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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 미술]이미지를 읽는다
    1. 들어가며내가 읽은 책의 소제목은 ‘르네상스 미술의 이해’이다. ‘이미지를 읽는다’는 현대적인 감각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14세기경부터 시작되어 16세기에 걸친 르네상스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가들의 네 개의 작품을 가지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 그 숨은 정신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즉, 이 책의 전반적인 골자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학제학적 연구를 통해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대비되는 사상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차이점을 먼저 설명하고, 그 뒤에 이 책에서 그 사상들이 어떻게 예술품 속에 흡수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도모하기로 하겠다.2. 중세와 르네상스전술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중세의 사상과 르네상스 시대에 새롭게 대두된 정신과의 갈등이 담긴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세가 어떻게 쇠퇴하였고, 그 시기의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로 어떤 사상이 새롭게 태어났는지 살펴보겠다.11세기에 이루어진 중세사회는 13세기까지 경제적 성장을 계속하던 봉건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하고, 심각한 기근, 흑사병, 대전쟁, 농민 반란 등이 발생하여, 영주제는 위기에 당면하고 장원제도가 붕괴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봉토를 매개로한 주종관계가 깨지고 왕권을 중심으로 한 통일국가 형성이 촉진되었다.그리고 13세기에 절정에 달하였던 교황권이 14세기에는 ‘교회의 대분열’ 등으로 쇠퇴하고, 카톨릭 교리에 도전하는 이단설이 나오고, 종교개혁의 선구적인 움직임이 나타났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윗 문단인데, 바로 ‘교회의 대분열(Great Schism, 1378~1417)’로 인해서 그리스도세계의 양분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교회의 분열을 촉진 시켰으며 대립하는 두 교황과 세속군주의 결탁이 일어났고, 이것은 교황권의 위엄을 손상시킴은 물론, 교회 전체를 타락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한편, 봉건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는 보편적 조직체였던 중세교회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잠식하게 되었다. 국왕이나, 봉건귀족은 돈의 궁핍으로 교회의 재산을 탐냈고, 로마(교황)로 유출되는 돈을 가로채려 하였으며, 장원제도의 붕괴로 농노신분과 봉건적 부담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한 농민들은 십일조와 같은 교회세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이단운동과 신비주의의 대두, 그리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개성의 각성은 중세 말의 정신적, 지적 풍토를 크게 변화시키고 교회의 획일적인 정신적, 문화적 통제를 크게 약화시키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15세기 초의 ‘종교회의운동’은 실패하였으며, 이 중대한 시기에 교황과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패하고 타락해 있었다. 성직자의 타락은 당대인의 눈에 너무나 뚜렷하여 야유와 풍자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황 또한 르네상스의 물에 젖어 세속적이고 현세적인 욕망의 충족에 여념이 없었다. )이상으로 미루어 볼 때, 중세의 정치, 경제적 기반은 무너지고, 또한 중세의 세계관을 담당하던 카톨릭 교리 또한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다. 이 상황들은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의 이행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중세의 쇠퇴와 더불어 르네상스가 도래했는데, 우리의 논점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특징은 이전의 지배적인 세계관인 카톨릭적 사고관의 탈피이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발견’을 이룩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인식을 뜻한다.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는 신분이나 사회계층, 또는 혈통 같은 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으며, 그것은 르네상스가 인간의 본질을 철저하게 깊이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르네상스는 인간성을 종교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이 그의 타고난 개성을 마음껏 기르고 발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유분방한 개성적인 인간과 여러 면에 걸쳐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이를 발휘한 ‘만능의 천재’들을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이 배출 시켰던 것이다. )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이행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미지를 읽는다’라는 책은 바로 윗문단에서 언급한 천재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 시대 상황, 작가의 사상, 그리고 현대인이 반추할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고 답하고 있다.우리는 향후 가장 유명하고 보편적인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의 두 작품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3. 들어가서(1)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에 대하여와카쿠와 미도리 교수는 글 초두에 학제학적 연구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사용하여 우리들에게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이른 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미술학 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종교학적인 식견이 필요할 것이다.와카쿠와 미도리 교수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소개하면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사상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중세의 카톨릭적 해석에 따르면 절대적으로 구원을 받는 방주는 카톨릭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천막은 유대교이다. 또한 벌거벗은 사람들이 서 이는 언덕은 이교도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교도의 세계와 유대교의 세계는 멸망한다고 해석한다. 즉, 로마 카톨릭교회만이 참된 구원에 이르는 길이며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 이외에도 교수의 놀라운 해석이 등장한다. 위에서 유대교라고 해석을 했던 부분을 카톨릭교회일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그 이유는 첫째, 술통이 있기 때문인데, 와인은 성찬식 즉 카톨릭교회 미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천막 한 가운데 있는 신부가 입고 있는 옷 색깔이 노란색이다. 노란색 옷은 황금의 심볼로서 교황청의 교황의 심볼이다. 세 번째, 올리브남무이다. 이 나무는 교회의 승리의 심볼이다. 이 세가지 이유를 들어 교수는 무서운 위기에 처해가고 있는 교황청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한다.