에 대한 저술서 중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이론서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비난과 억측, 왜곡들은 ?군주론?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진지하게 읽어본 독자라면 이러한 왜곡된 비난에서 비롯된 거부감 대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을 담백하게 서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핵심은 도덕과 정치라는 군주의 두 가지 중요한 요건 사이에서 정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플라톤과 공자를 위시한 동·서양 사상에 대한 반론이자 혁명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내세우며 철인이 통치하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며, 지혜를 바탕으로 한 엘리트가 국가정치의 정점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자는 인의예지를 바탕으로 한 도덕성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고 민중들을 대하는 왕이 진정한 지도자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존의 동·서양의 철학은 군주가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정치 즉, 도덕이 정치에 우선하는 것을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과감하게 이러한 기존의 철학에 대해 반기를 든다.“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되고,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하며...”)"현명한 군주라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오히려 자기에게 불리할 경우나, 약속을 했을 당시의 동기가 이미 없어졌을 경우에는 신의를 지킬 수도 없고, 또한 지켜서도 안 된다.“)그에게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책무는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의 국가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가 국가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관대함을 보이거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국가를 잃는 것은 군주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국가와 민중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나라와 맺은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 악인이 되어 무력을 사용하는 것 등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그렇게 해서 자신의 국가를 지킨다면 오히려 진정한 군주이자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조선시대의 가장 유명한 왕은 세종대왕일 것이다. 그의 시대에는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학문적 번영을 동시에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태종 이방원의 잔인한 숙청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만약에 이방원의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세종의 조선이 그렇게 정치적 안정 속에서 유지될 수 있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인 세종보다는 비도덕을 택한 이방원을 진정한 군주라고 보는 것이다.도덕성은 군주, 즉 리더에게 필요한 요건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마키아벨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교황의 종교적 영향력이 강했던 중세시대를 살아왔고, ?군주론?에서도 군주의 도덕적 요건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평가절하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도덕성과 정치적 결단의 선택에 있어서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사소한 도덕성을 버림으로서 더 큰 도덕적인 이상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적과의 신의를 버림으로서 자신의 민중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지 않게 한다면 더 큰 도덕성을 얻을 수 있다는 걸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군주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급기야 시민들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이와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자격에 있어서 군주의 검소한 삶과 절제된 생활방식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것은 군주 관대함과 잔인함, 악담과 사랑 사이에서 과감히 잔인함과 악담을 택하여야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범을 보이는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군주는 스스로의 삶을 절제하는 한편 민중과 신하들의 좋지 않은 평판에 대해 관대함으로서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를 보전하고 민중들을 지키는 사람인 것이다. 현재 가장 인정받는 리더인 ‘스티브 잡스’를 보자. 그는 독단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좋지 않은 평판을 듣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뤄놓은 애플의 성공담은 그의 그러한 자질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어느 누가 그의 업적과 성과에 대해 욕을 할 수 있는가, 가장 훌륭한 리더로서 그의 삶에 대해 불만과 비판을 하는 자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대해 다시 한 번쯤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재개발사업에 따른 주택여과효과에 대한 실증연구서울시 뉴타운사업을 대상으로2011 년 6 월문 영 준토지이용계획론제 1 장 서 론서울시가 2002년부터 추진해 온 뉴타운사업은 노후하고 불량한 지역의 건축물들을 개량시킴으로서 도시 내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여 지역 간의 생활격차를 줄이기 위한 사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낙후되고 불량한 지역의 중·저소득층의 주민들을 위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 추진하여 온 뉴타운사업은 오히려 뉴타운 대상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2009년 용산에서 발생한 ‘용산참사’는 뉴타운사업의 추진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용산4구역에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용산구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로 제압하려는 과정에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뉴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용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개발사업은 대단위철거재개발방식으로서 개발대상지 전체를 단기간에 철거하여 새로운 양질의 주택을 건설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공사기간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있거나, 영구적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하지만 저소득계층의 사람들은 이러한 지역에서 주로 세를 들어 삶을 꾸려가고 있으므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이러한 세입자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시키는 상황에서 집을 잃게 되는 철거민들은 개발반대를 위해 농성을 하였고, 이러한 농성이 폭력적으로 변질되자 경찰을 공권력을 투입하여 진압하게 된 것이다. 