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망매가 작품교육론 설계 》-경험적 측면에서의 교육적의의-Ⅰ. 작품분석1. 원문生死路隱此矣 有阿米 次?伊遣吾隱 去內如 辭叱都毛如 云遣 去乃尼叱古於內 秋察 早隱 風未此矣 彼矣 浮良落尸 葉如一等隱 枝良 出古去奴隱 處毛 冬乎丁阿也 彌陀刹良 逢乎 吾道 修良 待是古如2. 해석생사로는예 있으매 젛이여서‘나는 간다’ 말도못 다 이르고 가느닛고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한 가지에 나고가는 곳 모르온저아으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도 닦아 기다리련다(양주동 역)생사 길은예 있으매 머뭇거리고나는 간다는 말도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한 가지에 나고가는 곳 모르온저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도 닦아 기다리겠노라(김완진 역)3. 배경설화월명은 또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서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추모했는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지전을 날려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했다. 향가는 이러하다. (생략)4. 작품분석제망매가는 삼국유사에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이 노래를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광풍(狂風)이 불어 지전(紙錢)을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했다는 배경설화에 함께 전해진다. 얼마나 누이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지극했으면 이러한 설화가 전해지겠는가? 글자 그대로‘동천지감귀신(動天地感鬼神)’이다. 슬프고 절실한 사랑의 상처와, 가을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무상(無常)한 인생, 그리고 동기간의 우애, 이러한 것이 복합되어 불교적으로 승화한 것이 제망매가이다,.해마다 피고 지는 저 나뭇잎 하나하나는 한결같아 보이지만 실을 그 나뭇잎 하나하나는 각자 흔들리고 또 홀로 떨어져야 한다. 또한 올해의 잎은 작년의 잎이 아니다. 이러한 엄연한 자연의 이치대로 인간도 홀로 죽어야 하며, 다음 생의 만남을 기약할 수고 없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제망매가’에는 신라인의 이러한 깨달음이 함축되어 나타난다. ‘제망매가’는 우리 선인들의 향기 높은 예술성과 높은 차원의 정신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육상황에서 향가와 같이 학계에서도 쟁점이 남아있는 작품들은 가르치는 교수자나 학습자에게 모두 골칫거리였다. 더구나 수능 출제자들에게도 난점이 남아있는 문제들이기에 기피되어왔고, 이는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군다나 ‘고전문학이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학습자들에게 향찰로 되어있는 향가는 보기부터 두려움을 가져왔고, 그에 따라 향가의 교육은 그야말로 수박겉핥기 식의 진행으로 일관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7차 교육과정이 진행됨으로 인해, 수준별 교육이 중요해졌고, 교육내용이 지식, 수행, 경험, 태도의 네 분야에 따라 구조화됨으로 인해, 향가교육 또한 네 가지 항목으로 구조화시키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여기에서는 경험 항목에 초점을 맞추어 향가를 교육설계해보고자 한다.어떤 대상에 대하여 아는 것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식과 경험으로 대별되는 두 인식 방향이다. 경험은 아는 것의 직접성을 매개해주는 역할하며, 구체적으로 인식함으로써 그 경험을 보편적인 지식으로 인식시켜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문학작품에 대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작자에 대한 인상같은 외부적인 것부터 작품에 대한 감상과 이해 같은 세세한 것까지 그 폭과 깊이가 다양할 수 있다.문학작품에서의 경험은 학습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경험과 유동시킬 수 있고 연결 지을 수 있다. 학교교육에서 이러한 점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교육 내용으로서 경험은 문학작품을 통해 삶에 대한 이해를 확장함과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 문학교육의 중요한 의의 가운데 하나는 학습자로 하여금 삶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향가를 탐구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 스스로 그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와 연관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사고하는 것이 경험교육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작품 속에 담긴 삶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경험은 삶의 방식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는 문화자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밀하게 이해하여 진정한 우리의 것으로 체득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건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200년 전에 창작되어 향찰로 표기된 한 작품을 통해 그 내용과 형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속에 담긴 사람의 감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는가를 검토하면서 12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는 정서의 보편성과 표현의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목적을 정했다면 ‘제망매가’라는 향가를 통해 학습자에게 목적에 맞는 어떠한 경험적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의의가 존재할 것이다.첫째로 향가의 소통성을 들 수 있다. 향가는 신라시대에 향찰로 쓰여진 노래이다. 향가는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폭넓게 사랑받고 쓰여졌다.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노래할 일이 생겼을 때, 혹은 기원할 일이 생겼을 때, 그들은 향가를 부르고 소원하였다. 향가라는 것이 그 시대의 소통통로로써 쓰여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의사전달은 자연과 신들일 수도 있고, 일반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것이 국가적이거나 정치적일 경우, 학습자는 그러한 작품을 경험해봄으로써 자신의 국가적, 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제망매가‘의 경우는, 타인에 대한 소통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 타인에 대해 감정이입적인 이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심리상태와 갈등, 사고 등을 이해할 수 있다. 