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좋아하는 시인이다. 우선은 김영랑이라는 시인의 이름이 특이해서 눈길이 갔고, 두 번째는 그의 시 안에 있는 말들이 예뻐서였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도 얼마나 말이 예쁜지 모른다. 그리고 교과서에 주로 실린 시의 제목은 ‘진달래꽃’, ‘님의 침묵’등의 짧은 제목이지만 긴 제목의 시라서 더 인상깊었던 것 같다.교재에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대하여 4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그의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성에 대한 것이다. 바로 방언에 대한 효과이다. 나는 김영랑이 방언에 대한 효과를 기대하여 방언으로 시를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교재의 견해도 같다. 그러나 교재에서 제시하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방언은 우리에게 친근하고 편안함을 주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 시에 나타난 말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거나 정서적인 이질감이 느껴지기 보다는 뭔가 푸근하고 친근한 느낌이 강했다. 마치 소설에 비유하자면 황순원의 ‘소나기’와 같은 느낌이었다.하지만 교재에서 제시한 대로 모음조화를 적절히 사용하는데 방언이 큰 구실을 사용하여 이 시가 한층 돋보인 것은 동의한다. 김영랑은 자신의 호를 짓는 것에도 그렇지만 밝은 양성음을 선호하는 듯하다. ‘영랑’이라는 이름 자체가 얼마나 부르고 싶고 밝고 활기찬 발음인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도 아리따운 소녀가 외기에 딱 좋은 시가 아니던가. 김영랑의 시에서 유성음과 모음조화의 특징을 뺀다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두 번째로 거론된 것은 율격에 관한 것인데 나는 이렇게 복잡하게 해석하는 것이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물론 김영랑과 같이 길이 남는 위대한 시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형시도 아닌데 그렇게 율격을 따져야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우리말의 특성상 3/4조가 가장 부르기 쉽고 말하기 간편하여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아직 아마추어라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를 읽으면서 음악성을 느끼는 것은 비단 발음때문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정형률의 파격인지 변형인지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세 번째는 바로 시상에 대한 것이다. 이 부분은 나는 굉장히 동의하는 부분이 크다. 시는 산문과 달라서 읊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떨어지면’의 반복을 통한 운율과 시상의 일치는 이 시의 효과를 최고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내 생각을 좀더 이야기하자면 반복을 통해서 좀더 독자로 하여금 집중하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마치 클럽에서 나오는 아주 반복적인 리듬의 효과와도 같이 모란에 대한 잦은 반복은 우리가 시인의 마음과 일치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재의 내용처럼 처음과 끝이 대칭을 이루며 그 안에 내용은 담는 액자형 구성은 시를 좀더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네 번째는 바로 내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란’과 ‘봄’에 대한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모란’은 화자에게 ‘마지막 잎새’에서의 그 마지막 잎새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화자에게 강요하거나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화자 스스로 약속한 것이지만 화자에게 있어서는 전부나 다름없다. 마치 ‘마지막 잎새’에서 그 마지막 잎새가 주인공의 목숨과 같았던처럼 말이다. 하지만 교재에서는 정작 ‘모란’에 대한 중요성은 언급하지 않아서 속상했다.교재에서처럼 봄은 이 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분위기 면에서도 봄에 대한 이중적인 느낌이 함께 내재하면서 시를 좀더 매력있게 만든다. 즉, 봄의 싱그러움과 희망이라는 느낌과 허무하고 속절없음에 대한 느낌, 이 두 가지가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교재 내용은 아주 철학적으로 존재론적인 역설의 차원이라고 언급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난 너무 해석에만 급급하기 보다는 그저 시를 시적으로 바라보고 시인과 공감하는 것이 더 옳은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단순하게 느낌만을 가르칠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철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인이 원환적 질서를 깨달았고, 존재론적인 역설의 차원에 있다는 것보다는 내 추측을 말하자면, 그저 화자에게 있어 봄은 굉장히 특별한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봄이 가지는 성격의 문제라기보다는 화자 개인적인 측면일 수 있다. 화자가 너무나 사랑하던 것을 봄에 잃었다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등이 될 수 있겠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봄은 그 사랑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모란이 지면 그 남은 한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또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다리는 것이다. 