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영*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5
검색어 입력폼
  • 북한경제 비판
    ‘제3부 북한의 경제 비판’1. 3장 (경제난 극복방안과 전망)북한은 심한 경제난과 자연재해로 인해 식량수확량이 줄어들고 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인민들이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자‘감자혁명’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북한의 주곡식은 쌀과 옥수수지만 감자재배를 중요시 하게 바뀌게 된다. 북한은 남한보다 면적은 넓어도 산악지형이 많고 경작 규모가 작기에 농산물 수확량이 적다. 그 점을 보완하고자 토지정리 사업을하면서 논을 큰 규모로 정리하고 이듬해 바로 수확량이 증가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식량뿐만 아니라 전력과 외화난도 겪고 있던 북한은 대규모 발전소 건설과 수출상품을 생산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했다.‘7.1조치’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로써 물가를 인상하고 시장과 상점을 활성화시키며 개혁개방을 하려 하였다.‘이와같이 인민들의 힘든점을 알고 조금만 노력해도 바로효과를 본다는 것을 북한은 알고 있었다.북한주민에게 인도적 차원으로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굶어 죽어가는 주민을 위해서 하루 빨리 보내야 한다고, 내생각도 같다 당장 식량지원을해 고통받는 주민들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정부나 당은 남한에 군사적 도발을 하며 오히려 밥 사주고 빰맞는 겪이 된 것이다. 북한이 식량을 요청하면 남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무조건적 지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한· 미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에만 집중을 하고 국방비의 50%정도만 경제발전에 사용을 했다면 지금처럼 북한이 붕괴체제 직전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국민들이 배고픔에 고통받는 현실앞에 북한이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외국나라에 식량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나...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은 당장 선군정치 사상 버리고 군방비를 축소하며 급한 식량과 비료를 구입하고 북한의 태도가 바뀌어야만 다른나라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2. 4장 (체제 붕괴)북한은 남한이 흡수통일을 할 것이라고 많은 걱정을 하는 것 같다. 90년대 김일성주석이 사망한 시점부터 북한은 곧 붕괴 될 것이라는 주장과 논문까지 나왔었다. 식량부족과 경제난으로 인하여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킨다고 생각 했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붕괴도 흡수통일도 되지 않았다. 북한자체가 워낙 폐쇄적이고 통제가 철저한 국가여서 체제붕괴는 힘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계획이였는지는 모르나 강경파들은 북한이 곧 붕괴하면 그전에 남침으로 전쟁을 도발 할 것이라고 주장을 했다. 그로인한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하며 남한에게 군무기를 새로 구입하게 하고 미군측에 지원금을 늘려 달라는 요구를 한다.
    사회과학| 2011.07.04| 1페이지| 1,000원| 조회(125)
    미리보기
  • 임동원의 회고록 `피스메이커`
    ‘임동원 회고록 피스 메이커(Peacemaker)’를 읽고 나서...임동원이라는 이름을 들어도보고 책속의 사진을 보니 tv에서도 많이 봤던 것 같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니 김대중 대통령정부 시절에 많이 나왔었던 분 같다. 그 이후에도 많은 활동을 하시고 현재 세종재단 이사장으로 재직중이시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때 ‘아∼‘ 란 감탄사가 나왔다. 왜냐하면 책 분량이 총 742페이지 인데 이걸 언제 읽지라며 겁부터 먹었기 때문이다. 독서를 그다지 좋아 하지도 않고 읽어보기 전에는 관심없는 분야만 씌여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이 두꺼워 중간내용을 볼려고 그냥 손으로 대충 펼쳤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는 사진을 보게 된 것이였다. 그래도 나 나름대로 매일 뉴스를 보고 국제정세나 안보에 관심이 있는데 그 당시 상당한 이슈였고 정상회담이 기억이나 이 책의 전체 내용이 궁금해지기 시작 했다.임동원 이사장님은 김대중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국정원장에 취임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 참여를 원치 않기에 여러번 거부하지만 김대통령께서 그 점 때문에 더 국정원장을 맡아달라며 설득 끝에 국정원장으로 부임시킨다. 이때부터 김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나가기 위해 일부러 임명시켰던 것 같다. 그리고 정상회담을 추진하기위해 당시 박지원 문화부장관과 북한출신 일본인 요시다 다께시를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 김대통령은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키기위해 투입시킨다. 