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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학] 광주 민주화 운동-사학사의 변화
    I. 교과서 서술 내용유신 말기인 1979 년 10월 26일 당시 중앙 정보부장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태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유신체제가 붕괴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발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유신체제의 폭압정치에 눌려왔던 국민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그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그런데 1979 년 12월 12일 전두환 소장이 이끄는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병력을 동원하여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때 미국은 12?12 사태를 방조했을 뿐만 아니라, 신군부에 암묵적인 지원도 펼쳤다. 이 사건으로 정치 권력의 공백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으며,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 헌정 복귀 요구는 더욱 거세어졌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신군부는 혼란 상태를 수습한다는 구실로 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시켰다.1980년 5월 18일 대학생들은 참된 민주화를 실현하고자 ‘계엄철폐’, ‘유신세력척결’ 을 외치면서 본격적인 시위로 돌입하였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시켰다. 한미 연합사령관 위컴은 계엄군 투입을 승인했고, 진압 과정에서 죄 없는 시위 학생이나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는 등 계엄군의 과잉 진압으로 많은 인명이 살상되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신군부를 지원하여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시민의 미국에 대한 민주화에의 기대를 외면함에 따라, 국민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던 반미감정 표출의 시발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표출되기 시작한 반미감정은 현재까지도 존속되어오고 있는 것이다.비록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쟁취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70년대 김지하 등으로 대표되는 지식인 중심의 저항이 소시민적 특성으로 비판 받아왔던 것에 비하면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 계층이 참여한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또한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후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준거가 되어 민주주의로의 도약의 토대로써 크게 이바지하였다.II. 교과서 내용 집필에 사용된 근거 및 부가설명1. 서론- 매년 5월이 되면 5.18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거나 이를 상기시키는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곤 한다. 올해에도 여러 매체로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사학 수업 시간에서도 다루다 보니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과연 어떠한 요인들 때문에 일어났으며 어떠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그러던 중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압이 미국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에 착안하여 과연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 미국은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또한 향후 이러한 미국의 관여가 어떠한 반향을 불러왔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미국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겠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정권 및 당시 신군부 세력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이들에 대한 언급도 포함될 것이다.2. 본론(1) 시대에 따른 대미(對美) 인식 변화① 정부 수립~1970년대 까지는 ‘반미(反美)’ 라는 개념이 미흡했던 시기② 시대별 구분ㄱ. 1950년대- 1950년대는 정부 수립 이후 곧장 치러야 했던 한국 전쟁의 여파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미군이 주체가 되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사람들은 북괴를 격퇴한 미군을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미국에 대한 불만은 더 이상의 북진을 허락하지 않았던 당시의 트루먼 행정부에 대한 것 같은 사안에 국한되었고 이를 반미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ㄴ. 1960년대- 1960년대에 들어오면 미국은 무조건적인 원조 방식에서 벗어나 그 전체적인 양을 줄여 나가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전후 복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도 북한에게 뒤져 있는 상태라 이러한 미국의 원조 정책 변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느껴졌다. 또한 미국은 마치 형님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로 인식했던 당시로서는 배신감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반미까지 발전하지는 않았고 그 사안 또한 정치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있었다.