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기억의 조각들로 재구성된 역사은 한 중년남자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자살을 하는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1979년부터 1999년에 이르기까지, 김영호라는 사람의 인생이 ‘순수’에서 ‘참혹’으로 망가져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총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시간의 역순으로 1999년에서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시간적 배경이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은 한국현대사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20년간의 시대를 - 영호라는 사람의 인생을 하나의 역사로 보았을때 - 시간의 조각, 즉 기억의 조각들로 정의내릴 수 있다. 문자로 서술되는 역사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성으로 기술되지만 영화에서의 역사서술은 이 영화에서 김영호라는 인간이 자살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듯이 과정이라는 내러티브 구조를 취한다. 기억의 조각들로 구성된 이 영화는 에피소드의 나열을 통해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각 사건들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면서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를 일관된 맥락 속에 위치지음으로써 원인과 결과라는 분석적인 역사가 아닌 과정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과정의 역사는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사장되어왔던 주변적 개인과 그들의 다양한 갈등을 표출시키면서 역사는 다양한 논쟁의 과정이며 과정과 변화의 일부라는 점을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 에서 김영호라는 한 남자의 인생을 역사의 대변인으로 내세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문자에 의한 역사서술의 구조 속에 묻혀있던 개별적인 사건이나 역사의 주변인을 수면 위로 드러냄으로써 제도나 사회현상에 묻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인간을 다시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키고 인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정과 사회를 넘어 국가와 세계와의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주관적이고 종합적이며 다면적인 삶의 모습을 역사에 복원시킨다. 역사를 현재 우리의 일상적 삶과 동일한 연결선 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라는 이 영화가 일곱 개의 에피소드라는 한 인간의 경험 혹은 기억의 조각들로 한국구성한 것이 가지는 의의는 크다. 김영호의 인생이 한국의 현대사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속에 서술된 역사가 어떠한 틀 속에서 재구성되며 일련의 사건과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묘사되어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 되는지 살펴보겠다.2. 각 에피소드 속에 드러난 구체적인 역사서술2-1 에피소드 (1) - 야유회, 1999년 봄20년만에 같은 장소에 야유회를 나온 일행 속에 남루한 양복차림의 김영호가 끼어든다. 어지러운 세상사를 다 잊은 듯 춤추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영호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한국의 겉모습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은 역사의 아픔과 고통에 얼룩진 그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미 영호는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퇴락한 인간이고 결국 자살에 이른다. 영호의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는 순수했던 20년전의 과거로 돌아가고픈 욕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죽음을 선택하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역경을 수반해야 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한 개인의 인생이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것은 자본주의의 착취나 부정한 정치 등의 불온전한 역사로 얼룩진 현재의 한국모습과 연관 지울 수 있다. 이후의 에피소드에서 비극적 결말로 이르게 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에피소드의 연결은 기찻길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상징하는 대용물이 사용되는데 기차를 타고 거꾸로 가면서, 즉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영호를 비극으로 몰아온 역사적 배경이 드러나게 된다.2-2 에피소드(2) - 사진기 사흘전, 1999년 봄여기서는 삶을 포기한 영호의 모습과 자살에 대한 결심을 좀 더 확고하게 되는 사건이 등장한다. 영호는 전 재산을 털어 자살 도구로 쓸 권총을 사고, 자신을 파행으로 이끌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총을 쏘고, 경찰이라는 국가가 승인한 막강한 권력에 대항하고, 더 이상 자기를 받아주지 않는 이혼한 부인에게 외면당하고, 결정적으로 그의 삶을 지탱해오던 ‘순수’에 대한 향수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윤순임의 다가온 죽음과 희망을 인지하고 스스로 죽음에 더 다가간다. 