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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비문학론] 판소리
    Ⅴ. 판소리 (pp. 269~284)1. 판소리의 形成과 變貌가. 기원㉠ 巫歌起源設판소리의 기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무가기원설 (巫歌起源設)}이다 일제 강점기에 정노식에 의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한 이 주장은, 그 후, 많은 동조자를 얻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성장해 왔다.서대석은 첫째, 동해안 지역의 무당들이 무속신화인 서사무가를 부를 때 창과 아니리를 교체해서 부르고 둘째, 제사상이 아니라 관중을 향해서 부른다는 점, 셋째, 기본 줄거리에 가요를 넣어 구성하는 점 등이 판소리와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강 이남의 무당은 모두 세습무로서 여자가 굿을 하고 남자는 반주를 맡는 악사들이다. 서대석은 무속집안의 남자들 중 판소리 명창이 많이 나온 점을 들어 판소리의 서사무가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笑謔之戱김동욱은 광대 소학지희에 배뱅이굿과 같은 1人唱 형태가 영향을 미쳐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소학지희는 글자 그대로 웃음거리의 놀이라는 뜻의 대화극이다. 우리나라의 민속 예능은 무당가계 출신의 남자들(巫夫)에 의해 대대로 계승되어 왔는데, 국가적인 행사에 대비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궁중의 가장 큰 연례 행사의 하나인 나례(儺禮)는 고려 때부터 조선조 말까지 이어 내려온 것으로, 연말에 사악한 귀신을 쫓고 국가의 안녕과 태평을 기원하는 일종의 굿이었다. 이 나례는 처음에는 의식이 중점이었으나, 나중에는 곡예와 갖가지 연예까지 곁들어진 대규모 행사로 발전하였다. 여기서 연예 오락 중심의 놀이인 소학지희(笑謔之戱)이다.이들 행사는 특별히 호화로운 무대를 꾸며 놓고 거행하였다. 즉 山臺戱로 공연했다. 그런데 조선조 仁祖 12년(1634)에 재정의 부족으로 궁중의 산대희를 폐지하였다.이에 소학지희를 공연하던 광대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민간을 상대로 연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판소리의 기원이라는 것이다.산대희를 폐지한 시기가 판소리 발생시기 얼마 전이라는 점, 소학지희의 담당층에 무당집안 사람들이 끼어있고 판소리의 담당층도 그 근거로 설명한다)㉢강창 기원론을 들 수 있다.강창은 중국의 속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속강은 불교를 민중들에게 포교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하는 이야기판의 형태를 일컫는 명칭이다. 이 속강이 민중오락화 된 것이 강창인데, 이야기꾼이 이야기와 노래를 번갈아 하면서 스스로 반주를 하였는데, 이야기와 노래가 교체되는 형식을 가진 점, 반주악기를 사용한 점, 그리고 민중의 예술인 점에서 판소리와 유사하다. 하지만 판소리는 창자와 고수가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반주악기가 북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창이 위주이고 아니리가 보조적인 연희형태이다. 또한 과연 외래문화가 우리 토착문화의 뿌리가 되었겠는지, 그리고 그 외래문화가 하필이면 전라도 지역에만 영향을 미쳤는지도 의문인 점이 있다.나. 판소리의 역사적 발전판소리는 17세기경에 발생하여 18세기에 뚜렷한 예술장르로 성장 하였고, 19세기말까지 성행했던 광대들의 예술이다.문헌을 통해서 판소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은 영조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때 사람인 만화재(晩華齋) 유진한의 문집인 [만화집] 가운데 가 실려 있는데, 이것이 현재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판소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것이다. 작자인 유진한은 [어우야담]의 작자인 어우당(於于堂) 유몽인의 6대 종손으로, 영조 때 충청도 천안을 중심으로 인근에 알려진 문인이었다. 그의 아들이 쓴 글에 의하면, 유진한은 숙종 38년 1711년에 나서 정조 15년 1791년에 죽었으며, 1753년부터 1754년까지 호남지방의 문물을 구경하고 돌아왔는데, 는 이 때 들은바 있었던 의 가사를 한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18세기 중반에는 이미 최소한 호남지방에 판소리 가 존재 했으며, 충청도 선비가 감동을 받아 한시로 옮겨놓을 만큼 세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 내용은 현재의 와 거의 같다. 긴 사설을 짧은 한시로 번역했기 때문에 자세한 세부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보아 '결연 - 사랑 - 이별 - 수난 - 재회'로 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보아 판소리는 이미 18세기 중반 이전, 그러니까 대체로 17세기 말 경에는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초기의 판소리는 민중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르는 사람도 민중이고 청중도 주로 민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판소리는 서서히 양반 지식층으로 침투하게 되어 기록자를 만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모를 겪게 되는데, 는 그러한 과정의 한 산물로 보인다. 1810년 경에 씌어진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라는 총 50수로 된 한시에는 판소리 열두 바탕이 등장하며, 우춘대, 권삼득, 모흥갑, 의 소리꾼의 이름도 나타난다.장안에선 많이들 우춘대를 말하지만오늘날 누가 능히 그 소리 이어갈까?한 곡조가 끝나면 술동이 앞에는 천 필의 비단이 쌓이는데권삼득과 모흥갑이 소년으로 이름 있구나.이 시의 내용으로 보면 1810년 경에 이미 우춘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명창이었으며, 이제는 후계자가 누가 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사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있다. 권삼득과 모흥갑이 소년으로 벌써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을 요한다. 1824년에 된 이라는, 광대들의 집단 민원을 적은 글에는 하은담(혹은 하한담)이라는 광대가 등장하는데, 하은담의 이름이 이 문서의 맨 끝에 있는 것으로 보아 제일 연장자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조선창극사]에는 판소리를 맨처음 부른 사람들로 최선달과 하은담의 이름이 나와 있다.19세기에 판소리를 세련된 예술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신재효(1812~1884)이다. 전북 고창 출신이었던 신재효는 , ,,,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개작, 조잡한 사설을 바로 잡음으로써 문학성을 높혔다. 그리고 수많은 판소리 광대들을 훈련시켜 배출해 내었다. 그러나 신재효는 판소리 사설을 개작하는 과정에서 양반들의 취향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건강한 민중의 정서를 손상시켰다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판소리는 광대들의 예술이다. 신재효는 에서 19세기여 판소리에 경기민요의 경쾌한 느낌을 도입한 염계달, 진양조를 만들었다는 송홍록을 비롯, 모홍갑, 신만엽, 황해천, 고수관, 김제철, 송광록, 주덕기등이 유명했다고 한다한편 19세기 중엽에서 말까지의 판소리 명창으로는 박유전, 박만순, 이날치, 김세종, 송우룡, 정창업, 김춘풍 등이 있다.2. 音樂으로서의 판소리소리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의 음향까지도 포함하는 단어이다. 새타령을 잘 부르면 새가 날아온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은 판소리가 자연을 포용하는 예술임을 말해준다 하겠다. 