ㄷ. 1970년대- 이 시기의 미국에 대한 시각은 정치권과, 재야 및 일반 민중들의 두 계층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 계획으로 국가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된 박정희 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유신 체제가 탄생시킨다. 그런데 이 유신 체제 하에서 인권 유린 및 독재가 강화되자 미국의 민주당 정권(지미 카터)은 한국 정치계에 계속하여 경고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이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위협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 시작한다.한편 유신 체제 하에서 탄압받던 재야 세력은 이러한 미국의 개입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ㄹ. 1980년대 이후- 미국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1980년 5월에 일어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미국 측의 행보가 의심 받았기 때문이다. 1980년 한 해 동안 미국 측은 12.12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을 용인 또는 지지하는 인상을 주어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미국의 레이건 정부(공화당)는 전두환 대통령을 타국의 원수보다 앞서 제일 먼저 접견함으로써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지를 확인한 바 있다. 박정희 정권의 오랜 독재 정치를 거치면서 민주화를 열망해 오던 사람들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큰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야기했던 공수부대 및 진압군 투입에 미국 측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반미(反美)’는 향후 대 정부 및 학생 운동에도 주요 쟁점이 되었다.(2)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미국의 행보① 전두환 세력 견제 시도 무시- 12.12 쿠데타를 주도하여 정권을 차지하려 했던 전두환 등의 군부 세력은 이미 박정희 정권하에서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기반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다. 1980년 초, 이들의 세력이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정권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한 일단의 한국군 장교들이 전두환 세력 타도를 위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미8군 사령관 위컴을 방문했다. 그러나 위컴은 이들의 협조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② 군부대 이동 묵인- 1950년 한국 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에게 양도되었다. 이후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이하 한미연합사)가 설치되어 공동 운영에 들어갔지만 1994년 평시 작전권이 반환되기 전까지는 모든 작전권은 미군 측에 귀속되어 있었다.광주에는 시위 진압이라는 명목으로 1980년 5월 17일에 공수특전단이, 5월 27일에 육군 제 20사단이 진입했다. 그런데 이는 미군 측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부대 이동이었다. 그렇지만 미군 측은 이를 문제 삼지 않고 ‘각 군에 대한 한미연합사의 부대 귀속 및 이탈은 상대에 대해 통고만으로 가능하다’ 는 현실적으로 구속력이 없는 조항을 내세워 정당한 부대 이동이라고 두둔하고 있다.③ 신군부 지지 발언- 당시 주한(駐韓) 미군 사령관이었던 위컴은 미국 기자들과 가진 기자 회견 자리에서 전두환이 집권한다면 그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는 국내에서 주한 미군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그 집단의 수뇌의 공식 석상에서의 발화 내용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사실상 미국 측의 공식 입장이라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④ 계엄군이 사용한 장비가 미군 장비라는 제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몇몇 목격자들은 광주로 진입했던 진압군들이 소지하고 있던 소총, 포탄 등의 군 장비들이 한국군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미군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미국 측에서는 1980년 당시나 그 이후로 꾸준히 미국은 광주 사건에 대해 개입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책임도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미국 측이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3) 광주 사태와 관련된 향후 미국에 대한 시각① 1982년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1982년 3월 18일 14시 경에 부산에 있는 미국 문화원에 일단의 대학생들이 방화를 한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인근 유나백화점 국도 극장 3층에서는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라는 유인물이 배포된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주동자 문부식은 이 사건의 동기가 ‘광주 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있다.또한 법정에서1) 한국 독재 정권의 지원자 미국에 대한 경고2) 광주 학살에 책임이 있는 미국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정당한 응징을 하기 위해
    사회과학| 2005.06.03| 5페이지| 1,500원| 조회(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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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일반]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비평문