결국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용산참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개발사업으로서의 뉴타운사업에 대한 많은 비판을 가져오게 되었다. 저소득측이 대다수 몰려있는 도시의 낙후된 지역을 개선하고자 시행된 뉴타운사업이 오히려 저소득층과 주민들의 반발이라는 모순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도심지의 저소득층 주거지역에 중·고소득층이 유입하거나 정착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뉴타운사업과 같은 도심지의 낙후된 저소득층 주거지역을 재개발하는 경우에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은 주택공급에 있어서 저급주택의 질적인 향상과 공급이 아닌 중대형주택을 공급하는 형태로 진행됨으로서 저소득계층을 반강제적으로 퇴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뉴타운사업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현재 뉴타운지역의 전체적인 재정착률은 20%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소형주택과 임대주택의 의무비율도 이러한 현상을 촉진시키고 있다. 소형주택의 경우, 소형주택의 의무비율을 20%이상으로 정하고 있어 개발업자의 입장에서는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중대형주택을 위주로 건설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소득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의 비율은 ‘증가용적률의 50%이상 75%이하’로 의무화되어 있지만,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의 발의에 의해 ‘30%이상 75%이하’로 낮추는 개정안이 발의되어 임대주택의 건립비율을 낮추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뉴타운사업이 기존의 저소득계층을 퇴출시키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것은 ‘주택여과효과’라는 측면에서 평가했을 때, 실제로 저소득계층의 퇴출이 그들의 주거현황을 악화시켰는지에 따라 뉴타운사업을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뉴타운사업으로 저소득층의 저급주거지가 사라지고 고급주거지가 생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고급주거지의 수요자인 중·고소득층의 유입으로 인해 그들의 기존 주거에 공가(vacancies)가 생겨 하위계층들의 주거가 이동되는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택여과과정(filtering process)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택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뉴타운사업의 재정착률이 낮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뉴타운 대상지역의 일부 재력이 있는 계층은 지역의 고급화에 따라 주거를 상향시키게 됨으로서 재로 인한 땅 값의 상승과 이로 인한 개발이익의 환수문제, 원주민 재정착률의 저조, 중대형주택 위주의 건설 등이 여러 가지 현상들이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뉴타운사업으로 인한 현상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주택여과과정’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재개발사업, 특히 서울시의 뉴타운사업에 있어서 주택여과과정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새로운 방식의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제 2 장 본 론제 1 절 주택여과과정의 개념주택여과과정(filtering process)은 주택에 있어서 위계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주택의 위계는 대개 ‘무허가주택’, ‘저급주택’, ‘중급주택’, ‘고급주택’으로 구분할 수 있고, 주택여과는 소득이 높은 계층이 새로운 주택으로 이동함으로서 생기는 공가(vacancies)를 그보다 소득이 낮은 계층이 저렴한 비용으로 점유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택여과과정은 크게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과정은 상향적 여과과정(filter-up process)이다. 상향적 여과과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존의 주택가격이 상승하거나 가구의 소득이 증대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것은 신규주택이 건설됨으로서 주택수요자들이 기존의 주택에 비해 상위의 주택으로 상향 이동하는 현상을 뜻한다. 두 번째 과정은 하향적 여과과정(filter-down process)이다.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기존의 주택이 낙후되어 가격이 하락하거나 가구의 소득이 감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기존의 주택에 비해 더 낮은 위계의 주택으로 하향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직접적인 주거의 이동과 더불어 기존의 주택 자체의 질이 상승되거나 감소하는 경우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여과과정을 수동적 순환(passive filtering)이라고 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직접적인 주거이동 결과로서의 여과과정을 능동적 순환(act경향을 보인다. 재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하여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에는 수동적 순환 및 능동적 순환의 상향적 여과과정이 발생하여 양질의 주택으로 전환되는 한편, 중·고소득계층의 주거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재개발 대상지역의 원주민인 저소득계층과 중간소득계층은 지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막대한 임대료와 재입주를 위한 추가비용 증가분을 감당하지 못한 채 능동적 순환에 의해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실제로 이들이 능동적 순환에 의한 상향적 여과과정에 따라 공가가 된 상위주택으로 이동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하향적 여과과정에 따라 하위주택으로 하향 이동하는지에 대한 점은 의문으로 남아있다.