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을 하나의 묶음 속으로 끌어드리고 싶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와 한때 십대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던 서태지.. 그 둘의 불협화음 속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보고 싶다. 크리톤을 읽고 느낀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 읽으면서 가졌던 생각들을 나열해 본다. 나의 의도는 '서태지'라는 제 3의 존재를 끌어들여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현대 사회 현상들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첫 번째로 '대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이 대중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크라테스의 생각 중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다. 대중이라는 소재에 있어 대중가수 서태지 또한 제외될 수 없는 부분이다. 똑같은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는 그들을 내 방식대로 해석해본다.두 번째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서태지의 은퇴에 초점을 맞춘다.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문득 이런 주제는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원래 내가 잡은 주제가 그렇듯 허무맹랑하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두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본다.엉뚱한 것은 새롭다는 것이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이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 그 첫 번째 장애물을 넘으려하고 있고 그 방법이 조금 엉뚱한 것뿐이다. 이 과제를 모두 끝마치고 활짝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본 론1 소크라테스의 '대중', 서태지의 '대중'대중이란 "신분의 구별이 없이 한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다중 혹은 군중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대중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아보자.소크라테스가 '대중은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대중은 이리 끌면 이쪽으로 저리 끌면 저쪽으로 가는 무지한 군중들이며 계몽해야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대중 가수에게 있어 대중은 자신을 만들어 주고 최고의 자리에 올릴 수 있으며 다시 땅 끝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서태지는 그러한 대중을 잘 요리했고 그래서 그는 인기스타가 되었다.아무런 공통성도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대중을 군중심리에 입각한 무지한 무리라 생각하는 것은 같다. 소크라테스는 '대중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 는 말과 위의 선과 악을 행할 수 없다 에서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또 서태지는 자신을 과대포장 혹은 신비감을 조성하는 등의 상업기술로 대중을 매수(?)하고 그들을 유혹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대중이 그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조금은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대중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보다 대세의 흐름을 주목하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존재하는 '유행'이라는 것은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하는 현상일 것이다. 남들이 입기 때문에 입고, 남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 획일화되는 사회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소크라테스와 서태지의 생각은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지금부터 조심스럽게 다른 관점에서 대중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소크라테스는 현명한 몇몇 사람들의 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대중들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누굴까? 바로 그 현명한 사람들이 아닐까? 대중의 생각을 움직이고 행동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그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패션계에서 대중을 선도하는 사람은 디자이너이고, 사회현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대중의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언론이다. 학생들을 대중으로, 선생님들을 현명한 사람으로 비유해 보자. 선생님의 지시대로 따르는 학생들을 볼 때 대중을 움직이는 현명한 사람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그렇다면 현명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대중이 무지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질문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첫째로 현명한 사람들만이 대중을 움직인다는 명제가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이다. 괴변론자 역시 그럴듯한 말로 대중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던졌던 의문조차 부정될 수 있다. 둘째로 대중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듣고 행동하는 것일 뿐 자신의 생각과 사고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다시 대중은 무지하다라고 나올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러한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무지하지만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시대의 대중은 생명체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가 아닌 지금 서태지와 내가 사는 이 세상의 대중은 살아서 움직이며 활동한다. 첫 번째 의문에서처럼 괴변론자들에게 현혹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성장하는 것이 대중이다. 그들의 사고를 살찌우고 판단력을 길러내는 것이 그러한 장애물들이라 생각한다면 대중을 무지한 무리라 비난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2 소크라테스의 ' 죽음', 서태지의 ' 은퇴'나는 이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소크라테스가 죽지 않았다면, 또 서태지가 은퇴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을 세워보았다.소크라테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한 철학자였다. 