하지만 북한은 조평통을 통해 국정원이 개입하는 것을 반대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김대중 정부 이전에 국정원은 안기부, 중앙정보부란 명칭으로 활동했었는데 그때 당시 활동이 앙금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측과 북측인사가 수많은 회담을 거치며 조율해 나갔다. 양측의 양보할수 없는 부분과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매우 힘들었던 것 같다. 김정일위원장은 조선일보, 월간조선, KBS의 취재진들을 입국을 거부하며 ‘반북책동’을 비난했다. 미국의 지지도 얻지만 한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여러 기업참여와 정부지원이 있어야 하지만 현대측은 그 점을 무시하고 독단적 행동을해 추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임동원 이사장님께서 처음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시 협의 사항을 설명할 때 경청을 하고 허심탄회 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연장자에 예우도 하는 김정일 위원장은 정신이상자이며 은둔생활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만 직접만나 보니 사실이 아닌 것을 알게 된것 같다.드디어 남북 분단이후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상봉하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된다. 적군의 의장대를 사열과 분열을 받으며 김대통령이 이동할 때 임동원 이사장님은 있을수 없는 일을 눈앞에서 보게되어 감격에 젖게 된다. 이 상황은 실시간으로 남과 북은 물론 세계적으로 중계되어 전파를 타게 된다.북한주민 50만명이 꽃술을 흔들며 ‘만세!‘를 외쳐 김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환영하는 모습이였다. 자리를 이동하고 수행원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김위원장의 인상적인 인사말이 이어졌다. 또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생각 했을 것이다. 어렵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이 좋은 결실과 통일의 길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모두의 바램이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는 남아있었다.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의 금수산궁전 조문을 꼭 원하며 해야 한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의 정서상 또한 김대통령의 입장에서 조문은 힘들다는 점을 설명했었지만뜻을 굽히지 않았기에 임 이사장님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조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한숨을 돌린 듯했다. KBS, 조선일보 관계자 입북 불허문제도 있었지만 북측에서 시비하지 않겠다며 해결되었고, 남북공동선언문 작성 합의라는 큰 산이 남아있었다. 김대통령께서 당시 임 원장을 옆에서 수행시키며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의도가 있었다.두 정상들은 회담을 통해 음식, 예술, 출생지역등 주제를 가지고 화기애애 하게 말을 주고 받았다. 또한 진솔한 애기들로 서로를 이해시키며 감동 시켰다. 하지만 선언핫라인 개설, 경제협력, 이산가족, 교류협력 활성화 등 많은 내용이 오고 갔다. 마침내 몇 번의 실무자 회담을 거치고 드디어 남북공동선언문이 만들어 지고 두정상이 합의를 하게 된다. 두정상들은 손을 맞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 멋진 장면이 촬영 되지 않아 두 번 연출되는 헤프닝도 있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 그당시 현장에 있던 관계자 였더라면 통일이 이루어졌구나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임 이사장님은 중학생 당시 한국전쟁이 발발해 월남하게 되고 육군사관학교에 합격을 하여 장교의 길을 걷게 된다. 1964년 미국 육군특수전학교로 군사유학을 갔와서 ‘혁명전쟁과 대공전략’ 저서를 발간하고 3개월후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 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으나 미수로 발생하고 11월달에는 120명의 북한 특공대가 침투를 해왔다. 그 이후 책은 육사, 군 경찰 교육기관의 교재로 사용 되었다. 그이후 임 이사장께선 탄탄대로 하게 된다. 높은 직책을 맡게 되고 안보에 계속 연구를 한다. 하지만 전두환이 신군부의 정치개입을 반대 하던 임 이사장을 육군소장으로 예편 시킨다. 이렇게 27년간 군생활을 마감하게 된다.외교관이 되면서 나이지리아 주재대사로 부임한다. 힘들었던 해외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외교안보연구원장에 임명된다. 점점 통일전문가가 되어 가는 과정이 되었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시 ‘우리의 안보태세와 대북정책’에 대해 강연할 때 한 청중이 질문을 하였다. 군재직시 자주국방과 군사력 증강을 주도하던 분이 왜 변하였는지 라고 임 이사장님은 냉전체제가 끝이나고 독일의 통일이 이루워지고 한반도도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말하셨다. 맞는 말이지만 약간의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이사장님의 위치가 생각과 신념을 바꾼것은 아닌가 라고...