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 분석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안이 가결됨에 따라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17대 총선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결과 이번 17대 총선은 16대 총선보다 투표율이 증가했다. 특히 예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다소 무관심한 경향이 많았던 20-30대의 투표율이 증가했다는 것이 이번 총선이 갖는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이렇게 국민의 많은 관심속에서 시작된 17대 총선의 결과는 정치구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첫 번째 변화는 여대야소의 구도이다. 열린 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함으로써 국회의 제 1당이 되었고, 이어 한나라당이 121석 확보로 제 2당이 되었다. 이것은 16년 만에 맞는 여대야소의 구도라고 한다. 16대 국회만 보아도 정책을 추진하는데 거대야당의 심한 견제로 인해 일관성 있게 신속하게 추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관성 있고 신속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100석을 훨씬 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열린 우리당의 독주는 불가능하다. 영남과 강원지역의 한나라당 지지를 보고 여전히 지역주의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느 특정지역에서만 지지를 받은 것은 문제이지만, 한나라당이 의석을 확보하게 되어 열린 우리당의 적절한 견제세력이 되었다는 데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에 국민들이 열린 우리당에서 손을 들어 준 것은 노무현대통령의 탄핵 반대라는 국민의 의견이 내포되어있다고 생각된다.두 번째 변화는 진보정당의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한지 4년만에 처음으로 국회의석을 10석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우리국회도 좌에서부터 우까지 다양한 성향을 가진 국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것이 여러 사람을 대변해 주는 국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의 정책논의가 이제 국회에서 열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해 나갈지 무척 궁금하다. 민주노동당은 서민의 계층에서 많은 지지를 얻은 만큼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세 번째 변화는 여성의 국회진출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16대 국회는 여성의원이 5명이었는데 비해 이번 17대 국회는 10명의 의원이 당선되었다. 거기에 비례대표까지 더하면 39명의 여성의원이 당선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국회는 남성위주로 운영되었는데 이번 17대 국회는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전에 호주제개정만 하더라도 여성에게 불리하고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반대가 있었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제는 여성의 문제, 보육의 문제등 이제까지의 관심이 부족했던 부분뿐만 아니라 정치의 다양한 부분에서 남성과 다른 여성의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많은 의견들이 나와서 여성을 대표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연제구에서는 한나라당의 김희정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되었다. 김희정 의원은 33세의 여성의원이라 세대교체와 우먼파워 모두 보여 주는 의원이다. 당선 확정 후 김 의원의 소감 발표 중에서 자신이 아직 미혼상태라서 결혼과 육아의 문제는 보편적인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바로 직면한 문제라며 이러한 문제에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이 소감을 들으면서 다른 의원이 공약보다 김희정 의원의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네 번째 변화는 세대교체이다. 지난 16회 국회에 있었던 많은 중진들이 밀려났고, 30-40대의 젊고 새로운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다. 129명이 새롭게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신인들이 너무 많아서 불안을 초래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제까지 중진에 의해서 전개되어온 국회의 모습에 많은 실망을 느껴서 시민들이 새로운 정치인이 나와서 우리의 정치를 좀 새롭게 바꿔 바라는 개혁의지가 담겨있는 무언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 성장을 재촉 당하는 아이들을 읽고...>요즘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가방을 메고 학원가를 다니며 저녁이 늦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온다. 그 후에도 온갖 학습지를 하고 학교 숙제도 하며 너무 많은 량의 학습을 하루 동안에 한다. 이런 것을 반영하듯이 거리를 지나가면서 보면 온통 XX영재교육 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건물 2,3 층은 학원들이 항상 자리 잡고 있다. 낮 동안 놀이터에는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고, 아이들은 놀이터대신에 버스 정류장에서 학원차를 기다리며 무거운 가방을 메고 서있다. 이 어린아이들을 이런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는 어렸을 때는 실컷 한없이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 시기에 배우더라도 그 배움은 자연스럽게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너무 아이들을 몰아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렇게 부모들에 의해 행해지는 조기교육에 대한 문제를 나열하면서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여기서 조기교육이라 함은 특정한 능력과 기능의 습득을 꾀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빠른 시기부터 시작한다는 지향성을 갖고 아이들의 반응을 크게 기대하며 행하는 유아에 대한 계획적인 동작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조기교육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교육을 해 나가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육아가 어머니의 책임이 되면서 다른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조기교육이 성행했고, 산업사회에 핵가족화가 되면서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어른으로부터 받기가 어려워지자 그에 대한 방안으로 조기교육 센터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고립되어 있던 삶이 개방되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또 어머니 세대가 풍요롭게 자란 세대이고 교육도 고등교육까지 받은 고학력세대라서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이후에 부모가 3세 까지는 길러야 한다는 통념아래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아이에게만 집중하여 본인의 욕구가 아이에게 전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본인의 자아실현 수단으로써 아이를 교육시켜 얻은 결과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에게만 이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도 함께 육아의 책임을 지고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또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기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될 것처럼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본인의 자녀가 영재가 되기 위해서 시키기 보다는 남들처럼만 되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더욱 많고 남들이 모두 하니깐 불안심리에 의해서 하는 경우가 또한 많다고 한다. 