    마광수식 에로티시즘과 독자. 한국사회.‘알라딘의 신기한 램프’를 읽고1. 들어가기이 글의 저자인 마광수 교수는 정신보다는 육체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집단보다는 개인에 가치를 두는 세계관을 가진 문필가로 유명하다. 정부가 출판되는 서책들에 대해 막강한 검열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 그는 노골적인 에로틱 소설을 쓰다가 결국은 투옥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지금은 연세대학교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삶-특히 소설 ‘즐거운 사라’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고생하던 시절-은 갑작스럽게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인 한국 사회가 기형적으로 발전하면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일는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점점 열린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데 사회는 폐쇄적이라면 누군가 한 명이 십자가를 지고 나서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광수 교수는 억압된 한국 성 문화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다가 보수적인 지식인, 관료들에게 이단재판을 당하고 결국은 현대의 마녀사냥의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 한국 사회는 점점 다양한 가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마광수 교수의 예술세계 역시 재조명 받고 있다.‘알라딘의 신기한 램프’는 피카레스크식 소설처럼 각 장마다 특이한 에피소드들을 전개하고 있다. 주인공은 저자인 마광수 교수 자신이며 모든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다. 남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유려한 문체로 자신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에 대해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강건한 문체로 쾌락을 그려내기도 한다.2. 살펴보기(1) ‘파우스트’와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주인공인 마광수(현실에 존재하는 작가 마광수 교수와 소설 속의 등장인물 마광수는 같은 사람이지만, 문학의 특성상 본질적으로는 다른 인물이므로 소설 속 인물에게는 직함을 생략함)와 그를 돕는 세헤라자드를 보면서 문득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생각이 났다. ‘파우스트’의 처음부분, 파우스트는 절대적인 진리, 지식을 찾아내기 위해서 세상과의 연을 끊고 혼자서 연구를 거듭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범상한 것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마광수 역시 세상에 실망하고 더 이상 관심을 쏟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성에 대한 관념, 주장, 가치관을 간직한 채 내면세계에게 빠져 지낸다. 그러던 중 환상적인 경험들이 시작된다. 책의 첫 장에서 그는 평범하게 휴식을 즐기던 중에 갑자기 비현실의 세계로 인도된다. 벌들과의 쾌락으로 시작되는 그의 모험은 나중에 세헤라자드를 만나면서부터 점점 더 치밀하게 전개된다. 파우스트 역시 지극히 현실적으로 연구만 하던 중에 환상적인 마술을 부리게 되고 메피스토와 만나게 된다. 악마-세헤라자드와 메피스토. 그것을 악마라고 부르든 요정이라고 부르든 둘의 속성은 비슷하다-와의 계약을 통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게 된 파우스트와 마광수는 한결같이 지상의 쾌락을 경험해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저자가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류문학사에서 가장 난해하면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파우스트’를 마광수 교수가 이야기하는 ‘패러디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건 엄청난 권위에 대해 철모르는 아이가 반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떨까? 오히려 여기서 그의 어린아이같은 순수함,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읽을 수 있다. 괴테든 마광수 교수든, 파우스트든 마광수든 다 같은 인간이 아닌가?한 편, 메피스토와 세헤라자드는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돕는 역할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다. 메피스토는 어디까지나 파우스트의 영혼을 강탈하기 위해, 평소에 가진 그의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도울 뿐이다. 그러나 세헤라자드는 단지 마광수의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심복일 뿐이다. 마광수의 행동에 조언을 하거나 간섭하기는 하지만 그 목표는 어디까지나 그의 쾌락에 있다. 결말에 이르러서 역시 두 이야기는 그 모습이 다르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한 깨달음을 느끼며 신의 곁으로 승천한다. 로고스는 결국 신에게 있다는 기독교 사상에 물들은 이야기... 지겹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신에게 복속되어 있는 존재이고 인간의 사고는 단지 불완전하다는 식의 논리에는 이제 염증이 난다. 그래서인지 처음 가치관이 변하지 않은 채 쾌락만을 즐기며 남들이 어쩌건 신이 어쩌건 자신의 처음의 생각대로 산다는 마광수식의 결말이 나에게는 더 와닿는다.(2) 비판프로이트에 따르면 소설이든 시든 모든 문학은 이데올로기, 사회적 제약에 억압받은 무의식이 의식의 힘을 빌어 표출되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는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글을 통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내고 독자는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욕망을 대리배설한다. 