임 이사장님께서는 수차례 북한 방문과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그 외 북한 고위 관계자들과의 회담과 협상을 하셨다. 그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등을 성사 시킨다. 남한의 대통령선거와 정치적 배경 문제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라는 특별지시가 있었고 또한 북한측과의 협상이 타결되었지만 갑자기 모든조건 충족시키라는 훈령이 내려와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더 웃긴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데 훈령을 지시했는데도 회신도 없도 중간보고 도 없는 것은 문책사유라며 질타를 했다. 관계자를 소집해 사건을 확인하면서 이동복 특보가 훈령 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엄청난 훈령조작을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원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노태우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어느 정도 였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김대통령이 당선 전 1994년 대통령 선거 실패후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여 운영을 해왔는데 이분야 전문가인 임 이사장님을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으로 임명 시킬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 김대통령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야당인사이고 아무런 친분이 없는데 그러한 큰 자리를 맡아 달라하니 당연히 거절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번의 제의로 김대통령과 만남후 같은 생각과 공통점을 발견한 후 사무총장직을 수락하셨다. 그리고 당시 김대통령과 임 이사장의 만남을 한반도의 역사를 바꾸게 하는 결합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그 후 김대통령이 국회의원에 출마 하라는 권유와 회유를 하지만 임 이사장은 정치에는 관여 하지않는 다는 신조를 지키면서 다시한번 더 김대통령에게 신임을 얻게 된다.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그 무렵 북한 붕괴론이 대두 되었다. 교수님께서도 북한 붕괴론은 북한의 특성상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고 임 이사장님도 그러한 점을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고 북한과의 경제협력, 상호간 교류, 군사정전회담 등 다분야에서의 접근을 요구하셨다. 남북경제협력활성화조치 발표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1998년 6월 16일 소떼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여 금강산 관광과 개발에 합의를 한다. 10월에 다시 소떼 501마리를 몰고 방북하여 금강산 관광선 운항을강산 관광중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또한 개성공단에서 남한직원을 억류하는 사건도 발생한다. 이로 인해 현재 금강산, 개성관광은 중단되 상태며 개성공단 역시 활발하지 못하게 되어 남한 기업들의 피해가 계속 해서 늘어가고 있다.남한과 북한은 강대국들의 간섭없이 통일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주위로 중국, 러시아, 일본이 있고 남한과 동맹인 미국이 있다. 세계 강대국들 속에 쌓여 있는 한반도는 다른국가를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전혀 그런것 같지도 않다. 클린턴 정부시절 1994년 북한에 군사적 제재를 가하기 위해 전쟁직전까지 갔지만 클린턴 임기 말기 북한에게 지원을 약속하고 북핵을 저지 제네바합의를 이끌어 냈었다. 북한도 강대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었기에 나쁘지 않는 조건 이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남한 정부와 클린턴 정부가 만들어온 북한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과정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하게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중국, 일본, 러시아 국가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협력과 도움을 받기 위해 많은 외교전을 펼치기도 하였다.1999년 임 이사장님은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하신다. 평화와 통일 북한문제를 주 업무로 하셨지만 이젠 그러한 것들을 통괄하는 기관의 수장을 맡아 큰 힘을 얻으 신것 같다. 남한은 북한에 식량, 비료 지원등 여러방면에서 도와주고 있었다. 연평해전이 일어나기전 김대통령은 북한발포시 즉각 응사하고 확전을 방지하라는 훈령을 내린다.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이 일어나게 되는데 대비하고있던 우리 해군은 북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아군측 피해는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태로 인해 NSC 상임위원회가 열리고 사태 해결에 고심을 하게 된다. 또한 여론에서 도발을 하는 북한에 계속적인 지원을 해야 하나는 주장이 많았다. 당시 금강산지역에 관광객과 경수로 공사장 인부들 평양지역 여행객들의 안전이 큰 문제 였다. 북한이 억류를 시킬수도 있고 그로인해 협상을 요구할수도 있었다.였다.
