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본시(7/8차시) 교수-학습 지도안대상고등학교 1학년학생수15명일 시2008년 04월 24일 목요일2교시장 소○○고등학교1학년 1반 교실단원5. 능동적인 의사 소통 (2) 구운몽교 사○○○학습목표1. 구운몽의 구조를 말할 수 있다.2.‘우리들의 이야기’를 모둠별로 발표할 수 있다.학습자료교 사학 생교과서, 학습지도안, PPT 자료, 형성평가 자료, 모둠평가지교과서, 필기구, 모둠별 발표 내용지학습단계학습요소교수-학습 활동학습형태학습자료도달점 및 유의사항교 사학 생도입(5′)▶인사▶ 단원명---------▶ 전시학습 확인---------▶ 동기유발---------▶단원 소 개 및학습 목표 인지학생들과 인사대?소단원명 확인---------------------------전시 학습 상기 및 확인---------------------------꿈허무한 꿈, 우리들의 꿈---------------------------문학적 의사 소통 행위인 ‘구운몽’을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발표해 보는 시간임을 인지시킴.선생님과 인사대?소단원명 확인---------------------?자유로운 답변---------------------?자유로운 답변---------------------?학습목표 이해의사 소통 행위로서의 학습자의 역할 인지학습 목표 함께 읽음.전체학습질의응답개별?전체문답식설명식전체학습출석부칠판분필--------PPT자료1--------PPT자료2--------판서자료부드러운 학습 분위기 유도대?소단원명 인지-------------------구운몽의 특징 확인------------------?꿈의 의미 이해-------------------학습목표 인지전개(40′)▶의사 소통으로서의 문학의 특성▶구운몽의 의사 소통 방법▶우리들의 이야기 발표의사소통으로서의‘구운몽’의 구조구운몽 파리공연 동영상 자료(거문고 가락과 노래, 춤)창작춤(박덕상)구운몽의 구조를 참고로 한 우리들의 꿈 이야기 하기- 구운몽의 구조 확인(현재 - 꿈 -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 반영(시대, 역사, 현실성, 가 능성, 신빙성)질문에 대한 대답문학과 다른 장르와의 의사 소통 이해하기모둠별 발표하기모둠별 채점하기- 비판적 읽기- 정확한 판단과 채점설명식문답식일제학습모둠별토의학습탐구학습PPT자료3동영상자료,만화자료모둠별발표자료모둠별채점지구운몽의 구조 이해 및 적용의사 소통으로서의 문학의 기능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의사소통의 구조 이해하기전시 학습 내용과 본시 학습 내용을 연관시킴.모든 모둠 활동은 토의를 거쳐 정리할 수 있도록 함.전개(40′)▶우리들의 이야기 발표- 제대로 전달하기(정확한 의사 전달)- 모둠원들의 협동- 발표자와의 교감- 모둠원들의 협력토의학습탐구학습모둠별 발표자료평가 기준에 맞게 작업할 수 있도록 지도함.평가 기준에 맞게 작업할 수 있도록 지도함.정리(5′)▶생각나누기----------▶ 형성평가----------▶ 질문 응답하기----------▶ 과제 제시 차시 예고----------▶ 인사하기학습목표 재정리(학습목표를 되짚어 가며요점 정리하기)---------------------------형성평가 문제지 배부형성평가 정답 확인feedback---------------------------질문 받기---------------------------과제 제시- 보충학습 과제- 심화학습 과제 제시차시 예고---------------------------인사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자신의 학습 정도 스스로 정리하기----------------------- 형성평가지 풀기정답 확인-----------------------질문하기-----------------------자기 과제 인지차시 학습 인지-----------------------인사전체학습--------개인학습전체학습의 병행--------개인학습--------설명식--------PPT자료4----------------학습 내용을 다시 한 번씩 반드시 되짚어줌.-------------------오답인 경우 반드시 정답과 함께 설명을 덧붙임.--------------------------------------자기 수준에 맞는 과제를 통한 수준별 학습 정착-------------------본시 학습의 내용을 파지?전이할 수 있는 방안 고려구운몽 단계별 활동 요소 분석? 전체 활동- 전시학습 확인, 동기유발, 학습 목표 인지? 모둠 협동 활동- 본시 학습을 위한 대형 정비, 발표물 준비 및 정리? 사회적 관계 기술 활동- 다른 모둠과의 관계 이해하기도입? 모둠학습 구조우수한 학생(모둠장)을 중심으로 하는 능력별(상,중,하)이질협동 학습 구조구운몽 구조 파악(개별학습, 탐구학습)‘우리들 이야기’하기(개별학습,토의학습)‘우리들 이야기’ 엮기(토의학습)발표하기(협동학습)라운드로빈(돌아가며 말하기)말 바꾸어 진술하기내용 정리하기구조 파악하기브레인스토밍돌아가며 말하기함께 생각하기‘우리’가 있는 이야기현실성, 신빙성 있는 이야기
기형도의 시 세계[현대문학입문]Ⅰ. 들어가며기형도. 그는 4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집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시 전체를 꿰뚫는 독특한 이미지인 어둠과 죽음은 기형도 그 자신이 요절하게 됨으로써 그 그림자를 더욱 고착시킨다. 즉 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음울함과 죽음의 이미지를 자신의 죽음으로 생에서조차 완성시킴에 따라, 우리가 언제나 기형도. 그의 이름을 접하거나 작품을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죽음의 정서를 환기시킨 다는 것이다.이러한 개성 넘치는 기형도의 시는 정치과 사회적 억압이 대단했던 80년대를 벗어나 보다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문제를 직시하고 해석하고자 했던 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탐구되기 시작했다. 기형도가 그려내는 특유의 시 세계는 뒤늦게 문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문학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천부적 재능을 지닌 작가의 요절.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가 형성해 낸 독특한 시 세계는 이것을 뛰어넘는 하나의 사건이자 실험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과 더불어 요절한 천재작가, 기형도는 신화화되기까지에 이르렀다. 