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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학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교육학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방안현재 교육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다루고, 연구하는 곳은 대학이다. 하지만 최근 교육학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학원가이다. 누구 교육학이라 이름붙이며 마치 자신이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교육학을 만든 것처럼 과시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학이 본래의 순수한 목적을 상실한 채 오로지 교사의 꿈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교육학을 영역별로 나누어 출제빈도를 따지고 시험에 있어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만 형식적으로 가르치는 세태를 꼬집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교육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장차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소년의 교육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양산할 것이다. 교육학 교육이 왜 이런 상태에 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세한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에 대해 살펴보자.세계 어느 나라를 살펴보아도 우리나라처럼 교육에 대한 열의가 강한 나라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국민 모두가 교육의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쏟아 붓고 있는 현실이다. 일례로 수능의 난이도가 휘청거릴 때마다 온 나라의 눈과 귀는 교육부로 쏠리고 천문학적인 비용은 사교육을 증진하는데 지출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에 대한 전 국민적인 지지가 있음에도 해년마다 교육 정책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을까? 바로 진정한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을 살펴보아도 인성지도는 사라지고 오로지 교과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쉴 틈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수능과 각종 시험의 순위 다툼은 학생들을 경쟁의 상대로 몰아붙여 나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으로 교실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벌여지고 있는 형편이다. 교사역시 수치화된 실적을 통해 유능한 교사로 인정을 받는 터라 오로지 자신의 교과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장에서 과연 진정한 교육이 일어날 것인가? 자꾸만 떨어져 가는 교권과 틈새가 벌어져 가는 사제 간의 갈등,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교와의 갈등은 해가 갈수록 점차 심해져 가고 있으며 학교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사교육의 암묵적인 이익집단 압박은 교육 정책의 변화에 먹구름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중?고등학교만의 것은 아니다. 대학역시 큰 모순과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진정한 교육을 다루고 실천에 옮겨야할 대학에서도 임용시험을 위한 영역만 중요시하고 있으며 실제적인 교육을 다루는 것 보다는 탁상이론 적인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어 학문 탐구의 상징인 대학마저도 교육의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학생, 교수, 일반인들의 인식역시 사범대는 목적대, 목적은 바로 교사가 되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비교육적인 교육은 교육학의 근본적인 원리의 문제에 있다. 바로 타학문의 응용이다. 여기저기서 끌어온 이론과 학문이 교육이란 이름을 통해 교육학으로 치장되고 있는 현실은 목적만 맞으면 어떤 이론이라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교육의 정체감 혼란으로 이어지고 교육 현장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교육학의 하위영역의 수는 늘었지만 그들 사이의 학문적 교류는 거의 단절된 상태이고 오히려 교육에 대한 이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교육현상이 다른 학문의 현상으로 환원될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교육현상을 교육이 아닌 다른 현상으로 보고도 교육현상을 이해한 것처럼 착각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외국이론에 대한 종속역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교육학은 대부분 외국 학자 특히 미국의 연구에 편중되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학계의 학문적 식민지화를 촉진시키고 또한 우리나라 교육학자들에게 암암리에 학문상의 사대주의 정신을 심어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들이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적용할 때 문제가 없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교육학이 타학문에 종속되어있는 것에 다른 나라 이론에도 종속되어 학문의 이중 종속을 낳고 있어 교육의 자율화를 저해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 점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교육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이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만 실제 현장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교육자체에 대한 탐구의 결핍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과 지금까지 교육학에 서 다뤄온 교육은 바로 학교교육을 의미하는데 이 상황에서 진정한 교육적 탐구가 이루어 질 수 없다.교육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의미, 즉 내재적 가치를 깨달아야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 먼저 교육의 독자성 문제이다. 학문적인 독자성에는 학문 자체의 개념과 탐구 방법이 필요하다. 교육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체의 개념을 개발하고, 그 개념들 간의 관계를 밝혀 새로운 개념체제 내지 개념 망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장상호 선생은 상구와 하화라는 개념으로 교육을 접근하는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상구는 스스로를 변신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서 자신을 입체화시키고 끊임없이 자신이 가치 있게 되어 감을 입증하는 일련의 활동과 자신의 부족을 감지한 주체가 그 한계를 탈피하는 총체적 구조변화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있음을 입증해 나가는 일련을 활동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러한 상구와 하화의 상이한 열정은 교육열정을 창출하고 교육을 통해 누구나 똑같은 보람과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활동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교육의 본래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데 교육은 그 자체로서 열정을 느끼고 그것에 몰입할 수 있는 나름의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외국이론을 탈피한 우리나라 고유의 학문적 이론이 필요하다.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인 특징을 반영하는 독특한 우리나라만의 이론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고 교육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가지면서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 질 것이며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정책이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교육의 틀을 벗어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교육을 학교교육으로만 아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교육을 둘러싼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교육적 소재로 적합한 것을 교육 속으로 이끌어 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즉 지금까지의 교육이 교과를 위한 교육이었다면 이제는 교육을 위해 현실이 어떤 수단으로 작용하는 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평가 기준의 개선이 필요하다. 지적인 면의 평가만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교육은 다시 주입식 암기식의 원초적인 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교육은 평가를 위한 교육의 측면에서 다가가기 보다는 교육을 위한 평가가 되어야 한다. 교육 주체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며 교육에서 다루어진 소재가 적절한지. 그리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환경에 대해서도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교육의 평가가 필요하다. 즉 자신이 경험했던 교육에 대해 평가를 내림으로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교육적 잠재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교육 자체의 기준에 교육을 사용함으로써 교육이 지니고 있는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게되어 교육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효과를 불러 온다. 무엇보다 평가의 내용은 성적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지도의 차원에서 참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일선 현장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실천들을 하기 위한 교육 정책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일선 현장에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봐도 교육 정책에 변함이 없다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은 국가 중심적인 교육과정이라는 핵심을 가지고 관료제적인 교육 행정 시스템을 통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덩치 큰 교육집단이 이끌어 나가기에는 중앙집권적인 시스템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교육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학교, 지역, 문화, 기타 여러 가지 환경적인 차이로 인한 특수성과 자율성을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교육 환경으로 학생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점에서 국가에서 강요하는 인간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비교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학교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살리는 개별 교육과정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으며 학교의 재량에 따라 운영될 수 있는 권한을 나누어 주어 관료제의 비효율성을 타파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역이 원하는 인물, 학생이 원하는 미래에 대해 학교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줄 수 있어야 한다. 사범대의 교육과정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 사범대가 목적대라고 하지만 학문의 탐구가 없는 곳은 대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의 경쟁의 논리가 대학에서도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론적인 지식의 평가를 통한 선발하는 기존의 임용시험의 대대적인 구조적 개편이 요구되며 지금까지 임용시험 과목에 초점이 맞춰진 교직과목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이고 교육적인 교육에 다가 설 수 있는 교과의 개설과 다양한 토론과 학생들 간의 적극적인 교류, 교수와 학생의 인격적인 만남, 각종 현장체험과 실습을 통해 현직 교사로서의 자질을 쌓을 수 있는 교육학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 바로 사범대이다.