그가 탈옥하지 않았던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던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만일 그런 소크라테스가 죽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 그가 크리톤의 주장대로 탈옥을 했다면 현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론만 앞세웠던 비실천가라 기록될지도 모르고, 서양철학의 아버지라는 명칭으로 불려졌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소크라테스 자신도 남은 평생을 괴로워하다 화병으로 죽어버렸을지 모른다.시인 서정주는 한국 시의 멋을 살리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명작들을 많이 창작하였지만 일제시대 앞잡이 노릇을 하며 잔혹한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쓰고, 군부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등의 행동으로 현재 문인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소크라테스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철학들은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지고 연구되어졌겠지만 그의 인생자체를 존경받지는 못했을 것이다.아주 다른 범주이기는 하지만, 서태지가 은퇴를 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서태지와 아이들로 4집 활동을 하며 사실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서태지는 갑작스런 은퇴로 잠시 가요계를 떠났다. 만일 그때 서태지가 은퇴를 하지 않고 계속 음악 활동을 했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대중에게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수 없었을 것이고 '서태지 한물 갔다' 라는 소리를 들으며 쓸쓸한 뒷모습을 보였을 것이다.두 사람 모두 시기 적절한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위대한 철학가의 죽음을 현명한 선택이라 말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일지도 모르나 그렇기 때문에 더 위대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다. 그들은 가야할 때를 알고 당당히 돌아설 수 있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3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한 소재로 묶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일단 소크라테스와 법률, 그리고 나라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이다.『너는 조국에 대하여 존경하고 순종하며 조국이 노여워할 때에는 아버지가 노여워할 때보다도 더 양보해야 해. 너는 조국을 설득하거나 명하는 바를 무엇이나 행해야 해. ‥‥‥ 전쟁터에서나 법정에서나 그 밖의 어디에서나 나라와 조국이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되네, 이렇게 하지 않으려거든 옳은 것이 어디에 있는지 조국에 대하여 설득하지 않으면 안되네.』크리톤의 한 부분이다. 조국에 충성해야 한다는 설명을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 우리는 조국에 충성해야 하고 밑줄 친 부분의 말처럼 조국이 명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조국이 독재 혹은 군사정치를 하고 있다면.. 옳지 못한 조국에게도 충성을 해야하는 것인가?
요즘 한국영화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것에 급급하다. 무언가 의미를 전달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것이 바로 흥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웃음 속에서 묘한 사회를 찾아볼 수 있는 영화, 풍자 속에서 우리들을 그려내는 영화 "공공의 적"은 그런 의미에서 수작임에 틀림없다. 영화는 관객들이 감독이 부여한 의미를 하나씩 찾아내고 느껴 가는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영화 감상은 숨바꼭질하듯 그 속에 담긴 뜻을 찾아내는 것이다. 충무로의 큰손이라 불리는 강우석 감독이 3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 안에 깊숙이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해보자.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축소해 놓은 듯한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눈에 띄었던 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 졌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는 두 주인공의 얼굴이 바뀌면서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지 않음을, 그리고 그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공의 적'에서도 그렇다. 형사인 강철중(설경구)은 노점상 물건을 마음대로 쓰고 지명수배자를 돈 받고 풀어주기 등 경찰이라는 선한 직종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악하다. 반면 살인마인 조규환(이성재)은 가정과 회사에서 더없이 멋진 사람이다. 신데렐라를 괴롭히던 계모와 같은 악역도, 착한 일만 하는 신데렐라도 더 이상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가면을 준비하고 살아간다지 않은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의 두 캐릭터를 통해 이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이 영화 안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모습이 녹아 있다는 것도 찾아볼 수 있다. 강철중 형사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찌들어 있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작거나 크게 강철중을 닮아 있는 것이다. 감독 자신도 흥행이라는 물질적인 것에 매달려 있음을 그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강철중이 하는 역할은 따로 있다. 자신보다 더욱 세속적인 사람,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나쁜 인간인 조규환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잔인한 살인 장면은 그의 잔인함을 부각시켜주며 우리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한다. 돈을 위해 부모님을 죽이는가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그에게서 우리는 인간이 얼만큼 잔인할 수 있는 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세속적인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강철중이 분노하고 자신보다 더욱 세속적인 조규환을 잡으러 다니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도덕책에서 나쁘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일들을 저질러온 날라리 형사는 극악무도한 살인마를 만나 깨닫는다. 나도 저렇게 비춰지는 건 아닐까.. 그리고 변화한다. 노점상의 바나나를 그냥 가지고 가서 먹던 그가 사건 종결 후 바나나를 먹고 돈을 쥐어 준다는 것은 그의 변화를 나타내 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감독은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도 외치고 있다. 강철중을 바라보고 그의 변화를 닮아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돈에 얽매여 세속과 물질에 찌들어 이익만을 보고 달리지 말자고. 변화해 보자고 말이다.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웃음"이다. 강우석 감독의 전 작품 '투캅스'에서도 배꼽을 쥐게 했던 여러 장면들이 기억난다. 