타인과 자신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킴으로써 학습자의 자아탐구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부가적으로 우리도 문학작품을 지어 소통의 통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둘째로 작품의 주제에 근거한 경험교육이다. 제망매가의 소재는 죽음과 이별이다. 누이동생과 헤어진 후, 그것을 노래한 작품이기 때문에 제망매가에는 직선적으로 죽음과 이별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먼저 죽음을 살펴보자. 역사 이래, 언제나 죽음은 두려움과 고뇌와 금기의사랑하는 친지의 죽음이다.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서로에 대해 감정이 열려있고 자유로우며 자신과 가장 근접한 존재이다. 그런 존재의 죽음을 겪어본 후의 노래이기 때문에 학습자는 죽음에 대해 심각하고 심도있게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까운 사람(친지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다)의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이었다면, 특별히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며 향가를 읽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제망매가‘의 작자 월명사에 대해 감정을 이입시키고 작품을 통해 그 사람의 감정을 느껴보려고 할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작품을 읽어가면서 자신이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를 상상하면서 나름의 고뇌에 빠질 수 있고 이는 죽음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통해 개인 각자가 갖고있던 가치와 삶을 경험적인 측면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이별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갖는 경험론적 의의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별은 죽음에 따라 필히 동반하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별과 죽음은 그 내포되어있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죽음이 모든 것의 파국을 뜻한다면 이별은 재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별은 슬프고 막을 수 없는 것일지라도 언젠가 다시 재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제망매가’에서의 이별도 그러하다. 작품 속에는 ‘죽음’ 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가버렸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이별이다. 그리고 9,10구에 이르면 미타찰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별을 하지만 재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누구도 죽음 앞에선 그런 생각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월명사는 가장 큰 이별인 죽음마저도 재회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노래하고 있다. 월명사의 사고방식은 학습자에게 두 가지 새로운 생각의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죽음 또한 재회가 가능한데 다른 이별연계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죽음이란 것은 어떠한 방식이든지 간에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수용하게 된다면 경험적 교육측면에 있어서 최대의 의미를 끌어낸 셈이다.2. 향가 교육설계1) ‘제망매가‘ ; 만남의 의미와 감상의 실제‘제망매가’의 중요 모티프는 누이의 죽음에 대한 비탄과 재회에 대한 희구로 요약되는데 우리는 시야를 확대하여 여기 제시된 만남의 의미를 여타의 향가 작품과 관련지어 해석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한 것으로 확정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이 작품의 표현의 독창성을 중시하여 정제된 형식미와 뛰어난 서정성이 결합된 측면을 높이 평가하였다. 물론 그와 같은 평가가 잘못된 바는 아니나 그와 더불어 이 작품이 지닌 향가로서의 일반적 측면도 우리는 검토해야 하며 그것을 향가문학의 일반적 성격의 하나로 학습자에게 제시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14수의 향가 중 상당수의 작품이 만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화가’의 경우, 노래가 지향하는 행위의 결과는 그대와 나와의 만남이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꽃을 꺾어 바치는 것이다. ‘처용가’의 경우 아내와의 만남이 다른 남자에 의해 좌절되고 있다. 만남의 문제가 의미의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원가’ 역시 만남의 문제가 노래의 한 전제가 되어있다. 효성왕과 신충은 나중에 만날 것을 굳게 언약했으나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만나지 못하는 허탈감이 이 시의 화자로 하여금 세상 모든 것과 헤어져 버린 듯한 느낌을 갖게 했던 것이다. ‘모죽지랑가’는 죽지랑이라는 인물을 그리워하며 그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소망을 나타냈다. ‘찬기파랑가’도 기파랑이라는 고결한 인물을 그리워하며 그의 자취를 찾으려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이처럼 여러 편의 향가 작품이 만남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제망매가‘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 누이는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덧없이 죽었다. 한 핏줄에서 난 동기간이지만 죽음의 세계로
를 통해 본 POV기법의 영화적 효과1. 서론공연과 영상기술론해마다 수많은 영화들이 제작되어 우리들에게 상영된다. 영화들은 저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띄려고 노력한다. 감독은 조금이라도 관객을 더 붙잡기 위해 그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기만의 색깔을 입히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눈이 휘황찬란해질 특수효과일 수도 있고, 인지의 영역을 뛰어넘는 상상력일수도 있고, 신기한 영상기법일 수도 있다. 작가나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작품들은 매우 많지만 이 중에서 필자는 2007년도에 나왔던 를 중점으로 분석하고 2008년도에 나왔던 최신작를 도입하여 비교함으로써 분석을 좀 더 자세하게 해보고자 하였다. 본고의 분석초점은 영상적 표현과 기법에 중점을 두어 최대한 스토리나 영화적인 연관성은 배제하려고 노력했고, 이 영화만의 독특했던 영상기법을 분석하고 감상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작품선정이유와 , 두 작품 사이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카메라촬영기법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두 영화는 POV를 주관적 카메라(Subjcect Camera)기법을 활용했다. 영화제작에서 주관적 카메라 기법은 많이 사용되는 편이다. 