기형도를 조사하면서 나 역시도 기형도의 매력에 깊이 빠졌으며 더불어 굉장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표 준비를 통해, 이미 시 세계에 대해 조사해 본 바가 있지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시 세계를 분석해 봄으로써 그를 포괄적이고 보다 치밀하게 파악해보고자 한다. 그의 시 세계를 다른 작가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들로 나누어 기준을 제시하고 기형도가 그러한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하게 된 배경과 몇 가지 사건들을 되짚어 보도록 할 것이다.Ⅱ.기형도의 시 세계ⅰ. 그로테스크 리얼리즘그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일컬어지는 괴이한 이미지이다. '그로테스크'란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형용하는 데 쓰인다. 이 말의 뜻만 언뜻 보더라도 그의드러내는 통로였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가 구사하는 그로테스크하고 불길하고 불안정한 언어들은 그의 내면과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언어의 효과는 시 전반을 둘러싼 죽음의 이미지와 엮어지면서 증폭된다. 그의 많은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대부분이 죽음의 이미지 즉, 병들고 쇠락했으며 늙어있는 모습 - 그는 그 자신조차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다. - 생기발랄함과는 거리가 멀다. 생명력과 삶을 살아내겠다는 불굴의 의지보다는 노약하고 병든 죽음의 이미지가 훨씬 빈번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유년시절 내내 그가 부딪쳐야만 했던 상황들과 비슷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어린 시절 사내 아이의 삶의 기둥이자,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는, 병들어 누워 계셔, 낯선 환경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어린아이의 흐느낌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속에서는 어린아이가 종종 화자로 등장하곤 하는데, 다른 많은 시들이 화목한 유년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그 시절의 순수를 그리기 위해 어린 화자를 내세운다면, 기형도는 어린 화자를 통해 당시 부재한 것으로부터의 그리움과 공포, 결핍된 것으로부터의 불안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맞닥뜨린 누이의 죽음은 그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때부터 기형도는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미 집필 전부터 이러한 삶 속에서 죽음과 어둠을 충분히 느낀 그가 시속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그려낼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해 보인다. 우울한 삶의 단면을 마주하고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감을 떠 안기에는 기형도는 너무나 순수하고 작은 아이였을 뿐인 것 같다. 이 쯤에서부터 생겨난 생의 패배의식은 그의 시 전반에 두루두루 나타난다. 기형도 그는 굉장히 지적이고 세련된 사람이었지만, 이러한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단순히 작품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오히려 그런 완벽한 외적 모습은 궁핍하고 소외되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다. 시가 시인의 내면 혹은 의식의 흐름을 드러내는 통로라면, 기형도, 그는 그의 시와 같이 어둡고 우울한 자아를 형성한 사람이었을 것이다.그런데 본래 소설에 적용되었던 개념인 그로테스크를 김현이 기형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면서도 굳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사용한 까닭은 기형도, 그의 시가 어느 정도 시대를 반영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한 시대를 다소 반영하기는 하나 그 허위적 위계질서를 해체시키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완전히 파괴해버리지는 못하지만- 괴상망측하게 재구성하면서 시 속에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형도의 시대의식과 관련하여서는 ⅲ. 시대의식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ⅱ. 비극적 세계관병듦, 늙음과 같은 죽음의 이미지와 더불어 기형도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비극적인 세계관이다. 그의 시속에서 기형도는 유난히 삶에의 환멸, 고독감, 회환 등을 느끼고 시의 전반에 걸쳐 팽배한 참담함과 생의 패배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를 탄식하고 비통해 한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 한 후, 그는 대상화된 자아를 애정 어린 손으로 감싸거나 동정의 눈으로 바라봐 주지 않는다. 오히려 '단 한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뿐이며, 스스로를 '텅 빈 희망', '검은 페이지'와 같은 어두운 시적 언어로 표현할 뿐이다. 