이번 영화 역시 2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지루하지 않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공의 적'을 전반적으로 생각해볼 때 웃을 수만은 없다. 쉽게 말해 울고 있는 삐에로인 것이다. 가면 속에 숨어서 통곡을 하는 삐에로가 밖으로는 환하게 웃음을 띄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웃음 속에는 인간의 잔인함에대한, 그리고 이 시대의 타락에 대한 눈물이 묻어 있는 것이다. 풍자라는 것이 그렇듯 뼈가 살아있다. 감독의 말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한참을 웃고 돌아서 씁쓸해지는 그런 기분..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해주는 것이다.끝으로 자식에 대한 순애보적인 어버이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을 칼로 찔러 죽인 자식을 위해 증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손톱을 삼키신 어머니... 그녀의 사랑에 관객은 동요한다. 한국 어머니들의 절대적인 사랑은 가장 한국적인 정서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 부를 가리지 않는 조규환의 행동은 이해타산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사상과 닮아있다. 한국 사회에 침투해있는 서양의 사상이 전통 사상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유포한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어머니의 이 같은 행동은 조규환의 잔인함과 사악함을 더욱 부각시켜 관객들에게 뜨거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속에 우리가 있다!!언론정보학부 02116211. 들어가기쉬운 것 같지만 참 어려운 작품이다. 단지 연애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는 이 책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글을 쓸 것이라 생각하니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논쟁이 되어왔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특별한 것이 책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내가 책 속에서 찾아낸 것은 그들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 치고는 너무나도 평범한 심리를 가진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것,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 한 둘쯤은 끼어 있음직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지극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그들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학 장르이다. 헌데 위대한 개츠비 속 인물들은 당장 책장 속에서 튀어나와 옆집 혹은 뒷집에 살고 있을 법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 말이다.그 인물들 중 가장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이 닉 이다. 이 소설이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 닉 은 주인공 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일지 모른다. 모든 이야기가 그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기서 닉에 관해서도 이야기 하려고한다.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단 하나이다. 개츠비가 과연 위대한 인물일까? 1920년대 초 미국에서 발표된 이 책을 두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였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개츠비를 비판하고 옹호하면서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라는 의견과 단지 역설일 뿐이다 라는 의견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이유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풀어 나가야할 숙제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두 가지 입장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만들어 가는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위의 세가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개츠비 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쉬운 연애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무언가 대단한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밝혀내고 싶다.2-1. 이야기하기 (줄거리)작품의 화자 닉은 중서부에서 뉴욕으로 와서, 롱아일랜드 교외에 자그마한 집을 빌려 산다. 그의 이웃에는 거부라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는 개츠비의 저택이 있고, 그곳에서는 주말마다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개츠비는 군인시절 만났던 부잣집 딸 데이지와 결혼을 약속하나 그가 떠나간 동안에 그녀는 톰이라는 재벌과 결혼한다. 개츠비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어, 그녀의 집 가까이에 저택을 사들이고는 매일 밤 파티를 열고 언젠가 데이지가 와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꿈꾼다. 우연히 닉이 데이지와 육촌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안 개츠비의 부탁으로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재회를 주선한다. 5년만에 데이지를 만난 개츠비는 그녀가 이제 부자가 된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에 추호도 의심이 없다. 그러나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뉴욕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데이지가 운전하던 개츠비의 차가 데이지 남편의 정부를 치어 죽이고 달아나자, 개츠비가 차를 몰았다고 생각한 그 여자의 남편은 개츠비를 찾아가 사살한다. 데이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과 여행을 떠난다. 성황을 이루었던 예전의 파티와는 달리 아무도 없는 장례식을 치르며 개츠비는 세상을 떠난다.2-2. 사람과 사람...2-2.1 데이지데이지가 개츠비와 떨어져 있는 5년 동안 그의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개츠비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이라면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도 정신적으로 타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다. 그녀는 개츠비를 사랑했을 것이다. 5년전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는 그녀 또한 개츠비를 사랑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사랑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스턴트식 사랑이라는 말로 잘 표현되는 간단하고도 쉬운 사랑이다. 쉽게 만나 당시는 뜨거운 사랑이라 울부짖지만 돌아서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젊은 부부들이 쉽게 이혼을 하는 모습에서, 수년동안 만나오던 연인과 헤어진 뒤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과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쉽게 데이지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물질에만 빠져 정신적 타락을 한 데이지의 모습을 가장 잘 찾아 볼 수 있었던 곳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 속에서였다. 