제 2 절 이론적 배경1. Ernest W. Burgess의 동심원 지대이론(Concentric zone theory)19세기에 시작된 주택여과과정에 대한 인식은 1920년대에 들어 시카고 생태학파인 Burgess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도시의 성장』이라는 논문에서 근대사회 대도시의 성장이 도시지역의 외연적 확대로 나타나며, 이 과정 속에서 대도시의 성장은 동심원 패턴을 보이며 여러 유형의 지역으로 분화된다고 주장하였다.) Burgess의 모델은 5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되며, 중심으로부터 제 1지대인 중심업무지대, 제 2지대인 점이지대, 제 3지대인 저소득주택지대, 제 4지대인 중류층주택지대, 제 5지대인 통근자지대로 구분된다. 이러한 5가지 지대는 외연적인 도시의 성장에 의해 지속적으로 중심부로 유입되며, 각 지대의 거주민들은 외곽지역으로의 이동을 거듭하게 됨에 따라 주택여과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도시의 성장에 있어서 도심지 주변의 노후화된 불량주택은 도심과의 접근성을 중요시하는 저소득계층이 차지하게 되고, 교통비에 대한 부담이 적은 고소득계층은 넓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선호함에 따라 교외지역에 위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Burgess는 거주민의 소득수준에 따라 주거지가 분화되며, 도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거지의 패턴은 도심부로부터 저소득층의 저급주택, 중간소득층의 중급주택, 고소득층의 고급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교통로를 따라 방향성을 가진 쐐기모양(Wedge) 형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도심이 확장되면, 고소득층은 교통로를 따라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도시외곽으로 이동하며 신규주택을 건설하여 점유하게 된다. 이것은 방향성을 가진 고급주거지의 이동이 새로운 주거공간을 탐색하는 경우, 친숙한 공간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 인간의 인지와도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한편, 도시의 성장에 따른 고급주거지역의 이동은 중간소득계층의 고급주택의 점유로 이어지고, 저소득계층이 중급주택으로 유입되는 연쇄적인 주택여과과정을 발생시키게 된다. 이와 같이 Hoyt는 선형지대이론을 통해 고급주거지의 이동은 주택여과과정을 통해 도시 성장의 동력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제 3 절 선행연구 고찰서울시에서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뉴타운사업을 착수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뉴타운사업에 따른 주택여과효과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도시재개발 및 주택재개발과 주택여과효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또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종열(1996)이 주택재개발정책에 있어서 도시 빈곤층을 대상으로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주택재개발정책은 건설자본과 국가, 그리고 일부 중간소득계층에게 편익이 돌아갔을 뿐 도시 빈곤층, 특히 세입자들의 주거상황에는 오히려 손실을 가져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의 범위가 도시의 빈곤층인 무허가 불량촌의 지역주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재개발 대상지역의 기존 토지 및 주택 소유자와 세입자의 전체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현재 뉴타운사업이 기반하고 있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과 ‘도시재정비촉진을위한특별법’이 아닌 ‘도시재개발법’ 하에서 진행된 70-90년대의 재개발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뉴타운사업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최막중 외(200.
저소득계층을 위한 부동산 대책으로서의‘보금자리주택’건설의 효과와 한계문영준Ⅰ. 서론저소득계층을 위한 주거대책으로서 저렴한 임대주택의 공급은 1971년 최초의 공공임대주택)이 등장한 후로 지속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시장에 있어서 저소득계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소득수준에 맞는 저렴한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1892년 3월 「임대주택육성방안」을 발표하고, 1984년 12월 「임대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함으로서 임대주택건설을 위한 정책적 목표를 확고히 하였다. 이에 따라 1988년, 총 50만호의 임대주택공급이 포함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 시행되었다.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는 분양주택 150만호를 비롯하여 임대기간이 5년인 장기임대주택 15만호, 사원임대주택 10만호, 그리고 영세한 저소득계층을 입주대상으로 하는 영구임대주택 25만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자 ‘국민임대주택’으로 불리는 10년과 20년의 임대기간을 가지는 임대주택이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2년 9월에는 국민임대주택의 임대의무기간을 30년으로 연장하여 무주택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하였고, 2003년 9월에는 서민과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한 주거안정 지원 대책을 통해 2003년에서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호와 장기공공임대주택 50만호를 건설안이 발표된다.) 이렇게 국민의 정부시절부터 공급되어온 국민임대주택은 장기임대주택 재고율을 2003년 2.4%에서 2008년 7.6%로 높여 서민의 주거안정 및 주택경기활성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택지확보, 지역별 수급, 지자체 및 주민과의 마찰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특히 목표물량 달성에 치중하여 임대주택이 도심 내보다는 도시외곽지역에 많이 건설되어 다양한 주택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또한 주택가격의 급등으로 무주택 저소득가구의 주거문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었다.) 이에 따라 2008년 9월 19일, 정부는 국민 보금자리주택건설을 골자로 하는 9.19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게 되고, ‘보금자리주택 특별법’을 제정하여 2009년 4월 21일부로 시행하게 된다.Ⅱ. 본론‘보금자리주택’이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 지방공사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나 「주택법」제60조에 따른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건설 또는 매입하여 공급하는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택이나 분양을 목적으로 공급하는 「주택법」제2조제3호에 따른 국민주택규모 이하의 주택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주택을 말한다.) 