슬프지만 혹이나 사랑하는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는 러브레터에 적으면 딱 좋을 것만 같은 시라고만 생각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시를 많이 분석하고 많이 연구하는 것이 시를 이해하기에는 좋을지 모르겠으나 시를 느끼고 음미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왜냐하면 그저 이 시를 읽으면 정말 아름답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내가 사랑받고 싶은 그 사람에게 내가 어떠한 의미가 된다는 것이 그것을 바라고 있는 설렘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를 읽고서 다시 시를 읽어보니, 나 또한 ‘의미’라는 시어를 왜 ‘눈짓’으로 바꾼 걸까라는 물음이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본격적으로 텍스트에 있는 내용 전반에 대해서 언급을 해보자면 ‘무의미의 시론’을 펼쳤던 김춘수에게 ‘꽃’이라는 시는 약간 아이러니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꽃’은 김춘수에게 있어 초기 시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의미의 시론’을 펼치기 이전의 시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저 시인의 생각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특별히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김춘수의 시 중에서 이 시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또한 시인이 처음 발표할 때와 다르게 4행의 시어 ‘의미’를 ‘눈짓’으로 대체한 것에 대해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텍스트에서처럼 미학적인 관점, 김춘수 스스로 특별한 의도에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싶어했다거나 혹은 랭보로부터의 영향이었는지 혹자들의 자신의 주장을 일관성있게 하고 싶은 마음에 바꾼 것일 수도 있지만 또 한가지의 본인 개인적인 생각으로서는 1행의 나오는 ‘몸짓’이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단어로서 ‘눈짓’이 제일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굳이 말하자면 미학적인 관점에 가깝다고 볼 수잇다. 시가 ‘보여주기’라 제창했던 그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과 부른 이후의 존재가 ‘하나의 몸짓’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보다는 ‘하나의 눈짓’이 더 대응이 되고 보여주기에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이 될 수 있다. 또한 랭보에 있어서의 영향은 공공연하게 증명된 것이다. 그 시기 모더니즘은 우리나라는 흉내내는 것에 그쳤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한 사회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모더니즘은 우리나라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형태였으나 최고의 번역국인 일본을 통해 읽을 수 있었던 모더니즘 시들의 영향은 김춘수 뿐 아니라 그 시기 시인들에게 많이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이 세 가지의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라 사료된다.
1. 김유정의 생애( 1세)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부 남내이작면 증리 427번지, 지금의 강원도 춘 천군 신동면 증리에서 부친 김춘식 모친 청송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출생.(12세) 1920년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1년 13세 3학년으로 월반.(15세) 1923년 재동공립보통학교 4년(제16회) 졸업. 휘문고보 입학.(21세) 1929년 휘문고보 5년 졸업(제 21회).(22세)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6월 24일 제명 처분 당함.하지만 김유정은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주장. 박록주를 짝사랑했으나 끝내 거절당함. 늑막염 재발.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쓰게 됨.(23세) 1931년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다시 입학. 그 후 자퇴함실레 마을에 야학당을 열어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 조직. 농우가 지어 부름.(24세) 1932년 야학당을 금병의숙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 받음.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을 탈고.(4년 뒤인 1936년 『중앙』에 발표)충남 예산 등지의 금광을 전전함(25세) 1933년 서울에 올라와 사직동에서 누님과 함께 기거. 폐결핵 발병진단.1월 13일「산골 나그네」탈고한 후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 1선』지 3월호에 발표.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를 탈고, 『신여성』9월호에 발표.(26세) 1934년 누님이 사직동 집을 처분. 혜화동 개천가에 셋방을 얻어 밥장사.8월 16일 「정분」탈고. 9월 10일「만무방」탈고. 12월 10일 「애기」탈고. 「노다지」,「소낙비」를 12월에 탈고.(1933년의「따라지의 목숨」을 1934년 「흙을 등지고」로 개작, 신문사와 협의 「소낙비」가 됨) 안회남이 대신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부침.