이렇게 볼 때 판소리는 “다수의 청중들이 모인 놀이판에서 변화있는 악조로 조직하여 부르는 노래”라고 볼 수 있다.판소리는 무가, 민요, 잡가등의 민간 전승 음악을 총 집결해 놓고 이들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잘 가다듬어낸 음악이다. 판소리는 북을 반주 악기로 사용하는 성악이다. ‘판소리’의 ‘소리’라는 용어 자체, 판소리의 작품 제목에 에서처럼 ‘가(歌)’를 접미사로 붙이는 것, 판소리를 공연하는 주체를 ‘창자’‘명창’등으로 부르는 것, 등이 우리가 판소리를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판소리는 장단과 조로 되어있다. 장단은 가장 느린 박자인 진양에서 기본이 되는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갈수록 빨라지고 일종의 혼합 박자인 엇모리가 있다. 선율의 바탕이 되는 조는 평조, 우조, 계면조의 세 종류가 있다. 판소리의 기본은 평조로 온화한 느낌을 주고, 우조는 남성적으로 장엄하고 씩씩하다. 반면 계면조는 여성적 섬세함이 강조되어 애원 처절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판소리의 음악은 오랜 세월을 두고 수많은 광대들이 참여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광대들의 개인적인 음악 특징에 따라 판소리의 유파가 생기게 된다. 판소리의 유파는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 동편제는 운봉, 구례, 순창, 홍덕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우조 위주로 판을 짜서 웅장, 호방한 멋이 특징이다. 송홍록이 동편제의 시조이고, 그 뒤를 박만순, 김세종, 정춘풍, 김창록, 김찬업, 박기홍 등이 따르고 있다. 서편제는계면조 위주의 판소리로 수식과 기교가 풍부하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 박유전이 효시이고, 이날치, 정창업, 김창환, 임방울로 이어지는 계보를 갑고 있다. 그 외 중고제는 경기남부와 충청지방에서 발달한 유파로 동편제에 가까우나 경기민요의 음악성이 섞여 있다.3. 演劇으로서의 판소리판소리는 창자와 고수가 사설을 가지고 관객과 만나서 창자의 창?아니리?발림과 고수의 반주와, 고수와 관객의 추임새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김장관계를 맺음으로써 성립되는 공엽예술이다. 여기서 발림 및 창자?고수?청중의 관계형성이 연극이다.연극의 3요소를 희곡, 배우, 관객이라 할 때 판소리는 이 3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연출의 역할은 고수가 한다. 고수는 창자를 이끌어 나가고 관객의 반응을 살피면서 진행을 조절한다. 판소리에서 소도구는 부채이다. 부채는 상황에 따라 그것을 접거나 펴서 여러 가지 소도구로 다양하게 이용된다. 창자는 또한 부채를 감정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기쁠 때에는 부채를 펴고, 슬플 때에는 접고, 부끄러울 때에는 부채질로 얼굴을 가리고 불안할 때에는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한다. 효과음으로는 고수의 북소리와 창자의 의성어를 이용한다. 고수의 북소리는 또한 조명의 기능도 가진다. 북을 밝게 치고 어둡게 침으로써 조명의 효과를 대신한다.)19세기 말, 판소리는 궁중의 연예로 공연될 만큼 대중화되었다. 이 때문에 극장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판소리는 기생의 가무와 더불어 극장의 주요 공연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극장 운영자들은 ‘연희 개량’을 한다면서 판소리를 ‘개량’하려 했고, 원각사의 운영에 관여했던 이인직은 수십 명의 판소리 창자들을 모아 판소리 공연 방식의 면화를 꾀하면서 ‘신연극’을 한다고 광고했다. 이러한 판소리를 바탕으로 1900년에 창극이 생겨났다. 판소리 창자들이 혼자서 판소리를 하기도 하고, 여럿이 역을 나눠가며 창극을 하기도 했다. 판소리가 판소리 창자의 일인극 혹은 판소리 창자와 고수의 이인극이라면, 창극은 배역에 따라 여러 배우가 등장하는 다
    인문/어학| 2005.09.25| 6페이지| 1,000원| 조회(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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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 판소리 연구
    판소리 연구- 민족음악적 관점에서의 판소리 연구 -제1장 서 론1. 연구의 목적판소리는 삼백 년 이상 전승되어 오면서 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에 끊임없이 관여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공연되면서 감상되는 민족 예술의 정화이다.하지만 수많은 시간과 인력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에 있어 흡족하지 못한 까닭은, 판소리 자체가 고도의 복합성을 지닌 예술이어서 한두 가지의 척도에 의해서는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낼 수 없다는 점도 있겠으나, 지금까지 판소리에 적용된 연구 방법의 편중 현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래서,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판소리 연구에 적용된 방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지금에 와서야 겨우 거명되기 시작하고 있는 민족음악학적 연구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판소리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한다.2. 연구사가. 관대 패러다임이 시기의 전기는 판소리 형성기로 알려져 있는 숙종 말기로부터 영?정조대를 거쳐 조선 말까지로, 수많은 명창이 나와 판소리를 발전시켰으며, 서민은 물론 양반에 이르기까지 판소리를 즐기며 판소리의 발전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했던 시기인데, 흔히 로 불리워진다. 이 시기에 판소리는 수많은 이 쌓여 예술적 세련을 더해갔다.이 시기의 편모를 살필 수 있는 것으로 송만재의 ,,, 신위의 등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위과 그 앞 세대의 몇몇 광대의 이름, 판소리 공연 현장에 관한 기록, 열두 마당의 존재 등에 관한 미약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이 시기의 판소리 연구는 신재효의 창작 단가인 에 이르러 분명한 유형을 형성하게 된다. 에서는 소위 이라 불리는 광대의 구비 요건 네 가지를 든 다음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 이론에 의하여 아홉 명의 광대를 중국의 문인들에 비겨서 평하고 있다. 신재효의 은 사설, 인물, 득음, 너름새 이다.이 시대에 신재효와 정현석에 의해 확립된 패러다임은 판소리를 를 중심으로 해서 이해하려 한 것이다. 광대는 공연자(performer)로서 작사(사설치레), 작곡(득음), 실연(너름새)에 이르기까지 는 것이다.이 시기의 후기는 이른바 판소리 5명창이 활동하던 때인데, 민족적으로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의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사멸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근대적인 학문적 탐구가 각 분야에서 시작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판소리는 형태에 변질을 입어 창극화되기도 하였다.판소리에 대하여 학문적 관심을 보인 사람은 김태준과 김재철이었다.김태준은 『조선 소설사』에서 ,,,,등의 근원 설화와 소설적 가치를 논한 다음 판소리를 혹은 라 부르고, 가극>, 즉판소리>의 발전 도식을 제시하였는데, 김동욱에 의하여 이 가설이 무너지기까지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었다.김재철은 『조선 연극사』에서 판소리를 혹은 이라 부르고 이 구극은 가사보다도 곡조가 중대하다고 하여 그 음악적 측면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신재효를 광대로 오인하고. 신재효가 소설을 가극화한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극에 대해 그것이 초대받아 가서 부르는 판소리 가창임을 의식하였다.