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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완전한 사랑의 7단계
    이 책을 읽으려고 처음 펼쳤을 때부터 놓을 때까지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의 도입부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의 핵심적인 내용인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과 정반대로 서술한 내용 때문이었다. 몇 년 전에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남성과 여성은 차이가 분명히 있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남자가 의도한바와 여자가 의도한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인식하고 다르게 대처해야한다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 책의 저자가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하고 있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점차 읽어 내려갈수록 내가 그동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한 존재이며 똑같이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또는 남여라는 성별에 따라 더 상처받고 덜 상처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고 자라난 환경에 따라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남여라는 인간은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볼 때 남여의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감이 되었다.여기에서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7가지 단계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 두 번째로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한다는 말이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신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고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이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게 되듯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자아형상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크마라는 학자가 쓴 [성경이 가르치는 자아형상]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자신의 자아 형상에 따라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후크마가 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지금의 나 자신도 긍정적인 자아형상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주변에 있는 친척들이나 가족들은 모두 일류대라고 부르는 서울대나 의대를 나왔는데 나 자신만 일반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내가 일반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의대에 가지 못했다고 주위에서 구박하거나 면박을 주는 일이 전혀 없었지만 내 스스로 자격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이 열등감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또한 현재 내가 공부하고 있는 사회복지라는 분야도 그야말로 ‘돈 많이 벌지 못하는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사회복지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많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우대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모임에서도 사촌오빠나 친지들이 사회복지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생각을 다 했니?’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이런 질문이나 관심들이 자격지심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괜한 상처로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항상 가족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말도 잘 안하게 되고 괜히 주눅 들어 있곤 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나는 못났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게 되면 그 사람은 못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자신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데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함으로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있는 열등감을 버리고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재적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전문성 있게 똑부러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무시하거나 얕볼 수 없듯이 자신감에 찬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랑나누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서술하면서 사랑의 의사소통의 가치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내 태도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들에 대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자아성찰을 하면서 반성도 많이 되고 나의 성격이나 행동, 말하는 태도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고마움의 표현이나 미안함의 표현이 좀 서툰 편이라서 사람들에게 무뚝뚝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하는데 감정표현을 숨기고 감추려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인 것처럼 사랑의 감정이나 고마움, 미안함의 감정들을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실제로 나는 어떤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기 복잡하거나 귀찮은 상황에서는 종종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떠넘기려하곤 했다. 또한 말을 많이 하는 걸 피하는 성격이라서 말을 아끼는데 이러한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오해가 발생하고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처음 보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저 사람은 속이 깊으니까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해주겠지’ ‘저 사람은 이해심이 많고 상담학을 공부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해해주겠지...’라고 하면서 나의 의도를 충분히 해명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얼렁뚱땅 넘어갈 때가 많았는데 이러한 내 행동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상대방이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도 상처를 받고 속이 상해서 삐지더라도 왜 삐졌는지에 대해선 말을 안 하고 ‘내가 왜 삐졌는지 쟤는 충분히 알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화만 잔뜩 내거나 툴툴거리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내 행동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얼마나 황당하고 답답함을 불러일으켰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 말도 안하고 혼자 화만 버럭 내버린다면 이러한 상황은 결국 악순환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처받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때 바로바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고칠 점은 고치고 반성하며 긍정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또한 이 책의 저자는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이간질이나 헐뜯기, 비꼬기와 같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의사소통은 피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특히 이 내용이 나에게 적용이 되고 반성도 되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상대방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려하기보다는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꼭 복수해야지’ ‘그때의 내 기분을 알도록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잠깐의 스트레스 해소나 몇 초 동안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미래를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잠깐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약 올렸다는 성취감에 기쁠지도 모르지만 나도 상대방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남에게 상처를 준 생각은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다보면 그 상처는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는 더 이상 좋은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5.12.08| 3페이지| 1,000원| 조회(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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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교육] 교회교육 그 이론과 실제