즉, 보금자리주택은 공공이 짓는 중소형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포괄하는 새로운 개념의 주택이다. 이전의 주택정책이 임대주택을 위주로 공급했던 것과는 다르게 보금자리주택은 임대주택공급과 더불어 주택의 자가보유를 촉진할 수 있는 분양주택의 공급을 병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공공이 재정 또는 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설, 매입하여 분양 또는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하는 주택으로서 과거의 공급자 위주의 일방적인 공급에서 벗어나 소득계층별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주택을 공공이 신속하게 공급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이라고 볼 수 있다.[표 1]과거정책보금자리주택공급자 위주의 주택정책수요자 중심의 주택정책도시 외곽의 확장 개발(Sprawl)도시 내 충전 개발(Infill)입주자 부담 고려 미흡입주자 부담 완화(소득의 30-40% 부담을위한 금융지원 확대)공급자 중심 공급 체계수요자 맞춤형 공급(사전예약제)임대주택 위주 공급자가보유 촉진과 임대주택 병행자료 : 한국토지주택공사,「보금자리주택」홈페이지보금자리주택정책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50만호의 주택을 건설하여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을 확보하며 공공이 직접 도심 인근에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저렴한 가격으로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정부 지원이 없이는 내 집 마련이 어려운 무주택 저소득 가구가 100만호, 지방에 50만호를 건설함으로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주택수요를 고려하였다. 또한 유형별로는 분양주택 70만호와 임대주택 80만호로 분류할 수 있다. 임대주택은 구체적으로 10년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20만호, 도심위주에 20년 장기로 전세를 살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 10만호, 시중가의 60-70%의 전세가격으로 임대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 40만호, 마지막으로 최저소득층을 위해 시중가의 30% 수준의 전세가로 공급되는 영구임대주택 10만호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 1]자료 : 한국토지주택공사,「보금자리주택」홈페이지이러한 영구임대주택의 공급은 1995년 폐지되었던 것을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에 따라 새롭게 공급을 시작한 것이므로 저소득계층의 주거안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주택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보금자리주택을 건설하고, 도심과 도시근교에 주택을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서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저소득계층의 주거대책인 영구임대주택의 1/4에 해당하는 4만7천호가 서울에 건설되며, 광역도시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에 전체 물량의 2/3가 공급됨으로서 저소득계층의 생활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이처럼 보금자리주택은 4가지 주요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2]자료 : 한국토지주택공사,「보금자리주택」홈페이지첫째, 입지측면에서 도심과 도시근교에 주택을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많은 주택수요에 비해 주택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고, 특히 저소득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은 1995년 폐지된 이후로 건설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150만호의 2/3인 100만호가 수도권에 건설되어 수도권에 집중된 주택수요를 충족시키고, 이 중 10만호가 영구임대주택으로 건설되어 서울의 도심과 근교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저소득계층에게 실질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해 줄 수 있다.둘째, 공급유형에서 주택유형을 다양화시켰양화하여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질 수 있는 공급방식을 택하고 있다.)셋째, 수요자 중심의 사전예약방식으로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공급체계를 바꾸었다. 사전예약방식은 택지실시계획 승인을 완료한 단지를 묶어서 개략설계도, 평형, 호수, 분양가를 일괄 제시하고, 수요자들이 인터넷 사전예약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면 예비당첨자를 받는 방식이다. 즉, 사전예약방식의 주택맞춤형 주택청약제는 수요자들이 입주시기, 분양가, 입지 등을 따져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넷째, 가격측면에서 분양가를 인하하고, 주택금융 지원을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입주자의 자금 부담을 완화를 위해 건설자금 융자한도를 상향시키고, 30년 장기대출을 도입하였고, 보금자리주택 중 저소득계층의 주거로 고려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은 시중가의 60-70%의 전세가, 영구임대주택은 시중가의 30% 수준의 전세가로 공급하였다. 또한 용적률과 녹지율을 조정하고, 시공과정을 합리화 하는 등의 분양가 인하 방안을 마련하여 분양가를 15% 인하시킬 수 있었다.이처럼 보금자리주택정책은 주택시장의 수급안정과 서민들의 주거복지향상을 목표로 도심 등 선호지역에 대한 안정적인 주택공급을 통하여 근본적인 시장안정을 달성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서민들의 주거문제는 복지차원에서 정부가 직접적인 공급과 지원을 맡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많은 기대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목표로 하는 보금자리주택정책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한계점이 나타날 수 있다.먼저 환경훼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정책에 있어서 도심의 그린벨트지역을 풀어서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주택수요가 많은 도심지역에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한 기존의 개건축이나 재개발 방법은 주민동의, 조합원간의 갈등 등으로 인해 사업이 장기화되어 단기간에 주택을 공급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차선책으로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주택 공급 확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그린벨트 가지고 있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 방지와 도시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서 정당성과 공공성을 내세우기는 힘들 것이다.