그리고 자신과 작가의 견해가 다르더라도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설령 독자로서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를 읽고 있는 내가 작가 마광수의 무의식, 욕망이 내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사회의 이면에 감추어진 코드를 읽을 수 있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처럼 주구장창 작가가 원하는 세계에 대해서만 썰을 풀고 있는 걸 보노라면 지나치게 작가만 혼자서 대리배설 하고 있는 것 같다. 단조롭다. 마치 독자가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사상이 그러하듯이 남들이 뭐라건 자기 할 말만 다 하겠다는 것 같다. 책은 독자와 작가의 대화의 장이다. 이런 곳에서 자기 좋아하는 것만 말하겠다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권위적인 마쵸가 비가시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이 책의 묘사는 하나하나가 섬세하다. 특히 여성의 신체부위나 할렘의 정경을 그려내는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다. 그런데 수십개의 에피소드들을 읽다보면 그런 치밀한 묘사에 질리는 감이 없지 않다. 저자는 갖가지 색깔로 치장한 손톱, 고혹적이고 눈부신 머리, 짙은 화장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자는 민감한 사람들이다. 아니 꼭 독자에 국한시킬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흔히 말하듯이 맨날 좋은 음식만 먹다보면 진귀한 음식보다 싸구려 컵라면을 더 원하는 게 사람의 이치이다. 똑같은 소재만 자꾸 사용하면 아무리 묘사, 설명이 참신하더라도 질리게 마련이다. 나아가 글을 열심히 쓴 작가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정말 의욕을 가지고 쓴 것이 맞기는 한가. 책을 낼 원고 분량을 채우느라고 귀찮아서 대충 채운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을 수 있다. 독자는 의외로 비판적이기도 하다. 작가는 독자의 눈에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책을 통한 원만한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는 선생님에게 어떤 학생이 흥미를 느끼겠는가.(3) 이 책이 던져주는 의미소설 속 인물 마광수는 자신을 마녀사냥한 한국사회를 시종일관 비하하고 무시한다. 한국사람이 자신이 속한 한국이라는 국가를 힐난하는 것이 보기 안 좋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얼마나 이 나라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나라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가 있다. 정부가 늘 주장하는 자유주의의 미명 하에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말이 얼마나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 없는 말인지 작가 마광수는 신랄하게 풍자한다. 그가 경험하는 환상적 세계에 21세기 현대 한국 사회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고 배제되어 있다. 설령 그것이 배경으로 등장하더라도 ‘황진이’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단지 현대는 전경으로 등장할 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고대, 혹은 미래에 국한된다. 과거 군부세력이 독재를 하던 시절 많은 사람의 입은 어디까지나 밥을 먹는 수단이었지 말을 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참 편해졌다고 말해도 개인의 입을 억압하는 장치로서의 공권력은 아직 남아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수입된 만화책에서는 근친살해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윗대가리분들의 식성에 안 맞아서 부분부분 내용을 바꾸는 방식으로 출판했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을 치밀하게 하기 위해서 작가가 고심해서 만들어 놓은 여러 장치를 미풍양속이라는 이름의 메스로 도려내어 버린 다음에 대용품으로 얼토당토 않는 쓰레기 같은 장기를 이식해 버리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고치려 하기보단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인물 마광수의 모습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지만 독자에게 이차적인 의미를 던져준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어떠한 지배적인 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로고스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배계층과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는 대로 군중을 다스려나가는 수단일 뿐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다보면 시종일관 나오는 사디즘, 마조히즘과 관음증에 물든 마광수의 변태적 성욕에 넌더리가 난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작가의 사고를 이해하다 보면 과연 그가 주장하는 것들을 ‘변태적인 것’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게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런 에로틱한 이야기에 보편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 전반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유교사상 때문이다. 유교사상이 옳은지 그른지는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다. 다만 오랜 시간을 두고 학습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옳은 것으로 느낄 뿐이다. 이데올로기는 세뇌받는 대상에게 아무런 저항없이 침투한다. 작가 마광수는 쉽게쉽게 길들여진 우매한 군중들에게 맑시즘적인 일침을 가한다. 