    교육학| 2006.11.12| 3페이지| 1,000원| 조회(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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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론]김수영의 문학세계(김수영 작가론) 평가A+최고예요
    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의 문학이 있던 자리김수영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 4.19, 5.16 등이 잇달은 격동기의 사회 현실을 진지하게 살며 고민했던 시인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진지하게 살며 고민했던 시인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의 시정신은 바로 이와 같은 자신을 둘러 싼 현실 상황과의 ‘적극적 대응’에서 생성된 것이다. 당대의 현실은 김수영에게 있어 단순한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언제나 그의 삶과 치열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밀접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현실과의 치열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김수영의 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을 둘러싼 현실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려 하였던가 하는 것을 알아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된다.우리는 김수영의 시인으로서의 삶을 초기시, 한국전쟁 이후, 4.19 , 5.16 둥 크게 네 시기로 나누어 고찰한다.1921.11.27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 살림이 할아버지가 죽고 난 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큰아버지로 인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되며 아버지의 희망으로 선린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졸업(1941) 후 어려운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연극연구소에 다니면서 연극 공부 및 시를 쓰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가세가 나아질 기미가 없고 국내사정이 악화되자 길림성으로 이주하게 된다. 일본 내에서의 징집을 피해 귀국(1943)한 그는 가족이 있는 길림성으로 가(1944) 길림성 길림제육고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며 영문학과 연극활동에 매진한다.1. 초기시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 있다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용이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주변 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 될 책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책캘리포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확실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 줄도 모르는제2차 대전 이후의긴 긴 을 누리게 하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단 김수영 뿐만 아니라 1949년에 발간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의 합동시집에서 나타나듯이 박인환 등 그 당시 모더니스트들은 자유주의 문학지상주의로 문단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2. 한국전쟁 이후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다른 사람들은 피난을 떠나는 가운데 그는 서울에 남았으며 결국 종군작가단의 명칭으로 북에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한 달여 가량의 훈련을 받고 부대배치 중에 탈출하게 되고 유엔군의 도움으로 서울에 오게 되지만 경찰에게 잡혀 북한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쓰고 거제도의 포로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영어실력을 미군에게 인정을 받아 석방되고 전란 중의 어려운 형편에 미군 수송관계 통역을 맡게 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고에 얼마 못가 그만두게 된다. 이 때 그의 아내가 일본 유학시절 친구인 이종구와 동거를 한 사실을 알게 되고 전후 어려운 현실에 그는 매일 술에 취해 있거나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부정했다. 그의 시에서 드러나듯이 53년 12월부터 54년 사이의 9편의 시에는 절망과 설움의 숨소리가 담겨있다.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억만 번 늬가 없어 설위한 끝에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늬가 없어도 산단다.[너를 잃고-1953]에서그는 ‘너’를 잃고 살기 위하여 ‘너’가 준 모욕을 씹고 씹는다. 그리하여 ‘너’가 준 모욕은 억만 개의 모욕이 되고, 억만 개의 꽃이 되고, 억만 개의 별이 된다. 모욕이 억만 개로 무한 배가 되고 있다는 것은 시인이 불철주야 그 모욕과 대면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시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중략)누가 무엇이라 하든 나의 붓은 이 시대를 진지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치욕물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나란히 옆으로 가로 세로 위로 아래로 놓여 있는 무수한 꽃송이와 그 그림자그것을 그리려고 하는 나의 붓은 말할 수 없이 깊적인 것이고 조화로운 것이다. 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며 여전히 그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았다. 그이유로는 살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된다. 또 시대가 그러했다. 이승만 정부는 1955년 사사오입 개헌을 시작으로 56년 장면 저격사건, 58년에는 진보당간첩사건, 보안법 제정, 59년 경향신문 폐간 등 영구집권을 위한 반민주적 행위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 시기의 김수영의 시를 보면 두 개의 주제를 만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서강생활을 여유롭게 노래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안일을 자책하는 [사령], [눈] [폭포]등이다. 자책의 시가 안일의 시보다 태부족이지만 그렇다고 그 동안 김수영의 비판정신이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비판정신은 은밀하게 때로는 직설적으로 튀어나온다.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행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곧은 소리는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높이도 폭도 없이떨어진다 이 작품에는 `떨어진다'는 말이 여섯 차례나 쓰였다. 