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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비코와 신문화사 평가A+최고예요
    Ⅰ. 서론역사학은 세계의 모든 변화를 초월하여 다루어지는 고고한 학문인 것 같지만 역사학도 변화하는 것이다. 역사학은 외부 세계가 변화하는 것에 따라서 혹은 내부적인 요구에 의해서 변화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신문화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두 용어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두 용어 사이의 친화력은 부정할 수 없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론적 뒷받침으로 하고 있는 신문화사는 여러 학문 분야의 결실을 수용하여 역사학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만들어놓았다.이와 같은 이유로 신문화사는 역사학계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며 역사학 변화의 산물로 여겨진다. 이 신문화사는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그 이데올로기 붕괴와도 맥락을 같이 하기도 하고 사회사에 대한 비판적 반성의 결과이기도 한데 20세기 전반부터 이루어진 역사학의 변화를 통해서 신문화사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그런데 신문화사의 지평을 연 헤이든 화이트는 “어느 날 밤 ‘시적 논리학’의 분석에서 비코가 제기한 비유의 이론이 역사가들이 산출해낸 여러 양식의 담론을 규정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나는 코넬 대학교에서 역사철학의 세미나를 맡아 특히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나의 이것이 역사의 일반 이론뿐만 아니라 담론의 일반 이론도 제공하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을 이용하여 나의 분석들을 역사 서술의 종합적 이론으로 엮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헤이든 화이트가 비코에게서 영감을 얻어 신문화사를 열었음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본 고에서는 비코의 어떤 점이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신문화사)에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봄으로써 그 관계를 정리해보고자 한다.Ⅱ. 비코와 신문화사1.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오늘날 역사학의 흐름과 비코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서 낯설게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비코에게서 포스트모더니즘적 선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헤이든 화이트가 비코에게서 영감을 얻었던 것히 이뤄진 일이 아니었고 화이트는 비코에게 받은 영감을 통해 문학적 심층구조의 분석이라는 방법을 형성하였으며 이는 문화를 통해서 역사를 보려는 역사학의 새로운 경향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비코는 문화인류학이나 민속학적 자료가 역사 연구에 갖는 중요성에 주목하라는 입장을 언급했는데 이는 신문화사의 전략이나 방법론과 연관지어 유사성을 지니며 특히 비코에게서 언어적 전환이나 담론 분석, 상징적 해석 등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류를 이루는 방법론의 선례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코에게서 오늘날 역사학의 경향을 찾으려는 시도가 저조한 것은 데카르트에 대한 비코의 논박의 중요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데카르트와 데카르트파는 비과학적 자료들의 덩어리를 과학적 방법과 예리하게 구분했으며 그들에게 이러한 것들은 역사학이나 삶의 지혜를 위해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역사학과 인문학을 잡다한 정보의 수준 정도로 격하시켰는데 비코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비코는 데카르트의 에 대항해서 참된 지식의 타당성은 수학이나 논리학의 경우조차도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이해해야만 즉, 그것의 발생론적 혹은 역사적 발전을 이해해야만 입증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증명하고자 비코는 데카르트파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던 것이다.)이와 같은 데카르트에 대한 비코의 비판은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양분법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해체론이 지향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비판은 사상사나 지성사는 고급 문화의 확산 과정을 다루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미국의 고전적인 사상사가 아서 러브조이)의 접근방법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사상사, 혹은 문화사의 도전과도 흡사하다.)2. 신화와 상징을 통한 역사인식비코의 원리에 따르면 현대인이 원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시인의 세계 속으로 공감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부분 이와 같은 비코의 인식론적 체계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으로 제시하곤 하는데 이를 출발점으로 여긴다면 비코와 신문화사의 연관성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다. 비코는 역사적 사고의 출발점을 학자들의 고매한 정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출발점인 원시인들의 조야한 사고에 두었는데 이로 인해 비코는 인류가 사회를 만들고 제도를 형성해가던 과정을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그렇게 만들어가던 과정을 아는 것이 곧 진리이며 그런 이유에서 그의 새로운 학문은 역사적 사고가 얼마나 구성적이고 비판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마치 포스트경험주의가 역사적 사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든 방식의 선례를 보여주는 듯 하다.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비코는 “배워야할 최초의 학문은 신화 또는 우화의 해석”이라 하였으며 비코는 우화를 “미개의 언어를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영원한 진리”)라 하였고 이로써 역사가들이 신뢰할 수 없다고 여겨왔던 신화, 우화, 민담, 전설 등이 비코에 의해 원시적 인류의 집단적인 정신의 표현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비코에 의하면 신화는 인간이 세계를 보고 이해하며 반응하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신화는 “시인이던 최초 민족의 문명사”)이며 그것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사고하고 말했던 사람들의 자연적 표현 양태로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서야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최초의 인간의 거대한 상상물들로 침투한다는 것”, 그것들을 “구체적” 범주로 사고하고 느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비코의 지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 섬긴 신들은 초대 기독교 신학자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악마가 아니었는데 그 신들에 부여된 속성들이나 이야기들은 시적 허구도, 미학적 명상을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 고안된 의도적 산물도 아니었다. 