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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 답사기
    ★★가슴아픈 나의 창덕궁 답사기..처음으로 고궁 답사 과제를 하게 되어 오랜만에 나들이를 간다는 생각에 기대도 되었고 창덕궁 답사 당일도 우리 문화유산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들뜬 마음으로 창덕궁을 찾았습니다. 문화재 보호와 자연경관 보호를 이유로 창덕궁 뒤편의 신선원전,의로전,옥류천.관람정,연경당 등은 관람에서 제외되어있어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다른 궁궐들과 달리 정해진 시간이외에는 관람이 되지 않고 또 친절한 도우미에게 재미있는 일화와 궁궐에 관한 해설도 들을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짜임새 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결국 한번 간 것으로 답사에 대한 자료가 충분치 못해서 3번 답사를 다녀왔습니다만 다녀올 때마다 우리나라 궁궐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창덕궁마저도 일제시대의 상처는 지울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고. 비통하고 분한 마음으로 금호문(관람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나가게 되어있는 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수업 시간 중에 교수님께 배운 일제 강점기의 강의 중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하시키기 위하여 문화재를 훼손하였던 대목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우리 궁궐을 파괴했다는 가장 대표적인 표식인 잔디밭이 창덕궁에도 군데군데 있어서 보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예전에 인정전을 중심으로 그 동서남쪽에 궐내각사 여러 관서들이 배치되어 있던 것도 일제시대에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하니 정말 가습이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답사를 하던 어린아이와 몇몇 어른들은 이런 창덕궁의 가슴아픈 역사에도 아랑곳없이 우리나라 궁궐은 역시 볼게 없다며 툴툴거리며 나오는 모습또한 저의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결국 창덕궁 답사로서 궁궐에서 행정과 정치가 이루어지던 모습을 상상해 보기란 불가능했던거죠. 어쩔수 없이 동궐도 란 그림을 보면서 '아~ 예전에는 이러이러 했겠구나 하며 위안을 삼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하지만 가을 단풍이 완연한 모습과 그 자연환경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창덕궁의 아름짓게 된 것 입니다. 궁궐이 완공되기 이전인 10월 11일에 이미 한양으로 옮겨 와 있던 태종은 창덕궁이 완공되자 바로 이곳으로 들어옵니다. 이로써 법궁인 경복궁, 이궁으로 창덕궁이 있는 법궁-이궁 양궐체제가 마련된것이죠.왕들은 필요에 따라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며 생활하였습니다. 처음 완공되어을 때 창덕궁의 규모는 195간으로 775간이던 경복궁에 비하면 약 3분의 1정도였습니다. 따라서 그 이후 창덕궁 터가 넓어졌고, 건물들이 더 들어서기도 하고 또 다른 시설들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왕실 가족이 늘어나고 또 궁궐에서 활동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창덕궁은 이를 수용하기에는 좁아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종 14년(1483)에는 창덕궁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새 궁궐을 지었으니 이것이 창경궁인 것이죠.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독립된 궁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합쳐서 하나의 궁궐로 쓰여졌습니다.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서울의 궁궐과 관아 등 주요 건물들은 왜군의 손에 의해 모두 불타 없어졌습니다. 의주까지 몽진(蒙塵)하였다가 1년 반만에 서울로 돌아온 선조는 정릉동-지금의 덕수궁 터에 임시로 행궁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죠. 선조는 궁궐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습니다.궁궐은 광해군대에 가서야 복구되게 됩니다. 애초에는 법궁인 경복궁을 우선 중건하려 했으나, 경복궁은 불길하다는 의견에 따라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였습니다. 이로서 경복궁은 그후 고종 초년에 중건될 때까지 약 270년간 빈 터로 남게 되었고,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광해군은 창덕궁, 창경궁 외에도 인왕산 아래, 지금의 사직단 뒤편에 인경궁, 그 앞쪽 지금의 새문안길가에 경덕궁을 새로 짓는 등 궁궐 공사를 크게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몇가지 무리한 정책으로 인하여 왕이 된 지 15년이 되는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고 인조가 왕위에 즉위하죠.인조대에는 광해군이 지었던 인경궁을 헐어다 창덕궁과 창경궁종에게 압박을 가하여 고종은 4월 3일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두달도 못되어 다시 경복궁으로 옮기는 등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이른바 '갑오경장(甲午更張)'을 실시하게 하는 등 계속 우리나라에 압력을 가하였습니다. 고종과 그 비인 명성왕후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막아보려 시도하지만, 일본은 이에 1895년(고종 32) 8월 20일 일본 공사 마우라가 일본 공사관 직원, 일본 군인, 일본인 자객들, 그리고 일본의 영향하에 있는 조선 군대 등을 이끌고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왕후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이죠. 이렇게 압박을 가하는 일본을 외국의 힘을 이용하여 막아보려고 고종은 1896년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입니다. 이로써 법궁인 경복궁이나 이궁인 창덕궁 모두 빈 궁귈이 되고 말았죠. 다시 궁귈로 돌아오라는 국민들의 여망에 따라 고종은 1년만인 1897년 2월에 환궁(還宮)을 하는데 그때 고종은 경복궁도 창덕궁도 아닌 러시아 공사관이 들어 있던 지역에 새로 궁귈을 짓고 그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경운궁(慶運宮)입니다. 이로써 경운궁은 10년동안 파란만장한 우리 근대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습니다.1907년 고종은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들을 파견하여 우리의 형편을 세계에 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삼아 고종을 강제로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그 아들 순종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고종은 그대로 경운궁에 머물러 있게 하고, 순종은 창덕궁으로 옳기게 하였죠. 