    1부 교회교육의 이론 Ⅰ - 철학적 근거제 1장 교회교육의 이해설교와 복음전파를 매개로 하고 성령의 사역으로 인하여 참되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태어나듯이 교회교육을 매개로 하는 교육활동으로 성도들은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에 교회교육론에 대한 재음미는 교회교육의 정립과 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하며 교회교육은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행하여져야 한다는 것에 교회교육의 필연성과 근거를 두어야 한다.그리스도인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비그리스도인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교육의 정의와 개념은 다르다. 기독교인은 기독교교육을 주창하며 비기독교인은 세속교육을 주창하는데 세속교육이란 인간중심의 교육으로 인간이 쌓아올린 지식을 전수하고 가치관을 전수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은 출발점에서부터 세속교육과 달리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를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 할 수 있다.첫째는 사람의 독특성이고 두 번째는 사람과 동물과의 동질성을 말하는데 사람의 독특성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영적인 면에서의 닮음이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과 동물과의 동질성이라는 것은 사람과 동물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교육과 세속교육의 차이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가르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패커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을 구별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 교사가 그리스도인 학생을 가르칠 때 진화론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것은 진화론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지성적인 칼빈주의자 및 그리스도인을 양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기독교교육은 학교나 가정이나 교회나 기타 단체이던지 어 있는데 이 구절을 참고로 할 때 설교와 교육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함께 합하여 시행되고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온전하고 올바르게 세울 수 있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이 따르지 않는 설교는 성도로 하여금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자라게 할 수 없고 설교 없는 교육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양성해 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제 4장 교회교육과 철학교육에는 하나님의 사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인간의 사역도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이란 하나님과 협동하는 인간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는 소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사가 되는 것이지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교사의 지도에 관한 사명이 잘 나타나 있는데 바울은 교사의 목표를 온전케 함, 즉 회복시킴을 뜻하며 또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가능한 것이며 그리스도인 교사가 해야 할 일이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이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철학으로 무장하여야 한다.나이트는 ‘교육철학의 주된 과업은 교육자들이 전체적인 교육과정과 삶의 과정에 관한 의미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바라는 목표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위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철학은 교사에게 본질적이며 교육사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문의 발전과 교육을 위해서 교사 자신이 먼저 올바른 철학으로 정립하여야 한다. 다양한 철학의 인간관은 성경의 인간관과 분명히 구분되며 이것은 성경적 교육관의 정립이 없이는 교사 자신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교사는 자신과 학생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교육목표, 내용, 과정, 방법론에 이사람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회심은 인간의 마음대로, 인간이 준비상태 여하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회심은 구원의 한 과정이며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또한 회심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회심은 구원의 한 과정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이며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이다. 그러므로 회심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구원사역이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원사역에는 사람이 참여할 여지가 없음을 함의한다.회심은 그리스도를 인정할 때 일어나는 것이며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회심은 사람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을 성령의 사역으로 살리는 것인 반면에 교육은 영적으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을 성숙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이 교육으로는 회심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요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인 것이다. 여기서 회심과 교육의 관계를 단순화해본다면 회심은 교육의 출발점이며 교육은 회심을 전재로 한다. 그러나 회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을 은혜 가운데서 자라게 한다. 바울은 이러한 것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표현하고 있다.교육을 통해서는 회심할 수가 없으며 회심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교육을 하더라도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회심하였는지의 여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회심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 출석하거나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태어난 아이는 회심하였다는 가정 하에 교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으로서의 교육을 정립시키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제 6장 교회 것은 자의적으로든지 타의적으로든지 간에 사람이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사람은 영적인 또는 신앙적인 존재로서 지음을 입었을 뿐 아니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로마서 말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가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서 멀어져갔고 이렇게 죄악 된 사람은 성품과 신앙을 다시 한번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변화를 받을 것을 말한다. 바울에 의하면 사람은 신앙은 변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발달할 수 있음을 뜻한다.이처럼 기독교인들이 목표로 하는 신앙은 발달이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신앙발달이 교육을 통하여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첫째로 교회의 사역이 설교에만 의지해서는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설교와 교육은 보완적인 개념으로 시행될 때 완전한 성도들을 양육할 수 있다. 둘째로 교회가 교인들로 하여금 균형이 잡힌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프로그램의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전문 사역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comment -어린이들은 교사나 부모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기이지만 부모의 맞벌이나 이혼가정의 증가 등으로 인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하게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무한하시고 무조건적이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사랑을 주어야한다. 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이 학생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마태복음에도 나와 있듯이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무한하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학생들에게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중의 하나가 문체라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는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과 방법을 택하여야 한다. 