신들과 신들의 이야기는 인간의식의 시적 창조물이며 고대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과 같은 민족의 정신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그러므로 신화는 태고적 인류의 집단적 상상력의 구체적 표현 양태로 오늘날 비평가들에게 신화 창조자들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습관과 사회생활 방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풍부한 원천이자 사멸하고 화석화되었음에도 전문가의 해부와 분석을 요구되는 존재이기도 하다.비코는 인간은 최초에 필요성을 느끼고 유용성을 찾으며 그 뒤에 안락에 몸을 맡기고 쾌락에 빠지고 사치 속에 분별력을 잃어 자신의 본질을 고갈시킨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내적 필연성에 근거하여 본질적으로 순환적인 사회와 역사의 이론을 세운 것이다. 비코에 의하면 역사는 신의 시대-영웅의 시대-인간의 시대로 진행하고 이는 불가피하게 신의 시대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각 시대에는 그에 상응하는 언어가 있는데 신의 시대에는 상형문자(신성한 문자), 영웅의 시대에는 은유로 이루어지는 상징의 문자, 인간의 시대에는 일상적인 서간체 혹은 대중적 언어가 주류를 이룬다고 보았다. 이러한 면에서 은유, 제유, 환유, 아이러니의 네 가지 수사법이 역사적 상상력의 심층 구조에 존재하고 있다는 헤이든 화이트의 주장은 비코에게서 -논지의 취지는 다를지라도-그 선례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Ⅲ. 신문화사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의 문제점과 그 방편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형성된 새로운 문화사는 많은 점에서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고 역사학을 풍요롭고 흥미롭게 만들었다. 다양한 자료가 사료로 쓰일 수 있게 되었으며 역사서술의 대상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에 정당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푸코는 우리가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물의 객관성을 부인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에 의해 모든 틀을 없앤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역사서술의 대상을 정할 수 있는가가 모호해진다. 이럴 경우 역사가 단지 흥미거리를 찾아 쓰는 정도로 비하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문화사의 성과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런 방면으로만 치달을 경우 역사학은 본래 사명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안게 그러므로 역사학자는 역사학의 인접 학문과의 밀접한 교류를 유지해야 하며 엄정한 방향 설정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여기서 비코를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비코가 물려준 유산은 역사의 분석이 지각적이고 지시적이며 경험적이고 사실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화적이고 시적이고 상상적이고 문화적인 것에도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놓여있다. 바로 이 점이 비코가 모더니즘의 역사철학자이면서도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코가 신문화사에서 갖는 의의는 그 연구방법이 신문화사에 있어 선례로 제공된다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신문화사를 수용하려는 이들이 갖는 역사연구의 파편화와 역사학 표류의 우려를 해소시킬 방안을 제공한다는데 있다. 비코가 제공한 비유법의 문제와 같은 언어의 문제는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의 비유적 표출인 메타포로 표출되는 시적 지혜의 포착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를 위해 밟아야 하는 1차적인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변화와 그 과정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규칙을 찾으려 했던 비코의 시도 속에서 우리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 역사를 연구하려는 시도를 넘어서는 총체적인 안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Ⅳ. 결론이상으로 비코와 신문화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많은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마르크시즘이나 아날학파의 구조주의처럼 각 이론이나 설명의 틀에 맞추어 역사현상을 보는 거대담론에 대해 신문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거대담론이 자유로운 연구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거대담론들도 각기 그 장점과 의의를 갖고 있는데 신문화사는 이에 대한 비판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거대담론이 제기하는 비판을 신문화사에서 받아들인다면 보다 진전된 역사서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문제이므로 신문화사는 거대담론을 포용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는.
    인문/어학| 2005.12.12| 1페이지| 1,000원| 조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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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래론]문학 갈래론
    1. 서론어떤 대상을 연구할 때는 그 대상을 단위별로 나누게 된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여서 문학을 다루는 적절한 단위가 필요하다. 특히 문학은 그 대상인 작가와 작품이 매우 많기 때문에 대표성을 지닌 선택이 필요하고 그 외에 선택받지 못한 작품들일지라도 그 성격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므로 같은 성격의 작가나 작품을 묶어서 그 특징을 살피게 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갈래의 연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학자와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어온 문제이다. 그 과정에서 갈래의 분류 기준의 설정 문제가 당연히 제기되었으며 2분설, 3분설, 4분설로 다양하게 학자들의 의견이 펼쳐졌다.작품을 한 편씩 봐가면서 각 작품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 보다는 소속하는 갈래를 알고 갈래의 특성을 알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갈래의 구분과 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와 같은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진 갈래는 앞에서 언급하였듯 2, 3, 4분설 등으로 나뉘어 쟁점이 되어왔다.본 보고서에서는 4갈래 이론의 원리를 살펴보기에 앞서 이처럼 2, 3, 4분설의 의견을 각각 개진하였던 최재서, 김춘수, 김윤식 등의 의견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고 조동일의 4갈래 원리와 김흥규의 의견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2. 갈래 체계에 대한 다양한 異見2-1. 최재서 - 3분법 체계최재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의 방법에 근거해서 서구의 전통적 3분법 체계를 따른다. 이는 담화의 상황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화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작중 인물의 입장으로 말하는 것, 양자가 혼합으로 발하는 것이 것인데 여기에 서정, 극, 서사의 갈래를 대응하는 것이다. 이로써 최재서는 인칭을 기준으로 하여 서정문학을 1인칭의 표현으로, 극문학을 2인칭의 전달로, 서사문학을 3인칭의 전달로 정의한다.) 