한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자유주의, 유교사상의 두 이데올로기는 서로 불완전한 상태로 일부분은 이쪽에 다른부분은 저쪽에 맡기는 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 둘이 잘 융합해서 개인과 사회 모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느 한 쪽도 완전한 상태로 존재하지 못한다. 때문에 때로는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유교사상을 억압하기도, 때로는 유교의 이름으로 자유주의를 억압하기도 한다. 이런 기형적인 사회이념 속에 내재적인 본능에 충실하고 자유롭고 싶어하는 작가 마광수를 짓누르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어학| 2005.05.16| 5페이지| 1,5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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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환경오염, 자연오염, 환경파괴, 환경] 환경오염 방지 대책
    인류는 조금 더 편리하게,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생각하고 연구하며 살았다. 원시시대에는 조그만 자연적 재해에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지만 지금처럼 어지간히 큰 재앙이 아니면 별로 관심도 못 끌 정도로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된건 분명히 과학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술혁신을 거치며 사람들은 안락하게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한 편으론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과도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개인의 존재의의에 대한 무관심이 인간소외현상을 포함한 각종 정신적 질환을 낳기도 했고, 가족간의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큰 문제로 대두되는 게 환경오염의 문제이다. 원래 자연속에서 살던 인간은 언제부턴가 자연을 개발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산업혁명 이 후 이러한 가치관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필요할 때면 나무들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들을 가차없이 밀어버렸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다가 나오는 오염물질들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자연에 배출시켰다. 그 결과 지구는 점점 망가져 갔고 그 피해가 사람들에게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 코, 입, 귀 할 꺼 없이 온몸에 대해 환경오염은 새로운 질환을 가져다 주었고 기형아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등 직접적으로 인간도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은 친환경적인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연에 속해있는 존재며 자연과 운명을 함께 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그냥 방치해두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데 뛰어들어야 하며 환경오염을 줄일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1. 조그만 부분들로부터.: 환경오염의 발생은 사회나 기업에 의한 것도 크지만 개인의 무절제함이 초래하는 부분 역시 무시할 순 없다. 아무리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환경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정부, 이익단체, NGO 들이 열심히 활동해도 언제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건 국가를 구성하는 가정과 ‘뭐 이정도 쓰레기는 그냥 아무데나 버려도 별 상관 없겠지’하는 생각으로 무단 투기하는 음료수 캔, 담배꽁초, 휴지 등이 환경오염에 큰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소풍이나 하이킹을 가서 산 속에 몰래 버리는 짓들 때문에 자연은 점점 황폐해져간다. 이런걸 막기 위해 사람마다 하나씩 가방이나 핸드백 속에 쓰레기를 담고 다닐 봉투를 가지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릴 때 봉투까지 함께 버리면 자원의 낭비가 심하므로 봉투는 버리지 말고 씻어서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쓰레기 수거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오는 검은색 얇은 비닐봉투처럼 잘 찢어지고 한번 밖에 못 쓰는 그런 봉투가 아니라 모두들 거부감 없이 가지고 다니면서 얼마든지 오래도록 쓸 수 있게 재질도 튼튼하고 디자인도 신경 써서 효율적이고 보기에도 좋은 봉투를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면 훌륭한 환경오염 방지대책이 될 것이다.? 환경호르몬 방지 :환경호르몬은 생체호르몬과는 달리 환경 중이나 생체 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고 안정하여 심지어 수년간 지속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호르몬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6년 3월 ‘도둑맞은 미래’가 출간되면서 부터이다. 이 책에서는 주요 환경호르몬들이 생성되어 생태계 전체로 순환되는 기작과 이로 인한 영향들에 대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이러한 내분비계 교란물질들은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기도 하고 또 강화시키기도 하면서 극미량으로 생체의 발육과 성장 및 각종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근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성호르몬의 기능에 영향을 많이 주기 때문에 생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생식능력을 감소시켜 생물군의 개체 수까지도 줄일 수 있다.