    독후감/창작| 2011.07.04| 5페이지| 1,000원| 조회(219)
    미리보기
  • 정세현의 정세토크
    ‘정세현의 정세토크‘를 읽고...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어서 운이 좋게도 전 통일부장관을 지내신 원광대학교 총장님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계기가 생겨서 좋았다. 총장님이 전북임실에서 성장하셨는데, 나의 친가도 임실이여서 같은 고향사람이라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보통 책표지에는 줄거리나 중요한 글귀가 표지글을 장식하여 책 내용에 방향을 제시해주는데 이책 표지에서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비판적인 성향이 나타나 있는 걸 쉽게 짐작 할수 있었다. 어떠한 방향으로 씌여 있을지 짐작 할 수 있는 대목 이였다.책의 첫 내용으로는 10.4 선언을 이행하려면 14조 3000억원 비용이 드는데 한국정부에서 비용을 전부다 지원해야하는 반감을 가지고 있고, 여론을 통해서 국민적 지지도 어느정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지원을 함으로써 남한에게도 돌아오는 이익이 있다. 책에서 말하듯 비용을 말할 때는 베네핏(수익,효과)을 설명 해야하는게 상식이다. 또한 통일비용이 요새 많이 대두되었는데, 통일이 되려면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이 들어가게 된다.이명박 대통령이 8.15 행사 때 통일세를 언급해서 현재 추진 준비중인걸로 알고 있는데, 현재 유가상승과 물가상승으로 인해 국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통일세를 야기하면 어느 누가 반가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통일세에 대해서 찬반을 한다면 반대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꼭 통일세를 걷어야 하나? 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리고 당장 통일이 된다고 해서 그 많은 돈이 일시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책에서 보면 현재 남북 분단비용이 들어가고 있는데 통일비용-연간 GDP 6.0~6.9% 분단비용-연간 GDP 4.35~4.65%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을 빼면 연간 GDP 1.35~2.55% 통일편익시 연 11.25%성장 한다고 가정시 연간 4.35~5.25% 국가성장을 하게 된다.통일을 하게 되면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이 만남으로써 중국과 같은 초고속 성장을 할 수도 있다. 현재 남한에서만 국제경쟁력을 가진 상품이 10여개정도인데 통일시에는 10여개가 아니라 20~30여개이상 국가경쟁력을 갖춘 상품이 나 올 것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무역확대가 되고 무역수지 흑자폭이 사상최대가 될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가 통일이 됨으로써 이슈가 되어서 세계각지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오게 되어 관광수입도 증대 될 것이다.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 북한에게 거의 퍼주기식으로 했다라고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내용도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 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기 때문에 퍼주기식 인지도 모르겠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위해서 북한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고, 정부지원은 아니지만 고 정주영 회장은 통일소를 몰고 북한을 방문 했었다. 또한 매년마다 남한은 북한에 많은 양의 식량지원을 했었다. 지금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인도적지원도 모두 중단된 상태이고 언제다시 재개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서로 win win 하는 측면이 있었다. 북한 경제를 도와주기 위함이고,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과 저임대료로 남한의 중소기업을 유치시킨 것이다.매년 들어갔던 식량지원이 군부에게 간다는 애기가 있었고, 나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다. 우리가 보내는 식량으로 전쟁식량을 비축해놓고 나중에 전쟁을 도모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서 그건 아니구나... 라는 점도 생각 하게 되었다. 북한의 총 식량 생산은 군부가 먹고도 남을 양이여서 지원하는 식량을 전량 군부로 빼돌려서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원하는 쌀에 경우 정부미를 보내게 되는데 생산 후 2년정도 지난 것으로 오래 보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용으로 비축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햇볕정책으로 인한 대북지원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에 씌였다고 여론을 통해서 발표되곤 했었다. 