당시의 이와같은 판소리>의 발전 도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서두수였다. 그는 춘향전->춘향가>의 순환도식을 부차적으로 세우고 스스로 망론이라고 하는 등 매우 망설이면서도 가에 대해 선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소설> 이행론의 선구를 이루었다.정노식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는 이 시기의 연구 중 가장 방대하고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는 명창의 일화와 약전을 모아 놓은 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당시 향간의 구전과 명창들의 구술을 근거로 하여 엮어진 것이기 때문에 다소의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광대 주변의 탐구를 통하여 판소리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나. 판소리 패러다임이 시기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판소리는 거의 소멸지경에 이르러 임방울, 김연수 등 몇몇 창자에 의해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간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지고,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점공감하였다는 것, 즉, 임을 자각하였다는 증거인 것이다.판소리는는 전통적인 이념대로 철저하게 음악이 사설의 내용에 따르는 것임을 알수 있고, 이것은 서사적인 내용을 가지면서도 음악이 사설 내용에 따르는 것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한국의 서사무가?서사가사보다 판소리는 훨씬 표출력이 강한 예술이라 하겠다.제2장 본 론1. 민족음악학의 형성과 전개민족음악학은 학문적인 방법과 체제가 확고하게 서 있는 학문이라기보다는 아직도 형성 과정에 있는 미래의 학문이다.민족음악학의 역사를 흔히 100년 정도로 잡지만, 이 짧은 역사 속에서 민족음악학은 명칭가 대상, 그리고 방법에 이르기까지 변모를 거듭해 왔으며, 처음부터 어떤 이념과 독자적인 목표, 방법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기초로 해서 발전해 왔다기보다도, 세계의 모든 음악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다양한 노력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해 왔다고 하는 편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2. 고수와 창자가. 에 대한 기왕의 평가은 판소리의 생산주체요 발신자인 고수와 창자의 관계를 말하는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이란 말이 어느 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 은 민속 음악이 을 본질로 하고 있는 데 비추어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이란 말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문헌에 나타난 시기를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로 볼 수는 없을 것이며, 실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문헌에 나타나기 훨신 이전부터일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문헌에 등장한 것은 그 용어가 널리 퍼져서 판소리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정도로가지 인식디었을 때일 것이기 때문이다.판소리는 결코 창자 한 사람의 독연 무대가 아니라 창자와 고수의 2인 무대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라는 말이 있다. 과연 판소리 무대에 고수가 없어서는 나비 없는 꽃밭과도 같이 쓸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의 나비 구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엄격한 인격을 갖추어야 하고, 박력 있는 연기력을 지녀야 한다. 중요한 구실을 한몸으로 도맡아서 감당해 내어야 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겠다.나. 비판적 검토-고수의 중요성에 대한 검토-에 관한 최초의 언급으로 생각됙 있는 정노식의 견해는, 에 대한 이후의 해석이 기준이 되기도 하였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고수와 명창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장 중 라는 말의 의미는 명창 광대의 성가가 고수의한 마디 장단에 의해 자우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명창은 최고의 수준에 이른 이념형을 전제로 하는 있는 데 반하여, 고수는 여러 수준의 고수를 전제로 명창가 고수를 운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창은최고 수준으로 불변의 상태에 있고, 고수가 어느 수준에 있느냐에 따라 그 성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보면 이는 훌륭한 고수는 명창의 소리를 더욱 훌륭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요컨대 정노식의 견해는 철저하게 명창의 입장에 서서 명고수의 중요성을 역설한, 명창 중심의 견해라 할 것이다.다. 고수의 성격① 수동성고수의 성격이라 할 때, 고수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수라는 인간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고, 당연히 판소리와 관련하여 맡고 있는 역할, 곧 북의 리듬가 관련한 성격이 문제가 된다.북의 리듬가 간련하여, 제일 먼저 들 수 있는 특성은 수동성이다.북장단을 많은 사람들이 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북장단이 뒤따라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소리와 북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건 소리를 북장단이 따라가는 것이지, 북장단을 소리가 따라가는 일은 없다.결국 고수의 역할을 지휘자나 연출가의 역할과 동일시 하는 발상은 연극적 관점과 고수 중심적 사고 방식이라는 선입견이 빚은 오해에 불과할 뿐으로, 고수의 근본적 성격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수는 소리에 수동적 위치에 있을 뿐이다.②즉흥성북의 리듬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특성은 즉흥성이다.민속음악은 이다. 그러기 때문에 당연히 악보가 있을 수 없다. 된다. 이 변이형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즉흥성이다. 판소리가 민속음악인 한 이 즉흥성은 본질적 속성으로 갖게되는 것이다.고수는 즉흥을 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고 할 수 있다. 엔케티아 J.H.Kwabena Nketia는『아프리카의 음악』에서 고 했거니와, 이를 판소리와 관련시켜 생각해 본다면, 고법, 나아가서 판소리는 사회적 가치와 사ㅚ적 상호작용을 강하게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판소리의 소리나 북이 사회적 가치나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한 표현성이 높기 때문에 즉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판소리가 을 이루는 이라는 속성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3. 청중가. 판소리의 청중에 관한 기왕의 평가판소리 청중은 판소리 예술의 소비주체이며, 수용주체이다. 그러므로 판소리 청중은 판소리의 생산주체인 명창?고수와 더불어 판소리의 예술적 소통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나. 판소리 청중의 성격창자와 고수뿐만 아니라 청중이 판소리 공연 현장에 현존함으로써, 비로소 의 최소한의 외형적 조건은 완성된다. 그러므로 녹음기 텔레비전 등 기계에 의한 재생을 통해 판소리를 감상하는 청중은 이러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판소리 청중이라고 할 수 없다.창자와 청중이 동일 시공간 속에 현존함으로써 판소리는 에 놓이게 된다. 대화적 상황이란 발신자와 수용자가 서로 상호 작용을 하는 상황이다.청중의 내면적 참가는 추임새에 의해 이루어진다. 성공적인 판소리 공연을 위해서 추임새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임새를 하지 않는 청중일지라도 판소리의 공연에 참가하고 있는 청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추임새를 통해서 판소리의 실연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한, 적어도 이상적인 청중은 추임새를 발하는 청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판소리 청중의 현존의 의미는 따라서 판소리라는 예술기호를 통한 상호작용의의미를 갖는다.4. 장 단가. 장단의 개념.장단은 실로 한국음악의 다.