(27세)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1등 당선. 조선중 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노다지」가작 입선. 1월 20일 아서원에서 신춘 문예현상 1등 당선 축하회. 6월 3일 백합원서 조선문단사가 주최한 문예좌담회 에 는 콩밧」『개벽』 3월호, 「산골」 『조선문단』7월호, 「솟」『매일신보』 9월, 「봄·봄」『조광』12월호 등의 9편의 소설과 수필은 「잎이 푸르러 가시든 님이」『조선』『중앙일보』 3월 6일, 「조선의 집시-들병이 철학」 『매일신보』10월, 「나와 귀뚜람이」『조광』 11월호 등, 3편의 수필을 발표「안해」를 『사해공론』12월호에 발표하여 문단의 찬사를 받음(28세) 1936년1월부터 8월까지 9편의 소설과 4편의 수필을 발표. 마지막 여인 박봉자 를 짝사랑하였다.단편 「심청」 『중앙』 1월호, 「봄과 따라지」『신인문학』1월호, 「봄밤」 『여성』 4월호, 「동백꽃」『조광』 5월호 등. 미완의 장편소설 『생의 반려』는 『중앙』 8,9월호에 연재됨.수필 「오월의 산골작이」,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등을 5월에서 8월 사이에 발표하고 「밤이 조금만 짤럿드면」은 『조광』11월호에 발표.(26세) 1937년병이 깊어져 김문집이 병고작가 구조운동을 벌임.매형 유세준의 집으로 옮겨와 요양 치료함. 3월 29일 오전 6시 30분에 30세의 나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상곡리 100번지 매형 유세준 의 집에서 사망함. 서대문 밖(홍제동 화장터)에서 유해는 화장되어 한강에 뿌 려짐.서간문 「문단에 올리는 말슴」을 『조선문학』1월호에 게재. 수필「강원도 여성」 『여성』 1월호 등 발표. 소설 「따라지」 『조광』 2월호, 「땡볕」 『여성』2월호 등을 발표하고, 세상뜨기 11일 전인 3월 18일 「필승전」으로 되어 있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냄. 이 해의 사후 발표작으로 수필 「네가 봄이런가」 『여성』 4월호, 단편소설 「정분」 『조광』 5월호, 번역동화 「귀여운 소녀」 『매일신보』 4월 16일∼21일, 번역 탐정소설 「잃어진 보석」『조광』 6월∼11월호 발표됨1938년 단편집 「동백꽃」 발간됨1939년 사후 발표된 소설로 「두포전」은『소년』 1∼5월호에, 「형」은『광업조선』 11월호에, 「애기」는『문장』12월호에 발표된 바 있음.2. 줄거리영식은 금을 캘 으나 수재가 콩밭에 금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계속해서 영식을 꼬였다. 더욱이 아내의 은근한 부추김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영식의 아내는 나름대로 셈을 하여 콩밭에서 금이 난다면 뒷집 양근댁처럼 고무신도 신고 얼굴에 분도 바르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부추긴 것이다. 영식은 끝내 망설였지만 술김이었으나 그의 생각에도 금점만 찾으면 한해 내내 얻는 이익보다 수확이 더 낫기 때문에 금을 캐는 것이 더 슬기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을 캐기 시작했는데 막상 애써 키워 온 콩들이 다 으스러지고 흙에 묻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금줄만 잡으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금을 캤다. 그러나 콩밭이 완전히 뒤집어지도록 금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재는 아직도 느긋하게 금줄이 나오리라고 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영식은 공연히 자신의 꾀어 낸 수재가 몹시 미웠다. 그러나 금 캐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영식네 집의 사정은 양식을 꿔다 먹어야 하는 수준이었고, 산제를 지내려 해도 쌀이 없어서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영식의 처가 양근댁에게 꾸어온 쌀로 떡을 지어 산제를 지었다. 영식은 아내가 콩밭으로 오자 부정탄다고 화를 내며 뺨을 쳤다. 산제를 지냈으나 금은 나오지 않았다. 아내도 이젠 금이라면 신물이 났다. 점심을 갖다 주러 콩밭에 갔는데 영식과 수재의 꼴이 흙투성이인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며 비아냥거리자 영식은 아내를 골통을 치고 발길로 찼다. 수재는 이를 보고 공연히 겁이나 황토 한 줌을 집으며 금줄을 잡았다고 소리를 쳤다. 영식은 이를 보고 기가 차서 아내를 불렀다. 아내는 흙 속에 금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즐거워한다. 수재는 그날 밤에 달아나리라 결심한다.3. 감상내가 처음으로 접한 김유정의 소설은 「동백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동백꽃」은 황순원의 「소나기」와 함께 가장 흥미로운 소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남녀간의 사랑’ 이라는 요소가 나의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을 자극하여서 그 감정이 지금까지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읽으면서 「봄?봄」과 「동백꽃」도 다시 한번 읽었다. 독후감을 쓰기 시작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참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또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어떤 작품이건 다시 읽기 시작하면 그때와는 정말 다르니 말이다. 불과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금따는 콩밭」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써 놓은 메모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투기 욕망은 없어질 수 없다’고 적었다. 이 소설이 쓰여진 1935년에는 금을 캐는 자들이 있었다면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현재에는 로또를 매주 빼먹지 않고 사는 자들이 있다. 한방에 부자가 되기를 꿈꾸면서 말이다. 「금따는 콩밭」에서도 영식과 수재, 그리고 영식의 처는 금을 캐서 부자가 되기를 바랬다. 