남한에서 북한에 햇볕정책기간동안 총 37억3000달러 우리돈 3조 7000 억원이였고, 현물을 빼고 현금만 약 10억 달러, 1조원이다. 미사일 개발하고 발사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리고 지원했던 현물은 현금화하기는 힘들었을 테고, 현금 1조원으로는 개발 발사비용이 턱없이 부족했을거다. 하지만 지원된 돈이 어디에 씌였는지는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총장님 생각과는 반대로 현금1조원으로 개발 발사비용의 종자돈으로 썼을지도 모르는 추측을 해본다. 하긴... 남한에서 지원을 하지 않았어도 북한은 핵ㆍ미사일 개발을 계속 했을 것이다.지금 이명박 정부들어서는 북한과의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위기 긴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에는 정상회담과 6.15 선언, 10.4선언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가 좋았었다. 또한 북한이 남한의 지원과 교류로 인해 한민족 국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긍정의 표시로 부산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하고 올림픽에도 공동입장하면서 가족으로 비유하면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중이였다.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대통령 바뀌면 변하는건 어쩔수 없지만, 그동안 좋았었던 관계를 왜 현 시점까지 끌고왔나...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탑을 쌓아 올리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건 한순간인 것 같다.1990년 서독과 동독은 통일이 됐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1년만에 통일이 됐다. 서독이 동독에 여러방면으로 오래기간 지원을 해주면서 동독에 현물과 현금이 들어가자 동독 민심이 서독쪽으로 자연스레 건너가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거였다. 많은 노력은 서독과 동독이 해서 통일을 이루었지만, 주위에 강대국의 동의가 없었다면 과연 통일이 쉽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후 독일은 화폐개혁과 동독의 부동산권리를 인정하면서 동독지역의 땅값이 확올라 가고 인건비 물가가 상승하면서 동독에 투자가 활발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은 경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많은 통일 비용이 들어갔다.책 내용을 보면 독일은 남한과 북한이 먼저 통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때 정세현황으로는 서독 동독 사이보단 남한과 북한이 좋아 보였나보다. 다른나라에서 그런관점으로 봤을 때 통일이 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독일을 통일을 보면서 남한과 북한도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따라해서는 안되지만 실패한 화폐개혁이나 부동산권리 같은 실패한 정책들은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한미동맹관계나 주변국에 일본, 러시아, 조중관계 강대국들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 들이 많아서 독일처럼 통일시에 강대국의 동의를 얻기위해서 많은 외교전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 중국과 한국이 천안함, 연평도 포격 문제로 북한을 옹호하는 중국입장에 한국입장이 불만이 많지만 중국은 현재나 미래를 위해서라도 등을 져서는 않되는 나라이다.남한과 북한이 잘 지내보려는게 무엇 때문일까...? 통일? 한민족? 둘다 맞을거다. 한민족이며 분단의 아픔을 잊고 같이 잘 살아보려고 통일을 하려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 모두 통일을 해야 한다.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다.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남한과 북한은 통일에 사활을 걸고 관계 개선을 하지 않을까? 책에서 총장님은 남북한 모두 잘못한다고 하신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많은 사상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는 아니지만, 왜 남한은 북한을 지원만 해줘야 하는 것일까요? 북한은 남한이 지원을 해줘야만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고위급회담, 평화협정 대가가 있어야 교류에응하게 되는 것일까요?지금에서야 남한경제가 북한경제보다 월등히 앞서지만, 70~80년대에는 북한경제가 더 좋았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남한에 큰수해를 입어서 북한이 인도적지원을 했었던 사례도 있다. 