    독후감/창작| 2005.09.25| 6페이지| 1,000원| 조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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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비문학론] 헌화가
    Ⅰ. 서 론.헌화가는 민요 형식을 본받은 4구로 된 서정적 향가로, 소를 몰고 가던 어느 노인이 수로 부인에게 철쭉꽃을 꺾어 바치면서 불렀다는 노래이다. 배경 설화와 함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노랫말이 향찰로 표기되어 전하고 있다. 4구체로 된 짧은 노래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석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레포트는 가장 많이 알려진 해석을 중심으로 써나가겠다.Ⅱ. 본 론.1. 헌화가의 배경설화紫布岩乎 希 딛배 바회 가에 자줏빛 바위 가에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자바온손 얌쇼 노히시고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吾 兮不喩慙 兮伊賜等 나를 안디 븟하리샤단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吾 兮不喩慙 兮伊賜等 곶을 것가 받자보리이다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위의 노래가 헌화가의 전문이다. 그에 따른 배경설화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제 33대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할 적에, 가다가 바닷가에 머물러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돌로 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에 다가서 있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이것을 보고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꽃을 꺾어다 바칠 사람이 그 누구인고?" 종자(從者)들이 말하였다. "사람의 발자취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물러섰는데,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옹이 수로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오고 또한 노래를 지어서 바치었다. 그 노옹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삼국유사」 권2 '기이 제이(紀異 第二)' 《수로 부인》편의 배경 설화에서〈헌화가〉는 꽃을 갖고 싶어하는 미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이다. 아름답고 젊은 상류층의 미인이 꽃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과 초라하고 늙은 상민에 불과한 노옹이 암소를 끌고 간다는 것은 서로 대조를 이룬다. 노옹은 이러한 상황을 가사내용 중에서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헌화가〉는 사랑을 구하는 헌화의 노래가 아니라 미의 세계에 대한 추구를 본질로 하는 노래이다. 노옹은 암소를 끌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과 미인의 미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다. 신라인들이 지니고 있는 미의 세계에 대한 경건한 추구의식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다.)위의 설화로 우리가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노옹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인데, 첫 번째로 '수로부인이 자태가 곱고 매우 아름다워 매번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면 자주 신령한 것들에 붙들려가곤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신령한 것 혹은 신(神)이 헌화가에서는 노인의 모습으로 수로부인에게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이야기 속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수로부인이 꽃을 보고 누가 저 꽃을 꺾어올 자 없냐고 묻자 따르고 있던 사람들이 '사람의 발자취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고 말하며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물러섰다. 그런데 노옹은 바로 그 꽃을 꺾어 온다. 일반인들이 못하는 것을 노인의 몸으로 해낸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노옹을 신(神)격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노옹은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신적 존재가 아니라, 부근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때 마침 암소를 끌고 가던 평범한 농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할 수 없었던 벼랑 위의 철쭉꽃을 꺾어온 것은 그곳의 지형에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2. 헌화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이 노래의 작자는 노옹이고 서정의 대상은 수로부인이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은 누구인지 모르나, 수로부인은 자태와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깊은 산,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다.그런데 허영순(許映順)은 바다 용에게 납치되었다가 나온 수로부인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는 약초의 향훈이나 신경과민·정신이상에서 오는 무적(巫的) 병을 가진 것이며, 미려하다는 수로부인 또한 때때로 무적 병을 일으키는 여성이라 하여 수로부인을 무당으로 간주하였다.또한 안영희(安英姬)도 현대에 사는 무녀의 꿈에 벼랑에 있는 꽃을 신선이 꺾어 주더라는 꽃 꿈 이야기를 원용하여 수로부인의 이야기가 꿈이라 보고, 수로부인은 보통사람이 아니라 샤먼이요, 용궁에 들어 갔다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였다.노옹에 대하여 김종우(金鍾雨)는 소를 끌고 가는 노옹이니 다년간 잃었던 자기의 심우(心牛)를 붙들어 그 소의 고삐를 잡은 노인, 곧 자기법열(自己法悅)을 즐기면서 그립던 본가향(本家鄕)으로 돌아가는 운수(雲水)의 행객이요 선승(禪僧)이라 하였다.그러나 아직도 인아구망(人我俱忘)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던지 미모의 여인 수로를 보자 남성으로서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데다가 공교롭게도 한 떨기 꽃을 원하는 애처로운 장면에 봉착하여 여인의 애원에 호응해 주는 동정심 깊고 자기를 희생하는 숭고한 성(聖)의 정신적 소유자라고 하였다.