그러나 여기서 극문학만을 2인칭으로 설정한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극문학뿐만 아니라 서정 문학에서도 청자의 존재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서정문학이 시인.)2-2. 김춘수 - 2분법 체계김춘수가 문학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의미와 무의미이다. 이에 따라 김춘수에 의한 갈래 체계는 시와 산문의 이분법으로 나뉜다. 이러한 이분법은 어법과 운율, 문체 등 외적 형식이 그 기준이 되는 것으로 운문은 정서적인 글로서 반복적 리듬이 주도적이고 암시성과 집약성으로 독자를 확신시키는 양식이지만 산문은 논리적인 글로서 추리적 사고 과정의 형식에 따라 쓴 양식으로 명시성과 축적을 통해 독자를 확신시킨다.)김춘수의 이분법에 의하면 시는 무의미 ? 도피적 자아 ? 존재차원 ? 감정 ? 언어의 목적성 ? 비인간화 ? 절대주의 등의 특징을 갖고 산문은 의미 ? 참여적 자아 ? 의미차원 ? 언어의 도구 성 ? 논리 ? 인간화 ? 상대주의 등의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김춘수는 시에서 삶을 제거하고 예술만을 남기려 하였고 산문에서는 예술을 제거하고 삶만 남기려는 일방향적이고 극단적인 경향이 있었다. 결국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을 통한 완전주의 시정신은 반역사주의 태도라 비판받았고 이는 변화와 진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문제시 되었다.2-3. 김윤식 - 3분법 체계김윤식은 전통적인 3분법에 따라서 서정 양식 ? 서사 양식 ? 극양식으로 나눈다. 김윤식은 서정과 극은 현재의 갈래이고 서사는 과거형의 갈래이며 서정이 생의 순간적 지각을 표현한 것임에 반하여 서사는 인간이 자신을 완결된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 등 많은 서구 이론의 기준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의 분류체계는 다음과 같다.)서정 양식향가 ? 경기체가 ?시조 ?가사 ? 민요 ? 판소리 ? 개화가사 ? 근대시 ? 현대시서사 양식민담 ? 설화 ?신화 ? 고대소설 ? 개화기 소설 ? 근대 소설 ? 근대 소설 ? 현대 소설극양식인형극 ? 가면극 ? 신파극 ? 근대극그러나 이러한 분류체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판소리를 서정에 속하게 한 점이나 개화가사를 스스로 문학의 갈래라 인정하지 않았으면서도 서정 양식에 포함시키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또한 서정과 연구가 이어졌으나 각기 문제점과 허점이 있었다. 가사나 수필의 귀속문제 등으로부터 조동일의 四分說이 제기되기 시작했다.)그는 4분법이 3분법보다 유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국문학이 현대문학만이라면 준회원격인 수필은 무시하고서 서정 ? 서사 ? 희곡만 거론해도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러한 관점을 국문 고전문학에 까지 소급하는 것은 무리이다. 교술이라고 해야 할 것이 아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문학은 구태여 3분법을 택한다면 서정 ? 교술 ? 서사로 정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문학의 총체성을 일관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정 ? 교술 ? 서사 ? 희곡 가운데 어느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서정 ? 서사 ? 희곡으로의 3분법은 문학관이 바뀌고 문학의 범위가 축소된 시기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3분법으로의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4분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조동일의 4분설은 서정 ? 서사 ? 교술 ? 희곡으로 제시하는 것이며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서 각 갈래를 구분하고 있다.서정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없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자아화교술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서사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희곡작품외적 자아의 개입없이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즉, 서정은 작품 내적 자아 및 세계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아와 세계의 대립이 자아 쪽으로 귀착되어 세계의 자아화로 나타나는 것이고, 교술은 작품 내적 자아 및 세계에 작품 외적 세계가 개입하고 있으며 자아와 세계의 대립이 세계 쪽으로 귀착된 자아의 세계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사는 작품 내적 자아 및 세계에 작품 외적 자아가 개입하는 것으로 자아와 세계가 어느 한 쪽으로 귀착되지 않고 대결하는 것이며, 희곡은 작품 내적 자아 및 세계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아와 세계가 어느 한 쪽으로 귀착되지 않고 대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체계에서 자아 또는 세계 중 어느 한 쪽으로 귀착되는 서정과 교술의 경우에는 작품 외적 자아와 것이다.그리고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인 서사에 있어서 그의 갈래 이론은 서정에 비해 보다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이 이유는 서정에서 작품 외적 자아와 작품 내적 자아가 일치하지만 서사에서는 이들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결국 서사의 자아와 세계는 서정의 경우와는 달리 양자가 같이 인식과 행위의 주체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대상화한다. 이로써 작품 내적 자아는 작품 외적 자아에 의하여 대상화되고, 작품 내적 세계에 의하여 대상화되는 상호 대상화의 관계에 놓이기 때문에 서사의 작품 내적 자아와 세계는 어느 한 쪽으로 귀착하지 않고 대결하게 되는 것이다.)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이 없이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희곡은 서사와 구분되는 본질적인 특징을 지닌다. 자아와 세계의 대결 그 자체에서만 전개되기 때문에 작품의 시간은 바로 대결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동일은 서구 이론을 인용하여 서사가 확장적이고 과거형이며 사실들의 총체성인데 반하여 희곡은 집약적이고 현재형이며 총체적인 행동이라고 기술하면서 이러한 기준들은 두 장르 사이의 관계를 나타낼 뿐 장르 전체를 포괄할 만한 의미는 없다고 단정하기도 하였다.교술은 작품 외적 세계가 개입하고 자아의 세계화라는 점에서 서정과 가장 대립되는 갈래처럼 보인다. 서정에서 작품 내적 자아는 작품 내적 세계를 변화시키는 존재이지만 교술에서는 오히려 세계에 지배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술의 본질인 자아의 세계화는 포괄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작품 내적 자아가 보편적인 내용을 말할 때 그 자아는 화자의 역할 이외의 독자적 존재 의미가 없어 자아의 세계화에 해당하게 되지만 작품 내적 자아가 공적인 시점을 버리고 사적 시점에서 발화하는 경우에는 세계와 대립되는 개인적 주장을 일관되게 했다면 이는 자아의 세계화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에 대해서 조동일은 교술을 보다 설득력 있게 정의하여 극복한다.)교술갈래와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가사’이다. 교술은 본수 있다. 여기서 갈래의 구분 기준으로 언급되는 4가지가 자아, 세계, 작품 외적 세계, 작품 외적 자아였는데, 각각에 대해 살펴보면 자아는 인식과 행동의 주체로, 쉽게 말해 주인공이며 세계는 그 대상으로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을 의미하고 이들은 작품 내적 요소가 된다. 또한 작품 외적 세계는 실재 존재하는 현실이고 작품 외적 자아는 서술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서정, 서사, 교술, 희곡이라는 4갈래가 나눠진다.하지만 조동일의 갈래이론 중에서 교술 갈래는 그 특성도 지니지만 단점 또한 지니고 있다. 