성경본문은 같더라도 대상에 따라 설교방법과 내용수준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신학용어나 성경원어, 외국어 등의 사용은 설교의 효과성을 위해 자제해야 한다. 효과적인 설교를 위해서는 난해한 용어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뜨거운 마음과 생각을 차갑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목사는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 억눌려 본문 안에서 헤매고 빈약한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논지를 바로 찾아내고 듣는 성도들의 수준에 맞는 설교를 함으로써 준비 때의 수고와 땀이 설교한 후의 만족과 감사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제 9장 예배의 교육적 기능프랭클린 세글러는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께 성도 개인의 믿음을 표현하는 사랑의 응답이라고 정의하였다. 예배와 교회교육의 관계는 예배를 위한 교육과 예배의 교육적 기능,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예배를 올바로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예배를 올바로 드릴 수 있도록 교육함을 통하여 성도들은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뿐 아니라 예배를 올바로 드릴 수가 있다. 성도들은 예배를 드릴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배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답고 은혜롭고 기쁨과 감사로 넘쳐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예배의 중요한 요소의 다른 하나는 찬양이다. 예배 때의 찬양은 즐겁고 감사의 표현이 되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설교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잘못된 것에서 회개하고 돌아서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지를 전하는 것이므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을 교육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설교는 개념으로서의 설교다.
    인문/어학| 2004.12.12| 15페이지| 1,500원| 조회(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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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보건 사회복지] 샤인
    1. 확인한 문제① ct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ct의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독선적인 아버지의 그늘아래에서 살다가 유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의절하고 집을 나오면서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과 목표달성에 대한 압박감에 의해 스키조가 발생되었다고 본다. ct는 아버지와 연락을 취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보낸 편지를 읽어보지 않을 것이 분명할 것이라며 아버지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이 쓴 편지를 아버지에게 발송하지 못한 채 ct의 책상에 쌓아두고만 있는 상황이다. ct가 삶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아버지와의 단절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죄책감으로 인해 목표달성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으로 보이며 ct의 심리적, 정신건강의 안정을 위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상태이다.② ct의 사회통합을 위한 집단 지도가 필요하다.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의해 또래 친구들이나 이웃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차단되었고 오로지 ct가 속해있는 가족끼리만 의지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친구나 동료관계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집단지도를 통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여야 하며 가족뿐만 아니라 또래집단, 이웃과 같은 지역사회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바람직한 사회행동의 규범을 학습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③ ct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ct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이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회복하고 난 후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2. 사회 경제적 기능 사정경제적 수준은 하위이며 아버지는 아들의 피아노교육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생활은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땔감을 직접 베어 사용하며 다행이도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부족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ct의 아버지는 ct나 ct의 누나, 동생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가족의 단결만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ct의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 피아노 콩쿨이 열리는 곳마다 ct를 데리고 가서 연주를 하게 하였고 어느 날 ct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심사위원으로부터 피아노 교육을 권유받지만 학비를 댈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이 없는 것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심사위원으로부터 학비를 지원받아 ct는 피아노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지역주민도 ct의 재능을 인정하고 지지해주었다.유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의절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교류도 전혀 없었으며 다른 또래의 친구들이나 이웃들과의 사귐도 없었다. 단지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수와 ct의 고향에 살고 있는 작가하고만 교류했을 뿐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피아노를 치는 일에만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3. ct의 지지체계① 가족ct의 가족은 다른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오로지 자신의 가족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응집력이 매우 강하다. 가족 중에 아버지가 ct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ct는 아버지를 자신의 버팀목으로 삼고 믿고 의지한다. 아버지는 콩쿨이 열리는 곳마다 ct를 참가시키며 ct의 피아노 치는 재능을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ct의 지지체계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② 사회적 지지체계콩쿨에 참가한 ct의 재능에 감탄한 심사위원은 ct를 전문적으로 교육시켜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할 기회도 제공해주었으며 ct에게는 레슨비로 지불할 돈이 없는 것을 알고 무료로 교육을 시켜주었다. 또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ct의 지역사회에 사는 한 이웃은 ct에게 관심을 갖고 ct의 재능을 인정하고 지지하였으며 ct가 유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힘들어 할 때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사회 주민들을 ct의 지지체계로 활용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4. ct의 강점과 약점ct는 유명한 음악가로부터 관심을 받고 재능을 인정받아 유학을 권유받을 정도로 피아노를 치는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 강압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종적이었으며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어렸을 때부터 강압적으로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커가면서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고 열정도 키워나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아버지와의 의절까지도 감수하고 혼자서 유학을 결정할 정도로 목표 달성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다.그러나 어린시절부터 외부 체계와 단절되어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의 세계 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이나 이웃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만을 위해 정진한다. 세상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무엇을 하던지 항상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일이 있으면 소변을 흘리는 증세를 가지고 있다.