이로써 15년 가까이 비어 있던 창덕궁이 다시 왕이 사는 궁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순종은 이미 아무런 힘이 없는 왕이었고 모든 결정은 일본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이 무렵부터 창덕궁은 일본의 의도대로 변형되어 왜곡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10년 8월 22일 창덕궁에서 한일 '병합조약(倂合條約)'이 강제로 이루어졌고 우리나라는 국권을 상실 합니다. 외전의 중심을 이루며 공식 행사를 치루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법전(法殿)이라 하며, 왕과 신하들이 공식 회의를 하는 건물, 다시 말하자면 왕의공식적인 집무실을 편전(便殿)이라 합니다.외전에서 더 궁궐 내부로 들어가 배치되어 있는, 왕과 왕비가 기거하며 활동하는 공간이 내전(內殿)입니다. 내전에는 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며 신하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건물이 있는데 이를 왕의 연거지소(燕居之所)라 합니다. 내전에서도 가장 깊은 곳, 궁귈의 가장 은밀한 중심 지역 에는 왕비가 기거하며 공식 업무를 보는 건물이 있는데 이를 중전(中殿) 또는 중궁전(中宮殿)이라 부릅니다. 궁궐 정문과 외전, 내전은 대개는 궁궐의 중심축에 배치 되어 있습니다.내전과 외전의 주변, 주로 서편에는 궁궐에 들어와 왕을 자주 만나면서 활동하는 관원들의 공간이 있는데 이를 궐내각사(闕內各司)라 합니다. 궐내각사에는 대신들이 왕을 만나기 전이나 만나고 나와서 모이는 건물인 빈청(賓廳), 사헌부와 사간원의 언관(言官)들이 머무는 대청(臺廳), 이조와 병조의 관원들이 인사(人事)업무를 처리하는 정청(政廳), 왕과 함게 경연(經筵)을 하는 등 학문적인 자문을 하는 홍문관(弘文館, 일명 玉堂), 왕의 비서실이라 할 수 있는 승정원(承政院), 왕실 문서 및 일반서적을 관리하고 학문 연구, 감찰 기능 등을 가지고 있던 규장각(奎章閣),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예문관(藝文館),역사를 기록하는 춘추관(春秋館), 왕과 왕실의 약을 조제하는 내의원(內醫院) 그리고 사옹원(司饔院)을 비롯하여 왕실과 궁귈의 각종 살림을 맡아 보는 관청들과, 내병조(內兵曹)를 비롯하여 왕과 궁궐을 호위하는 각종 군사관계 관청 등 수많은 관청들이 있습니다.내전 및 외전의 동쪽에는 세자(世子)의 집이 배치되는데 그래서 이를 동궁(東宮), 또는 춘궁(春宮)이라 합니다. 동궁 부근에는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세자를 호위하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등이 배치됩니다. 내전 뒷편으로는 왕실 가족과 그들을 시중드는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국가 주요 문화재로 지정·보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사적 제 122호)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됨으로써 국제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인류 공통의 문화재로 공인되었습니다.- 찾아가는 길창덕궁에 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고 1, 3, 5호선이 지나는 종로 3가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돈화문로를 따라 걸어가거나 아니면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율곡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는 방법이 있고, 기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원래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보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정도라 할 것이며 그렇게 해야 돈화문을 제대로 보면서 정면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지금은 주위에 온통 건물들로 둘러싸여져 있어서 예전 조선시대의 창덕궁의 위엄을 느끼며 정문에 도달하기는 힘들다 할 수 있습니다.원래 돈화문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지어 높이 우러러보게 되어 있으며, 이층에는 큰 종이 달려 있어서 시간을 알려주거나 비상시에 위급을 알리는 용도로 쓰였다 합니다.하지만 지금은 이 종이 없는 상태입니다-돈화문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입니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지금 이 길은 그냥 한길로 되어있지만 원래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길로서 가운데 길은 어도(御道)라 하여 왕이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돈화문의 세 문중에서 가운데 문이 약간 더 큰데 이 역시 왕만이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이겠죠.이런 구조는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부용지에 있는 어수문의 경우에는 좀 더 심하다 하겠습니다.이처럼 각각의 문에도 엄격한 신분에 따른 구별이 있었습니다.-금천교지금은 흐르지 않지만 돈화문에서 몇십미터 북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창덕궁 내부가 있고 그 사이로 북에서 남쪽으로 개울이 흘렀다고 하는데 이를 금천이라 하며 궁궐의 안과 밖을 구별하는 의미와 배산임수의 뜻을 살리기 위한 명당수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금천에는 당연히 다리가 있는데 이 금천교가 바로 그것이지요.금천교는 창덕궁에서 가장 나이6호)
    독후감/창작| 2011.02.04| 11페이지| 1,000원| 조회(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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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박물관들
    물의 과학관 (동경 오다이바) 물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을 통해 배워가는 전시관대형 화면, 움직이는 전동의자, 사운드를 이용해 물의 생성과 흐름 기타 과학적 사실들을 체험하는 다이나믹 영화관.관람객들의 질문 및 참여로 진행되는 실험. 평범한 수돗물을 과학적 원리로 변신시키는 실험쇼.물의 힘을 보여주는 실험기구를 설치, 관람할 수 있게 만든 유리전시관.수도공정의 전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견학용 수도처리장.수도관 누수 발견 게임입장권게임각 층에 설치된 컴퓨터에 삽입,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입장권의 기능 중 하나.www.waterworks.metro.tokyo.jp/pp/kagakukan/kagaku.htm배의 과학관(동경 오다이바 소재) -배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 제조 과정부터 원리, 기계 시설 등을 전시해놓았다.-배를 띄우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선박용 대형 디젤기관의 실험기를 시작으로, 각종 기게나 스크류 프로펠러등을 소개하고 견학하는 곳.-배를 만들다 배의 제조공정을 보여주는 파노라마와, 각종 선박의 모형 그리고 그 기초 설계도 부터 완성도에 이르기까지 선박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전시관.