그리고 TV광고, 선전문구은 어머니가 그런 불안심리를 해결해 줄 것처럼 하여 부모들이 조기교육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이런 상업적인 전략은 취학세대가 줄어들면서 유아기에게 상품을 팔려고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너무나 상업적 성격이 강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사회가 너무 빨리 급변하다 보니깐 어떠한 방향으로 자녀를 키워야하는지 뚜렷한 해답이 없어서 이러한 풍토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사회적인 성격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머니가 사회적 진출을 못 함을 인해 아이를 대상으로 대신 자아실현을 하려소 한다면 이것은 분명 사회적 책임의 결핍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머니가 사화진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줘야한다.이 책 속에 등장한 많은 예들의 인물은 조기교육의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부모의 교육에 순종적으로 착하고 똑똑한 아이로 자라오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그 압박과 스트레스에 견디지 못하고 병으로 분출하는 아이들이었다. 이 증상은 이전까지 잘해오던 학습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하고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생겨 사람을 두려워하고, 누통이나 다른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인간관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은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물인데 , 주변의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대화도 안 통 하며 사람의 접근을 무서워하는 것은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유아기 때 형성되는 자발성이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아기 때에 아동의 발달과장에 적합한 교육을 받았어야 하는데 너무 앞선 조기교육으로 인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을 간과한 예이다. 책 속의 구절 중에서 조기 교육이라 함은 교육의 완성단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 단지 완성단계의 도달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가 다른 아이들 보다 더욱 우수한 인재가 되기를 바라며 조기 교육을 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교육이 시간만을 단축시키는 기능을 한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남 보다 빠르게 배워서 이로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어느 초등 교사가 어느 학생이 처음 1학년 입학했을 당시에 글자를 모두 배워 와서 본인 스스로 자신이 다른 친구들 보다 잘한다는 생각에 우쭐하곤 했었는데 결국 모든 아이들이 배우는 시간은 달랐지만 글자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 그 아이는 아무것도 대단함이 없는 아이가 되고 만다고 한다. 그래서 초등교사인 그 사람은 초등교육에 대한 조기 교육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무렵, 이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갔었는데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영화를 보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세계적은 평을 받고있는 김기덕 감독의 이영화, 흥미위주의 가벼운 영화와는 다른 색다른 느낌의 영화였다. 불교적, 동양적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뜻이 약간 전해지는 듯 했다. 특히나 주왕산에 제작했다는 그 절은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호수 중앙에다가 그런 절을 지었을까? 거기에도 불교적 의미가 내포된 것일까? 절이라는 곳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있지만 쉽게 지나가다가 들리는 곳이 아니라 배를 젓는 노력을 하고 정성을 다 한자들만이 찾아와서 부처님의 뜻을 받는다는 그런 의미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이 영화는 사계절을 인생으로 보고 인생의 각 시기마다 일어나는 사건과 행동에 대해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봄은 유아. 아동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보인다. 불교도 동양적인 사상이라 그런지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가르치기 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시하는 것 같았다. 어린 아이가 산속에서 생명을 위해할 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나중에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무거운 돌을 메고 자기한 한 일이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교육관이가 보다.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스스로생각하고 깨닫도록하는 것.. 여기서 스승의 역할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배우는 자가 주체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그런 것 같았다.여름은 인생으로 보면 청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성적 호기심이 강해지는... 절을 찾은 소녀도 사랑을 통해 병이 치유되고.. 아무래도 청소년기가 자아 정체정이 강해지고 호기심이 강해지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주면서 자신이 타인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 그런 의미가 있는 듯 했다. 여기서도 스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와 소년을 지켜만 보았다. 영화를 보는 중에 스님에게 들켜 심한 꾸중을 들을까봐 조마조마했었는데.. 제재를 하지 않는 스님의 행동이 첨에는 의아했다. 급기야 절을 떠나는 아이에게 조차 가만히 두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생각했는데..그러나 이것이 불교의 방식이라고 생각된다.가을은 인생에서 장년기의 시기로 보인다. 이 시기가 되면 얼굴에 자신의 삶이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삶에 책임을 질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절을 떠났다가 돌아온 주인공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해 보였고, 인생의 역경이 느껴졌다. 사랑했던 아내를 죽이고 돌아온 이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스님의 태도는 더욱 놀라웠다. 불교의 정신을 배우며 자라난 주인공이 사람을 죽이고 돌아왔으니 화를 내고하고 꾸중을 할 만도 하건만, 또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는가?! 불교에서 얼마나 생명을 중시하는가.. 더군다나 인간을 살해했는데도 불구하고 ...스님은 아마도 모든 생명이 중요하듯 죄를 지었지만 이 사람 역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여기서 불교의 자비도 약간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나 스스로의 깨달음을 중요시 하는 불교의 정신을 절실히 엿볼수 있었다. 반야심경을 파라고 시키는 스님의 태도가 이상해 보였지만, 그것을 파고 있을 동안에는 마음의 잡념을 버리고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분명 되었을 것이다.겨울은 주인공이 자신의 죄 값을 치르고 돌아온 산사에서의 일이었다. 인생으로 보면 중년기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자신에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무거운 돌을 메고 멀고 먼 길을 떠난다. 산을 오르고 또 오르며 육체적인 고통을 감수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적인 평화를 찾으려는 의도일까?! 이런 고통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사람에게 성찰의 시간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느꼈다. 그리고 산사를 찾아온 한 여인. 간난 아기를 맡기고 돌아간다. 이 사람은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다. 여기서도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일까? 얼굴을 보여줬다면 좋았을텐데.. 결국에 눈을 가리고 가다가 물에빠져 죽지 않던가.ㅉㅉ?! 안타깝다. 얼굴을 보여줬더라면 죽지도 않고 우리가 궁금해 하지도 않았을텐데... 분명 감독 의도가 담겨있는데... 아이를 버린 것이 나빠서 그랬을까? 어쨌든 주인공은 아이와 함께 마음의 수양을 하며 불교의 정신을 수양하는데 정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