관객에게 영화에 좀 더 몰입할 수 있게, 영화 속에 실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보통은 잠깐 동안 관객이 카메라의 위치에 서는 샷일 뿐이었다. 대표적으로 의 초반부 상륙장면에서 이 기법을 활용하여 총탄이 바로 곁을 스치는 듯한 치열한 전쟁터의 느낌을 극도로 잘 살릴 수 있었다. 주관 샷에서의 카메라의 흔들림과 떨림 정돈되지 않은 화면이 혼란스럽고 두려운 전쟁의 느낌을 최대한 잘 살려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는 극 초반에 상륙장면에서만 사용했을 뿐이었다. 는 영화내내 이 주관적 카메라 기법을 활용하여 영화를 제작했다. 필자는 이러한 기법이 영화에 주는 효과와 관객의 느낌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이 영화를 선정하였다. 는 2007년에 제작된 스페인영화로써, 공포물이고 는내 앞을 보거나 뒤만을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장소를 설정하여 감독은 구축샷을 위해 다른 무대장치를 설치할 필요도 없고, 좀 더 1인칭적인 느낌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빠른 줌인,줌아웃을 통한 긴장감 조성 및 폐쇄된 복도에 빠른 폴오프)좀비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집안 내에 어둡고 길다란 복도이다. 이 화면에서 카메라는 지속적인 줌인과 줌아웃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게 된다. 이러한 긴장감은 복도를 지나가면서 더욱 극대화하게 되는데, 카메라 앞으로 사람들이 걸어나가고 카메라는 그 뒤를 따라 복도를 걷게 되는데, 사람에 의해서 시야가 살짝 가려진다거나 화면이 점점 어두워지게 되면서 관객은 긴장감을 더하게 된다. 또한 걷는 도중에 누군가 그릇을 밟아 쨍그렁 소리가 나고 앞쪽의 사람들이 뒤돌아보는 샷에서는 관객이 진짜 복도를 걷는 느낌을 더 강하게 들게 만드는 효과를 가졌다. 폐쇄된 공간인 복도와 그 속에서 나타나는 희미한 조명과 인물의 그림자는 빠른 폴오프를 주면서 관객에게 긴장과 두려움을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상:카메라를 내려논 로우앵글 샷 / 하:경찰이 물린 직후 급한이동으로 흔들리는 샷)카메라맨은 조명을 켰다가 경찰관에게 혼나고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게 되는데, 이 바닥에서 로우앵글로 좀비와 경찰관을 찍는 장면은 스릴러적인 요소와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로우앵글로 잡힌 화면을 사람의 다리가 살짝 가리면서 사건을 촬영하게 되는데, 이 때 관객은 바닥에서 웅크려서 장면을 쳐다보게 되는 듯한 느낌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사건을 과장되게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공포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실제로 좀비가 경찰관을 물게 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은 지금까지 가진 긴장감이 촉발됨을 느끼고 이후 카메라는 다급하게 흔들림으로써 관객은 더욱 더 공포감에 빠져든다. 이른바 주관적 카메라의 매력을 최대한 발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거칠게 흔들리는 샷을 통해서 관객은 실제로 자신이 흔들리며 뛰는 느낌을 받고 영화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문을 통해 비춰들어오 것이다. 주기가 느린 것은 긴장이 살짝 이완되고 상황을 곱씹는 것이다. 감독의 외부조명 사용에서 필자는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좌:테이프를 감는 화면 / 우:감은 후, 총격상황의 반복재생)좀비가 뛰어오고 총을 쏘는 샷이 있다. 여기서 감독은 약간의 편법을 썼는데, 관객은 장면이 주는 상황에 몰입하여 그러한 점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복도에서 카메라맨(즉 우리의 시야)과 경찰관이 서 있고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달려든다. 결국 좀비는 총에 맞고 쓰러지게 된다. 총소리는 유난히 크게 처리했고, 좀비가 뛰어드는 순간은 화면의 잔상이 보일정도로 흔들린다. 달려드는 것은 좀비인데, 가만히 서 있던 카메라맨의 시야가 그렇게 흔들리는 것은 생각해보면 맞지 않다. 카메라(우리의 시야)가 카메라맨의 손떨림에 의해 흔들렸다고 한들 그 정도로 흔들리는 샷은 전력으로 질주할 때나 나옴직한 샷인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좀비가 달려든다는 상황적 요소와 유난히 갑자기 커진 ‘총소리‘라는 음향적 요소에 도취되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샷 이후, 영화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테이프의 돌림이다. 리포터는 제대로 못봤다면서 카메라맨에게 다시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카메라맨은 테이프를 REWIND하게 되는데, REWIND는 말그대로 화면을 되감는 샷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총에 맞는 모습이 한번 더 영화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되감기가 영화 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장면에서 있었다. 감독은 실시간적인 주관샷을 찍다가 잠시 다른 편법을 썼던 사실을 인지시켜주고자 되감기 장면을 삽인한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본다.사실적으로 실시간을 촬영한 느낌을 들게하는 것이 주관적 카메라의 목적이지만 장면전환을 위하거나 쓸데없는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서 감독은 카메라를 잠깐 끄는 것으로 설정했다. 군더더기 없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요소이긴 하지만, 완벽한 실시간 촬영영화는 어떤 느낌일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치료장면을 모르는 긴장을 타게 된다. 또한 이 부분에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예전에 즐겼던 1인칭 컴퓨터게임들이 생각났다. 대개가 공포물이었는데 이 게임들은 장르 특성상 어두운 화면이 많이 지속되고, 손전등을 사용하여 사물을 비추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흡사 1인칭 공포게임을 하는 느낌이 이 부분에서 많이 들었다. 그만큼 감독이 의도했던 만큼 영화에 몰입했던 것이라 하겠다. 영화에서는 손전등이 아니라 카메라 조명이었지만 제한된 크기로 비춘다는 특성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법이 영화사에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다른 공포영화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감독은 그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좀 더 나아갔다.다락의 괴생물체로 인해 카메라조명이 깨지고 주인공은 카메라의 야간투시용 조명을 켜게 된다. 위 사진은 야간투시용 모드에서의 화면이다. 역시나 제한된 크기로 화면을 비추는데, 녹색의 화면으로 진행된다. 녹색화면에 흐릿한 색채적 효과는 관객에게 밀폐되어 있고 답답한 느낌과 무엇인가 자기를 사방에서 옭아매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관객은 마지막 샷에서 엎드려 발버둥치는 앙헬라를 눈앞에서 보는 느낌을 생생하게 가질 수 있다. 파블로는 습격당하여 죽고(파블로의 얼굴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카메라는 떨어져서 바닥을 비추게된다. 