마린 씨어터-파노라마 모형관 바다에서 이뤄지는 모든 해양개발의 모형들을 전시www.funenokagakukan.or.jp-해양체험 교실 주기적으로 테마를 정하고 보트타기나 수상훈련등 바다에 관련된 체험교실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 이 외에도 마린숍이나 야외 풀장 등을 운영하고 있음-모터스포츠 시뮬레이션 입체 영상을 보며 F-1경주 실제 속도와 승차감을 체험할 수 있는 기구-메가 씨어터 자동차 경주의 느낌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관-시승 전시관 안에서 고른 토요타 자동차중 하나를 타고 전시장 파빌리온 안을 2바퀴 일주할 수 있다.-자동주행 소형EV코뮤터를 타고 자동주행을 해본다. 각 파빌리온을 잇는 레일위를 자동으로 달리는것.토요타 MEGA WEB (동경 오다이바 소재) 3개의 파빌리온 (전시관)으로 나뉜 토요타 전시장. 토요타 , 고층빌딩에서의 대지진 모의체험이 가능하다. 진도 1에서부터 7까지의 지진을 체험.초기화제 진압 체험. 스크린의 화재영상에 직접 소화기를 발사해 봄으로써 소화기의 사용방법과 대처능력을 배워나간다.지진학습관(동경 메구로구 중앙동 소재)http://www.city.meguro.tokyo.jp/bosai/center/annai.htm과거 지진에 대한 사실, 지진 메커니즘 등을 영상을 통해 학습연기체험실 인체에 무해한 연기를 실험실에 가득 채운 후, 화재시 연기 속에서의 피난자세 및 방법 등을 배우는 체험실. 유독 연기의 유해성을 배울 수 있다.- 이 외에 지진에 관한 각종 전시물 및, 지진 측정에 관한 기계 전시.집이나 거리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게임을 하면서 체험해보는 게임부스토요타 관(아이치 박람회소재)로봇과 1인승 자동차 I-Unit과 I-foot 을 선보이며 줄거리가 있는 퍼포먼스 쇼를 한다. 모든 로봇은 무인으로 움직이며 무용수들은 I-unit위에 올라타거나 춤을 추며 공연을 진행, 조명과 기타 레이저쇼가 같이 병행된다.아이치 박람회 안에 있는 토요타 관은 로봇과 미래형 1인승 자동차 I-Unit, I-foot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직접 작동해보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타거나 만져보는 것은 가능. 관람소요시간 50분. 그 중 퍼포먼스 쇼는 30분 정도expo.toyota-g.com장난꾸러기 보물섬 (아이치 박람회 소재) - 음식과 놀이가 테마인 초등학생 가족 대상의 체험관. 체내 소화 과정을 나타낸 미끄럼틀을 타며 소화를 배우고, 그 밖에 영양소에 관해 배우는 곳.-곤(전시관 마스코트)의 뱃속 미끄럼틀 곤의 입으로부터 항문까지 미끄럼틀로 구성된 소화과정 공부 프로그램-곤과 함께 하는 건강발견 멀티스크린 극장-음식 속에 포함된 5대 영양소를 소개. 또 '무엇을 먹을까'라는 코너에서는 평소 균형 잡힌 식단의 중요성을 강조-가공식품 월드 가공식품의 원리와 선조들의 음식 저장 지혜를 공부www.expo-wanpaku.com바나나 열대우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최신작이나, 알타미라 동굴벽화 복제품 등을 전시한다. 또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알 수 있는 완구들을 전시하여 직접 체험하게 한다.-스포츠 관 스포츠를 테크닉, 파워, 건강, 신체, 도구 5가지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교실. 어린이들의 도전을 유도하는 체험형 전시장치로 실제로 몸을 움직이게끔 유도한다.공작교실 건강의 재발견을 테마로 여러 재료로 다양한 공작을 해보는 교실이 외에 과일 당도측정 코너 (과일의 껍질을 벗기지않고 당도를 측정해 본 후 직접 먹어보아 당도에 대한 미각을 배운다.), 미니 쌀 갤러리 (컴퓨터로 공부하는 쌀에 대한 지식) 등이 있다. ** 관람 소요시간 1시간 정도미쯔비시 관 – 만약 달이 없었다면 (아이치 박람회 소재) 달과 지구와의 관계를 알아가는 전시관. 와카마루라는 로보트가 입구에서 어린이들을 맞이하고 대강의 설명을 한 후, 까만 벽에 설치된 지구와 달의 모형이 조명을 받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5분 정도의 퍼포먼스가 진행.와카마루IFX 시어터. 거대한 화면에 둘러싸인 좌석. 그리고 바닥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 입체공간 속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전시물들은 영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달과 지구에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입구웨이팅 존전시관IFX 시어터에필로그www.mitsubishi.com/expo2005-메인 어트랙션 스캐닝 된 모든 관람객이 순식간에 CG화 되어 극장 화면에 배역으로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미래 캐스트 시스템」 관람객 참가형 극장이 전개되고 있다. 미쯔이와 도시바의 디지털 기술을 자랑하는 곳.미쯔이,도시바관(아이치 박람회 소재)www.mt-expo.com호베츠 지구 체험관 (홋카이도 호베츠 소재) - 지구의 생성 과정에 관해 배우는 전시관. 울창한 열대 우림, 사막, 용암 등 지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대한 모형으로 설치해 놓았다. 기온이나 습도 등도 생성 시기와 똑같이 재현해 놓은 것.-열대우림존 기온 40도, 습도 80%의 열대우림을 그대로 재현. 신기한 동.식물도 그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기온 또한 매우 낮게 설정해놓아 추위가 느껴지는 전시관.-해저 바다 밑의 해저지형을 재현해 놓았다.- 우주 모형관안내원들의 모습 입장료 대인:1000엔 소인:500엔-지하 1층 우주의 팽창과 원소들에 관해 공부-지하 2층~ 1층 공룡의 생성 및 지구의 생성 반복과정을 모형으로 소개. 원시 시대 모든 생물의 모형을 전시-2층 인간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공부한다. 자기, 전기, 동력, 빛 등에 관한 탐구를 실험 기계를 조작해보며 배워간다.국립과학박물관** 국립과학박물관 신관은 동경 우에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외에 국립 식물원과 신주쿠 분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우에노 신관. (본관은 내부공사 중이라 홈페이지가 잠정 폐쇄 중) 연구소가 박물관과 함께 자리하고 있어 홈페이지에서는 각 연구에 대한 자료 및 결과도 함께 발표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교수진이 돌아가며 강연회를 펼치는 프로그램이 있다. 지금은 공룡 특별전을 개최 중이며 신주쿠 분관도 공룡전시를 하고 있다.-3층 지구를 달리는 생명이라는 테마로 각종 포유류 및 조류의 생성과 파멸 과정 등을 조명한다.체험광장 발견의 숲- 잡목림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 걸으면서 살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옥외 전시관 실제 크기의 로켓트 발사대, 1939년 만들어진 화물열차, 지구에 현존하는 가장 큰 고래모형 등을 전시1층- 지구환경과 공생을 위해지구환경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스크린.최첨단 기술로 찍은 지구의 여러 모습을 보여 준다. 직경 1미터의 지구본에는 눈의 움직임, 기온의 변화, 강수량의 변화, 엘니뇨 현상 등을 표시해 놓았다. 지구본을 건드리면 화면에 영상이 떠오르는 기능도 있다.미생물을 이용한 정화기술을 소개하는 곳. 미생물의 중요성을 알수있는 자료와 쿠웨이트의 원유정화기술을 소개하고 있다.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소개. 