이것은 기형도의 내면 의식 속에서 파악된 자아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를 건조하고 형편없는 존재로 여기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이미지가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기형도의 가족은 철거민과 수해 이재민의 정착촌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 후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가장의 역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생생한 생존의 혈투를 체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의 그가 감당해야할기 위해 모진 짐을 지었어야 할 어머니 사이에서 마땅히 받아야할 관심이나 정을 상대적으로 받지 못하면서 어린 기형도는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 감정들을 이해하고 마침내 고스란히 내면에 담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서서히 비극적인 세계관을 형성해 나간다. 이는 당시에 썼던 작품이나 이 때를 회상하며 쓴 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이렇듯 쓸쓸한 유년시절을 걸쳐 자라난 서글픈 청년은 실연을 통해 다시 한번 성숙해짐과 동시에 더욱 서글퍼진다. 이러한 청년시절의 실패한 연애의 경험은 그가 이미 형성한 비극적 세계관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우울했던 유년시절, 지독하게도 결핍되었던 애정은 이젠 청년이 된 기형도에게까지 따라 붙으며, 그가 온전하게 사랑 할 수 없게 한다. 그는 어쩌면 사랑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머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조차 없는 기형적인 사랑을 품었을 지도 모른다. 즉 그가 사랑이 충만한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껏 사랑 할 수 없는 것은 결핍된 애정이 그를 방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기형도, 그 자신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사랑할 만큼의 사랑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자신이다. 어릴 적 맞닥뜨린 불우한 환경은 그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 자신이 어떠한 실수를 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도 아니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찌해 볼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으로부터 어떤 감정을 품고 이미지를 형상화 해내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기 때문에, 이러한 유년시절의 불우함보다도 기형도 스스로가 자신에게 더욱 모질게 군 것이다. 자신을 이러한 비극적 세계관에 묶고 불행한 감정의 넝마를 걸치게 한 것은 기형도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사랑을 잃고 이제는 무엇을 쓸 것이냐고 자문하는 기형도는 결국 자신의 사랑을 빈집에 가두어버린다. 잃어버린 열망들과 이별한 채 말이다. 그리고는 희망과 따스함이 아닌 텅 빈집에 자신의 사랑을 가둔 채즉 그의 생의 고통이 비극적 세계관으로 표출되어 시 속에서 형상화되는 것이다.ⅲ. 환멸과 좌절의 시대 의식기형도가 그의 시를 통해 대게 죽음과 결부된 우울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다고 해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전혀 무관심 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김현'이 표현한 바와 같이 기형도는 그의 작품에서 어느 정도 시대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한다. 사실, 그가 누구 던지, 세상에 대해 얼마나 부정을 하던지, 사회로부터 얼마나 자유롭던지, 한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그 시대적,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더욱이 그가 집필활동을 했던 1980년대는 더욱 더 그러하였다. 대한민국 사에서 1980년대는 격정의 시기로 기록된다. 정치적 폭압에 맞서는 민주화 항쟁, 경제적·문화적 괄목할만한 성장 이면의 소득불평등, 부의 독점현상 등. 당대를 살아가는 국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역사의 산 증인이자 역사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었다. 시대는 들끓고 있었다. 야욕과 열망, 각계 각층의 상충되는 이해 관계를 바탕으로 사회는 발전하기 위해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청년 지식 인 층으로서 기형도는 어떻게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 것인가. 만약 우리가 참여하고 민중들을 선동하는 청년 대학생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실망할 지 모른다. 기형도는 오히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환멸을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는 좌절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그가 현실의 문제를 관조하고 그것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는 까닭이 아니다. 다만 그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 누구라도 느꼈음직한 시대적 번민과 고뇌를 섬세한 자신만의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폭력에 물든 현실과 시대의 허위성을 과감하게 폭로한다. 그러나 당대 민중적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던 시인들과는 달리 그는, 현실의 직접적인 참여를 지양하고 오히려 그런 부조리한 사태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더욱 더 내면으로의 침잠을 시.