영호는 윤순임이 준 사진기를 단 돈 4만원에 팔아버리고, 필름을 현상하지도 않은 채 확 꺼내 순수한 그 무엇이 무용해졌음을 드러내고 펼쳐진 필름을 바라보며 영화필름처럼 지나왔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듯 하다. 각각의 프레임에는 어떤 역사가 들어있었는지, 그리고 자기를 이렇게 만든건 도대체 어떤 프레임 속의 이미지였는지, 삶을 포기한 영호 자신에게는 더 이상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은 현상되기도 전에 노출 되어버린 그 필름 안의 이미지를 볼 수 없고, 영호를 파국으로 몰고 온 과거를 궁금해 하고 그의 자살은 하나의 프레임이 아닌 여러 프레임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고 추측한다. 역사는 단일한 인과관계를 이루는 하나의 사건만이 아닌 복잡하고 다중적인 과정을 통해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3 에피소드(3) - 삶은 아름답다 1994년 여름운전하면서 전화 통화하는 영호의 다중적인 모습들은 역사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닌 다양한 사건과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으로 확대해석 해본다. 또, 미스김과 불륜행각을 벌이는 비윤리적이고 처벌을 받아야할 영호가 아내의 불륜에 대해 처벌자의 입장을 취하는 이중성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을 파탄으로 몰고 온 남성중심적인 제국주의적 권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영호가 경찰로 있을 당시 고문했던 박명식을 불륜의 현장에서 만나는 겉에서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는 박명식의 가정과 상반된 모순되고 굴절된 그의 삶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 삶은 아름답지 않다고 확신하는 영호에게 박명식과의 만남은 자신을 더럽힌 잊고 싶은 과거를 들추어내는 계기로 작용하고 영호는 더더욱 패배감에 시달리게 된다.2-4 에피소드(4) - 고백 1987년 봄학생운동이 극을 달하던 시기에 영호는 ‘고문경찰’이 되어있다. 박명식에 대한 물고문은 ‘박종철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비인간적인 고문들을 영화 속에서 끈질기고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가려진 음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고발하고 있다. 영호의은 것처럼 보인다. 회식자리에서 부르는 ‘내일’이라는 노래를 통해 순수에 대한 그의 향수를 그리고 있고, 벼랑 끝에 매달린 순수는 미성년자 접대부에 대한 충고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윤순임을 대신하는 군산에서 만난 물망초라는 술집 여자에게 첫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영호는 그녀에게 ‘내가 보고 있는 이 비를 그녀도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자기가 어쩔 수 없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과 자신의 삶을 굴절시키려고 하는 존재들로 인한 아픔을 드러내면서 당시의 부패한 시대성을 관객들이 봐줬으면 하는 요구처럼 들린다. 동시에 영호는 부패하고 모순된 역사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2-5 에피소드(5) - 기도 1984년 가을서투른 신참내기 형사인 영호가 이번에는 노조원을 취조하면서 항문에 손을 집어넣는 첫고문을 한다. 부패한 권력의 편에 서서 어제의 동지를 억압하고 그의 순수했던 인생은 한없이 뒤틀리고 오염된다. 그의 죄의식과 자괴감은 자신을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규정시키고 순수한 세계인 윤순임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영호라는 인간 속에서 순수와 불결함의 분리와 대립은 한국현대사에서의 억압과 피억압 구도와 닮은꼴이다. 회식자리에서 그는 미치광이처럼 자전거를 타며 원을 그린다. 마치 자신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르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는 군부정권 체제 하의 국민이 불의와 정의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80년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억압을 하는 대상의 편에 선 영호는 분노한다. 그는 고참 형사들과의 회식자리에서 밀대자루를 들고 그들을 군대식으로 강제하려 한다. 여기서 영호는 군부정권이라는 부패한 권력을 상징함과 동시에 억압의 주체에 선 이들에 대한 반발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한국현대사적 관점에서 억압과 착취를 요구하는 부패한 군부정권에 대해 홍자의 우스꽝스러운 기도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이유로도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시대의식을 드러낸다.2-6 에피소드(6) - 조각에서는 영호의 인생을 굴절시킨 근원적인 원인, 즉 폭력적인 역사의 힘이 영호의 경험을 통해 드러난다. 군대에 입대한 영호는 1980년 5월 18일, 그 어떤 병사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긴급상황에서 윤순임이 보내준 박하사탕을 밟아버리고 면회를 온 윤순임과의 만남은 어긋난다. 역사 속에서 영호는 군대와 정부라는 타의에 의해 그의 순수와 이별하게 된다. 자의와 관계없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러 온 영호는 총에 발을 맞아 쓰러지고 다급한 상황에서 여학생을 보내주려다 오히려 그녀를 자신의 총으로 죽이게 된다. 영호는 타의에 의해 억압을 가하고 또 타의에 억압을 당하는, 자의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역사의 피해자로 그려진다. 