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내게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실제 흐른 시간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생각한다. 또한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 지금과 평균수명이 40~50세일 때의 환갑잔치의 대한 개념, 결혼 적령기의 나이는 다르다. 이처럼 시간은 느끼는 주체에 따라 그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일까? 시간에 대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갖고 있던 내게 “시간의 발견”이라는 책은 매우 흥미로웠다. 더 많은 궁금증을 유발했고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태초부터 함께한 하나님의 선물인 시간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시간은 인간의 머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며 시간의 실체와 본질은 신의 영역 안에서만 드러남을 알았다.“우리의 신체는 매일 해가 뜨고 지는 데서 생기는 빛과 어둠의 주기에 리듬을 맞추는 복잡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 P#12. 이는 우리가 창조된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시간을 인지하고 있다는 말로 생체시계라는 생물학적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군복무중 기상 시간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6시였다. 누가 깨워주지도 않았는데 5시 55분이면 자동으로 일어났다. 마치 내 안에 무엇이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비록 추측이기는 하나 선사시대 사람들은 태음력을 썼다고 한다. 태음력이란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기를 한 주기로 하는 달력이다. 선사시대 하면 원시적이고 단순한 생활이 떠오르는데 그런 그들이 태음력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 선사시대의 무덤의 배열이나 그리스(기원전 750~700년)에서 사용했던 별자리만 봐도 그렇다.앞서 언급했듯 저자는 우리의 몸 안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생체시계가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생체 시계를 앞당기고 늦추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생체 시계를 앞당기고 싶을 때는 아침 일찍 밝은 빛을 받고 늦추고력 753년으로 추측하여 정하였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AUC(로마력)753년을 기원후(A.D., Anno Domini, 주님의 해)라 칭하고 그때를 기원전 1년이라고 정하고 영국 수도사이자 역사가인 비드(Venerable Bede)가 처음 사용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뒤인 17세기에는 기원전이란 용어도 생겨났다.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시간을 지배한다는 의미는 권력을 쥐고 있다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시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시간을 개정하거나 개혁을 할 때에 여러 나라들이 같은 시간으로 통일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것은 시간의 권력은 정치적 성격도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 수백 년이 흘러서야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서구화가 한창 진행되던 1873년에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텔레비전을 보면 문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곤 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신석기 시대 때에도 시간에 대한 개념이 있었으니 그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라, 저자는 콜롬비아의 아마존에 있는 바라사나라는 수렵-채집 부족에 대해 예를 들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그들이 볼 때 신성한 신의 세계는 일상세계와 더불어 공존하다. 부족의 신인 ‘옛 별’은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닌다. 신은 인간의 전사이면서도 오리온 별자리이고, 사나운 재규어이자 짧은 나 팔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화와 현실로 구분하는 것이 바라사나족에게는 한데 어울려 있는 것이다. 연중 어느 시기에 식량 자원이 적어지면 특정 나무에서 떨어지는 애벌레들은 귀중한 식량이 된다. 바라사나족은 언제 적절한 숲 지대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지표로 삼은 것은 ‘애벌레-재규어’, 즉 우리 식으로는 전갈자리에 해당하는 별자리다. 해가 진 뒤 전갈자리가 동쪽하늘에 점점 높이 떠오를 때면 온갖 종류의 아마존 나비와 나방이 알을 낳는 시기다. 이때 애벌레들은 번데기가 되어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명은 시계의 가장 오랜 된 사례는 기원전 1500년경의 이집트 해시계다. 하지만 해시계는 그보다 더 이른 기원전 3000년경에 발견 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부터 널리 사용됐다. 그때부터 해시계는 개인 주택의 안뜰이나 공공 광장, 신전 부근, 공중목욕탕 등지에 설치되었다. 대부분의 교회에는 해시계가 있었는데 그들은 해시계의 시간을 보고 예배시간이나 기도시간을 정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시간 훈련이 가장 잘 된 집단은 그리스도교 교회였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또한 해시계에 신앙의 문구를 새겨 놓고 기도시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으며 그로 인하여 신앙을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교인들에게 시간의 의미는 기도와 예배를 제때 드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만, 상인들에게는 달랐다. 그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류대영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강의 한적도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이용하여 상인들이 돈을 벌자(예:이자) 교회시간과 상민의 시간이 충돌하여 교회가 이자(시간을 팔아 먹는 행위)를 금지하였다고 했다. 