예브게니 오네긴알렉산드르 뿌쉬낀 운문소설 l 석영중 옮김1999년 3월 10일 초판 1쇄2001년 5월 10일 신판 1쇄출판사 : 열린 책들이 책의 저자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뿌쉬낀이다. 그 시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인용되기도, 패러디되기도 해서 익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필독도서를 읽게 되면서 이 시인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었고, 운문소설에 대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과장을 조금 섞자면, 나는 운명적인 느낌마저 든다. 사실 처음 책을 펴보고서도, 작가의 이름마저 너무나 어색해서 긴가민가 했다가 뿌쉬낀 박물관, 뿌쉬낀 거리, 뿌쉬낀 기념비와 동상들, 학회 등에 대한 언급을 보고 그제서야 확신했으니, 지금에서야 나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이 책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많은 미사여구는 필요치 않는다. 동시에 이 책을 위한 표현과 감상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은 많은 미사여구를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담백한 문장들은 독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며, 단순한 문장구조는 오히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유쾌하게 만든다. 이 시를 처음 읽는 독자는 운문소설에 대해 자칫하면 감상을 더디느끼거나 바보스럽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었으니 말이다. 이 운문소설의 유쾌함에 박차를 가하는 신랄함은 자칫 저자의 성의없음과 그저 헛소리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제대로 감상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책은 세 번을 읽고서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책은 가까이 두고 적어도 한 달에 두 세권씩은 읽고 있는데, 운문소설은 처음 보는 분야였다.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단순한 듯, 대충 써내려간 듯한 이 글이 설마 이렇게 흥미로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햄릿이나 맥베드가 진정한 ‘문학’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고뇌하고, 또 고뇌하고 다시 고뇌하면서 살아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문소설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는데 더더군다나 이 운문소설은 가슴 뛰고 애달픈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장소설은 더더욱 아니며, 비극이나 희극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솔직히 책을 펴보고 두 어장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뿌쉬낀에 대한 극찬에 비해 뭔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장씩 읽어나갈 수록, 장황하게 묘사하고 서술한 글만이 아름다운 ‘문학’의 정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학은, 정의 그대로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니까.사실, 이 소설의 스토리는 참 이상하다. 여러 단어를 생각해보아도, 역시 이상하다는 단어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주인공인 예브게니 오네긴은 젊음을 즐기다가 친척의 상속인이 되어 그 영지로 간다. 그곳에서 렌스끼라는 청년과 친구가 되고, 렌스끼의 애인인 올가의 집안과도 친분을 맺는다. 올가의 언니인, 창백한 아름다움을 지닌 따찌야나는 오네긴을 보고 사랑에 빠져 편지로 그녀의 애절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오네긴은 냉정하게도 마치 그녀를 혼을 내듯이 거절하고, 올가와의 연이은 춤으로 렌스끼의 화를 돋우어 결투를 함으로써 그를 죽이기까지 한다. 오네긴은 자취를 감추고 렌스끼의 무덤에서는 올가와 따찌야나가 서로 안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렌스끼의 사랑하는 그녀, 올가는 렌스끼를 잃은 슬픔도 잊고 어느 창기병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따찌야나 또한 어느 장군과 결혼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오네긴은 우연히 파티에서 따찌야나와 마주치게 되어 사교계의 여왕이 된, 이제는 도도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인 공작 부인 따찌야나에게 반해 사랑을 느끼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그리고 따찌야나의 거절과 동시에 책을 쓰는 작가는 독자들에게 "헤어지고 싶다"며 이별을 고한다. 이것이 소설의 모든 내용인데, 특히 렌스끼의 죽음은 정말이지 놀랄 정도로 빠르고, 담백하다. 마치 그저 누군가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인공은 아니지만 분명 주인공의 사랑하는 친구였고, 열렬한 청춘과 사랑을 느끼는 청년이었음에도 그나마 입체적인 인물이었던 그의 죽음은 그저 시간이 무심히 흘러가듯 그저 흘러가는 일처럼 지나간다. 게다가 오네긴은 주인공이지만 그 책의 결말까지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며, 그저 권태로움과 미약함만을 보일 뿐이다.게다가 신기하게도 주인공들의 번뇌를 찾을 수 없다. 