그리고 방주는 바로 ‘새로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종교개혁은 유럽의 어느 곳에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15세기 말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의 짧기는 하나 일종의 반르네상스적인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있었고, 후에 각처에서 종교개혁이 발생하였다. ) 미켈란젤로는 이 사보나롤라에 대한 서신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사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이렇게 위험천만한 사상을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통해서 나타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카톨릭교회의 중심지에 그려진 것이기 때문에 카톨릭교회의 주장이 표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관점으로 정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에 정의가 있는 것인지 확실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는 교수의 해석을 통하여, 당위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즉,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통해서 실로 거대한 천정화에 대한 경외와 찬탄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그 시대상이 작가를 통해 작품에 어떻게 녹아 있는가에 대한 더 큰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에는 중세의 카톨릭적 세계관에서 르네상스의 세계관으로 이행하는 시대에 살았던 작가의 의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2)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대하여교수가 이 장의 첫 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듯이, 모나리자에 숨겨 놓은 수수께끼는 한 마디로 말하면 ‘신 없는 우주관’이다.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나리자에서도 중세 시대의 관념을 벗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한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중세의 종교적 제약은 과학의 발달을 억제하였고, 르네상스기에는 고대의 권위가 또한 새로운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면서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탐구 정신은 근대 과학의 초석을 놓게 되었다. ) 후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관한 이론도 출판(1543)이 되는데, 우리는 르네상스기에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눈이 트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그야말로 종전의 세계관을 뒤집는 충격적인 이론이었기 때문이다.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도 카톨릭 세계관을 벗어난 과학적 세계관이 스며 있다는 것이 교수의 해석이다. 교수는 레오나르도가 생명과 여성, 그리고 대지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생명의 이전에 대한 그림을 명확히 그렸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책 85페이지의 그림을 통해서 설명된다. 이 해석은 하나님, 성령, 순결이라는 것을 믿고 있지 믿고 있지 않으면 이단으로 목이 날아가는 시대의 생각으로는 어려운 것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냉정히 생명과 생명을 연결하는 것은 생식이며 또한 테반이라고 주석을 붙이게 된다. ) 또한 대지와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안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미소는 모나리자의 미소와 비슷하다.
    독후감/창작| 2006.09.23| 4페이지| 1,0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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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의 정의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정의플라톤의 생애기원전 428/7년에 태어나서 348/7년 사망.명문가 출신의 자녀이며, 후에 아카데미아라는 학원을 세우고 원장이 된다.플라톤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는 전쟁과 정치적 격변의 상황.정치에 참여하려 하였으나,404년에 기존 정치 체제에 변혁을 일으킨 30인 과두 정치에 기대를 하여 정치에 참여 하려 하였으나, 이전 보타 못한 정치를 보여주고, 8, 9개월만에 무너짐.새 정권의 정치 보복을 목격하였으나, 과두체제보다 공정한 정치를 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정치에 마음이 있었으나,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처형하는 것을 보고 정치가 아닌 철학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인류사상에 큰 족적을 남기는 철학자가 됨.이후에도 정치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번번히 실패를 하게 됨.Book '국가'에 대한 소개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가 알려진 것이 아니라 그 제자 플라톤에 의해서 소크라테스가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남긴 저술이 한권도 없기 때문이다.소크라테스는 산파술, 논박 등의 대화법으로 자신의 철학 세계를 깨닫고 사람들을 깨우치고는 했는데, 플라톤 역시 이에 영향으로 그의 저술 대부분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은 대화편으로 불린다.오늘은 플라톤의 정의, 올바름, 훌륭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는데, 그의 많은 대화편 중의 하나인 국가에서의 논의 되고 있는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플라톤의 정의는 이미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개념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지 않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을 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가정을 하게 된다. 여기 철학과 고학번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개념들을 접하게 될 것이고, 미흡하지만 본인의 발표를 통해서 조금은 더 플라톤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우리들은 지금까지 플라톤에 대해서 국가의 세가지 부분과 개인의 세가지 부분에 대해서 서로 위 될 것이다.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항을 미리 숙지하자면, ‘성향에 따라’ 라는 구절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또한 정의와 올바름은 거의 같은 의미로 듣게 되어도 무방할 것이다.국가 (제 1권)소크라테스는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던 중 폴레마르코스의 권유를 받아서 그의 아버지인 케팔로스의 집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이들은 올바름,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케팔로스의 정의케팔로스는 유복한 노인으로 ‘정직함과 남한테서 받는(맡은) 것을 갚는 것’을 정의라고 정의한다.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 부는 쓸모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정상인 친구가 무기를 맡겨 놓았다가 미친 상태로 왔을 때 돌려주는 것은 올바른 것이 될 수 없다고 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과 받은 것을 갚는 것이 올바름은 아니다라고 말한다.폴레마르코스의 정의케팔로스의 아들인 폴레마르코스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 것이 올바름'이라는 의견을 내 놓는다.