그 다음으로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보금자리주택은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제공하여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목표로 한다. 영구임대주택이 시중전세가의 30%, 국민임대주택이 시중전세가의 60-70%에 공급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변시세보다 싸게 공급된 가격은 30평형대 기준으로 서울은 4억 원, 하남은 3억4천만 원에 이르고 고양은 2억9천만 원이 넘는다. 이러한 분양가는 서울 관악, 금천, 구로나 강북, 노원, 도봉지역 20~30평형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금자리주택의 수요층은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저소득계층의 무주택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러한 분양가격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고, 이로 인해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정책에 대해 예상했던 만큼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 들 수 있다.마지막으로 도심 전체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해 보금자리주택 이외의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이 역으로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도심은 재개발사업과 뉴타운사업을 비롯한 많은 개발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심에 보금자리주택이 건설된다면 해당지역 및 인근지역의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게 된다. 이전부터 세를 들어 살고 있었던 저소득층에게 이러한 주택가격 상승은 곧바로 전세가의 상승을 가져오게 되어 재정적인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다.보금자리주택이 저소득층을 비롯한 서민들의 주거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첫 번째로,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문제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그 자체로 풀 수 있어야 한다. 거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그린벨트가 가지고 있는 많은 긍정적인 기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보금자리주택의 건설로 인해 그린벨트가 훼손되는 것은 오히려 도시의 대다수의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일 수 있다. 또한 그이다.
도시사회론‘비애의 도시’, 이스탄불문영준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서양과 동양의 접점에 위치한 터키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기능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로 천년 이상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군림해왔으며,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후부터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서 기능을 하게 된다. 그 후로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게 되자, 이스탄불은 서양의 근대화 흐름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스탄불만의 독특한 도시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도시 ‘이스탄불’의 역사는 서양과 동양의 침략과 갈등, 혼재와 융합 등의 관계를 맺으면서 독특한 도시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스탄불의 매력은 물리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건축물들이 혼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의 도시민들의 정신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서구의 근대화적 사고방식과 전통적인 이슬람의 영향력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스탄불의 작가’라 불리는 ‘오르한 파묵’은 이러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독특함을 이 책에서 자신의 자전에세이 형식을 빌려 써내려가고 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이스탄불에 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이스탄불이라는 도시 속에서 생활하면서 도시의 특성 즉, 동서양 문명의 접점이라는 지리적 특징에서 나타나게 되는 문화와 세대 간의 혼재 등을 직접 경험하고, 이러한 도시적 특성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삶을 세심한 묘사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그는 그의 책 속에서 이스탄불을 주저 없이 ‘비애의 도시’라고 칭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삶은 ‘비애’라는 감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한국의 정서를 ‘한’으로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말하는 ‘비애’의 감정에 대해 10장 ‘비애-멜랑콜리-슬픔’에서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그는 비애라는 감정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 관점은 세계, 물질적 이익 그리고 희열에 집착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감정이다. 이것은 서양의 물질주의적 관점으로 현재 상태의 이스탄불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비애의 감정일 것이다.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서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이스탄불의 현재의 모습은 서구식 신식건물과 오스만 제국의 유물인 낡고 버림받는 목조건물들이 혼재하고 있고,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빈곤과 정신적인 혼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도시의 가난과 더불어 더디게 발전되는 이스탄불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 속에서 ‘비애’라는 감정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1950년대와 1960년대에 도시의 마지막 목조 해안 주택, 저택, 폐허가 된 목조 가옥들이 타서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했던 나 같은 사람들은 불구경하는 재미뿐 아니라, 즐거움이 먼저였던 오스만 제국 파샤들과는 다른 정신적 고뇌 역시 품고 있었다. 