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나는 여자들에게 낙태 약을 주지 않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인간의 생명권이 그가 어머니의 자궁에 수태된 순간에 침해된다면, 인간의 침해될 수 없는 선(善)들을 확실하게 해 주는 도덕 질서 전체에도 간접적인 타격이 가해집니다. 이런 선들 가운데 첫 번째는 생명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79.1. 페기 스틴슨의 퍼즐낙태에 관한 혼란* 1976년 12월 페기 스틴슨(Perry stinson)은 임신 24주째였지만, 태반이 자리를 잘못 잡는 바람에 그녀와 태아의 생명이 위협받고있었다. 12월 15일 페기와 남편 로버트는 낙태에 관해 의논했다. 당시 미국은 낙태가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행해질 수 있었다. 남편과 의논이 채 끝나지 않은 다음날, 체기는 아이를 조산했다. 아이가 살아난다 해도 뇌 손상과 신체장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았다. 스틴슨 부부는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비통상적인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치료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법원에 고소하겠다고 하였다.그녀는 일기장 " 여성은 24와 2분의 1주째에 낙태를 통해 건강한 임신을 끝낼 수 있고, 그것은 합법적이다. 24와 2분의 1주째에 자연유산으로 임신이 끝날 수도 있지만 이때 아기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이고 비도덕적이다."* 임신한 여성이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태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산모의 신체적인 기능을 유지시키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만약 우리가 태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고통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정당하다면, 이러한 판단이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친 낙태에 대한 윤리적, 사회적, 법적 태도의 심상치 않은 변화는 인간 생명을 신성시하는 전통적인 관점에 반대한 첫 번째 주요 흐름이었다. 낙태 인정은 인간 생명을 신성시하는 윤리에 또 다른 압력이 되고 있다. 전통 윤리는 이제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렵고 대체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2. 피할 수 없는 문제생명 옹호론자와 선택 옹호론자*생명 옹호론자(pro-life)1. 낙태 반대 운동가.2. 인간 태아의 생명권이 다른 인간들의 생명권과 동등하다고 생각.3. 생명 옹호론자들의 오류 : 인간의 생명은 보호하려는 반면, 먹기 위해 동물을 살생하는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생명 옹호론`으로 불리는 것이 마땅함.*선택 옹호론자(pro-choice)1. 임신을 지속할지의 여부는 선택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2. 낙태의 문제를 개인이 선택할 문제로 보는 것은 태아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있음.3. 선택 옹호론자들의 오류 : 태아에게 선택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태아의 기본적인 권리를 명백히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권 반대론`이기도하다.생명권을 얻는 시기에 대한 입장*종교1. 유대교 : 낙태는 결코 살인과 동일시되지 않는다.2. 성경 : 낙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3. 가톨릭 : 중세시대 토마스 아퀴나스가 임산부가 태동을 느끼기 전까지 인간 배아나 태아를 미정형 상태로 간주4. 19C이후 : 로마 가톨릭 교회가 수태된 순간 이후의 모든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 수태된 순간 이후의 모든 낙태 는 종교적인 죄라는 가톨릭의 교리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5. 현대 생물학에 의해 초기 인간 발달의 실체가 밝혀지자 인간 생명의 시작이 태동 때부터라는 견해를 포기. 임신 중에 어떤 시기에서도 낙태를 금지한다는 교리를 정하기 이름.*형법1 .관습법 : 낙태는 태아가 움직이는고 살아 있는 경우에만 범죄에 해당된다.2. 19C : 수태 후 어떠한 시기에서라도 낙태를 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3. 새로운 법이 생겨난 이유 : 미국에서 정규 의과 대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이 새로운 법을 강력히 지지. 정규의사 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준수한다는 것.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들의 낙태를 금 지. 정규의사들은 태동이 인간 생명의 시작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음. 이런 이유로 정규 의사들은 태동 이후에 태아의 생명만을 보호하는 당시의 법률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겼다.4. 19C 후반 : 미국의사협회(AMA)는 낙태 반대 운동의 포문을 열었음. 1859년 미국 루이스빌에서 개최된 전국 대 회에서 대의원들은 만장일치로 당시의 낙태 관행을 비판.5. 19C 페미니스트 : 낙태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페미니스트의 주장 : 남성들이 성욕을 자제. 부인들이 육아에 너무 매이지 않도록 하자. 원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해법은 합법적인 낙태가 아니라 성적 금욕.6. 20C 초반 : 미국의 모든 주에는 임신 전 기간에 걸쳐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생겨남.7. 1960년대까지 교회의 가르침, 영미법, 여론 및 의료 윤리는 공통적으로, 수태되는 그 순간부터 태어나기 직전까 지 인간의 생명을 고의로 죽이는 것은 나쁘다고 간주. 19C에는 태동 이전에 낙태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이제는 수태 이후에는 낙태가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은 언제 인간 생명이 시작되는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3. 합법적인 낙태의 시대낙태가 합법적으로 생각하게되는 계기낙태 옹호론자들은 낙태의 문제를 선택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로 보려고 함.1. 로우 대 웨이드(Roe vs. Wade) : 태아가 체외에서 생존 가능한 시기 이전까지는 낙태가 헌법상의 권리들 가운 데 하나로 인정.2. 탈리도마이드 :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산부들이 기형아들을 출산하는 사건들이 발생. 탈리도마이드 때문이었 음이 밝혀지자 그것을 복용했던 많은 임산부들은 낙태를 원함. 벨기에의 한 여인이 탈리도마이드 때문에 기형으로 출생한 자기 아이를 죽였다가 무죄로 풀려난 사건이 발생. 낙태 금지법을 개혁해야한다는 물결이 일어남.ex)세리핑크베인3. 불법적인 낙태 시술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죽는 임산부의 숫자가 상당히 많다는 것.1967년 영구 의회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킴. 명분은 낙태로 인한 아픔보다 더 클 산모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그 가족들의 아픔 을 방지한다는 것. 태아가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상당한 위험이 있는 경우 낙태가 허용된다는 구정이 포 함.4. 1973년에 캘리포니아와 뉴욕 주를 포함한 미국 내 18개 주에서는 산모의 건강, 태아의 기형, 또는 강간이나 근친 상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안이 개정.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삶의 마지막에서 바라본 진정한 삶-예전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뼈만 남은 채로 휠체어에 의지해 강단에 선 모습을 본적이 있다. 