그러나 김동욱(金東旭)은 ≪삼국유사≫의 본문에 노승이 아니고 노옹이라 하였으며, 노래의 형식 자체가 이른바 4구체가로서 사뇌가의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났으므로 이를 사뇌가 계통에 넣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하였다.김선기(金善琪)는 노옹이 끌고 가는 암소를 도교에서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검은 암소)이라 한다.”고 하는 ‘검은 암소’로 보아 예사 늙은이가 아니고 신선이 분명하다고 하였다.조동일의 경우 좀더 상세한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당시 경주 변방에 민심이 소란하자 순정공은 힘으로 다스리고, 부인으로 굿을 다스리기 위해 함께 갔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동해안 지역을 돌며 굿을 여러 번 했을 것이며, '꽃거리'라고 이름 짓고 싶은 곳에서는 헌화가를 부르고, '용거리'라고 할 대목에서는 해가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헌화가는 상층 굿에 이미 수용된 노래이고 해가는 현장에서 채집되어 한번 부르고 만 하층민들의 토속적인 무가이기 때문에 헌화가는 향가로 남고 해가는 한역되어 단순히 자료로 기록되기만 했다는 견해이다. 신라의 지배층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불교를 최고 이념으로 삼고, 유교에 입각한 제도와 관습을 채택하기도 했다. 아울러 무속의 전통을 함께 이어 융합을 꾀했으며, 특히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을 때는 굿을 했을 것으로 보아진다.3. 노옹과 수로부인과의 관계[헌화가]와 관계되는 수로부인은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순정공의 부인으로 여러번 신물에 붙잡혀 갔었다고 할 정도로 절세의 미녀였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였다. 또 가사를 지어 바친 노옹은 암소를 끌고 가던 사람이다. 이 암소는 생산능력을 가진 치부의 수단으로 보이며, 노옹은 물욕에 사로잡힌 완악한 완부(頑夫)로 보여, 꽃의 아름다움을 탐내는 수로부인에 대조시켜 볼만한 촌로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탐미적인 미녀 앞에서 완악한 완부가 애정을 읊조린 서정시로 신라인의 미의식을 나타내주고 있다.노옹과 수로부인은 여러 대립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우선 남성과 여성이라는 기본적인 대립이다. 또 늙음과 젊음, 추함과 아름다움, 소박함과 세련됨, 천함과 귀함, 생산과 소비 등 연령, 용모, 신분, 생활 등 노인과 부인의 여러 대극적인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노인과 부인을 왜 '생산과 소비'로 보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노인은 '생산'으로 볼 수 있고 수로부인은 '소비'로 볼 수 있다. 노인 쪽이 생산인 것은 노인 자체의 의미에서라기보다 노인이 가지고 있는 암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소'가 갖는 상징성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당시 소는 재산과 풍요, 번식, 재물 등으로 인식되는 것이었다. 소는 농경의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이자 부유와 번창이었다. 더욱 구체적으로 암소는 어머니로서 모든 것의 근원인 원초적 포괄자, 즉 생성의 모체이자 회귀(回歸)의 장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수로부인은 꽃이라는 자연의 일부를 꺾음으로써 소비하는 입장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가사에 나타난 '부끄러움'은 곧 두 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의 형이상학적 표상이다. 설화에 의하면 노옹은 꽃과 를 수로부인에게 바쳤고, 수로는 노옹이 주는 '꽃'과 를 받았다. 수로는 노옹이 염려한 '노여움에 대한 부끄러움' 을 극복했던 것이다. 이로써 대극적으로만 느꼈던 두 사람의 세계는 화합과 통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화가는 이질적인 두 세계의 만남, 나아가 두 세계의 통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4.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①[해가]와의 관련성[해가]는 [헌화가]의 배경설화와 이어지고, 주인공도 역시 수로부인이다.龜乎龜乎出水路 (구호구호출수로) - 거북(해룡-海龍)아,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掠人婦女罪何極 (략인부녀죄하극) -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汝若悖逆不出獻 (여약패역불출헌) -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入網捕掠燔之喫 (입망포략번지끽) -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네노인이 수로부인에게 ‘헌화가’를 지어 받친 그 이틀 뒤에 임해정(臨海亭)이란 데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해룡(海龍)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공이 허둥지둥 발을 구르나 계책이 없었다. 또 한 노인이 있어 말하되,
    인문/어학| 2005.07.25| 5페이지| 1,000원| 조회(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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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주의 이론] 구조주의 이론
    구조주의 이론 (교과서 pp84~99)Ⅰ 서 론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인 ‘구조’라는 말은 ‘어떤 조직이나, 건물의 짜임.’ 정도로 쉽게 다가온다. 하지만 문학적으로 ‘구조주의’라는 말을 접했을때에는 ‘구조’라는 단어에 ’주의’라는 단어만 붙었을 뿐인데 우리에게 생소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비평론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서 그럴것이고, 교재도 어렵게 적어놔서 그렇게 생각 되는 까닭일 것이다.비평론이라는 생각을 떨치고 단순히 ‘구조주의’라는 단어 자체로만 생각하면 ‘문학을 어떤 (언어) 것에 짜임으로 생각하는 이론이 아닐까? 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단순한 생각만으로 ’구조주의 이론‘을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이 레포트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만 느끼던 ‘구조주의 이론’에 대해 되도록 쉽게 설명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써 나가도록 하겠다.Ⅱ 본 론1. 구조주의 이론이란?우리의 통념상 문학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창작 생활의 산물이며 작가의 근본적인 자아의 표현이다. 또한 텍스트는 독자가 그 속에 들어가서 작가의 사상 및 감정과 정신적 또는 인간적으로 교감하는 장소이다. 또한 훌륭한 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는 것, 즉 소설과 희곡은 있는 그대로를 독자에게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작가는 ‘죽었으며’ 문학적 언술 diseourse에는 진실이라는 기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1968년에 씌어진 한 논문에서 롤랑 바르트는 구조주의적 입장을 강력히 천명하면서 작가들이란 이미 씌어있는 문장들을 뒤섞어 재결합하거나 재배치시키는 능력밖에는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구조주의 비평은 문학을 제 1급체계인 언어를 그 매체로 사용하고, 그 자체도 언어이론의 모델로 분석될 수 있는 제2급체계로 보았다. 