또 로또에 당첨되는 사람이 있듯이 이 때에도 양근댁처럼 금을 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수재는 원래부터 투기적인 인물이라면 영식의 처는 그저 허무맹랑하게 큰 기와집에서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고무신도 신고 얼굴에 분칠이 하고 싶어서 영식을 부추기는 지혜롭지 못한 아내이다. 그리고 영식. 이 사람 참 불쌍하다. 주위에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이가 없었다. 만약 영식에게 엄하시고 고지식한 부모님이 계셨거나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면, 영식이 과연 금을 캐기 위해서 일년 동안 공들인 콩밭을 무참히 뒤집었을까? 아니다. 하지만 영식도 투기적인 욕망이 콩밭에는 절대로 금이 없을 것이라는 진리를 넘어섰기에 콩밭에 곡괭이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좀더 자세하게 작품을 읽고 또 생각해 보고, 이 작품외의 다른 소설들도 함께 읽어 본 결과 김유정의 소설에는 특이한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는 그 언어의 특유함이다. 바로 강원도 사투리와 그만의 정겨운 표현력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본 작품을 읽으면서도 정확한 뜻을 모르겠는 단어가 페이지마다 있을 정도였다. 물론 문맥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표현들에는 생동감이 있고 사실적이다. 예를 들어서 콩밭을 면이나 영식이 아내를 때리는 장면에서는 정말 실감나는 표현들이 많다. ‘우찔하였다’ 와 같이 의성어나 의태어가 많이 쓰였고, ‘와락 떠다 밀어 밭둑에 젖혀 놓고’ 등과 같이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해내는 김유정만의 방법이 있다.굿이 풀리는지 벽이 우찔하였다. 흙이 부서져 내린다. 전날이라면 이곳에서 아내 한 번 못보고 생죽음이나 안 할까 털끝까지 쭈뼛할게다.)아내를 와락 떠다밀어 밭둑에 젖혀 놓고 그 허구리를 퍽 질렀다. 아내는 입을 헉 하고 벌린다.)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의 작품의 주된 배경은 농촌이다. 때론 본 작품과 같이 농민들의 비참하고 가난한 삶을 때론 「동백꽃」에서처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재미를 사실적이면서도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김유정의 소설을 보면 이 시대의 농민들의 사정을 알 수 있다. 데릴 사위를 들일 수 밖에 없었고, 황금에 눈이 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세 번째로 그의 소설은 일부 김유정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점이다. 김유정은 강원도 출생이며 그의 소설에서는 강원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이 많다. ‘김유정 문학촌’이라는 사이트에서는 ‘작품 지도’라는 코너에서 그가 소설에서 어떤 배경을 사용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소재 측면에서 볼 때 「금따는 콩밭」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앞서 작가의 생애를 조사하면서 놀란 점은 24세 때 충남 예산 등지의 금광을 전전했다는 기록 때문이었다. 그동안 김유정의 소설을 여러 번 읽었고 나름대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애를 조사할 만한 기회는 없었다. 그가 금광을 전전하면서 금 캐는데에 정신을 쏟았다니 정말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것은 작품 속 영식처럼 주위에 누이와 형들이 있었지만 어머니,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그에게 엄하게 조언해 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저 짐작해 본다. 또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김유정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단편이어서 그런 연유도 있겠지만, 갈등구조가 굉장히 단순하고 인물의 수도 적다. 그래서 김유정의 다.
Ⅰ. 이광수의 생애1892년(1세): 2월22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에서 이종원과 그의 세 번째 부인 충주 김시를 부모로 하여 전주 이씨 문중의 5대 장손으로 태어남. 아명은 보경, 호는 춘원.1899년(8세):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대학, 중용, 맹자, 논어 등을 배움.1902년(11세): 8월 부모가 콜레라로 죽자, 누이동생 둘과 함게 졸지에 고아가 됨. 그 뒤 외가와 재당숙 집을 오가며 자람.1903년(12세): 12월 동학에 입도하여 박찬명 대령 집에 기숙하며, 동경과 서울에서 오는 문서를 베끼고 배포하는 서기 일을 봄.1904년(13세): 일본 관헌의 동학 탄압에 따라 진남포에서 배편으로 상경.1905년(14세): 8월 일진회(천교도)의 추천으로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감. 대성중학에 입학하였으나 학비곤란으로 인해 11월 다시 귀국.1906년(15세):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 미션학교 분위기 속에서 톨스토이에 심취.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명받음.1910년(19세): 메이지학원 졸업.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가 이승훈의 추천으로 오산학교 교원이 됨. 그해 최남선이 주관하는 『소년』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함. 중매로 백혜순과 결혼.1912년(21세): 나라를 잃은 슬픔과 자신의 장래에 대한 번민으로 건강을 많이 상함. 오산학교 재직 시에는 톨스토이를 애호하면서 학생들에게 생물진화론을 가르쳤다고 하여 교계에서 비난을 받기도 함.1913년(22세): 세계여행을 목적으로 고국을 떠나 상하이에 잠시 머물렀음. 