그만큼 그것은 폭포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중요하다는 뜻으로 `떨어짐'은 `부서짐'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 해석의 열쇠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 그리고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받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폭포를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삶의 자세에 관한 준열한 의지의 전형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안이하고 타협적인 삶을 각성시키는 실천적 행동으로 보는 것이다.주체적이고 자기극복적인 모더니즘으로 변화하려는 와중에 전쟁의 발발과 후유증은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인 공허함을 탈피하고 현실 속에 눈을 돌려 이를 극복고자기들이 會社員이라고도 하고電車를 타고 自動車를 타고料理집엘 들어가고술을 마시고 雜談하고同精하고 眞摯한 얼굴을 하고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原稿도 쓰고 치부도 하고시골에도 있고 海邊가에도 있고서울에도 있고 散步도 하고映畵館에도 가고愛嬌도 있다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우리들의 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우리들의 戰線은 당게르크도 노르망디도 延禧高地도 아니다우리들의 戰線은 地圖冊 속에는 없다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職場인 경우도 있고우리들의 洞里인 경우도 있지만보이지는 않는다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焦土作戰이나「건 힐의 昊齒」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거리를 걸을 때도 歡談을 할 때도장사를 할 때도 土木工事를 할 때도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풋나물을 먹을 때도市場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戀愛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授業을 할 때도 退勤時에도싸일렌소리에 時計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民主主義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民主主義式으로 싸워야 한다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民主主義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하…… 그림자가 없다하…… 그렇다……하…… 그렇다……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 뭐?아 그래 …… 그래 그래.(1960.4.3) 전문1960년 4월3일에 쓰여진 이 시는 곧이어 발발할 혁명을 예감할 뿐 아니라 그 혁명이 지녀야 할 성격까지도 예시하고 있다. 그것은 곧 적과 싸움의 편재성(遍在性)이다. 다가올 혁명은 단지 정권의 교체가 아닌 정치?경제?생활?문화?의식 전반에 걸친 전면적인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한 투쟁도 마찬가지로 전면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함을 이 시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이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革命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先望의 가며움을 財産으로 삼을 줄 안다이 가벼움 혹시나 歷史일지도 모르는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財産으로 삼았다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意志의 殘滓 대신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期待를 잃고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1960.10.30) 전문이 시는 김수영이 4.19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좌절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가 쓰여진 것은 1960년 10월30일로 이승만이 축출된 지 6개월 후이다. 김수영은 7월에 이미“제2공화국! 너는 나의 적이다”라고 선언했지만 이 시가 쓰여지기 얼마 전 10월 8일 대법원은 반민주행위자들에 대한 최종판결에서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고 이는 당시 장면정권의 반민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혁명은 끝났다. 김수영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는 4.19 이후 최소한 자기 정신의 치열성을 유지하며 싸우고 노래하고 일했지만 이제 그것은 끝났고 그는 혁명의 여운이 남아 있는 방을 나와 다른 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오는 것이 좌절이 아니라“이유 없는 풍성함”이라는 데에 혁명을 바라보는 김수영의 시인적 예지가 빛나고 있다. 혁명이 끝나고 그에게 남은 것은“녹슬은 펜과 뼈와 狂氣와 先望의 가벼움”이다. 그런데 그는 이‘실망의 가벼움’이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실망의 가벼움’은 말하자면‘역사란 게 다 그런거지 한술밥에 배부를까?’하는 자기 위안을 포함한다. 그럴 때 이 가벼운 위안은 곧 더 근본적이고 더 큰 변혁이 남아 있다는 희망의 역설이 된다. 그의‘이유 없는 풍성함’의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 희망을 발견한 데서 온다.4. 5.16 군사 쿠데타 발발 이후4.19혁명의 영향으로 현실
    인문/어학| 2006.11.12| 10페이지| 1,000원| 조회(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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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사]고전문학사 내용 정리(상고시대~조선시대)
    【 상고시대 】◈ 고대가요- 집단적이고 서사적인 원시 종합 예술에서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시가가 분리 발전하였 다.- 고대 가요는 설화 속에 삽입되어 전하는데, 이는 서사문학과 시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구전되다가 한역되어 전하는 고대 가요의 형태로 한역을 근거로 살펴볼 때 4행시였으 리라 추정된다.- * 집단적 서정가요 : 구지가* 개인적 서정가요 : 황조가 , 공무도하가(1) 성격- 시가의 기능과 성격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1) 종교의식과 관계가 깊다.(2) 농경 생활을 바탕으로 가무와 음주가 곁들여진 집단적인 형태를 띤다.(2) 작품1) 구지가① 관계있는 제의 ; 임금 맞이 제의 (강탄의식)② 특성 ; 갈래는 4구체 한역 시가, 서사적 서정이고 성격은 주술요, 노동요 집단 가무이 다.③ 별칭 ; 영신군가, 영군가④ 표현 ; 주술적, 직설적 표현과 노동요적인 반복법⑤ 명령어법 ; ‘호칭-명령-조건-위협’⑥ 문학사적 의의 ; 현전 최고의 집단 무요이며, 주술성을 지닌 현전 최고의 노동요이다.⑦ ‘해가’와의 관련성? 민간에 구비 전승되어 왔다? 소재가 ‘거북’으로 신성한 존재를 상징한다.? 집단가요로 주술요, 노동요이다.→ 배경 설화 상으로 보면 요구대상과 목적 면에서 ‘구지가’는 왕의 출현이라는 공적이고 집단적인 주술성을 띠는데 비해 ‘해가’는 빼앗긴 아내 (순정공의 수로부인)의 구출이라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2) 황조가① 4언 4구의 한역 시가로, 주체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적으로 표출했다.