대부분의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단일한 문학 작품이나 서로 관련되는 몇 개의 작품들에 음소와 형태소적인 조직층위의 구별이라든가 또는 연합관계와 통합관계의 구별등 언어학적 개념을 적용하여 분석한다.일부의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의 구조를 통사론을 모델로 분석한다. 명사, 동사, 형용사들이 합처져서 하나의 문장을 이루듯 하나의 문학작품속의 구문을 그러한 기능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또 어떤 구조주의자들은 언어학적 모델을 좀더 심도있게 적용하여, 개별작품에서 어떤 주어진 문학 형태를 쓰고 읽는 능력 있는 작가와 독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문학적 관례들과 결합 규칙들로 이루어진 기저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묵시적 문법 즉, 사회적 기호제도로서의 문학의 체계적 법칙과 규약, 곧 부호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데 있다.구조주의는 어떤 문화 현상이나 활동, 산물들은 자족적인 상호 '관계'들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기호체계(systeme signifiant) 혹은 사회제도로 보았다. 이 세계는 사물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개념이 구조주의 사고방식의 제1원리이다. 요컨대 어떤 존재나 경험이라도 그것들이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구조'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한 완전한 의미는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주의적 시각의 궁극적 추구 대상은 인간 정신의 영속적 구조를, 세계를 체계화하는 범주들과 형식들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2.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이론구조주의는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에서 출발한다. 그는 “언어는 형식이지 실체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기존의 사고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소쉬르가 등장하기 전까지 언어는 실제 세계를 나타내거나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표현하는 도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소쉬르는 언어는 소리와 개념의 관계로 이루어진 기호로써, 기호도 언어체계 속에서 다른 기호와 차이에 의해 의미를 가질 뿐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대상인 본질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우리는 말을 할 때 적절한 단어나 어휘를 선택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나는 동쪽에 있어.’라는 말을 보면 이 말의 하는 목적은 자신의 위치를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자신이 동쪽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동은 서와 남, 북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 사람이 위치해 있는 방위가 동쪽이 아니라 그것을 ‘동’이라 부르기로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약속 때문이다. 언어가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차이에 의해 어떠한 단어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선택한 것들을 어떻게 배열하느냐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와 ‘쥐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이렇듯 적절한 의미의 단어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언어가 의미화 한다 했다. 언어는 기호의 체계로써, 기호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로 구성된다. 소쉬르는 청각이미지를 기표라 부르고 개념을 기의라 부른다. 언어라고 하는 기호의 가치는, 기호들 간의 관계와 그 차이에서 구분하고 기표와 의미를 결합하는 행위, 의미를 만들어 내는 행위이다.)이렇듯 언어를 실질로 보는 결해를 배척하고 관계적이라는 견해를 취한 일은 소쉬르 이론의 핵심이요, 구조주의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20세기 초의 소쉬르는 19세기까지의 역사 언어학과 문헌학이 가진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말의 표면적 구성 양상이 아니라 말의 심층에 숨어 있는 '언어의 규칙‘을 분석했다. 즉 화자가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말(빠롤)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언어(랑그)에 주목했다.랑그란 언어사용에 관한 사회적 규칙 혹은 관행을 지칭하고, 빠롤이란 구체적 상황에서 말하는 사람 즉 화자가 행하는 개인의 발화를 뜻한다. 다시 말해 빠롤은 일상속에서 쓰는 구체적인 말이며, 랑그란 이 구체적인 말을 소통시키며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무의식적 선험적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 주체가 말한다기 보다는 언어체계, 언어구조가 인간을 통하여 말해진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의 연구는 각각의 구성요소 그 자체가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소들 간의 체계적 관계 즉 언어의 무의식적 구조, 랑그의 체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구조주의 자들에 의해서 빠롤은 현상이 되고 랑그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빠롤은 구체적 언술이 되고, 랑그는 인식소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무수히 많은 파롤들은 랑그라는 공동의 코드에서 나오는 것이며,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랑그를 연구해야 하고, 랑그를 연구함으로써 그 사회의 구조를 알 수 있다.3.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의 이론.레비스트로스는 원시 사회 문화의 ‘무의식적 기반’을 알아내는데 소쉬르를 이용하였다. 그는 언어구조학적 방법을 통하여 인류학에 접근하여 신화의 다양한 변형 사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문화의 심층구조를 파악했다. 그의 인류학은 우월한 문명과 열등한 문명을 나누지도 문명의 발전을 통해서 원시사회를 저급한 문화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모든 문화에 공통된 질서, 즉 현대문명이든 원시문명이든 서구문화든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문화에 공통된 보편적 구조, 심층적 무의식 구조를 발견함으로 각 문화들을 이해하려 시도하였다. 이 보편적 구조위에 여러 가지 형태의 문명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표면현상을 진정한 실재로 여기지 않고 표면적인 자연현상, 심리적 현상 및 사회현상의 근저에 깔려있는 보편적 근본원리를 발견하려 하였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무의식적 구조는 무의식적 질서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성격의 실체가 아니라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문화적 현상(빠롤)에 대한 구조적 체계인 랑그인 것이다.레비스트로스는 모든 신화들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며, 게다가 모든 신화들이 유사한 사회적, 문화적 기능을 가진다고 말하였다. 