시 「말 듣거라」를 『새별』에 발표.1914년(23세):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민일보』에 주필로 내정되어 도미하려 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귀국. 김병로, 전영택, 신석우 등과 교우하여 사상가 내지 교육자가 되기를 꿈꾸었음.1915년(24셋): 김성수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예과에 편입한 후 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재학중 「자녀중심론」등의 계몽적 매일신보』에 연재.1918년(27년): 폐환이 재발. 허영숙의 헌신적 간호로 소생. 백헤순과 이혼에 합의하고 여의사 허영숙과 장래를 약속하고 북경으로 애정도피를 떠남. 파리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청년독립단에 가담하고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상해로 탈출. 안창호를 만나 그를 보좌하면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에 취임하고 주요한, 박현환등과 독서, 정좌, 기도를 함으로써 수양생활에 힘씀.1921년(30세): 상해를 떠나 귀국, 선천에서 왜경에서 체포되었으나 곧 불기소처분,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음.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 『개벽』에 「소년에게」를 게재한 것이 출판법위반혐의를 받아 종로서에 연행된 바 있었다. 이어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문필권에서 소외당함.1923년(32세): 『동아일보』에 입사. 『동아일보』에「선도자」를 연재하다가 중편완(111회)에서 중단.1926년(35세): 『동아일보』편집국장에 취임.1931년(40세): 「단종애사」,「이순신」등 발표.1933년(42세): 『동아일보』편집국장 사임. 『조선일보』부사장으로 취임. 「흙」발표.「유정」발표.「그 여자의 일생」을 1934~35까지 연재.1934년(43세): 『조선일보』사퇴. 자하문 밖으로 이사, 〈법화경〉 번역과 독서 및 영화감상으로 소일 「이차돈의 사」발표.1937년(46세): 수양동우회사건으로 피검되어 안창호와 함께 수감. 반년만에 풀려남.「공민왕」발표.「사랑」발표.1939년(48세):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선출 ‘복지황군위문’에 협력하는 친일행위를 했다.1940년(49세): 카야마미츠로로 개명. 학병 권유차 도쿄에 다녀옴.1949년(58세): 반민특위법으로 수감. 곧 병으로 석방.1950년(59세): 6?25전쟁중 병상에서 북한인민군에게 납북되어 그해 10월 북한에서 병사.(미국에 살고 있는 셋째 아들 이영근이 북한에 가서 확인함.)Ⅱ.줄거리경성학교 영어 교사인 이형식은 김장로의 부탁을 받고 그의 딸 선형과 순애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선형 연루되어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영채는 형식에게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했으나 끝내 기생이 되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형식이 일하는 학교의 학생들은 형식에게 단체로 자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것은 배명식 학감 때문이었다. 형식 또한 배명식을 싫어했다. 그러던 중 배학감이 계월향이라는 기생을 쫓아 다닌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형식은 계월향이 혹시 영채가 아닐까 했다. 형식은 계월향을 만나러 가 보았지만 만날 수 없었는데 친구인 신우선의 도움을 받아서 계월향이 배명식과 귀족인 김현수에게 끌려간 것을 알았고, 월향을 구해주었다. 그러나 이미 순결을 잃은 후였다.영채는 정절을 잃은 것이 수치스러워 평양으로 떠나고 형식에게 편지를 남긴다. 형식이 편지를 읽고 뒤따라 가보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영채는 병욱이라는 처녀를 만나 인생을 새롭게 살기로 결심하고 병욱의 오빠에게 연정을 느끼기도 한다.서울로 돌아온 형식은 선형의 집안에서 청혼을 받게 되고 마음 한편으로 영채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결혼하기로 결정한다.형식과 선형이 미국 유학을 위해 경성 역에서 기차에 오르던 날, 영채와 병욱 역시 일본으로 가기 위해 같은 기차를 타게 된다. 그들은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나게 된다. 지난날들을 돌이키며 이들 사이에는 부끄러움과 미움, 질투와 원망이 오고간다. 그러던 중 폭우를 만나 기차가 멈춘 틈에 수해를 당한 농민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면서 이들은 조선의 민중을 구하기 위해 배우고 또 교육에 몸 바치기로 작정한다.Ⅲ. 감상「무정」은 작가 이광수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 근대 소설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기 전에, 그러니까 이광수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을 때, 내가 알고 있던 이광수는 사실은 친일을 했다는 편견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광수는 친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문단에서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무정」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편견을 먼저 버리고 읽겠다고 다짐을 하고미가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등장인물도 많지 않아서 더 좋았다.