② 의의 : 현전하는 최고의 개인적 서정시이고,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단계의 가요이다.③ ‘구지가’와의 차이점‘구지가’는 한역 방법상 비교적 정제되지 않았고, 주체 면에서 집단성을 띠며 그 목적 을 볼 때 왕의 출현을 고대하는 주술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화자가 드러나지 않는 다. 이에 반해 ‘황조가’는 한시 형식상 완벽하고, 유리왕 개소화한 향찰 문자만 보아도 강한 주체성을 엿볼 수 있다. '도솔가'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이 문학 양식은 주제와 사상적 다양성을 보여 주면서, 그리고 형태적 분화를 거치면서 신라의 대표적 문학 양식으로 자리를 굳혀 갔다. 신라인들은 이 문학 양식에서 고유의 토속 신앙과 접합된 불교적 신앙을 상대의 세계관 속에 표백시켰던 것이다. 숭고한 이상 추구를 주된 내용으로 했던 이 문학 양식은 수사면에서는 소박하고 깊이가 있어 원만하고 차원 높은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그렸다. 향가는 우밀 문학의 주체성을 보여 주면서 민족정신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꽃피운 민족 문화의 유산이다.(6) 작품작품명작 자연 대형 식내 용서동요백제 무왕진평왕4구체서동이 선화공주를 사모하여 아내로 맞기 위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동요. 민요혜성가융천사진평왕10구체이 노래를 지어 내침한 왜구와 큰 별을 범한 혜성을 물리쳤다는 축사(逐邪)의 노래풍 요滿城男女선덕여왕4구체양지가 영묘사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만들 때 장안의 남녀들이 진흙을 나르며 불렀다는 노래. 민요. 노동요.원왕생가광 덕문무왕10구체죽음을 당해 극락왕생의 믿음을 달에 기탁하여 부른 노래. 정토(淨土)사상을 노래함모죽지랑가득 오효소왕8구체삼국 통일에 공헌한 화랑 죽지랑을 추모하여 지은 노래.헌화가失名老人성덕왕4구체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노래. 민요.원 가신 충효성왕10구체효성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매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부쳤다는 주가(呪歌). 일명 원수가(怨樹歌). 8구만 전함.도솔가월명사경덕왕4구체두 해가 나타나므로 괴변을 없애기 위해 부른 산화공덕(散華功德)의 노래. 일명 산화가(散花歌).제망매가월명사경덕왕10구체죽은 누이를 추모하여 재(齋)를 올리며 명복을 빈 추도의 노래.찬기파랑가충담사경덕왕10구체화랑인 기파랑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 추모시.안민가충담사경덕왕10구체군(君), 신(臣), 민(民)이 알 바를 노래한 치국의 노래.치세안민(治世安民)의 노래를 지으라는 왕의 요청을 관련된 바위, 연못, 고목, 집터 따위의 개별적 증거물을 동반하여 그 이야기를 증거 할 수 있는 기념물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설은 전승 장소, 발생 동기, 설화 대상 등에 따라 나눌 수 있다.(5)민담이야기하는 이나 듣는 이가 모두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참이라고 전제할 필요도 없는 주로 흥밋거리의 이야기다. 민담은 전설과 달리 구체적인 증거물은 가지지 않으며, 지역적 제한성을 따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민담은 구전되어 오는 동안 민족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전승 범위 가 불특정 적이며 그 주인공도 미천한 처지에서 무력하게만 살아가다가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 공상 속에서나 가능한 소망을 두루 성취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고려시대 】◈ 고려속요- 고려시대 평민들이 부르던 민요적 시가를 이른다. 이는 민요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운율이 무척 아름답고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되어 있다. 여요 또는 장가라고 한다.(1) 특징고려 속요는 민요에서 형성되었으므로 운율이 무척 아름답고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진솔하며, 오랜 시일 전승되는 동안 첨삭되는 과정을 거쳐 세련미까지 갖추게 되었다.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평민들의 진솔한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향가가 쇠퇴한 후 고려의 시가는 사실상 그것을 담을 그릇을 잃어 정상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다가 다만 입에서 입으로 부르던 속요만이 향가의 뒤를 이었다고 본다. 원래 향가란 작품도 그것이 애초에는 노래로만 불려지다가 나중에 문자로 정착되었듯이 고려의 속요 역시 구전되다가 조선조에 와서 우리말로 정착된 것이다. 실제로는 작품 수가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몇 편에 그친다. 고려의 속요가 문자로 정착되지 못하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다고 본다면 그 형식은 민요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완전한 평민문학이라고 하겠다. 내용이 극히 자연스럽고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男女相悅之詞라 하여 풍속을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문자화되지 못한 작품이 많다. 면서 부르는 노동요백결선생의 '대악'의 후신이 상 곡미 상솔직, 담백한 사랑의 표현비연시남녀간의 정을 읊은 淫奔女의 노래만 전 춘미 상5 연남녀간의 사랑을 읊은 노래형식이 시조와 비슷쌍 화 점충렬왕4 연남녀간의 적나라한 사랑을 표현한 遊女의 노래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로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유 구 곡충렬왕애 조 가비연시비둘기를 빌어 연정을 노래. 또는 정치 풍자예종의 '벌곡조'와 유사(7) 고려 속요와 다른 시가와의 비교향가와 고려 속요- 형식상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 속요는 향가와 민요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향찰 문자의 쇠퇴에 따라 '정과정곡'과 같은 과도기적 형태의 시가들이 나타난 이후에 향가 문학은 점차 소멸되어 갔으나 그 잠재적인 영향력은 고려 속요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한 고려 속요는 향가와는 달리 문자로 정착되지 못한 채, 민중 속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동안 일종의 민요처럼 발전하게 되었다.경기체가와 고려 속요- 3음절을 주조로 하고 구수율 6구를 기준하여 대체로 분장된다는 점은 공통점으로 지적되나, 경기체가가 고려 시대 사대부 문인들에 의해 지어진 귀족 문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대하여, 고려 속요는 민중 사회에서 널리 불리어진 평민 문학으로서, 평민들의 진솔한 감정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단가와 고려 속요- 단가는 고려 속요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그 일례로 단가의 분장식 형식은 아무래도 고려 속요의 분장식 특징과 관련된다고 하겠다. 또한 만전춘의 일장은 바로 단가형으로 되어 있다.