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긴 논의를 걸쳐서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모든 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여기서는 간단하게 그 요지를 정리 해 보고자 한다.폴레마르코스가 이야기 하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다는 뜻은 친구에게는 이로운 것을 갚고 적에게는 해로운 것을 갚는다는 뜻이다.일단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사람들은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끌어 낸다.올바른 사람은 올바른 사람에게는 이롭게 하되 올바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해를 주는 것이냐고 묻자 폴레마르코스는 그렇다고 대답한다.그럼 올바른 사람을 올바르지 않은 사람으로 판단하거나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올바른 사람으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를 비판하자,실제로 올바른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판단되는 사람에게 이롭게 한다는 것으로 말을 바꾸고,그럼 올바른 사람이 하는 일이 해를 입힐 수 있느냐는 말을 하게 된다.즉, 말이 해를 입으면 말이 더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묻는데, 당연히 말은 나빠지게 된다. 이것은 말이 말는 것이 있다. 환자는 병이 나을 것이고, 선원은 원활한 항해를 통해서 목숨을 유지 할 수 있다.그러므로 의술이나 항해술은 저들 각각에 편익이 되는 것을 위해서 제공된다.의술은 순수한 의미에서 그것이 온전한 것인 한 그것은 틀림없이 환자들의 편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다른 목적을 위해서는 아니다. 의술은 의술에 편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에 편익이 되는 것이다.의술과 같은 기술들은 그 기술 자체로는 다른 것들의 편익을 위해서 존재한다. 키잡이의 기술인 항해술, 선원들을 통솔하는 것은 선장에게 미리 편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통솔(다스림)을 받는 쪽의 편익을 먼저 생각한다.그리고 그 기술들을 부리는 자들은 그 자체로의 의미에서만 그 기술자들로 불릴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의술로 돈을 번다고 해서 장사꾼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의사이다. 마찬가지로 다스림의 기술을 가진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의 편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통솔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다.이에 트라시마코스는 양을 치는 사람은 양에 이익이 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양이 살찐 것을 팔아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는 황급히 자리를 뜰려고 하지만,이것은 양을 치는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양치기라는 것에 위배 되는 것이다.모든 다스림은 그것이 다스림인 한은, 다름 아닌 다스림을 받는 쪽 그리고 돌봄을 받는 쪽을 위한 최선의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통치자들은 자신 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를 받는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통치를 하는 것이다.전문가들이 보수를 받아서 이득을 보는 것은 보수 획득술을 추가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되는 것이다.명예에 대한 사랑과 금전에 대한 사랑은 창피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훌륭한 사람들은 돈, 명예 때문에 통치하려는 일이 없다. 통치하는 사람에게는 강제나 벌이 따른다.트라시마코스의 새로운 주장이에 트라시마코스는 승복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 정의로운 것보다 자신에게 이롭다’는 주장을 새로이 펼친다.그의 말에 따르면 예를 들어기능이다. 또한 사는 것이야 말로 혼의 기능이다. 우리는 심사숙고, 혹은 그외의 혼의 기능들을 통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눈이 심사숙고 하는 기능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혼의 훌륭함의 상태가 있을 것이다. 훌륭한 상태의 혼은 기능을 잘 해 낼 것이다.'올바름은 혼의 훌륭한 상태라는 것에 동의 했으므로, 훌륭한 상태의 혼을 지닌 자는 즉 올바름을 지닌 자는 혼의 기능은 사는 것에 있어서 잘 살 것이므로 행복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는 불행할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여기서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그렇다면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진정으로 이 시간에 가져야 할 이야기들을 하게 될 것이다.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올바름에 대한 요구(제2권)글라우콘은 '정의로운자가 불의한 자보다 낫다'라는 명제를 붙들고 논의에 활력을 넣으며 정의에 대해 세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질문을 한다.1. 그 결과를 바라서가 아니라 오직 그 자체 때문에 반기며 갖고자 하는 것인가.2.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생기는 걸과물 때문에도 좋아하는 것인가.3. 그것들 자체 때문이 아니라 보수라든가 그 밖의 것들에서 생기는 결과들 때문인가.소크라테스는 당연히 그 자체와 그것에 따르는 결과 때문에 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글라우콘은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좋은 것인데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이 당할 상황과 또한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저지른다면 자신이 해를 입게 되는 상황 때문에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서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묻는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투쟁의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홉스의 사회계약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또한 완전하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일을 성공해서 예를 들어서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끼면 보이지 않는 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에 대 것이 나은지 물어보고, 아무래도 4명분의 몫을 농부가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공동생활체를 국가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또한 인간들은 스스로 자족하기 힘이 드므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분업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즉, 분업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여기서 전체적으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효율성이며, 또한 분업의 개념이다.이것은 바로 ‘성향(physis)에 맞는 일이라는 뜻’으로 플라톤의 정의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한 사람이 한 가지 기술에 종사할 때 그 일을 가장 잘 해낸다고 말한다.이것은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써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일단 이것을 숙지하고 만들던 국가를 마저 만들어 보자.농부는 스스로 쟁기를 만들지 않는다. 쟁기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제화공의 도구들도 필요하고, 집을 짓는 도구들도 필요하다. 계속해서 필요한 것은 늘어가고, 이 모든 것이 자족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에 나라를 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가령 산에다가 나라를 세우면 물을 구하기 힘들 것이다.그러면 다른 나라에서 필요한 것을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한 것을 그냥 주지는 않으므로 자국에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한다. 무역상이 생긴다.자국 내에서의 생산품들을 나누려면 협동관계가 필요한데 이미 나라를 수립했다. 시장과 화폐가 생긴다. 장인의 물건을 팔 소매상이 생긴다.지적인 기능은 없지만 힘을 잘 쓰는 임금 노동자들이 생긴다.이런 식으로 나라가 생겨났는데, 대체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호사스런 나라와 건강한 나라여기까지의 국가는 문제가 없지만, 빵과 포도주를 즐기고 좋은 요리에 잔칫상, 또한 침상에 기대어 식탁에 차린 식사를 하며 호사스런 음식과 후식을 먹을 것이다.즉, 위의 생활 방식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기녀, 생과자, 항료, 향유 등등 온갖 것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점점