이와 같이 환경호르몬 물질들은 파충류, 어류, 조류 및 포유류 등의 야생동물에 심각한 영향을 주어 개체수 감소 및 성의 혼란 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자수 감소 등을 포함한 현재와 미래의 인간건강에 대해서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염려되고 있다. 인간 우물물을 마신다면 지하수 오염에 주의해야 하며 농촌의 경우 더욱 그렇다. 먹는 물의 오염은 살충제나 제초제를 뿌리는 계절과 그 직후에 최고도에 달하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환경호르몬은 세균과 불쾌한 맛과 냄새를 없애주는 정수필터로 제거되지가 않기 때문이다.다음은 음식물 섭취 시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어린이들과 가임연령의 여성들은 다이옥신과 PCB와 같은 호르몬저해 유해화학물질로 오염된 물고기의 섭취를 피해야 한다. 또 다이옥신에 많이 노출된 치즈, 버터, 양고기, 쇠고기 등 동물성 지방 섭취를 피하고 대신 야채와 곡류, 과일이 풍성한 식단을 택하는 것이 좋다.특히 플라스틱과 음식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넣든지 플라스틱 랩에 씌워 가열하거나 전자레인지에 넣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전자레인지를 쓸 때는 유리나 자기 용기를 사용하도록 한다.합성화학물질의 불필요한 사용과 이에 대한 노출 역시 피해야 한다. 여러 연구결과 많은 합성화학물질이 증발되어 실내에 있는 계산대, 탁자, 가구, 의류에 붙어 그것을 만지는 사람들에게 쉽게 달라붙어 있으므로 손을 자주 씻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절대 살충제가 사람에게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살아있는 유기 생명체를 죽이도록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인간이나 동물에게 해로울 수 있다. 따라서 애완동물의 이나 진드기 등도 살충제를 가능한한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법에서 오리를 사용하듯이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그 밖의 주의 사항으로는 아이에게는 가능한 플라스틱 장난감보다는 천연소재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며 어른들의 경우 골프장은 유해화학물질에 폭로될 위험이 매우 높은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한 골프장에 대해 조사를 한 결과 골프장 경영자들은 농부가 밭에 뿌리는 것보다 최소한 4배 이상의 살충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미국 롱아일랜드 골프장에서 사용되는 52종의 살충제 가운데 7개가 내분비호르몬 저해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에서는 손을 입에 갖다 는 일이다. 이에 대한 정보를 서로 나누고 정부나 기업이나 기타 사회단체에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일상생활에 있어서는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고,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방안도 예방에 좋다. 유기농산을 주로 먹으며 인스턴트 음식을 삼가고 쓰레기에서 환경호르몬 물질이 배출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분리배출한다. 또 캔에 들어있는 음료수의 경우 캔에서 나온 물질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것의 섭취를 줄이는 것 역시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2. 커다란 틀에까지.: 환경오염은 발생할 때는 미시적인 곳에서 발생하나 순식간에 오염이 확산되어 세계적인 차원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도 있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남극에 구멍이 난 사례를 보면, 그곳은 한 국가의 소유가 아닌 세계 모든 국가가 공유하는 곳이므로 적극적으로 환경대책을 수립할 주체가 없다. 그리고 황사현상같은 경우는 발생지는 몽고의 사막에서 시작되어 중국, 한국을 거쳐가므로 어느 한 국가가 신경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방안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계획 :한 국가에게 있어 그 나라 국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산업이 발전하게 하기 위해선 개발이 필수적이다. 과거 이런 개발활동은 산업화의 미명 아래 환경을 생각하지도 않고 무분별하게 이루어 졌고 그 결과 지금의 환경을 낳았다. 개발과 환경보호는 서로 상충되면서도 둘 다 좇아야 할 딜레마적인 것이다. 윤리, 과학, 역사적 목적에 있어서 양쪽 다 추구해야만 하는 것들이고 그 결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인류역사에 기념비적인 ‘지구헌장’이 채택되었다. 이 역사적 지구헌장이 나오기까지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노력은 이제껏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지속적이었다.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인간환경에 관한 회의는 환경 보존과 개발의 문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 환경의 질과 삶의 질의 관계에 관한 문양동물의 보호, 회복불가능한 기후변화의 방지 등이었다.세계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더라도 세계는 국가처럼 정부라는 통솔기관이 없으며 대통령이나 왕같은 최상위 존재가 없으므로 그 대책을 추진하는 데에서는 하나로 모이기가 쉽지않다. 따라서 세계적인 합의 하에 각국의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우선 정부는 민간기업과 일반시민뿐만 아니라 중앙, 지방정부가 참여하도록 권장되는 효과적 국가계획은 물론 국제적 국가적 차원의 확고한 협력을 신장하는 태도와 조건을 요구하는 지구적 차원의 변화를 명시하는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는 정책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 각 지방마다 그 특색에 어울리는 발전을 이룩한다는 데에서는 효과가 있었으나 지역 이기주의 현상의 하나로 타 지역에 대한 고려가 없는 무분별한 개발을 낳았다. 둘째로는, 모든 수준의 개발계획에 환경목표와 경제적, 사회적 목표를 통합하는 잘 홍보된 행동지향적 계획을 채택해야 한다. 환경파괴가 이루어진 이후에의 보상, 그것도 마지못해서 하는 사후 보상적 대책이 아닌, 미래세대의 존폐가 달린 문제라는 인식하에서 개발계획 자체에 환경목표를 내재시켜야 한다. 