발버둥치는 앙헬라가 계속 기어서 앞으로 다가오면서 마구 고개를 돌리며 좌우를 살피는 샷은 EYE LEVEL로 앵글을 맞추다보니 관객과 눈을 맞추게 되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심을 갖는다. 최후에 앙헬라가 끌려가고 엔딩샷이 올라가면서 관객은 비로소 영화의 몰입감에서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이렇듯 는 관객을 관객이길 거부하고 영화의 한 인물이기를 바란다. 관객은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느낌을 갖게된다. 그러나 관객은 관객이기 때문에 감독은 훔쳐보기적 요소를 감안하여, 창문사이로 카메라를 밀어넣거나 카메라를 떨어뜨리는 상황을 설정하여 관객에게도 ‘보는 재미‘가 사라지는 일이 없게 하고 있다.는 매우 저예산 영화이다. 촬영장소는 기껏해야 소방서, 로 지역방송국카메라맨이 카메라촬영을 계속한다. 영화처음부터 끝까지 촬영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의 촬영자는 좀 다르다. 촬영자가 두 번 정도 바뀌는데, 바뀐 촬영자는 모두 죽음을 당하게 된다. 는 공포감을 강조하였고, 는 괴물이 습격해온 상황에서 개인의 일상의 모습을 촬영한다. 는 아마추어적인 촬영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촬영자의 모습이 나오는 셀카가 나오기도 하고 일반적 모습 촬영에서도 심하게 흔들린다. 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는 도시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만큼 둘 사이의 스케일은 그만큼 상이하고, 그만큼 에 헐리우드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겠다. 의 흔들림은 그런차이뿐만 아니라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 있기도하다. 는 보다 극히 심하게 흔들리는데, 이는 핸드헬드라는 영상촬영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에게 어필함과 동시에 스릴러적 요소를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여서 그런지 흔들리면서도 컷을 많이 사용하여 보다는 장면의 연결이 깔끔하고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다친 애인을 구하기 위해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이나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감독이 컷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50여층이나 걸어올라가는 장면을 전부 찍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긴 하지만, 에서는 아무런 인과적 요소없이 그대로 ‘컷’을 사용했기 때문에 관객을 기만하는 느낌이 든다. 에서 장면의 컷이 필요한 경우, 경찰관이 카메라를 꺼버리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으로 인과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주관적카메라 기법을 가 좀 더 충실하게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다. 의 경우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에 돈을 들인 부분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주관적카메라의 1인칭 기법으로는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주인공이 티비화면을 바라보고, 티비화면 속에서 괴물의 모습과 대규모 전투장면을 보여주거나, 높은 고층 아파트 위에 올라서서 괴물과 군부대의 전투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러한 블록버스터적 요소를 구현해내어 헐리우드의 공식에 충실하였다. 하나의 촬영기법을 영화내내 사용것이다.
Ⅰ. 들어가며오늘날 교육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가르치는 일이 더욱 복잡해지는 한편 교사에게는 더 많은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 더 높은 수준의 학업성취, 더 엄격한 학업평가, 더 좋은 도구와 교육매체, 책무성, 그리고 더욱 강화된 교사 양성 교육과 전문성 개발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에게 적절한 리더십과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들은 날로 증가되는 요구에 대응할 수 없게 되어 공교육의 성공적인 개혁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리더십은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에 영향을 주어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교사의 직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는다. 교사는 학교 안팎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상황 의존적 권력의 중심에 서있다. 그런데 교사 리더십이라는 것은 매우 모호하고 복합적이어서 관점에 따라 리더십의 개념이 달리 정의될 수 있다. 교사 리더십의 개념은 행정가나 관리자의 리더십과 다른 것이며, 하향식, 위계적 형식의 기능에서 탈피하여 의사결정의 공유, 팀워크, 커뮤니티 형성 등을 포괄한다. 이것은 교사 리더십이 단순히 교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전문성에 대한 교사의 접근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학교개혁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교사의 리더십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나타나게 되며, 이를 다양한 시각에서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학급을 경영하는 담임으로서의 교사 리더십을 넘어서서 학교라는 기구 안의 교사라는 조직 내에서의 교사의 리더십을 거시적으로 살펴보고 이에 따라 교사의 리더십을 정의내리고 분석해가야한다고 본다. 때문에 교사 리더십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사의 능력을 개발하여, 학생들의 성취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학교에서 교사라는 교육조직이 갖는 특수성과 일반성을 염두에 두고 교사리더를 설정한다. 교사 리더십은 교사리더가 학생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여 그것을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는 점에서 행정적이거나 관료제적인 리더십과 차이를 나타내며, 이러한 적절한 리더십을 공유하여 협력하여 일하면 학생들의 전반적인 성취활동을 개선?향상시킬 수 있다.Ⅱ. 교사 리더십의 역할교사는 수많은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위치에 있다. 이는 교사가 필연적으로 과업 수행에 있어 다양한 문제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문제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유형은 다양하다. 즉 교사의 리더 역할 수행은 교사 개인이 속한 학교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교사는 공식적·비공식적이 지위, 역할, 일상적 직무 등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기준에 따라 교사의 리더 역할은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공식적 리더십의 위치에서 교사는 노조 대표자, 교과 부서의 부장교사, 교육과정 전문가, 멘토, 또는 현장 중심의 관리팀의 역할을 지닌다. 