    인문/어학| 2006.09.23| 10페이지| 1,000원| 조회(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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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쿠타가와 이상, 봉별기, 종생기, 날개, 라쇼몽(라쇼몬), 코
    -서론-이상의 문학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혹은 당대에 다가왔던 특성을 몇 가지 들자면 새로움, 기이함, 독특함 등이 아닐까. 텍스트의 낯섦과 난해함만큼이나 그 해석은 천차만별이었던 게 사실이고 이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어떤 자는 우리 문단의 주지적 경향의 결실이라는 표현을 들며 극찬을 하는 것에 반해 다른 한편에선 현실적 분열상의 패배적 반영을 했을 뿐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등 매우 다양하다. 과연 어떠한 평가가 올바른 것이냐는 물음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려 하기보다는 이상문학상의 권위가 단적으로 말해주듯 그의 문학엔 좀 더 깊게 파고들어 연구할만한 동기들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학문을 하는 이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우리나라에 이상이 있다면 일본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있다. 두 작가가 완전히 같은 스타일로 문학을 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처했던 개인적 상황, 시대적 배경,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요 코드 등을 살펴보면 적잖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이상의 문학이 아쿠타가와의 문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한국문학 연구자들에게 의해서 자주 지적되어 왔던 주요 흐름이었다. 진의 여부를 명백히 가려낼 수 없겠지만 당시 이상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 문종혁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화가 지망생이었던 이상이 아쿠타가와의 문학에 심취한 나머지 문학 지망으로 전환했다는 사실, 양자로 자랐다고 하는 두 작가의 성장 배경상의 공통점, 동기는 다르지만 자살 충동에의 유사점, 이상의 작품 ‘종생기’에서 언급되는 36세로 자살한 천재가 아쿠타가와라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두 작가의 공통적 요소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물론 이러한 작품 외적인 요소들만으로 이상과 아쿠타가와의 연관성을 규정하고 그 동기로 말미암아 두 작가를 뭉뚱그려 연구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임을 주지한다. 보다 심층적 논의의 대상인 작품 내적인 요소에 집중하고 두 작가의 작품들에 실제적으로 나타나 그리고 시대의 피폐함의 상징인 라쇼몬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백성이 왜 그곳에 와 있게 되었는지는 후에 서술되어 있다. 일자리를 잃고 갈 곳이 없이 떠밀려서 라쇼몬으로 오게 되었는데 비까지 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를 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직업을 잃었다는 이유로 그는 살 방도를 궁리하게 된다.이러한 백성이 만나게 되는 상황은 지금까지의 논의대로 작가가 인식한 시대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시대상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개인적인 자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곧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본 연구에서 다루고 싶은 아쿠타가와라는 작가와 작품에 있어서 핵심 논점이라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2. 모럴 부재작품 ‘라쇼몬’과 ‘코’의 차이는 라쇼몬은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상징을 사용하여 한계상황을 제시하는 반면에 ‘코’에서는 좀더 문학적인 상징성을 기반으로 한계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의 문학적 상징성에 대해서는 이 후에 코의 작품을 다루는 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라쇼몬에서는 상황이 아주 구체적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재술하지만 위의 논의들을 통해서 진정성을 획득한 상황이다. 이야기의 출발은 실직이다. 실직을 한 백성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모럴 부재로까지 이어지는지가 이번 장의 핵심이다.실직은 육체의 안전을 도모할 의식주의 위협을 가져온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살기 위해서는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라쇼몬에 개처럼 버려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않는다면이라고 백성은 고민하고 있고, 필자가 여기서 도둑놈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해답을 내려주며, 백성은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풀이한다. 여기서 우리는 백성의 모럴에 대한 핵심을 알 수 있다. 백성에게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정의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즉, 도적질이라도 하지 않으면 시체로 라쇼몬에 버려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인 한계상황에서도 그는 도적질에 대해서 충분히 어떤 내면적인 기준에 의해을 보지 않고 오직 코를보았다.이처럼 보편성이 사라진 사회적 한계 상황 속에서 개성, 주체성 내지는 정체성이 상실된 모럴 부재에 살고 있는 개인이 철저히 남의 시선에 집착하며 심리적 갈등을 벌이는 모습은 ‘라쇼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둑질을 해선 안 된다고 하는 정의를 지녔던 하인이 노인을 발견하고, 그가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아 돈을 벌려는 일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 하에 자신을 변호하자 하인은 기존의 정의를 내버린 채 새 모럴을 획득한다. 즉, 노인이 자신과 동류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새로 획득한 모럴은 정당한 것으로 순식간에 탈바꿈 하는 것이다. ‘코’의 나이구 역시 긴 코가 짧아지기를 그토록 바랐었지만 종국에 이르러 다시 길어진 코에 만족하는 아이러니적인 모습에서 한계 상황에 직면한 개인의 정체성이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이며 주체적이기보다는 동류의 확인 혹은 타인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등 철저히 비주체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모럴 부재의 양상으로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3. 