서양 문명의 2류이며, 희미하고 빈곤한 모방을 위해서, 정당하게 상속자가 되지 못했던 거대한 문화와 문명의 마지막 흔적들이 이스탄불에서 가급적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죄책감, 의기소침, 질투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서구의 물질문명 관점에서 보는 이스탄불은 서양의 근대화를 빠르게 이루지 못하고 뒤쳐져 있는 2류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스탄불에 사는 도시민들의 감정 속에는 과거의 화려한 역사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서구의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혼재되어 ‘비애’라는 감정이 증폭되어 왔다는 것을 그의 글에서 알 수 있다. 목조건물이 주를 이루는 오스만 제국의 건축적인 유산이 ‘화재’라는 사건에 의해 이스탄불 도시민들의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즉, 작가가 느끼는 ‘비애’의 감정은 현재 서양과 동양 모두에게 이방인으로 인식되는 이스탄불의 근본적인 정체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오르한 파묵의 ‘비애’에 대한 두 번째 관점은 결핍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세속적인 삶에 집착하지 않고, 영적인 삶에 대한 헌신을 하지만 결국은 심오한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공허감, 상실감, 부족감에서 비롯된 ‘비애’의 감정인 것이다. 앞서 말한 첫 번째 관점이 서양의 근대화와 물질문명에 대한 동경의 감정으로서 ‘비애’였다면, 두 번째 관점에서의 ‘비애’는 동양 혹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결핍과 그에 대한 공허한 정신적 감정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애’의 감정은 이스탄불의 전 분야, 즉 음악, 문학을 비롯한 도시의 전반적인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최근 200년 동안 ‘비애’라는 단어가 이스탄불 문화와 일상생활 속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음악에서도 지배적으로 사용된 것이 이러한 고매한 존경심과 관련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오르한 파묵이 강조한 ‘비애’의 감정은 도시로서의 ‘이스탄불’의 존재와 관련된 근본적인 물음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탄불은 서양인가, 동양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끊임없는 고뇌의 결과인 것이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스탄불의 오랜 역사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각축전이 벌어져왔던 것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는 ‘비애’라는 감정으로 각인되어 그들의 정신적인 핵심이 되어 왔다. 이러한 ‘비애’의 감정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감정인 ‘한’의 정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서 우리나라는 중국을 비롯한 북방민족의 침입과 더불어 일본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왔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서구 열강에 의한 침입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침략과 전쟁 속에서 서민들에게는 ‘한’이라는 감정이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을 떠올릴 때 구슬픈 떨림을 가지고 있는 가야금과 해금 등의 반주로 이루어진 판소리를 생각하듯이 ‘한’의 감정은 슬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슬픔은 슬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강렬한 의지의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이스탄불의 ‘비애’의 감정도 이러한 동서양의 모순 속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슬픔을 내재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노력의 의지 또한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멜랑꼴리’와 ‘슬픔’과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비애’의 의지를 강조하려고 한 점에서 이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오르한 파묵은 자신의 자전적인 에세이 속에서 이러한 ‘비애’의 모습이 이스탄불의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거실은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의 과거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과거의 사진들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서 그에게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위해 전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일으키게 했을 정도로 비애를 불러 일으켰다.“거실이 가급적 만지면 안 되는 서구화와 부유함의 상징, 우울한 어떤 부가적 영혼의 전시 장소로 사용된 것은 단지 이스탄불뿐만 아니라 터키 전역에 확산되었고, 텔레비전이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한 1970년대 말에는 이 유행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화면 앞에 모여 앉아 영화나 뉴스를 시청할 때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즐거워하던 거실이 박물관에서 작은 극장으로 변했던 이 시기에조차, 집 안의 작은 홀 같은 방에 텔레비전을 놓고, 박물관 거실의 잠긴 문을 오로지 명절 때나 아주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서만 열던 구식 가정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이스탄불에서 가정의 거실이 ‘박물관’이 되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박물관’이라는 것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만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서양의 근대화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만든다는 것은 어떠한 사물을 만지고 직접 경험함으로서 느끼는 것이 아닌 오직 시각으로만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많은 볼거리나 유적들을 모아 한 곳에 전시함으로서 어떤 사물과 장소와의 연계성을 끊어버리고, 그 사물 자체를 객관화, 단순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 또한 이러한 사물의 시각화에 대한 또 다른 매체이다. 시각적인 영상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한정지음으로서 사물의 단순화, 객관화를 촉진시켜왔다. 과거의 정신이 서구화된 수단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실의 분위기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내부적·외부적인 삶 속에 이러한 ‘비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는 이스탄불의 외부적인 모습을 살펴보자. 