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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씨티그룹, 그 열정과 도전
    < 씨티그룹 그 열정과 도전 >가. 샌디 웨일은 누구인가사람들은 샌디 웨일을 딜메이커라고 부른다. 세계 최강의 금융서비스 회사 씨티그룹의 웨일 회장은 거래를 재규정하고 실제로 그것을 구현해왔다. 그는 어떤 다른 경영자보다도 많은 기업을 탄생시켰으며 그보다 더 많은 기업의 죽음을 주재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실수와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그는 대다수 사람들이 꿈꿀 수 없는 승리를 일구어 냈다. 가문의 연줄과 학위, 고전적으로 잘생긴 얼굴이 통하는 월스트리트에서 웨일은 그런 장점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정직하고 솔직한 접근방식이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한다.나. 내용 요약1.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는 무한하다1)“지금의 성취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니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수단이다”이라고 말한 샌디 웨일은 합병을 할 때 그 합병이 다시 한 번 자신을 재창조하는 기회로 생각한다.2) 샌디 웨일의 인생 곡선에서는 승리와 좌절이 교차하지만 좌절을 겪을수록 더 강해져 가파르게 성장해 나갔다.3) 샌디 웨일의 아버지는 옷 만들기 사업을 했는데 웨일이 아버지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처럼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4) 웨일은 PMA군사학교에 다녔는데 성취에 대해 확실한 보상을 하는 PMA의 방식을 그의 비즈니스에 적용한다.5) 샌디 웨일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린 일은 샌디에게 항상 충성심에 가치를 둬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는 경영자가 된 후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었다.6) 샌디 웨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결정은 결혼이었는데 그는 “나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내 아내와 결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2.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 모아라1) 웨일은 늘 자신의 주변을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한 최고의 인재로 둘러싸도록 하였다.2) 월스트리트의 일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일부터 시작한 웨일은 버넘증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장 경험을 체득했다.3) 그는 세 명의 파트너와 함께 조그만 증권사를 출범시켰는데 그 후 파트, 웨일은 비즈니스 그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3. 거래의 전형이 된 헤이든 스톤1) 샌디 웨일의 비공식 타이틀 중 가장 많이 불리는 말이 ‘거래의 달인’이다. 웨일은 그만의 특별한 거래 방식을 사용한다.2) 1970년대 증권 산업의 타격으로 한때 내로라하던 헤이드 스톤이 급한 확장으로 곤경에 빠지자 웨일의 회사가 인수해 CBWL-헤이든 스톤 회사가 된다.3) 샌디 웨일은 파트너들과 동등한 위치였지만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4) “웨일은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했다.”5) 빨라진 경제의 흐름을 타지 못하면 결국 더 큰 회사에 합병당하는 운명이 된다.4. 월스트리트에서 두 번째로 큰 증권사1) 그는 직접 사람들을 뽑았다. “그는 무더기로 사람을 뽑는 것 같다. 그중에 몇몇은 자격 이하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나중에 엄청난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도 나왔다.”그는 나이가 어려도 능력이 있으면 큰 책무를 믿고 맡긴다. 때로는 이력서가 얼룩진 사람도 발탁했는데 그들은 두 번째 기회를 준 웨일에게 충성을 다했다.2) 헤이든 스톤 인수를 통해 소규모 비즈니스를 대형 비즈니스로 전환시킬 수 있었고, 자신만의 경영스타일을 개발하면서 딜메이커로서 성가도 구축됐다.3) 1970년대 초 그의 경력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비즈니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헤이든 스톤은 할 수만 있다면 어떤 거래라도 유치해야 했다. 그러나 ‘소규모 거래’ 전략은 빠르게 그 회사 실적에 나타났다.4) 회사의 몸이 커지자 경영진들의 단결심이 약화되었고, CEO를 뽑게 되었는데 이사회는 웨일의 손을 들어주었다.5) 새로운 규제들은 웨일의 입지를 더 강화시켜 주었다. 그는 이미 바뀐 환경에 견딜 수 있도록 재빠르게 회사를 개조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환경이 악화되면서 웨일의 화시는 더 사나운 경쟁자로 변모했다.6) 러브로즈 합병과 함께 웨일은 월스트리트의 메이저급 인사로 부상했다. 웨일은 선행 거래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 거래에서 사용했다. 그는 합병을 성사시키는 담대함이 있었지만 그것이 그가 힘들여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웨일은 그 제안에 흥미를 느낀다. 더 큰 회사와 합쳐도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2) 그가 원하던 사장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갔지만 웨일은 아멕스의 최대 주주가 되어 꿈의 무대로 들어서게 된다.3) 아멕스에서 여러 일을 겪고 난 웨일은 다시 최고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아멕스를 사임한다. 아멕스 시절이 웨일에게 큰 성취는 없었지만 성장의 시기로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6. 커머셜 크레디트로 다시 시작하다1) 아멕스를 사임한 후 뱅크 아메리카 이사진들이 그의 제안을 공개적으로 퇴짜를 놓은 후 웨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다 죽어가고 있는 커머셜 크레디트의 간부들이 접촉해 온다. 그는 여러 번의 좌절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2) 커머셜 크레디트는 이내 일어섰고, 웨일은 뱅크아메리카 제의가 잘 안된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한다.7. 