자의식 과잉 -> 자기 분열 -> 자아 상실나이구의 긴 코는 그의 비대한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의 신분을 말하자면 고승의 열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선택 받을 정도의 존재이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코에 의하여 상처 받고 있는 자존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평범한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코를 짧게 하는 방법이란 것이 극히 간단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자존심이 가해 받기 시작한다. 병자에게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스스로의 병이 중대하다는 것을 바라는 일종의 도착된 영웅심리가 있고 그 경우 치유의 방법이나 과정이 간단해서는 오히려 불만을 사게 된다. 나이구의 경우 그것이 ‘극히 간단’하고 더구나 완전히 물리적인 치료법이라는 점에서 과잉된 자존심과 자의식은 분열과 상실에 이른다.그 방법이란, 단지 뜨거운 물로 코를 삶아서 그 코를 남에게 밟게 하는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중략)코는 열탕에 익혀져서 벼룩이 물어뜯은 것처럼 근질거린다.상좌는 법사가 사각 쟁반에 뚫은 구멍에서 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 볼만하다고 하겠다.*「날개」시공간을 통해 바라본 격변기에 대한 이상의 양가적 시선지금까지 위의 두 해석을 통해 「날개」를 살펴보았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날개’의 화자는 ‘밤’의 시간대에서 ‘낮’의 시간대로 옮겨 가는 동시에, 누워있기만 하는 식물성에서 동물성으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사회 부적응에서 화폐를 사용하는 사회 적응으로 그리고 폐쇄된 공간에서 넓은 바깥으로 나아가 마지막에는 미쓰꼬시 옥상에서 날개짓을 해보며 희망을 찾는 일종의 자아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식민지시대 급격한 문명의 변화와 함께 식민지현실의 혼란에 침체되어있던 자아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풀이될 수도 있겠으나 단지 이러한 해석만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1930년대라는 시대상황이 던져주는 일종의 ‘의무’에 따르는 즉, 일종의 민족주의적 담론에 기댄 것이라는 의문을 지우기 힘들다. ‘부정적’ 상태에 놓인 자아가 그것을 극복해 후에는 희망과 행동력을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작품 전반에 걸친 화자의 고민과 혼란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작품을 부정적 상황에서 긍적적 상황으로의 변화라는 낙관적 희망적 담론으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의 양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1. 격변기를 바라보는 이상의 양가적 시선이광수는 무엇보다도 일본을 통해 근대적 질서를 보았고, 그 질서를 내면화하는 길만이 조선의 길이라고 여겼다. 모방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당시 모방할 수 밖에 없었던 타자는 근대문명으로서의 일본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이런 일방적 모방에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이와 같은 의문은 근대성에 대한 양가적) 태도를 불러왔다. 이러한 양가적 태도는 기존의 전통적 삶 위에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급격한 속도로 받아들이는 당시의 사람들로 하여금 주체의 위치문제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이 균열은 또한 주체의 내면에 분열을 가져왔다. 이런 변화의 근본 원인은 식민지 상황의 이중적 의 괴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말부분으로서 앞 부분의 이야기 진행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간단히 말해「날개」는 일본에 의한 타의적 근대화를 경험하는 피식민 지식인의 양가적 태도를 그려낸 소설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상의 동경행이다. 이상은 근대성의 변두리인 식민지의 수도 경성을 탈출하여 근대성의 중심지인 제국의 수도 동경으로 향한다. 하지만 결국 동경 또한 이상이 그토록 혐오했던 서구의 모방에 불과했고, 경성은 동경의 혼란스러운 모방에 불과했다. 이상은 살기 위해서 동경에 왔지만, 오히려 죽음의 충동을 느낀다) 주변에 이식된 시대의 분열은 그 중심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는 점을 이상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을 벗어나 중심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혼란에 좌절하는 이상의 모습은 그의 주체분열과 의식혼란이 식민지라는 시대적 암울에 기초한 저항적 행위에만 국한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정리하는 말다음과 같이 소설 속에 나타난 시간성, 공간성을 중심으로「날개」를 분석해 보았다. 밤과 낮이 혼재되어 구분이 가지 않는 혼란의 공간 속에 살고 있는 ‘나’의 모습처럼 이상의 소설은 소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끊임없는 자기분열을 겪고 있다. 李箱, 개인 내적으로는 폐결핵과 각혈에 시달리는 몸의 쇠락과 함께 공상이나 망상 외에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힘든 식민지 시대 지식인으로서의 한계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고, 외적으로는 폭압정치가 극에 다다른 일본의 식민지정책과 그에 따른 급격한 타율적 사회변화를 겪어야 했던 사회의 혼란이 그의 삶의 상당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방황하고 자신에 대해 갖은 몽상을 하며 이곳저곳으로 그 생각과 행동의 범위를 넓히는 주인공의 모습은「날개」본론의 첫부분에 전술되었던 것처럼 ‘폐쇄적 자아에서 개방적인 자아로’ 혹은 ‘식물성 수동성에 갇혀있던 자아가 동물성과 능동성을 가지는 저항적 자아’로 변모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었으나, 동시에 「날개」를 구성하는 재범할
    인문/어학| 2006.09.23| 24페이지| 2,500원| 조회(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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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매체학] 디지털 영상 매체의 정의와 효과 평가A+최고예요
    1.디지털 매체의 등장은 기존의 아날로그 매체의 한계를 보완하고 혹은 더 보완을 넘어서 더 넓은 지각의 지평을 열었다. 본 글은 디지털 매체가 아날로그 매체와 어떤 점에서 다르고 그 차이점으로 인해서 기존의 매체들이 우리에게 가져올 수 없었던 지각을 가져오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우선 기존 아날로그 매체와 디지털 매체 사이의 큰 차이점을 몇 가지 집어보고 후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겠다.2.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이론상으로 아날로그는 지시체적 의미를 갖고 현실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는 지시체적 의미가 미약하며 그것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현실의 이미지에 대한 의존도가 약하다는 뜻이다.아날로그 이미지는 선형적 이미지이다. 아날로그 이미지는 실재하는 것과의 대응을 설명할 수가 있다. 누군가 나무를 사진으로 찍었다면 그 사진은 실재하는 나무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재현의 질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찍혀진 필름 안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상은 결국 나무와의 연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네거티브 필름이든 포지티브 필름이든 그것의 처리 과정을 아무리 변환 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유동적이기 보다는 고정적인 이미지의 형태 밖에 산출해 내지 못한다. 