셋째, 환경연구분석 연구와 감시에 더욱 실질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효율성 제고의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기업이나 개인, 국가가 적극적으로 환경연구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연구를 하는 주체가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 투자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이는 궁극적인 목표인 환경오염방지와 전혀 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넷째, 오염방지와 쓰레기처리를 규제하는 관련법규와 제재를 재정비하고 현대화하여야 한다. 현대사회는 날이 갈수록 기술이 진보하고 있고 그에 따라 종전까진 그 존재를 모르던 환경오염물질이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에 대해 법령이 뒤쳐지지 않고 따라가면서 규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대규모 차원의 환경악화 원인인 ‘빈곤의 함정’으로부터 개발도상국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형의 무역정책, 원조정책, 외채상환정책을.
    자연과학| 2005.05.16| 5페이지| 1,500원| 조회(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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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트릭스와 철학]매트릭스 감상문 평가A좋아요
    매트릭스 감상문영화 ‘매트릭스’는 단지 눈에 띄는 액션신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많은 메시지를 담고있다. 제작자인 워쇼스키 형제는 총 3편으로 구성된 방대한 양의 영화에 자신들이 알고있는 지식들과 주장하고 싶은 견해들을 많이 집어넣었다.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을 살펴보면 성경에 자주 나오는 단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여러 가지 어휘를 차용해 그 개념에 대한 이미지를 주조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낯설고 어렵게 다가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짙게 녹아있고, 현대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를 암시적으로 표현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토론의 주제를 한 가지로 단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매트릭스를 보고내가 가장 많은 생각을 한 것은 매트릭스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매트릭스(matrix)란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의도적으로 주조된 모형’이다. 영화에서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인공지능으로 인간들을 통제하는 가상현실의 세계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의 육체는 미동도 하지 않고 다만 컴퓨터에 의해 배양되고 있고, 정신은 직접적으로 통제를 받아 매트릭스 안에서 개인은 그것이 가상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가 영화를 시청하는 제3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것이지, 만일 우리가 통제를 받는 절대다수의 인류중 하나라면 이 세계가 거짓이고, 또다른 진실의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우리는 영화에 미친 정신병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 세계가 진짜’라는 명제가 과연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감각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우리가 바다를 보고 파랗다고 느끼는건 가시광선이 우리의 눈을 자극해 파랗다는 인식을 뇌에 보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라는 영역에 가시광선만 있는 건 아니다. 바다는 적외선의 영역에서 볼 때, 자외선의 영역에서 볼 때 모두 다른 색깔이다. 바다란 사물의 본질적인 실체는 우리가 지각을 할 수 없어서 모를 뿐이지, 검은색일 수도 혹은 하얀색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다는 파랗다’는 말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뿐 증명할 수는 없는 명제이다. 이 세계도 바다와 마찬가지다. 과연 이 세계가 진짜냐는 질문에 명확한 증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수학적,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밝혀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많은 사람은 이 문제를 종교에 떠 넘긴다. 그냥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식으로 신앙을 강조한다. 그리고 신앙이 확실하게 그 자리를 굳히지 못했던 시기에는 인간의 감각은 제한적이므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생각하는 나의 실재를 밝혀내기는 했다. 그것만은 어떻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진리이다. 그러나 나는 철학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한마디에 조심스럽게 감히 묻고싶다. 이 ‘생각하는 나’가 비록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생각해낼 수 없는 존재에 의해 그 생각마저 지배받고 있고, 어렵게 이끌어낸 이 한마디 역시 인간을 지배하는 존재가 부여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떨까?실제로 그런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영화 속의 인류는 절대로 자신이 가상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하고 가상이 현실이라는 사실만 믿고 살아간다. 다만 극소수의 계층만이 진리를 깨닫고 컴퓨터에 대항하면서 인류를 구하기 위한 투쟁을 할 뿐이다. 