무릇 러시아 문학이라면, 영웅서사시적인 느낌은 없을지언정 주인공들의 심리적 고뇌와 끊이지 않는 고통과 생각들로, 종교적인 면과 교훈적인 면들로 쓰여진다 해도 그것이 일반적일 것을, 오히려 이 작가는 풍경과 몽환적인 부분에 작품의 외적인 부분을 충만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풍경과 장소, 분위기 등을 잘 묘사하다가도, 갑자기 문득 발, 그 작은 발에 찬미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그리워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런데 우리 오네긴은 어떻게 됐을까?“라고 능청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더욱 이상한 것은, 그런 작가가 밉지만은 않다는 것.이렇게 소설 ‘오네긴’은 운문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형식적인 제약과 그의 작품이 지니는 생명력이 만나 유쾌하도록 이율배반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부분은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분명 뚜렷한 운율이 없음에도, 노래를 부르는 듯한 느낌으로 책 한권을 즐거이 읽을 수 있게 한다. 또한 저자는 소설의 서술을 전담하는 전통적인 화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때로는 등장 인물로, 때로는 뿌쉬낀 자신으로, 때로는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저자로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는 소설과 자신의 현실 사이의 경계를 무시하면서 자유로이 넘나들고, 차가운 지성을 잠재우고 무엇보다 주관적인 시각과 감정적인 입장으로 소설을 쓴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의 상상력에 온전히 이야기를 맡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토리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서정적인 표현이 아주 풍요롭다는데 흥미롭다. 추운 자작나무 숲에서 곰이 말하고 괴물들의 주인인 오네긴이 나오는 따찌야나의 꿈 이야기라든가, 오네긴의 어찌할 수 없는 권태로움에 대한 표현이 실로 그렇다. 이러한 서정적인 표현은 왠지 모를 아늑함과 동시에 전염성강한 권태로움을 선사하는 것이다.또한 저자는 아무런 반기조차 들 수 없는 내용을 쓰곤 하는데, 2장 26번째를 보자면,계집애들이란 으레 / 고분고분한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 예의범절이니 세상의 법도를 배우고 /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 으쓱대며 인형에게 되풀이 하는 법.동양적서정인 해학과는 약간 다른 의미이겠지만 역시 다른 단어들보다는 해학이라는 단어가 의미상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어린 소년처럼 짖궂게도 보이는 그대로 말하는 듯하면서도 90세 노인처럼 말하는 그의 표현에서, 보통 다른 뭇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묘한 쾌감을 얻게 한다.이렇듯 뿌쉬낀은 간결하고 대충 쓴 듯 한 운문으로 아이러니함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이야기의 전개는 무언가 대충하는 듯하지만 읽다보면 왠지 전속력으로 달리는 느낌으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뿌쉬낀에 의해 리얼리즘이 대두되었을지라도 낭만주의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것에 오네긴을 귀속시킨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모처럼 마음에 맞는 즐거운 책을 발견했는데 냉철한 분석을 하자니 내키지 않는달까.
진보의 2008년을 꿈꾸며2002년의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이뤄내자 전 국민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연말의 대선 결과는 ‘대한민국을 새롭게 개혁할 수 있겠다’라고 간주된, 혁신적인 후보인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것이었다. 그 당시 모든 언론들이 대선 실시 및 결과에만 주목하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의 나로서는 그저 ‘나도 빨리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교과서적으로 생각하였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일이다.2007년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난 스무 살이 되어있다. 5년 전 내가 그리도 꿈꿔오던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에 비해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성숙해졌다. 그러나 국가의 원수를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시기에 책장 속에서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 왔다. E.H.Carr의‘역사란 무엇인가’이었다. ‘5년 전 대선도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앞으로 2007년 12월 19일에 행해질 대통령 선거도 대한민국의 한 역사이다. 그리고 난 그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되니 손이 저절로 그 책에 가 있었다.역사란 무엇인가.첫 번째 대답-역사가와 그의 사실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고찰을 할 때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 우리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에 대한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두 번째 대답-사회와 인간인간은 누구나 한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 역사가도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대변자이다. 