    사회과학| 2004.12.04| 3페이지| 1,000원| 조회(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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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복지] 정신장애인의 성공적인 재활을 촉진시키는 요인과 방해하는 요인
    1. 정신장애인의 성공적인 재활을 촉진시키는 요인첫째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것이 정신장애인의 성공적인 재활을 촉진시키는 요인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미술치료나 음악치료와 같은 예술치료프로그램을 통한 집단활동프로그램은 정신장애인들의 내적 표현력 및 사회성, 사회기술향상을 통해 사회적응력을 길러 지역사회 내에서의 만족스러운 사회통합을 촉진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직업적응훈련 프로그램은 정신장애인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응력 및 사회참여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직장예절, 생활정보활용, 특별활동 등을 통해 현실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자신과 타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인식시킨다. 무엇보다도 직업적응훈련프로그램은 취업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여 자발적인 사회통합의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둘째로는 정신장애인의 재활 성공률은 가족의 지지도에 비례한다. 정신장애인과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되는 사람은 가족이다. 이러한 가족의 모든 행동은 정신장애인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일 가족이 재활프로그램에 무관심하거나 ‘쟤는 내 동생이지만 할 줄 아는게 있어야 취업을 하지 쟤가 무슨 수로 취업을 하겠어?’와 같은 식의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정신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가치절하를 당하게 되므로 성공적인 재활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가족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지적인 태도를 취하고 가족을 넘어 지역사회까지 정신장애인에게 지지적인 태도로써 대한다면 성공적인 재활이 이루어질 수 있다.셋째로는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키고 참여시키는 것이 성공적인 재활을 촉진할 수 있는 요인이다. 사회적응기술로써 용모관리와 일상생활기술, 행동의 적합성과 안전성, 기본적인 직업기술 중 지시 이해력, 작업속도, 정확성, 지구력, 자발성, 집중력, 시간준수, 다른 사람과의 협조성, 출근 상황, 시간 관리, 여가시간의 활용여부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주어야 한다. 또한 정신장애인들은 훈련 시에는 역할에 대해 잘 수행하지만 실전에서는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역할 연습을 통해 배운 것들을 비슷한 상황이 발생되었을 때 배운 것을 잘 적용할 수 있도록 실전에서도 연습시켜주어야 한다.2. 정신장애인의 성공적인 재활을 방해하는 요인우선 정신장애인의 우울, 반복적인 상실감, 외상, 무기력감, 수동성, 그리고 절망감 등과 같은 요소들은 다른 주요 서비스 체계들과의 연결과정에서 방해물이 된다. 사회복지사가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정신장애인의 취업을 연계하였을지라도 자신이 일을 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거나 일하다가 재발하느니 이대로 있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라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천하고 힘든 일밖에 없다, 또는 취업해봐야 몇 푼 벌지도 못하고 차비가 오히려 더 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에게는 재활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둘째로는 정신장애인이라면 무조건 기피하고 두려워하며 사회문제의 책임을 정신장애인에게 전가하기도 하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실행하는데 있어 기관과 연계할 때 정신장애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고용주의 태도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이러한 정신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정신장애인의 재활을 가로 막는 요인이다.셋째로는 정신 장애인의 재활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제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적절한 예로, 현재 장애를 가지고 있고 생활보호대상자인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게 되면 지급되는 연금만큼 생활보조금이 공제되고 영구임대아파트 입주후보에서 탈락하게 되는 등 대부분이 각종 생활혜택에서도 제외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정부보조금이나 생활혜택과 같은 서비스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정신장애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두려움은 새로운 시도나 자신의 강점을 계발하려는 동기를 제한하는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사회과학| 2004.12.04| 2페이지| 1,000원| 조회(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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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바울복음의 기원