영화는 피해자로서의 광주시민, 가해자로서의 군부정권의 대립으로 이분화하지 않고 억압과 피억압의 사이에 놓인 지점에 놓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어 좀 더 비균질적인 다양한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이러한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기억의 조각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동시에 허위와 왜곡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역사쓰기를 함으로써 비판적인 역사읽기를 돕는다.2-7 에피소드(7) - 1979년 가을영화의 마지막이자, 이야기의 처음인 영호의 이번 경험의 조각에서는 그가 죽기까지 향수하고 되돌아가고 싶었던 떼묻지 않은 순수했던 과거를 보여준다. 더렵혀간 그에게 순수의 그리움과 순수로의 회귀는 영화 중에 윤순임이라는 여자, 사진기, 박하사탕, 손이라는 매개로 환기되는데 이것들은 모두 가장 순수한 1979년 가을이라는 현재의 모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1999년 시끄러운 뽕짝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 부르던 사람들은 1979년인 오늘 통기타를 치며 ‘나 어떻게’를 부르고 있는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순임은 영호의 낯설지 않음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영호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광주민주화 운동와 학생운동, 노조운동을 억압할 수밖에 없었던 위치지어 짐으로써 그의 인생은 굴절되고 악몽같은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순수했던 그 자리에서 순수로의 회귀라는
Index1. 서론 - 미술과 영화, 경계의 모호성2. 17~18세기 바로크 미술과 영화 조명2-1 바로크 미술의 특징 - ‘램브란트’를 중심으로2-2 미술작품 속의 빛과 영화 조명3. 19세기 사실주의와 영화의 리얼리즘3-1 앙드레 바쟁이 말하는 ‘리얼리즘의 역사’3-2 사실주의 미술의 특징과 대표적 화가3-3 리얼리티와 리얼리즘 영화4. 20세기 독일 표현주의와 표현주의 영화4-1 독일 표현주의 예술운동에 대해4-2 표현주의 미술의 특징과 의의4-3 표현주의 영화의 회화성5. 결론 - 미술과 영화의 상호발전 가능성1. 서론 - 미술과 영화, 경계의 모호성올해 초 서울 안국동에 있는 사비나 미술관에서 ‘미술, 영화를 해체하다’라는 주제로 『시각서사』전이 열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전시는 영화와의 경계를 넘나들기에 심취한 국내의 미술작가 10명의 이색작업을 보여주는데 작품들을 영화의 이야기 구조, 극적 장면, 감각 영상 설치, 영상, 사진에 대입시킨다. 미술과 영화는 각각 시각과 서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 현대미술 또한 시각은 물론 서사에도 적지 않은 배려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의 미술은 ‘편집’, ‘시각’, ‘서사’라는 영화미학의 키워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시도가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들은 영화적 코드를 차용할 뿐이다. 즉, 미술과 영화는 서로 다른 매체적인 특징이 자리 잡혀 있고 ‘시각’이라는 부분만 접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에서는 미술과 마찬가지로 ‘시각’적인 부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그 중요성은 높다. 미술 - 사진 - 영화로 이어지는 시각 예술의 새로운 유형과 매체의 발전이 이루어져 오면서 영화는 당연히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각서사』전은 또 하나의 예술장르로 자리 잡은 영화의 ‘서사’적 특징을 이용하는 것은 미술의 영향을 받은 영화가 이제는 미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미술과 영화의서 미술이 어떻게 영화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알아보고 현재 미술과 영화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상호발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2. 17~18세기 바로크 미술과 영화 조명2-1 바로크 미술의 특징 - 램브란트를 중심으로바로크란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조화된 이성적인 표현에 비해, 강한 왕권과 함께 나타난 거칠고 과장된 남성 경향의 17세기 미술양식이다. 바로크 미술은 대략 1600년경부터 1750년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을 말한다. '바로크'의 원뜻은 지나치다라는 남용의 뜻이지만, 이상하고 비논리적인 것에서 나온 괴상하고 과장된 형태를 뜻하게 되었으며, 르네상스와 비교해서 바로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보다 빛나는 색채, 음영과 질감의 풍부한 대비 효과,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질 등으로 비고전적, 동적, 남성적, 불규칙적인 성격과 심한 과장성의 표현이다. 회화에 있어서는 대각선적인 구도, 원근법, 단축법, 눈속임 효과의 활용 등이 전체적인 특색이다. 18세기에 들어와서도 바로크는 로코코 양식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바로크 예술은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의 조화를 통한 균형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균형이란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각각으로도 완벽한 부분들이 이루는 전체적인 균형과는 다른 것이지만 매너리즘의 종종 고의적으로 조화를 깨뜨리는 점이나 로코코의 신경질적인 단편성 보다는 오히려 르네상스에서 말하는 균형과 공동되는 점이 더 많다.바로크가 추구하는 화합은 형식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신체적인 참여를 하게하고 그럼으로써 정신적인 참여를 하게 하는 것이 바로크 작품의 특징이다.바로크 미술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첫째, 자연주의적 추세를 부활시킨 카라바조는 예술의 원천으로 관념보다 자연의 관찰을 강조했다. 둘째, 전성기의 르네상스 고전기와 로마 고대 풍습으로의 복귀였다. 