◈ 경기체가(1) 정의고려 예종 때부터 조선 선조까지 약 350년 간의 별곡체 시가를 말하는 것으로, 고려 중기 한시문에 익숙한 귀족 문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독특한 형태의 정형시(2) 형식분절체, '위∼경긔 엇더하니잇고'의 후렴구, 3 3 4조의 3음보'한문+이두'로 표기, 매 장은 다시 전후 양절로 나뉘어져 전절은 길고 후절은 짧음전대절 : 3 3 4, 3 3 3, 4 4 4 爲 2(4) 景幾何如후소절 : 4전기까지 독립된 한 시가 형태로 존재하다가 임란 이후에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고려 중엽 이후 무신들이 집권하게 되자 대부분의 문신들은 관계를 떠나 초야에서 은둔하였지만 일부 문신들은 집권층의 문하를 드나들며 신흥 사대부 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경기체가는 이들 신흥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득의에 찬 삶과 향락적인 여흥을 위하여 창출한 시가 양식이다. 중국의 사(詞)의 영향과 한국적 운율을 접합시키고, 그 속에다 신흥 사대부들의 감정을 담고 있는 경기체가는 대개 생경한 한자 어구의 나열과 이두식 후렴구로 되어 있다.◈ 고시조(1) 정의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에 완성된 문학 형태로, 조선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계승된 우리의 고유의 정형 시가.(2) 발전과정10구체의 향가 : 전 8구가 2장, 후 2구가 1장(전 3장형)3장 6구 : 고려 가요의 분장 형태가 6구체로 굳어짐종장의 첫구 3자 : 사뇌가의 후렴구인 '아으'의 유음고대 민요 향가(10구체의 끝 2구) 고려 가요(만전춘 별사) 시조(3) 기원설향가 기원설 - 10구체 향가의 전 8구가 2장, 후 2구가 1장이 됨시조 종장 첫구 3자 : 사뇌가 후렴구인 '아으'와 관련고려가요 기원설 - '사모곡''정읍사'의 6구체, '만전춘별사'의 3행시민요 기원설 - '모내기 노래'의 4음보격 2행시 형태에 1행 추가기타 : 무당의 노랫가락 기원설, 한시 번역 과정설 등(4) 형식3장 6구체3 4조 혹은 4 4조4음보 형식(5) 내용유교적 충의 사상을 노래한 시조들이 많다. 여말 선초 고려의 유신들이 지은 회고가나 사육신들의 절의가 등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연 속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삶을 노래한 작품들도 많다. 이러한 작품들 역시 순수한 자연을 노래한 것이라기보다는 유교적 충의 이념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녀들의 작품에는 그들의 애정 세계가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6) 종류평시조 - 시조의 기본형으로 단형 시조라 한다.엇시조 - 평시조의 초장, 중장 중 어느 한 구가 길어진 시)이
    인문/어학| 2006.11.11| 52페이지| 2,000원| 조회(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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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훈민정음 기원과 자방고전(가림토 문자설 중점)
    훈민정음과 자방고전과 목 :소 속 :학 번 :이 름 :▷ 들어가며훈민정이 창제될 때 세종은 자방고전이라는 말을 한다. 자방고전(字倣古篆)이라는 것은 ‘글자는 고전 을 본떴다’라는 말이다. 즉, 훈민정음을 만들 때 순수하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어떤 문자의 모양이나 원리를 본떴다는 것이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훈민정음은 과학적 원리와 음양오행을 고려하여 신체의 기관을 본뜨고 여기에 획을 더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해례본에 나와 있는 ‘자방고전’이라는 단서에 대한 의문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 많은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 시기 이전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자들을 연구했고 ‘자방고전의 기원이 무엇이다’라고 많은 논문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인도의 범자 기원설, 몽고의 파스파 문자 기원설, 히브리어 기원설, 고대 문자 기원설, 가림 문자 기원설 등 많은 이론과 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확하고 맞는다고 확신하기 힘들다.‘훈민정음’과 ‘자방고전’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다양한 서적과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찾던 중 우연히 영상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1999년 10월 9일에 KBS에서 방영되었던 역사스페셜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인 이었다. 수업시간에도 논의 되었던 알만한 내용이겠거니 했고, 몇 년이나 지난 자료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의외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처음엔 프로그램 제목처럼 훈민정음이 세종의 독자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중점으로 내용이 전개되었고, 후반부엔 ‘자방고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다양한 문자의 사진 자료를 제시하고 원리를 논의하면서 훈민정음과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방식이었다.이 영상자료와 몇 몇 서적을 살펴보고 하나의 의문점을 제시하고 자료를 찾기로 방향을 정하였다. “훈민정음은 다른 나라의 문자를 본떠서 만들었을까? 당시의 조선에는 한자 말고도 민간에서 쓰이는 문자가 있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우리나라로 범위를 한정 짓고 자방고전에 접근 해 보기로 했다. 그 단서는 가림토 문자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하는 자료는 다양한 서적과 아직은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고서 『환단고기』를 참고하였다.▷ 본 론1. 가림토 문자의 발생『환단고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상형으로 뜻을 나타낼 수 있는 글(신지문자)은 있었으나 열 집만 있는 고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이 많고 백 리 되는 나라에서는 글자를 소로 해득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되어 이해 봄에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국문정음(正音國文)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가림토 문자의 가림은 사물을 분명히 가린다는 뜻이고 토는 사물의 뜻을 분명히 한다는 뜻이다. 이 가림토 문자는 태고 문자의 시조인 녹도문에서 출발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여 위에서 언급하였었다. 이렇듯 신지(神誌)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이를 문자화하여 짐승가죽에 기록한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3세 가륵 단군(檀君 嘉勒)이 BC 2181년 즉위 2년에 이르러 삼랑 을보륵(三郞 乙普勒)으로 하여금 이전의 문자를 다시 정리해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었는데 이를 가림토 문자라 했다. 이는 후진적인 상형문자를 알기 쉬운 표음문자로 바꾸어 만드는 한편 조선의 강역 내에서조차 녹서(鹿書)는 물론 여러 서로 다른 문자가 사용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자 이를 통일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런 가림토 문자 38자를 보면 훈민정음과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훈민정음과 가림토 문자의 창제동기의 동일성, 글꼴의 동일성, 창제 사상의 동일성 등에서 훈민정음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다. 