자기 자신을 최대한 인식하고 있는 역사가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극복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사회와 자신의 사고 방식이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 가지는 차이의 본질적인 성격을 더 잘 평가할 수 있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 그리고 개인의 행동에서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모순되거나 가끔 상반되는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이다. 즉,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에 속해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이다.세 번째 대답-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역사가와 도덕가의 입장은 같은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자신의 책에 등장하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역사란 투쟁의 과정이며, 그 과정 속의 결과는, 우리가 그것을 좋다고 판단하건 나쁘다고 판단하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다른 집단들을 희생시킨 어떤 집단들이 성취하는 것이다. 역사의 모든 위대한 시대에는 그 시대의 승리자뿐만 아니라 희생자도 있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그 자체가 역사의 산물인 어떤 개념적 틀 안에서 내려진다.네 번째 대답-역사에서의 인과관계모든 역사적 논의는 어떤 원인이 우선 하는가 문제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합리적인 원인은 다른 나라, 다른 시가, 다른 조건에서도 언젠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 유익한 일반적인 원인이 되며,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역사에서 인과관계를 다루는 데에 열쇠를 제공 해 주는 것은 바로 이렇듯 어떤 목적이 고려되고 있는가 하는 관념이다. 이 관념은 필연적으로 가치관을 포함한다. 역사에서의 해석은 언제나 가치판단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인과관계는 해석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다섯 번째 대답-진보로서의 역사역사란 획득된 기술이 한 세대에서의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에서의 진보는 자연에서의 진보와는 달리 획득된 자산의 전승에 의존한다는 것은 역사의 한 전제이다. 그 자산에는 물질적인 재산과 자신의 환경을 정복하고 변형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가 포함된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작용한다. 진보에 대한 신념은 인간의 잠재력의 부단한 발전에 대한 신념을 의미한다. 역사 서술은 그 자체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의 어떤 경로에 대하여 끊임없이 확장되고 깊어지는 통찰력을 제공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진보적인 학문이다. 역사는 그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며, 혹은 진보이다.여섯 번째 대답-지평선의 확대역사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으로 제시했고 역사가도 그 과정 안에서 움직여 나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그 충만한 감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더 이상 성취로, 기회로, 진보로 생각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릴 때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 가능한 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격동하는 세계, 진보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대답한다.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독후감 ?이방인과의 만남?사람이 앞만 보며 달려갈 수는 없지만 자신의 발끝만 쳐다보며 제자리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 이 사람은 발끝에 뭐가 묻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니 맨발로 서있다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당장의 아픔만 없다면... 타인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맨발로, 홀가분하게 이방인이 내게 찾아왔다. 낯설고 차갑다. 내 주위의 색과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다고 하지 않는다. 그를 보고 틀렸다고 손을 가리켜 입을 모은다. 나와도 달라서 내게도 낯설었던 이방인이었으나, 내안의 무언가는 그의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끌리고 있었다. 나 역시 군중 틈에 껴서 '그는 살인마다.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가 없다. 태초의 양심도 없는 자다' 라며 한마디 거들었으나, 또 다른 얼굴은 강한 긍정과 동질감의 표정을 비췄다. 충분히, 진심으로 공감이 간다며.법을 통한 판사의 결정과 사람들의 정의의 심판으로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심심한 인생을 살다간 뫼르소의 이야기다.