바이오 제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코너과학 미래관(동경 오다이바 소재)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없애기 위한 연구를 전지 실험 부스. 직접 참가해서 체험해 볼 수 있는 실험코너3층- 기술혁명과 미래아시모와 피노. 인공지능 로보트로 과학미래관의 마스코트이다. 전시관에 대해 설명하고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같이 걸어다닌다. 전시관을 순회하며 사람과 똑같은 표정이나 몸짓 행동을 보여준다.각종 작업 로봇의 소개 및 움직임을 직접 보여준다. 네발 로봇, 중형로봇 등 3개의 로봇이 전시되어 있다.인공지능 로봇의 연대기를 전시로봇의 오감, 근육, 두뇌등에 관해 알아간다. 로봇 축구등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곳.구조로봇 2대가 전시되어 있다. 리모콘으로 직접 컨트롤해 보며 로봇의 구조활동을 지켜본다.연구관계자들의 인터뷰 상영마이크로 머신에 대해 소개하고 직접 조작해보는 코너마이크로 머신의 제작과정 소개전시용으로 제작된 마이크로 머신 제작센터. 현미경으로 마이크로 머신을 살피거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다.자기부상열차의 원리를 소개. 작은 모형 등으로 자기부상의 원리를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초전도 실험실.원자에 대한 이해,LSI, 광통신 시스템, 나노에 대해서 견학, 체험하며 공부해 나간다.PC공부방, 도서관, 그리고 벽면이 스크린으로 구성되어있는 시청각 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층 별 실험 참여 및 설명회 등의 스케쥴과 주제에 관련된 시간표가 마련되어 있다. 가이아 상영관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무료 실험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4~12명을 모집하여 무료 및 유료로 참가하여 같이 실험하며 공부하는 코스로 한달 동안 매일 여러가지 실험들이 준비되어 있다. 실험교실에 관한 스케쥴도 인터넷 사이트에 업데이트 되어있다.5층 - 생명 과학과 인간인체에 대한 공부, 생명복제, DNA, 게놈, 그리고 뇌의 구조와 모습에 관한 것들을 축소 실험실과 화면, 그리고 모형으로 알아간다.5층 – 지구환경과 프론티어우주과학 실험실 및 우주선내의 생활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 우주선내의 환경을 무중력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VR시어터6층- 가이아 상영관별자리 및 우주의 모습들, 로보트와의
    인문/어학| 2005.05.19| 24페이지| 2,000원| 조회(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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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분 국학] 일본의 국학
    일본의 국학(國學)1.국학이란 무엇인가2.국학의 성립3.국학의 입장 및 사상4.국학의 계승자5.맺음말♠국학에 대해 알기전에 먼저 주의해야 할 점 3가지1.국학을 단지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2.절대로,Never Ever~!한국인의 고정관념으로 국학을 바라보지 말라.3.조금은 탈고정관념적인 국학의 황당한 면모에 웃을 수 있는 맘을 갖자.1.국학이란 무엇인가?국학은 순수한 의미의 학문이 아닙니다. 불교나 유교처럼 사상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갖고있는 것이기도 하며 양명학, 고증학 같은 학문들처럼 연구에 의미를 두는 학문의 일종이기도 하고, 새 관점의 인간의 이해이기도 하면서 또 다분히 철학적인 깊은 성찰의 면모도 지니고 있습니다.이게 무슨말이지? 다분히 다방면적이고 또 어찌보면 모호하기도한대...라고 생각되실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국학입니다.다방면적이고 모호하기도 하며 잡거성을 띄고 있죠.국학은 일본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살아온 일본인의 독특한 인간관. 세계관을 그 무엇보다 뚜렷이 형상화한 사상입니다.조금 편파적인 표현이지만 우리조는 엽기 제멋대로 사상 이라고 나름대로 국학의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지요.^^國學. 한자의 의미에서 느껴지듯 국학은 국수주의적인 것입니다.예로부터 줄곧 친하게 지내왔던 중국조차도 그들에겐 외세로 취급되었고(서양은 당연히 더한 배척이 있었겠죠?) 오랜 역사의 유교조차 그들에겐 이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일본사상을 평할 때 자주 회자되는 문구로 일본에는 사상이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평은 일본의 신도를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한포용성과 그 잡거성을 이유로 사상이 없다고 말하고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학이 바로 신도의 당위성을 받쳐주고 있는 사상인 것입니다.日本思想의根本問題 라는 책을 쓴 管野(칸노)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흔히 말하는 이성과 사상이 결핍된 無라는 것. 그렇지만 無도 하나의 사상이다. 이런 일본의 사상의 無사상. 즉 사상의 부재라고 처리해 버리는 것은 일본인이 삶의 지표로 삼은 이성이외의 和歌의 미의식 탐구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이와 같이 국학은 일종의 유형에 딱 맞는 것이 아니고 복잡하였습니다. 고전학, 신도학, 역사학, 국어학, 서지학書誌學 등이 포함되고, 사상적 입장에서도 복고주의가 전부가 아닌 (옛것을 연구하면서부터 나온 사상이기에 복고주의는 기본으로 깔려있습니다.) 고증파도 있고 가문파(歌文派)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국학을 이해하려면 학예사도 알아야 하겠고 그뒤 사상적 성격을 생각하는 것이 바른 순서겠지요.여기서 복고라는 것은 일본 고유의 순수한 고대 정신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 정신의 궁극적인 도리를 [고도古道]라고 하여 외국전개의 유교, 불교를 배격하고 국수주의적 사상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여기에 또한 [고도의 시원始原] 으로서 신의 영묘한 존재를 믿었으므로 사상의 근본에는 신도사상 즉 일본의 국가성립 신화에 대한 종교사상이 탄탄하게 깔려있습니다.게다가 신도 사상과 존왕사상(천황을 받아들이고 그를 따르는 사상)이 결합되면서 천황의 신성에 기반한 고대정치를 그 이상향으로 하였습니다.즉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일본의 고전, 가문(歌文), 역사, 제도 등의 연구는 모두 복고적 이념에 따라 통일되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에도 중기, 이런 형태와 내용의 국학이 성립된 것은 賀茂眞淵(카모노 마부치), 本居宣長(모토오리 노리나가)의 활동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뒤에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간략하게 설명하면 노리나가는 근본의 학을 [道의 학문]이라고 설명하고 平田篤胤(히라타 아츠타네)는 고도학古道學이 국학의 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학이 포함하는 여러학과 그 사상적 입장을 통괄하는 국학관입니다.