그들은 가상의 세계와 실재하는 세계에서 모두 주체성을 가지고 통제받지 않으며 살아간다. 열려진 인식 속에서 통제받지 않고 스스로 사유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네오는 원래 매트릭스 속에서 통제된 삶―물론 통제받는 줄은 전혀 몰랐지만―을 살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러나 모피어스 일행이 네오를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꺼내주면서 진리에 대한 인식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성을 일깨워 준다. 주체는 망각하고 있고, 객체로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회사원 앤더슨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네오가 되다. 그러나 네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체적인 존재가 되었을 때 느낀 것은 진리가 아닌 혼돈이었다. 데카르트의 말을 따르자면 세상은 주체와 객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바로 주체는 인간이고 객체는 자연이라고 주장했다. 주체는 객체를 인식하고,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인간이 객체로 존재한다. 가상 공간안에서 인간은 아무런 의심없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컴퓨터가 조작한 객체로서의 인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성일 뿐이다. 이 객체로서의 인간을 파괴해버렸기에 앤더슨이 네오로서 의미를 지닌게 된 것이다. 요컨대, 매트릭스 안에서 자신이 바로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사실은 매트릭스라는 범위안에서 객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오가 매트릭스 밖으로 나와 진짜 세계에서 느낀 혼란은 진짜 세계에 있기 때문에 매트릭스를 하나의 컴퓨터의 조작으로 단정지을수 있는, 매트릭스안의 나, 매트릭스 모두를 객체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주체가 되면서 새로운 나, 새로운 자아정체를 확립했기에 느낀 혼란이었다.그러나 여기에 욕망의 문제가 슬며시 끼어든다. 분명 매트릭스에서 자유로운 인간들은 주체로서 자유로운, 사유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진짜 세상은 진리의 세계이고, 나머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웅의 삶이다. 매트릭스는 비록 만족할만한 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거짓의 세계이다. 전자는 이성의 세계, 후자는 욕망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네오는 진리를 알고 난 뒤 구세주로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꼭 기쁨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언제 기계들에게 당할지몰라 두려움에 떠는 바깥세계의 생활에 회의를 품기도 한다. 배신자로 등장하는 사이퍼는 이성의 세계에 살아가는 잔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스미스와 타협해서 다시 매트릭스로, 욕망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 두 인물은 흡사 예수와 유다같다. 예수는 구원이라는 대의를 위해 인간으로서의 욕망은 모두 눌렀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인 유다에게 형이상학적인 진리와 인류의 구원이라는 대의를 위해 욕망을 모두 누르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은화를 받고 배신하게 된다. 유다에게서 예수를 사는 상인의 모습을 매트릭스는 ‘스미스’란 인물을 통해 나타낸다. 스미스는 대다수의 인간이 살아가는 거짓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진리를 모르게 하도록 애를 쓴다. 그러나 스미스가 단지 매트릭스 안의 객체로 살아가는 인간이 주체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존재로만 생각할 게 아니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가끔씩 이성을 벗어나게끔 하는 ‘본능’이란 존재이기도 하다. 본능은 생존과 맞닿아있다. 사이퍼는 실제 세계의 가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본능에 따라 자기보존을 하기 위해서 욕망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그를 배신자로 몰아 관객은 사이퍼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만일 우리에게 욕망과 이성 중 어떤 걸 고르도록 시킨다면, 나는 과연 어떤 것을 고를까? 사람이 사소한 것이라도 선택을 하는 데에는 많은 정보와 외부압력들이 영향을 주지만 마지막에 결국 선택하는 것은 주체 자신이다. 꼭 사이퍼가 욕망을 택했다고 미워하고, 네오가 이성을 택했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영화의 내용을 떠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성과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을 생각하지 않는 욕망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든다. 욕망이 없는 이성은 공허할 뿐이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위해 필요한 것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은 때로는 이성적으로, 때로는 욕망에 따라 살아가면서 그 두 요소 속에서 갈등한다. 절대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죽을때까지 이성과 욕망 속에서 방황하는 주체로 살 것이다. 하지만 방황하기 때문에, 갈등하기 때문에, 즉 인간은 주체로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매트릭스에서 컴퓨터가 인간의 생각을 조작하는 것처럼 다른것에 휘둘려서 사는 게 아니라, 불안하더라도 주체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4.11.03| 3페이지| 1,000원| 조회(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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