「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장편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은 이광수에게도 첫 번째 장편 소설이지만 한국 소설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1917년 1월 1일에 『매일 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이 작품은 6월14일까지 126회까지 연재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최초의 근대 소설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바로 고대 소설이 가지고 있던 ‘권선징악’적인 인물 설정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또한 문체 및 형식적으로도 구어체 문장을 사용하는 등 고대 소설 및 신소설에서 가지고 있던 요소들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무정」을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 하는 것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볼 때, 사랑 이야기인 듯하지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계속해서 하고 있음을 볼 때 이광수는 이 작품에서 민족 계몽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품의 결말에서는 선형과 형식의 미국 유학, 그리고 영채와 병욱의 일본으로 가게 되는데 이는 이광수 자신이 일본 유학생활도 하고 상해, 북경 등을 오가면서 선진문물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해서 인 것 같다.이 작품의 주제는 여러 책과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민족 의식의 고취와 더불어 근대적인 사상인 자유연애, 세속적 사랑의 계몽적 민주주의의 승화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자유연애 대해서는 부정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것은 형식과 영채, 그리고 선형의 사랑이 과연 자유연애이냐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내가 생각할 때에도 이것은 자유연애는 아닌 것 같다. 영채는 정절과 순결을 위해서 기생이 되었음에도 형식을 위해서 순결을 지켰고, 선형은 곱게 자라서 형식과 결혼을 하였고, 또 형식은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조금 고민하긴 했으나 그것이 자유연애인가? 그것은 좀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인터넷에 나와 있는 학습지도안에는 ‘세속적 사랑의 계몽적 민주주의의 승화’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광수의 생생한 문체로 인물들의 성격이 작품 속에서 어떤 사건보다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여실히 드러나 있다. 먼저 주인공 이형식은 어쩌면 이기적이면서도 지식인이자 교육자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이렇다할 성격이 아닌 현실의 진짜 이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영채를 하숙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영채를 두고 순결을 잃었을까, 아니면 나를 위해서 아직도 순결을 지키고 있을까 이렇게 영채를 만난 반가움보다는 그에 대한 판단을 먼저하고 있을 때, 또는 영채가 죽은 줄로만 알고 찾으러 가려 하지만 선형네 집, 즉 김장로 댁에서 청혼이 들어오자 그저 선형과 결혼하기로 한 일 등을 살펴볼 때 형식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하지만 형식은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월급 중 얼마를 투자하고, 또 지식인이자, 참된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교육자이다. 이 작품에서는 형식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주인공을 만들어내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고대 소설에서는 무조건 주인공을 좋은 이미지로만 그리려 현실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으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통해서 형식을 좀 더 친근하게 만들어냈다.박영채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고 순결과 정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며, 또한 효녀이다. 원래 이광수가 『매일신보』에서 신년 작품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이광수는 영채에 대한 글 뭉텅이를 전보로 부쳤다고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처음엔 영채를 중심으로 쓰여진 소설인지 모르겠다. 영채는 선형과는 다르다. 형식은 영채와 선형을 어떨 땐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떨 땐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영채는 선형과는 확실히 다르다. 영채는 모진 고통을 겪어봤고 또 비록 기생의 길을 택하기는 했으나 정절을 지키는 어릴 때에는 열녀전을 보고 자란 신문물, 자유연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리고 선형은 다르다. 형식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고생을 모르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여인이다.이다.