셋째, 필수적이며 가장 지속적인 고 초라하게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램브란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 회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것일까? 램브란트는 당시 회화가 종교화건 초상화건 주로 순광을 이용했던 유럽 회화의 틀을 깨고 ‘빛의 새로운 발견’을 하는데 역광, 사광 등 다양한 빛의 위치를 시도하면서 빛과 명암을 활용해 매우 사실적인 색깔과 모양새를 표현해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램브란트를 ‘빛의 마술사’라 부르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과 어둠을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장엄한 효과를 거두는 그의 작품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2-2 미술작품 속의 빛과 영화 조명램브란트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라는 작품을 보면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주위는 어ENQ고 그림의 주인공만 밝게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제대로 된 조명조차 없었을 텐데 그런 식으로 빛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자화상’이란 작품에는 얼굴에 밝은 부분과 그림자 부분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다. 명암대비, 즉 콘트라스트가 높게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서 광원은 그림 주인공의 뒤편에서 약 45도 기울어진 위쪽이다. 얼굴 정면이 아닌 약간 후방이나 옆, 즉 귀가 있는 방향이다. 게다가 얼굴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다 어둡다. 연극과 사진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러한 램브란트 그림 속의 빛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조명을 이용했다. 그의 그림 속의 빛의 방향을 ‘램브란트 조명’이라 이름 붙일 만큼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서는 인물의 내면적인 부분을 드러내고자 하거나 부각시키고자 할 때, ‘램브란트 조명’을 많이 쓴다. 영화 속 인물의 표정이 가장 잘 드러나면서 그에게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 조명은 입체감과 함께 극적인 느낌을 주고 전체는 어두우나 부분적으로 조명을 하기 때문에 인물과 배경을 분리시켜 인물의 윤곽을 살리는 기능을 한다. 램브란트가 그의 작품에서 상상했던 빛들은 영화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사용되어질 정도로 그였는데 루이 14세는 카를레스 루브렁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로 존재의 영속에의 염원을 해소하였다는 예가 있다. 누구도 모델과 초상화의 존재론적 동일성을 믿지는 않지만 모델을 회상하는 것을 초상화가 돕는다는 것, 그래서 그 모델은 제 2의 정신적인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도록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은 이 같은 열망의 충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미술은 상징주의와 리얼리즘 사이에 다양한 밸런스를 실현시켜왔다. 정신적 실재의 표현과 외부세계의 복제라는 두 가지의 양상을 띄어왔다. 회화 이후 과학의 발전은 사진이라는 매커니즘을 발명하게 되고 사진은 본질적인 객관성이라는 독창성으로 리얼리즘의 역사를 이어간다. 사진은 회화가 사실에의 집념을 결정적으로 떨쳐버리고 그 미학적인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또 영화는 ‘시간의 연속성’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하나의 언어로 작용하고 사진의 객관성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그 역사적 위치를 설명한다.3-2 사실주의 미술의 특징과 대표적 화가사실주의란 실재하는 현실을 주관적으로 변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태도를 말한다. 사실주의 미술은 추상예술, 고전주의, 낭만주의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19세기 콩트가 주창한 실증주의의 영향과 함께 이상주의 적 계몽주의와 환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한 예술운동이다. 프랑스의 쿠르베가 당시의 아카데미즘 화풍에 반항하여 현실적인 모습을 그린 사생화가 유명한데 쿠르베는 “나에게 천사를 보여주면 나는 그것을 그릴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고상하고 우아하며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당시의 지배적인 미적 규범을 깨고 평범한 사람들, 노동자들을 그린 , , , 이 대표적이다. 사실주의 미술운동을 함께 한 화가로는 로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와 , 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도미에가 있다.3-3 리얼리티와 리얼리즘 영화사실은 굳이 사실주의 미술운동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발견된 회화의 사실적 묘사나 투시도법상적이거나 판타지한 요소를 배제하고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사회구조의 모순을 포착하고 드러내며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서사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영화와 사실주의 미술의 유사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19세기 말에 탄생한 영화가 처음부터 현실을 그대로 모방하는 리얼리티 추구의 가장 발전된 예술형식으로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리얼리즘 영화가 또 다시 대두한 것은 현실 외부 세계를 모방하는 미술 또한 소재와 주제, 스타일적 측면의 변화로 하나의 예술운동을 펼친 사례가 리얼리즘 영화의 탄생에 영향을 조금이나마 미쳤다고 주장하는 것이다.4. 