케이츄의 [만엽대장기]에서 발휘한 실증적 고전 연구법과 카다노 아즈마마로의 [창학교계]에서 제창한 복고주의는 마부치, 노리나가의 사제들에게 계승되어 고전연구에 따른 고도(古道)를 명확히 하였고 고대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체계의 성립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賀茂眞淵(카모노 마부치)의 [국의고(國意考)], 本居宣長(모토오리 노리나가관학이었던 유학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국학을 일본의 사상을 얘기할 때 1순위로 꼽는걸까요. 거기에는 일본사상사에 국학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첫째로는, 일본사상사 속에 면면히 맥을 이어온 신도의 역사적 측면 때문입니다. 일본인의 고유 신앙의 대상이었던 神(카미)가 끊임없는 외래 사상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합치거나 또는 배척하는 형태로 일본인의 마음에 아직까지 살아 남아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신에 대한 신앙은 불교가 도래했던 유교가 도래했던 도리라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사고방식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도리나 믿음은 다 같은 것이되 나라마다 이름이나 형식이 다른것일 뿐이다라고 하는 논리이죠.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노리나가의 신도론에 의해 철저히 부서지게 됩니다.외래 사상을 배척한 순수 신도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노리나가는 고사기전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옛 문헌에 보이는 모든 신을 비롯하여 이것을 모시는 신사의 영혼, 사람, 짐승 및 산천초목과 같은 산과 바다 등등은 그 무엇이건 간에 평범하지 않고 덕이 있어 외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합리적. 윤리적인 평가가 전혀 배제되어있죠?도 나아가 노리나가는 이런 신들 및 세계의 근원을 타카미무스비노카미(高皇産靈神)와 카무미무스비노카미(神皇産靈神) 두 신에서 찾음으로써 도리란 오로지 조상신이 만든것이며 인간의 지혜로 만든 것이 아니다 라는 입장을 내세우게 됩니다.두 신은 다음과같은 고사기전의 창세기설화에 나와있습니다.(1) 천지가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타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나타나신 신의 이름은 아메노 미나카누시노카미(天之御中主神). 다음으로 나타나신 신은 타카미므스비노카미(高御産巢 日神). 그 다음으로 나타나신 신은 카므므스히노카미(神産巢日神). 이 세신은 모두 단독 의 신으로 몸을 감추고 계셧다. 이 세신을 造化三神이라고 한다.자.. 이쯤되면 정말 유교도 불교도 끼어들 자리가 없는거죠. 정말 빈틈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유. 불 혹은 다른 습합신도와 다른 새로 걸은 길을 절대 道라고 생각하는 노리나가의 문헌해석적 방법은 그 방법이 아무리 실증적이라 할지라도 조상신에 대한 철저한 신앙심과 믿음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도의 절대적 믿음 이라는 점이 아닙니다.바로 일반적인 이성관의 밖에 선 가장 일본적인 일본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는 것이죠.자 여기까진 국학의 기본 입장에 대한 설명이었구요. 이제 국학의 사상을 더 깊이 알아가 볼까요?위의 국학의 입장 설명을 보면 이제 거의 감을 다 잡았을거라고 생각됩니다만 국학이 무엇인고? 하고 난데없이 물음을 던진다면 단 한마디의 간단명료한 말로는 정의할 수 없지만 몇 가지의 키워드로 간추릴 수는 있을 겁니다.국수주의적 사상, 탈합리적, 탈이성적, 옛 고전의 연구에서부터 내려온 사상,지극히 일본적인 사상, 더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이정도에서 간추릴수 있을겁니다.자, 이제 저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개념으로 간추린다면 다음과같은 정의들이 있습니다.고전과 고전문예연구 즉 학예사의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것.고대로의 동경과 중세의 부정복고사상에 내재하는 국수주의와 존왕사상古道에 입각한 천황정치의 재현고대신화에 의해 일본은 신이 만든 나라이며 천황의 친정에 행해져야하므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신국관그리고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입니다.국학의 기본적이면서도 극소수인 텍스트는 고사기와 만엽집, 그리고 기타 헤이안 시대의 여류문학등이 그것입니다. 여류문학은 왜 들어가는 걸까요? 헤이안 시대 귀족문화의 문헌은 주로 남성들에 의해 한문으로 쓰여진 공식 자료로서 중국적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에 비해 여성들이 쓴 것은 사적인 것이었으므로 중국 문화에 물들지 않았다 는 것이 국학파의 해석인 것이죠.조금 황당한 면이 없지 않죠? ^^모노노아와레와 문예연구와는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모노노아와레란 마음의 감동과 정서, 즉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를 봤을 때 아~ 하는 탄성이 나올수 있는 것, 적막하고 쓸쓸하여 마음에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것이 모노노아와레입니다서 이런 생각은 성립시기엔 희미했으나 고사기를 연구한 노리나가때에 강해지는 것입니다.그리고 국학의 환상론적인 측면도 여기서 증명됩니다.노리나가는 에도시대의 통일과 평화가 신의 힘을 받아 그런것이라고 찬양하고 국학이 이처럼 성행하게 되었으니 고도로 회귀할 실마리가 주어진것이라며 에도시대를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다른파에서는 궁핍한 생활을 격으며 은밀히 고도의 재현을 꿈꾼것입니다. 바로 천황제의 재현이죠.이런 복고사상에 내재하는 국수주의나 존왕사상의 의의는 신국관을 배제한다면 성립될수 없는 것입니다.신에 의거한 자연주의적인 세계관 그리고 인간관에 있어서는 인간성의 신뢰와 긍정 즉 휴머니즘적 요소까지 국학은 포함하고 있습니다.4.국학의 계승자1)荷田春滿(카다노 아즈마마로)국학의 성립시킨 사람입니다. 교토의 후시미 신사의 신관을 지낸 그는 일본인 고래의 정신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고어와 고전의 연구를 장려하였습니다. 에도에 상경하여 제자를 받아 자신의 연구 방식을 전하였습니다.고전을 본문비평적·주석적으로 연구한 그는 〈고사기 古事記〉·〈만엽집 万葉集〉·〈일본서기 日本書紀〉 연구의 기초를 마련해 고쿠가쿠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賀茂眞淵(카모노 마부치)는 그의 문하에서 나왔습니다.2)契沖(케이츄)시모코베 쵸류 라는 국학인의 제자이자 진언종의 승려이며 후에 와카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유교와 불교의 가치관을 배제한 관점에서 와카에 숨겨진 순수한 일본적 미의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요. 쵸류 스승이 코몬님으로 유명한 도쿠가와 미쓰쿠니-일본 에도[江戶]시대 전기 미토번[水戶落]의 제2대 번주(藩主).천하의 부장군 미토 고몬[水戶黃門]’으로도 알려져 있다.도쿠가와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존왕정신을 고취함으로써 미토학의 원류로 불리운다- 로부터 만엽집의 주석 작업을 의뢰 받았을 때, 그는 질병을 이유로 작업을 거절하는 대신 제자인 게이츄를 추천했습니다. 게이츄는 이 의뢰에 응하여 라는 저서를 썼습니다. 이 책은 만엽집에 대한 단순한 문학적 주석을 넘어서서 국학의 연구 .