지원을 하면서 북한은 정치적의도와 북한이 잘산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남한과 미국, 국제기구에서 북한에 식량이나 경제적으로 지원을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만족을 하지 못해서 더 많은 요구와 핵이란 비장의 카드로 미국을 끌여 드리고 있다.북한은 떼쓰는 아이처럼 달래줘야만 울지 않고 웃을수 있는 건가요? 현재 이명박정부가 대북정책을 강경하게 나가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북한측에 호의적일때도 있긴 했었으니까요. 금강산에서 남한여자 박왕자씨가 총에 피격당해 사망했을때 남한측에 사과를 요구하다니요... 그게 말이되는겁니까? 정확한 진상조사도 하지못하게 하며, 그건 도저히 남한정부나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수밖에 없는 행동뿐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금강산 부동산을 몰수하고, 개성공단의 임금과 임대료인상을 요구합니다.어느정도 적정수준에서 요구를 하면 들어줬을꺼라 보지만 이미 남한측의 반대를 예상하고 요구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않고 지원 해주지 않는다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남침을 하는게 맞는 것일지... 그로인한 고통과 슬픔은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할지... 아무리 화가난들 사람을 때리는 것이 정당한건지 개인대 개인이 아닌 국가대 국가로써 대화로 풀었야 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독후감/창작| 2011.07.04| 4페이지| 1,000원| 조회(447)
    미리보기
  • 황홀한 글감옥 독후감
    조정래 작가의 ‘황홀한 글감옥’을 읽고 나서...이 책의 내용을 보았을 때 왜 질문과 답의 형식일까? 라고 한번쯤 생각하게 만들었다. 조정래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던 상태에서는 글을 쓰시는게 좀 소홀히 하신것은 아닌가? 어떤 의도일까? 궁금증을 넘어 게으른 작가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알아 가면서「태백산맥」,「아리랑」,「한강」장편소설을 집필하신 잘나가는 작가분이셨다. 많은 책도 쓰시고 강단에도 많이 서고 하셨지만 독자나 강의를 듣던 학생들의 질문을 그때그때 속시원하게 답하지 못하셔서 일종에 자서전이면서 조정래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써주는 풀이집 형식으로 쓰신 것 같다. 질문자들이 전부 대학생이였는데 순간 조정래 작가님의 책은 대학생들의 필독도서인가 나는 왜 이책을 읽지 않았나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예술가들은 이성에게 풍기는 매력적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부인이신 김초혜 시인은 대학시절부터 문단에 등단하고 당시 동국문학회 여학생 회장을 하며 모든 남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지만 그때 당시 조정래 작가는 노숙자 모습을 하고 다니며 언제 등단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정확하지 않았던 청년을 좋아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김초혜 시인은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어 조정래 작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딴 생각이 든다.조정래 작가의 별명은 ‘조진세’이다. 술을 마시면 주위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며 불편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데 작가님은 그점을 소설 구상하기 위한 진행으로 대수롭지 않게 느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진지하다며 ‘조진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작가님은 별명에 세련미를 더하고 진지하지 않기 위해 ‘조진세’로 바꾸게 된다. 그런데 이별명은 술을 한참 마실 때 붙은 것 같은데「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쓰면서는 술을 20년동안 마시지 않았다고 하셨다. 술을 마시면 원고 정해놓은 수량을 쓰지 못하여라고 하셨는데 술을 날새며 마시고, 다음날 숙취로 인한 피로, 술로 인한 컨디션 저하가 원고진행을 방해하여 술을 드시지 않았는데 ‘술따위는 먹어도 되지 않아 하루빨리 원고를 마무리 지어야 겠어!‘라는 의지가 강하셨던 것 같다. 대부분 술을 싫어하는 예술가, 문학인은 없기 때문이다. 작가님을 의심하진 않지만 솔직히 20년동안 한두잔은 마시지 않으셨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작가님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였는데 공부를 하기위해 직접 절을 찾았다가 정작 공부는 가르치지 않고 일만 시키기에 절을 나와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던중 절에서 법사시험을 치르게 해주었는데 당시 24세에 그어렵다는 시험을 한번에 통과하게 된다. 