20세기 독일 표현주의와 표현주의 영화4-1. 독일 표현주의 예술운동에 대해20세기 초, 극단적인 번영과 평화의 시대로부터 분열과 파괴로 이어지는 변화와 혁신의 사회 상황 아래에서 종래의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와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는 정신적 위기의 세대, 그리고 뛰어난 지적 예술적 활동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진행되는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 미술에서는 표현주의가 나타났다. 표현주의란, 인간이 지니는 특정한 감정이나 정서적 메시지를 방출 또는 전달하는 시각적 제스처를 통하여 보는 이를 감동시키려는 의도에서 발전된 미술을 일컫는 말로, 현대 독일에서 가장 활발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표현주의에 속하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주의자라고 일컫거나, 그 목적을 정의했던 그룹이나 운동을 행한 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표현주의란 말은 '일상주의' 혹은 '재현'의 의미에 반대되는 단어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술학자 레이마리는 표현주의를 '특정한 어떤 예술 경향이 아니라 사회적 위기나 정신적 불안정 상태가 고조되었을 때 나타나는 생활감정'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협의의 개념에서 미루어 볼 때, 표현주의는 반인상주의에서 출발한 움직임이었다. 즉, 외계의 재현을 기본으로 삼고 있던 인상주의었다.
여러 권의 책 중에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공지영 그녀는 나에게는 페미니스트 하면 '공지영' 이라고 나의 머릿속에 강하게 기억되어져 있었다. 오래 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 나에게는 페미니스트 공지영인 것이다. 나에게 그렇게 기억되어져 있는 그녀가 쓴 수도원 기행이라는 책은 이번에 나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까? 라는 호기심도 생기게 되어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공지영 이라는 작가가 유럽의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일어났던 일과 풍경을 쓴 책이었다. 그녀는 일상의 생활에서 너무나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엄마로써...... 주부로써...... 작가인 그녀가 힘에 부쳤던 모양이었다.그렇게 힘들었던 그녀가 우연히 유럽의 수도원을 기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18년 동안 한번도 찾지 않은 성당을 찾아다니게 되었던 것이다.그녀는 이 기행이 "내게 혼돈과 공허 그리고 삶과 사람들에 대한 허무감에 싸여 있던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내 어둠과 공허는 진정 창조의 질료가 될 수 있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공허에 참회의 눈물이 보태어 진다면 어쩌면 무언가가 새로이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이 캄캄해진 후에야 비로소 필요했던 새 인생이 오는 법이라고 그것이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 그녀는 기도했다.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나의 무언가 모를 동질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그녀가 대신해 주는 것 같아 점점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 같다.지금의 나도 예전의 작가와 같이 열심히 성당을 다녔지만 지금은 성당을 가지 않은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거 같다. 작가인 그녀가 우연한 기회에 유럽의 수도원을 기행 하게 된 것이 당신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처럼 나 역시 힘들어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나에게 이 책을 읽고 삶의 의미를 되찾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당신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그녀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 된 수도원 중의 하나인 아르정탱 베네딕트 여자 봉쇄 수도원이다. 첫 건물이 580년에 세워졌으나 1944년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수도원 기행의 첫 장소, 처음 만난 수녀님의 얼굴은 뭐랄까? 좋아서 죽겠는 그런 얼굴이었다. 어떻게 평생을 창살 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여행자는 의문에 잠긴다.적응할 수 있는가를 시험받는 청원기 1년 , 베네딕트 수도회의 전통답게 하루 8번의 기도 시간을 갖고 모두 노동을 해야 하는 규율은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고 나면 수련 수녀가 된다. 그 기간은 2년 그리하여 기한을 정한 유기 서원기간이 3년, 총 6년의 기간이 끝나면 종신서원을 하며 머리에 쓴 흰 수건 위에 검은 베일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할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수녀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가둠으로써 제일 큰 것을 얻는 것이다. 세상의 작은 것들을 버리고 제일 큰 것을 얻었으니 더 바랄게 없다고...... 정작 수녀님은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았다.