외부적인 도시의 모습에서 많은 역사유물이 따로 지정되어 격리되어 보존되지 않고, 도시민들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왔다. 파묵의 아파트는 그러한 전형적인 예이다. 그의 아파트는 파샤 저택의 정원이었던 땅 위에 세워진 서구식 아파트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 고관들과 오스만 제국의 수상들, 왕자들의 화려한 목조 건축물들이 즐비했던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패배와 함께 과거의 낡은 흔적들만을 남긴 채 폐허가 되어갔다. 이러한 과거의 흔적 위에 작가의 아파트는 건설되었다. 그들은 그 폐허를 모두 없애버리고 새로운 건축물을 채우지 않고, 그들의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스탄불의 도시민들의 현재의 삶은 과거의 몰락한 오스만 제국의 비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문영준‘짐멜의 모더니티 읽기’를 통해 게오르그 짐멜은 다른 사회학자와는 달리 현상적인 요소를 통해 근대성을 파악하려고 했다. 베버와 마르크스와 같은 학자들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본의 흐름을 통해 근대의 사회구조와 현상을 파악하려고 했다면, 짐멜은 근대의 개별적인 요소인 돈, 유행, 식사, 다리와 문 등을 통해 그 속에 내재된 근대의 사회구조를 파악하려 한 것이다. 특히 짐멜은 돈 즉, 화폐에 대해서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고 있다. 화폐 경제의 발달로 인해 중세와는 다른 근대의 특징을 발견해내고, 그로 인해 근대의 전체적인 사회의 다른 요소들과의 원인 혹은 결과로서의 통합을 이루어내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는 이러한 짐멜의 개별적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가 바라본 근대 모더니티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요소들이 근대의 사회에서 발생시키는 심리적인 측면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짐멜은 유행과 장신구에 깃들여진 근대인들의 심리적 측면, 집단 속의 이방인으로서 존재하는 개인에 대한 근대의 심리적 측면 등 여러 가지 요소들 속에 내제된 심리적 갈등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두 가지 중요한 요소, 화폐로 인한 변화된 근대의 특징과 그 저반에 깔린 심리적 측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앞서 말했듯이 짐멜의 모더니티에 관한 가장 큰 관심사는 ‘돈’ 즉, ‘화폐 경제’였을 것이다. 중세와 근대를 나누게 되는 근본적인 차이는 화폐 경제의 발전에 의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을 바라보자. 우리의 삶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하지만 외롭고 무감각하기도 하다. 서양의 중세시대를 살펴보면 인간은 공동체, 봉건연합, 종교 등에 의해 얽매어져 있는 존재였다. 그들의 삶의 대부분은 의무와 규율로 제약받고 있었다. 그러한 의무를 불이행하게 되면 그들의 집단에서 강제로 퇴출이 되는데, 이것은 물리적으로는 노예가 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 경제의 어떠한 과정을 통해 중세의 삶을 바꾸어 놨는지에 대해 알아보자.전통적인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서,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에 대해 생산을 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생산품에 대한 가격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화폐 경제에서는 이러한 교환방식에 대해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먼저 화폐 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단절시키게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전통적인 직접적인 관계는 화폐를 통해 간접적인 관계로 바뀌게 되고, 이것은 시장과 물건을 받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대리인을 통해 판매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측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산자의 생산품을 화폐의 가치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사물과 인격과의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서 주관적 가치보다는 객관적인 가치로 사물을 인식하게 만든다.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도자기를 예를 들어보자. 이 도자기는 장인의 노력과 정성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물물교환 방식에서는 생산자의 필요에 따라 가치가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화폐 경제 내에서 이 도자기의 가치를 10만원이라는 가격으로 정하게 된다면, 장인의 인격 즉, 그가 쏟아 부었던 노력과 정성은 이미 소비자에게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 도자기를 평가하는 기준은 화폐가치로 환산된 10만원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가 사물과 인격성을 단절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생산자의 측면에서는 소비자의 취향이나 선호에 대한 생산품을 생산했던 과거와는 달리 10만원이라는 가치에 알맞은 생산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은 한 명의 소비자가 아닌 그것을 소비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다수의 소비자를 위한 물건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산품은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자연 경제 시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인격성과 사물의 관계들 사이의 이러한 상호 의존성은 화폐 경제에 의해서 해체된다. 화폐 경제는 인간과 일정한 특성을 지니는 사물 사이에 매 순간 완전히 객관적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특성도 없는 돈과 화폐가치를 삽입시킨달랐다면, 오히려 현대의 생산품은 화폐의 가치로 정해진 가격에 따라 사물의 가치가 높고 낮음을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10만원인 도자기보다 100만원인 도자기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주게 된다. 특이할만한 사항은 전통적인 매매방식에서는 평가할 수 없었던 다른 물품들과의 가치평가가 근대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도자기의 가치와 옷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오히려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폐 경제 속에서 도자기와 옷, 신발, 가구 등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물건을 화폐의 가치로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다. 가격이 10만원인 도자기는 가격이 5만원인 옷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며, 50만원인 가구보다는 낮은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화폐 경제는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객관적으로 바꾸게 된다.