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이광수의 무정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12.04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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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광수의 무정을 읽고 쓴 독후감
목차
1. 작가연보
2. 줄거리 요약
3. 감상평
본문내용
Ⅰ. 이광수의 생애
1892년(1세): 2월22일, 평북 정주군 갈산면에서 이종원과 그의 세 번째 부인 충주 김시를 부모로 하여 전주 이씨 문중의 5대 장손으로 태어남. 아명은 보경, 호는 춘원.
1899년(8세):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며 대학, 중용, 맹자, 논어 등을 배움.
1902년(11세): 8월 부모가 콜레라로 죽자, 누이동생 둘과 함게 졸지에 고아가 됨. 그 뒤 외가와 재당숙 집을 오가며 자람.
1903년(12세): 12월 동학에 입도하여 박찬명 대령 집에 기숙하며, 동경과 서울에서 오는 문서를 베끼고 배포하는 서기 일을 봄.
1904년(13세): 일본 관헌의 동학 탄압에 따라 진남포에서 배편으로 상경.
1905년(14세): 8월 일진회(천교도)의 추천으로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감. 대성중학에 입학하였으나 학비곤란으로 인해 11월 다시 귀국.
1906년(15세):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 중학부 3학년에 편입. 미션학교 분위기 속에서 톨스토이에 심취.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명받음.
1910년(19세): 메이지학원 졸업.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가 이승훈의 추천으로 오산학교 교원이 됨. 그해 최남선이 주관하는 『소년』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함. 중매로 백혜순과 결혼.
1912년(21세): 나라를 잃은 슬픔과 자신의 장래에 대한 번민으로 건강을 많이 상함. 오산학교 재직 시에는 톨스토이를 애호하면서 학생들에게 생물진화론을 가르쳤다고 하여 교계에서 비난을 받기도 함.
1913년(22세): 세계여행을 목적으로 고국을 떠나 상하이에 잠시 머물렀음. 시 「말 듣거라」를 『새별』에 발표.
1914년(23세):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민일보』에 주필로 내정되어 도미하려 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귀국. 김병로, 전영택, 신석우 등과 교우하여 사상가 내지 교육자가 되기를 꿈꾸었음.
1915년(24셋): 김성수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예과에 편입한 후 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재학중 「자녀중심론」등의 계몽적 논설을 발표.
1917년(26세):『매일신보』에 「무정」연재. 이어서 「소년의 비애」,「윤광호」,「방황」을 탈고 하고 『청춘』에 발표. 과로로 폐환에 걸려 귀국.『매일신보』특파원으로 남한지역 오도답파여행을 떠남.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
1918년(27년): 폐환이 재발. 허영숙의 헌신적 간호로 소생. 백헤순과 이혼에 합의하고 여의사 허영숙과 장래를 약속하고 북경으로 애정도피를 떠남. 파리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청년독립단에 가담하고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뒤 상해로 탈출.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