작가는 또 낯선 수도원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녀는 여행을 하면서 젊은이를 보고 다시 젊어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한 길은 몇 개 안 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라고......다음으로 찾은 곳이 그레고리안 성가의 본산 솔렘 수도원을 찾았다. 아르정탱과는 달리 신자들이 기도 시간에 많이 와 있었다. 또한 크고 밝고 규모도 웅장하다. 하지만 수사님들과 신자들 사이에 철창이 쳐진 것은 아르정탱과 같았다. 여기서도 수사님들의 식사는 소박하기 마찬가지다. 빵과 물, 오렌지가 수사님들의 식사의 전부이다.수도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것 같다. 그 분들은 하느님의 일꾼이 아닌가. 일생을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나는 그 분들을 보면서 외로워 보일 때가 있었다. 일생을 혼자 있어야 되지 않는가? 결혼생활 오래 한 남자들이 말하곤 하지 않는가! 이제는 좀 혼자 있고 싶다고......이런 말은 그 분들에게는 오히려 서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나가고 싶어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들어가고 싶어하고 나이가 들수록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하나를 버려야만 하는 진리는 피부로 와서 전해진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이러한 것을 두려워한다.인생을 성공하려면 이러한 것을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많은 나에게도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말 인 것 같다.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고......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 밖에는 살 수 없는지 그걸 밝히고 싶다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때마다 상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면서 가면 위에 가면이 덧씌워지고 그 위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그리하여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이러한 것들 때문에 그 분들은 성직자의 길을 걸어가고 계시는 것인가. 아님 성직자의 길을 걸어 가면서 이러한 것들을 잊고 살려고 하는 것일까?나 또한 세상을 등지고 살려고, 잊으려고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 공지영 역시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은 소망을 조금이나마 이루고자 유럽 수도원 기행을 한 것 같다.성직자의 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보다 더 행복한 삶이란 말인가?나는 한때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성직자의 길을 갈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때 힘이 든다고 해서 도피처로 성직자의 길을 가기가 싫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성직자의 길을 가고 싶어 할 때가 온다던가 성직자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되면 그땐 주저 없이 그 길을 갈 것이다.세상에서 얻는 것이 작은 것이라면 성직자 분들의 삶에서는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성직자의 길을 걸어가 보지 않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잡지와 광고-목표소비자층의 집중공략-잡지와 광고간의 밀접한 관계는 광고주에 의해 제공되는 경제적 뒷받침 때문만은 아님.-실제로 광고는 때때로 잡지내용의 한 부분이 되며, 잡지를 읽는 주요 이유들 중 하나가 됨.-광고매체로서의 잡지는 목표 소비자층의 집중공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임.-전문화한 잡지는 신문이나 방송같이 한번에 엄청난 수의 오디언스에게 다가가지는 못할지라도, 잠재적 구매자에게 가장 확실히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됨.-그래서 때로 잡지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소비주의 문화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기도 함.- 특히 여성지의 경우 두드러짐.-가정의 소비주체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여성지들에는 온갖 상품 광고가 범람하게 되고, 이 광고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충동질한다는 것.-광고가 잡지에 끼치는 해악 중 또 하나는 광고주가 기사내용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임.-광고주의 압력으로 광고 내용과 상반되는 기사내용이 삭제되고, 기사내용이 광고상품, 나아가 소비주의 문화에 대해 직간접의 홍보 전위부대 역할을 하는 경우고 흔함.-나아가 광고주들이 독자수가 많은 잡지를 선호하므로 대부분의 잡지들이 보다 많은 독자확보를 위한 선정적인 기사를 쓰게 되기도 함.-한편 광고주들은 잡지의 배포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침.-대부분의 잡지들이 우편을 통한 정기구독 판매와 서점을 통한 낱권 판매 모두에 의존-양자의 비율이 광고주의 선호에 따라 결정되는 것-어떤 광고주들은 각 호를 위해 돈을 내고 사보는 독자들이야말로 질정 금액을 선불하고 매호를 다 받아보는 정기구독자들 보다 그 잡지를 더 주의 깊게 읽을 것이라 믿음. 이들은 당연히 같은 부수라면 서점판매 비율이 높은 잡지를 선호-반면 어떤 광고주들은 매호를 다 구독하는데 담겨 있는 그 잡지에 대한 잠재적 충성도를 높이 삼. 이들은 같은 부수라면 정기구독 비율이 높은 잡지를 선호-만약 광고주들이 서점판매를 선호하는 쪽으로 쏠린다면 잡지사는 서점에 낱권으로 판매하는 잡지의 가격을 내리고 대신 정기구독을 할인혜택을 없앰으로써 서점 판매 비율을 높이게 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