Ⅰ. 작가 이상의 생애1세- 1910년 9월23일(음력 8월20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부 김연창(金演昌)과 모 박세창(朴世昌)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 본명은 해경(海卿). 본관은 강릉.3세- 1912년 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댁에서 24세까지 성장.8세- 1917년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 제1학년에 입학. 이때부터 그림에 재질 보임.12세- 1921년 3월 신명학교 4년 졸업.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그해 4월, 조선불교 중앙교무원 경영의 동광학교에 입학. 줄곧 우등생의 성적을 유지.15세- 1924년 동교 4학년에 편입학. 이 해에 교내 미술 전람회에 유화「풍경」입상.17세-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 5학년 졸업. 그해 4월 동숭동에 있는 경성고등 공업학교 건축과 제1학년에 입학. 우수한 성적. 미술에의 집착을 가지고 보낸 고공1여년동안 회람지『난파선』의 편집을 주도. 삽화와 시를 발표.20세- 1929년 3월 경성고공 3년에 졸업.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장편소설 「12월 12일」집필 시작. 11월에 관방 회계과 영선계로 옮긴 후 12월에『조선과 건축』회지 표지도안 현상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21세- 1930년 『조선』에 처녀작「12월 12일」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발표.22세- 1931년 이 무렵 곱추화가 구본웅을 알게 됨. 서양화「자화상」을『선전』에 출품, 입선. 백부 사망.7월에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파편의 경치」,「공복」등 발표.8월,10월에 일문시「오감도」와,「삼차각 설계도」를 『조선과 건축』에 발표.23세- 1932년 『조선과 건축』회지 소화 7도 표지도안 현상모집에서 제4석에 당선.비구란 필명으로 시「지도의 암실」을『조선』에 발표. 7월 이상(李箱)이란 필명으로 된 시「건축무한 육면각체」를 발표.24세- 1933년 3월, 심한 각혈로 총독부 기수직을 사임.통인동 백부의 유산을 정리하여 효자동에 집을 얻고, 21년만에 친부모 형제들을 옮겨옴. 백모는 계동으로 이사. 요양차간 배천 온천에 시작. 이태준, 김기림, 정인택 등이 「제비」에 출입하여 이상의 문단 교우가 됨.국문으로 된 시 발표.「이런 시」,「꽃나무」,「1933. 6. 1」,「거울」발표.25세- 1934년 구인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활동 시작.『매일신보』에 시 「보통기념」을 발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 물의가 일어 10회 연재후 중단.(원래는 20편). 8월, 박태원의 연재소설「소설가 구보씨의 1일」이라는 작품에 하융이라는 화명(畵名)으로 삽화를 그림. 시 「소영위제」(중앙)를 발표.26세- 1935년 9월 경영난으로 다방 「제비」를 폐문하고 금홍과 헤어짐. 인사동에 카페 「쓰루(鶴)」을 인수해 경영했으나 얼마 못가 실패, 여급 권순옥과 열애.다방「69」와「무기(麥)」를 설계했으나 양도함. 계속된 경영 실패로 그의 가족은 신당동 빈민촌으로 이사. 성천, 인천 등지로 여행.시「지비(紙婢)」(가톨릭청년),「정식」(조선중앙일보), 수필「신촌여정」(매일신보)을 발표.27세- 1936년 3월, 창문사에서 구인회 동인지『시와 소설』을 편집 1집만 내고 창문사 나옴.「지비 1·2·3」(중앙),「역단」(가톨릭청년)을 발표. 수필「선망률도」(조광),「조춘점묘」(매일신보),「가외가전」,「여상」,「낙수」,「Epigram」,「매상」등을 발표. 단편「지주회시」,「날개」등을 발표. 전부터 알았던 이화여전 출신 변동림과 결혼. 새로운 재기를 위하여 일본 동경으로 떠남(음력 9월3일). 그 곳에서 「공포의 기록」,「종생기」,「권태」,「슬픈 이야기」 , 「환시기」등을 씀.시「위독」(조선일보), 수필「행복」(여성), 「추등잡필」,「1세기식」(삼사문학)등 발표. 소설「봉별기」(여성),「동해」(조광), 동화「황소와 도깨비」(매일신보)등을 발표.28세- 1937년 2월, 사상 불온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 3월, 건강이 악화되어 보석으로 출감. 4월17일 오전 4시,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객사. 향년 만 26년7개월. 그 전날(16일) 부모와 조모 사망. 아내 변동림에 의해 유해는 화장되어 환국하여 미 「실락원」(조광),「실화」(문장)등 유고로 발표.이후 『이상 전집(2권)』이 임종국에 의해 발간되고,『현대 문학』, 『문학 사상』등에 미발표 유고를 수록.Ⅱ.줄거리나는 33번지 18가구 중 7번째 방에서 지내고 있다. 18가구는 모두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를 맞대고 있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그리고 이곳은 낮에는 조용하나 밤이 되면 바빠지며 방마다 문패가 붙여져 있는데 그 문패는 여자들의 이름으로 붙어 있다. 나는 18가구에 사는 사람들과 놀지 않고 인사도 안한다. 이는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며, 내가 아내를 소중히 생각하는 까닭은 18가구 중에서 내 아내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나는 나에게 주어진, 나에게 딱 알맞은 방에서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따금씩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아내 방에 몰래 건너가 화장품 냄새를 맡아 보고, 돋보기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아내는 늘 화려하고 세수를 두 번 하며, 아내의 직업은 무엇인지 모르나 외출을 하루에도 두 번씩 하며 내객이 언제나 많다. 내객이 아주 많은 날에는 아내가 내게 오십 전짜리 은화를 준다. 나는 그 돈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아내의 직업을 알아내기는 힘들었지만, 한 가지 알아낸 것은 아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출처가 그 내객들에게서 난다는 것이다. 나는 불쾌하였다.나는 아내의 밤 외출을 틈타 밖으로 나왔다. 거리를 쏘다니다가 너무나 피로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으로 가려면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아내의 방을 지나간다. 아내의 방에는 낯선남자가 있었고 아내는 화난 표정을 지었으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외출을 후회했다. 나는 아내에게 미안하여 아내에게 걸어가 돈 5원을 주었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아내 방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아내와 함게 잠을 잤다. 