서정, 서사, 극갈래가 상상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교술은 사실적인 것을 기준으로 한 현실에 실재하는 것을 다룬 갈래이다. 그러므로 교술 갈래의 설정을 통해서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에 있던 한문 문학 유산을 우리 문학 유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현재의 수필과 평론도 문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문학의 영역이 넓어졌다. 또한 교술 갈래의 설정은 가사, 경기체가, 몽유록 등 어느 갈래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운 갈래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도 유리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그런데 교술 장르가 실재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므로 실재적인 것을 어느 선까지 문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먼저 문제시 된다.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또 교술갈래는 갈래가 불명확한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완벽한 것이 아니어서 가사의 규정이나 다른 갈래의 규정에서 그 특성을 완전히 포괄하지 못해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결국 4갈래 이론은 문학 일반론에서의 논의를 나름대로 소화하고 자기 방식에 따라 전개한 논리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갈래론이었다. 하지만 국문학의 관습적 장르 분류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특히 교술갈래가 그러하였다. 교술은 수필과 비슷한 개념으로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가사를 이 갈래에 포함시키고 경기체가, 가전체까지 교술갈래로 봄으로써 이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에 이러한 4분설에 이어 김흥가?)
    인문/어학| 2005.12.12| 6페이지| 3,000원| 조회(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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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학]보보스 감상문
    1. 서론과거에는 계급간의 차이가 분명하던 시절, 즉 동양에는 양반과 천민이 구분되고 서양에서는 봉건세력과 농노 혹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확실히 구분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는 상층과 하층의 분명한 구조로 삶 자체에서 생활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 등 모든 면에 이르기까지 그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신분계급이 철폐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다분하다. 물론 눈에 보이는 신분계급이 없을 뿐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분명한 문화계급의 차이를 지니고 시간은 흘러왔다.그런데 상층 부르주아의 문화가 점차 자신들만의 문화로 형성되어갈 때 보보스가 등장했다. 보보스. 사실 처음에는 이 보보스라는 용어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했을 뿐, 무엇을 뜻하는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없었다.보보스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에서 따온 용어임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무언가 논쟁적이거나 대립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보보스에 대해서 알아갈 수록 대립적이거나 논쟁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을 특성을 두루 갖추면서 새로운 기득권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본 레포트에서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를 중심으로 보보스에 대해서, 그들의 문화와 삶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2. 보헤미안과 부르주아의 혼합체-보보스2-1. 조화로움의 추구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 149쪽에는 보보 자본주의를 잘 보여주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고 해. 첨단 기술은 아주 넓은 분야인데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첨단에 있는 회사들을 위한 홍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 나는 배우면서 화려한 경력을 쌓고 있어. 나는 해변에 가고 싶어. 서부 해안에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늘 두 번째 고향이지. 나는 곰곰이 생각할 때마다 늘 해변으로 가. 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싶어해. 매년 나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고, 상사들은 전문성 개발 및 교육 프 이 부분에는 보보스의 배움과 성장, 자기 발견 등 보보스 자신에 대한 설명이 다 포함되어 있다. 교육을 통해 부상한 계층인만큼 교육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성취에 대한 무한한 확신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먼저 보보스의 성장 배경에는 바로 이 교육이 있었다. 미국의 대학이 혈연을 바탕으로 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재능에 바탕을 두고 입학의 문을 열고 난 뒤에 대학의 상황은 물론 사회까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버드는 좋은 집안의 사람들을 위한 학교에서 영재를 위한 학교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교육받은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워스프 엘리트의 교육 지배가 종식되었고 명문 학교 학생들은 가문보다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교육의 힘을 지닌 기존에 워스프 엘리트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국가의 사회적 특성을 바꾸려 하였고 그 결과가 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새로운 계층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교육받은 이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혁명 결과 이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보수가 보장되는 만큼 높은 지위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과거 근로 계층이 담당했던 직업들조차 넘겨받게 되었으며 점차 더욱 야심을 갖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교육을 받아 영리해졌으며 성취욕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교육을 받은 계층은 과거 워스프 엘리트들의 문화를 붕괴시켰으며 자신들이 비판하던 그 위치에 임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들이 과거에 비판했던 문제점들 즉 풍요로움으로 인한 문제들에 처하게 되었다는 고민도 자아내었다. 그 해결책은 조화였다.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 가치가 상충할 때 그 상충하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는 방법인 반대되는 것들을 조화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은 간혹 그 경계가 불분명할 때가 있는데 부르주아 주류 문화의 가치들과 60년대 반문화의 가치들이 서로 합쳐진 것이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이처럼 문화와 반문화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서 보헤등이라는 이상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과도한 소비는 피하려 한다.」 - 『보보스』, p49.2-2. 부르주아와 보헤미안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혼합체가 보보스인만큼 부르주아와 보헤미안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보보스를 이해하는데 기본이 될 것이다. 개척 이후에 미국 사회가 안정되면서 성공한 상인들이 유럽의 스타일과 매너를 모방했는데 사실 그들이 유럽의 귀족계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은 귀족적인 특성은 배제하고 건전한 매너를 우선시 하게 되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검약, 정직, 질서, 신중, 근면, 인내, 절제, 정조 등을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미덕으로 예찬하곤 하였다. 이것은 영웅적인 것이 아니고 특별하게 영적인 덕목도 아니며 실용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이들의 매너는 퇴폐적이거나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존경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부르주아는 지나치게 지적이지는 않았고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기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발전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하였다. 이들은 중립적인 것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극단적인 것을 혐오하였다.그런데 점차 지식인과 예술가 등이 부르주아의 지배와 취향에 반항하기 시작하였다. 상인계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예술가들은 더 이상 그들에게 맞춰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반항적인 면모를 취하게 된 것일까.「프랑스의 지식인들은 도대체 중산층에 대해서 정확하게 무엇을 그토록 싫어했는가? 한 마디로 그들의 물질주의였다. 성공에 대한 부르주아의 개념은 모두 돈과 생산성에 관련된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창의성과 상상력, 정신을 존중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식인들은 부르주아가 상스럽고 병적인 계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부르주아가 지루하고 재미없고 비상상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계층이라고 비난했다. 무엇보다도 부르주아는 비영웅적이었다. 과거의 귀족들은 적어도 나름대로 원대함을 동경했다. 하지만 중산층은 초월적인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부르주아의 힘을 모두 물리칠 수는 없었어도 충분한 충격을 안기고 있었다. 사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갈등이 눈에 보이게 양극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문화갈등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였다. 부르주아는 물질주의와 질서, 규칙성, 관습, 이성적 사고, 자기 절제와 생산성을 추구하였는데 보헤미안은 창의성과 반항, 새로움과 반물질주의, 생생한 경험을 추구하였다.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갈등이 절정에 올라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이 둘 사이에서 조화를 추구하며 무언가 균형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보보들은 부르주아의 영역에 들어와서 보헤미안의 특성을 주입했고 보헤미안적인 태도에 들어와서 부르주아적인 제도를 회피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의 경계에 의한 구분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이로써 제3의 문화가 창출되었으며 새로운 규칙들과 규범들이 나타나서 보헤미안과 부르주아의 경쟁적인 규범들을 대체하였다. 그들은 일부 지출은 인정하면서 엘리트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지나차게 저속할 경우에는 억제하는 등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문화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새롭게 규정하였다.)『미국 대도시들의 성장과 소멸』이라는 책을 쓴 제인 제이콥스는 이러한 조화를 추구한 글로 성공에 이르렀다. 이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한 부르주아의 인식론과 상상력에 호소하는 경향이 강한 보헤미안의 인식론에 대해서 제이콥스는 감각과 지각을 모두 갖춘 인식의 방법으로 세상을 보도록 촉구하면서 바람직한 삶은 변화와 다양성, 복잡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모든 것의 저변에는 내적인 조화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후에 제이콥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채택되고 적용되었으며 그 결과 자신들에 대해 겸손함을 갖출 수 있었고 관료들에 대해서는 보다 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되었다.2-3. 지위-소득 불균형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보보스는 부르주아의 문화와 보헤미안의 문화를 조화시켜나갔지만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는 는 영광 속에서 살지만 밤에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서 그들은 밖에 나가 강연을 하고 TV에 출연하고 모임을 주재한다. 직장이 언론계통이라면 그들은 회사 돈으로 호사한 점심을 즐길 수 있다. 하루 종일 그들의 책상에는 전화메시지가 쌓인다. 부자나 유명인사들이 그들의 호의와 관심을 구하기 위해 걸어온 전화들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들은 욕실을 수리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직장에서 그들은 귀족이고 인재 계층의 왕이지만 집에서는 언제나 새 차를 살 수 있게 될지 걱정해야 한다.」-『보보스』pp.198~199지식인들은 이와 같은 지위-소득 불균형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돈이 많은 구성원들과 똑같이 행동하려고 애를 쓰는 경우도 있고 업무비를 최대한 지출하거나 출장 여행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등의 방식이다. 혹자는 집에서 자신의 가난을 최대한 만끽하려 하기도 한다고 본다.2-4. 보보스의 즐거움보보들은 즐거움과 관련해서도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정신을 고양시키고 삶을 확대시키는 것이라면 어떠한 감각적인 즐거움도 좋은 것이지만 비생산적이거나 위험한 즐거움은 모두 나쁜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운동은 좋은 것이지만 흡연은 나쁜 죄악으로 여기는 것이다. 『보보스』에 의하면 보보 시대에 번창한 두 여가 기관은 헬스클럽과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이는 보보의 특성을 잘 보이는 곳으로 모두 바람직한 환경에서 감각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곳이다. 두 장소의 차이가 있다면 헬스클럽에서는 근육을 강화시키는 식의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박물관에서는 사물을 보고 지식을 쌓으면서 정신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보보들이 즐거움을 느끼는데 있어서 과거와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일에서 해방되는 것과도 같았지만 보보들에게는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루한 업무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고 휴식시간에는 그 업무를 잊고 규칙을 깨고자 했지만 보보들에게는 일이 지루한 것이 아니며 도전적이고 다.