한편 화폐 경제는 사물과 사람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도 객관화시키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과거에는 지역, 정치, 종교 등에 의해 개인은 구속되고 억압되었다. 개인의 사고방식은 공동체의 사고방식과 동일해야 했고, 그에 따라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노동에 대한 의무를 강제적으로 이행해야만 했다. 이러한 노동의 의무가 이러한 공동체를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행위였다. 하지만 화폐 경제로의 발전 과정에서 이러한 노동의 의무를 지고 있는 개인들은 노동 대신 화폐를 제공함으로 인해 의무를 면제받게 된다. 공동체를 위한 노동의 의무를 벗어나게 된 개인은 일정한 금액의 화폐를 제공함으로서 공동체를 벗어나 자유를 가지게 된다. 이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은 하나의 지역, 종교, 정치적 목표 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돈을 제공하는 개인들에 의해 유지되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돈으로 지불 의무를 대체하게 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러한 의무에 의해 인격에 부과된 구속으로부터 즉각 해방되도록 해준다. 이제 타자는 직접적인 인격적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그의 행위가 초래하는 받게 됨으로서 직업·사교·종교·종교적 특성을 달리하는 개인들의 집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따라서 과거의 개인은 하나의 통합적인 공동체를 가졌다면, 현재의 개인들은 다수의 다양한 목적의 공동체를 가지게 된다.화폐에 의한 공동체의 형성은 개인을 많은 개인들과의 관계로 연결시키게 된다. 개인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과거에는 같은 공동체 속에 속해있는 한 개인과 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은 돈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수많은 공급자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 분업’과 관련지을 수 있다. 전통적인 물물교환 방식에서는 하나의 생산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사람의 노동만을 강요했다. 노동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었던 이유로 한 가지 노동을 두 명의 인력을 가지고 행했을 때, 가치를 나누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폐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다양한 사물에 대한 공통적인 가치의 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10만원의 가치를 가진 도자기를 2명이서 만든다면 각자 5만원이라는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통적인 가치의 평가가 이루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하나의 목적을 창출하는 노동 분업의 현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돈은 생산의 분업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결합시킨다. 왜냐하면 이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동하고,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노동만이 비로소 개인의 일면적인 생산을 보충하는 광점위한 경제적 단위를 창출하기 때문이다.”)이러한 노동 분업은 수많은 개인들과의 의존관계를 가져오지만, 그것이 다수의 개인들과의 심리적 통합으로는 이행되지 않는다. 노동 분업은 개인들 간의 관계만을 중요시할 뿐, 관계를 맺는 개인들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맺는 관계 속에서 대상이 되는 개인은 누가 되든지 상관이 없다. 그 상대는 항상 변화하더라도 그러한 관계를 맺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예를 들어 질병으로 인해 이루어진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치료의 관계’로써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대도시는 시골에 비해 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이 다수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인주의가 더욱 성행하게 된다. 수많은 독립적 개인이 활동하는 대도시의 삶은 다양한 경제적·직업적·사회적 관계들로 인해서 많은 변화를 만든다.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는 개인에게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주게 되고,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개인의 심리적 방어 메커니즘이 발생하게 된다.“우리의 의식은 인상들이 고정된 경우, 혹은 그 차이가 경미하거나 대립적 d니상들이라도 규칙적이고 익숙한 흐름에 따라 교체되는 경우보다, 급속도로 이미지들이 교체되면서 밀려오거나,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포착되는 내용의 변화가 급격하게 밀려드는 인상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경우에 더 큰 부담을 갖는다. 이러한 심리적 조건들은 대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나 빠르고 다양한 경제적·직업적·사회적 삶을 경험할 때 발생한다.”)짐멜에 따르면 이러한 방어 메커니즘은 대도시인에게 외부환경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이 아닌 지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한다. 끊임없는 변화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많은 피로와 정신적 동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반면, 지적인 반응은 정신적 기관에 의한 것으로서 변화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이성적 판단은 논리적인 법칙성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법칙에 어긋난 변화나 상황에 대해서는 엄격한 무관심의 태도가 동반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무관심의 태도는 화폐 경제는 모든 현상들의 특성을 수량화, 평준화시킴으로서 각각의 사물이나 현상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배제시키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따라서 대도시인들은 감정적인 소규모집단과는 달리 개인들 간에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관계에 대해서만 반응할 뿐, 예측할 수 없는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짐멜은 대도시의 삶에서 회중시계의 보급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회중시계가 대도시에 사는 개인들의 삶을 정확성과 확실성, 약속과 협정의 명확성이 지배하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