    인문/어학| 2004.12.20| 10페이지| 1,000원| 조회(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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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음악] 미국의 남부음악 평가C아쉬워요
    미국 남부음악과미국음악과의 관계{♠시작하며..많은 리포트 주제 가운데서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주제를 선택하게된 까닭은 바로 음악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나라의 예술 경향은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큰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이라는 예술의 한 분야로써 미국을 이해한다면 그 나라의 민족성부터 취향, 근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와 미국의 국가를 비교만해도 둘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등이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음악들은 거의가 미국 음악(pop)이라는데 까닭이 있습니다. 저도 음악을 좋아하고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다니지만 제가 듣는 음악의 거의가 바로 미국 음악이니까요..그래서 이것저것 조사한 결과 정말 음악에서 미국의 여러 가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왜 특히 미국음악과 남부음악을 비교하라고 하셨는지도 잘 이해할 수 있었구요. 남부음악은 미국의 많은 역사적 배경과 민족성을 나타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모순된 태도와 백인 우월주의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구요.그럼 이제 제가 조사한 내용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미국 음악이란...미국 음악의 역사가 매우 짧아 겨우 350년을 넘을 정도입니다.미국음악의 역사는 대체로 다음의 3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1620∼1800년은 유럽음악이 신대륙에 들어온 시기. 1800∼1860년은 유럽에서의 수많은 이민, 특히 독일이민이 미국의 음악문화의 기초를 만든 시기. 1860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미국 태생의 작곡가 ·연주가의 활동이 확립되고 미국음악이 성인에 이르게 된 시기입니다.위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음악의 모태는 유럽음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인의 음악이라는 뜻이겠지요.흔히 미국음악을 POP 이라 얘기합니다. popular music의 약자인데요 미국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으니 저도 거기에 불만이 재즈, 블루스, 가스펠, 알엔비 등등~~여기서 포크송과 컨츄리송은 미국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민요라는 것이 지금의 컨츄리송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이니까요.그럼 여기서 포크송과 컨츄리 송에 대해서 잠깐 알아볼까요?1.포크송Folk Song이란 어떤 음악인가?“포크송은 이런 음악이다”라고 꼭 집어 말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고장의 음악 이론가는 말합니다. 포크송(Folk Song)은 미국의 민요를 일컫는 말이죠.미국 민요라는 지적에 대하여 문득 떠오르는 멜로디들이 있습니다. 언덕위의 집, 스와니강, 켄터기의 옛집 같은 노래들이죠. 학창시절 발랄한 마음으로 음악시간에 배우던 노래를 대체로 이런 곡들이 미국민요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는 포크송이란 학창시절 예쁜 입 모양을 그리며 노래하던 미국민요와는 좀 다릅니다. 60년대 나타난‘포크송’이라 하는 음악은 의미가 달랐습니다. 기타나 벤죠악기로 연주하며 발성법(창법)도 클래식과는 다른 편안한 음성으로 노래하며, 인원도 대합창단이 아니라, 고작 다섯명정도의 작은 인원으로 노래하기도 했죠. 바로 이런 것이 포크송입니다.2.컨츄리송컨츄리 음악이란 전통에 대한 것입니다. 비슷한 주제들 위에서 끝없이 다양한 모습들을 단순한 태로 보여주는 것이죠. 마치 블루스란 장르처럼...때론 컨트리음악과 블루스 음악은 테마를 같이 하기도 합니다. 컨츄리 음악의 대부분 노래들은 거의가 세개의 코드와 단조로운 멜로디 위에서 만들어진 단순한 것들입니다. 컨츄리음악은 미국서부의 전통음악에서 자라나왔습니다. 애팔래치안과 블루스 그리고 기타와 휘들이란 악기만을 가지고 연주한 올드타임 컨츄리는 단순하고 민속적이었습니다. 컨츄리음악이 진보되면서 올드타임뮤직에 리듬이 강한 기타와 휘들이 가미되며 나타난 트래디셔널 컨츄리, 홍키통크와 웨스턴 스윙에서 팝의 원류인 컨츄리폴리탄과 락에 영향을 준 베이커스 필드 사운드란것은 현대 컨츄리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하지만 미국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음악은 한마디로 한물간 음악들입니다. 그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인 까닭에 음악적 경향이 다양하고 또 종류가 여러 가지인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순수한 음악이라는 예술 분야에서조차 흑백의 갈등이 드러납니다..이러한 사실은 어쩌면 교수님이 특정하게 남부음악 이라고 지정해주신 까닭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을 듯 합니다.교수님 맞죵? ^^ 히히~♠미국 남부의 특색미국 남부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전에 미국 남부란 어떤 지방이고 또 미국내에서 어떤의미로 통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겠죠? ^^미국남부지방은 텍사스, 오클라호마, 아리조나, 루지애나, 조지아, 알라바마, 플로리다, 싸우쓰캐롤라이나, 버지니아등~ 이런 지방으로 이루어진곳이 남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남부는 자기개성이 강하고 또 고집이 센 지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농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런 남부의 성격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칼렛 오하라 보십시오 결국엔 다른 곳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도 자기 고향에서 농사짓는 걸로 결말이 끝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하라의 아버지또한 남북전쟁으로 집이 쑥대밭이 되었어도 절대 집에서 떠나지 않고 꾼꾼히 땅을 지킵니다. 바로 이 땅 이라는 개념~!! 이 개념이 미국 남부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고집 때문에 특색있고 개성이 강한 지방이 될 수 있었던거겠죠.미국 남부지방 사람이라하면 미국내에선 고집쟁이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통합니다. 뭐..고전적인 얘기이고 이제 남부도 더 이상 농업만을 위주로 하진 않으니까 지금도 그럴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정관념이 그렇다는 얘기죠. 그래서인지 미국 남부에서는 정말 역사적으로 기리기리기리기리~~~~ 남을 뮤지션들도 많이 배출했답니다. 전설적인~ 엘비스프레슬리 그리고 루이암스트롱 이런 분들 말이죠.이밖에 남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지식은 김준호 교수님의 책에 전부 다 나와있습니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둘러봐도 도서관 자료를 찾아봐도 김준호 교수님의 실생활과 관련된 설 있는 남부의 지식은 전부 교과서에 실린 대로라서 남부의 특징은 여기까지만 하려고 합니다.그럼 이제 미국 남부를 대충 훑었으니 음악으로 넘어가 볼까요?^^♠미국 남부음악의 종류와 그 경향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 남부의 음악은 흑인 음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적인 것과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농경사회였던 남부에는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큰 농장을 경영할려면 돈이 적게들고 일을 잘하는 노예들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남부에는 노예시장이라는 것이 발달했고 흑인들은 사람이 아닌 물건내지는 일하는 기계에 불과 했습니다. 