    독후감/창작| 2005.12.12| 5페이지| 1,000원| 조회(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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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비교]평강공주와 선화공주
    1. 서론대부분 고전의 산문작품이라고 하면 봉건적이고 틀에 박힌 인물상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여성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봉건적인 것은 물론 순종적인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고전 산문 작품들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윤리가 팽배했던 조선시대에도 후기 무렵에 들어서는 의 박씨부인과 같이 남성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고대의 작품에서 찾아본다면 온달전과 서동설화에 등장하는 평강공주와 선화공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온달이야기와 서동이야기는 각각 와 에 실려 매우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이야기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속에는 공통적으로 ‘공주’가 등장한다. 평강공주와 선화공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과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미천한 신분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출세를 하는 남성들(-온달과 서동-)의 모습보다 더 주목을 이끄는 두 공주들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온달과 서동이 모두 출세를 한다는 점에서 평강과 선화는 매우 비슷한 성격의 인물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두 편의 이야기를 반복하여 읽어보면서 평강공주와 선화공주는 공통점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본 레포트에서는 평강공주와 선화공주를 비교하여 어떤 점에서 공통적이고 또 어떠한 부분에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2. 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功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결과적으로 둘 다 공주의 신분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공주는 자신보다 신분이 미천한 남성과 혼인을 하게 되며 남편이 된 자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 출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처음 말을 사들일 적에 공주는 온달에게,“아무쪼록 상인의 말은 사지 말고 국마(國馬)가 병들고 여위어 버림을 당한 것만을 가려서 사오세요.”부탁하므로 온달은 그의 말대로 하니 공주는 착실히 사육하여 그 말이 날로 살찌고 장대하여졌다. 고구려가 항상 봄 3월 3일 낙랑벌에 모여 사냥하고 잡힌 그 돼지?사슴으로 하늘 및 산천의 신에게 제사하므로 그 날이 되면 왕이 사냥 나오고 여러 신하 및 5부의 병정이 다 따르게 된다. 이 때 온달은 자기가 기른 말을 타고 수행하는데 그 말의 달림이 항상 다른 말보다 앞서고 잡은 것도 많아 다른 사람은 그와 같이 하는 자가 없으므로 왕은 불러 오라하여 성명을 묻고 놀라며 특이하게 여겼다. 때마침 후주 무제(後周武帝)가 군사를 출동하여 요동(妖東)을 치니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拜山)의 들에서 마주쳐 싸우는데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랜 격투로 적군 수십여 명을 베니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서 들이쳐 크게 이겼다. 공을 논할 적에 온달로써 제일이라 하지 않는 자 없으므로 왕은 감탄하며,……』이 부분은 온달을 만난 평강공주가 말을 사는 것부터 왕에게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선화공주 역시 마찬가지이다.『……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獅子寺)앞에 갖다 놓으니, 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에 갖다 두었다. 진평왕이 그 신비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며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온달전에 비하면 매우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여성인물이 공주였기에 서동이 인심을 얻고 왕위에 오르는 비약적인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와 같이 신분적 우월성을 포기하고 미천한 신분의 남자를 만나 고난을 함께 극복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성격을 보이는 두 공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 공통점은 각자 남성인물의 출세에 기여하는 공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3. 선택한 운명과 순응하는 운명의 차이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차이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그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그녀의 나이 16세가 되자 상부(上部)의 고씨(高氏)에게 출가시키려고 하니 공주는 아뢰되, “대왕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고 하셨는데 이제 와서 무슨 까닭으로 말씀을 고치십니까? 필부도 식언(食言)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至尊)이시옵니까. 그러므로 왕자(王者)는 농담이 없다 하였습니다. 지금 대왕의 명령은 그릇된 것이니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왕은 노하며,“네가 나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으면 단연코 내 딸이 될 수 없다. 같이 살아서 무엇하느냐. 네 갈대로 가라.” 고 하였다.이에 공주는 값진 패물 수십 개를 팔목에 차고 궁중을 나와 혼자 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바로 그 집에 당도하여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를 보고 앞에 가까이 가서 절하며 그 아들의 행방을 물으니……』온달전에서 보이는 평강공주는 삶은 공주 자신이 선택한 운명이다. 상부의 고씨라는 부유하고 고위관직에 위치한 집안에 시집을 가서 공주의 신분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주의 모습은 매우 과단성있는 행동이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근대적인 모습도 일부 찾아볼 수 있는 성격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 온달의 집에 도착하여 온달의 노모와 온달을 만나 자신의 뜻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부분, 온달이 출세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전반적인 부분에서 공주가 비범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결국 온달이 출세하고 왕에게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공주가 스스로 공주의 자리를 버리고 온달을 선택하고 온달이 입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한 공주의 능력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공주 선화(善化)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서동은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갔다.