아버지는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기위해 결혼을 하는 최초의 승려가 된다. 작가 아버지는 여순사건때 목숨을 구하시고 한국전쟁으로 이곳 저곳 피난을 다니며 생활을 하게 된다. 6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든 상황에서 작가 아버지는 무뚝뚝 하시며 자식들에게 관심없는 듯 행동하셨지만 글짓기를 격려하기 위해 똥지를 이용해 공책을 만들어 주셨고 항상 올바른 행동과 공짜를 바라지 말고 식사시에는 천천히 꼭꼭 씹고 ‘주색잡기’를 하지 말라며 가르치셨다. 그중에서 ‘천천히 꼭꼭 씹고’, ‘주색잡기’를 가장 중요시 하셨다. 천천히 먹는 식습관으로 인해 6남매가 몸이 건강했으며 도박 게임을 하지 않아 4명의 며느리 들이 좋아 하였다.조정래 작가는 승려가 될 뻔한적이 있었는데, 작가 아버지께서 전쟁통속에서도 무사한것은 부처님 가피 덕분이라며 장남은 않되고 차남이 가는게 좋겠다시며 승적을 내미셨다. 안국동 조계사를 찾아가고, 조계사에서는 유능했던 법사 차남의 출가를 반겼고 조정래 작가만 모든 상황이 불행하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문학을 하겠다며 아버지께 말씀 드렸지만 ‘만해 선생’을 말하시면서 종교와 문학은 동시에 할수 있다. 하시며 순간 모든 것을 포기 했지만 번뜩 떠올랐던 말이 ‘만해 선생께서는 백 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분이십니다.’ 이 한마디로 모든게 정리가 되어버리고다행히도 승려가 되기직전에 집으로 돌아 가게 됩니다. 여기서 작가 말이 승려가 되어도 김초혜시인과 어떻게든 만나서 짝이 되었을 거라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을지요?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초인간적인 힘 또는 작가처럼 아버지를 이기는 언어표현인 것 같습니다. 글을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대목이였으나 실제 상황이였다며 절망한 얼굴이 선했을 것 같습니다.조정래 작가는「태백산맥」에서 빨치산의 내용을 쓰기위해 지리산도 찾아가보고 부탁을 해보지만 번번히 거절을 당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 박현채라는 분이 연락이와서 빨치산 간부출신이였다고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하였습니다. 그때 작가는 정말 세상에서 구원 받은 듯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고 같이 지리산을 가고 글을 써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셨던 분입니다. 그 당시 그분은 정부에 관찰하에 있었기에 실명을 쓰면 작가나 박현채 선생이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수 있었기에 책에다 본명대신 작명을 해서 ‘조원제’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작가분들도 그러시겠지만 특히 조정래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관련서적 모두 모아서 전부다 읽고 또한 국내·외 상관하지 않고 직접 현장으로 가보고 취재노트를 만든후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서 빠른 속도로 집필을 하신다. 책을 보다가 알게된 사실이지만 보통 구성노트를 쓰기 마련인데 작가께서는 머리 속에 넣어놔서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취재를 왔던 기자들은 혀를 내둘렀었다.단편 소설도 아니고 장편소설을 그것도 3편이나 구성노트도 없이 집필했다는 점에 그러고 보면 어린시절 어머니께 이불에 오줌싼다고 머리만 맞아서 멍청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것 같다.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보수단체의 위협, 협박전화 경찰, 검찰 수사를 받게 하는 책이 되었다. 아무래도 소재 자체가 군부정권시 눈에 거슬리게 보였을 것이다.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왜곡된 사실을 아는 것도 문제지만 그 사실자체를 말하고 글로 표현하는 점은 죄로 취급받았었다. 형사가 항상 감시를 하고 나중에는 국회에서까지 거론이 되며 어떻게 처리를 할듯 할것 처럼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친한 지인들과「태백산맥」을 좋아하는 독자 분들은 남들 모르게 도움을 주며 조정래 작가가 힘든 상황까지 가는 것을 막아주곤 했습니다.「아리랑」준비시에는 중국 입국이 거부되는 것을 문화부 이어령 장관이 보이지 않게 많은 도움을 주어 준비 할수 있게 되었고 또한 검찰수사에 이적위험물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주셔 사건을 유보화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수단체 고발로 인해 다시 검찰수사를 받긴 했지만 당시 조정래 작가를 고발했었던 고발장은 가장 많은 양의 고발장이였고 사건또한 1994년 4월에 고발당하고 2005년 5월 무협의 판정을 받았다. 11년간 이어져 왔던 사건은 사법사상 가장 길게 끈 고발 사건이 되었습니다.