이 책의 말을 빌리자면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다리에 해당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까지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예전에 내가 봤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병과 같은 루게릭 병에 걸린 모리 슈워츠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친구이자 제자, 그리고 그의 선수인 미치 엘봄의 마지막 프로젝트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육체는 시들어 가지만 정신적 영혼만은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모리의 인생과 인간관계에 대한 마지막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표지를 넘겨보면 표지 위 뒷장 위에는 그들의 사진이 있다. 백발머리에 검은색 뿔태 안경을 쓰고 허리춤까지 담요를 덮어 쓰고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모리와 그 앞에서 모리를 바라보고 있는 미치의 모습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첫 감사의 말에서 여러분껜 혹시 이런 스승이 안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무슨 스승이 길래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할까 의아해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지금까지 나의 학교생활을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감사하는 마음의 스승님들이 많았지만 그 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나는 가끔씩이라도 그 스승님들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나 역시 미치가 대학 졸업 후 그랬던 것처럼 내 일에 바쁘다는 핑계만 늘어놓을 뿐이다.이 책은 열 네 번의 화요일 동안 미치가 모리를 만나러 오면서 세상, 자기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람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의 인생은 무엇인지내지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와 닿는 화요일은 일곱 번째 화요일인 나이 드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다. 미치는 모리를 만나러가는 보스턴 공항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려진 광고판을 보게 된다. 그리고 35살이 된 미치는 모리에게 정상에 있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지만 벌써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에 들어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먹는 것을 조심하고 거울 앞에서 머리가 얼마나 벗겨졌는지 점검하고, 젊었을 때는 자랑스럽게 나이를 말했는데 이젠 더 이상 나이 얘길 꺼내지 않게 되었다고, 또 직업적으로 인기를 잃을까봐 사십 줄에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미치를 보고 나 역시 그동안 부모님께 의존해 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만끽하며 그래도 이제는 어른이라는 생각과 아직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이젠 10대가 아닌 20대라는 생각 때문에 고민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미치의 질문에 동감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운다. 21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21살 만큼 무지할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이 아니고 성장이다.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다. 그것은 죽게 되리라는 점을 이해 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쇠락하는 것이 아니고 성장을 하는 것이라는 말, 이 말이 나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아직은 어리지만 얼마 안 있으면 나이를 먹게 되면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하고 결혼을 생각해야 되고 그러다 보면 한 남자의 아내로써, 그리고 아이들의 어머니로써 살아가다보면 인생이 너무 쉽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모리의 그 간단한 대답으로 인해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나이에는 내가 할 일이 있으며, 그리고 30대, 40대, 50대가 되면 역시 조금씩 성장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모습에 흡족해 할 것이다. 모리는 또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은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생각은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모리의 이러한 말은 또 다시 나의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 놓았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게 해주었다.두 번째로 나에게 특히 의미있게 다가온 부분은 모리의 삶의 부분이었다. 모리는 교수가 되기 전에 워싱턴 D.C 외곽에 있는 정신 병원에서 몇 년간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들을 관찰하고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하루 종일 비명을 지르는 환자들, 밤새우는 환자들, 옷에 오줌을 싸는 환자들, 먹기를 거부해서 영양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되는 환자들을 관찰하였다. 한 중년의 여자 환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매일 방에서 나와 타일 바닥에 얼굴을 박고 엎드려 몇 시간이고 그대로 있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그녀를 빙 돌아 지나갔지만 모리는 그것이 슬퍼서 어느 날 그녀의 옆에 앉아 있으면서 옆에 엎드리기까지 하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과 똑같았다. 자기가 거기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모리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예비 간호사로서 환자를 간호함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 개발된 특효약이나 치료법이 아닌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모리는 또 한명의 환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누구한테나 침을 뱉곤 했던 여자이다. 이 여자는 모리를 좋아해서 친구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매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원 의료진은 누군가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어서 안심했다. 한데 어느 날 그녀가 달아나자 모리는 그녀가 병원에 돌아오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람들이 근처 상점까지 추적하자 그녀는 상점 뒤에 숨어 있었다. 모리가 상점으로 들어가자 그 환자는 성난 표정을 지으면서 결국 당신도 그 사람들과 똑같군요 라고 쏘아붙였다. 모리는 관찰 결과 환자 대부분이 거부당하고 무시 받으며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 존재를 확인받지 못하며 살았던 것이 있음을 깨달고 그들은 연민을 기대했지만 의료진에겐 연민 따윈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부유한 가정 출신이 많았다. 부가 결코 행복이나 만족감을 사주지는 못했다. 비록 정신병원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간호학을 전공하고 머지않아 환자들과 같이 호흡하며 살아갈 나에게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환자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육체적인 고통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하기 위한 특효약인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가?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몸을 보신할 수 있는 보약식이나 특효약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관심과 연민이었던 것이다.