일정한 재현의 질서를 통해서 아날로그 매체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날로그 사진이라는 것은 재현의 질서에 얽매어 있다.하지만 디지털 이미지 비선형적 이미지이다. 디지털 이미지는 꼭 실재하는 사물과의 연관성을 맺을 필요가 없다. 디지털 이미지는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기호로써의 작용이다. 디지털 이미지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위에서처럼 우리가 디지털 카메라로 나무를 찍는다면, 그 찍혀진 디지털 이미지는 물론 지시체적 의미를 갖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론상으로 살펴보면 그 이미지라는 것은 단순히 나무가 구성하고 있는 의미를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언어로 풀어 놓은 픽이미지가 실재와 연관을 가졌다고 해도 기술적으로는 그 이미지에 선행하는 어떤 실재와도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디지털 이미지에 선행하는 것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일 뿐이다.다른 하나는 없는 대상을 모델링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된 디지털 이미지로써 당위적으로 지시체적 의미가 없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창조된 이미지는 단순히 프로그래밍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이미지의 원천은 실재하지 않는다.위의 두 가지 방법 중 어떻게 얻은 이미지이든 간에 그것들은 실재와 이미지, 즉 원본과 그 흔적이라는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무한히 반복적으로 같은 질의 이미지들을 생성해 내면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또한 이미지의 조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함으로써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고 있다.3.디지털 이미지는 이미 지시적인 의미와 결별하여 자가발전 하고 있는 언어의 모습과도 비교할 수 있다.)언어는 주술적인 의미로든 아니면 흥얼거림으로 시작되었든지 간에, 초기 언어는 음성과 실재하는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언어의 발전이라는 것은 점점 더 그 초기적인 의미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언어학자들은 말한다.잠깐 한자의 발전 단계를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한자는 처음에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 달, 사람 등의 모양을 따온 단순한 상형 문자의 형태로 시작하여 점점 추상적인 개념을 점, 선을 사용해 만든 지사 문자 그리고 뜻과 뜻을 결합하여 점점 더 추상적으로 되는 회의 문자 한 쪽에서는 뜻과 한 쪽에서는 상관없는 글자의 소리를 따오는 형성자 등으로 점점 더 원래의 명료한 지시적 의미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발전 한다. 특히 가차는 전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과 연관을 맺게 됨으로써 그 발전의 방향이 모호함이라는 언어학자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가 있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만들어지는 언어들은 이미 원본이라는 대상을 벗어나서 자신들만의 법칙과 의미들을 생산해나가기에 이른다. 언어들은 자가발전 하여 실재하지 들은 언어를 통해 그러한 것들을 상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언어의 발전은 사람들의 사유의 발전을 이끌어 나갔다. 이것은 언어가 대상과의 결별을 꽤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사유를 인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디지털 이미지도 언어의 발전에 비유하여 살펴볼 수 있다. 기존의 아날로그는 실재하는 원본에 의존적인데 반해 디지털 이미지는 그 방식에 있어서 언어가 자가 생식하여 새로운 창조를 하는 것과 닮아 있다. 언어가 새로운 규칙과 의미를 만들 듯이, 디지털 역시 새로운 규칙과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위에서 본 나무를 디지털 이미지화 된 것은 실재에 대한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처리 과정에 의해서 우리에게 나타는 가시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의 초기 단계인 실재에 대한 반영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으며, 또한 아날로그 이미지와도 연관을 갖는다. 하지만 이미 디지털 이미지는 그것을 자신만의 새로운 규칙, 즉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프로그램에 나무가 실재하는 규칙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실재에 대한 존재 방식을 프로그래밍 한 것이다. 이전 아날로그는 거기에까지가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는 이제 그 규칙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실재하는 것은 물론 실재하지 않는 것들까지도 표현이 가능하며 그것은 바로 언어의 자가발전처럼 지금까지 없었던 추상적이지만 사유를 유발하는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게 될 것이다.4.위의 논의를 조금 더 예시적으로 살펴보겠다. 과연 우리가 상정할 수 없었던 세계로 언어가 인도했듯이 디지털도 그렇게 될 것인가에 고찰을 해보다.언어가 처음에는 원본과의 관계에서 점점 멀어져가듯이 디지털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증상들을 살펴 볼 수 있을까.아날로그의 재현의 이미지들, 필름 카메라, 아날로그 영화들의 이미지는 실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한계를 갖게 된다. 공간적으로 그들은 세계에서 어떤 한 부분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야 한다. 또한 여러 각도에서 찍더라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물론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선택함으로써 그것이 존재하는 범위를 프레임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크기가 변하고 닫히고 열리기도 하는 유동적인 것이면서 그 원천은 무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선 그 외에도 화면의 크기가 프레임의 구실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세계는 무한한 세계임을 인식해야 한다.) 현실적인 한계를 벗어나서 시점의 무한 다중화가 가능하다. 우리는 간단한 마우스 조작으로 이미지를 아래위로 좌우로 돌리는 프로그램을 접해 본 경험이 있다. 이것은 이전의 아날로그에서 가지고 있던 시점의 한계를 온전히 극복한 사례이다. 이전에는 카메라가 우리에게 지정해 준 시점에서만 그 이미지를 받아 들였지만 이제 우리는 모든 방향에서 이미지를 볼 수가 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을 시점이 육체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언어가 실재의 지시적인 의미들을 벗어나서 사유를 자유롭게 풀어 주듯이, 디지털 또한 시점의 한계를 벗어나서 새로운 시점들은 선사하는 것이다.또한 육체적으로 촬영이 불가능 한 것들이 tracking shot이라던가 bird's-eye view같은 것들이 장비의 힘을 통해서 가능했듯이 이전에 표현 불가능했던 것들이 디지털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물체의 이동을 보여 줄 수 있고, 이렇게 단순한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생각지도 못할 다양성과 시도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본인 디지털 이미지는 고전적인 이미지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해온 원근법적인 시각이 큰 의미와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각이 디지털 매체로부터 탄생하여 호소력을 가지게 것이다.)5이렇게 디지털은 기존의 아날로그와 차이점을 가지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잠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 매체의 등장이 과연 현해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나이다. 