또한 비공식적 방법으로 동료교사의 코치, 학부모의 참여안내, 동료교사와의 공동연구 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비공식적 교사 리더의 존재와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들은 공식적인 리더의 역할이 주어지자 않아도 주어진 교육환경에서 변화를 주도하여 다른 교사들에게 영향을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비공식적 교사 리더십의 역할은 최근 들어 공식적은 교사 리더십보다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는 전통적이며, 공식적인 교사 리더십이 주류를 이룬다.교사가 수행하는 중요한 몇 가지 리더 역할을 다시 정리해보면, 교육과정 개발자, 연구계획의 제안자, 학교 개혁팀의 리더, 신임교사나 저경력 교사의 멘토, 현장 연구자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교사의 주요 무대는 교실이지만 형성적인 리더십의 원리에 따라 언제든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교사는 동료교사와 협력하여 일하며 상호 수업을 관찰하고 수업이론과 방법의 토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들은 학교를 전문가 학습 공동체로 변화시켜 교사의 권한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학교 내의 의사결정에 깊이 참여하게 되어 학교의 민주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 가운데 동료교사와의 협력적인 관계 유지는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멘토링, 임용교육, 지속적인 동료의 전문성 개발의 역할 등은 매우 중요하고 할 수 있다.교사 리더십의 역할은 동료교사와의 협력과 의사결정의 참여에 그치지 않고 상급 관리자로서의 역할로 확대된다. 즉 교사리더는 학교운영과 주요할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의 리더십은 이와 같이 역할이 매우 복합적이지만, 그것의 특성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첫 번째는 중개자의 역할이다. 이는 학교개혁의 원리를 각 교실에서 실천하게 하며 학교 내의 관계를 지원하여 교사들의 의미 있는 발달 관계를 극대화 한다. 두 번째는 참여적 리더십의 역할이다. 이는 모든 교사들이 소유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발전과 변화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한다. 세 번째로 조정자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학교개혁 과정에서 수행하는 역할로 외부 지원이 필요할 경우 추가적인 자원과 전문지식을 동원함을 말한다. 네 번째는 교사 간의 상호 학습을 통해 개별 교사와 긴밀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역할로, 교사 리더십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을 나타낸다.Ⅲ. 교사 리더십의 효과교사 리더십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사리더의 효과성을 향상시킨다. 교사 리더십은 개인으로서 교사와 직업으로써 교직의 전문직적 특성을 강화시킨다. 교사 리더십은 교사의 권한을 강화해야 하는 의식을 높여서 전문가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개인의 자율성을 촉진한다. 이러한 교사의식은 전통적으로 행정가가 보유했었던 수업, 평가, 규칙과 절차, 주요한 의사결정의 참여 등과 같은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되어 전문가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교사의식은 교사의 헌신성, 자아효능감, 만족감, 동기 등에 영향을 두어 학교조직의 과정과 성과를 향상시킨다. 교사 리더십을 경험한 교사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되어 성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지도력을 발휘하고 격려하도록 가르치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된다. 결국 교사 리더십은 교사의 자신감의 향상, 지식의 증가, 동료교사를 지도하는 태도 등을 개선하여 교사리더의 효과를 높힌다.교사 리더십의 핵심요인인 참여는 교사의 능력을 개선하여 교사리더의 효과성을 증진한다. 교사리더가 연구에 참여하면 수업에 관한 이해가 증진되고 새로운 수업방법을 개발?평가하는 책임이 증가한다. 또한 교사리더십은 동료교사 간의 상호작용을 증가시켜 여러 가지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게 하고, 학교개선의 방향을 설정?지원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교사가 고립문화에서 벗어나게 한다.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교사리더가 멘토의 역할을 수행하여 동료교사를 지도하게 되면, 교사 리더십은 동료교사의 수업역량을 향상사키는 긍정적 효과를 얻게 된다. 또한 교사 리더십은 동료교사의 역량강화와 함께 혁신적인 수업방법과 변화전략을 학교 전체에 확산시켜서, 학생의 학업향상은 물론 학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교사리더는 수업실천 문제학생의 지도와 지원, 새로운 프로그램의 계획, 사생활의 문제에 대한 조언 등에서 동료교사를 돕는다. 수업의 실천적인 면에서 나타나는 교사리더의 이런 지원은 교과부서를 넘어서 학교정책이나 학교문화에 강한 영향을 준다.교사 리더십의 학생에 대한 효과는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영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교사 리더십은 위계적?수직적인 전통적 조직과 달리 수평적?참여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교사리더는 핵심적인 위치에서 학생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민주주의적인 리더십을 관찰?경험할 뿐 아니라 교사리더를 역할모델로 삼아서 행동하게 되어 학생의 효과를 높이게 된다. 민주적인 교사 리더십을 수행하는 학교의 학생들은 교사 리더십을 통해서 간접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교사리더의 멘토를 받는 동료교사들은 신참교사를 지도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학생들의 효과를 높이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교사 리더십은 교사의 권한을 강화하게 됨으로써 학생들의 효과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교사의 권한강화는 수업을 개선하려는 교사들의 헌신, 학업성취의 결과는 교사의 노력이라는 신념을 주고, 효과적인 교수학습에 대한 교사간의 정보교환 등으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긍정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