그런 흑인들의 애환과 아픔이 서려있는 것이 바로 남부음악입니다.그 당시 남부에는 백인의 숫자보다 흑인의 수가 더 많았습니다. 이런 흑인들은 백인들의 괄시를 받으며 힘들게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흑인들의 힘든 삶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일이 끝난 후 삼삼오오 모여서 아프리카어로 백인들의 욕을 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신세 한탄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재즈나 블루스 같은 것 들어보세요. 곡조가 신나는 것도 많지만 그 분위기 자체가 좀 애달프지 않습니까?그렇게 시작된 것이 남부의 음악입니다. 그러다가 백인들의 악기인 기타가 흑인의 손에 쥐어지면서 더 본격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구요.대표적인 남부음악하면 재즈, 블루스를 들 수 있는데요 바로 이것이 흑인의 음악인 것입니다. 그 기원도 남부에서 찾을 수 있구요.그럼 재즈나 블루스 그리고 기타 남부음악에 대해서 조금 알아볼까요?1.JAZZ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미국 남부 루지애나주에 있는 뉴올리언즈 변두리의 흑인과 크레올(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들 사이에서 연주되어 형성된 춤이나 음악을 말합니다.재즈는 곡의 형식이나 작품의 의미보다는 감각과 표현력 있는 연주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요 아마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애환을 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도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재즈의 뉴올리언즈한 연주가들이 뉴올리언즈 주변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재즈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할수 있는 분들이죠.암튼 이런 흑인들의 음악인 재즈는 미국 대중음악은 물론 최근들어 세계적인 현대 음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2.BLUES클래식을 제외하고 대중음악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형태를 잡아가던 1900년 전후에 미국에서 시작된 음악입니다.노예로 있던 흑인들이 악기를 접하면서 블루스라는 장르가 생기는데요. 당시 백인들은 위에서 말한 컨츄리송이나 포크송같은 민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블루스에 비하면 저런 노래들은 거의 미국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 지당한말씀입니다.블루스는 미시시피 강유역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의 델타라고 불리우는 삼각주 지역은 땅이 비옥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농장이나 목화 재배농장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당연히 흑인 노예들도 아주 많았구요.블루스는 재즈보다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흑인들은 자기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소작농으로 일할때보다 더 힘들고 비참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때였죠. 그래서 이들은 어울려서 노래부르길 좋아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며 자기들끼리 흥얼거리던 노래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구전음악들이 대다수였는데요 현대에 들어서는 블루스도 체계화되어 음악의 한 분야로써 당당히 자리잡고 있습니다.3.가스펠'가스펠'은 '복음'을 뜻하며 좁은 뜻으로는 20세기 초 미국 흑인 사이에서 불려진 종교가요를 가리킵니다. 흑인영가와 재즈가 혼합된 강렬한 리듬이 특징적이죠. 흑인영가와 다르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신약성서의 복음에 관계된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음악 또한 기댈곳 없던 흑인들이 교회를 신봉하게 되면서 흥겨운 리듬의 찬송가들을 만들게되고 그러면서 시작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위에서 알아본 남부음악은 바로 흑인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흑인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흑인들이 미국에 건너와서 백인들과 부딪히며 만든 음악인 만큼.
    예체능| 2004.12.20| 8페이지| 1,000원| 조회(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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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국학] 일본의 국학
    일본의 국학(國學)일본어과 20000067 김민희일본어과 20010005 류희조일본어과 엄지연1.국학이란 무엇인가2.국학의 성립3.국학의 입장 및 사상4.국학의 계승자5.맺음말♠국학에 대해 알기전에 먼저 주의해야 할 점 3가지1.국학을 단지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2.절대로,Never Ever~!한국인의 고정관념으로 국학을 바라보지 말라.3.조금은 탈고정관념적인 국학의 황당한 면모에 웃을 수 있는 맘을 갖자.1.국학이란 무엇인가?국학은 순수한 의미의 학문이 아닙니다. 불교나 유교처럼 사상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갖고있는 것이기도 하며 양명학, 고증학 같은 학문들처럼 연구에 의미를 두는 학문의 일종이기도 하고, 새 관점의 인간의 이해이기도 하면서 또 다분히 철학적인 깊은 성찰의 면모도 지니고 있습니다.이게 무슨말이지? 다분히 다방면적이고 또 어찌보면 모호하기도한대...라고 생각되실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국학입니다.다방면적이고 모호하기도 하며 잡거성을 띄고 있죠.국학은 일본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살아온 일본인의 독특한 인간관. 세계관을 그 무엇보다 뚜렷이 형상화한 사상입니다.조금 편파적인 표현이지만 우리조는 엽기 제멋대로 사상 이라고 나름대로 국학의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지요.^^國學. 한자의 의미에서 느껴지듯 국학은 국수주의적인 것입니다.예로부터 줄곧 친하게 지내왔던 중국조차도 그들에겐 외세로 취급되었고(서양은 당연히 더한 배척이 있었겠죠?) 오랜 역사의 유교조차 그들에겐 이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일본사상을 평할 때 자주 회자되는 문구로 일본에는 사상이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평은 일본의 신도를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한포용성과 그 잡거성을 이유로 사상이 없다고 말하고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학이 바로 신도의 당위성을 받쳐주고 있는 사상인 것입니다.日本思想의根本問題 라는 책을 쓴 管野(칸노)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흔히 말하는 이성과 사상이 결핍된 無라는 것. 그렇지만 無도 하나의 사상이다. 이런 일본의 사상의 無사상. 즉)의 고어와 고전의 연구가 그 시작의 하나였고 契沖(케이츄)의 和歌의 미의식 탐구 이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이와 같이 국학은 일종의 유형에 딱 맞는 것이 아니고 복잡하였습니다. 고전학, 신도학, 역사학, 국어학, 서지학書誌學 등이 포함되고, 사상적 입장에서도 복고주의가 전부가 아닌 (옛것을 연구하면서부터 나온 사상이기에 복고주의는 기본으로 깔려있습니다.) 고증파도 있고 가문파(歌文派)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국학을 이해하려면 학예사도 알아야 하겠고 그뒤 사상적 성격을 생각하는 것이 바른 순서겠지요.여기서 복고라는 것은 일본 고유의 순수한 고대 정신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 정신의 궁극적인 도리를 [고도古道]라고 하여 외국전개의 유교, 불교를 배격하고 국수주의적 사상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여기에 또한 [고도의 시원始原] 으로서 신의 영묘한 존재를 믿었으므로 사상의 근본에는 신도사상 즉 일본의 국가성립 신화에 대한 종교사상이 탄탄하게 깔려있습니다.