빅리그에 복귀하다1) 웨일은 스미스 바니를 얻음으로써 월스트리트에 복귀했을 뿐 아니라 프라이메리카의 CEO 겸 회장으로 빅리그에 다시 합류했다.2) 몇 년간 무리 없는 운영과 꾸준한 실적을 보여 주자 월스트리트는 웨일의 새 회사에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3) 웨일의 목표는 다변화된 대형 금융서비스 회사를 창조하는 것이었다.4) 기본적으로 각 거래는 웨일이 건설하는 제국의 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었다. 살로먼 인수를 종결한 후 웨일은 그의 금융서비스 제국의 마지막 부분을 채운 것 같다고 말했다.8. 세기의 거래1) 1998년 2월 웨일은 그의 시선을 씨티코프에 고정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거래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2) 파트너가 필요하던 씨티코프의 존 리드는 웨일의 제안에 합병 협상을 급속도로 진행시켰다.3) 공동 CEO가 된 리드와 웨일은 다른 비전을 갖고 있었다. 리드는 당분간 회사를 운영하다 공동 퇴진할 생각이었지만 웨일은 그렇게 은퇴할 생각이 없었다.9. 정상에 선 웨일1) 웨일이 변화를 주도하면서 그의 입지가 강화되고 리드의 영향력은 점점 더 약화되는 서로 전력을 다했다.3) 씨티그룹 이사회의 특별회의로 리드는 퇴진하게되고, 웨일이 단독 CEO가 된다.4) 해외 확장으로 멕시코 바나맥스를 인수한 씨티그룹은 2000년 말부터 시작된 경제침체를 헤쳐 나왔을 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날로 번창하고 있다.10. 씨티그룹과 샌디 웨일1) 대다수의 세계 주요 은행들에게 씨티그룹은 역할모델이 되고 있다.2) 2004년 웨일은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찰스 프린스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지금 웨일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도전과 실행, 정상의 명예를 즐기고 있다.다. 감상문씨티그룹은 금융공룡이라 불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최고의 금융회사이다. 세계 100여 개국에 지점망을 갖고 있는 다국적 은행과 증권회사, 생명보험회사, 손해보험회사, 자산운용회사, 신용카드회사가 모두 씨티그룹을 상징하는 빨간색 우산 아래 한데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미은행을 인수한 바 있는 씨티그룹은 한마디로 금융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지금의 씨티그룹이 있기 까지는 샌디 웨일의 탁월한 인수합병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씨티그룹은 존 리드의 씨티코프와 샌디 웨일의 트레블러스의 합병으로 이루어진 회사로, 씨티그룹은 M&A를 통해 성장한 회사이다.샌디 웨일은 거의 매년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는데 그의 결단력과 협상력은 인수합병 협상 때마다 발휘되었다.그동안 M&A라고 하면 안 좋게 생각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샌디 웨일이 여러 회사를 인수합병 해서 키워가는 것을 보고 마냥 안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샌디 웨일의 성공비결은 다 쓰러져가는, 부도 직전의 회사를(부도 직전이지만 잠재력 있는) 싼 값에 인수해 혹독한 체질개선으로 다시 흑자회사로 전환시키는 방법이었는데, 이 때문에 그는 늘 짠돌이 CEO가 되어야했고, 대규모 인원정리와 비용감축을 냉정하게 해야만 했다.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 나오는 M&A를 보고 비용감축을 위해 직원들을 해고하는 CEO를 못 마땅해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부도 직전의 회사합병해서 몸집을 키워갔다.가끔은 샌디 자신의 회사보다 몸집이 큰 회사도 인수했는데 새우가 고래를 먹는 격이었지만 샌디는 큰 회사가 큰 이익을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통해 회사를 더 키우고 브랜드까지 얻는다는 전략이 있었다.한 예로, 큰 회사를 인수했을 때 회사 이름을 인수한 그 회사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진 브랜드기 때문에 그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샌디 웨일은 보다 큰 회사로 만들기 위해 자기 회사를 큰 회사(아멕스)에 매각하고 그곳에 2인자로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인 그는 아멕스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했고, 그의 뜻대로 경영이 이루어지지 않자 결국 아멕스를 사임한다. 아멕스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자기 회사를 매각할 정도로 큰 회사에 욕심이 있었던 샌디였다.물론 샌디 웨일이 처음부터 이렇게 잘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무일푼의 증권회사 하급직원으로 출발한 그는 실패도 참 많이 겪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쌓은 경험은 그에게 많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요즘 청년실업이 문제라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이것은 다들 밑바닥부터 경험하려고 하지 않고 대기업만 바라보는 높은 눈높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경험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남의 경험을 많이 들었어도 자신이 직접 겪은 것만큼은 못하다.또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평생 한 직장만 바라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나가며 위로 올라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도 곧 취업할 때가 오겠지만 눈높이를 좀 낮추어 경험을 많이 쌓을 생각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는가.이렇게 무일푼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샌디 웨일에게서 배울 점 중 첫 번째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실패를 했다. 그 중에서는 다시 재기하기 힘들만큼 참담한 패배도 있었다. 1년이 넘도록 돈을 못 버는 때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샌디는 좌절하지 않고 이 같은 참담함을 겪고 난 뒤 더욱 강력해졌다.좌다.
    독후감/창작| 2005.06.01| 6페이지| 1,000원| 조회(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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