「곁에서 본 김정일」 비평문Ⅰ. 머리말분단 이후 남과 북은 반목과 질시의 세월을 보냈으며, 세계적인 냉전체제 속에서는 남과 북의 대결의식이 상대적으로 명확하였다. 90년대 초 냉전이 끝나면서 서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2000년 이후 교류협력의 증대와 함께 남과 북은 대립체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화해와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들어 남쪽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경직되고 얼어붙는 등, 고질적인 긴장상황을 못 벗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북쪽 최고 지배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소문이 들면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이해하여만 하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북한 속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명확이 파악해야만 향후 남북관계 변화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런 배경하에 본 비평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다룬 책을 중심으로 김정일이란 인물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보려 한다. 책은 김영사에서 나온 정창현 저자의 ‘곁에서 본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되, 좀 더 다각적인 이해를 위해 다른 책과 문헌 등을 참고하였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책 ‘김정일 리포트’를 골라서 두 책을 비교하면서 비평을 시도하였다. 기본 흐름은 ‘곁에서 본 김정일’로 잡되, 그에 관해 다른 시각을 지닌 ‘김정일 리포트’의 내용을 인용하여 상호 비교하면서 좀 더 정확한 사실에 근접할 수 있는 비평을 하고자 하였다.Ⅱ. 본문1. 김정일의 사생활김정일의 사생활은 북한에서도 일급기밀로써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가 보여주는 모습만 바라보게 되며 그것을 통해 그를 파악해야만 했다. 평상시에 김정일은 집무실에서 근무하고 현장순시를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낮에는 주로 실무지도를 하고 밤에는 문건이나 서류검토에 매달린다. 이것은 김정일의 능력과 열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으며, 아까 말한바와 같이 귀순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부담이 있다.2. 출생과 성장(1942~1964)김정일을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 하나가 출생지의 비밀이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러시아라고 보는 쪽이 대부분이다. ‘곁에서 본 김정일’에서는 정확한 주장은 삼가면서도 소련출생설의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국 측 문건과 북한증언자들의 증언을 들어 사실상 백두산출생설을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주장의 근거가 명확하지 못하고, 자료들의 객관적인 효용성도 의심이 가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책의 전개는 출생을 다루는가 싶더니 빨치산 동료와 김정일의 유대관계로 서술이 어물쩍 넘어가는 경향이 있어서 더 못미덥다. 김정일의 출생에 관해서는 ‘김정일 리포트’ 쪽이 더 자세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리포트’는 소련출생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김정일 통치체계 승계와 같은 정치적 이유를 들어 분석하고, 사실적인 기록(소련인 아우구스타 세르게예브나의 증언, 1980년에 발행된 중국 ‘당대 국제인물사전’의 김정일 기록)을 들어 증명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출생은 소련출생 쪽에 좀 더 힘이 실린다.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과 김성애에 관한 이야기도 김정일의 성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김정일은 원래 어머니 김정숙이 있었으나,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만다. 하지만 빨치산적인 김정숙의 교육과 사상은 김정일의 어린시기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다가 김일성이 재혼하면서 김정일은 새엄마를 맞게 되는데, 자기보다 불과 10살 연상인 김성애가 계모가 되자 그는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않고 관계 또한 원만치 못했다.김정일의 학창시절은 특혜와 특별학습을 받는 소위 엘리트 코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개인교습과 대학생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정치 현장실습’을 하며 정치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교육을 바탕으로 대학시절부터 정치생활을 시작하고 ‘만페이지 책읽기운동’을 펼치는 .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굳힌 데에는, 3가지 정도의 요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원래 후계자로 임명될 뻔 했던 김영주의 몰락이다. 김영주의 능력과 건강은 후계자를 이어받을 만큼 뛰어나지 못했다. 더군다나 소련과 중국에서 후계자 문제로 골머리를 쌓는 것을 본 김일성으로서는 자신이 이룩한 기반을 부족한 김영주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둘째는, 김정일 자신의 능력이다. 김정일은 문화예술과 선전정책을 수행하면서 김일성과 당원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산업을 움켜진 김정일은 그것을 바탕으로 당의 사상적 정신작업을 지휘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권력을 조금씩 움켜쥐었다. 셋째는, 빨치산 1세대들과 2세대들의 지지이다. 김정일은 영화와 공연산업을 바탕으로 빨치산1세대들을 영웅화시키며 그들의 지지를 얻어냈고, 같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의 2세대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후계체제 가속화에 불을 붙였다. 김정일 단순히 아버지의 후광으로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김정일 체제의 전도와 관련, 유의해 볼 만하다. 한 나라의 권력을 잡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과 능력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북한을 습관적으로 매도하기에 앞서서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그 원인과 근거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김정일이 최고권력자가 된 데에는 이유가 없을 수 없다. 우리는 그 과정을 김정일의 후계체제 구축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김정일이 어떻게 기존 권력층으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는지 그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 갑산파 사건, 박금철?이효순사건 등 북한내에 치열한 권력투쟁의 현실과 김정일의 위치상승을 신경완의 증언과 결부시켜 물흐르듯이 설명하고 있다. 김정일이 문화예술 담당으로 첫 작업을 어떻게 수행함으로써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김정일이 영화를 무기로 삼은 것은 매우 효율적인 작전이었다. 문화의 힘만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나치제국의 선전부장 괴벨스가 정책상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듯이, 김정일은 정일 리포트’의 내용이다. 