게다가 신도 사상과 존왕사상(천황을 받아들이고 그를 따르는 사상)이 결합되면서 천황의 신성에 기반한 고대정치를 그 이상향으로 하였습니다.즉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일본의 고전, 가문(歌文), 역사, 제도 등의 연구는 모두 복고적 이념에 따라 통일되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에도 중기, 이런 형태와 내용의 국학이 성립된 것은 賀茂眞淵(카모노 마부치), 本居宣長(모토오리 노리나가)의 활동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뒤에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간략하게 설명하면 노리나가는 근본의 학을 [道의 학문]이라고 설명하고 平田篤胤(히라타 아츠타네)는 고도학古道學이 국학의 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학이 포함하는 여러학과 그 사상적 입장을 통괄하는 국학관입니다.케이츄의 [만엽대장기]에서 발휘한 실증적 고전 연구법과 카다노 아즈마마로의 [창학교계]에서 제창한 복고주의는 마부치, 노리나가의 사제들에게 계승되어 고전연구에 따른 고도(古道)를 명확히 하였고 고대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체계의 성립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賀茂眞淵(카모안 일본 역사를 지배해온 불교 또는 에도시대의 관학이었던 유학이 아니라 왜 하필이면 국학을 일본의 사상을 얘기할 때 1순위로 꼽는걸까요. 거기에는 일본사상사에 국학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첫째로는, 일본사상사 속에 면면히 맥을 이어온 신도의 역사적 측면 때문입니다. 일본인의 고유 신앙의 대상이었던 神(카미)가 끊임없는 외래 사상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합치거나 또는 배척하는 형태로 일본인의 마음에 아직까지 살아 남아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신에 대한 신앙은 불교가 도래했던 유교가 도래했던 도리라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사고방식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도리나 믿음은 다 같은 것이되 나라마다 이름이나 형식이 다른것일 뿐이다라고 하는 논리이죠.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노리나가의 신도론에 의해 철저히 부서지게 됩니다.외래 사상을 배척한 순수 신도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노리나가는 고사기전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옛 문헌에 보이는 모든 신을 비롯하여 이것을 모시는 신사의 영혼, 사람, 짐승 및 산천초목과 같은 산과 바다 등등은 그 무엇이건 간에 평범하지 않고 덕이 있어 외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합리적. 윤리적인 평가가 전혀 배제되어있죠?도 나아가 노리나가는 이런 신들 및 세계의 근원을 타카미무스비노카미(高皇産靈神)와 카무미무스비노카미(神皇産靈神) 두 신에서 찾음으로써 도리란 오로지 조상신이 만든것이며 인간의 지혜로 만든 것이 아니다 라는 입장을 내세우게 됩니다.두 신은 다음과같은 고사기전의 창세기설화에 나와있습니다.(1) 천지가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타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나타나신 신의 이름은 아메노 미나카누시노카미(天之御中主神). 다음으로 나타나신 신은 타카미므스비노카미(高御産巢 日神). 그 다음으로 나타나신 신은 카므므스히노카미(神産巢日神). 이 세신은 모두 단독 의 신으로 몸을 감추고 계셧다. 이 세신을 造化三神이라고 한다.자.. 이쯤되면 정말 유교도 불교도 끼어들 자리가 없는거죠. 정말 빈틈없습니다. 바로 여)를 절대시하고 그것으로부터 신이 걸은 길을 절대 道라고 생각하는 노리나가의 문헌해석적 방법은 그 방법이 아무리 실증적이라 할지라도 조상신에 대한 철저한 신앙심과 믿음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도의 절대적 믿음 이라는 점이 아닙니다.바로 일반적인 이성관의 밖에 선 가장 일본적인 일본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는 것이죠.자 여기까진 국학의 기본 입장에 대한 설명이었구요. 이제 국학의 사상을 더 깊이 알아가 볼까요?위의 국학의 입장 설명을 보면 이제 거의 감을 다 잡았을거라고 생각됩니다만 국학이 무엇인고? 하고 난데없이 물음을 던진다면 단 한마디의 간단명료한 말로는 정의할 수 없지만 몇 가지의 키워드로 간추릴 수는 있을 겁니다.국수주의적 사상, 탈합리적, 탈이성적, 옛 고전의 연구에서부터 내려온 사상,지극히 일본적인 사상, 더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이정도에서 간추릴수 있을겁니다.자, 이제 저런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개념으로 간추린다면 다음과같은 정의들이 있습니다.고전과 고전문예연구 즉 학예사의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것.고대로의 동경과 중세의 부정복고사상에 내재하는 국수주의와 존왕사상古道에 입각한 천황정치의 재현고대신화에 의해 일본은 신이 만든 나라이며 천황의 친정에 행해져야하므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신국관그리고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입니다.국학의 기본적이면서도 극소수인 텍스트는 고사기와 만엽집, 그리고 기타 헤이안 시대의 여류문학등이 그것입니다. 여류문학은 왜 들어가는 걸까요? 헤이안 시대 귀족문화의 문헌은 주로 남성들에 의해 한문으로 쓰여진 공식 자료로서 중국적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에 비해 여성들이 쓴 것은 사적인 것이었으므로 중국 문화에 물들지 않았다 는 것이 국학파의 해석인 것이죠.조금 황당한 면이 없지 않죠? ^^모노노아와레와 문예연구와는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모노노아와레란 마음의 감동과 정서, 즉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를 봤을 때 아~ 하는 탄성이 나올수 있는 것, 적막하고 쓸쓸하여 마음에 깊이 생각하고 느끼 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생각은 성립시기엔 희미했으나 고사기를 연구한 노리나가때에 강해지는 것입니다.그리고 국학의 환상론적인 측면도 여기서 증명됩니다.노리나가는 에도시대의 통일과 평화가 신의 힘을 받아 그런것이라고 찬양하고 국학이 이처럼 성행하게 되었으니 고도로 회귀할 실마리가 주어진것이라며 에도시대를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다른파에서는 궁핍한 생활을 격으며 은밀히 고도의 재현을 꿈꾼것입니다. 바로 천황제의 재현이죠.이런 복고사상에 내재하는 국수주의나 존왕사상의 의의는 신국관을 배제한다면 성립될수 없는 것입니다.신에 의거한 자연주의적인 세계관 그리고 인간관에 있어서는 인간성의 신뢰와 긍정 즉 휴머니즘적 요소까지 국학은 포함하고 있습니다.4.국학의 계승자1)荷田春滿(카다노 아즈마마로)국학의 성립시킨 사람입니다. 교토의 후시미 신사의 신관을 지낸 그는 일본인 고래의 정신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고어와 고전의 연구를 장려하였습니다. 에도에 상경하여 제자를 받아 자신의 연구 방식을 전하였습니다.고전을 본문비평적·주석적으로 연구한 그는 〈고사기 古事記〉·〈만엽집 万葉集〉·〈일본서기 日本書紀〉 연구의 기초를 마련해 고쿠가쿠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賀茂眞淵(카모노 마부치)는 그의 문하에서 나왔습니다.2)契沖(케이츄)시모코베 쵸류 라는 국학인의 제자이자 진언종의 승려이며 후에 와카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유교와 불교의 가치관을 배제한 관점에서 와카에 숨겨진 순수한 일본적 미의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요. 쵸류 스승이 코몬님으로 유명한 도쿠가와 미쓰쿠니-일본 에도[江戶]시대 전기 미토번[水戶落]의 제2대 번주(藩主).천하의 부장군 미토 고몬[水戶黃門]’으로도 알려져 있다.도쿠가와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존왕정신을 고취함으로써 미토학의 원류로 불리운다- 로부터 만엽집의 주석 작업을 의뢰 받았을 때, 그는 질병을 이유로 작업을 거절하는 대신 제자인 게이츄를 추천했습니다. 게이츄는 이 의뢰에 응하여 라는 저서를 썼습니다. 이 책은 만엽집에 대한 단순한 문학적 주석을 넘어니다.
    인문/어학| 2004.06.22| 10페이지| 1,000원| 조회(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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