뫼르소가 어느 곳에 살며 어떠한 일을 하며, 어떻게 여가시간을 보내는지 바라보면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직장인과 같이 주어진 일을 하고, 주말엔 보통 여자 친구와 보내고, 크게 할 일이 없는 날에는 발코니에 앉아 해가 기울어질 저녁때까지 신문을 보고, 담배를 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연립에 살며 이웃과는 적당한 인사 정도 하며 부탁이나 질문에도 적절히 응해준다. 정말 일상생활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지금의 우리 현대인과 다를 게 없다.그러나 뫼르소에게 한 걸음 다가가 귀를 기울이면 그의 머리를 통한 목소리의 울림에 그를 내 편으로부터 단번에 밀어낸다. 또 다른 나를 흔들어 눈을 뜨게도 했지만, 그의 손을 들어주지는 못한 이유와 같다. "여러분! 저는 이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 사상까지 동의합니다." 라고 외치지 못 할 것이고, 검사에 맞서 그를 변호할 생각은 더욱이 없다. 다만 뫼르소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 내뱉을 수 있겠지만 그에게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건 '수많은 나'중의 일부일 뿐이다.이 세상과 같이 다수가 왜 고개를 젓는지 뫼르소에게 좀 더 다가가 보자. 어머니의 죽음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갔지만 시신을 보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다만 좀 피곤한듯하여 커피 권유를 마다하진 않는다. 장례식 날, 슬퍼했느냐고 묻는 변호사에게‘물론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으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는 일이 있는 법이다. 그 날 나는 매우 피곤해서 잠이 왔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가 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그다. 짓누르는 피로와 쏟아지는 졸음과 같은 육체적 요구가 흔히 감정을 방해하는 성질이 있다는 뫼르소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긍정까지 힘든 건 작가의 비약이 심하거나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얼핏 보면 그는 뭐든지 귀찮아하는 것 같다. 뭐든지 반응이 무덤덤하고, 열정과 욕심이라고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허무주의자거나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이데올로기나 무슨무슨주의와는 거리가 더욱 먼 사람이다. ‘뭐든지 말해봤자 무의미한 일은 생각에 그친다. 어차피 말이란 좀 틀어지게 마련이다.’라며 하려던 말을 머릿속에서 그친다. 늘 가던 셀레스트네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지도 않는다. 레스토랑 사람들이 던질 여러 가지 질문에 대꾸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모두가 공감 가는 부분이 아닐까. 당연히 해야 하고, 당연히 하라 해서 그래왔지만 오늘만큼은 피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지인들과 형식적인 안부 묻기와 예의 갖춘 인사와 좋은 게 좋은 듯한 대답들. 모든 인사치례가 자신의 깊은 곳에서 묻어나는 웃음과 진심으로 바뀌길 바라지만,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 이면서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일에 대해선 어떨까.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나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고, 결국 달라진 것 파리의 출장을 권해보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답한다. 사장의‘젊으니까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는 물음에, ‘사람이란 생활을 바꿀 수는 결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조금도 불만스럽게 생각지 않는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그는 생활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주고, 그의 열정을 끓게 만들고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학생 때에는 야심도 많이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때 그러한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뫼르소는 말한다. 역시 포기란 실패보다 무서울 정도로 강한 어둠을 지니고 있으며, 포기의 시작은 무관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랑 앞에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무채색 가슴에 빛이 비추지 않을까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자 친구인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뫼르소는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알고 싶어 했으나 그는 그건 아무 뜻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모든 사람이 어이없는 웃음을 보이지 않았을까? 대체 그에게 연애와 사랑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하는지 마리가 묻자, 그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그리고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편이고 나는 승낙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에게 연애, 사랑, 결혼은 전혀 중요한 것도, 중대한 일도 아니다. 인생 자체가 아무렇지도 않은 무의미다. 마리가 다시 자기처럼 관계를 가진 다른 여자가 같은 청혼을 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를 묻자, 물론 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예상했을 답변이다. 