권력승계 과정을 설명한 내용은 두 책이 서로 다르지 않으나, ‘김정일 리포트’에서는 김일성-김정일 권력 과도기에 일어난 에피소드(지도자가 둘임으로 인해 생기는 일들)와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송시를 헌사하는 내용을 들며 김정일의 등에 업힌 김일성을 묘사하고 있다. 약간은 두 지도자의 통치체계와 권력에서 밀려난 김일성을 비꼬는듯하다. 이는 전적으로 황장엽의 증언에 무게를 두는 바람에 생긴 차이로 보이나, 그 가능성은 다소 과장되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권력승계가 20여년에 걸쳐서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여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권력을 확장해온 김정일의 능력수완이 놀랍다. 통칭 김일성 우상화 작업인 10대원칙과 생활총화선서 등도 아무생각 없이 볼 때는, 허무맹랑하고, 봉건적이며 우스꽝스러운 독재의 온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권력승계과정이 숨어있고, 통치안정의 전략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10대원칙 등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이를 후대에 자신이 승계받게 된다. 또한 공적으로 김일성우상화를 법률화함으로써 정적이나 체제반대세력을 압박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충성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김정일은 히틀러를 신봉했다고 하는데, 그의 이러한 능력은 히틀러의 대인조종기술과 선전정책에 힘입은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5, 김정일의 리더쉽김정일의 통치능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 있다. 한번 결심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통치이다. 배짱이 있고 통이 크기 때문에 한번 결정하면 확고하게 추진해 나간다.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EC-121기 격추사건은 김정일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사건이다. 하지만 판문점 사건 때, 김정일은 곤혹을 치뤘다. 한번 결심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 때문에, 전쟁준비로 소개작업을 과도하게 밀어붙이다가 김일성에게 질책을 당하고 만 것이다. 두 번째는 선심정치다. 흔히 ‘통이 큰 정치’라고 말하는 광폭정치는 강압과 회유책을 동시에 구김정일’에서는 김정일의 능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이 사회를 비판한다. 이러한 점들은 취해야 할 것들이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하면 숨길수록 우리는 더욱더 파악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며, 그가 어떠한 능력을 얼마만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맹목적으로 능력을 높이거나 과장해서도 안되지만, 굳이 깎아내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6. 북한붕괴의 허와 실1994년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북한 붕괴의 시나리오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3가지 측면을 들어 북한붕괴론을 들었다. 첫째, 내부 반체제세력들의 반발로 체제붕괴가 일어난다. 둘째,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항거로 체제붕괴가 일어난다. 셋째, 지배층 내부의 갈등, 특히 외국유학생과 현대교육을 받은 인텔리들에 의해 사회위기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곁에서 본 김정일’은 이것들이 현상에 매몰되어 북한의 강점과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이야기들이라고 진단했다. 내부 반체제세력들의 불만이 있더라도 개개인의 측면에서 사상성을 앞세우고,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이 이중삼중의 당적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조직화가 허용되지 않으며, 북한은 참고 극복하는 심리가 강하고, ‘고난의 행군’, ‘사회주의 강행군’등의 운동으로 분위기를 바꾸며, 반체제 세력이 조직적 불안요인으로 발전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사람들은 황장엽 비서 등의 망명과 북한주민의 탈북 등으로 북한사회의 불안정성을 주장할지 모르나, 오히려 이러한 탈북은 북한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반체제세력이 북한내부에 존재하지 못하고 튕겨 나옴으로써 북한에 반체제세력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이는 김정일 체제가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체제의 강점은 가장 먼저 김정일이 오랜 기간 동안 후계자로서 통치체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또한 체제의 중심기구들이 김정일 측근들로 채워져 있으며, 오랜기간의 선심정책을 통해 북한주민들로부터 일정하게 지지를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집으로 가는 길」을 분석하고 고찰함에 있어서, 먼저 그 영화감독에 대해 알고 그의 취향과 그의 영화흔적과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라 생각한다.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무협 3부작을 보면-연인, 영웅, 황후화를 말하는 것인데 편의상 이렇게 이름 지었다- 장이모우는 화려한 영상을 추구하는 대작 지향의 감독처럼 보인다. 그는 뛰어난 연출력과 미장센을 지닌 감독이다. 그는 정말 촌스러워 보이는 시골의 쓰러져가는 초가집마저 한적한 전원주택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출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작품처럼 대작 지향의 감독이 아니다. 무협 3부작을 통해 장이모우를 알게 되었다면, 그를 중국의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장이모우는 중국 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로서 문화혁명을 경험한 세대이다. 문화혁명의 혼란과 실패를 겪으며 그는 피해의식을 느꼈고, 몇 년간 시골로 쫓겨나 농사를 짓게 되는 경험도 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작품에 그대로 투시되었다. 그의 시선은 국가나 민족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시대에 의해 방황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들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시대를 느낀다.‘집으로 가는 길’은 장이모우의 초창기부터 계속되어온 치열한 비판의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질적인 영화이다.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그의 예전 영화들은 중국에 대한 비판과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이었다. 아예 붉은색으로 염색한 필름을 쓰는 듯, 영상의 전반을 지배하는 붉은 색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우리를 자극했었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공략하고 사회성까지 갖춘 그의 작품에 세계 영화제는 환호했었고 나 또한 감탄해했었다. 