그리고 나서 나는 또다시 그날 밤에 외출을 하였다. 돈 2원이 있었는데 그것을 들고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또다시 2원을 쥐어주고 아내와 같이 잠을 잤다. 아내에게 이 없어서 외출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갑자기 자신을 아내의 방으로 이끌었다. 벼락이 떨어질까 걱정하고 있었으나 아내는 음식까지 차려주고 돈을 주면서 외출을 하라고 했다. 더 늦게 와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 날밤에 외출해서 비를 맞아 감기에 들었다. 아내가 약을 주었는데 자꾸 졸려워서 잠을 자면서 한 달 동안이나 지냈다. 나는 우연히 그 약이 아달린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배신감에 산으로 갔다. 그리고 이튿날 들어왔는데 아내 방문을 열었다가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그래서 아내는 내 멱살을 잡으며 화를 내었다. 나는 집에서 나와 미쓰꼬시로 갔다. 갑자기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나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었다. 나는 외쳤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Ⅲ. 감상 및 평가내가 처음으로 접한 이상은 시인으로서의 이상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 국어 시간에 배운 시였고, 제목은 「가정」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과서에 수록되었는지는 모르나 문학 선생님께서 이상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비교적 많은 시를 접할 수 있었다. 「건축 무한 육면 각체」도 그 때 알게 되었는데 훗날 이것은 「건축 무한 육면 각체의 비밀」이라는 영화로 나왔다. 영화도 보았는데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흥미로웠다. 이상의 시는 굉장히 난해했다. 그에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어릴 때는 난해한 시를 쓰는 것만으로 결코 ‘천재’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살펴 본 결과 그 안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알쏭달쏭한 힌트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올바르게 알아챘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말이다. 또한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하여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아내며 사람들로 하여금 연구를 멈출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보면 그는 가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이상의 소설 중에서는 「날개」가 가장 많이 읽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정상적으로 대학에 온 궁금증이 생겼던 것은 ‘작품 속의 나는 어쩌다 아내를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내가 생각할 때 작품 속에서 ‘나’는 아내의 직업을 알고 있으나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종종 아내의 방문을 열었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아내의 방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아내가 숙식을 해결해주고 자신은 절대적인 약자이기 때문에 아내에게 마음껏 질투도 하지 못하고 아내의 직업도 알지만 묵인하고 싶은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을 했다.이제는 사소한 나의 궁금증 말고 작품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기로 한다. 다른 작품의 독후감을 쓸 때에 나는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들과 결론들을 철저하게 내 관점에서 바라보고 메모한 다음에 그에 관한 비평들과 학자들의 생각을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이 작품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다른 서적들을 참고했다. 그리고 내가 동의하는 부분들을 적어 보려한다.먼저, ‘나’ 의 외출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주인공은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거나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 때 외출을 하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얼마 못가서 지쳐 집으로 돌아왔지만 외출이 반복됨에 따라 좀 더 외출에 익숙해졌다. 대개 소설에서 ‘외출-귀가’의 반복은 타자의 자기화 혹은 자기의 타자화를 통해서 세계를 질적으로 포용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데 이 작품에서는 ‘외출-귀가’를 반복함으로써 아이처럼 밖과는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차츰 세상과 접촉하게 되면서 그리고 아내와 갈등을 겪게 되면서 주인공의 자아는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왜 주인공이 이토록 외출을 꿈꾸는지 알 수 없었다. 집이 그렇게 좋고 이불은 자신의 몸과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면 구태여 할 일도 없는데 외출할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공도 사람이니까 모험의식이 있기 때문에 외출을 시도했고, 또한 외출을 할 경우 자신의 존재가치를 점점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