일단 디지털 매체의 포용성을 살펴야겠다.디지털 이미지는 이론상으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날로그와는 다르게 실재와 결별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느낄 때는 오히려 더 실재와 친밀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하는 과정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디지털 카메라의 LCD모니터에 나타난 인스턴트 이미지를 보고 바로 바로 삭제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른다. 이것은 필름 카메라보다, 이미지의 조작이 용이하고 그런 면에서 실재와 더 친화적이다.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사운드, 동영상 등도 모두 디지털화 하는 과정이 편이하다. 이것은 디지털의 포용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단 디지털화 된 자료들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하면 바로 조작이 가능해진다. 이런 면에서 살펴보면 사실 디지털 매체는 이전의 아날로그의 재현을 도와주는 측면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기존의 매체를 다 먹어치워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포식력을 통해서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기술들과 융합하여 더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도 필름을 자르고 붙이는 등의 힘든 수작업이 아닌 단지 키보드의 자판과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해 진 것이다.이렇게 디지털 매체가 이전의 매체들을 흡수하고 그 조작이 쉬워짐으로 인해서 interactivity가 대두된다. 무한한 시점과 또 공간, 시간으로서의 가능체인 디지털 매체는 그 조작의 용이성을 내세워 많은 사람들에게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제 아날로그 적인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벗어나 선택한다는 입장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디지털 매체는 초기의 영사기처럼 매체 자체로서도 매력을 발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그 상호작용성에 의미가 더 큰 상태이다. 물론 디지털 매체는 투명성도 높기 때문에 그런 매체 자체로서의 관심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매체는 지금껏 직접성, 투명성을 목표로 자
    인문/어학| 2004.12.18| 5페이지| 1,000원| 조회(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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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학, 신문방송학] 독립신문의 의의 평가A+최고예요
    1.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수업 시간에 코린트의 발행 배경에 대해서 공부했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지리적, 사회풍토적인 면 등 여러 면에서 고찰을 해 보았고, 그럼으로써 역사적인 한 사건을 단지 사건으로써의 해석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시대적인 의미와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이러한 과정은 언론 즉, 인간의 본질인 의사소통의 욕구와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의사소통의 역사이다. 그 길고도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성은 마치 빛의 속도와도 같이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로 그 발전 속도의 더딤을 생각해 보면 그 지루함에 경이롭다. 첫 인류는 의사소통 체계가 있었을까. 아마도 있었다고 보아야 정답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가 살아남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은 역시 의사소통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립에 관여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며,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그 길고 긴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소통과정과, 소통을 위한 도구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더 많은 양의 정보가 유통되며, 그에 따라 정보에 대한 욕구도 증가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될 것이다. 더 짧은 기간에 우리는 어쩌면 획기적이고 새로운 소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의사소통의 발전과 변화 과정의 중요한 의미가 되었던 사건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어떤 요구들이 있었고, 어떤 거름이 있었을까. 또한 이러한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2. 독립신문의 의의독립신문은 우리나라 근대적 민간신문의 효시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전에 한성순보와 주보가 있었지만, 이것은 국가-혹은 일본-의 권력 안에서 이루어진 신문으로써 민간신문이 아니었으며, 근대적 의미로써의 대중적 신문도 아니었다. 이 점 독립신문이 한국언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하겠다.이것은 독립신문현대에서 임시방편으로 공중을 통해서 그 질을 높이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근대의 국민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그럼 과연 이런 대중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존재했는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그런 대중은 어떻게 등장했으며, 그런 요소 이외에도 어떻게 독립신문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천천히 살펴보자.3. 독립신문 성립의 배경? 정치적 혼란독립신문의 성립 배경으로 정치적인 혼란을 제시할 수 있다. 코린트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배타성이 적었기 때문에 성립했다. 하지만 독립신문이 탄생할 무렵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코린트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궁금증을 유발한 것이 유인이 되었듯이, 한국의 정치적인 혼란이 독립신문을 탄생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1800년대에는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역사적 지식으로 알고 있듯이, 조선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선진문명에게 간섭과 피해를 입고 있었으며, 국내적으로 혼란스럽고, 더불어 국제 정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개화파와 온건파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러던 중, 위로부터의 급진적 개혁인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실패했으며,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의 커다란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또한 독립신문이 1898년 4월 21일자에서 지적한 것에 의하면 1896년 7월부터 1898년 4월까지 27개월간의 간부의 대신의 교체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 내용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이것을 보면 농상공부와 내부를 제외하고는 대신하나가 평균 4개월도 한 부서에 머무르지 않아, 그 부서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기는 커녕, 그 부서 속일을 알 여가도 없었는지라. 