    이 책의 제목은 바울 복음의 기원(THE ORIGIN OF PAUL'S GOSPEL)으로 김세윤 박사가 F. F. Bruce 교수의 지도를 받아 1977년 8월에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교에 제출한 Ph. D 논문의 수정판이다. 원래는 독일(Tubingen : Mohr-Siebeck,1981, 1984)과 미국(Grand Rapids : Eerdmans,1982)에서 출판되어 그 동안 주로 외국에서 토론되었었다. 국내에서는 1984년 홍성희씨가 우리말로 옮겼으며 도서 출판 엠마오에서 1994년 8월 31일에 초판을 발행하고 1995년 3월 15일에 초판 2쇄가 나왔다. 총 페이지 수는 691 페이지이고 가격은 15,000원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세윤 박사는 서울 대학교 문리대, 영국 Manchester대학(Ph. D.)을 졸업하였으며, 독일 Tubingen 대학 Humboldt 연구 교수, 미국 칼빈 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교수,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 교수,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신학과 교수 및 대학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국 Fuller 신학대학원 교수로 있다.주요 저서는 [The Origin of Paul's Gospel] (Tubingen: J. C. B. Mohr,1981; 1984; Grand Rapids :Eerdmans, 1982),[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경읽기사,1981), [“THE ‘SON OF MAN'” AS THE SON OF GOD “그 ‘사람의 아들’”(人子)-하나님의 아들] (엠마오, 1992), [예수와 바울] (도서 출판 참말, 1993) 등이 있다.이 책은 서론과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론 부분에서는 총 7장으로 바울의 배경과 다메섹 사건, 바울의 복음에 대하여 계시, 기독론, 구원론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우선 서론 부분에서는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잡고 있으며 본론의 1장에서는 예비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많은 성경구절 본문들을 통하여 바울의 다메섹 경험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바울의 서신 중 다른 어섹 도상에서 바울이 실제로 빛을 경험한 것과 아울러 창세기 1장 3절을 인용하여 회심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였고 그리하여 바울이 먼저 그리스도를 알았고 그 후에 그는 이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도 알게 하셨다.1장에서는 주로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하였으며 중간 중간에 헬라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헬라어는 최초 사용 시에만 우리말 뜻을 적어놓고 다시 등장할 때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헬라어에 대한 큰 관심과 집중을 필요로 한다. 헬라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데 있어서 좀 힘들었다.2장에서는 핍박자 바울이라는 제목으로 다메섹 사건에 대한 바울의 해석을 고찰하기에 앞서 그 배경으로 회심과 소명 전 바울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이 다소에서 출생하였으며 다소는 로마령 길리기아의 수도로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위치하였으며 통신과 교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바울이 교회를 핍박한 중요한 이유로 두 가지로 들고 있는데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의 디다케로서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이 부활시키시고 높이신 에시아라 선포한 것에 있다고 한다. 바울이 그토록 그것에 열성적이었던 율법에 따르면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저주를 뜻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그런 디다케는 바울에게 있어서 신성모독으로 여겨진 것이었다. 둘째로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헬라적 배경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율법과 성전 의식을 공격한 것을 들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바울은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해서 옛 비느하스의 전통, 그리고 당시의 열혈당원들의 본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칼을 빼들은 것이었다고 한다.2장의 앞부분에서는 존 드레인이 지은 바울이라는 책에서 보았던 바울의 배경과 겹치는 것이 있어서 읽는데 친숙함을 느껴서 그런지 1장에 비해서 잘 읽어 내려간 것 같다. 또한 헬라어가 등장하긴 했으나 1장에서처서 바울에게 계시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다메섹 경험은 바울의 사적인 회심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바울은 그것을 회심보다는 사도로 임명된 것과 관련하여 설명한다고 한다. 사도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동일한 사상이 갈라디아서에서도 나타나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고 교회를 핍박하였기 때문에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던 바울이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언급함으로써 그의 복음의 신적 기원을 증명하고서는 단지 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이 그가 받은 복음이었다는 취지에서만 어떤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의 소명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복음과 이방 선교의 소명을 받았으며 이 사실이 바울의 사도적 소명 속에 있는 강제력의 요소를 적절히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4장에서는 바울의 복음 : 계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그의 복음을 받았다. 