감자 속의 복녀는 데이지를 많이 닮아 있다. 순수하기만 했던 그녀는 80원에 게으르고 나이 많은 남편에게 팔려가게 되고 결국 빈민굴의 주민이 되고 만다. 그녀는 그곳에서 돈을 버는 법을 알게되고 자신의 몸을 팔아가며 돈을 벌게된다. 정신적인 타락의 결말은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게 된다. 데이지 또한 복녀와 같다. 돈에 얽매어 결국 자신의 마음마저 상업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팔아버렸던 그녀를 보며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과 저렇게 닮아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마지막에 와서는 데이지가 부럽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누군가가 자신을 순수한 마음으로 끝없이 사랑해 준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사랑을 받는 그녀 자신이 그러한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2-2.2 톰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욕망 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톰에게는 정부가 있었다. 사랑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톰에게 나는 비웃음을 보냈으나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한 가닥 연민은 어쩔 수 없었다. 톰이라는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신문이나 뉴스를 꼬박꼬박 들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찾아보면 한둘쯤 없겠느냐 만은 그런 식으로 분류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최근 결혼은 미친짓이다 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연희(엄정화)는 결혼을 하고도 옛 애인인 준영(감우성)을 만난다. 그녀가 준영아닌 다른 남자를 선택해 결혼 한 것은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준영- 니가 결혼한다면 그건 일종의 범죄가 아닐까? 너 같은 스타일이 신랑 하나만 바라 보고 평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연희- 난, 자신있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둘의 대화에서 나는 톰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연희와 같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싶어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톰이나 연희 같은 사람은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에 많이 포진되어 있다. 난 그 같은 류의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들과 별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내 잠재의식 속에 내제되어 있는 생각들이 그들을 보며 환호를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2-2.3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나는 어쩌면 이 집단에 속해 있을지 모른다. 세상사람들이 대부분 이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성대한 파티가 열릴 때면 어김없이 개츠비의 대저택에 찾아오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개츠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야한다는 둥 약속이 있어 갈 수가 없다는 둥 이리저리 피하며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산업사회에 살며 권력과 물질이라는 획일적인 것에 목숨을 거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우리 속담 중에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 라는 말이 있다.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같이 허구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권력의 그늘아래 물질의 늪에 빠져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반성할 시간을 가져 보라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우를 찾아보라고 말이다.2-3.이야기해주는 사람이제는 닉 에 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1인칭 관찰자 시점을 처음으로 내게 가르쳐준 소설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였다. 옥희의 눈 속에 비친 이야기를 읽으며 자칫 어줍잖은 연애 소설로 비추어 질 수도 있었던 소설을 멋지게 그려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와는 달리 위대한 개츠비 에서는 시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닉을 통해 전개되는 사건을 바라보는 일이 다소 답답했기 때문이다. (이는 번역이 잘 못되어 내용 전달이 잘 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글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닉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상상 할 수 있었고 생각을 키울 수도 있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지 않은가. 개츠비가 하고 있을 생각을 추리해 보고 데이지가 가졌을 마음가짐을 상상해 보는 일도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 것이 사실이니 그 생각은 접도록 하자.등장 인물로써의 닉은 어떤 사람일까?「닉의 역할은 개츠비가 경험하는 것을 같이 경험함으로서 개츠비의 추진력의 내면적인 성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닉은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만 있지, 그 느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인물이었다.」( http://cafe21.daum.net/_c21_/bbs_list?grpid=2lrh&fldid=GdO)위의 글은 개츠비와 관련된 자료를 찾던 중 알게된 다음 까페에 올려져 있던 글 중 한 토막이다. 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유일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위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어렵기만 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닉에 관하여 알 수 있는 한가지는 개츠비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개츠비의 꿈이 환상인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같이 매달리고 있음을 간과함으로서 개츠비의 파멸을 가속화시키게 되는 역할 인 것이다.나는 그를 통해 조언자 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일 닉이 개츠비에게 한마디의 충고라도 해주었다면, 그의 생각이 잘 못된 것임을 알려주었다면 죽음을 당하도록 어리석은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자신의 일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꼬집어 말해 줄 수 있는 조언자도 필요한 법이다.2-4. 위대한(?) 개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