    독후감/창작| 2011.07.04| 3페이지| 1,000원| 조회(408)
    미리보기
  • 북한 핵무기
    ‘제5부 북한의 군사 및 대외 정책’1장. 핵무기 (언제부터 왜 만들어왔을까)미국은 한국전쟁부터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을 암시하는 발언과 군사적 행동을 보여 왔었고 한때 남한에 미국 핵탄두를 760기나 배치 한적도 있었다. 미국정찰기가 북한에 격추되고 미군이 살해당한 ‘판문점 도끼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군의 핵폭격기인 B-52를 한반도에 배치 시켜 북한을 긴장시켰다. 또한 미국은 핵무기를 통해 북한정권과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계획도 세웠었다. 한미합동군사훈련 ‘팀 스피리트(Team Spirit)’은 방어적 목적을 띄고 있지만 선제공격과 유사시 핵무기사용도 포함되어 있어 북한이 강력하게 비난하는 훈련이다. 계속된 미국의 핵위협에 북한은 자국책으로 군사시설을 지하화하며, 중국과 소련에 핵무기개발 도움을 요청하지만 매번 거절당하게 된다. 대신 소련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북한과학자를 소련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미국과 남한 그리고 북한과의 경제적 차이가 100배 이상 나는데 북한은 그 격차를 줄이고 안보위협을 최소화 하겠다며 GNP 30%정도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남과 북 대치상황에서 많은 국방비가 지출되는데 북한은 전투기나, 함정을 제때 교체할 수가 없어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보려고 핵무기개발을 시작했다. 지역특성상 한반도가 4대강국에 둘러싸여있고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았지만 북한은 주변국들로부터 그러지 못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개발을 이용해 미국과 협상카드로 적절히 사용했는데 북미 공동성명, 제네바 합의, 북미 공동 코뮤니케 등 협상을 이끌어 냈다. 북한은 핵무기개발을 통해 당국이나 인민들에게 선군정치를 강조하며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위와 같이 북한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핵무기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클린턴 행정부 때 제1차 북핵위기가 오고 전쟁직전 상황이였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중재시켜 위기는 잠시 주춤했지만, 부시 정부시절 2차 북핵위기가 다시 찾아오게 된다. 제네바 합의시 북은 핵활동 동결 미국은 안전보장, 에너지지원, 국교정상화를 약속했지만 당시 북한은 곧 붕괴 한다라는 미국 추측에 합의사항을 신속히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북한은 계속해서 미국을 자극시켜 중국의 중재로 6자회담을 성사시키는데 합의사항으로 북한에 에너지지원, 동북아평화, 북 모든 핵무기 포기, 미국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합의 내용으로 이끌어 낸다. 제네바 합의시 북미간 합의라 쉽게 이행하지 않았지만, 6자회담은 어느 국가든 약속을 먼저 깨기 만들게 한 장점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실험하고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게 된다. 미국은 또다시 북한제제를 하게 되고 북미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현재까지도 그렇다.
    사회과학| 2011.07.04| 1페이지| 1,000원| 조회(114)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4
4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3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7일 금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4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