이것은 『환단고기』를 통하여 기록된 것을 중심으로 해서 알아보았다.2. 훈민정음과 가림토 문자두 문자는 창제동기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상도 비슷하다. 또한 문자 측면에서도 훈민정음 28자와 가림토문자 38자가 글꼴도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보는 사람들 모두 두 글자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문자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은 두 글자중 하나의 문자가 기원이 되고 후세에 그것을 모방해서 글자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두 글자의 모양을 보도록 하자훈민정음28가림토 문자 38위의 글자를 보면 훈민정음과 비교해서 가림토의 큰 특징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훈민정음은 28자인데, 기림토는 38자로 되어, 가림토는 훈민정음보다 글자 수가 더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가림토에 훈민정음에 없는 특수한 글자가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림토 문자에 의하여 훈민정음이 창제 되었다는 것이 인정받으려면 반드시『환단고기』의 내용이 사실일 때만 가능할 것이다.3. 가림토 문자의 전달위에서 살펴본 기록대로 훈민정음의 기원을 가림토 문자에서 찾는다면 가림토 문자가 훈민정음까지 이어져 오려면 어떤 문헌의 기록에 의해 전달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림토 문자의 전달 측면에 대해 알아보겠다.단군조선 개국 초기에 만들어진 가림토 문자가 그 후 어떻게 발전하면서 문명의 역사를 열어 갔는지 단기고사의 기록을 통하여 알아보자.?제9대 아슬단군 5년에 "고소에게 명을 내려, 국법전서를 다시 편찬하였다."?제12대 아한단군이 후손의 흥망성쇠를 유위자에게 물어 보았다. "조국문자는 돌보지 않고 모하사상이 갈수록 높아져 수천 년 후에 유학에 미친 사람이 나라 안에 가득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문자는 다 없애고 한문자만 전용할 것이며……. 마지막에는 자손들이 그 선조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임금께서 말하기를 "선생은 참으로 천고의 신인이로다. 능히 반만 년 후의 일을 추측하도 다."하고 영원히 국문을 보전하라 하셨다.?제14대 고불단군 52년, 국립대학을 설립하고 사방에 있는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였다. 그 이전부터 있었던 태학관이나 법정학교를 한데 묶은 종합교육 기관을 설치한 기록이다.?제24대, 연나단군 10년에 조대원이 정치원론 10권을 만들어 바쳤으며 제40대 달음단군 3년에 윤복지가 도덕경을 저술하고, 10년에 진개가 치국요람을 저술한 기록이 있다.?42대 을유지단군 3년에 철인 이일선이 천리경을 저술하여 임금에게 바쳤으며 5년에 백호돈이 지리학과 광물학을 저술했으며 제45대 여루단군 28년에는 장소부가 의학대방을, 30년 에 홍문선이 태학조문등을 저술하여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위의 기록들은 모두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한 위에서 본 것과 같이 비석과 토기에 새겨진 글자들과 1994년 12월, 문화일보에는 "잃어버린 고대문자" 가림토 문자비석이 만주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2미터 높이에 넓이 32센티미터 크기의 탁본 한 점을 공개했다. 이것은 사회학자였던 이상백(서울대)교수가 학생시절이었던 1930년대에 만주 지역에서 직접 탁본한 것인데 정도화(진주 상경대)교수가 보관하다가 발표한 것이다. 문화일보는 이 탁본에 음각된 문자 중 상당수가 단군세기의 가림토 문자와 비슷하다고 밝혔다는 것을 이미 위에서 알아보았다.또한 만주문자 비석은 경박호 부근에서 탁본한 것이라고 TV Q채널에서 방영된 "한글, 그 비밀의 문"에서 밝히고 있었다. 이 만주 탁본의 진위를 밝힐 만한 기록이 『환단고기』 신시본기 제3편에 실려 있다. "......일찍이 듣기로 남해도 낭하리의 계곡 및 경박호의 선춘령과 저 오소리 사이의 바깥쪽 암석 사이에서 언젠가 조각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범자도 아니고 전자도 아니며 사람들이 알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신문에 발표된 만주 탁본이 『환단고기』에 기록된 경박호 탁본이 맞을 것이다. 이렇듯 서적의 기록과 비석과 토기, 바위 등에 새겨진 가림토 문자의 기록이 세종에 의해 훈민정음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기원을 가림토에 두려 한다면 더 많은 문헌의 기록 등의 자료가 필요할 것 같다.4. 가림토 문자 부정설이제까지 가림토가 단군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말과 몽고나 만주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는 말은 동북아시아 민족 간에 개발된 고대 문자로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가림토가 훈민정음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런 사실이 『환단고기』의 기록에 대하여 몽고와 만주의 암벽에 새겨진 현실적인 사실이 그 참됨을 입증해 주는 것이 되어, 훈민정음의 모문자가 우리나라의 고대 문자여서 훈민정음은 근원적으로 우리 겨레가 만든 글자임을 확인케 하는 것이라 하겠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환단고기』의 문헌 기록보다는 몽고나 만주의 암벽에 새겨진 사실이 더욱 주목되는 것으로,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다기보다 동북아의 고대 민족이 개발한 글자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훈민정음의 모문자는 우리나라의 글자가 아닌, 동북아의 고대 민족이 개발한 문자라는 일부 일본인들의 견해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견해 역시 타당한 근거에 기초하기보다는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환단고기』라는 책이 고서가 아니고 1911년에 편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전의 믿을 만한 正史의 기록에 의거하여 기술된 저서가 아니고, 문헌적 근거를 찾을 수 없이, 임의로 조작한 위서로 보이기 때문에 학계에서 인정받거나 신빙성이 강한 문헌 기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가림토의 출전이나 증거 자체가 신빙성이 확보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또한 가림토가 5000년 전 단군 시대에 이루어졌다면 문자 발달사로 볼 때 회화문자(??文字)나 상형문자(象形文字)의 단계에 있었겠는데, 세계의 다른 회화 문자나 상형 문자를 보면 극소수의 간단한 획의 글자나 부호도 있지만 대다수가 복잡한 형태의 획을 가졌으며, 특히 그것을 상징한 사물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있거나 그렇지 않는 경우는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가림토의 글자 모양은 모두가 간결한 부호로 되어 있어 어떤 사물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고,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과 같은 것과 훈민정음 글자 위에 획을 붙인 것으로 보이는 글자뿐이다.