즉 신화의 목적은 이 세계를 설명하는 한편, 이 세계의 문제와 모순들을 마술처럼 해결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곧 신화는 우리 자신과 우리 존재 사이의 갈등으로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레비스트로스는 신화도 언어학적 유추를 통해서 분석한다. 신화에도 신화를 구성하는 요소문장같은 기본단위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는 이를 ‘신화소’라고 한다.Ⅰ친족의 과대평가(과잉평가)Ⅱ친족의 과소평가(친족간의 소원한 관계)Ⅲ인간의 토착적 기원의 부정Ⅳ등장인물의 이름이 갖는 의미①카드모스는 제우스가 강탈한 누이 에오로파를 찾는다⑧오이디푸스가 어머니 요카스테와 결혼한다⑩안티고네가 금기를 어기고 오빠 폴리니케스를 묻어준다③스파르토이인들이 서로를 살해한다⑤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한다⑨에테오클레스는 동생 폴리네이커스를 죽인다②가카드모스가 용을 죽인다⑥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죽인다④라이다코스(라이오스의 아버지)=절름발이⑦오이디푸스=부은 발이 신화를 이야기 할때 1~10의 순서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는 통시적이고 연쇄적으로 읽어나가게 되나 Ⅰ~Ⅳ로 표시된 수직란에 따라 공시적이고 계열체적으로 읽으면서 (1,8,10) (3,5,9)(2,6)(4,7)과 같은 신화소로 묶어 읽어야 한다.Ⅰ은 가족간의 금기를 어기고, 근친상간등을 과대평가된 혈연관계를 나타내고 있고Ⅱ은 한 핏줄끼리 서로 살해하는 과소평가된 혈연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ⅠⅡ는 서로 이원적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Ⅲ은 모두 괴물의 살해를 통해 토착성의 기원을 벗어나려는 문화적 욕망을 상징하는 신화소이고
    인문/어학| 2005.07.19| 5페이지| 1,500원| 조회(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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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모더니즘 (1930년대와 1960년대)
    1. 모더니즘이란?모더니즘 (Modernism) 이 용어는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문학의 개념, 감수성, 형식 및 문체에 있어서 가장 뚜렷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가리키는 데 자주 쓰인다. "모더니즘"이란 말이 지시하는 특정한 특징은 이 평가들은 대체로 서구 문화와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비평가들은 대체로 서구 문화와 서구 예술의 전통적 토대와의 계획적이고 근본적인 결별이란 뜻이 이 말에 들어 있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더니즘의 중요한 지적 선구자들은 이제까지 사회 기구와 종교와 도덕과, 인간 자아의 개념에 지주가 되어 왔던 확실성(確實性)에 의문을 제기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마르크스(Marx), 프로이드(Freud),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 등과 같은 사상가들이다.모더니즘을 쉽게 그리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라는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근대적' 또는 '현대적'이라는 의미로 20세기 초엽부터 서구에서 시작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20세기 초엽을 중심으로 모든 예술 분야에 걸쳐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종래의 음악이 지니고 있던 화음과 리듬의 전통을 과감히 무너뜨렸으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르놀트 쉔베르크 역시 전통적인 음조의 벽을 부수고 12음 기법을 창안해냈다.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19세기 말엽에 풍미하던 사실주의 화풍에 과감히 도전, 칸디스키는 추상화를 그리고 브라크와 피카소는 큐비즘을 창안해내기 이르렀다. 이외에도 연극과 무용, 그리고 건축과 조각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었다. 예술 일반에 걸친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원동력은 흔히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지적. 문화적 풍토이다. 모더니즘에 속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엽에 성장하여 20세기 초엽에 성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태어난 19세기동이나 현상! ! 세계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내적 성찰이나 심리 분석 혹은 의식세계를 다루는데서 생겨나는 피치 못할 결과이다. 이런 복잡성과 그것으로부터 다시 난해성이 파생되는데, 이 난해성은 모더니즘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모더니즘은 또한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목적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시를 간주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시로서 간주해야지, 시 이외의 다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엘리어트의 주장은 이런 모더니즘의 태도를 단적으로 지적해준다. 모더니즘은 문학 자체에 대하여서 자의식을 느낄 뿐만 아니라 문학의 표현수단인 언어에 대해서도 자의식을 느낀다. 수단이나 매체에 지나지 않았던 언어의 기능을 부정하고 '언어를 사물을 바라보는 유리창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창밖에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로 바라보았던 것이다.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실존주의적인 인생관을 들 수 있다. 20세기 현대인이 처해 있는 비극적 상황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며,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허무주의와 공허감을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개인과 사회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긴장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는데, 이것은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에서 역시 중요하게 취급된 문제이지만 근본적인 면에서 입장을 달리한다.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이 갈등과 긴장을 어디까지나 사회 쪽의 승리로 끝내기 마련이지만 반면 모더니즘은 오히려 개인 쪽으로 동정이 기울어진다. 그러나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사회의 외부적인 힘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참다운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려 한다. 개인이 사회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유의지를 행사,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자유의지를 구사하여 사회의 모든 제약이나 구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개인이 지불해야 되는 값비싼 댓가는 바로 소외나 고립이다.실상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문화권이나 시기에 따라 전개와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는 역사적인 개념이다. 