자신의 사랑과 미래 앞에서 마치 남의 얘기하듯이,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점심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정도의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민할 이유가 없기 여가를 보내러 간 해변가에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총으로 쏜 누군가가 중요하진 않다. 방아쇠를 당긴 이유는 기겁할 정도로 더 어이없기 때문이다. 태양에 눈이 부셔서 쐈다니.여기서 ‘살인사건’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다. 뫼르소의 삶을 일상에서 감옥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가 감옥에 갔다고 달라질리 없다. 감옥에 갇혔을 초기에 가장 괴로웠던 것은 여자에 대한 욕망과 담배 등 대수롭지 않게 충족되던 일의 차단에서 오는 고통이었다. 그러한 고통을 제외하면 뫼르소는 과히 불행하지 않았다. 하나, 둘 익숙해지니 다음 문제는 어떻게 시간을 죽이느냐 였지만, 자기 방에 있었던 가구를 하나하나 생각해보고 그려가면서 시간을 보내니 잠자는 것도 익숙해지고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잘 수 있게 된다. 처음 체포되어 재판까지의 과정을 본인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점점 복잡한 사건의 양상을 띠고 이사람, 저사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며 제일 놀란 것은 뫼르소 자신이다.법정에서도 뫼르소는 현기증만 느낄 뿐이고, 남의 일 보듯 한다. 밖에서 들리는 아이스크림 장수의 소리에 더 끌리고, 형무소의 독방을 되돌아가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고 생각한다. 만일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다면, 일상으로 돌아와 반복되는 회사일과 뻔한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감옥 생활을 그리워했을 뫼르소다.‘사회’는, 즉 세상은 그가 걸어온‘삶’과‘행위’모두에‘의미’를 두고, 찾아내려고 애쓴다.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낸 일,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일, 그리고 태연히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일, 장례식에서 돌아온 직후 여자와 놀아나고, 건달과 사귀면서 자기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인간을 죽였고, 그 시체에다 다시 총 네 방을 더 쏜 일. 이 모든 사실들은‘윤리’, ‘도덕’ 그리고 인간의‘상식’에서 벗어나 규탄 받는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그가 후회하는 빛이라도 보였습니까? 범행을 뉘우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후회하고 뉘우친다고 뭐가 달라지고 달라질에 뫼르소는 ‘나는 내 행동을 그다지 뉘우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노발대발한다는 것이 나는 놀라웠다.’라고 생각하니 웃음까지 나오고 오히려 상대가 우습게 비춰졌다.뫼르소는 허례허식, 아첨, 달콤한 거짓말 따위로 편리하게 삶을 사는 세상의 모든 자들과 반대로, 모든 관습을 뿌리치고 살기를 택한 인간으로 허망한(책의 표현을 빌자면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임에 틀림없다. 기존사회의 모순에 찬 규제나 선입관, 그리고 허식의 것들이 뫼르소에게는 모두가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가 종교다. 신부(종교)란 모든 사람을 사형수로 보고, 신을 빙자하는 권위의식이 마음속에 오만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모든 죄인을 가엾게 여기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인간에게 닥치는 재앙은 경각심을 일깨우고 평소의 불신적인 태도를 꾸짖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해버린다. 뫼르소를 설복시키려는 신부는‘내세’의 삶을 희구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당신의 혈육과 같소. 다만 당신은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거지요.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때, 뫼르소는 자기도 모르게 신부복을 움켜잡고 외친다. 그에게 욕을 퍼부으며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라. 지옥에서 불타버리는 것이 소멸하는 것보다 낫다. 너는 무슨 확신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너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신도 없지 않느냐.”라고 외친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는가? 너의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생활,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단지 하나의 숙명이 나 자신을 사로잡고 나와 더불어 너처럼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냐?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 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받을 것이다. 살인범으로 고발된 자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해서 사형을 받는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살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