그러고 본즉, 대신은 여럿이 났으나 실상 부서 속 장정과 규칙은 배울 여가도 없었으니, 실제로는 27개월 동안 대신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당시 정치적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짐작케 한다.위의 모든 사실은 당시의 혼란과 근대한국에 있어서의 개화운동이 있었다.여기서 전쟁에 대한 관심이 코린트를 탄생시켰듯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어 민중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을 것이고 그러한 요구에 의하여 독립신문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사회적 시기의 적절성(행운)독립신문은 사회적인 시기 또한 잘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혼란과도 결부될 수 있는 일이나, 어쩌면 천운이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좀 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정치적 혼란은 독립신문의 탄생을 촉발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혼란은 다른 면에서도 독립신문의 탄생을 잉태하였다. 즉, 독립신문이 발행되려던 무렵에 반대 세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당시에는 갑신정변 등을 통하여 일본 세력이 약해져 있었고, 그리하여 을미사변을 일으키는 만행을 저지른 일본은, 아관파천이라는 사건을 맞이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독립신문의 탄생은 일본의 집요한 간섭을 벗어 날 수 있었고, 또한 황제의 세력도 러시아로 넘어가 미비했으므로 독립신문의 발간에 대한 견제세력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배경은 독립신문의 탄생을 재촉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로 시대적인 상황으로 보아 독립신문이 탄생하지 못했어도 그 시기 뒤에 제2,3의 독립신문과 의미를 같이하는 신문이 탄생했으리라 짐작한다.? 서재필의 존재좀 전에 말했듯이 아마도 독립신문은 꼭 행운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탄생했을 듯싶다. 하지만 일단 존재하는 사건인 독립신문의 탄생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언론, 의사소통의 역사로 보아 독립신문의 탄생이 자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도 말이다. 독립신문이 출현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서재필이라는 인물의 존재이다. 영웅과 시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끊임없이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여기서는 그런 논쟁의 우위를 가리는 것은 뒤로 하고, 서재필이 시대적 산물이며, 영웅적인 인물로 간주하겠다. 그는 18살의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한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갑신정변에 참여하였고, 실패 뒤로 망명하여 미국에서 었던 것도 바로 서재필이라는 인물이 미국인으로써의 국적을 갖고 있으면, 그의 생각에 따라 나라에서 돈을 빌려서 신문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렸다’의 의미이다. 나라의 보조금이 아니라 그가 빌려서 신문사를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갚았다는 것에서 증명이 가능하다.독립신문사 창설비 지원은 실제적으로는 조선 정부가 제이슨(서재필)에게 빌려준 것이다. 그것은 제이슨이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때, 조선 정부와 그 사이에 체결되었던 10년 간의 중추원고문 고빙계약에 의거한 정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대중의 성장독립신문의 성립에 관한한 또 궁금한 것은 과연 대중이 존재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서양의 역사를 보면,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거나, 민중이 군대 조직의 일원이 되어 나라를 보호하는 요소가 될 때 보통 민중의 힘과 발언권이 강해지고는 한다. 코린트의 경우도 살펴보면, 네델란드는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로써 경제적 부를 축척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발언권을 가진 민중이 등장하였고, 그 이전의 종교적인 것들을 넘어서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것이다. 또한 그런 세속적인 것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교육들은 이전 보다 더 정보를 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람들의 지적 수준도 향상시켰으리라 본다.한국의 경우 네덜란드나 다른 서양의 경우처럼 서로 비슷한 나라들이나, 전쟁 등을 거쳐서 스스로 성숙하는 과정이 아니라, 침략에 의하여 경제적 구조가 바뀌게 되어 부정적인 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사고방식들에서 벗어나 세속적, 즉, 법이나 경제 등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 대중의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는 것을 보아도 확인이 가능하다.이것을 좀 더 추측해보자면, 역사의 흐름으로써의 개화풍조를 누구라도 억누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중국이나 북한을 보아도 원래의 체계를 계속 유지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당시의 한국도 개화풍조의 물결을 고적인 면, 그리고 역사적으로 굴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경제가 커졌다는 점에서 기인했으며, 그로 인한 소위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층이 성장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점은 독립신문의 탄생에 일조를 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독립신문이 갑신정변 등의 실패를 거울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는 것은 꿈꾸고 있었다는 것에도 부응하는 결과이다. 독립신문은 이런 배경을 토대로 점차적으로 대중의 층을 넓힐 뿐만 아니라, 대중의 수준을 향상시킴으로 인해서 나라의 발전과 독립을 도모하였다.이것은 1898년 3월 6일자 사설을 보면서 이야기 해보자. 그 날 신문의 사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식과 학문이 늘어 참말로 나라에 효험 있는 백성들이 되어가며, 외교를 편벽되지 않게 하여 세계 각국이 대한 정부를 다만 대접할 뿐만 아니라 우러러보도록 하여야 할 터이라. 만일 이 목적을 잊어버리고 외국이 상관하지 아니한다고 구습을 시행하는 데 자주독립권을 쓰고, 나라에 유조한 일을 하는 데는 자주독립권을 쓰지 아니할 것 같으면, 첫째는 남에게 욕과 부끄러움을 받는 것은 말하지 말고라도 외국들이 그 자주독립권을 대한이 오래 가지고 있게 아니 할지라.’) 이것은 당시의 역사는 패배가 아직 확정된 역사가 아니라 진보의 희망이 남아 있는 역사이며 진행 중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대중의 질적 향상을 통해서 이루어 내려고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또한 대중이 존재했다는 것은 독립신문의 발행부수를 통계적으로 계산해보아도 알 수 있다. 독립신문은 처음에는 매일300부씩밖에 인쇄하지 않았지만 후에는 500부로 되고 결국에는 3천부까지 발행했다. 더구나 당시의 국민들 대다수가 가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부가 200명의 사람들이 돌려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시대에 운송의 방편이 없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신문을 돌리는 것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부수가 점차로 발행되었다는 것은 점차로 대중의 존재가 커져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좀 더.
    인문/어학| 2004.12.18| 7페이지| 1,000원| 조회(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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