다다이즘, 이미지즘, 투영했던 근대문학사의 한 전환기였다. 만주사변(1931), 파시즘, 경제공황, '구인회'의 결성(1933), '카프'의 해체(1935), 중일전쟁(1937) 등의 사건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시대는 역사적 격동기로서 문학의 침체와 새로운 활로 모색이 지속되고 있었으나 시인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간극을 경험하였던 시대였다. 특히 1933년은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역사적 상승을 지속해 온 문학세대들의 힘의 방향에서 동시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자 하였던 1920년대 중반 이래의 리얼리즘 문학이 이 시기에 이르러 침체되기 시작하고, 창작기술의 혁신과 문학형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구인회' 중심의 모더니즘 문학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徐俊燮『한국 모더니즘 문학 연구』一志社, 1991, p5구인회는 20년대 후반기에 등단한 중견 문인들과 30년대의 신진 문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새로운 문학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주로 후자에 속한다. 이를테면, 모더니즘의 기수로서 각광을 받은 김기림과 이상, 박태원 등이 한결같이 이 무렵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정지용과 이태준 등 20년대의 중견 문인들은 막시즘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문학(예술)의 상아탑을 지켜온 자들로서 후진들의 진로를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구인회에 모인 젊은 작가들은 이른바 ‘의식의 흐름’으로 통용되는 바 모더니즘 소설의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그 선편을 잡은 작가가 박태원이었다. 그는 30년대 초부터 고독한 탐색 과정을 거쳐 온 셈인데, 1934년 을 발표함으로써 모더니즘 소설의 한 본보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이 작품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박태원의『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근대를 겪으며 자신을 읽으려는 한 지식인의 주체성 찾기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근대를 겪는 젊은 지식인의 내적 방항을 드러낸다는 국면에서는 이 작품이 어느 정도 새로운 실험을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주체성 찾기라는 국면에서파악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있어서는 작가가 가능한 한 작품 속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독자에게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모든 일들은 독자에게 맡겨진 것이다. 즉, 독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종합하고 재료를 쌓아올리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작가의 몫이 독자에게 이양된 셈이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기본 문법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져 버린 것이다.이 작품의 경우, 작중인물의 의식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제재로 선택되고 있으며, 그 의식은 세계와 인간의 삶을 되비쳐주는 스크린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김시태, 「모더니즘 소설의 한국적 양상 -1930년대-」, 2001.2-2. 李箱의 작품.이상은 박태원의 뒤를 잇는 모더니스트 작가로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시에서 다다이즘 및 초현실주의의 경향을 띠었으나, 소설에 있어서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시도했다. 특히, 그의 단편소설 (1936)는 이 시기 모더니즘 소설의 한 정점을 이룬 것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주인공 ‘나’의 의식과 생존 방식을 제시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상징 모티브로 선택된 일련의 외출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 인물이 결국 어떠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전반부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지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 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은 알 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인물의 사적 내밀성에 관련되는 문제이며, 독자는 어느덧 주인공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와 하나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의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가능한 한 작가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의 서술 기법과 매우 흡사하다.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자신의 부인의 음모를 알게 되어 집을 뛰처 나가지만 돌아갈 곳이 없게되는데, 이것이 그가 불안하게 된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과 ‘나’의 의식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인용문에는 일관성이 없고 장황하며 변덕스러운 요소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적어도 마치 자신들이 이 인물의 사적인 의식 내에 있는 것같은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일제하 지식인의 증발 현상을 다룬 이 소설은 과거의 자연주의 작가들과는 달리 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통해 서정적으로 표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박태원의 에서 시도된 바 있었던 이런 새로운 창작 방법은 이 작품 에 이르러서 한층 더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의 이 도정은 우리 소설의 현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자료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이상은 이후에도 더욱 과감한 실험을 계속하여 등 일련의 문제작들을 남겼다. 이것은 바로 그의 문학이 지닌 기본 색조로서 전통에 대한 철저한 반역과 개혁, 그리고 작가로서의 태도의 진지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험의식은 극단에 치우친 나머지 文靑的인 稚氣를 드러내거나 극도의 난해성을 초래하기도 했고, 때로는 신기를 좇는 마술사처럼 환상적인 유희에 떨어지기도 했다. 예컨대, 의 경우를 보면,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의식의 혼란 상태를 제시하기 위해 온갖 수사와 상징 및 자유연상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에서처럼 주인공의 의식 내부를 심도있게 파헤쳤다고는 보기 어렵다. 어쩌면, 프로이드적 도착심리를 이용하여 독자의 저속한 관심을 자극하고 있는 문이다.
    인문/어학| 2005.07.19| 11페이지| 2,000원| 조회(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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