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서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童謠)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였는데, …… 동요가 서울에 퍼져 대궐에까지 알려지니, 백관(百官)이 임금에게 극간(極諫)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하였다. 장차 떠나려 할 때, 왕후(王后)가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공주가 귀양처로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서 나와 맞이하여 시위(侍衛)하여 가고자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지는 모르나, 믿고 기뻐하여 그를 따르게 되었다. 그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의 내용이 그대로 맞은 것을 알았다.백제로 와서 어머니가 준 금을 내어 생계를 꾀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이것이 무엇이냐?” 하였다. 공주가 “이것은 황금이니 가히 백 년의 부(富)를 이룰 것이다.” 하니, 서동은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파던 곳에 흙과 같이 쌓아 놓았다.” 하였다. 공주가 듣고 크게 놀라, “그것은 천하의 지보(至寶)니, 지금 그 소재(所在)를 알거든 그 보물을 가져다 부모님 궁전(宮殿)에 보내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다. 』
    인문/어학| 2005.12.12| 3페이지| 2,500원| 조회(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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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역사의 풍경>을 읽고 평가B괜찮아요
    Ⅰ. 서론고대부터 역사를 보는 흐름이 형성된 뒤로 그 관점이 많이 변화해왔다. 처음에 역사를 볼 때에는 마치 문학작품을 쓰듯이 여겨왔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역사 자체를 독립시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형성되었다. 그 이후 산업혁명, 과학혁명 등을 거치면서 대두된 것은 역사의 과학화이다. 과연 역사를 과학화할 수 있고 법칙화할 수 있을 것인가.역사와 과학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예로부터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관심사였고 나 역시도 정말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 또 과학은 다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으로 나뉘게 되는데 그렇다면 역사는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더욱 적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인가.솔직히 역사를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던 나에게 이 책은 역사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뜨게 해줬으며 새롭게 역사를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존 루이스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통해서 역사와 과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Ⅱ. 역사의 과학화, 그 오래된 난제.1. 역사와 지도1-1. 역사가의 특권『역사의 풍경』 책을 들고 첫 장을 넘기면 캐스퍼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가 보인다.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것은 알겠는데 첫 번째 장부터 알 수 없는 그림이 나와있는 것은,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한 설명에서 책이 시작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은 엉뚱하다. 하지만 높은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한 남자의 모습. 이 그림은 역사가의 모습이다. 프리드리히가 그의 방랑자가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묘사한 것처럼 과거를 가깝고도 먼 풍경처럼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가이다. 역사가는 짙고 옅은 안개 속의 형체를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의 중요성을 추측할 수 있으며 때로 그것에 대한 의견일치를 볼 수도 있다. 다만 그림 속의 사내가 어떤 표정인지, 얼마나 높은 곳에 서있는지,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역사가 역시 타임머신을 발명하기 전에는 그 실체를 보기 이란 것은 역사를 보는 역사가 스스로가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무엇을 서술할 것인가 하는 가치를 둘 대상을 정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대단한 것은 동시성으로 이는 역사가가 한 공간이나 특정 시간보다 더 많은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서 같은 시대에서 다수의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고 같은 대상을 여러 시대에 걸쳐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재 우리에게는 보이지만 과거에는 몰랐던 과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볼 수 있는 스케일의 이동도 역사가에 의해 가능하다. 결국 이와 같이 시간과 공간, 스케일을 정하고 조작하는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묘사에서는 이탈하게 된다.1-2. 역사서술과 지도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마치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아서 완벽한 객관성을 지닐 수는 없다. 지도를 제작하는 목적에 따라서 지도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에서 역사 서술과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비유를 통해서 역사가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를 아는 방법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도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역사는 실제 존재하는 지형적 존재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그 목적에 따라 혹은 불가피하게 정확한 길이 및 지형의 모형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도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직접 연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절대적인 근거의 부재 속에서 그 안에 있었던 어떤 일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은 역사가로서 매우 경솔한 일일 것이다.물론 역사와 지도는 다른 점도 있다. 역사적인 입장에서는 직접 가볼 수 없지만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해당 지역에 가보거나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가에게 있어 구조와 과정의 구분이 과거와 현재의 구분이 되는가 하는 점을 두고 역사를 과학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을 되새길 수 있다.2. 역사의 과학화, 과학의 역사화저명한 역사가 카는 19세기 생물학에서 찰스 다윈이 이룬 업적에 대해 과학이 이다. 아인슈타인의 실험은 자신의 실험실은 고사하고 은하계마저도 넘어서는 것이었다는 점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역사가 역시 문헌과 유물같은 현존하는 구조에서 출발하되 그 과정은 추론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는 과거와 분리할 수 없다고 했던 콜링우드의 말은 일리가 있다.