    인문/어학| 2006.11.11| 5페이지| 1,000원| 조회(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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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담]청소년 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기본 내용과 전략
    청소년 상담을 위한기본 내용과 전략과 목 :소 속 :학 번 :이 름 :1. 바람직한 상담교사상최근 학생들이 여러 가지 유해환경에 접해 있어 학교문제, 청소년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예전에 가정에서 해결하던 것들이 이제는 학교로 넘어 오고 있다. 가정 고유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학교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생활지도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 생활지도는 교과지도 이외에 이루어지는 제반활동이며, 이는 담임교사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최근에는 전문적인 상담교사가 담당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상담교사가 가져야할 요건을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지 않는 것을 꼽았다. 이것은 교과지도교사와 상담교사를 구분해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현재 학교에서는 대부분 교과지도와 상담을 병행해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수업시간에 상담한 학생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그 학생에게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상담교사를 구분해야 하고, 상담교사는 학생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다음으로 상담의 기본요건인 비밀보장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상담내용을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말을 해준다거나, 선생님들끼리 대화할 때 상담한 내용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비밀보장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비밀보장이 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상담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상담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비밀보장이 중요하다.그리고 상담교사가 가져야 할 자질들이 있는데, 상담교사는 전문적 자질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자기발전과 개발을 해야 한다. 또한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학생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학생이 선생님을 신뢰할 수 있으려면 먼저 선생님이 학생을 믿고 지지해 주어야 가능하다. 상담교사의 말 한마디가 고민이 있는 학생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교사는 신중해야 하고, 실습을 통해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2. 다양한 상담 접근1) 학업문제에 대한 상담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상담 서 학습계획을 같이 짜준다거나 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모든 상담에서 그렇겠지만 학업상담에서도 상담이 종료된 후에도 피드백을 주어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좋다.2) 학교폭력의 원인과 형태, 대처방안학교폭력은 다양한 형태가 있다. 구타를 하여 신체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놀리거나 무시를 하는 언어폭력에서부터 왕따와 같은 정신폭력, 그리고 금품갈취 등의 물질폭력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포함한다.학교폭력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을 들 수 있다. 지식위주의 전달 수업은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학생을 이분화시켜 학생들에게 반항심을 갖게 한다. 둘째,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공격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여과되지 않은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그것을 모방하고 무의식중에 공격성을 띄게 된다. 셋째, 가족이기주의로 인해 자기중심성을 갖게 되었다. “엄마가 치료비 내 줄테니까 맞지 말고 차라리 때리고 오라”고 말하는 부모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남이야 어쨌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아이들을 폭력에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넷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조를 들 수 있다. 이질적인 것에 배타성을 보이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감정조절 능력이 부족하고, 자제심이 결여 되어 폭력을 하는 아이들은 이제 죄의식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폭력가해자는 대체로 책임감이 부족하고 문제해결력이 부족하여 무조건 손부터 먼저 나간다. 마지막으로 욕구불만을 해소할 적절한 수단이 없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다.폭력의 다양한 원인들을 알아보았는데 대처방안을 보면, 개성을 존중하고 비전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학생이 주체가 될 수 있는 학급운영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길러 주어여 한다. 가정에서는 바람직한 가정교육이 이루어져야함을 물론이고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한다. 가정과 사회기관을 연계시켜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고, 폭력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최신형의 직업정보들을 소개시켜 주어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게 하는데, 교사가 다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정보를 조금 주고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졸업생들의 경험담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학부모에게 강의를 부탁할 수도 있다. 