바울이 그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복음의 진리, 즉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사람의 선포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그의 아들을 자기에게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인식하였다는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복음은 분명히 사도의 말로 선포되어야 하며, 구체적인 메시지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역사 - 예수그리스도의 생애, 죽음, 부활 안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 해석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에 관한 진술을 통해서만 계시될 수 있는 것이다.성령은 현재 구원과 최종적인 구원 사이에 가교를 놓으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최종적인 계시인 파루시아에서만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며 감추임과 계시의 변증법적인 구조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바울이 비밀 개념을 복음과 그 복음의 내용인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바울 어려움을 느꼈다. 주석이 달려있긴 하지만 다른 책이나 성경을 참고 하라는 저자의 의도에 대하여 잘 이해가 안 갔다. 이것이 신학 논문이라 그런지 신학을 전공하지 않는 다른 일반 학생들에게는 다소 이 책이 어렵고 헬라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약간의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5장에서는 바울의 복음 : 기독론이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복음을 무엇보다도 먼저 기독론적으로 정의한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인 이유는 그리스도가 인간과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체현하시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메시야 시대의 약속하신 구원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복음은 기독론적으로도 정의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이 책의 작가는 바울 신학이 바울의 다메섹 경험에 기인하였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바로 그 순간까지는 바울의 머리가 신학적으로 백지 상태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메섹의 경험에는 바울 신학의 근본적인 특성이 담겨 있는 것이며 바울 신학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그의 배경에 비추어 다메섹 경험을 해석하면서 그 경험에서 그의 신학의 본류를 어떻게 도출해 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바울의 지혜기독론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전에 지혜로 불리워졌던 바로 그 분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되며 예수의 선재와 창조에서의 중보적 역할을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비롯하여 이 칭호들도 지혜 기독론과 연결되었다. 그런데 복음에 대한 정의로는 변함없이 일관되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사용된 것은 토라를 대신하여 참된 신적 지혜가 되시고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관계에 계시고 창조에서 그의 실행자로 활동하셨으며 우리를 죄와 율법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높은 분을 표시하는데 가장 적절하였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이야말로 바울 복음의 내용인 것이다.5장에서는 특히 주석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그 주석의 양도 많았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주석은 어떠한 단어나 상황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참고 자료나 서적들의 제목을 나열하여 독자 스스로 찾아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 자체가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논문이기 때문에 이 주석에 쓰여진 참고 서적이나 설명들 역시 많은 헬라어들이 등장하고 있다.6장에서는 5장에서와 같은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바울이 다메섹에서의 그리스도의 현현을 암시하는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바울의 인식도 결국은 그리스도인이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는 사상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선도하는 구원, 성화, 온전케 하신, 영광에 들어감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부여했던 만물의 지배권과 영광을 되찾은 둘째 아담으로 이해되고 있다.하나님의 형상이란 의미는 출현, 상징, 계시라는 의미를 가진 기능적인 용어로서 포괄적 정의로서 외관, 초상, 모양, 모습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용어는 구약서와 신약서 특히 바울 서신들에서 신의 현현의 맥락에서 눈에 보이는 신의 형상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창세기의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아담이었으나 자신의 소명에 신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대조적 유형론에서 각각 태초의 아담과 종말의 아담의 상징이 된다. 이로 인하여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담의 관점에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첫 사람 아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마지막 아담이라고 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담과 그리스도를 두 사람으로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 기독론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인다.
    독후감/창작| 2004.09.10| 5페이지| 1,000원| 조회(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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