이처럼 남아있는 구조를 통해 과정을 원거리적으로 감지하는 것은 역사에 있어서나 과학에 있어서나 비슷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이때 의미있는 개념은 ‘반복적인 고리’이다. 이 개념은 연구방법에 있어서 연역이나 귀납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역사나 진화론적 과학은 연역적인 사고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 과제를 수행하려면 반복적인 귀납적 추론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조와 과정을 연역과 귀납적 추론이라는 틀에 완벽하게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역사이건 과학이건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서 이 두가지 기술을 상황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과학이나 지도학 등을 모방할 수 있거나 그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가들이 하는 일과 다른 학문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교해본다면 역사가 존재의 필요성을 설득력있게 정당화할 수 있고 다른 학문과 역사학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분명히 보여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비교는 사회과학자의 비난에 대응할 수 있는 노리를 마련하고 역사가의 사기를 진작시켜줄 수도 있다. 사회과학적 사고와 역사의 관계는 대상으로 하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비롯된다.Ⅲ. 역사와 과학 - 사회과학인가, 자연과학인가.1. 역사학과 사회과학사회과학자들의 주요 논점은 어떻게 의미있는 일반화를 도출해낼 것인가와 관련된 것으로 그 논의의 중심은 변수와 관련지어 이해하게 된다. 역사가는 독립변수나 종속변수라는 개념에 따라 사고하지 않는다. 역사가는 변수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하는 과정에서 변수들의 상호종속성을 가정하게 된다. 이것을 개별적인 범주로 나누는 것다.사회과학은 이처럼 일반화, 간결화, 보편화를 추구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고 미래 예측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는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지 미래를 아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와 달리 필연적으로 단순한 문제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일반화를 구축하려 애쓰는 사회과학자들은 반복실험과 매개변수의 다양화를 통해서 인과관계의 위계질서를 제울 수 있는 실험실 과학을 모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듯 하다. 그 결과는 뻔한 것을 재확인하거나 명백한 것을 자주 틀리는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역사가가 일반화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역사가는 자신들의 이야기 안에 자신들의 일반화를 묻어두곤 한다. 설명에 일반화를 종속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반화를 시도하는 특정한 일반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사회과학자는 반대로 일반화 내에 이야기를 묻어서 이론을 먼저 내세우고 그에 대한 설명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 일반화된 특정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서 역사가와 사회과학자가 어떻게 다르게 연구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역사가는 보편적이지 않은 일반화를 추구하면서 우연적인 인과관계가 옳다고 믿으며 결과에서 알 수 있는 지식을 토대로 과정을 추적해가는 방식으로 연구한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서 역사가는 특정한 결과의 지식만을 일반화하며 남아있는 구조들로부터 과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든 이러한 과정에서의 변화가 다른 구조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미래에 대해서는 가능한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과학자에게 일반화는 예측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과정의 추적이 곧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되기에 역사와 다른 것이다. 여전히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를 구별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으며 이것이 일관성있는 탐구방법이라기 보다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근대 과학 발전 이전 방식의 검증 과정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사회과학자들는 입장에서 보면 별 도움이 안되는 법칙이라 여겼다. 역사의 비결정적 경로에는 상호종속변수로 기술해야 할 현상들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복잡인과관계를 의미하게 된다.앞서 언급한 카오스와 이 복잡성 이론은 통찰력의 확장을 가져오게 되는데 우선 예측 가능한 상태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옮겨가는 데 따른 환경적 효과를 지적했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모종의 패턴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였으며 이러한 패턴들은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누가 거기에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질서를 가진 시스템이 무질서하거나 그 외의 모습으로 전이하는 경로를 보여줬는데 이는 역사가에게 유용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발전하기 이전이라면 매우 난해한 수학으로 불가능했음직한 예측 가능한 현상과 예측 불가능한 현상 사이의 시각적 묘사를 카오스와 복잡성의 개념이 해결해줄 수 있었다. 결국 카오스와 복잡성이론은 역사가에게 새로운 종류의 문자를 가져다주었고 역사 공간 속의 경로를 묘사할 일련의 새로운 용어를 가져다준 것이다.애덤스가 하려던 과학과 역사의 연결은 이제야 조금씩 타당성을 갖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과학자의 연구와 역사가의 연구 모두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다. 역사가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그러나 역사가는 먼저 거대한 학제간 연구의 세계에서 역사학이 차지하고 있는 전략적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역사가는 방법론적 열등감으로 고뇌할 이유가 없어졌다. 물리학에 대한 동경도 역사가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역사가는 일종의 물리학을 잘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학은 사회과학보다는 자연과학과 연관지어볼 때 그 접점을 찾기가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Ⅳ. 역사가의 역사쓰기역사에서 논의가 오갈 수 있는 중요한 논제 중 하나는 인과관계이며 그 검증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어 왔다. 블로크는 세련성과 일관성, 유용성에서 카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인과관계에 대해서 3가지의 구분방식을 제시하 있다.
    독후감/창작| 2005.12.12| 6페이지| 3,500원| 조회(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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