또 직업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를 찾아가 보게 하는 것도 실질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교사는 진로에 맞는 성적을 갖기 위해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여야 하지, 간판만 보고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단지 서울대에 가기 위해서 관심도 없는 농대를 가는 우를 범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일과 직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성역할에 집착하거나 단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하거나 하지 않도록 의식교육을 하여야 한다.4) 성상담요즈음에는 중, 고등학생이 이성교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개방적인 성의식을 가진 청소년들은 아직 제대로 된 성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채 무분별한 교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이성교제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는 부모님께 알리고 건전한 이성교제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모든 상담이 그렇지만 성상담의 경우 특히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임신을 한 후 대책 마련보다는 먼저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갖고, 자신을 소중히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좋다. 성기도 신체의 한 부위로 소중히 해야 함을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 기관과 연계하여 성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우리나라의 성교육 현실은 매우 후진적이다. 낙태 비디오 등을 보여 주면서 죄의식과 경각심만을 부추기고, 실제적인 내용이 부족하다. 피임지도를 하여 임신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낙태를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데, 일부 보수적인 세력들은 그것이 오히려 성을 더 문란하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환각, 환청 등이 오고, 몸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며, 호흡곤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약물 중독은 치유가 어렵고, 청소년들은 약물 구입을 위해서 여러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여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중독의 경우 즉시 병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약물중독이라는 표현보다는 약물의존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학교상담에서는 중독이 된 아이는 병원으로 보내고, 이전의 단계에 있는 아이들을 상담치료 할 수 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흔하게 접하는 약물이 담배와 카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즈음에는 흡연을 하는 중고생이 늘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이들을 위해 금연 프로그램을 실시하거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방차원의 금연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 앞서 말했지만 약물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시작하면 끊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카페인도 학생들이 가장 쉽게 중독 되는 것이다. 심각성을 모르고 먹다가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중독이 되고, 나아가 각성제를 먹는 경우도 있으므로 카페인이나 각성제에 대한 이해를 시켜 주어야 한다. 대부분 잠을 안자고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하는데, 카페인이나 각성제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잠을 안자도 공부할 수 없고, 한번 먹으면 계속해서 양을 늘려야 함을 알려주어야 한다.약물중독(의존)에 관한 상담의 시작은 약물을 하게 된 원인파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원인을 해소하여 더 이상 약물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약물을 접하게 된 경로를 파악하여 그 경로를 차단하여야 한다. 폭력서클에 가입된 아이들은 서클의 압력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몰려다니면서 약물을 한 채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이 정도 수준은 학교에서 다루기에 벅차므로 전문 기관과 연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약물을 하는 아이들은 현재 쾌락을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시의 즐거움을 위해 후에 받는 고통에 대해 알려주고 약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 또한 상담교사가 할 일문제가 있는 것으로 행동장애를 보인다. 예를 들어 거식증, 폭식증과 같은 식이장애가 있다.이들은 자존감이 낮고, 충동을 억제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이를 완화시킬 프로그램에 참여를 유도 할 수 있다. 또 감정인식과 표현력의 부족과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대인관계 형성능력이 부족하다. 집단상담을 하여 올바른 대인관계 형성을 배울 수 있다. 또 비행의 원인이 가정에 있는 경우 가족상담이나 부모상담을 할 수 있다. 상담교사가 아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할 때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담에 임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상담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의외로 이들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에서 공부만 강요하지 말고 이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부각시켜 자존감을 키워주거나 작은 것이라도 학급 일을 시켜 책임감을 갖고 학교생활에 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실제로 소위 학교 짱이라고 불리면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일삼으며 학교에 나오기 싫어하던 아이가 교사의 배려로 체육부장을 하게 되면서 친구들에게 칭찬도 듣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에 학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3. 현대 사회의 청소년 문제1) 현대사회 청소년 문제를 보는 시각① 저널리즘의 견해폭력, 패륜, 혼전임신, 자살, 돌연사, 중도탈락 등과 같은 사건과 사고 등의청소년 문제행동이 지닌 상징적 의미 추구② 아카데미즘 접근? 정신의학 : 정신질환의 예방과 치료의 관점? 심리학 : 발달과정이나 행동학습의 과제로 청소년문제를 간주? 사회학 : 사회화와 문화화 과정에서의 적응과 재적응.? 경영학?경제학 : 재화의 생산자로서의 청소년과 직업적 생산능력이나 잠재적 노동생산성에 초점③ 능력의 함양 측면에서 본 청소년 문제? 올바른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데 실패? 도덕적 능력을 기르는 일에 실패? 창조적 능력이 과거에 비해 미흡? 리더십(지도력) 개발을 위한 체계적 교육의 미흡? 영적능력 개발의 미흡2) 현대 청소년 문제의 원인① 개인적 변인 : 낮은 자아개념, 높은 충동성, 법 처벌
    교육학| 2006.11.11| 10페이지| 1,000원| 조회(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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