하지만 그가 부드러워 진 것 같다.‘집으로 가는 길’은 옹호와 설득의 느낌을 가진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내용은 아주 말랑말랑하기 그지없다. ‘붉은 수수밭’처럼 가죽이 다 벗겨져 죽는 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국두’처럼 염색통에 빠져 죽는걸 보며 웃는 처절한 모습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 ‘인어공주’나 ‘내 마음의 풍금’처럼 세련된 이방인과 시골 처녀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다. (나는 특히 ‘내 마음의 풍금’이 이 영화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교육문제를 노골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아온 ‘책상 서랍속의 동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장이모우는 이렇게 평범한 주제의 영화를 찍었을까 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었다.영화의 시작은 도시에 나간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 한다. 촌장을 만난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전통적으로 치루고 싶다는 말을 듣고, 마을 형편상 그렇게 하기 힘드니 어머니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때까지 난 ‘아하, 이 영화는 전통을 고집하는 어머니와 현대를 살고 있는 아들의 갈등이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지다가 화해하는 내용이 전개 되겠네’라고 생각했다.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어머니는 고집을 피우며 아버지가 집으로 오는 길을 마지막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한다. 게다가 아버지의 수의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며 더 부셔져가는 베틀로 베를 짜야 한다고 성화다. 하지만 예상외로 갈등의 강도는 세지 않다. 아들은 묵묵히 마을에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베틀을 고쳐주고, 밤을 새서 베를 다 짜겠다는 늙은 어미를 굳이 막지 않는다. 그리고 여태껏 흑백이었던 화면은 칼라로 바뀌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의도적으로 흑백을 쓴 영화는 많았다. 영화의 주제가 흑백이 어울리는 경우, 그리고 너무 자극적인 내용 때문에 심의상 흑백을 쓴 경우와 ‘데스 프루프’처럼 일부러 조잡하고 싼티나게 보이기 위해 부분적으로 흑백을 차용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남편이 없는 현실을 흑백에 불과하고 남편이 살아있던 과거는 총천연색이었다며 색 하나의 연출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 몇이나 될까. 보통 과거의 기억을 흑백으로 표현하고 현재의 일을 칼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어서 이 형태가 우리에게 고정적인 인식으로 박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바꿔 씀으로써 우리는 주의적으로 좀 더 환기된 기분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되며, 남편이 없는 현재는 흑백으로 가득찬 암울하고 음울한 느낌, 남편이 살아있던 예전은 화사하고 따뜻한 칼라풀의 세상을 강조하게 하는 효과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했다.어머니(장쯔이 분)의 사랑은 지독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게도 지독하고 지독한 열정이었을까를 생각나게 할 만큼 격하다. 격정적인 스킨쉽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느 영화처럼 단순하게 가학적인 행위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더 먼우물-마을에 있는 두 개의 우물 중에 학교 쪽에 가까운 것-로 가서 무거운 물동이를 지고 내려오고, 사랑하는 이가 매일 지나가는 길목에 기다렸다가 그가 나타나면 굽이치는 언덕을 뛰었다 걸었다 힘든 줄도 모른다. 특히 선생이 준 머리핀을 잃어버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결국 집 근처에서 찾고 마는 장면은 지독한 사랑의 열정이 없이는 포기해 버릴 일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뛰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달림에 그녀의 열정과 애정이 담겨있고, 그녀가 달릴 때 그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선생은 이유도 없이 도시로 가버리고 어머니는 그를 기다린다. 그리고 겨울이 오고 그가 돌아온다고 약속한 날 어머니는 눈보라 속에서 선생을 기다리다가 그만 쓰러지고 만다. 환청처럼 들리는 선생의 책 읽는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깨어나 학교로 달려가고 선생과 재회한다. 여기까지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장면은 다시 흑백으로 변한다.어머니는 40년이 지났지만 그리고 아버지고 죽었지만 변함이 없다. 학교가 처음에 지어질 때 처마 기둥에 두르기 위한 붉은 베를 짰듯이, 지금은 그 베틀로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으로 위해 하얀 베를 짜고 있다. 도시로 나가는 긴 길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재회했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 길을 걷기 위해 운구 행렬을 하자고 고집을 피웠던 것이다.감독은 사랑이란 열정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격한 장면은 없었다. 그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첫 눈에 반했고 그 마음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한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무모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진심은 아들을 움직였고 마을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운구행렬에는 백여 명의 옛 제자들이 와서 관을 번갈아 든다. 영화의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어머니는 40년 전 아버지를 기다리던 거리처럼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 마지막 길을 걷는다. 어머니의 초심이 없었다면, 운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시골에 와서 초심을 잃고 도시로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면 백여 명의 제자들이 관을 들겠다며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학교를 재건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아들이 교육봉사를 하는 날 어머니는 40년 전에 처음으로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환희에 차 학교로 오던 때로 돌아가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