그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교회의 시각에서 그런 상인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린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시계가 소형화 되자 이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그 당시 시계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때의 시계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비쌌다고 한다. 해시계 제작 술은 품위 있는 문화의 일부였다고까지 한다. 그래서 해시계는 자신의 좋은 가문과 사회적 지위까지 말해주는 지표가 되었으며 해시계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그 소유자에게 부여되는 위신도 더욱 높아졌다. 이는 요즘 사람들이 자기가 살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비싼 명품을 사고 보란 듯이 자랑하며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뽐내는 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계층마다 해시계의 모양과 재질이 달랐는데 최상품은 황동을 입힌 은제품에서부터 최하층의 해시계는 인쇄한 종이를 나무 판에 붙인 값싼 제품까지 있었다. 일부 서민들은 일부 해시계 제작자들이 유행하는멀리 떨어질수록 북극성은 점점 하늘 높이 뜬다. 1500년대에 항해자들은 이 원리를 이용하여 배가 어느 만큼이나 북쪽 또는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선상에 탑재된 천문 기구들로 수평선 위 천체들의 높이를 측정했다. 천문학 도표들은 천체의 북극점을 도는 북극성이 밤중의 각 시간마다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에 따라 선원은 기하학적 방법으로 자기 배의 위도를 계산할 수 있었다.” – P#179 1500년도에 벌써 이런 방법으로 위치를 파악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대 태엽장치에 이어 중세에 물시계가 등장하였다. 가장 유명하고 정교하다는 평판을 받은 물시계는 1088년에 중국의 관리 소송(1020~1101)이 만든 높이 9미터짜리 시계인데, 이물기계는 자동으로 회전하는 혼천의에 기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물시계에는 96개의 인형들이 도영해 있다가 매 시간마다 차례로 나타나서 종과 징을 친다. 시계의 중심부에는 바퀴에 부착된 국자 속으로 물이 일정한 비율로 쏟아지도록 되어 있다. 이 바퀴가 24초마다 정지할 때 위에 있던 물은 아래의 국자로 떨어진다. 국자가 충분히 무거워지면 한 바퀴살만큼 회전하면서 그 옆의 빈 국자가 물을 받는 위치로 온다. 이 시계는 하루에 정확히 100차례 회전한다고 한다. 예전에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도 예로 나올 줄 알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 소개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후에도 진자시계 등이 발명되면서 시간의 오차는 더욱 줄어들었다. 또 현재에는 세슘 이온 원자시계와 같은 1만 년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시계를 계발하였고, 지금은 100억 년에 1초의 오차 밖에 나지 않는 ‘이온트랩(ion trap)’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창조과학을 믿는 나는 저자가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많은 관심과 집중을 하였다. 예전에 과학시간이나 근래의 창조와 진화라는 강의에서 지구의 나이에 대해 예기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 적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면 이 지구의 나이를 많이 잡아도 1만년이 넘지 않정의와 계산 방법과 같다고는 증명하거나 확신할 수 없다. 나중에 이 세계에서 떠나는 그 순간 하나님과 마주 했을 때에 가장 정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교수님께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에 대해서와 화살이 과녁에 날아갈 때까지의 행위를 설명하신 적이 있으시다. 솔직히 처음에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말씀의 핵심 포인트를 잡기가 상식적으로는 너무 힘들었다. 무한한 일을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그 무한한 일을 끝낼 수 있을까? 무한(∞)이란 말은 말 그대로 끝이 없다는 의미이지 않는다? “무한한 일은 끝마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작도 없다.”고 말한 저자는 이 책도 다 쓸 수 없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을수록 시간의 형성과 우리들의 약속(시간계산법)의 틀이 완성되기 까지를 잘 설명해주어 이해를 돕는 반면,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철학적인 “무한한 일”이라는 역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 책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현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모든 이들이 현재 그 “찰라” 라는 시간 속에 하고 있는 행위들이 끝마칠 수 없는 무한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철학은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함으로서 흥미롭기도 하면서 가끔은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철학적 생각들이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현재 내가 무한한 일을 하고 있다면 이 글을 다 쓰는 순간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했듯 처음부터 난 글쓰기를 시작한 적이 없는 것인가? 이런 거에 대한 답을 할 수 없기에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시간에 대한 수수께끼” 하고 한 것인가?인류가 시작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의 틀을 확보하고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시간이란 단어로 약속을 정했고 그 시간을 보다 정확히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측정기구들을 만든 노력이 지금 우리들이 원하는 정확한 시간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그로 지금까지 크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